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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거사(龐居士)의 선시(禪詩)

수선님 2024. 4. 7. 13:13

방거사(龐居士)의 선시(禪詩)

 

지 안 (志安)

 

日用事無別 일상(日常)의 일 별거 없고

일용사무별

唯吾自偶諧 오직 내 스스로 짝하여 함께할 뿐이네

유오자우해

頭頭非取捨 이것저것 취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두두비취사

處處勿張乖 어디서나 어긋나지 않으리

처처물장괴

朱紫誰爲號 붉다 푸르다 누가 이름 붙였는가

주자수위호

丘山絶點埃 언덕과 산에 티끌 한 점 없도다

구산절점애

神通幷妙用 신통과 묘용이여

신통병묘용

運水及般柴 물 긷고 땔감 나르는 것이라네

운수급반시

 

방거사는 중국 선불교에서 거사로서 최고봉을 차지했던 인물이다. 그는 많은 선화(禪話)를 남겨 가히 전설적인 인물이 되었다. 본래 이름은 방온(龐蘊: ?~808)으로 유학자의 집에 태어난 부호였다고 한다. 그가 불교에 귀의한 계기는 석두희천(石頭希遷:700~790) 선사를 만나고부터다. 자주 석두 선사를 찾아가 법을 묻고 하던 거사가 어느 날 또 석두 선사를 찾아갔더니 선사가 “그대는 나를 만난 이후로 일상(日常)이 어떠한가?” 하고 물었다. 이에 거사가 “일상적인 일에 대하여 물으신다면 저는 말할 도리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위의 게송을 지어 바쳤다고 한다. 『전등록』 <방온전>에 나와 있는 이야기다. 선사는 또 “그대는 스님이 되겠는가 재가 거사로 있겠는가?”하고 말하자 거사는 “스님이 하라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자 선사가 거사로써 공부하라 하여 평생을 거사로 공부했다 한다.

 

거사는 당대의 거봉인 대 선사들을 여러분 만났다. 한번은 마조도일(馬祖道一: 709~788) 선사를 찾아가 물었다.

“만법으로 더불어 짝하지 않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그러자 마조가 말하기를 “그대가 서강(西江)의 물을 한입에 다 마셔버리면 말해 주겠네.”

이 문답 끝에 선의 종지를 깨달아 마조 문하에서 2년을 지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때 지은 급제귀(及第歸) 송(頌)이 유명하다.

 

十方同聚會 시방으로부터 와 모여

시방동취회

箇箇學無爲 저마다 무위를 배우네

개개학무위

此是選佛場 여기가 부처를 뽑는 과거장이니

차시선불장

心空及第歸 마음이 비워지면 급제해 돌아가리

심공급제귀

 

또 ‘명명백초두(明明百草頭) 명명조사의(明明祖師意)’ 라는 유명한 언구(言句)를 남겨 선가(禪家)에 널리 회자(膾炙) 되도록 했다. 백초(百草)란 온갖 풀이란 뜻으로 번뇌 망상이 일어난 것을 비유한 말이고, 바로 그 속에 조사(祖師)의 뜻이 숨어 있다는 말이다. 명백한 번뇌 그 속에 바로 명백한 조사의 뜻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 뒤로 다시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선사를 만나 아주 절친한 벗이 되어 평생을 가까이하였다. 그 외에도 약산유엄(藥山惟儼), 대매법상(大梅法常) 등 여러 선사들과 교유하며 지냈다.

 

만년에는 모든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 처자식과 함께 녹문산(鹿門山)에 들어가 산비탈에 밭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살았다. 부인과 아들, 딸, 네 식구가 도를 통한 도인 가족이었다 한다. 특히 딸 영조(靈照)는 선기(禪機)가 민첩하여 아버지와 함께 공안을 만들어 남기는 등 여러 가지 일화를 남기고 있다.

 

어느 날 방거사가 입멸(入滅)에 들려고 생각하여 방에 있다 밖에 있는 딸에게 해가 중천에 와 정오가 되면 알려 달라고 하였다. 영조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해가 중천에 떴으나 일식을 하고 있다고 하였다. 거사가 문밖으로 나가 해를 쳐다보고 있는 사이에 딸이 재빠르게 방안에 들어와 아버지가 앉았던 좌복에 앉아 합장을 한 채 좌탈(坐脫:앉아서 죽음)을 해버렸다. 잠시 후에 방에 들어온 거사가 딸의 좌탈한 모습을 보고 웃으며 )우리 딸이 재빠르게 선수를 쳐 나보다 먼저 갔구나!“ 하였다. 그리하여 거사는 입멸을 일주일 늦추었다 한다.

 

마침 친구인 절도사였던 우적(于頔)이 찾아왔다. 이야기를 나누다 거사는 우적에게 마지막 법문을 해 주었는데 그게 곧 임종게(臨終偈)가 되었다.

 

但願空諸所有 다만 모든 현상이 공하기를 바랄지언정

단원공제소유

愼勿實諸所無 삼가 없는 것을 실체가 있는 것이라 여기지 말라

신물실제소무

好住世間 한 세상 잘 사시오

호주세간

皆如影響 모두가 그림자와 메아리와 같다오

개여영향

 

이 임종게를 남기고 거사는 친구의 무릎을 베고 세상을 떠났다.

 

인도의 유마거사(維摩居士), 우리나라의 부설거사(浮雪居士), 중국의 방거사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거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유마거사는 『유마경』이 나오면서 경전 속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인물이지만 실제 인물이 아닌 가상의 인물로 보는 것이 지배적이다. 우리 나라 부설거사 역시 <부설전>이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로 실제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는 설이 제기 되었다. 그러나 방거사는 우적이 엮은 <방거사어록>이 남아 있고, 여러 선사들과 만나 주고 받은 대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방거사(龐居士)의 선시(禪詩)

                                                                                                        방거사(龐居士)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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