불교

대승불교

수선님 2024. 3. 24. 13:57

대승불교

대승(大乘)은 소승(小乘)에 맞서는 말로, 커다란 승물(乘物, 탈 것) Maha-yana를 의미한다. 소승 즉 작은 hina 승물(乘物)이란 열등한 승물이라는 뜻이며, 대승불교가 처음 일어났을 때 그 이전의 모든 불교를 일괄하여 소승이라고 낮추어 부른 것이다. 따라서 소승교도 자신은 이 명칭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승불교가 뛰어나다고 하는 것은 진실한 깨달음에로 특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누구나가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승불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에서 열등한 것으로 여겨졌다.

대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보살(菩薩)이라 하고, 소승의 길을 걷는 사람을 성문(聲聞) 및 연각(緣覺)이라 한다. 소승에는 이들 두 길이 있으므로 소승을 이승(二乘)이라고 한다.

대승에서 보면 이들 성문, 연각이라는 구별은 이승이 궁극의 길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들도 참으로 궁극적인 것을 구한다면 모두 대승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생각하므로 전 불교는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길이며, 그런 의미에서 일승(一乘)이라고 한다.

1. 대승불교의 성립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불교교단석존이 입멸 후 약100년간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러나 100년쯤(기원전 4세기) 되어서는 계율과 교리에 대한 엇갈린 견해가 발생하여 마침내 교단은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불교의 전파범위가 넒어짐에 따라 각 지방으로 퍼진 불교는 그곳의 기후, 풍토, 습관 내지 문화적 제반 사정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비구들의 생활양식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법과 율에 대한 다른 견해가 생겨나 교단은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예컨대 붓다는 비구는 신자로부터 금이나 은을 받아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한편에서는 시대적 상황변화에 따라 그것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로부터 불교교단은 전통적인 계율을 고수하려는 보수적 경향의 상좌부(上座部)와 계율을 자유로이 해석하려는 진보적 경향의 대중부(大衆部)근본 분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 분열한 불교교단은 그 후 교리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분열의 분열을 한 후 불멸 400년이 지날 무렵에는 근본 2부를 포함하여 20여 부파로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하며, 분열이전의 불교를 초기불교, 원시불교, 근본불교라고 한다.

나아가 이 시기의 출가자들은 수행의 최고단계인 아라한(阿羅漢)에 관한 문제를 비롯하여 불교의 일체 교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논서를 아비달마(阿毘達磨)라고 하며 그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달마불교'라고 하기도 한다.

 

'아비달마'란 붓다 교법에 대한 연구, 해석이라는 의미로 '부파불교'란 말이 분열된 교단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면 '아비달마불교'라는 말은 그들의 사상적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불교는 지나치게 번쇄하고 난해하여 점차 본래의 의도를 상실하게 되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 '현실의 괴로움'에 대해 '연기설에 입각하여 고찰하고', 바른 지혜와 수행으로 해탈하는 것이다. 이런 기본 원칙 위에 교리를 세운 것이기는 하지만 점차로 실제의 수행보다는 번쇄한 교리해석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였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반발하고 비판하는 집단에 의해 대승불교가 싹튼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한편 불교가 흥기할 무렵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던 바라문교기원전 2세기경 사성(四姓) 즉 브라흐마나, 크샤뜨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네 계급에 대한 종교적 의무와 생활규범 등을 규정한 <마누법전>을 비롯한 각종 제사경전과 서사시가 작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종래 베다성전이 바라문의 전유물이었다면 새로이 편찬된 <마하비라타>와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는 일반 대중이 애호하였던 종교문헌으로 이 두 서사시를 기점으로 그 이전바라문교의 시대, 그 이후를 힌두교의 시대라고도 한다.

여기에는 <베다>에는 보이지 않던 '시바와 비슈누' 최고신으로 등장하는데, 다른 수많은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개성이 강한 신격(神格)이 되면서 다양한 신자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마하비라타>의 일편으로 알려지는 <바가바드 기타>는 오늘날까지도 힌두교의 최고성전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여기에는 바라문교의 형식적인 제사주의를 배격하고 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인 신애(信愛, bhakti)를 강조하고 있다.

불탑신앙과 불전문학

아쇼카왕 이래 부파불교의 출가자들 국왕이나 장자들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원조에 힘입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게 되었고 안정된 경제적 기반 위에서 선정과 교법에 대한 연구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단이 분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붓다의 교법에 대한 부파간의 쟁론을 초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학문적, 철학적으로 발전하고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의 대중들과 멀어지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부파불교의 아비달마 교학은 초기불교의 교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 크게 공헌하였지만, 너무나도 번쇄한 이론체계를 전개시켜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난해한 교리나 엄격한 계율이 아니라 불타에 대한 순수한 믿음이었다.

이에 따라 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와 논의를 위주로 하는 기존의 승원불교에 만족하지 못한 재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출가자들은 점차 불탑(佛塔)에 모여들게 되었다.

 

불탑부처님의 유골 즉 사리(舍利, sarira)를 봉안한 무덤으로, ‘포개어 쌓는다’는 뜻의 스투파(stupa)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파불교에 있어 붓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아니라 법으로 인도하는 스승, 즉 도사일 뿐이었기 때문에 법을 떠난 불신(佛身)의 숭배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숭배 역시 그러하였다.

 

또한 붓다는 쿠시나가라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 자체로서는 실재할 지라도 인격으로서는 실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붓다의 사리에 대한 공양과 예배는 무의미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불탑의 조성은 생천(生天)을 보장하였고, 따라서 불탑의 조성과 경영은 재가신자들의 몫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불타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성도지인 붓다가야, 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의 녹야원, 입멸지인 쿠시나가라 등을 성지로서 숭배하였으며 그곳에 사당을 세워 순례하기도 하였다.

기원전후의 시기가 되면 불탑의 건립이 매우 활발해지는데 여기에는 꽃이나 향 등이 바쳐지고 보물과 귀금속 등이 봉헌되었으며 춤과 노래가 베풀어지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은 기존의 부파 교단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비구들은 보통 승원이나 정사(精舍)에 머물렀으며 그곳은 불탑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들에게는 금이나 은을 받는 일, 춤추고 노래하는 것 등이 금지되었다. 부파불교는 법 중심의 불교,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자 중심의 불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속의 직업에 종사하는 재가자로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 수가 없고, 선정(禪定)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통해 증득되는 교법의 참다운 이해는 더욱 더 불가능하였다. 따라서 일반 대중들은 붓다에 대한 소박한 믿음으로 예배하고 공양함으로써 구원을 바라게 되었고, 그것이 행해진 대상은 불탑이었다.

 

만약 법 중심의 출가교단에 반하여 붓다 중심의 교법을 발전시킨 어떤 그룹이 있었다면 그들은 당연히 출가교단에서 독립하여 자신들의 교법을 발전시키고 관불(觀佛)이라는 종교행위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서 불탑을 선택하였을 것인데 바로 이같은 불탑교단의 재가성과 신앙적 성격이 대승불교 성립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승불교 성립의 또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면서 불탑 신앙과 밀접히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 불전(佛傳)문학이다. 불탑신앙자들이 생각한 붓다는 이제 더 이상 법의 도사나 아라한이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애를 거쳐 오면서 초인적 이력을 쌓을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사모와 찬탄은 종래 법 중심의 이론적 교설과는 다른 형태의 문헌을 낳게 되었으며, 그것에는 논리적 설명을 초월한 비유와 은유, 혹은 우화의 성격을 띤 문학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불전문학으로 이같은 불전문학을 주도한 그룹을 찬불승(讚佛乘)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자타카>는 붓다의 전생을 설한 불전의 한 장르로서, 붓다의 성불을 가능하게 한 전생과 현생의 수행을 밝히기 위한 것이다. 현존하는 불전은 대개 부파교단의 문헌이지만, 그것들은 부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상의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대승경전에도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2. 대승보살도(大乘菩薩道)

보살의 수행

소승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경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보살이란 상세하게는 ‘보디삿트바, 마하삿트바(Bodhisattva, Mahasattva)’라고 한다.

 

보디삿트바란 깨달음을 구하는 사람, 그리고 마하삿트바란 위대한 사람이라는 의미이며 불타가 되겠다는 커다란 서원을 세우고 고된 수행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보살에게는 자기가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을 갖추고 있다는 신념이 없으면 안 된다. 이 점이 찬불승이나 소승과 다른 대승의 독자적인 입장이다.

우선 소승과 다른 점은 소승 즉 부파불교 아라한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여 교리를 조직하고 있다. 제자가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얻는다고 하는 것은 소승불교에서는 생각할 수 없다. 거기에는 당연히 자기에게 불타가 될 수 있는 소질 즉 불성(佛性)이 갖추어져 있다는 인식도 없다. 성불할 수 있는 것은 불타와 같이 위대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 자기인식의 차이가 바로 대승불교와 부파불교의 근본적인 차이이다.

다음으로 찬불승(讚佛僧)의 경우는 불전문학을 통해 성불의 원인을 탐구하고 보살의 위대한 수행을 찬양하고 있다. 따라서 찬불승도 보살의 가르침을 설한다는 점에서는 대승불교와 가깝다.

 

그러나 찬불승에서 설하고 있는 보살은 이미 성불이 결정된 보살이다. 성불의 수기(授記)를 받은 보살이다.

 

이에 비해 대승에서 말하는 보살을 자기자신이다. 성불의 수기 등과는 관계없는 범부로서의 보살이다.

 

찬불승에서 설하는 보살은 오로지 석가보살이지만, 그는 연등불로부터 당래작불(當來作佛)의 수기를 받았다. 이 수기에 의해 그에게 보살로서의 자신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일반범부인 대승의 수행자에게는 이러한 수기가 없기 때문에 보살로서의 자각은 다른 방편에서 얻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자기에게 불성이 있다는 신념을 통해서 비로소 가능하다. 이 점이 똑같이 보살을 설하면서도 찬불승과 대승불교가 갖는 본질적인 차이이다. 찬불승의 보살은 선택된 사람이지만 대승의 보살은 일반인이다.

보살의 수행

보살의 자각으로부터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수행시작된다. 아라한은 오로지 자기의 완성을 위해 수행한다. 그러나 불타는 중생을 구제하는 사람으로 대자대비의 소유자이다. 그 불타가 되고자 하는 보살의 수행은 필연적으로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는 수행이다. 즉 남을 이롭게 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자기 수행을 완성하는 길이다. 이것이 육바라밀(六波羅蜜)의 수행이다.

여기서 바라밀이란 빠라미따(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彼岸)에 이른 상태’ 혹은 ‘최상의 상태’ 즉 완성을 의미하는데 한역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되고 있다. 그러나 이 때 도달이나 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달이고 완성할 수 없는 완성이다. 즉 바라밀은 무차별, 공에 입각한 실천이기 때문에 특정한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세속의 윤리가 종교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바라밀에는 여섯 가지가 있는데, 보시(布施)바라밀, 지계(持戒)바라밀, 인욕(忍辱)바라밀, 정진(精進)바라밀, 선정(禪定)바라밀, 반야(般若)바라밀이다.

보시(布施, 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푸는 것에는 물질적인 베품인 재시(財施)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 두려움과 근심을 함께 하고 도와주는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가 있다. 보시할 때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주는 물건에 어떠한 차별도 없는 것이 진정한 보시이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 보시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은 요컨대 공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계(持戒, sila)란 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계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할 오계와 출가비구와 비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는 10가지이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는 소승과 같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인 계율지상주의가 아니라 이타를 위한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다. 즉 계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아울러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이다.

인욕(忍辱, ksanti)이란 참고 용서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고통이며 그러한 세계에서 사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화내지 않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사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더 큰 미움을 부르기 때문에 참음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정진(精進, virya)이란 나약함이 없는 부동심의 실천이며 불퇴전(不退轉)의 노력이다. 대승의 공관은 결코 허무에 의한 나태가 아니다.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집착함이 없는 이타의 정신에서 비롯한 것이다.

선정(禪定, dhyana)의 정(定)은 삼매(三昧)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이라고 풀이되며 세계 실상이 무자성(無自性), 공(空)임을 삼매로서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般若, prajna)란 ‘수승한 지혜’라는 뜻으로 이 때 지혜는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이며 무소득(無所得)이다.

이처럼 바라밀의 수행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오로지 이타에 전력하는 입장이며 성불도 도모하지 않는 끊임없는 수행이기 대문에 이 수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대단한 결의가 필요하다.

보살의 이 결의를 갑옷을 입고 싸움터에 나가는 전사에 비유하여 ‘큰 서원(弘誓)의 갑옷(大鎧)을 입는다’[=승나승열(僧那僧涅)]라고 표현하고 있다. 보살은 무량무수의 중생을 열반으로 인도하면서도 인도된 사람도 존재하지 않으며, 인도하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3. 대승경전의 성립

교단사적으로 보면 대승불교 현재까지도 그 실체가 명확하지는 않다. 그러나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대승경전들로 보아 대승불교가 역사상 실재하였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우리가 대승불교의 성립에 대해 말할 때도 그 대부분의 자료를 대승 경전 자체로부터 얻고 있으므로 단적으로 말하면 대승 경전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따라서 대승경전의 발달사는 대승불교의 형성사와 중복되는 점이 많다.

현재 많이 보고 있는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은 고려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불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총 100권 가운데 앞의 32권이 인도찬술부이며 이것이 본래의 대장경이다. 그것은 아함, 본연, 반야, 법화, 화엄, 보적, 열반, 대집, 경장, 밀교, 율, 석경론, 비담, 중관, 유가, 논집의 16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밀교부까지가 이며, 과 석교론 이하의 논을 합하여 삼장(三藏)을 형성한다.

경장부분도 원래 소승경과 대승경만으로 되어 있었는데 '대정신수대장경'에서 이와 같이 구분한 것이다. 그 중 반야부 이하가 대승경에 해당한다.

대승경전 성립의 배경

당시에는 불타가 직접 설하신 경전인 <아함경>이 있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그와 달리 불타의 참뜻을 나타낼 새로운 표현이 필요하게 되었을까? 이것은 대승불교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설하려 했던 것인가하는 문제와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대승불교는 어떻게 흥기하였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된다. 대승불교 성립배경에 대해서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므로 여기서는 간단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대승불교는 원래 불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불탑 공양을 통해 불타를 찬미하고 숭배한 재가 신자들을 주로 하는 집단에 의해 일어난 신운동이다.

 

이 운동은 재래의 여러 부파들이 승원 중심의 불교로서 아비달마 교학의 확립을 지향하여 너무 전문적인 법 중심의 불교를 발달시키고 있었음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불타의 절대성과 자비성이 무한하다는 것으로서 이는 불멸 후 나타난 석존 신격화의 결과이다. 즉 불전과 본생담 등을 통해 점차로 발달하였던 불타에 대한 고찰의 결과, 불타는 과거에 무한의 수행을 한 과보로서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았다고 하며, 인행(因行)으로서 이타행을 주로 하는 육바라밀의 행을 설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불타의 체험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결심하였던 곳에 새로운 운동의 출발점이 있었다.

 

출가수행자들은 불타와 자신들과의 거리감 때문에 스스로가 아라한임에 머무르고자 했음에 대해, 중생의 성불이야말로 불타의 본원(本願)이라고 주장하여 불타와 똑같은 깨달음을 향해 노력하는 사람을 석존의 전신(前身)과 마찬가지인 보살이라 부르게 된다. 그리고 되도록 많은 중생이 성불하는 길을 가르치기 때문에 이 새로운 운동은 대승이라는 이름을 불리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의 지도자는 법사(法師)라고 불린다. 법사의 기원은 어쩌면 출가 수행자 중에서 재가 신자를 위해 불타의 전기나 비유를 설하는 전문가였는지도 모르지만, 부파의 기록을 통해서는 그 기원을 알 수 없다. 대승측에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재가 신자에서의 지도자이든가 혹은 출가자이더라도 정식으로 구족계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대승 경전이 성립되기 시작하면서 대승불교 자체에 여러 가지 새로운 현상이 발생한다. 그 가운데 가장 큰 변화는 대승 경전에 대해 공양하고 숭배하고자 하는 요구와 법사를 존중하고자 하는 요망이다.

 

결국 경전이 불탑을 대신하여 숭배의 대상으로 되었다는 것이며 대승경전이라고 하는 법의 절대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두번째 현상은 성불도(成佛道)로서의 보살도가 정비되고 체계화된 것이다. 이 단계에서는 처음에 비판하였던 부파의 아비달마 교학을 다시 도입하게 된다. 이것은 재가보살 대신 출가의 보살이 이상상으로 등장한 것과 때를 같이 한다.

대승불교의 이론화와 체계화는 결국 출가주의화와 아비달마화를 초래하여 이전의 불교가 걸었던 길을 답습하게 된다. 이로써 제3의 신운동으로 밀교가 일어나고, 이윽고 그 주장을 담은 그릇으로서 밀교 경전이 제작된다.

 

밀교 경전도 역시 불설임을 표방하지만 그것을 설하는 이가 대승 경전의 경우처럼 불타가 아니라 절대적 존재로서의 법신(法身)이라고 했다.

 

밀교도 대승불교인 것은 분명하지만, 한편으로는 대승을 초월하여 출현한 것이라는 점은 대승이 불교이면서도 이전의 불교를 초월하여 출현하였던 것과 대비된다. 그리하여 인도불교의 최후까지 소승과 대승과 밀교가 병존하고 있었다.

대승경전의 발달구분

대승경전의 역사는 보통 3기로 나누어 논하게 된다.

 

제1기 초기에는 대승의 형성에서부터 용수(龍樹)의 시대까지이고, 제2기인 중기에는 용수 이후에서 무착(無着)과 세친(世親)의 시대까지이고, 제3기 후기는 세친 이후의 후대이다.

 

제1기에는 경전 제작이 극대로 성행하였으며, 제2기에서는 조금 덜하였고, 제3기에서는 밀교를 제외하고 극히 드물었다.

 

제1기 대체로 기원 전후로부터 3세기 전반까지로서, 북인도에서 쿠샤나 왕조가 번창하던 시대이고 남인도에서는 인드라 왕조가 지배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제2기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굽타 왕조가 흥성하던 시기에 해당한다. 7세기 후반 이전에는 순수한 밀교 경전이 형성되지 않았다.

초기의 경전은 대승불교의 교리를 최초로 저술한 인물로 지목되는 용수의 학설에 영향을 주거나 또는 인용되고 있는 경전류이다.

 

물론 용수가 모든 대승 경전을 열거하고 있다는 것도 아니고, 또 용수가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는 없을 지라도 용수와 유사한 교리를 전개하고 있는 것은 초기의 경전에 포함되는 것이다.

 

초기 대승경전 발전 이전에 <반야경>이 성립되었고, 이로 인해 교리적 영향은 매우 커서 모든 대승 경전이 공(空)사상 받아들이게 된다. 동시에 여러 부처를 인정하는 신앙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그 중에서 아미타불의 신앙이 보편화되어 정토교(淨土敎)를 대표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새로운 <화엄경>의 그룹이 발전하고 또한 <법화경>을 신앙하는 운동이 급속하게 퍼진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리의 조직 및 체계화에 동반하여 다시 부파불교와의 밀접한 관계를 나타나게 된다. 즉 부파불교의 교리에 대한 재해석이 이루워진 것이다.

중기 이후의 대승경전은 대체로 '여래장 사상과 유식 사상' 관련된 것이다.

 

여래장계 경전 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중생에게 여래장(如來藏) 즉 불성(佛性)이 있음을 주장하는 것인데, 불타발타라가 번역한 <대방등여래장경>을 선두로 하여 담무참이 번역한 <대반열반경>, <대운경>, <금광명경>, 구나발타라가 번역한 <승만경>, <앙굴마라경>, <대법고경>, <보살행방편경계신통변화경>, 보리유지가 번역한 <부증불감경>, 진제가 번역한 <무상의경> 등이다.

유식계의 근본성전<해심밀경>인데 이의 전모는 보리유지에 의해 처음으로 전해졌으나, 부분적으로는 구나발타라에 의해 번역되어 있으므로 4세기 말까지는 성립되었을 것이다. 이외에 <유가사지론>, <대승장엄경론>, <섭대승론> 등이 있다. 이 시기에는 경전과 논전과의 구별이 어렵다. 더욱이 이 시기의 경전에는 논전을 기초로 하여 개작된 것도 있다.

대승 경전의 제작은 후대에까지 계속되었지만 그 수는 갑자기 줄어들게 된다. 대신 밀교 경전 그 모습을 나타내게 된다. 그것은 650년을 전후로 <대일경> 의 성립을 통해 현교(顯敎)인 대승으로부터 독립을 달성하고, 또한 <금강정경>에 의해 그 교리가 확립되었던 것이라고 추정되고 있다.

 

4. 대승사상의 전개

반야바라밀의 이념 아래 자리이타(自利利他)의 보살도를 지향하는 대승불교의 이론은 서력 기원후 2에서3세기 무렵에 출현한 용수(Nagarjuna, 龍樹)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그는 불교 최고의 논사로 제2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데,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특히 그의 주저인 <중론(中論)>에서 불교의 근본진리인 연기를 생멸(生滅), 거래(去來), 일이(一異), 단상(斷常)의 차별적인 대립을 넘어선 것[팔불중도(八不中道)]으로 해석하여 어떠한 견해에 대한 집착도 부정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일체는 공하다고 풀이하고 있다.

 

'연기(緣起), 무자성(無自性), 공(空)의 이론'을 확립하여 대승불교의 기반을 다졌다.

용수에 의해 일단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이들 새로운 경전에서는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낳는 원천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보리(菩提)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자는 마음이 바로 부처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이고,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이다.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장(場)으로서 인간의 의식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 4세기 무렵 출현한 무착(無着, Asanga)과 세친(世親, Vasubandhu)에 의해 완성되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간의 융합을 모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같은 새로운 경전이 제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 대승불교'라고 한다.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달마불교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후기 대승불교'라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불타의 깨달음을 다라니(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의 중심의 불교라 할 만하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 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후 수(隨) 당(唐)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도의 불교는 오랜 시간동안 넓은 지역에 체계적으로 전파된 것이었으므로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각기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敎相判釋)이라고 한다.

 

이같은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으로 설해진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들이 성립하게 되었다.

 

불교의 종파 이미 동진시대나 남북조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게 된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13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깨달음의 본질이라고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경전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앞의 여러 종파와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다.

이제 인도 대승불교의 양대 산맥인 공사상과 유식사상을 살펴보고 이어서 중국불교의 대표적인 종파인 천태, 화엄, 정토, 선종 등의 사상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공사상(空思想)

공사상의 전개

공(空)이란 용어는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을 나타내는 말로 특히 <반야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강조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 이 말은 자성(自性, svabhava), 실체(實體, dravya), 본성(本性, prakti), 자아(自我, atman) 등과 같이 인간이 궁극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본질적인 것들이 실제로는 없다고 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개념들은 오직 우리의 인식 안에 있는 것으로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空)이란 용어의 원어는 sunya로서 본래 ‘부풀어 오른’, ‘속이 텅 빈’, ‘공허한’ 등을 의미하여 ‘부풀어 오른 모양으로 속이 비어있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sunya라는 말이 불교에 도입되어 공(空)으로 한역되고, 특히 <반야경>을 중심으로 한 대승불교에 이르러서 불교사상의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루어진다.

 

이 공의 의미를 본격적으로 취급하여 사상적인 관점에서 논의한 것을 공사상이라 하며 특히 대승불교에서 이러한 공사상을 강조한 사람들을 공론자(空論者)라 부르고, 그들의 주장을 공론(空論)이라 한다.

 

이러한 공론자는 용수 이후 중관파(中觀派)를 형성하여 공사상을 전개해 가며 그들은 스스로를 공성론자(空性論者)라 불렀다.

<반야경>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지는 공사상은 후에 용수에 이르러 철학적 체계를 가지고 대승불교 철학을 발생시키는 계기가 된다.

 

용수공의 개념 불타가 깨달은 연기법의 이치와 일치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또한 부파불교 중의 하나인 설일체유부에서 주장한 법의 견해를 비판하여 공은 곧 무자성(無自性)인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처럼 용수에 의해 명확하게 체계화되는 공사상에 대한 논리는 이미 불타의 근본교설을 전하는 초기불전과 밀접한 관련을 가진다. 왜냐하면 불타의 근본사상을 나타내는 것이 다름아닌 연기설이며, 이 연기설을 바탕으로 공을 이론적으로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공의 이론적 전개와 관련하여 불타는 당시 중요한 논쟁의 주제였던 아트만(atman, 自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불타는 세간이 공한 것은 아트만이 없는 까닭이며, 그 아트만은 안, 이, 비, 설, 신, 의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어디에도 없음을 설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불전에서는 공의 의미가 무아(無我)설 밀접히 관련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 가장 먼저 성립된 것이 <반야경>으로 이 <반야경>은 후에 <대반야바라밀다경> 600권으로 집대성된다.

 

이러한 <반야경>에 공통되는 중심사상이 공관(空觀)으로 공관이란 일체 존재하는 사물들은 그 본성이 공하며, 또한 고정적인 실체가 없다고 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반야경>의 공관은 대승불교 자체의 기본적인 교설이 되고 아울러 대승불교도의 실천적 기반을 이루게 된다.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의 사상적 배경을 살펴보면 대승불교 이전의 부파불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부파불교 가운데 설일체유부의 교리는 <반야경>의 공사상이 출현하는 사상적 배경이 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이 설일체유부에서 일체법이 존재한다는 실유(實有)의 주장은 <반야경>의 공사상과 대승불교의 중관철학이 발생하는 역사적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당시 대표적인 부파인 설일체유부는 모든 요소를 법(法)이라 부르고 그 법을 5위75법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일체 존재를 다양한 법의 이름을 분류하고 그리고 그 각각의 법에는 파괴되지 않는 법의 고유한 자성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색법, 심법, 심소법, 심불상응법, 무위법의 5위로 구분되는 일체 존재와 그 각각에 속하는 75개의 법은 과거, 현재, 미래를 걸쳐 항상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설일체유부의 법체항유설(法體恒有說)로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야경>은 각각의 법에는 그와 같은 실체, 자성이 없으며 따라서 그것은 공이라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즉 모든 법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인 법의 관념을 주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일체법은 다른 법과 조건지워져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정적, 실체적 본성을 갖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그것은 무자성인 것으로, 이 무자성인 것은 곧 인 것이다.

그러나 일체가 공하다는 관찰은 반야바라밀을 실천하여 얻어지는 것으로 이것은 세간의 일반적인 인식단계가 아니라 지혜의 완성에 도달한 경지에서 얻어진다고 하고 있다. 이러한 반야지혜로서 공관은 용수와 그 이후의 사상가들에게 있어 이제설(二諦說)의 입장에서 명확히 그 구분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반야경>은 법의 공을 주장하고 있으며, 공관은 반야바라밀의 경지에서 얻어지는 지혜인 것이다.

공사상의 전개

<반야경>의 공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시킨 사람이 용수이며, 이 용수의 대표적인 저술인 <중론>을 중심으로 한 사상을 일반적으로 중관사상이라 말하며, 또 그 중관사상의 흐름을 이어받는 불교 논사들을 중관파라 부른다. 용수는 <중론> 외에도 다수의 저작을 남기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론>으로 이후 많은 주석서가 씌어진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용수는 <중론>을 저술하여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사상의 이론적 체계를 수립하고자 하였다. 이 <중론> 속에서 용수는 공사상의 이론적 근거를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중론> 제24장 18게에서 ‘무릇 연기하고 있는 것, 그것을 우리들은 공성(空性)이라 설한다. 그것은 임의로 시설되어진 것이며, 그것은 중도(中道) 그 자체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게송에서 볼 수 있듯이 용수는 <반야경>에서 공이라고 설했던 것은 그것이 바로 연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임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것은 곧 우리가 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제는 모든 사물이 각기 독자적인 존재의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인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연기의 관계로 이루어진 까닭에 연기의 관계를 떠나있는 독자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나 실체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용수는 이러한 연기의 인연관계를 떠나 있는 것을 자성(自性)이라고 부르고 따라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는 까닭에 무자성(無自性)이며 공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만약 사물이 연기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독자적인 실체인 자성에 의해 생긴다고 한다면 그 때는 자성이 서로 연기한다는 모순이 될 것이라고 설하고 있다.

 

곧 자성이란 인(因)과 연(緣)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 자립적인 것이며, 또한 다른 것에 의존하는 일 없는 항상 고정불변한 존재이지만 실제로 그와 같은 것은 생겨날 수도 있을 수도 없음을 용수는 지적하고 있다. 곧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과 연의 상호관계로 생겨나는 것이고 따라서 그와 같은 것은 곧 자성이 없는 까닭에 공인 것이다.

이처럼 용수가 고정불변한 자성의 개념을 부정한 것은 그 자성의 관념이 우리 인간들의 망상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즉 이 자성의 개념은 다양한 인연의 관계를 초월해 영원한 동일성을 인간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특히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속에 내재한 본질적 속성을 가리키고 있다.

 

즉 우리의 삶의 세계는 수많은 언어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약속에 의거한 언어적 세계로서 영원히 변치않는 절대불변의 세계는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어를 불변적인 것으로 잘못 생각해 그로 인해 번뇌를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중론>은 그와 같은 불변적인 성질로서 자성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 자성이 존재하지 않는 이유가 우리 삶의 세계가 연기의 이치에 의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밝혔던 것이다.

<중론>이 이처럼 연기법을 바탕으로 무자성, 공에 대한 논리를 수립하여 <반야경>의 공관에 대한 이론적인 체계를 세우고 있지만, 이러한 이론적 체계에 무엇보다 중요한 관점을 용수는 이제설(二諦說)의 정립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 2제에 대한 교설은 공에 대한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를 보이는 것은 물론, 동시에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 사이에서 그 견해 차이로 인해 중관파가 둘로 나뉠 정도로 중요한 쟁점이 되었던 교설이기도 하다.

 

<중론> 제24장에서 용수의 반대자는 만약 일체가 공이라면 사성제, 사향사과(四向四果), 삼보(三寶) 등의 일체도 공하여 모두가 그 의미를 잃게 될 것이라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용수는 그 반대자가 공용(空用), 공성(空性), 공의(空意)에 대해 무지한 까닭에 그와 같이 스스로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한 뒤 이제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세속제(世俗諦)와 제일의제(第一義諦)의 2제는 불타가 의거해 설하는 것으로 이 2제에 대한 바른 이해는 진실한 뜻을 아는 관건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2제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용수 이후 <중론>의 주석가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이루어진다. 나아가 용수는 ‘연기와 공성을 파괴한다면 세간의 일체 언어습관을 파괴하는 것이 된다’라고 하여 연기와 공의 이치야말로 세간을 성립시키는 근본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다름아닌 연기와 공을 바탕으로 성립하므로 만약 연기와 공을 부정한다면 세간의 삶을 부정하게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삶의 세계가 언어의 세계임에 틀림없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불변의 자성세계가 아니라 약속과 습관에 의거한 연기의 세계임을 밝히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와 같이 세속제를 성립시키는 바탕으로서 연기와 공의 이치를 바로 알지 못한다면 제일의제를 알 수도 없고 또한 열반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연기와 공의 이치는 반야바라밀을 행하는 경지에서 얻어지는 것으로 반야바라밀의 세계는 곧 제일의제의 진리세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세간의 언어 습관인 세속제가 성립하는 근저로서 연기와 공에 대한 이해야말로 승의의 진리를 알고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용수는 2제설을 통해 연기와 공의 이치가 세간을 세간답게 하고 제일의제와 열반을 얻게 하는 구체적인 지혜임을 나타내 보이고자 하였다.

용수는 <중론>에서 <반야경>에 나타나는 공관을 연기설과 같은 위치에 놓음으로 공관을 이론적으로 해명하고 대승불교의 역사적 위상을 확립시켰다. 이로 인해 <반야경>으로 대표되는 대승불교는 역사적으로 그 연원이 불타에게 유래되었음이 분명해지고 아울러 대승불교의 역사적 의미는 더욱 공고히 되었다.

2) 유식사상(唯識思想)

유식설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궁극적으로 그 원리를 관찰해 보면 외부에 존재하는 사물 자체에 가치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고 사실은 이 세상의 누구나 갖고 있는 자기 마음의 인식 여하에 달려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이러한 유심론(唯心論)적 성격은 근본불교에서부터 있었다.

 

초기에 육처(六處)와 십이처(十二處)설이 있었는데, 이것은 인식에 의거하여 존재를 고찰하는 설이다. 12처란 인식하는 것과 인식되는 것을 인식기관에 의거하여 여섯 개의 영역으로 구분한 설이다. 부파불교에서는 외계의 대상이 실재한다고 보았지만 유식설에서는 외계의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왜냐하면 외계의 대상은 인식되는 대상으로써 인식되지 않았다면 대상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식설에서의 대상은 인식되어진 대상이다.

초기불교에서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설하고 제법의 무아(無我)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무아설에 의해서 불교에서 ‘인격의 주체’를 어떻게 해석하는지를 명확히 알 수 없다. 주체가 없으면 기억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 책임의 소재 등의 문제가 충분히 설명될 수 없다.

자업자득의 원칙을 강조하게 되면 자아의 자기 동일성이나 인격의 지속성이 요청된다. 그 때문에 제행무상과 무아의 교리를 인정하면서도 인격의 지속이나 업의 과보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부파불교의 커다란 과제였고 그리하여 이에 대해서 갖가지 새로운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설일체유부는 제법의 찰나멸을 주장하면서도 다시 제법의 상사상속(相似相續)을 인정하고 의식의 흐름을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유부는 생리적으로는 명근(命根)의 존재를 설하고 이로써 생명이 지속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아직 인격이나 주체의 관념은 나타나 있지 않다.

 

이에 대해 독자부나 정량부가 비즉비리온(非卽非離蘊)의 아(我)를 설한 것은 유명하다. 독자부는 이것을 보특가라(補特伽羅)라고 불렀는데 이 보특가라는 오온(五蘊)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오온을 떠나 존재하는 것도 아니며, 동시에 그것은 인식될 수도 없고 적절한 언어로 표현될 수도 없지만 이러한 인격적 주체가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화지부에서는 궁생사온(窮生死蘊)을 설하였고, 이 주체들은 개체의 죽음과 함께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초월하여 다음 생으로 이어지는 것, 즉 윤회의 주체로 생각되었던 것이다. 또 부파불교시대에는 잠자고 있을 때에도 미세한 마음의 작용이 계속되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그러한 것으로서 대중부나 분별론자 등은 세심(細心)을 설하고 미세한 마음의 지속을 주장했다. 대중부가 설한 근본식(根本識)도 이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표면심에 대한 잠재심의 관념이 생겨났을 것이다.

또한 업에 관해서는 선악의 행위가 있고 나서 그 과보를 받을 때까지 업력은 어떻게 보존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즉 업과 그 과보를 연관시키는 매개자의 문제이다. 이것을 대중부는 증장(增長)이라고 불렀고 유부의 무표업(無表業)도 본래 그러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그리하여 경량부는 이 업력을 종자(種子)라고 불렀다. 즉 업력을 식물의 종자가 가진 잠재적인 힘에 비유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선악의 업에만 종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행위가 종자의 형태로 바뀌어 존속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경량부에서는 이 종자가 어디에 보존되는가를 생각한 끝에 그 장소로서 잠재심을 상정하지 않고 색심호훈(色心互熏)을 설했다고 한다.

이상과 같이 부파불교에서 생겨난 갖가지 사상이 대승불교로 계승되어 인격의 주체 속에 잠재심, 무의식의 영역이 상정되게 되고 거기에 종자가 저장되어 있다는 사상이 확립되어간 것이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의 아뢰야란 ‘간직한다’는 뜻이다. 종자를 소장하고 있는 식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종자의 집합체 이외에 그 용기로서의 다른 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아뢰야식을 종자식(種子識)이라고 한다. 이 아뢰야식이라는 개념은 이미 <해심밀경>에 나타난다.

 

아뢰야식은 인간 존재의 근저에 항상 상존해 있으면서도 변함이 없으며 그 흐름은 일생동안 끊어지는 일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미래의 생존에까지 계속 영향을 미쳐서 이어져 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중생이 어떠한 행위나 행동을 하는 한 그것은 대개 선업이나 악업을 지어서 그 결과를 초래하는데 이 때에 아뢰야식이 업력의 소의처가 되어 그 속에 종자가 잠재하고 있다가 그에 알맞은 환경이나 조건 등의 연(緣)을 만나면 모든 세계를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어서 현상계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팔식(八識)의 구조

마음심(心), 의(意), 식(識)으로 부르는 예는 이미 초기불교에서도 발견된다. <아함경>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 의, 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심, 의, 식의 체성은 염오성(染汚性)이라고 보았으며, 심의식은 무상한 것이라고 여겼다. 초기경전에서는 각각의 개별적인 심리작용은 없었으며, 생각하고 사랑하고 요별하는 심리작용을 총괄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부파불교에서는 인간의 정신현상을 심왕(心王)과 심소(心所)로 분류하였는데 심왕은 심의 주체로서 인식주관이며, 심소는 개별적인 심리작용이다. 심왕이 바로 심의식이며 이는 육식(六識)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점차 심, 의, 식의 구분을 시도하고 있다.

 

<대비바사론> 제72권에서는 심의식의 무차별설과 차별설을 같이 설하고 있다. 무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의 차이만 있을 뿐 다같이 정신의 주체를 가리키며 체(體)가 동일하다는 것으로 이는 설일체유부의 견해이다. 차별설은 심의식은 명칭과 교설의 시설, 의미, 업 등에서 차이가 있지만 체(體)는 동일하다고 보는 것이다.

 

세친은 <구사론>에서 은 집기(集起)의 의미가 있으며, 는 사량(思量)의 의미가 있으며, 은 요별(了別)의 의미가 있다고 설했으며 이는 정신의 주체이며 작용만 다를 뿐 체는 하나라고 하였다.

유가행파의 유가사들은 선정 관행 중 심층적인 식의 흐름과 기능에 주목하여 종래 부파불교시대부터 탐구되던 두 가지 문제인 윤회의 주체와 번뇌와 아집의 주체 및 의근(意根)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윤회의 주체는 아뢰야식, 번뇌와 아집의 주체는 말나식의 식체(識體)를 설정하였다.

 

그리하여 종래의 육식설(六識說)에다 아뢰야식(阿賴耶識)말나식(末那識)을 결합하여 팔식(八識)을 구성하였다.

 

팔식 가운데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 신식(身識)은 묶어서 전오식(前五識)이라고 하는데 이 식들은 각각 대상을 요별하고 분별한다.

 

의식(意識)은 의근(意根)에 의지하여 인식작용을 일으킨다. 이 의식은 전오식으로는 볼 수 없고 만져볼 수 없지만 없는 것이 아니고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거나 아니면 홀로 활동한다. 의식이 일어나는 데에는 크게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첫번째는 전오식과 함께 일어나서 같은 대상을 인식하거나 아니면 전오식과 함께 일어났지만 의식이 한눈을 팔아서 올바르게 인식되지 않은 경우이고, 두번째는 꿈을 꾸거나 망상, 공상 및 선정에 들 때와 같이 의식이 독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를 말한다.

제8 아뢰야식을 일으킨 근본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을 일부러 우리가 어떤 의도적인 행위를 하고나 아니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끊임없이 아치(我痴), 아견(我見), 아만(我慢), 아애(我愛)의 4종번뇌와 항상 같이하면서 업을 일으킬 때 이들에 의한 인상이나 여운등을 그대로 흡수하여 저장하는 장소로서 아뢰야식이 활용되는데 이렇게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식은 제6식보다는 깊고 제8식보다는 얕은 제7말나식이라는 의식이 상정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제7말나식을 일컬어 자아의식이라고도 하며, 이 식에 의하여 업을 지어서 중생들이 결과적으로 세세생생 윤회하게 되는 것이다.

제8아뢰야식은 이렇게 모든 업의 산물들을 스스로 저장하는 능장(能藏)으로서의 의미도 갖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모든 세력들을 소장(所藏)할 장소로서의 처소로도 제공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이 아뢰야식은 앞에서와같이 항상 제7말나식의 집착력과 아집 등에 의하여 유린당하는 입장에 서 있으므로 이럴 경우 제8아뢰야식은 집장(執藏)의 뜻이 강하다. 왜냐하면 아뢰야식의 본래 의미는 유루법이 현행하는 사이, 곧 아집 등이 활동하는 동안만 존재하는 것이지 아집 등이 없는 성인위에 오르면 이 식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유식의 수행

유가행의 수습단계가 발전하여 유식사상에서는 오위설(五位說)로 정착되었다. 오위는 자량위(資糧位), 가행위(加行位), 통달위(通達位), 수습위(修習位) 및 구경위(究竟位)에 각각 해당된다.

 

첫째 자량위는 복덕과 지혜의 2자량을 축적하는 수행의 준비단계라는 의미이다. 즉 친구의 권유나 자기의 의지로써 유식의 교리를 배우고 그것이 진리임을 믿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유식이 자기 것으로 체험되지 않은 단계이다. 따라서 아집, 법집의 번뇌는 조금도 사라지지 않은 단계라 하겠다.

 

둘째 가행위는 이미 직접적으로 유식의 수행으로 나아간 단계이다. 그러나 눈 앞에 어떤 대상을 설정하고 이것이 유식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단계이므로 아직 참된 유식에 들어갔다고는 말할 수 없다. 즉 유식이라는 것을 인식의 대상으로 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러나 가행위에서 사심사관(四尋四觀) 사여실지관(四如實智觀) 등의 관법을 닦아 유식의 수행이 진전함으로써 유식에 통달한다. 이것이 세번째 통달위이다. 즉 인식의 대상을 나로 집착하거나 법으로 집착하는 일이 완전히 없어진 상태이다. 이와 관련하여 ‘지혜가 소연(所緣)에서 생기지 않을 때 유식성에 머문다’라고 한다. 소연에서 앎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은 집착이 없어졌음을 뜻한다. 거기에는 당연히 집착하는 주체도 없다. 그것은 주객의 분열이 없어진 지혜이기 때문에 무분별지라고 한다. 이것은 상대를 떠난 지혜, 즉 공의 지혜이다. 공(空)은 형태나 크기가 없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공을 안다는 것은 스스로 공을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무분별지이다.

이 유식에 안주한 지혜를 견도(見道)라고 한다. 견도에는 진(眞)견도와 상(相)견도가 있다. 진견도는 근본 무분별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성(性)을 깨닫는 것이고, 상견도는 후득지에 의해 생기며 유식의 상(相)을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진견도는 이공소현(二空所顯)의 진여를 깨닫는 것이다. 이 통달위는 성자의 부류에 속하게 되는 것이며, 십지(十地) 중 최초의 환희지에 든다고 한다.

 

그 후 다시 수행을 계속하여 제10지의 위에 이르기까지가 네번째 수습위이다. 즉 이 단계에서는 몇 번이고 되풀이하여 무분별지를 수습하고 번뇌장(煩惱障)과 소지장(所知障)을 끊어 무심(無心)의 상태에서 전의(轉依)를 실현하는 것이다. 앞

 

의 통달위 단계에서도 무분별지가 나타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며 다시 번뇌가 생긴다. 그러한 상태에서 무분별지를 자주 수습하여 그 수습이 완성될 때 전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번뇌장을 떨쳐버림으로써 대열반을 얻고 소지장을 떨쳐버림으로서 대보리를 얻는 것이다.

 

수습위의 다음인 다섯번째 구경위는 불과(佛果)이다. 이것은 앞의 전의에 의해 얻어진 경지이다.

3) 천태사상(天台思想)

천태의 교리적 핵심은 제법실상(諸法實相)이다. 제법이란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말이고, 실상은 참된 존재라는 뜻이다.

 

그래서 제법실상이란 현실의 온갖 사물이 참된 존재라는 말로써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제2품 방편설에 나오는 말이다.

천태학의 소의경전은 <법화경>이며, 이 경을 중심으로 교학을 발전시켜 나간다. 천태에서는 <법화경> 28품을 앞뒤 14품씩으로 나누어 본다. 앞은 적문(迹門)이라 하는데, 현실적으로 제법실상을 중심으로 불타의 금생교설을 총괄하였고, 뒤의 본문(本門)은 시간적으로 제법의 영원성을 지시하고 불타의 과거세의 온갖 행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천태학의 주요전적이라 할 때 <법화경>보다는 삼대부로 불리는 법화경의 세 가지 주석서를 더 중요시하는 것이 사실이다. 삼대부는 천태의 강의내용을 장안 관정(灌頂)이 필수 정리한 것이다.

 

천태종의 개종자인 지의는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도 만년에 학문과 수행이 원숙한 경지에서 독창적인 불교학의 체계를 세워 강설한 주석서인 <법화문구(法華文句)>와 법화철학의 정수요 원론서인 <법화현의(法華玄義)>와 수행과 실천의 대도를 밝힌 <마하지관>을 삼대부로 불러왔다.

<법화현의> <법화경>과 천태학의 총론적 연구서이다. 교상문(敎相門, 교학)의 대표 저서로서 <묘법연화경>이라는 경의 제목을 중심으로 하여 경전의 요지를 해석하고 붓다 일생의 교법을 체계적으로 논술하였다. 이른바 오중현의(五重玄義)로서 법화사상을 강론한 것이다. 곧 경의 제목, 주체, 근본, 작용, 교판의 다섯 기준에서 <법화경>을 중심으로 모든 경전을 분석 판별하여 법화우위를 주장한 것이다.

<법화문구><법화경> 28품의 모든 문장을 해석한 주석서이다. 여기에서도 네 가지 기준을 설정하여 전형적인 경전 해석학의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 그 하나는 설법의 인연에 따른 해석이며, 그 둘은 듣는 이의 근기와 기호에 따른 해석이고, 다음은 불타의 입지가 법신(法身)의 본래불인가 아니면 화신불(化身佛)인가 등에 따른 차별적 해석이며, 마지막은 관심법 등 신행방법의 차이에 따른 해석이다.

<마하지관>천태종의 실천적 관심법을 체계화한 저서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선정법은 천태 이전부터 전해온 여러 경전들의 내용을 모으고 정리한 것이어서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지의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 특징이다.

천태의 교상판석

중국에서의 교판사상의 기원을 찾아본다면 동진시대의 라집(羅什)과 보리유지(菩提流支)의 일음교설(一音敎說)이 있었고, 라집의 수많은 문하 중에서도 특히 도생(道生)의 사종법륜설(四宗法輪說)과 승예(僧叡)의 사교설(四敎說) 등이 있었다.

 

육조시대에 들어오면서 동진시대에 행해지던 교판사상이 점차 발달하여 ‘남삼북칠(南三北七)’의 교판이 형성되었다.

 

먼저 남방 삼가(三家)의 교판설을 살펴보면 이들은 불교를 돈교(頓敎)와 점교(漸敎)로 나누었다. 돈교에 <화엄경>을 배대시켰으며 점교는 유상교(有相敎; 아함), 무상교(無相敎; 반야), 억양교(抑揚敎; 유마), 동귀교(同歸敎; 법화), 상주교(常住敎; 열반)로 나누었다.

 

북방 칠가(七家)의 교판설 가운데 광통(光統)과 혜광(慧光)의 사종판(四宗判)에서는 불교를 인연종(因緣宗; 비담), 가명종(假名宗; 戒論), 광상종(대품삼론), 상종(常宗; 열반, 화엄)으로 나누었다. 이 사종판은 후에 오시팔교(五時八敎)설 가운데 화의사교(化儀四敎)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천태대사 지의는 <법화현의>에서 ‘남삼북칠’이라 하여 이전에 정한 대표적인 교판 10 가지를 열거하여 전부 비판하고 자신의 교판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천태의 교판은 ‘남삼북칠’의 교판의 영향에 의해서 성립된 것이며 종래의 교판을 종합 집대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오시(五時)와 화의사교는 비밀교를 제외하고 대부분 명칭이 이전의 교판 가운데 있고, 지의는 그것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의는 불교의 모든 경교(經敎)를 불타가 설법한 차례와 순서에 따라 다섯 단계 즉 오시(五時)로 배열하였다.

 

여기에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분류한 화의사교(化儀四敎)와 불타의 법의 내용을 일체교리를 분류한 화법사교(化法四敎)의 팔교(八敎)를 결부시켜 ‘오시팔교(五時八敎)’로 지칭되는 교상판석을 완성시켰다.

오시 화엄시(華嚴時), 아함시(阿含時), 방등시(方等部), 반야시(般若時),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일체의 경전을 설한 시기에 따라 분류하고 통일한 것이다.

 

화엄시는 불타가 <화엄경>을 설한 것을 말하고 그 시기는 성도 후 21일간이다. <화엄경>은 불타가 직접 깨달은 법을 조금도 수식을 가하지 않고 순수한 형태로 직접 설한 것이다.

 

아함시는 불타가 장아함, 중아함, 증일아함, 잡아함 등의 <아함경>을 <화엄경>을 설한 직후 1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최초의 설법장소가 녹야원이었으므로 녹야시라고도 한다. <아함경>은 이해력이 가장 낮은 사람을 위한 경전으로 간주되며 불타 최초의 설법에 해당한다.

 

방등시는 불타가 <유마경> <능가경> 등의 여러 방등(方等)경전을 아함 이후 8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한다. 방등경은 소승의 사고방식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엄하게 나무라면서 대승으로 이끌어간 것이다. 내용적으로는 소승불교를 배척하고 대승불교를 찬탄했으며 소승을 부끄럽게 여기고 대승을 흠모한 것이다.

반야시는 불타가 각종의 <반야경>을 방등 후 22년 동안 설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공(空)의 근본진리를 해명함으로써 소승을 대승으로 길들인 것이 된다.

 

법화열반시는 불타가 <법화경>과 <열반경>을 반야 후 8년 동안 설하는 것을 말한다. <법화경>은 통일적인 진리 내지는 세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열반경>은 불타가 입멸할 즈음에 하루 밤낮을 설했던 것으로 내용적으로 <법화경>과 동등한 위치를 갖는다.

오시를 통(通)과 별(別)로 구분해서 보았는데, 통오시란 오시는 시간상 구별이 아니라 설명내용의 분류이며 오시 상호간에 오시의 설법이 포함된다는 것이다. 별오시란 시간상의 차제를 분류한 것이다. 팔교는 화의사교와 화법사교이다.

 

화의사교는 설법의 방법과 형식에 따라 돈교(頓敎), 점교(漸敎), 비밀교(秘密敎), 부정교(不定敎)로 분류한 것이고 화법사교는 불타의 법의 내용으로 일체 교리를 장교(藏敎), 통교(通敎), 별교(別敎), 원교(圓敎)로 분류한 것이다.

화의사교를 살펴보면

 

돈교는 직돈(直頓)의 의미로 점진, 유인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단번에 대승의 심오한 법을 설하는 것을 말하며 화엄시에 해당한다.

 

점교는 점차의 의미로서 작은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점진, 유인하는 것을 말한다. 소승으로부터 대승에 걸친 설법이 포함되며 아함, 방등, 반야시에 해당한다.

 

비밀교는 비밀부정교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이 서로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를 알지 못한 채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으로 모든 경전에 지칭된다.

 

부정교는 현로부정교(顯露不定敎)의 약칭이며 듣는 사람의 근기에 따라 의미가 일정하지 않은 것으로 소승과 대승의 모든 경전에 대하여 지칭할 수 있다.

화법사교는 지의의 독창적인 인식으로 지의의 불교관과 사상적 입장이 표출되어 있다.

 

장교는 경, 율, 론 삼장교(三藏敎)의 의미로서 소승불교를 가리킨다. 불교교리의 초보적인 단계로 특히 공(空)을 파악하는 방법에 강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상으로는 자기 및 세계를 요소로 분석하여 진정한 존재물은 이 요소뿐이며 이것을 법체(法體)라 하고 삼세(三世)에 항존하기 때문에 ‘삼세실유 법체항유(三世實有 法體恒有)’를 주장했다. 바로 사물을 요소적으로 분석해감으로써 결과적으로 공무(空無)를 주장하였으므로 절공관(折空觀)이라고 평하게 되었다. 또 공을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그것에 정체했다고 하여 편공(偏空), 단공(但空), 단공(單空)이라든가 허무공견(虛無空見)이라고 비판받았으며 장교의 공관이나 입장은 진리로 인도하는 방법이 졸렬하다고 하여 졸도관(拙度觀)이라고도 지칭된다.

통교는 공통의 교법이라는 뜻으로, 앞의 장교에도 통하고 뒤의 별교, 원교에도 통하며 또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즉 대승과 소승에 공통되는 교리이다. 장교가 사물의 생멸을 분석적으로 관찰하는데 비해 통교는 사물 그대로에 합치하여 전체적으로 공이라고 본다. 바꿔 말하면 사물의 당체(當體) 그대로 공이라고 하여 당체즉공(當體卽空)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것이다. 체공관(體空觀) 또는 즉공관(卽空觀)이라고 불린다. 생멸에 관해서는 생(生)을 고집하지도 멸(滅)을 고집하지도 않는다. 생과 멸을 초월한다는 의미에서 무생무멸(無生無滅)이며 간략하게 무생관(無生觀)이라 지칭된다. 장교의 졸도관에 대하여 이것은 교도관(巧度觀)이라고 지칭된다. 대승의 경전 가운데 특히 <반야경>이 통교를 대표한다.

별교는 앞의 장교와 통교, 뒤의 원교와도 구별되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 오로지 보살만을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서 이 점이 이승(二乘)과 같지 않으며 대승에서 설한 특별한 가르침이다. 교리로서는 공(空)으로부터 가(假)로 나아가며 현실의 한량없는 모습에 대한 자유자재의 대응을 설한다. 그리하여 다시 중(中)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별교에 있어서 공(空), 가(假), 중(中)은 점차적이고 단계를 낮춘 것으로서 원융상즉에까지 이루지 못한다. 중(中)은 공(空), 가(假)에 대해 특별한 것이고 목적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중(但中)이라고 평해진다. 이러한 점에서도 별교라고 지칭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전으로 <화엄경>을 들 수 있다.

원교는 원유, 원만한 가르침이라는 의미이다. 진리 내지 세계를 총합적으로 보는 입장이다. 공가중(空假中)에 대하여 말하면 별교처럼 차제의 삼관(三觀)이 아니고 원융상즉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이다. 공가중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참으로 적당함을 얻어서 진공묘유(眞空妙有)가 진(眞)이 되는 등, 여러 가지 사물이 본래 지녀야할 바를 얻어서 무작(無作), 자연스럽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원교에 가장 적합한 경전으로 <법화경>이 거론된다.

이상에서 천태의 교판론인 오시팔교(五時八敎)설에 대해 살펴보았다. 현대의 문헌고증에 의할 때 천태의 오시의 배열은 사실과 다르며, 오시팔교에 대한 역사성도 의문시된다. 그러나 오시팔교설은 천태대사의 불교관을 표명한 것으로 천태교학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불타의 설법(說法)과 설시(說時)에 의거한 것으로 보면 그 가치는 충분히 있다고 여겨진다.

천태의 지관법문

천태사상은 크게 교상문(敎相門)관심문(觀心門)으로 나누어진다.

 

교상문은 이론적인 측면으로써 교학적으로 사상을 체계화한 것으로 ‘오시팔교(五時八敎)’가 대표적인 예이다.

 

관심문은 수행적인 측면으로 실천론이라고 할 수 있다. 천태지의의 실천론은 지관(止觀)이라는 두 글자로 요약된다고 할 수 있다.

 

지관은 지의 이전부터 사용되었던 말로써 지(止)는 범어 samatha로 바깥 경계를 쫓아 일어나는 모든 잡념과 망상을 그치고 마음을 고요히 지니는 방법으로 곧 적정(寂靜)을 뜻한다. 관(觀)은 범어 vipasyana로 어떤 대상을 관조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도에서는 지관이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 가운데 정(定)에 속하는 정도이지만 지의에게 있어서 지관은 인도에서 의미하던 것을 넘어서 보다 넓고 깊은 차원을 나타낸다. 그에게 지관은 보다 정적인 면과 동적인 면,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 선정(禪定)적인 면과 선혜(禪慧)적인 면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지관은 크게 나눠서 점차(漸次)지관, 부정(不定)지관, 원돈(圓頓)지관의 세 가지가 있다.

 

<마하지관(摩訶止觀)>에 의하면 이 세 가지 지관은 천태 지의남악 혜사(慧思)로부터 전수받은 것이라고 한다.

 

점차지관은 얕은 곳에서 깊은 곳으로 점차적으로 지관을 실수(實修)하는 것을 말하고, 부정지관은 때와 경우에 따라 심천(深淺), 전후(前後)가 서로 호응되는 것을 말하고, 원돈지관은 전체적, 종합적으로 곧바로 실상의 구극을 체득하고 체현하는 것을 말한다.

 

천태지의의 저서 가운데 점차지관이 중심인 것은 <차제법문(次第法門)>이며, 부정지관이 중심인 것은 <육묘법문(六妙法門)>이며, 원돈지관이 중심인 것은 <마하지관>이다.

오시팔교의 화법사교에 의하면 장교에서는 석공관(析空觀)을, 통교에서는 체공관(體空觀)을, 별교에서는 공가중(空假中)에 대한 차제삼관(次第三觀)을, 원교에서는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일심삼관(一心三觀)을 닦는다. <마하지관>에서 말하는 원돈지관은 이 원교의 지관법으로 천태실천론의 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마하지관>은 천태실천론의 궁극적인 이상인 원돈지관을 오략십광(五略十廣)의 조직으로 설명하고 있다.

 

오략(五略) 발대심(發大心), 수대행(修大行), 감대과(感大果), 렬대망(裂大網), 귀대처(歸大處)로 구성되어 있다.

 

발대심(發大心)에서는 열 가지의 틀린 생각을 제시하면서 사성제나 사홍서원 혹은 육즉(六卽) 등의 교설을 매개로 삼아 생각을 바르게 하며, 즉공(卽空) 즉가(卽假) 즉중(卽中)의 지관의 구극을 향하여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고 설명한다.

 

수대행(修大行)에서는 신구의(身口意) 세 가지에 관하여 사종삼매(四種三昧)의 지관 실천법을 설명한다.

 

감대과(感大果)에서는 지관의 성과에 대하여 간략하게 설명하고, 렬대망(裂大網)에서는 지관의 달성에 의해 세간의 미혹이라는 그물이 파열되는 것을 말하고, 귀대처(歸大處)에서는 지관이 귀착해야 할 곳을 밝힌다.

 

오략(五略)을 확대해서 설명한 것이 십광(十廣)으로 대의(大義), 석명(釋名), 체상(體相), 섭법(攝法), 편원(偏圓), 방편(方便), 정수(正修), 과보(果報), 기교(起敎), 지귀(旨歸)로 구성된다.

 

대의(大義)에서는 오략(五略)의 대의를 기술하고, 석명(釋名)에서는 상대지관관, 절대지관, 천태가 의미하는 지(止)의 세 가지 뜻과 관(觀)의 세 가지 뜻을 밝힌다.

 

체상(體相)에서는 지관의 체와 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섭법(攝法)에서는 리혹지행위교(理惑智幸位敎)의 여섯 가지 법에 의해서 일체법을 포섭하고 다시 그 여섯 가지 법이 상호포섭되는 것을 나타낸다.

 

편원(偏圓)에서는 대소(大小), 반만(半滿), 편원(偏圓), 점돈(漸頓), 권실(權實)에 대해서 상술한다. 방편(方便)에서는 25방편을 설하고, 정수(正修)에서는 지관의 대상인 십경(十境)과 지관의 방법인 십승관법(十乘觀法)에 대해서 기술한다.

 

과보(果報)에서는 관법을 성취해서 얻는 불과(佛果)에 대해서, 기교(起敎)에서는 중생을 교화하는 것에 대해, 지귀(旨歸)에서는 불과(佛果)를 성취해서 모두가 제법실상(諸法實相)의 이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4) 화엄사상(華嚴思想)

<화엄경>은 화엄부의 대표적인 경전으로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의 준말이며, 범어로는 Mahavaiplya-buddha-ganda-vyuha-sutra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대(大)는 소(小)에 대한 상대적인 입장이 아니라 절대적인 대(大), 상대가 끊어진 극대를 말한다. 시간과 공간의 개념을 초월한 절대의 대(大)라고 할 수 있다. 방광(方廣)이란 넓다는 뜻인데 특히 공간적으로 넓다는 뜻이다. 따라서 ‘대방광(大方廣)’이란 크고 넓다는 뜻으로 붓다를 수식하는 형용사이다. 그러므로 대방광불이란 한량없이 크고 넓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붓다를 말한다. 그 붓다를 <화엄경>에서는 비로자나불이라고 한다.

 

화엄(華嚴)이란 잡화엄식(雜華嚴飾)에서 나온 말이다. 화엄을 범어로는 Ganda-vyuha라고 하는데 Ganda란 잡화(雜華)라는 뜻이고, vyuha란 엄식(嚴飾)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화엄이란 잡화엄식이라는 말 그대로 갖가지의 꽃을 가지고 장엄한다는 뜻이다.

 

요약해서 말하면 <대방광불화엄경>은 광대무변하게 우주에 편만해 계시는 붓다의 만덕(萬德)과 갖가지 꽃으로 장엄된 진리의 세계를 설하고 있는 경이라고 할 수 있다.

화엄부 경전 자체 내에서도 설처(說處)가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리도량이며, 설한 시기도 성도 직후로 되어 있다. <팔십화엄>에는 시성정걱(始成正覺)이라 하고, <육십화엄>에도 시성정각이며 세친이 지은 <십지경론>의 저본이 된 <십지경>에는 제이칠일(第二七日)이라고 하였다. 또 천태교판에서도 <화엄경>을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후 최초 삼칠일 즉 21일 동안 말씀하신 경이라고 하고 있다.

현재 유통되고 있는 경전의 한역본으로는 60권, 80권, 40권으로 된 <육십화엄>, <팔십화엄>, <사십화엄> 등 3부 <화엄경>이 있다.

 

<육십화엄>은 동진시대에 불타발타라(佛馱跋陀羅)에 의해 418에서 420년에 번역되었고 교정을 거쳐 421년에 역출되었다. 이를 진본(晋本)이라 하고 또는 화엄대경 중 먼저 번역되었다고 하여 구경(舊經)이라고도 부른다.

 

<팔십화엄>은 대주(大周)시대 실차난타(實叉難陀)에 의해 역출되었으며 이를 주본(周本) 또는 신경(新經)이라 한다.

 

<사십화엄>은 당의 반야(般若)가 798년에 역출하였으며 입법계품의 별역으로 <입불가사의해탈경계보현행원품(入不可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이 본래의 이름이다.

그러나 <육십화엄>이나 <팔십화엄>은 처음부터 대경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화엄경>을 구성하고 있는 각 품이 별행경으로 먼저 성립되어 있었으며 그 지분경을 모아 어떤 의도하에 조직적으로 구성한 것이 웅대한 화엄대경인 것이다.

법계연기(法界緣起)

중국 화엄종에서는 화엄별교일승원교(別敎一乘圓敎)이며 원명구덕종(圓明具德宗)으로 보고 있으며, 그 화엄세계는 법계연기의 세계라고 보고 있다.

 

<화엄경>의 불보살세계를 ‘인과연기 이실법계(因果緣起 理實法界)’의 법계연기로 나타낸 것이 화엄종의 종취라고 화엄종의 대성자인 법장은 밝히고 있다. 이러한 법계연기설은 청량을 거쳐 규봉종밀 대에 와서 사종법계설로 확정된다.

종밀은 <주법계관문>에서 청량징관의 <화엄경소>를 인용하면서 사종법계의 의의를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주법계관문>은 두순이 지었다고 하는 <법계관문>을 종밀이 주석한 것이다.

 

<법계관문>에서는 진공관, 이사무애관, 주변함용관의 법계삼관을 설하고 있다.

 

먼저 진공관(眞空觀)은 모든 법은 실성이 없어 유(有)와 공(空)의 두 가지 집착을 떠난 진공인 줄을 관함이다. 다음 이사무애관(理事無碍觀)은 차별있는 사법(事法)과 평등한 이법(理法)은 분명하게 존재하면서도 서로 융합하는 것임을 관함이다. 끝으로 주변함용관(周遍含容觀)은 우주간의 온갖 사물이 서로서로 일체를 함용하는 것으로 관함이다.

지엄은 법계연기를 보리정분의 정문(淨門)연기와 범부염법의 염문(染門)연기로 나누고 있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법계연기를 과분불가설(果分不可說)과 인불가설(因分不可說)로 나누고 그것이 십불자경계(十佛自境界)와 보현경계(普賢境界)라고 하고 있다.

 

종밀에 이르러서는 사종법계설로 발전하게 된다. 여기서 법계란 Dharma-dhatu의 번역어로 연기현전하는 우주만유이다. 이 법계의 체는 일심(一心)인데 원명구덕의 일심이며, 총해만유(總該萬有)의 일심이다. 따라서 법계란 일심체상에 연기하는 만유이다. 그래서 우주만유의 낱낱 법이 자성을 가지고 각자의 영역을 지켜 조화를 이루어가는 것을 법계라 한다. 이 법계를 설명하는데 사(事)와 이(理)의 구별을 세워 논한 것이 사종법계설인 것이다.

사종법계사(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이다.

 

이 네 가지 법계설은 모든 우주는 일심에 통괄되고 있으며, 이 통괄되는 것을 현상과 본체의 양면으로 관찰하면 네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화엄의 무진법계는 사사무애법계를 말한다.

 

사(事)법계 모든 차별있는 세계를 가리킨다. 사(事)란 현상, 사물, 사건 등을 계(界)란 분(分)을 뜻한다. 낱낱 사물은 인연에 의해 화합된 것이므로 제각기의 한계를 가지고 구별되는 것이다. 개체와 개체는 공통성이 없이 차별적인 면만을 본 것이다.

 

이(理)법계는 우주의 본체로서 평등한 세계르 말한다. 이(理)는 원리, 본체, 법칙, 보편적 진리 등을, 계(界)란 성(性)을 가리킨다. 궁극적 이(理)는 총체적 일심진여이며, 공(空)이며 여여(如如)이다. 우주의 사물은 그 본체가 모두 진여라는 것으로 개체와 개체의 동일성, 공통성을 본 것이다.

 

이사무애(理事無碍)법계는 이와 사, 즉 본체계와 현상계가 둘이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의 걸림없는 상호관계 속에 있음을 말한다. 법장은 <금사자장>에서 금사자의 비유를 들어 이를 설명하고 있다. 금이라는 금속은 이(理)의 미분화된 본체를 상징하며, 사자라는 가공품은 분화된 사(事) 혹은 현상인데 사자가 금에 의존하여 표상되고 있음이 바로 이사무애의 경계라는 것이다.

사사무애(事事無碍)법계 개체와 개체가 자재융섭하여 현상계 그 자체가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라는 뜻이다. 제법은 서로서로 용납하여 받아들이고 하나가 되어 원융무애한 무진연기를 이루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곧 화엄의 법계연기이다. 이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세계는 이사무애(理事無碍)를 바탕으로 하여 의지의 전환이 있어야 가능한 직접적인 깨달음의 세계이다.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과 실천행을 통해 현현하는 세계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 늘 그렇게 있는 세계이나 이해나 검증의 문제가 아니라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통해 현실화해야 하는 세계이다.

십현연기(十玄緣起)

사사무애(事事無碍)의 법계연기를 체계적으로 관찰한 구체적 설명이 십현연기육상원융(六相圓融)이다.

 

십현연기십현문(十玄門)이라고도 한다. 십(十)은 원만구족의 만수(滿數)이고, 현(玄)은 현묘, 문은 사사무애법문이다. 10가지 심오한 신비의 무애세계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다.

 

십현문이 설해지고 있는 중국 화엄전적으로는 지엄의 <화엄일승십현문>, <수현기>와 법장의 <화엄오교장>, <화엄경문의강목>, <금사자장>, <탐현기>징관의 <화엄경소>, <현담>, <화엄약책> 그리고 종밀의 <원각경대소> 등이 대표적이다.

법장은 <화엄오교장>에서는 스승인 지엄의 십현문설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으나 <탐현기>에서는 그것을 약간 수정하여 서술하고 있다. 그래서 <탐현기> 이후에 보이는 십현설을 신십현(新十玄)이라 하고 그 이전의 십현설을 고십현(古十玄)이라고 부른다. 여기서는 신십현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신십현은 동시구족상응문, 광협자재무애문, 일다상용부동문, 제법상즉자재문, 은밀현료구성문, 미세상용안립문, 인다라망경계문, 탁사현법상해문, 십세격법이성문, 주반원명구덕문이다.

 

이 가운데 광협자재무애문과 주반원명구덕문은 고십현에서의 제장순잡구덕문과 유심회전선성문을 고친 것이며, 은밀현료구성문은 고십현의 비밀은현구성문을 달리 표현한 것이다.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은 십현연기의 총설이다. 동시는 선후가 없음을 밝히는 것이고, 구족은 모두 섭수하여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일체 제법이 열 가지 뜻을 동시에 구족해서 상응하여 원만히 조화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열 가지 뜻이란 교의(敎義), 이사(理事), 경지(境地), 행위(行爲), 인과(因果), 의정(依正), 체용(體用), 인법(人法), 역순(逆順), 감응(感應)이다.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碍門)은 연기 제법에 각각 광협이 있으면서도 무애하다는 것이다. 이는 간격이 멀든 가깝든 간에 모든 존재들이 아무런 장애없다는 뜻이다. 광(廣)은 밖이 없다는 무외(無外)의 뜻으로 넓음이란 한계를 갖고 있지 않아 밖이 없는 것이다. 협(狹)은 안이 없다는 무내(無內)의 뜻으로 가장 좁음이란 그 자체 안에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아 안이 없다는 것이다. 큰 것과 작은 것에 자성이 없기 때문에 큰 것과 좁은 것이 서로가 서로를 포섭하는 것이다. 좁은 것과 넓은 것은 하나와 전체로 말할 수 있으므로 서로 자유롭게 구애됨이 없이 서로 교환될 수 있다. 이는 고십현에서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본분위를 보존하면서 동시에 일념에 구족하여 원융무애하다는 의미이다. 순수한 것과 잡된 것이 섞여 있으니 순수한 것은 순수한 대로 잡된 것은 잡된 대로 제자리에 있다는 말이다.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은 하나와 전체가 서로 용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는 전체에 들고 전체는 하나에 녹아 있어 무애자재하다. 그래서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다. 그러면서도 각기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하나와 전체가 혼란되지 않는 상입(相入)을 말한다. 상입이란 이것과 저것이 서로 용납하고 받아들여 걸림없이 융합하는 것이다. 하나란 하나라는 자성을 가진 확정적인 하나가 아니라 연기한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 가운데 전체이고 전체 속의 하나이지만, 하나는 하나로서 전체가 아니고 전체는 전체로서 하나가 아니다. 하나는 전체가 아니고 전체도 하나가 아니다. 각각 제 나름대로의 개성으로 본래의 면목을 보유하고 있다.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은 모든 요소들이 서로 동일시되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인 차별로부터의 자유이며 자신을 부정하고 스스로를 타자와 동일시함으로써 종합적인 동일화가 이루어진다. 서로 비춰보고 서로 동일시한 결과 함께 조화하여 움직인다. 상입(相入)이 이것과 저것이 서로 걸림없이 융합하는 묘용(妙用)의 측면이라면, 상즉(相卽)은 서로 자기를 폐(廢)하여 다른 것과 같아지는 체(體)의 측면이다. 두 가지가 하나로 융합하는 즉(卽)은 물과 물결처럼 한 물건의 체 그대로가 다른 물건인 뜻으로 말하는 ‘즉’이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은 고십현에서 비밀은현구성문(秘密隱顯俱成門)이다. ‘비밀은’과 ‘현’으로 된 것을 ‘은밀’과 ‘현료’로 정리한 것이다. 비밀 즉 숨은 것과 현료 즉 드러난 것이 함께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금사자장>에서는 우리가 금사자를 접할 때 사자로서 사자를 볼 때는 사자뿐이고 금은 없으며, 금을 볼 때는 단지 금뿐이고 사자는 없으나 금사자는 금과 사자를 합하여 성립된 것이라고 한다. <화엄현담>에서는 반달의 예를 들고 있다. 반달은 반은 빛나고 반은 어둡다. 그러나 감춰진 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달을 지구에서 보면 큰 공만하게 보이지만 실제로 작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 자체가 늘어났다 줄어들지 않는다. 그 반달은 밝음과 어둠이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밞음 아래에 어둠이 있고 어둠 아래에 밝음이 있다. 하나로 많은 것을 섭수하면 하나는 드러나고 많은 것은 가리워진다. 많은 것이 하나를 거두어들이면 많은 것은 드러나나 하나는 가리워진다. 한 터럭이 법계를 섭수하면 곧 나머지 터럭의 법계는 모두 가리워지고 나머지 낱낱 터럭의 가리워지고 드러남도 또한 그러하다. 한 편은 보이고 한 편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둘다 갖추어져 있어서 하나가 성립되면 다른 쪽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은 미세한 것의 신비를 말하는 것이다. 미세란 인간의 이해가 닿는 곳을 넘어서 고도로 작고 정밀하다는 의미이다. 하나가 능히 많은 것을 함용하므로 상용(相容)이라고 하고, 하나와 많은 것이 섞이지 않으므로 안립(安立)이라고 한다. 무한세계가 작은 먼지나 티끌 속에 존재하며, 이들 세계의 일체 먼지 속에 또다시 무한세계가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일념 중에 모든 것을 구족하여 가지런히 나타나 명료하지 않음이 없음을 겨자씨를 담은 병에 비유하기도 하고 화살이 빽빽히 꽂친 화살통에 비유하기도 한다.

인다라망경계문(因陀羅網境界門)은 인다라망의 비유에 의해 상호 반영의 이론을 말하는 것이다. 제석천 궁전에 걸린 보배망의 각 보배구슬마다 서로 다른 일체 구슬이 비쳐 무진한 것처럼 법계의 일체도 중중무진(重重無盡)하게 연기상유(緣起相由)하여 무애자재하다.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은 모든 연기된 존재가 그대로 법계법문임을 말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는 그 당체가 그대로 연기 현전한 것이므로 두두물물이 다 비로자나 진법신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비유는 곧바로 법의 상징이고, 법이 비유이고 비유가 곧 법이다.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은 십세가 시간에 체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상즉, 상입하여 하나의 총합을 이루지만 그러나 전후 장단의 구별이 뚜렷하여 질서가 정연한 것을 말한다.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三世)에 각각 삼세가 있어 구세(九世)가 되고 그 구세는 한생각 일념에 포섭되므로 십세(十世)이다. 또 일념을 열면 구세가 되므로 합하여 십세가 된다. 그래서 일념이 십세무량겁이고 무량겁이 일념이지만 십세는 낱낱이 서로 혼잡함이 없이 완연히 구별되어 있는 것이다.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은 주체와 객체가 조화롭게 함께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 어떤 존재도 홀로 생겨나는 것은 없다. 우주법계에는 어느 한 사물도 홀로 생겨나 존재하는 것이 없으며 서로 주인이 되고 객이 되어 모든 덕을 원만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고십현의 유심회전선성문(唯心廻轉善成門)을 바꾼 것이다.

육상원융(六相圓融)

십현연기와 더불어 육상원융 또한 화엄무진연기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또다른 측면으로 중시되고 있다.

 

육상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말한다.

 

이는 총별, 동이, 성괴라는 세 쌍의 대립되는 개념이나 모습이 서로 원융무애한 관계에 놓여 있어 하나가 다른 다섯을 포함하면서도 또한 여섯이 그 나름의 모습을 잃지 않음으로써 법계연기가 성립한다는 설이다.

모든 존재는 다 총상, 별상, 동상, 이상, 괴상, 성상의 육상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이 육상은 서로 다른 상을 방해하지 않고 전체와 부분, 부분과 부분이 일체가 되어 원만하게 융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기로써 이루어진 모든 존재는 반드시 여러 가지 연(緣)이 모여 성립된다.

 

그러므로 거기에 성립된 총상(總相)은 부분을 총괄하여 전체를 만들고 있다.

 

별상(別相)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과 부분을 말하는데 이것이 총상에 의지하여 원만하고 완전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총상이 없으면 별상이 없고 따라서 총상 밖에 별상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 유기적인 관계에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동상(同相)이란 별상의 하나하나가 서로 조화되어 모순되지 않고 성립되는 힘을 균등하게 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상(異相)이란 별상이 서로 혼동되지 않고 있으면서 제각기 상을 잃지 않고 조화되어 있는 모양이다.

 

성상(成相)이란 별상이 각각 다르기 때문에 총상을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부분이 다만 집합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유기적인 관계성을 가지고 모여서 하나의 전체를 성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상(壞相)은 별상이 총상을 성립시키면서도 별상 제각기의 자격을 갖추고 있으면서 총상의 모양으로 혼융되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

법장은 <오교장>에서 육상집에 비유하여 설명하고 있다.

 

가령 총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을 총괄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별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그 자체를 이른다. 동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서로 힘을 합쳐 집을 조립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은 각각 가로와 세로로 되어 있어 다른 유형이 되고 있음을 말한다. 또 성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각각 인연이 되어 집을 완성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 괴상은 기둥, 석가래, 대들보 등이 집을 조립하여 성립시키고 있으면서도 각각 자기의 본 모양을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육상의 관계를 체상용(體相用)의 관계로 나누어 보면 총상과 별상은 연기의 체(體)라고 보고, 동상과 이상은 연기의 상(相)이라고 하고, 성상과 괴상은 연기의 용(用)이라고 할 수 있다.

5) 정토사상(淨土思想)

인도에서 비롯된 대승불교는 그대로 중앙 아시아를 경유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정착하였으며, 그 가운데서 널리 신앙되어진 사상 조류의 하나가 바로 정토사상이다. 한국불교에서도 원효 이래로 신라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고 신앙적으로나 교학적으로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밀교와 선종이 급진적인 발전을 하고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자 정토사상은 후퇴하게 되었고 점차 주술적인 모습으로 변하게 되었다.

정토사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해명되지 않은 상태이지만 대체로 정토사상이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어 드러난 것은 대승불교가 흥기한 시대라고 보고 있다. 이는 정토계 경전군이 편찬됨으로써 구체화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정토사상, 정토계 경전군이라고 하는 것은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관한 사상이나 경전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래 정토(淨土)라고 하는 용어는 대승불교 일반에서 쓰이는 술어이며 아미타불의 극락정토에 한정해서 쓰이는 말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정토란 시방삼세(十方三世)의 모든 불국토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어느 새 아미타불의 극락국토만을 정토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거의 모든 대승경전에서 아미타불의 극락정토가 언급되고 있으며 불교의 궁극적인 목표가 왕생극락에 있다고 결론짓고 있는 곳도 있다.

정토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용어는 ‘극락’과 ‘아미타불’ ‘본원(本願)’이다.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여 극락정토에 왕생하는 것이 정토신앙의 요체이다. 왕생은 아미타불의 본원에서 비롯되며 그것은 바로 부처의 본질인 중생을 구제하지 않을 수 없는 동체대비(同體大悲)의 지혜와 자비가 아미타불의 본원을 통해서 중생에게 회향되어지는 것을 말한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아미타불에게 귀의한다는 말이다. 범어로는 두 가지로 표현된다. 즉 Namo-Amitabha은 Namas + a + mita + abha과 Namas + a + mita + ayus의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Namas는 귀의한다는 말이며, a는 부정의 의미를 지닌 접두사이다. mita는 헤아린다는 말이다. abha는 광명이며 ayus는 생명을 뜻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는 말은 ‘헤아릴 수 없는 광명에 귀의합니다’ 내지는 ‘헤아릴 수 없는 생명에 귀의합니다’라는 말이다. 무한 광명(無限光明)에 귀의하고 무한 생명(無限生命)에 귀의한다고 하는 말은 법에 귀의하는 것이며,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을 총동원하여 진리 그 자체에 귀의하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이다. 그것을 염불(念佛)이라고 한다. <무량수경>에서는 이 부분을 강조하기 위하여 불불상념(佛佛相念)의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불(佛)과 불(佛)이 서로 염한다’는 것은 부처가 염불한다는 말이다. 그렇게 해서 미타삼매에 들어 <무량수경>을 설하셨으며 무한 광명과 하나가 되고 무한 생명과 하나가 되어 저절로 진리 그 자체와 하나가 되어 왕생극락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속적인 욕망이 개입될 여지는 전혀 없으며, 순수 가치만이 존재하며 순수 신앙의 세계로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정토사상으로 불교를 볼 때에 불교는 염불이며, 나무아미타불만이 불교인 것이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많은 대승경전 가운데서 가장 많이 읽히고 연구되어 온 경전은 ‘정토삼부경’이다.

 

정토삼부경이란 정토 경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경전을 통틀어 말한 것으로 강승개(康僧鎧) 역이라고 전해지는 <무량수경(佛說無量壽經)> 2권, 강량야사(畺良耶舍) 역이라고 전해지는 <관무량수경(佛說觀無量壽經)> 1권, 구마라집 역으로 전해지는 <아미타경(佛說阿彌陀經)> 1권을 말한다.

<무량수경>에는 옛날부터 오존칠결(五存七缺)이라고 말하여지고 있으며 모두 열 두 가지의 번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실제로 열두 가지로 번역되었는지 의심스럽다. 현재 남아있는 다섯 가지의 번역내용은 다음과 같다. <불설아미타삼야삼불살루불단과도인경(佛說阿彌陀三耶三佛薩樓佛檀過度人道經)> 2권은 일반적으로 <대아미타경>이라고 불려진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했다고 한다.

<무량청정평등각경(無量淸淨平等覺經)> 4권은 <평등각경>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지루가참이 번역하였다고 하며 위나라의 백연이 번역했다는 설도 있으며 서진의 축법호가 번역했다는 설도 있다. <불설무량수경> 2권은 <대경(大經)> 혹은 <위역(魏譯)>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중국, 한국, 일본에 가장 많이 유포된 경전이며 일반적으로 무량수경이라고 할 때에는 이 경전을 가리킨다. 위나라의 강승개가 252년에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무량수여래회(無量壽如來會)> 2권은 당나라의 보리유지가 706년에서 713년에 걸쳐 번역하였다. <대무량수장엄경(大無量壽莊嚴經)> 3권은 송나라의 법현이 991년에 번역하였다.

<무량수경>은 정토사상의 모든 근거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이 유포된 위나라의 강승개가 번역한 <무량수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무량수경>은 상하의 두 권으로 되어있는데 상권은 여래정토(如來淨土)의 인과를 설하고 있으며 하권은 중생왕생(衆生往生) 즉 중생들이 극락에 왕생하는 인과를 설하고 있다. 여래정토의 원인은 48원(願)이며, 그 결과는 극락정토이다. 중생이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는 원인은 염불이며 염불의 결과는 왕생극락이다.

<관무량수경>은 흔히 ‘왕사성의 비극’이라고도 불리워진다. 인도에서 전래된 경전들은 거의 두 가지 이상의 다른 번역이 있지만 이 <관무량수경>은 한 가지 번역밖에 없다. 물론 범어로 된 원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관무량수경>이라는 제목은 본래의 이름은 관극락국토무량수불관세음보살대세지보살(觀極樂國土無量壽佛觀世音菩薩大勢至菩薩)인데 이것을 줄여서 <관무량수경>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다. 그 경의 이름의 내용은 극락국토의 장엄과 그 나라에 계시는 무량수불과 좌우에서 부처님을 보좌하고 계시는 관음, 세지의 양대 보살을 관하는 경이라는 것이다.

관(觀)한다는 말에는 관견(觀見)과 관지(觀知)의 두 가지 뜻이 있다. 관견이란 극락정토의 아름답고도 불가사의한 장엄을 마음 속에 그려 보는 것을 말하며, 관지란 아미타부처님께 귀의하는 절대 신심을 말한다. 이 경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악인을 구제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악인이란 진실을 구하면서도 진실과 거리가 멀고 선을 가까이하려 하지만 선할 수 없는 영겁의 시간과 공간에서 죄업이 막중한 범부 중생을 말하는 것이다. 두번째 특징은 여인성불(女人成佛)이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후대의 사상가들에 의하여 많은 논란이 있었다.

<아미타경>은 5세기 초에 구마라집이 번역하였으며, 그 밖에도 현장이 650년에 번역한 <칭찬정토불섭수경(稱讚淨土攝受經)> 1권이 있다. <아미타경>은 극락정토에 있어서의 여러 가지 공덕장엄(功德莊嚴)을 설하고 있다. 이러한 공덕장엄은 국토, 의복, 음식 그리고 육체나 정신에까지 미치고 있다. 이렇게 공덕장엄을 널리 설하는 이유는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게 하기 위한 것이다. 또 한편으로는 중생의 업인 작은 선근으로도 왕생할 수 없다고 구정하고 있다.

다만 하루 내지 이레동안 염불한다면 반드시 왕생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중생이 이것을 믿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동서남북과 상하의 육방(六方)의 항하사제불(恒河沙諸佛)이 광장설(廣長舌)을 내어 삼천대천세계를 두루 덮으면서 증명하고 있으며 경계하고 있다. 왕생극락을 의심하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의심하는 것이 되며, 왕생극락을 믿는 것은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이다. 아미타불의 본원을 믿는 것은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이며, 석존의 말씀을 믿는 것은 육방의 항하사제불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미타경>은 구회일처(俱會一處)의 사상을 가지고 화합을 도모하고 있다. 모든 중생이 마침내는 극락정토에서 모두 함께 만남을 성취한다는 것이다.

6) 선사상(禪思想)

일반적으로 알려진 선(禪)이란 말은 고대 인도의 사유 명상법인 요가에서 비롯된 것인데, 붓다의 깊은 사유와 정각을 통해 불교의 실천 수행인 선정(禪定)으로 체계화된 말이다. 요가의 기원은 기원전 3000년 경 인더스강 유역을 중심으로 발전된 고대 인더스 문명의 유적에서 발견된 요가 수행자의 모습이 새겨진 인장(印章)이나 성자의 흉상 등의 발굴로 입증된 것처럼 기원전 1500년 경 아리아인들이 인도를 침입하기 이전에 이미 고대 인도의 원주민들에 의해 실행된 요가 명상의 사유의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요가는 약 5000년 내지 그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요가란 각자의 산란한 마음을 안정시키고 정신을 통일시키는 수행방법을 말한다. 요가(yoga)란 말은 ‘연결시키다’라는 의미로서 yji(연결하다)라는 어근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런데 이러한 요가라는 말이 사유하다,명상하다라는 의미로 문헌상에 최초로 기록되고 있는 곳은 기원전 6세기경에 성립된 <카타우파니샤드>이다. 여기서는 ‘명상사유를 통하여 다섯 가지 감각을 제어하고, 산란된 마음을 정지시키는 것이며, 이와 같이 모든 감각기관이 정지되어 움직이지 않고 잘 유지해 가는 것을 요가라고 한다’고 요가의 정의를 내리고 있다.

(禪)이라는 말은 인도 원어를 한어로 음사한 것이므로 한자 자체에는 본래의 의미가 없다. 한자의 선에는 ㄱ)땅을 깨끗하게 하여 천지의 신을 제지낸다, 하늘을 제지낸다, 산천을 제지낸다, ㄴ)토지를 개척한다, ㄷ)천위(天位)를 양도해 준다, ㄹ)조용함 등의 의미가 있다. 이 의미들 가운데 인도 원어에 해당하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면 조용함 뿐일 것이다. 그러나 중국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의 형태에 약간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중국선에는 한 스승에서 한 제자에게로 직접 불법(佛法)을 전수하는 ‘사자상전(師資相傳)’의 수수(授受) 형태가 보여지는데 이것은 인도불교에서는 볼 수 없던 것이다.

선이란 원래 범어의 dhyana, 팔리어의 jhana의 음사이다. 원어는 마음을 통일하는 것, 마음을 특정한 것에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의역해서 정려(靜慮), 의미를 첨가해서 선정(禪定)이라고도 한다. 이것은 유가(瑜伽; 요가), 삼매(三昧) 등과 함께 고래로 인도에서 중시된 명상의 실천을 나타내는 말의 하나이다.

중국선의 전개

중국에서의 선의 역사도 이와 같은 선의 본질적 성격을 고려하면 불교가 처음 전래함과 동시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후한대의 안세고나 지루가참이 번역한 초기의 소승, 대승의 여러 경전 가운데는 직접 선 내지는 삼매의 실천을 선양한 곳이 몇 군데 보인다. 이러한 점들에 비추어 볼 때, 선은 불교가 처음 전래된 이후에 곧 중국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 가운데 특히 선의 실천에 열심인 불교인 즉 선자(禪者)가 점차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불교가 전래하기 이전부터 선과 유사한 종교적 실천방법이 있었다. 예를 들면 <장자>에서 설한 진인(眞人)의 호흡법이나 이것에 영향을 받아 후에 태식법(胎息法)으로서 완성된 신선방술의 호흡법이 그것인데 그러한 실천을 통해서 얻어진 경지의 표현도 불교의 선의 경지의 그것과 대응하는 면이 적지 않다. 그러므로 중국선이 노장사상이나 신선도와 종종 교섭하면서 전개되어가는 것은 오히려 필연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양상을 가진 선의 실천은 선자들을 배출하면서 각지로 전해져 갔다. 그러나 북위시대가 되면 다시금 새로운 선이 중국에 전해지게 된다. 이것이 이후 중국선의 개창자가 되는 보리달마(菩提達摩)의 선이다.

 

<낙양가람기>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페르시아 출신이다. 중국으로 건너와 양녕사 구층탑의 금반(金盤)이 태양빛을 받아 빛나고 종소리가 바람을 머금고 울려퍼지는 것을 듣고 “나는 150살이 되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지만 이처럼 아름다운 사원은 보지 못했다”라고 하면서 입으로 나무(南無)를 외우고 매일매일 합장했다고 한다.

 

또한 담림의 기록에 의하면 보리달마는 인도 국왕의 셋째 아들로서 대승의 도에 마음이 끌려서 출가하여 세상에서 뛰어난 덕을 갖추었으나 멀리 산과 바다를 건너 중국으로 건너 왔다고 한다. 보리달마의 출신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으며 건너온 경로에 대해서도 분명하지는 않지만 서역을 경유했을 가능성이 높다.

달마의 가르침은 이입사행(二入四行)으로 총괄되는 것으로 즉 이입(二入)과 사행(四行)으로 구별되는 행입(行入)이다.

먼저 이(理)에 들어가는 이입(理入)이란 마음을 편안히 하는 실천으로서 그것은 경전의 취지를 깨달아서 중생의 동일한 진성(眞性)을 깊이 믿고 벽관(壁觀)에 확고히 머물러서 차별, 상대의 입장을 떠나 진리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다음에 행에 들어가는 행입(行入)에는 보원행, 수연행, 무소구행, 칭법행의 네 가지가 있다.

 

보원행(報寃行)이란 어떠한 괴로움이 닥쳐도 그것을 자기의 악업의 결과라고 생각하여 달게 받아 들이며, 어떠한 경우에도 아무 소득도 없는 죄라고 호소하지 않는 것이다.

 

수연행(隨緣行)이란 고락, 득실은 모두 연에 의한 것이라고 관하여 마음이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스스로 도에 따르는 실천이다.

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만유는 공이며, 현실의 세계는 편안함이 없다는 것을 깨달아서 아무 것도 구하거나 원하지 않는 실천이다.

 

칭법행(稱法行)이란 본래 청정한 진리에 들어맞는 실천을 말하며, 직접적으로는 더러움이나 망상을 제거하기 위해서 공관(空觀)에 입각해서 행해지는 육바라밀을 말한다.

 

이상에서 보리달마의 선은 명확히 공관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또한 구체적, 현실적이라는 것, 그리고 벽관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보리달마의 선은 혜가(慧可)에게로 전승되었다. 혜가는 6년간 달마에게 배우고 일승을 깊이 연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의 선사상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으며, 다만 확실한 것은 그에게서부터 능가종(楞伽宗)이 발전하였다는 것이다.

 

능가종은 <능가경>을 소의로 연구하며 그 정신을 추구하였는데 <속고승전>에는 달마가 이것을 혜가에게 전하고, 혜가가 처음으로 그 요지를 체득한 것으로 이후의 계보에 기재되어 있다.

후세의 전등설에 따르면 선종의 제3조는 승찬(僧璨)이다. 승찬의 사적은 현재 거의 알 수 없으며 <속고승전>에 혜가문하의 한 사람으로 ‘찬선사’라고 기재되어 있는 것이 바로 그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일설에는 사공산에 숨어서 좌선에 전념하고 12년간 그를 섬긴 도신에게 법을 전했다고 하지만 이것도 정확한 것은 아니다.

제4조 도신(道信)의 사적에 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12살이 지나자 서주 완공산에 들어가 두 스님에게서 10여년간 선을 배웠으며 601년 경에 출가하여 길주사에 머물렀다. 그 후 형산으로 향하는 도중 주위의 만류로 노산의 대림사에 10년간 머물렀으며 초대를 받아 쌍봉산에 들어가 문도 500명 이상의 대교단을 형성하였다. 저서에 <보살계본>, <입도안심요방편법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존하지 않는다. 도신의 사상적 입장은 명백하지 않다. 그러나 <능가사자기> 등에 의하면 그가 천태 지의와 마찬가지로 <문수설반야경>의 일행삼매(一行三昧)를 중시하고 그것을 통해서 불성을 자각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도신의 선은 문하의 홍인(弘忍)에게 계승된다. 그는 황매현 출신으로 7세 때 도신에게 사사하고 마침내 그 법을 이었다. 수행시 낮에는 노역에 종사하고 밤에는 열심히 좌선했다고 한다. 황매현의 동쪽에 거주하면서 열심히 선을 알렸으므로 그의 선법을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동산법문의 사상적 내용을 분명히 알기는 어렵다.

홍인 이후 선종은 크게 북종(北宗)과 남종(南宗)의 두 파로 나뉜다.

 

이 가운데 처음에 우세했던 것은 북종선으로 숭산, 장안을 중심으로 북지(北地)에 널리 전해진 선계통이며 그 대표적 인물은 신수(神秀)이다.

신수는 젊어서 노장, 유학에 정통하고 652년 낙양의 천궁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50세 가까이 되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6년간 사사했다. 홍인의 법을 이은 후 의봉(儀鳳)년간에 형주 옥천사의 승적에 속하여 그 근처에서 도문사를 열었으며 그의 주변에는 많은 수행자가 모였다고 한다.

701년에 측천무후의 부름을 받아 가마를 타고 어전에 들어갔으며 그 때 그는 가신(家臣)의 예를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양경(兩京)의 주주(注主), 삼제(三帝)의 국사라고 불리운다.

저서에 <관심론> 1권, <화엄경소> 30권, <묘리원성관> 등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는 후대의 서적 인용 가운데서 그 일부를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신수 다음 대까지는 보적(普寂)이나 의복(義福) 등의 활약으로 북종선이 융성했지만 그 후로는 점차로 쇠약해져서 주류의 자리를 완전히 남종선에게 양보하게 된다.

남종선의 시조는 혜능(慧能)이다. 혜능의 선조는 대대로 범양에 살았지만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하여 신주(新州)민이 되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남해로 이주했으며 집이 가난하여 땔나무를 팔아서 어머니와의 생활을 꾸려나갔다고 한다.

이윽고 어느 날 마을의 손님 한 사람이 숙사로 돌아가 <금강경>을 독송하는 것을 듣고 깨달은 바가 있어 홍인의 문하에 들어갔으며 8개월간 방아지기로 생활하면서 법을 이었다. 이 때 혜능의 나이 24세 때의 일이라고 전한다.

그 후 676년에 <열반경>의 학자로서 이름난 인종(印宗)에게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이후 소주의 조계 보림사에 거주하면서 많은 선자를 키우고 선풍을 날렸다.

 

남종선은 도생(道生)에 의해서 시작되는 돈오(頓悟)사상의 전통 위에 서서 본래 자기의 청정성, 완전성의 철저한 자각을 지향하고 있다.

혜능의 문하 가운데서 남종선의 정통성을 가장 강하게 주장하고 또한 그 입장을 분명히 한 이가 신회(神會)이다. 신회는 양양 출신으로 오경, 노장을 배운 후 출가하여 혜능의 만년에 그 평판을 듣고 문하가 되어 수년간 배웠다. 720년 칙명에 의해서 남양의 용흥사에 머물고 732년에는 융성을 자랑하는 북종에 대해서 종론(宗論)에 도전했다. 745년 경에는 낙양의 하택사에 들어가 크게 남종선을 선양했으나 753년 북종의 입장에 선 관리에 의해서 유배되어 불우한 나날을 보냈다. 그러나 2년 후 안록산의 반란을 계기로 다시 낙양에 초대되어 국가정책의 협력을 통해서 양경(兩京)의 부흥에 공헌하고 숙종으로부터 뜨거운 환대를 받았다. 신회의 만년은 그 자체가 북종의 몰락과 남종의 흥기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혜능의 선을 계승한 것 가운데서 점차로 발전해간 것은 홍주종(洪州宗) 남악 회양(懷讓), 마조 도일(道一)의 계통이다.

 

그 주된 이유의 하나는 마조 도일 선사상의 혁신을 이룩하고 선을 중국에 토착화시켰기 때문이다. 도일은 한주 출신으로 속성은 마씨이다. 어려서 홍인의 법을 이운 지선의 제자인 처적(處寂)에게 배우고 구족계를 받았다.

 

이윽고 남악 회양의 문하에 들어가 심인(心印)을 전해 받은 후 강서의 임천, 홍주 등에서 크게 선을 알렸다.

 

본격적인 선의 융성은 강서(江西)의 마조와 혜능의 문하의 청원 행사(行思)의 법을 호남(湖南)의 석두(石頭)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마조의 선은 80여 명의 제자들에 의해서 장안을 위시하여 각지로 전파되었는데 그 가운데서 특히 백장 회해(懷海)가 유명하다.

백장 회해는 선종 사상사에서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크게 공헌하였다.

 

첫째는 당시까지 대부분 율사에 속해 있던 선원을 독립시키고 대소승의 계율을 집약, 절충해서 교단의 규칙을 정한 것이다. 이것은 선종의 사회적 독립의 기초가 확고해진 것을 의미함과 동시에 마조의 선이 자유로운 생활의 절대긍정에 빠질 위험에서 구제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는 마조의 정신을 토대로 당시 이미 어느 정도 일상화되어 있던 승려의 노동을 명확히 긍정하여 ‘하루 노동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라는 사상을 확립한 것이다. 이것은 물론 직접적으로는 선종사원의 경제적 자립을 지지하는 사상적 기반이 되었지만 동시에 출가자의 생산노동, 경제행위를 엄격히 부정하는 불교의 전통적인 노동관을 뒤엎는 것이기도 했다. 이는 중국불교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당말의 회창의 폐불사건 이미 쇠퇴하고 있던 불교계를 사정없이 습격하였다. 그 때 파괴된 사원이 약 4만5천이며 환속된 승려는 26만여명에 달한다고 한다. 사원을 의지처로 했던 불교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의 멸망의 위기에 빠져들었지만 오직 선종만은 그렇지 않았다.

 

선종은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단숨에 상승기류를 타고 당말에서 오대에 걸쳐 눈부신 오가(五家)의 선시대를 출현시킨다.

오가(五家)란 선풍의 상위함에 따라 붙여진 이름으로서 위앙종, 임제종(臨齊宗), 조동종(曹洞宗), 운문종(雲門宗), 법안종(法眼宗)을 말한다. 여기서 다시금 송대에 임제종에서 분리된 황룡(黃龍), 양기(楊崎)의 2종을 합쳐서 오가칠종(五家七宗)이라고 한다. 이 오가칠종은 어느 것이다.

혜능의 남종선에 근거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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