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함월해원(涵月海源) 대사

수선님 2024. 4. 7. 13:14

"몸은 흰 구름과 더불어 미혹의 세계에 왔는데 마음은 밝은 달을 따라 어느 곳으로 향하는가, 살아오고 죽어 감이 구름과 달과 같은데 구름은 스스로 흩어지고 달은 스스로 밝네." 열반에 들기 전 임종게를 쓴 함월해원(涵月海源, 1691~1770) 대사는 평생을 부처의 몸과 마음으로 살다 간 분이다. 스님은 병자를 보면 옷을 벗어 덮어 주고, 누가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간곡히 극락왕생을 빌고, 아무리 비싼 물건도 누가 좋다고 하면 그에게 주고, 주린 이를 보면 자기가 먹을 것까지 몽땅 주는 성품 때문에 모두들 부처의 마음을 지닌 스님이라고 불렀다.

법명은 해원(海源), 자는 천경(天鏡), 호는 함월(涵月)인 스님은 환성지안의 법을 이은 제자이다. 전주 이씨로서 함경남도 함흥 출신으로 어머니가 바다에서 큰 물고기를 잡는 꿈을 꾸고 잉태하여 1691년(숙종 17) 1월 23일에 태어났다. 3세 때 어머니를 잃고 어려서 출가하기를 원했으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자 14세에 몰래 문주(文州, 오늘날 함경남도 문천) 도창사(道昌寺)에서 석단(釋丹) 스님에게 머리를 깍고 출가하여 능허영지(凌虛英智) 대사에게 구족계를 받으면서 스님이 되었다.

그 뒤 북으로 영암(靈巖), 학곡(鶴谷), 월화(月華), 남으로 낙암(洛巖), 남악(南岳), 회암(晦庵) 스님을 비롯하여 두루 전국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스님 스스로를 용광로에서 쇠를 연마하듯 탁마를 하며 수행을 하였다. 스님의 행장에 "1717년 가을에 남쪽으로 내려가 1722년 봄에 북으로 올라오고 다시 1741년 가을에 남쪽으로 내려가 1758년 봄에 북쪽으로 올라왔다." 고 했으니 남북으로 오가며 교화를 하였다.

스님은 경(經)·율(律)·논(論) 삼장에 해박했으며, 특히 화엄경과 선문염송(禪門拈頌)에 밝았다. 뒷날 환성지안 스님을 6년간 섬기며 삼장의 가르침을 배워 화엄사상과 선종의 깊은 뜻을 알았다. 환성지안 스님의 법맥을 이은 뒤에도 40년을 한결같이 정진하면서 대강사로서 후학들을 지도했다. 통도사 백련암에서 백련대회를 개최하고 서문을 썼던 스님의 행장을 차례로 살펴 본다.

■ 석가의 가르침, 경(經),율(律),논(論)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세상에 전하는데 그 자료가 되는 세 가지가 곧 경(經),율(律),논(論) 이라고 하는데, 경은 한 두 가지가 아니라 많이 있어서 이것을 경장(經藏)이라하고 율과 논도 마찬가지로 율장(律藏),논장(論藏)이라고 한다. 이 세가지를 합쳐서 삼장(三藏)이라고 하는데 경,율,논에 정통한 스님을 삼장법사라고 하는 것이다.

경(經)이란 글자는 '끈'이란 자로서 글자 그대로 가는 끈이란 것으로 인도 말로는 수다라라고 한다. 이런 글자를 쓴 이유는 옛날 인도에서는 여자가 머리를 꾸미는데 지금처럼 조화가 없어 꽃으로 장식했는데 그 꽃을 끈으로 묶어서 머리에 장식을 하였다. 이와 같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하나로 묶어서 마치 꽃을 끈으로 묶듯 부처님께서 설하신 것을 후세에 전한 것을 경이라 하는 것이다.

다음은 율(律)이란, 불교란 이론이 아니라 실행이므로 생활의 기거(사람의 살아가는 동작)동작에 그 가르침을 나타내야 하는데 그것이 율인 것이다. 율이란 규율, 규칙으로서 일상생활의 규칙을 말한다.

그리고 논(論)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후세의 사람이 경과 율을 설명한 것이다. 그리고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뒤, 한국과 일본에도 전해져 각 나라말로 학자들이 설명했는데 인도에서 된 것을 논(論)이라하고 편의상 구분하기 위하여 중국, 한국, 일본에서 학자가 쓴 것은 석(釋)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경, 율, 논, 석의 네 가지가 들어있는 것을 일체경(一切經) 또는 대장경(大藏經)이라 하기도 한다.

■ 선문염송(禪門拈頌)

선문염송이란 고려후기 승려 혜심이 선종의 화두 1,125칙에 염과 찬송을 붙인 불교서이다. 저자는 문인 진훈(眞訓)과 함께 선문공안 1,125칙(則)을 불경 또는 조사(祖師)의 어록에서 발췌한 다음 그에 대한 강령의 요지를 제시한 염(拈)과 찬송을 붙여 이 책을 완성하였다. 내용은 제1권에는 석가모니불에 대한 30가지 화제를 수록하였고, 제2권에는 석가모니 직계제자들의 화제 41개를 수록하였다. 제3권에는 여러 불경에 실린 화제와 조사에 대한 화제 32개를 수록하였고, 제4권에는 제6조 혜능(慧能)부터 혜충국사(慧忠國師)까지의 화제 33개를 수록하였다. 제5권부터는 중국 선종의 오종칠가(五宗七家)의 고승들이 남긴 법문 가운데 화제가 될 만한 것들을 모으고, 그 화제 밑에 염·송·법어 등을 채집하여 수록하였다. 이 책은 일찍부터 우리나라 선문의 기본학습서로 채택되어 선종의 승려들은 반드시 이를 공부하였고, 선종선(禪宗選)에서도 이 책에 대한 공부는 반드시 점검하도록 되어 있었다. 초간본은 남아 있지 않으며, 몽고의 전란으로 초판이 불탄 뒤 1244년(고종 31)에 대장도감(大藏都監)남해분사(南海分司)에서 개판하였다. 그런데 이 때 새로이 347칙을 더하여 1,472칙을 수록하였다고 한다. 그 뒤 조선시대에도 여러 차례 개판되어 현재는 1568년(선조 1)의 법흥산 법흥사(法興寺) 간행본과 1634년(인조 12)의 수청산 용복사판(龍腹寺板), 1636년의 천봉산 대원사(大原寺) 개판본, 1682년의 대원사 간행본, 1707년(숙종 33)의 팔영산 능가사판(楞伽寺板) 등이 있다. 이 책에 대한 우리나라 고승의 주석서로는 각운(覺雲)의 『선문염송설화(禪門拈頌說話)』 30권, 일연(一然)의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 유일(有一)의 『선문염송간병(禪門拈頌看柄)』 1권, 의첨(義沾)의 『선문염송기』 1권, 긍선(亘璇)의 『선문염송사기』 5권 등이 저술되었다.

선문염송(禪門拈頌).선문염송이란 고려후기 승려 해심이 선종의 학두 1,125칙에 염과 찬송을 붙인 불교서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문염송(禪門拈頌).선문염송이란 고려후기 승려 해심이 선종의 학두 1,125칙에 염과 찬송을 붙인 불교서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선문염송(禪門拈頌).선문염송이란 고려후기 승려 해심이 선종의 학두 1,125칙에 염과 찬송을 붙인 불교서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천경집(天鏡集)

함월해원 스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1년(순조 21)에 함경남도 안변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에서 간행한 시문집이다. 권수 3권 1책으로 된 천경집은 국립중앙도서관과 동국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권두에는 학성부백(鶴城府伯)이 쓴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문인 성안(聖岸)이 지은 함월해원스님의 행장과 오상현(吳尙顯)의 발문, 황경원(黃景源)의 진찬(眞贊), 제자 지탁(知濯)의 발문이 있다. 권수제 아래 문인 취운성안(翠雲聖岸) 편록(編錄), 문손 덕암 영재(德巖瀛齋) 관각(管刻), 문손 뇌묵 등린(雷?等麟) 교정(校正)의 편자와 권3 끝에 각공질(刻工秩)에 도편수(都片手) 문변(文卞) 등이 기록되어 있다. 상권에는 총 217수의 시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시의 대부분은 선사·강사·학승·납자(衲子) 및 사회의 저명인사와 주고받은 것이고, 나머지는 서회(敍懷)·자연을 읊은 것으로, 세련되고 품위 있는 시문학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권에는 석왕사 법당 중수 및 6대보살 금상조성기·설봉산 심적암광흥루창건기(深寂庵廣興樓創建記)·괴음정기(槐陰亭記)·의해능엄중수기(義海楞嚴重修記)·원각경소초중편록재서(圓覺經疏?重編錄梓序)·중각금강경소기서(重刻金剛經疏記序)·중간기신론필삭기서(重刊起信論筆削記序)·선문오종강요서(禪門五宗綱要序)·간도서법집과해서(刊都序法集科解序)·능엄의해초집서(楞嚴義海抄集序)·제환성선사문(祭喚醒先師文) 등 20여 편에 달하는 경전과 소·초 등의 편집 및 간행에 관한 서문이 수록되어 있다. 하권에는 고원군 구룡산 대승암 사적을 비롯하여 환성화상행장(喚醒和尙行狀)·이선경위록(二禪涇渭錄)·석왕사사적후발·위모생일재소(爲母生日齋疏)·독옥추경표백(讀玉樞經表白)·양산통도사백련대회서(梁山通度寺白蓮大會序), 기타 상량문(上樑文)과 권선문 등 수십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천경집은 사찰사료와 불교전적 간행에 관한 것으로서 사료적인 가치가 크다.

身興白雲來幻界 心隨明月向何方 生來死去惟雲月 雲自散兮月自明

"몸은 흰 구름과 더불어 미혹의 세계에 왔는데 마음은 밝은 달을 따라 어느 곳으로 향하는가, 살아오고 죽어 감이 구름과 달과 같은데 구름은 스스로 흩어지고 달은 스스로 밝네."

1770년(영조 46) 12월 13일, 붓을 들어 위와 같은 임종게를 남긴 함월해원 스님은 하루를 보내고 내일 다시 일어 날듯 한 모습으로 열반에 들었다. 입적할 때 비바람이 불고 한 쌍의 무지개가 나타났다고 한다. 세상 나이 80세, 승려 나이 65세였다. 석왕사에 사리탑을 세우고 대흥사에 비를 세웠다. 대흥사 13대 종사 가운데 한 분으로 모시고 있다.

함월해원스님의 저서인 천경짐. 스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1년(순조21)에 함경남도 안변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에서 간행한 신문집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함월해원스님의 저서인 천경짐. 스님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821년(순조21)에 함경남도 안변 설봉산 석왕사(釋王寺)에서 간행한 신문집이다./한국학중앙연구원

대방광불화엄경 권1~8(大方廣佛華嚴經 卷一~八), 조선전기 대방광불화엄경 권1~8까지 완질본으로 목판본을 이어 두루마리 형식이다. 부분적으로 얼룩이 있으나 비교적 양호한 편이며, 한 줄의 테두리 선이 있다.

 

 

 

 

 

 

 

함월해원(涵月海源) 대사

몸은 흰 구름과 더불어 미혹의 세계에 왔는데 마음은 밝은 달을 따라 어느 곳으로 향하는가, 살아오고 죽어 감이 구름과 달과 같은데 구름은 스스로 흩어지고 달은 스스로 밝네. 열반에 들기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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