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조동록

수선님 2024. 6. 2. 11:20

동 산 록

(오가어록)

1. 행 록

스님의 휘(휘)는 양개(양개)이며, 회계(회계) 유씨(유씨) 자손이다.

어린 나이에 스승을 따라 「반야심경(반야심경)」을 외우다가 ‘무안이비설신의(무안이비설신의)...’라는 대목에서 홀연히 얼굴을 만지며 스승에게 물었다.

“저에게는 눈.귀.코.혀 등이 있는데, 무엇 때문에 「반야심경」에선 ‘없다’고 하였습니까?”

그 스승은 깜짝 놀라 기이하게 여기며, “나는 그대의 스승이 아니다”라고 하더니 즉시 오설산(오설산)으로 가서 묵선사에게 머리를 깎으라고 가르쳐 주었다. 21세에 숭산(숭산)에 가서 구족계(구족계)를 받고 사방으로 유람하면서 먼저 남전(남천: 748~834)스님을 배알하였다. 마침 마조(마조: 709~788)스님의 제삿날이어서 재(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남전스님이 대중에게 물었다.

“내일 마조스님의 재를 지내는데 스님이 오실는지 모르겠구나.”

대중이 모두 대꾸가 없자 스님이 나서서 대꾸하였다.

“도반을 기대하신다면 오실 것입니다.”

“이 사람이 후배이긴 하지만 꽤 가르쳐 볼 만하군.”

“스님께서는 양민을 짓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음으로는 위산(위산: 771~853)스님을 참례하고 물었다.

“지난번 소문을 들으니 남양 혜충국사(남양혜충국사: ?~775)께선 무정(무정)도 설법을 한다는 말씀을 하셨더군요.

저는 그 깊은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위산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그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가?”

“기억합니다.”

“그럼 우선 한 가지만 이야기해 보게.”

그리하여 스님은 이야기를 소개하게 되었다.

“어떤 스님이 묻기를,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라고

하였더니 국사가 대답하였습니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다.’

‘담벼락과 기와 부스러기는 무정(무정)이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런데도 설법을 할 줄 안다는 말입니까?’

‘활활 타는 불꽃처럼 쉴 틈없이 설법한다.’

‘그렇다면 저는 어째서 듣지를 못합니까?’

‘그대 스스로 듣지 못할 뿐이니 그것을 듣는 자들에게 방해되어

서는 안된다.’

‘어떤 사람이 듣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든 성인들이 듣는다.’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나는 듣지 못하지.’

‘스님께서도 듣질 못하였는데 어떻게 무정이 설법할 줄 안다고 하시는지요.’

‘내가 듣지 못해서이지. 내가 듣는다면 모든 성인과 같아져서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그렇다면 중생에게는 들을 자격이 없겠군요.’

‘나는 중생을 위해서 설법을 하지 성인을 위해서 설법하진 않는다.’

‘중생들이 들은 뒤엔 어떻게 됩니까?’

‘그렇다면 중생이 아니지.’

‘무정이 설법한다고 하셨는데 어떤 경전에 근거하셨는지요?’

‘분명하지. 경전에 근거하지 않은 말은 수행자가 논할 바가 아니다. 보지도 못하였는가. 「화엄경」에서 <세계가 말을 하고 중생이 말을 하며 삼세 일체가 설법한다>고 했던 것을.’“

스님이 이야기를 끝내자 위산스님은 말하였다.

“여기 내게도 있긴 하네만,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 뿐이다.”

“저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위산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면서 말하였다.

“알겠느냐?”

“모르겠습니다.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부모가 낳아주신 이 입으로는 끝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지 못한다.“

“스님과 함께 도를 흠모하던 분이 있습니까?”

“여기서 풍릉(풍릉) 유현(유현)으로 가면 석실(석실)이 죽 이어져 있는데 운암도인(운암도인)이란 분이 있다. 풀섶을 헤치고 바람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드시 그대에게 소중한 분이 될걸세.”

“어떤 분이신지 좀 가르쳐 주십시오.”

“그가 한번은 내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제가 스님을 받들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하기에 이렇게 대꾸하였네.

‘당장에라도 번뇌(번뇌)를 끊기만 하면 되지.’

‘그래도 스님의 종지에 어긋나지 않을는지요?’

‘무엇보다도 내가 여기 있다고 말하지 말라.’“

스님은 드디어 위산스님을 하직하고 곧장 운암스님에게 가서 앞의 이야기를 다 하고서 바로 물었다.

“무정(무정)의 설법을 어떤 사람이 듣는지요?”

“무정이 듣지.”

“스님께서도 듣는지요?”

“내가 듣는다면 그대가 나의 설법을 듣지 못한다.”

“저는 무엇 때문에 듣질 못합니까?”

운암스님이 불자를 일으켜 세우더니 말하였다.

“듣느냐?”

“듣지 못합니다.”

“내가 하는 설법도 듣질 못하는데 하물며 무정의 설법을 어찌 듣겠느냐.”

“무정의 설법은 어느 경전의 가르침에 해당하는지요?”

“보지도 못하였는가. 「아미타경(아미타경)」에서, ‘물과 새와 나무숲이 모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한다’라고 했던 말을.”

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게송을 지었다.

정말 신통하구나 정말 신통해

무정의 설법은 불가사의하다네

귀로 들으면 끝내 알기 어렵고

눈으로 들어야만 알 수 있으니.

야대기야대기 무정설법부사의

약장이청종난회 안처문성방득지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남은 습기(습기)가 아직 다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대는 이제껏 무얼 해왔는냐?”

“불법(성체)이라 해도 닦질 않았습니다.”

“그래도 기쁨을 맛보았느냐?”

“기쁨이 없지는 않습니다. 마치 쓰레기더미에서 한 알의 명주(명주)를 얻은 것 같습니다.”

스님이 운암스님에게 물었다.

“서로 보고 싶을 땐 어찌해야 합니까?“

“심부름하는 사람에게 안부를 묻도록 하게.”

“보고 묻는 중입니다.”

“그래, 그대에게 무어라고 하더냐.”

운암스님이 짚신을 만드는데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서 말하였다.

“스님의 눈동자를 좀 주실 수 있겠습니까?”

“누구에게 주려느냐?”

“제게 없어서입니다.”

“설사 있게 된다 해도 어디다 붙이겠느냐?”

스님이 말이 없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눈동자를 구걸하는 것이 눈이더냐?”

“눈은 아닙니다.”

운암스님은 별안간 악(갈)! 하고는 나가버렸다.

스님이 운암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스님과 이별하긴 합니다만 갈 곳을 정하진 못했습니다.”

“호남으로 가지 않느냐?”

“아닙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겠느냐?”

“아닙니다.”

“조만간에 되돌아오게.”

“스님이 안주처가 있게 되면 오겠습니다.”

“여기서 일단 헤어지고 나면 만나기 어려울걸세.”

“만나지 않기가 어려울 겁니다.”

떠나는 차에 다시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홀연히 어떤 사람이 스님의 참모습을 찾는다면 어떻게 대꾸할까요?”

운암스님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

“그저 이것뿐이라네.”

스님이 잠자코 있자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양개화상! 이 깨치는 일은 정말로 자세하게 살펴야 한다.”

스님은 그때까지도 의심을 하다가 그 뒤 물을 건너면서 그림자를 보고 앞의 종지를 크게 깨닫고는 게송을 지었다.

남에게서 찾는 일 절대 조심할지니

자기와는 점점 더 아득해질 뿐이다.

내 이제 홀로 가나니

가는 곳마다 그 분을 뵈오리

그는 지금 바로 나이나

나는 지금 그가 아니라네

모름지기 이렇게 알아야만

여여(여여)에 계합하리라.

절기종타멱 초초여아□

아금독자왕 처처득봉거

거금정시아 아금불시거

응수임마회 방득계여여

뒷날 운암스님의 초상화에 공양 올리던 차에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승께선 ‘이것뿐이다’라고 하셨다던데 바로 이것입니까?”

“그렇다.”

“그 뜻이 무엇인지요?”

“당시엔 나도 스승의 의도를 잘못 알 뻔하였다.”

“운암스님께서는 알고 있었습니까?”

“몰랐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줄 알았겠으며, 알고 있었다면 어찌 이처럼 말하려 하였겠나.”

장경 혜릉(장경 혜릉: 854~932)스님은 말하였다.

“이미 알았다면 무엇 때문에 이처럼 말했으랴.”

다시 말하였다.

“자식을 길러보아야만 부모 사랑을 알게 된다.”

스님이 운암스님의 제삿날에 재(재)를 올리는데 마침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운암스님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는지요?”

“거기 있긴 했으나 가르침을 받진 못했다.”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무엇하러 재를 올리십니까?”

“어떻게 감히 운암스님을 등지겠는가?”

“스님께선 처음에 남전스님을 뵈었는데 어째서 운암스님에게 재를 올려주십니까?”

“나는 스님의 불법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나에게 법을 설명해주지 않은 점을 중히 여길 뿐이다.”

“스님께서는 스승을 위해 재를 올릴 때, 스승을 긍정하십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하지 않는다.”

“어째서 완전히 긍정하지 않으십니까?”

“완전히 긍정한다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스님은 당(당) 대중(대중: 8468~859) 말년부터 신풍산(신풍산)에서 후학을 가르쳤고, 그 뒤 예장(예장) 고안(고안)의 동산(동산)에서 성대히 교화를 폈다. 방편으로 5위(오위)를 열어 3근(삼근)을 훌륭하게 이끌었으며, 일음(일음)을 크게 천양하여 만품(만품)을 널리 교화하였다. 지혜보검을 쑥 뽑아 빽빽한 견해 숲을 가지 쳤으며, 조화로운 음성을 널리 펴서 여러 갈래 천착을 끊어주셨다.

다시 조산(조산)스님을 만나 정확한 종지를 깊이 밝히고 훌륭한 법을 오묘하게 폈으니, 도를 군신(군신)의 비유로 회합하였고 편위(편위)와 정위(정위)를 아울러 쓰셨다.

이로부터 동산의 현묘한 가풍이 천하에 퍼지게 되었으므로 제방의 종장(종장)들이 모두 추존(추존)하여 ‘조동종(조동종)’이라 하였던 것이다.

2. 감변 . 시

1.

운암스님이 시중(시중)하였다.

“어떤 집 아이는 물었다 하면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없다.”

스님이 나오더니 질문하였다.

“그의 집에는 상당한 경론들이 있겠군요.”

“한 글자도 없다.”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습니까?”

“밤낮으로 잠을 자지 않는다.”

“한 가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말을 하면 도리어 말 하지 않는 것이 된다.”

원주(원주)가 석실(석실)*에 갔다오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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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실(석실) : 담주(담주) 유현(유현)에는 석실(석실)이 있어 은자들이 살곤 하였 다.

“석실로 들어가더니 어찌 그리 빨리 돌아오느냐?”

원주가 대꾸가 없자 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차지한 사람이 있어서입니다.”

운암스님은 말하였다.

“그대는 다시 가서 무엇 하겠느냐?”

스님이 말하였다.

“인정을 끊어서는 안됩니다.”

운암스님이 한 비구니에게 물었다.

“그대의 아버지는 살아계시는가?”

“계십니다.”

“연세가 얼마나 되셨는가?”

“팔십입니다.”

“그대에게는 나이 팔십이 아닌 아버지가 있는데 알겠느냐?”

“아마도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닐런지요.”

“오히려 손자뻘이지.”

스님(동산)이 말하였다.

“이렇게 찾아온 자가 아니라 해도 손자뻘이지.”

2.

스님이 제방을 돌아다니다가 노조(노조: 마조도일의 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였다. 절하고 일어나 곁에 섰다가 이내 나와서 다시 들어가자 노조스님이 말하였다.

“이럴 뿐이며, 이럴 뿐이니, 그러므로 이러하다.”

스님이 말하였다.

“그래도 전혀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걸요.”

“어떻게 해야만 그대에게 인정받을 수 있겠느냐?”

그러자 스님은 절하고 여러 달을 시봉(시봉)하였다.

한 스님이 노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말 없는 말’입니까?”

“그대의 입은 어디 있느냐?”

“입이 없습니다.”

“무얼 가지고 밥을 먹지?”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그는 배가 고프지 않은데 무슨 밥을 먹겠습니까?”

3.

스님이 남원(남원: 마조도일의 법을 이음)스님을 참례하고 법당에 올라갔더니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전에 만났던 사람이군.”

스님은 바로 내려가버렸다. 다음날 다시 올라가 물었다.

“어제 벌써 스님의 자비를 입었습니다만 언제 저와 만났었는지를 모르겠읍니다.”

“마음 마음이 쉴 틈없이 성품바다로 흘러들어간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습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남원스님이 말하였다.

“불법을 많이 배워 널리 이익되게 하라.”

“불법을 많이 배우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어떤 것이 널리 이익을 짓는 것입니까?”

“무엇 하나도 어기지 말라.”

4.

스님이 서울에 도착하여 흥평(흥평: 마조도일의 법을 이음)스님에게 절하였더니 흥평스님이 말하였다.

“늙고 썩은 몸에 절하지 말라.”

“저는 늙거나 썩지 않은 것에다 절하였습니다. ”

“늙고 썩지 않은 자는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것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스님이 되물었다.

“무엇이 옛 부처의 마음입니까?”

“바로 그대 마음이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저는 의심이 듭니다.”

“그렇다면 목각인형에게나 물어보게.”

“저에게 한마디 말이 있는데, 모든 부처님의 입을 빌리지 않습니다.”

“어디 말해보게.”

“제가 아닙니다.”

스님이 하직을 하자 흥평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흐름을 따라 정처없이 가렵니다.”

“법신(법신)이 흐름을 따르느냐, 보신(보신)이 흐름을 따르느냐?”

“결코 그런 식으로 이해하진 않습니다.”

그러자 흥평스님은 손뼉을 쳤다.

보복 종전(보복종전: ?~928)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일가(일가)를 이루었다.”

그리고는 달리 말하였다.

“몇 사람이나 찾을까.”

5.

스님이 밀사백(밀사백: 신산승밀의 존칭)과 함께 백암(백암)스님을 참례하였더니 스님이 물었다.

“어디에서 오는가?”

“호남에서 옵니다.”

“그곳 관찰사(관찰사)의 성은 무엇이던가?”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어라 하던가?”

“이름도 모릅니다.”

“그래도 정사(정사)는 보던가?“

“그에게는 낭막(낭막: 부하관료)이 있습니다.

“출입도 하던가?”

“출입은 하지 않습니다.“

“왜 출입하질 않지?”

스님은 소매를 털고 바로 나와버렸다.

백암스님은 다음날 아침 큰방에 들어가 두 스님을 부르더니 말하였다.

“어제 그대들을 상대한 문답이 서로 계합하지 못하여 하룻밤 내내 불안했다. 지금 그대들에게 다시 한 마디 청하네. 만일 내 뜻과 맞는다면 바로 죽을 끓여 먹으며 도반이 되어 여름을 지내겠네.”

“스님께서는 질문을 하십시오.”

“왜 출입을 하지 않는가?”

“너무 귀한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암스님은 이에 죽을 끓여 먹으며 함께 여름 한철을 지냈다.

천동 함걸(천동함걸: 1118~1186)스님은 말하였다.

“명암이 투합하여 팔면이 영롱하여 그 자리를 범하지 않고 몸 돌릴 길 있으니 조동(조동) 문하에서는 구경거리가 되겠으나, 가령 임제스님의 아손이었더라면 방 망이가 부러진다 해도 놓아주지 않았으리라. 당시에 그가 ‘성을 모른다’고 했을 때 등허리에 한 방을 날려 여기에서 부딪쳐 몸을 바꿔 깨쳤더라면 죽을 끓여 맞 이했을 뿐 아니라 높은 스님을 모시는 밝을 창문 아래 모셨으리라. 알겠느냐, 알 겠어!”

“악! 칠통(칠통)아, 법당에 가서 참례하거라.”

6.

스님이 밀사백과 함께 용산(용산: 마조도일의 법을 이음)스님을 찾아가 문

안을 드렸더니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산에는 길이 없는데 그대들은 어디로 왔느냐?”

“길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스님께선 어디로부터 들어 오셨는지요?”

“나는 운수(운수) 따라 오지 않았다.”

“스님께서 이 산에 머무신 지는 얼마나 되었는지요?”

“세월은 신경쓰지 않는다.”

“스님께서 먼저 계셨습니까, 이 산이 먼저 있었습니까?”

“모르겠다.”

“어째서 모르십니까?”

“나는 인간. 천상으로부터 오지 않았기 때문이지.”

“스님께선 어떤 도리를 얻으셨기에 이 산에 안주하십니까?”

“나는 진흙소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지금껏 소식이 없다.”

스님은 비로소 몸가짐을 가다듬고 절하였다.

7.

스님이 행각할 때 마침 한 관리가 말하였다.

“삼조(삼조:승찬)스님의 「신심명(신심명)」에 제가 주석을 낼까 합니다.”

스님이 말하였다.

“잠깐이라도 시비를 일으키면 어지러이 본 마음을 잃으리라고 「신심명」에서 말하였는데 어찌 주를 내려 하느냐.”

법안 문익(법안문익: 885~95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주를 내지 않겠습니다.”

8.

스님이 과거에 행각할 때 길에서 물을 걸머진 한 노파를 만났었다. 스님이 마실 물을 찾았더니 그 노파가 말하였다.

“물을 마시는 것은 무방합니다만 제게 질문이 하나 있으니 먼저 질문을 해야겠습니다.”

“말해 보십시오.”

“이 물에 티끌이 얼마나 있습니까?”

“티끌이 없습니다.”

노파는 말하였다.

“내가 걸머진 물을 더럽히지 말고 가십시오.”

9.

스님이 늑담(륵담)에 있으면서 초수좌(초수좌)가 하는 말을 들었다.

“정말 신통하다. 정말 신통해. 불가사의하도다. 부처님 세계여, 도의 시계여!“

그러자 스님은 질문하였다.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는 묻지 않겠소.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말하는 자는 어떤 사람인가?”

초수좌는 한참 말이 없더니 대꾸를 못하였다.

스님이 물었다.

“무엇 때문에 빨리 말하지 않느냐?”

“언쟁해서는 안됩니다.”

“하라는 말도 못하면서 무슨 언쟁은 안된다고 하는가.”

초수좌가 대꾸가 없자 스님이 말하였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모두가 언어이니, 교(교)를 인용해 보지 않겠는가?”

“교에서 무슨 말을 하였습니까?”

“뜻(의)을 체득하고서는 말을 잊는다 하였네.”

“그래도 교의(교의)를 가지고 마음에서 병을 만들고 있군요.”

“부처의 세계와 도의 세계를 설명하는 병은 어느 정도이더냐?”

초수좌는 또 대꾸가 없더니 다음날 혼연히 죽어버렸다. 그리하여 스님은 당시 ‘질문으로 수좌를 죽인 양개(양개)’라고 불리웠다.

10.

스님이 신산 밀사백(신산밀사백)과 물을 건너게 되었을 때 물었다.

“어떻게 물을 건너야겠습니까?”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야지.”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대는 어떻게 건너려는가?”

“다리가 젖지 않게 건너지요.”

다른 본(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면서 말하였다.

“발을 잘못 딛지 마십시오.”

“잘못 디디면 건너지 못할걸세.”

“잘못 디디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데요?”

“이렇게 큰스님과 함께 물을 건너는 것이지.”

스님이 하루는 신산스님과 함께 차밭에서 김을 매다가 괭이를 던지면서 말하였다.

“저는 오늘 기력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력이 없다면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기력이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고 생각하였군요.”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가다가 홀연히 흰 토끼가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신산스님이 말하였다.

“잘 생겼군.”

“어떤데요?”

“서민이 재상에게 절이라도 하는 것 같군.”

“아이고, 무슨 말씀을.”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대대로 벼슬을 하다가 잠시 권세를 잃은 것 같습니다.”

신산스님이 바늘을 들고 있는데 스님이 말하였다.

“무얼 하십니까?”

“바느질을 한다네.”

 

“바느질하는 일은 어찌해야 합니까?”

“땀땀이 서로 같아야 하네.”

“20년을 같이 다녔는데도 이런 말씀을 하시다니요. 어찌 이렇게 공부하십니까?”

“그대라면 어찌 하겠는가?”

“땅에서 불이 일어나는 듯한 도리입니다.”

신산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지식(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치고 해보지 않은 것이 없네.

그러니 ‘곧장 끊는 경지(경재처)’에 대해서는 스님이 한 마디 해 주시게.“

“사형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하려 하십니까?”

신산스님은 여기에서 단박 깨닫고 일상과는 다른 응대를 하였다.

그 뒤 함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데 스님이 먼저 건넌 뒤 외나무다리를 들고서 말하였다.

“건너 오십시오.”

신산스님이 “양개화상!” 하고 부르자 스님은 외나무다리를 놓아주었다.

스님이 신산스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길가의 절을 가리키면서 말하였다.

“이 안에 심성(심성)을 설하는 자가 있답니다.”

신산스님은 말하였다.

“누굴까?”

“사형께 질문 한 번 받고 완전히 죽어버렸습니다.”

“마음을 설명하고 성품을 설하는 사람이라니 누구지?”

“죽음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11.

스님이 설봉 의존(설봉의존: 822~908)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천태산(천태산)에서 옵니다.”

“지자(지자)스님을 뵈었느냐?”

“제가 무쇠방망이 맞을 짓을 했습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문안을 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문 안에 들어오면 무슨 말이 있어야지. 들어왔다고만 해서야 되겠느냐?”

“저는 입이 없습니다.”

“입 없는 것은 우선 그만두고 나에게 눈을 돌려다오.”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 도응(운거도응: ?~902)스님은 앞의 말에 달리 말하였다.

“입 생긴 뒤에 말씀드리겠으니 기다리십시오.”

장경 혜룡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렇다면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설봉스님이 땔감을 운반하던 차에 스님의 면전에 한 단을 던지자 스님이 말하였다.

“무게가 얼마나 되던가?”

“온누리 사람이 들어도 들지 못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기까지 던졌는가?”

설봉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부채 위에 불(불)자를 쓰자 운암스님이 보고 거기다 불(불)자를 썼

다. 스님이 다시 아닐 비(비)자를 붙였더니 설봉스님이 보고는 한꺼번에 지워버렸다.

흥화 존장(흥화존장: 830~888)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내가 너만 못하다.”

백양 순(백양순)스님은 말하였다.

“내가 동산스님이었다면 설봉스님에게 ‘너는 나의 권속이 아니다’라고 말했으 리라.”

천발 원(천발원)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과 운안스님은 평지에다 공연히 무더기를 일으켰으며, 설봉스님은 이 일로 지혜가 자라났다.”

설봉스님이 공양주(반두)가 되어 쌀을 이는데 스님이 물었다.

“모래를 일어 쌀을 걸러내느냐, 쌀을 일어 모래를 걸러내느냐?”

“모래와 쌀, 양쪽 다 걸러냅니다.”

“대중은 무엇을 먹으라고.”

설봉스님이 드디어 쌀 항아리를 엎어버리자 스님이 말하였다.

“그대의 인연을 보건대 덕산(덕산)에 있어야만 하겠군.”

낭야 혜각(낭야혜각)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의 이런 행동은 달콤한 복숭아나무를 던져버리고 산을 찾아 신 오얏 을 따는 격이다.”

 

천동 정각(천동정각: 1091~1157)스님은 말하였다.

“설봉스님은 걸음마다 높이 오를 줄만 알았고 짚신 뒤꿈치가 끊기는 줄은 몰랐 다. 만일 정(정)과 편(편)이 제대로 구르고 박자와 곡조가 동시에 진행되었다면 자 연히 말과 기상이 서로 합하고 부자(부자)가 투합했으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이 설봉스님을 긍정하지 않은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만 리에 구름 없으나 하늘에 티끌 있고

푸른 연못 거울 같으나 달이 오기 어렵네.“

설두 종(설두종)스님은 말하였다.

“곧은 나무에 난봉(난봉)이 깃들지 않는데

“금침(금침)은 이미 원앙을 수놓았네

만일 신풍(신풍)의 노인이 아니었다면

바로 빙소와해를 당했으리.“

스님이 하루는 설봉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고 왔느냐?”

“물통(조)을 찍어서 만들고 왔습니다.”

“몇 개의 도끼로 찍어서 완성하였느냐?”

“하나로 찍어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그것은 이쪽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그대로 손 볼 곳이 없군요.”

“그래도 이쪽의 일인걸. 저쪽 일은 어떠한가?”

설봉스님은 그만두었다.

분양 선소(분양선소: 947~1024)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저라면 벌써 궁색해졌을텐데요.”

설봉스님이 하직하자 스님은 말하였다.

“어디로 가려느냐?”

“영중(영중)으로 돌아가렵니다.”

“올 때는 어느 길로 왔었지?”

“비원령(비원령)을 따라 왔습니다.”

“지금은 어느 길을 따라 되돌아가려는가?”

“비원령을 따라 가렵니다.”

“비원령을 따라 가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대도 아는가?”

“모르겠는데요.”

“어째서 모르는가?”

“그에게 면목이 없기 때문이지요.”

“그대가 모른다면 어떻게 면목이 없는 줄 아는가?”

설봉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마음이 덩벙대는 자는 망한다.”

12.

운거 도응(운거도응: ?~902)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취미(취미)스님에게서 옵니다.”

“그는 어떤 법문으로 제자들을 가르치더냐?”

“취미스님이 나한(나한)에게 공양을 하기에 저는 물었습니다. ‘나한에게 공양을 하면 나한이 온답니까?’ 하니, 스님은 ‘그대가 매일 먹는 것은 그럼 무었이더냐?’하였습니다.

스님은 말하였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더냐?”

“그렇습니다.”

“대선지식을 헛되게 참례하지 않고 왔구나.”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이냐?”

“도응입니다.”

“향상(향상) 자리에서 다시 말해보라.”

“향상에서 도응이라 이름하지 못합니다.”

“내가 도오(도오)스님께 대답했던 말과 똑같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화상아! 그대가 뒷날 띠풀집을 짓고 제자들을 맞이할 때 홀연히 누가 질문하면 어떻게 대꾸하려느냐.?

“제가 잘못했습니다.”

스님이 하루는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내가 들으니 사대화상(사대화상)이 왜국(왜국)에 태어나 국왕이 되었다던데 정말 그런가?”

“만일 사대(사대)스님이 맞다면, 부처라 해도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님은 그렇다고 긍정하였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그 산은 머물만 하더냐?”

“머물만 하질 못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도성 안이 모조리 그대에게 점령되겠군.”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자네는 들어갈 길을 얻었군.”

“길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겠는가.”

‘길이 있다면 스님과 사이에 산이 막히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스님이 말하였다.

“이 사람은 뒷날 천 사람 만 사람이 붙들어도 머물지 않으리라.”

스님이 운거스님과 물을 건너던 차에 물었다.

“물이 얼마나 깊은가?”

“젖지 않을 정도입니다.”

“덜렁대는 사람이군.”

“스님께서 말씀해 보십시오.”

“마르지 않을 정도라네.”

오조 법연(오조법연: ?~1104)스님은 말하였다.

“두 사람의 이 대화에 우열이 있느냐? 산승은 오늘 팔을 휘젖고 가면서 여러 분을 위해 설파하겠다.

물을 건넘에 ‘젖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창고에 진주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격이며, 물을 건넘에 ‘마르지 않는다’고 한 구절은 꽂을 송곳조차 없는데 무슨 가 난과 추위를 말하겠는가.*마른길, 젖은 길 양쪽 다 관계치 말고 그저 녹수청산(녹 수청산)에 맡기게.“

운거스님이 하루는 일을 하다가 잘못하여 지렁이를 잘라 죽였더니 스님이 “적(적)!”하고 호통을 쳤다.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죽지 않았습니다.”

“이조(이조)는 업주(업주)로 갔다는데 어떠냐?”

운거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대천제인(대천제인: 부처될 종자가 없는 중생)은 5역죄(오역죄)를 지었는데 효도고 봉양이고가 어디 있겠느냐.”

“비로소 효도하고 봉양하게 되었군요.”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말하였다.

“과거에 남전(남천)스님이 「미륵하생경(미륵하생경)」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묻기를, ‘미륵은 언제 하생(하생)합니까?’했더니, 그는 ‘현재 도솔천궁에 계시어 미래세에 하생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은 ‘천상에도 미륵은 없고, 지하에도 미륵은 없다’라고 말하였다.”

운거스님은 이 문제를 가지고 다시 질문하였다.

“천상에도 미륵이 없고 지하에도 미륵이 없다니 그렇다면 누가 그에게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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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엄 지한스님이 대나무에 기왓쪽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 깨치고는 송(송)을 지었 는데, 위산스님이 듣고 앙산스님에게 ‘향엄이 확철대오했구나’하셨다. 앙산스님 은 향엄스님의 경계를 확인코자 다른 게송을 지어보라고 하자 향엄스님이 다음 의 게송을 지었다. ‘지난해 가난은 가난이 아니고/금년의 가난은 송곳마저 없구 나.’ 앙산스님은 ‘여래선은 사제가 알았다고 인정하겠네만 조사선은 꿈에서도 보 지 못하고 있군’하였다.

름을 지어 주었단 말입니까?”

스님이 질문을 받자 선상이 진동하는 듯하였다. 그리하여 말하였다.

“도옹화상! 내가 운암스님에게 있으면서 그분께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화로가 진동하듯 하였다. 오늘 그대에게 한 번 질문을 받으니 온몸에 땀이 흐르는구나.”

그 뒤에 운거스님이 삼봉(삼봉)에 암자를 지었다. 열흘이 지나도 큰 방에 오지 않자 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요즈음 어째서 공양(제)에 오질 않는가?”

“매일같이 천신(천신)이 음식을 보내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대가 그럴 만한 사람이라 여겼는데, 오히려 이런 견해를 짓고 있다니 그대는 느지막하게 찾아오게.”

운거스님이 느지막하게 찾아오자 스님이 불렀다.

“도응 암주(도응암주)!”

“네.”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하였는데, 이것이 무엇일까?”

운거스님이 암자로 되돌아가 고요하게 편안히 앉아 있었더니, 이로부터 천신이 찾아도 끝내 보이질 않았다. 이렇게 사흘 지나고서야 끊겼다.

스님이 운거스님에게 물었다.

“무얼 하느냐?”

“장(장)을 담금니다.”

“소금은 얼마나 넣느냐?”

“저으면서 넣습니다.”

“어떤 맛을 만들지?”

“딱 되었습니다.”

13.

소산(소산)스님이 찾아왔는데 마침 조참(조참) 때여서 나오더니 스님께 물었다.

“언어 이전의 도리를 스님께서 가르쳐 주십시오.”

“아무 것도 긍정하려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응낙하지 않는다.”

“그러면 공력을 들여야 옳습니까?”

“그대는 지금 공력을 들이고 있는가?”

“공력을 들이지 않는다면 꺼릴 것이 없겠지요.”

하루는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마른 나무에서 꽃이 피듯 해야만 그것에 계합하게 되리라.”

소산스님이 물었다.

“무엇에도 어긋나지 않는 경지라면 어떻습니까?”

“화상! 이는 ‘공들여 닦는’쪽의 일이다. 다행히도 ‘공부 없는 공부’가 있는데 그대는 무엇 때문에 묻질 않느냐?”

“공부 없는 공부라면 저쪽 사람 일 아니겠습니까?”

“그대의 이런 질문을 비웃는 사람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더 아득히 멀어지겠습니다.”

“멀기도 하고(초연) 멀지 않기도 하며(비초연) 멀지 않음도 아니다(비불초연).”

“어떤 것이 먼 것입니까?”

“저쪽 사람을 멀다고 하면 안되지.”

“어떤 것이 멀지 않은 것입니까?”

“끝날 곳이 없겠군.”

스님께서 소산스님에게 물으셨다.

“공겁(공겁)엔 사람 사는 집이 없었다 하니 이는 어떤 사람이 안주하는 곳이겠는가?”

“모르겠습니다.”

“그 사람들에게도 생각(의지)이 있겠는가?”

“스님께서도 그들에게 물어보시죠.”

“지금 묻고 있는 중이다.”

“무슨 뜻입니까?”

스님은 대꾸하지 않으셨다.

14.

청림 사건(청림사건: ?~904)스님이 참례하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이제 어디에서 떠나왔는가?”

“무릉(무릉)에서 옵니다.”

“무릉의 법도는 여기와 무엇이 같은가?”

“오랑캐 땅에선 겨울에 죽순을 뽑습니다.”

“다른 시루에 향기로운 밥을 지어 이 사람에게 공양하여라.”

청림스님이 소매를 떨치며 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사람이 뒷날 온 세상 사람들을 밟아 죽일 것이다.”

고산 영(고산영)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대꾸하다간 물 한 방울도 받기 어려운데 무엇 때문에 다른 시루 에 향기로운 밥을 지으라 하는가.”

청림스님이 하루는 스님을 하직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로 가려는가?”

“금륜(금륜)은 표적을 숨기지 않고, 온 세계에 홍진(홍진)이 끊겼습니다.”

“잘 간직(보임)하게.”

청림스님이 조심스럽게 나가는데 스님께서 문에서 전송하시며 말씀하셨다.

“이렇게 떠나는 한 구절을 어떻게 말하겠는가?”

“걸음걸음 홍진을 밟으나 걸음걸음 몸 그림자가 없습니다.”

“스님께선 무엇 때문에 속히 말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어찌 그리 성미가 급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절을 하고 떠났다.

15.

용아(용아: 835~923)스님이 덕산(덕산)스님에게 물었다.

“제가 막야(막야)의 보검을 가지고 스님의 머리를 베려고 할땐 어찌하겠습니까?”

덕산스님이 목을 빼고 다가가며 “와!” 하였더니, 용아스님이 “머리가 떨어

졌습니다.” 하자, 덕산스님은 “하하”하고 크게 웃었다.

용아스님이 그 뒤에 스님에게 와서 앞의 이야기를 거론하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래, 덕산은 뭐라고 하더냐?”

“스님은 말이 없었습니다.”

“말이 없었다고 하지 말고, 우선 덕산의 떨어진 머리를 노승에게 가져와 보아라.”

용아스님은 그제야 깨닫고서 바로 참회하고 인사하였다.

그 뒤에 어떤 사람이 덕산스님에게 말씀드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군. 이 몸이 죽은 지 오래인데 구제해서 무슨 소용이 있으랴.”

보복 종전스님은 염(점)하였다.

“용아스님은 전진할 줄만 알았을 뿐 발을 헛디딘 줄은 몰랐군.”

취암 지(취암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그때 끊었어야 하는데 끊질 않았으니 이제 와서 어떻게 끊으랴.”

 

동선 관(동선관)스님은 말하였다.

“용아스님은 검을 껴안아 몸을 다쳤으니 재앙과 허물을 자초했다 하겠다. 덕산스님은 머리 때문에 주인이 되어 다행히도 계산을 잘 하였으나 홀연히 동산스님에게 자취를 지 적당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꼬리를 들켰다.”

 

용아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동구의 물이 역류하게 되면 그때 가서 그대에게 말해주마.”

용아스님은 비로소 그 뜻을 깨달았다.

16.

화엄 휴정(화엄휴정)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제게는 이치의 길(이로)이 없어 알음알이(정식)의 작동을 면치 못합니다.”

“그대는 이치의 길을 보았느냐?”

“이치의 길이 없음을 봅니다.”

“그렇다면 알음알이는 어디서 생겼느냐?”

“사실 제가 묻고 있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에 학인이 가는 것을 인정하시겠습니까?”

“그리 가기만 하면 되네.”

화엄스님이 땔감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붙들어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비좁은 길에서 서로 만났을 땐 어떻겠는가?”

“엎치락뒤치락하겠지요.”

“그대는 내 말을 기억하라. 남쪽에 머물면 천명이 되겠지만 북쪽에 머물면 300명에 그치리라.”

17.

흠산(흠산)스님이 스님을 찾아 뵙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대자(대자)스님에게서 옵니다.”

“스님을 보았느냐?”

“보았습니다.”

“색(색) 앞에서 보았느냐, 색 뒤에서 보았느냐?”

“앞뒤가 아닌 자리에서 보았습니다.”

스님께서 묵묵히 계시자 흠산스님이 말하였다.

“저는 너무 일찍 스승을 떠나 스승의 뜻을 다 알지 못합니다.”

흠산스님이 암두(암두).설봉(설봉)스님과 앉았을 때 스님께서 차를 돌렸다. 흠산스님이 이때 눈을 감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어디 갔다 왔느냐?”

“선정에 들었다 왔습니다.”

“선정은 본래 문이 없는데 어디로 들어갔느냐?”

노숙(노숙)은 대신 말하였다.

“이런 식으로 이해한 사람이 매우 많다.”

 

설두 중현(설두중현: 980~1052)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당시에 다만 암두스님 설봉스님을 지적하면서 ‘이 졸기나 하는 놈들아, 차나 마 셔라’했어야 했다.”

18.

북원 통(북원통)스님이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주인공에 꽉 눌러앉으면 두번째 견해(제이견)에 떨어지지 않는다.”

북원 통스님이 대중 가운데서 나오더니 말하였다.

 

“누군가는 그것과 짝하지 않는 자가 하나 있음을 아셔야 합니다.”

“그것 역시 두번째 견해(제이견)인걸.”

통스님이 별안간 선상을 번쩍 들어서 엎어벼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찌 생각하는가?”

“저의 혀가 썩어 문드러지면 그때 가서 스님께 말씀드리지요.”

통스님이 그 뒤에 스님을 하직하고 영남(비원령)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해보게. 비원령(비원령)은 험준하니 잘 살펴 가게.”

통스님은 한참 말이 없었다. 스님께서 “통화상!”하고 불렀다.

“네.”

“왜 영남으로 들어가질 않는가?”

통스님은 여기서 깨친 바 있어 영남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19.

도전(도전: ?~894)스님이 스님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벗어나는 요체입니까?”

“그대의 발 밑에서 연기가 나는구나.”

도전스님은 그 자리에서 깨닫고 다시는 다른 곳으로 유람하지 않았다.

운거스님이 이어서 말하였다.

“끝내 ‘발 밑에서 연기가 난다’고 하신 스님의 말씀을 감히 저버리지 않았

군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걸음마다 현묘한 자는 즉시 효과가 나는 법이지.”

20.

스님께서 태수좌(태수좌)와 함께 동짓날 과자를 먹으면서 물었다.

“어떤 것이 있는데 위로는 하늘을 떠받치고 아래로는 땅을 지탱하고 있다. 움직이고 작용하는 가운데서는 다 거두질 못한다. 말해보라. 허물이 어느곳에 있는지를.”

“움직이며 작용하는 가운데 허물이 있습니다. ”

동안 현(동안현)스님이 달리 말씀하셨다.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시자를 불러 과자상을 물리라고 하셨다.

오조 사계(오조사계)스님은 달리 수좌에게 말하였다.

“아침이 오거든 다시 초왕(초왕)에게 헌납해 보아라.”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렇게 판별할 수 있었으랴. 그렇긴 하나

동산스님도 한 수 부족하다.”

위산 철(위산철)스님은 말하였다.

“여러분은 동산스님의 귀결처를 알았느냐? 몰랐다면 더러는 시비득실로 알고 있으리라. 내가 말하겠다. 이 과자는 태수좌만 먹지 못할 뿐만 아니 라, 온누리 사람이 온다 해도 눈 바로 뜨고 엿보질 못하리라.”

운개 본(운개본)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에게 허공을 찢어버릴 쇠몽둥이가 있긴 했으나 깁고 꿰맬 바늘과 실은 없었다. 그가 ‘움직이며 작용하는데 허물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자마자 ‘수좌는 과 자를 먹어라’했어야 했다. 거기서 태수좌가 납승이었다면 먹고 나서 토해야 한다.”

 

남당 정(남당정)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장막 안에서 계획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부를 결판하는 솜씨였고, 태수좌는 온몸이 입이어서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위산 과(위산과)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은 양민을 짓눌러 천민을 만들었고, 태수좌는 이치는 있었으나 펴기가 어려웠다. 나는 길을 가다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치욕을 씻으려고 한다. 당시에 그런 질문을 들었더라면 ‘영산(영산)의 수기(수기)가 이같은 데에 이르진 않았다’ 하고, 대꾸하려는 순간 과자를 면전에 확 집어던졌으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의 숨통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후인들의 망상을 없애주었으리라.”

정자 창(정자창)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이 이렇게 과자상을 물리게는 했으나 요컨데 태수좌의 입은 막지 못했 다.”

21.

스님께서 유상좌(유상좌)가 오는 것을 보시더니 급히 일어나서 선상을 보며 뒤돌아서자 유상좌는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저를 피하시는지요.”

“그대가 나를 못 본 줄 알았네.”

22.

벼를 보는데 낭상좌(낭상좌)가 소를 끌고 지나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를 잘 보도록 하게. 남의 벼를 망칠라.”

“좋은 소라면 남의 벼를 망가뜨리지 않을 겁니다.”

23.

어떤 스님이 수유(수유)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수행이라면 없지는 않지만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

다른 스님 하나가 스님께 이 말씀을 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그가 그때 무엇 때문에 ‘무슨 수행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해주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말씀을 옮기자 수유스님이 말하였다.

“부처의 행이지, 부처의 행.”

그 스님이 돌아와 스님께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말씀하셨다.

“유주(유주)라면 그래도 괜찮을 듯한데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이다.”

동선 제(동선제)스님은 염(점)하였다.

“이 말에도 의심이나 잘못이 있느냐? 있다면 말해보라. 어느 곳이 잘못 되었는지 를. 없다면, 또 ‘가장 괴로운 곳은 신라’라고 하였는데 그것도 점검해 낼 수 있느 냐? 수유스님은 ‘행이라면 없질 않으나 깨달음이 있다 하면 틀린다’하였고, 여기에 동산스님이 거듭 ‘이는 어떤 행인가’하고 되묻게하니 ‘부처의 행’이라 답하였다. 그 스님이 알고 물었는지, 모르고 물었는지를 판단해 보라.”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사문의 수행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머리는 석 자(삼척), 목은 세 치(삼촌)라네.”

스님은 시자더러 이 말을 가지고 삼성 혜연(삼성혜연)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삼성스님은 시자의 손 위를 손톱으로 한 번 찔렀다. 시자가 돌아와 말씀드렸더니 스님은 그것을 인정하셨다.

24.

서울의 미화상(미화상)이 어떤 스님을 시켜 앙산(앙산)스님에게 묻도록 하였다.

“요즘에도 방편을 통한 깨달음(가오)이 있습니까?”

앙산스님이 대답하였다.

“깨달음이라면 없질 않지만 두번째 자리(제이두)에 떨어져 있는데야 어찌하랴.”

다시 미화상은 그 스님더러 스님께 묻도록 하였다.

“저 완전한 깨달음(구경)은 어떠합니까?”

스님께서 대답하셨다.

“도리어 그에게 물어야 하리라.”

25.

진상서(진상서)가 물었다.

“52위 보살 가운데 무엇 때문에 묘각(묘각)이 보이질 않습니까?”

“상서께서 묘각을 직접 보십시오.”

26.

어떤 관리가 물었다.

“수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대가 남자가 되면 그때 가서 수행을 하지.”

27.

스님께서 시중(시중)하였다.

“납자들이여, 늦여름 초가을에 이곳 저곳으로 갈 때 곧장 만리 밖 풀 한 포기 없는 곳으로 가야 하리라.”

한참 잠자코 계시다가 다시 말을 이으셨다.

“만리 밖엔 한 포기 풀도 없는데 어떻게 가랴.”

그 뒤에 누군가 석상(석상)스님에게 이 말씀을 드렸더니 석상스님이 말하였다.

“어째서 문만 나서면 바로 풀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스님께서 듣고는 말씀하셨다.

“이 나라에 이런 이가 몇 명이나 있을까?”

대양 경현(대양경현: 942~1027)스님은 말하였다.

“지금 문을 나서지 않고도 풀이 가득하다고 말하리라. 말해보라. 어느 곳으로 가야겠는가.”

한참 잠자코 있다가 말하였다.

“깎아지른 바위 온갖 푸른 풀을 지키지 말라. 흰구름에 눌러앉으면 종지(종)가 오묘하지 못하리.”

백운 수단(백운수단: 1025~1072)스님은 말하였다.

“암주(암주)를 볼 수 있다면 바로 동산스님을 볼 것이며, 동산 스님을 본다면 암주를 보리라. 동산스님을 보기는 쉬워도 암주를 보기는 어려운데, 그가 주지(주

지)에 얿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지도 못했느냐, ‘구름은 고갯마루에 한가하여 사 무치질 않는데 흐르는 시냇물은 쉴새없이 바쁘다’고 했던 말을.”

위산 과(위산과)스님은 말하였다.

“못과 무쇠를 절단하여 향상(향상)의 현묘한 관문을 활짝 열고 진실된 말씀으로 바로 그 사람의 요로(요로)를 지적한다. 말해보라. 그대는 ‘문을 나서면 바로 풀이 다’고 한 말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석상스님은 그렇게 말했고 상봉(상봉)스님은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면 곤장 30대를 맞으리라.”

경산 종고(경산종고: 1089~1163)스님은 말하였다.

“사자의 젖 한 방울로 노새 젖 열 섬을 물리쳤다.”

 

28.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해야 뵐 수 있겠습니까?”

“같은 연배이니 격의없이 만나면 된다.”

그 스님이 이어서 말하려고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의 자취를 밟지 말고 다른 질문 하나 해보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거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본래 스승을 보지 못합니다.”

그 뒤에 교상좌(교상좌)가 이를 들어 장경(장경)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연배가 다른 것입니까?”

장경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이렇게 말했는데, 교화상! 다시 여기에서 무얼 찾는냐?”

29.

어떤 스님이 물었다.

“추위와 더위가 찾아오면 어떻게 피합니까?”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추울 땐 그대를 춥게 하고 더울 땐 그대를 덥게 하는것이지.”

투자 동(투자동)스님은 말하였다.

“하마터면 그리로 갈 뻔했군.”

 

낭야 혜각스님은 말하였다.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큰 방으로 가라’고 했으리라.

운거 효순(운거효순)스님은 말하였다.

“가엾은 낭야스님은 이렇게 처신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 ‘어디가 추 위와 더위가 없는 곳입니까?’ 한다면 ‘삼동(삼동)엔 따뜻한 불을 쬐고 한더위(구하) 엔 시원한 바람을 쏘이라’했으리라.”

보봉 극문(보봉극문: 1075~1102)스님은 말하였다.

“대중아! 알았다면 신통희유하면서 어느 때라도 추위와 더위를 개의치 않아도 무 방하겠으나, 모른다면 추위와 더위 속에서 겨울과 여름을 보내도록 하라.”

상봉 재(상봉재)스님은 말하였다.

“동산스님의 한 구절은 주인과 손님이 교대로 참례하고 정.편(정.편)이 섭렵해 들 어간다 할 만하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로 피하려느냐. 일 없이 산에 올라 한 바퀴 돌아보노라. 여러분에게 묻노니, 알겠느냐.”

 

 

늑담 문준(륵담문준: 1061~1115)스님은 말하였다.

“다른 사람을 위할 때라면 물이라 해도 따뜻하지만 남을 위하지 않을 땐 불이라 해도 차갑다.”

30.

상당하여 “사은삼유(사은삼유)*를 받지 않을 자가 있느냐?”

하셨는데 대중이 대꾸가 없자 다시 말씀하셨다.

“이 뜻을 체득하지 못한다면 끝없는 근심을 어떻게 벗어나겠느냐? 다만 마음마다 사물에 걸리지 않고 걸음마다 가는 곳 없어 항상 끊어지지 않아야 비로소 상응하리라. 부질없이 날을 보내지 말고 노력하여라.”

31.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산에 갔다 옵니다.”

“꼭대기까지 올라갔었느냐?”

“갔었습니다.”

“그곳에 사람이 있더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정상에 도달하진 못했구나.”

“정상에 도달하지 못했다면 사람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무엇 때문에 거기 머물지 않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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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은삼유(사은삼유) : 주변의 인연과 윤회의 삶.

 

“머무는 것은 사양하지 않습니다만 서천(서천)에 긍정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 원래 그대를 의심했었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입니까?”

“물소 뿔(해계□)같은 것이다.”

33.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킬 때 구해주어야 옳겠습니까, 구해주지 않아야 옳겠습니까?”

“구해준다면 두 눈이 멀어버릴 것이며, 구해주지 않으면 형체도 그림자도 안 보일 것이다.”

34.

위독한 스님 하나가 스님을 뵈려 하기에 스님께서 그에게 갔다.

“스님이시여, 무엇 때문에 중생을 구제하지 않습니까?”

“그대는 어떤 중생이더냐?”

“저는 대천제(대천제)중생입니다.”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가 말하였다.

“사방에서 산이 밀어닥칠 땐 어찌합니까?”

“나는 일전에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갔다 돌아왔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습니까?”

“갔다 오지 않았다.”

“저더러는 어느 곳으로 가라 하시렵니까?”

“좁쌀 삼태기 속으로 가라.”

그 스님이 “허(허)”하고 소리를 한 번 내더니 “안녕히 계십시오”하고 앉은 채로 입적(좌탈)하자 스님은 주장자로 머리를 세번 치면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그렇게 갈 줄만 알았을 뿐 이렇게 올 줄은 몰랐구나.”

소각 근(소각근)스님은 말하였다.

“행각하는 납자라면 누구나 이 한 건의 일을 투철히 해결하려 해야 한다. 이 중 은 이미 대천제 중생으로서 사방에서 산이 밀어 닥칠 때서야 바쁘게 손발을 허둥 댔다. 동산스님이 큰 자비를 가지고 그에게 한 가닥 길을 평평하게 터주지 않았 더라면 어떻게 이처럼 갈 줄 알았으랴. 그러므로 옛 사람은 말하기를, ‘임종할 즈음에 털끝만큼이라도 성인이다 범부다 하는 알음알이가 다하지 않는다면 노새 나 말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면치 못한다’하였던 것이다.”

동산스님이 말한, ‘나도 어떤 집 처마 밑을 지나왔다. 좁쌀 삼태기 안으로 가라’ 했던 경우, 서로 맞서 사산(사산)을 막으면서 사산을 막지 않았다. 이쯤 되어서는 물통의 밑바닥이 쑥 빠져야 하리라. 말해보라. 동산스님 의도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았느냐?

금닭(금계)은 유리 껍질을 쪼아서 부수고, 옥토끼는 푸픈 바다문을 밀쳐 여는구 나.“

35.

야참(야참)에 등불을 켜지 않았는데 한 스님이 나와서 물었다. 물러난 뒤

에 스님은 시자더러 등불을 켜라 하셨다. 그리고는 조금전에 말을 물었던 스님을 불러 나오라 하였다. 그 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나오자 스님은 말씀하셨다.

“밀가루 석 냥(양)을 이 상좌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은 소매를 털고 물러나더니 여기서 깨우친 바가 있었다. 드디어 의

복과 일용품을 다 희사하여 재를 배풀고 3년을 산 뒤에 하직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가게.”

그때에 설봉스님이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이 스님이 하직하고 떠나는데 언제 다시 올까요?”

“그는 한 번 떠날 줄만 알 뿐 다시 올 줄은 모른다네.”

그 스님은 큰방으로 돌아가더니 의발(의발) 아래 앉아서 죽었다. 설봉스님이 올라가 아뢰었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렇긴 하나 나를 따라오려면 3생(삼생)은 더 죽었다 깨나야 할 것이다.”

3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삼조(삼조)스님의 탑(탑)에서 옵니다.”

“이미 조사의 처소에서 왔는데 다시 나를 만나서 무엇 하겠느냐?”

“조사라면 다르겠습니다만 저와 스님은 다르지 않습니다.”

“내 그대의 본래 스승을 보고 싶은데 되겠느냐?”

“스님부터 스스로 나오셔야 될 것입니다.”

“내 조금전에는 여기 있질 않았었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바로 모든 뜻을 알땐 어떻습니까?”

스님은 이에 합장한 손을 이마까지 올렸다.

38.

스님께서 덕산스님의 시자에게 물으셨다.

“어디서 오느냐?”

“덕산에서 왔습니다.”

“찾아와서 무얼 하려는가?”

“스님을 공손히 따르렵니다.”

“세간에서는 무엇이 가장 공손히 따르는 것이냐?”

시자는 대꾸가 없었다.

3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천 사람, 만 사람 가운데 있으면서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고 그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은 말해보라. 이 사람이 어떤 면목을 갖추었는지를.”

운거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저는 법당에 참례하러 갑니다.”

40.

스님께서 어느 땐가 말씀하셨다.

“부처의 향상사(향상사)를 체득해야만 조금이라도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을 할 땐 그대가 듣질 못한다.”

“스님께선 들으시는지요?”

“말하지 않을 때라면 듣는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바르게 질문하고 바르게 답변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묻는다면 스님께선 답변하시겠습니까?”

“물은 적도 없는데.”

42.

한 스님이 물었다.

“방편을 통해 들어가는 것은 보배가 아니다‘하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그만두는 것이 좋겠네.”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세상에 나오시어 몇 사람이나 긍정하셨습니까?”

“긍정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어째서입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44.

스님께서 「유마경(유마경)」을 강의하는 스님에게 물으셨다.

‘지혜(지)로도 알 수 없고 분별(식)로도 알 수 없다’ 하였는데 이것이 무슨 말인가?”

“법신을 찬탄하는 말입니다.”

“법신이라 할때 그 말 자체가 벌써 찬탄한 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는다‘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오조홍인(오조홍인)스님의 의발(의발)을 전수받지 못했습니까?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받아야 마땅합니까?”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다.”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자이기만 하면 의발을 전수받습니까?”

“그렇긴 하나 부득불 주지 않을 수는 없다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저 ‘본래 한 물건도 없다’고 해도 의발을 전수받기에는 합당하질 못하니 그대는 말해보라. 어떤 사람이 합당하겠는지를.

여기에서 딱 깨쳐줄 만한 한 마디(일전어)를 던져보아라. 자, 어떤 말을 해야겠는가.“

그때 한 스님이 96마디를 하였으나 모두 계합하질 못하다가 마지막 한 마디에 비로소 스님의 뜻에 적중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왜 진작 이렇게 말하지 않았더냐?”

또 다른 스님 하나가 몰래 듣다가 마지막 한 마디만을 듣지 못하여 드디어 그 스님에게 설명해주기를 청하였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3년을 쫒아다녔으나 스님은 말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하루는 병이 들어 말하였다.

“나는 3년이나 앞의 이야기를 설명해 달라고 청하였으나 자비를 받지 못

하였다. 선의로 하여 되지 않았으니 악의로 하겠다.”

드디어는 칼을 가지고 협박하였다.

“나를 위하여 설명해 주지 않는다면 그대를 죽이겠다.”

그 스님은 두려워하면서 말하였다.

“우선 기다리게. 내 그대를 위해 설명하겠네.”

이리하여 말하였다.

“설사 가져온다 해도 둘 곳이 없다고 하였다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설두 중현스님은 말하였다.

“그가 이미 받지 않았다면 그를 안목있다 하겠으나 가져오면 반드시 눈 이 멀리라. 조사의 의발을 보았느냐? 여기에서 문에 들어가야 두 손에 그 것을 받을 수 있으니, 대유령(대유령)에서 한 사람이 이끌어도 일어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설사 온 나라 사람이 찾아온다 해도 떠나갔을 것이다.”

취암 지(취암지)스님은 말하였다.

“그의 의발을 얻는데 모두 합당하지 않아야 도리어 옛 부처와 동참하리 라. 말해보라. 동참할 자 누구인가.?

천동 정각스님은 말하였다.

“나 장노(장노)라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 곧장 가져와야지, 가져오지 않는다면 받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랴. 가져온다면 필시 안목이 있다 하겠으나, 받지 않는다면 참으로 눈이 멀었다 하리라. 알겠느냐.

관조(관조)가 다하니 자체는 의지할 바 없어 온 몸이 대도에 합하네.“

영은 악(영은악)스님이 취암의 말을 거량하고 나서 말하였다.

“양자강 도착하니 오(오)나라 땅 다하고

언덕 넘어 월(월)나라는 산이 많구나.“

46.

한 암주는 불안하여 스님네들만 보면 언제나,

 

“구해주게, 구해줘”라고 계속 말을 하였으나 알아듣지 못하였다. 스님께서 그리하여 그를 방문하였더니 암주는 역시 말하였다.

“구해주십시오.”

“어떻게 구해주지?”

“약산(약산)의 법손이 아니면 운암(운암)의 적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소.”

암주는 합장하면서 “선지식이여! 안녕히 가십시오” 하더니 그냥 죽어버렸다.

한 스님이 물었다.

“그 스님은 죽어서 어디로 갑니까?”

“불이 탄 뒤 한 줄기 순나물이라네.”

47.

스님께서 대중운력 시간에 요사채를 순찰하다가 한 스님이 대중운력에 가지 않은 것을 보고는 말씀하셨다.

“그대는 어째서 가지 않았느냐?”

“몸이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평소 건강할 땐 왜 왔다갔다 하였느냐?”

48.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평소에 학인더러 조도(조도)로 다니라 하셨습니다. 어떤 길이 조도인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도 만나질 않는 길이라네.”

“어떻게 가야 합니까?”

“곧장 그 자리에서 사심없이 가야만 하네.”

“조도로 가기만 한다면 바로 본래면목 아닙니까?”

“그대는 무엇 때문에 전도(전도)되느냐?”

“어느 곳이 저의 전도된 곳입니까?”

“전도되지 않았다면 무엇 때문에 종을 낭군으로 오인하느냐?”

“무엇이 본래면목입니까?”

“조도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 뒤에 협산 선회(협산선회: 805~881)스님이 어느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동산에서 옵니다.”

“동산스님은 어떤 법문을 제자들에게 보여주더냐?”

“평소에 학인들더러 3로(삼로)를 배우려고 하였습니다.”

“무엇이 3로라더냐?”

“현로(현로).조도(조도).전수(전수)였습니다.”*

“정말 그런 말씀을 하셨다더냐?”

“실제로 하셨습니다.”

“천리(천리)길을 따라가면

임하(임하)의 도인이 슬퍼한다.“

부산 법원(부산법원: 991~1067)스님은 말하였다.

“지는 낙엽을 보지 않으면

어떻게 가을이 깊었음을 알랴.“

49.

스님께서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향상인(향상인) 부처가 있음을 알아야 말할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상인 부처입니까?”

“부처가 아니다(비불).”

보복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부처라 해도 틀린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방편으로 부처라고 부른다.”

5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어디 갔다 오느냐?”

“신발을 만들고 옵니다.”

“스스로 알았느냐, 남에게 배웠느냐?”

“남에게 배웠습니다.”

“그가 그대에게 가르쳐 주더냐?”

“진실하기만 하면 어긋나지 않습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한 중에서도 가장 현묘함입니까?”

“죽은 사람의 혓바닥 같은 것이다.”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동산은 3로(삼로:조도.현로.전수)라는 격식으로 납자들을 지도했다. 조도는 새가 공 중을 날 때 아무 자취를 남기지 않듯이 유무(유무).단상(단상)등의 자취를 남기지 않는 경계, 현로는 유무.단상 등 상대를 떠난 묘한 경계, 전수는 손을 펴서 중생에 게 나아가는 경계를 뜻한다.

52.

스님께서 발우를 씻다가 까마귀 두 마리가 개구리를 놓고 다투는 것을 보셨다. 한 스님이 문득 여쭈었다.

“어째서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요?”

“너 때문이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부처입니까?”

“벼 줄기. 좁쌀 줄기이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3신(삼신) 가운데 어느 부처님이 여러 테두리(수)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

그 스님이 그 뒤에 조산(조산)스님에게 물었다.

“스승(선사)께서 말씀하시길, ‘나도 이제껏 이 문제에 간절했다’라고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처음부터 없애버려야 한다.”

다시 설봉스님에게 묻자 설봉스님은 주장자로 입을 후려치더니 말하였다.

“나도 동산에 갔다 왔다.”

승천 종(승천종)스님은 말하였다.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일전어)여

바다는 잔잔하고 강물은 맑아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바람은 높고 달은 차가워라

몸을 바꿀 만한 한 마디여

도적의 말을 타고 도적을 쫓는구나

홀연히 납승이 나와서 전혀 아니라고 해도

그가 지혜 눈을 갖추었다 인정하여라.“

묘희(묘희)스님은 말하였다.

“이렇게 어지러운 이야기로는 꿈에서도 3신(삼신)을 보지 못하리라.”

다시 말하였다.

“어째서 명치 끝에 침 한 방을 놓지 않느냐.”

스님 회하의 한 노숙(노숙)이 운암스님에게 갔다가 돌아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운암스님께 가서 무얼 하였습니까?”

“모르겠네.”

대신 말씀하셨다.

“수북이 쌓였구나.”

5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청산과 백운의 아버지입니까?”

“빽빽히 우거지지 않은 자이다.”

“무엇이 백운과 청산의 아이입니까?”

“동서를 분별하지 않는 자이다.”

“백운이 종일 의지한다 함은 무엇입니까?”

“떠나지 못함이다.”

“청산이 아무것도 모른다 함은 무엇입니까?”

“둘러보지 않는 것이다.”

56.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 언덕엔 어떤 풀이 있습니까?”

“싹 트지 않는 풀이 있다.”

57.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세상에서 어떤 중생이 가장 괴롭겠느냐?”

“지옥이 가장 괴롭습니다.”

“그렇지 않다. 여기 가사 입고서 대사(대사)를 밝히지 못한 것을 가장 괴롭다고 한다.”

58.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으셨다.

“이름이 무엇이냐?”

“아무개입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이냐?”

“뵙고 대꾸하는 중입니다.”

“괴롭다, 괴로워. 요즘 사람들은 으례껏 모두 이러하니 나귀가 앞서고 말이 뒤따라가는 줄도(통상사) 모른다 하겠다. ‘자기를 위하려다가 불법이 가라앉는다’ 하더니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객 가운데 주인(빈중주)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주인 가운데 주인(주중주)을 알아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 스스로 말해보라.”

“제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됩니다.

운거스님이 대신 말하기를, ‘내가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아니라 하 겠다’라고 하였다.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이처럼 말하기는 쉽다만 계속하기는 매우 어렵다”하시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아아, 요즈음 도를 배우는 부류들을 보면

누구나가 문 앞만을 알 뿐이니

서울에 들어가 성주(성주)께 조회하려 하면서

동관(동관)에 이르러 그만두는 것과도 같구나.

차견금시학도류 천천만만인문두

흡사입경조성주 기도동관즉변휴

59.

스님께서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도는 무심히 사람에 합하고 사람은 무심히 도에 합한다. 그 뜻을 알고 싶으냐? 하나는 늙고 하나는 늙지 않는다.”

그 뒤에 어떤 스님이 조산(조산)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늙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부추켜 지탱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이 ‘늙지 않는다’고 한 하나입니까?”

“고목(고목)이다.”

그 스님이 다시 소요 충(소요충)스님에게 말하였더니 충스님은 말하였 다.

“3종과 6의(삼종육의)로다.”

60.

오설(오설)스님이 석두(석두)스님 처소에 와서 말하였다.

“한 마디에 서로 계합한다면 머물고 계합하지 못하면 떠나겠습니다.”

석두스님이 기대 앉자 오설스님은 그냥 떠났다. 석두스님은 바로 뒤따라가서 불렀다.

“스님!”

오설스님이 머리를 돌리자 석두스님은 말하였다.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이것일 뿐이다. 깨달아(회두전뇌) 무엇 하겠느냐.”

오설스님은 홀연히 깨닫고 주장자를 꺾어버렸다.

 

스님께서 이 인연을 들어 말씀하셨다.

“당시에 오설선사(선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알아차리기가 매우

어려웠으리라. 그렇긴 하나 아직은 가고 있는 도중이다.”

61.

한 스님이 대자(대자)스님을 하직하자 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느냐?“

“강서로 가렵니다.”

“내 그대에게 한 가지 힘든 일을 시키려는데 괜찮겠느냐?”

“스님께 무슨 일이 있으신지요?”

“나를 데려갈 수 있겠느냐?”

“스님보다 더 나은 자가 있다 해도 데려가지 못합니다.”

그러자 대자스님은 그만두었다.

뒤에 그 스님이 스님(동산)께 말씀드렸더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말해서야 되겠느냐.”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나라면 데려갈 수 있다고 하겠다.”

법안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스님께서 떠난다면 저는 삿갓을 들겠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그 스님에게 물었다.

“대자스님께서는 특별히 무슨 법문을 하시더냐?”

“언젠가는 이런 법문을 하셨습니다. ‘한 길(일장)을 말로 하는 것이 한 치(일촌)를 가져오느니만 못하다.’ ”

“나라면 그렇게 말하진 않겠다.”

“스님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행(행)하지 못할 것을 말해내기도 하며, 말(설)하지 못할 것을 행해내기도 한다.”

62.

약산스님이 운암스님과 함께 산을 유랑하는데 허리에 찬 장도에서 쨍그랑쨍그랑하는 소리가 나자 운암스님이 물었다.

어떤 물건이 소리를 내지?“

약산스님은 칼을 뽑아 별안간 입을 찍는 시늉을 하였다.

스님은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고는 시중(시중)하셨다.

“살펴보라. 저 약산스님이 몸을 던져 이 일 위했던 것을. 요즈음 세상 사람들아. 향산의 일을 밝히고 싶다면 이 뜻을 체득해야만 하리라.”

약산스님은 야참(야참)에 등불을 켜지 않고 법어를 내리셨다.

“나에게 한 구절이 있는데 수소가 새끼를 낳으면 그때 가서 말해주겠다.”

한 스님이 말하였다.

“수소가 새끼를 낳는다 해도 스님께서는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약산스님이, “시자야, 등불을 가져오너라” 하자 그 스님은 몸을 빼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이 중이 도리어 이해하였군. 다만 절을 하려 하지 않았을 뿐이다.”

약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호남에서 옵니다.”

“동정호의 물은 가득 찼더냐?”

“아직은요.”

“그렇게 오랫동안 비가 내렸는데 어째서 아직 차지 않았을까?”

그 스님이 대꾸가 없었다.

도오(도오)스님이 말하였다.

“가득 찼습니다.”

운암스님이 말하였다.

“담담(담담)하다.”

스님은 이 문제를 두고 말씀하셨다.

“어느 세월엔들 늘고 불고 한 적이 있더냐.”

약산스님이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가 점을 칠 줄 안다고 들었는데 그렇느냐?”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내 점 한번 쳐보아라.”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운암스님이 이 문제를 스님께 물었다.

“그대라면 어떻게 하겠소?”

“스님 태어난 달(생월)이 언제지요?”

63.

스님은 5위군신송(오위군신송)을 지어서 말씀하셨다.

 

정중편이여

삼경초야 달은 한창 밝은데

서로 만나 알지 못함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그래도 암암리에 지난날의 미움을 품는구나.

정중편

삼경초야월명전

막괴상봉불상식

은은유회구일혐

편중정이여

눈 어둔 노파 고경을 마주하여

얼굴을 분명히 비춰보니 따로 진실 없도다

다시는 머리를 미혹하여 그림자로 오인하지 말라.

편중정

실효로파봉고경

분명□면별무진

휴경미두유인영

정중래여

‘무’ 속에 티끌세상 벗어날 길이 있으니

지금 성주(성주)의 휘(휘)를 저촉하지 않기만 하면야

그래도 전조에 혀 끊긴 사람보다는 낫겠지.*

정중래

무중유로격진애

단능불촉당금휘

야승전조단설재

겸중지여

두 칼날이 부딪치면 피하지 말라

좋은 솜씨는 마치 불 속의 연꽃같아

완연히 스스로 하늘 찌르는 뜻 있구나.

겸중지

양도교봉불수피

호수유여화이연

완연자유충천지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임간록」 하 pp.109~110 참조.

겸중도여

유무에 떨어지지 않는데 뉘라서 감히 조화를 하랴

사람마다 보통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하나

자재하게 되돌아가 재 속에 앉았네.

겸중도

불락유무수감화

인인진욕출상류

절합환귀탄이좌

64.

스님은 상당하여 말씀하셨다.

“향시(향시)는 어떠하며, 봉시(봉시)는 어떠하며, 공시(공시)는 어떠하며, 공공시(공공시)는 어떠하며, 공공시(공공시)는 어떠하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향(향)입니까?”

스님은 말씀하셨다.

“밥 먹을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봉(봉)입니까?”

“등질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공)입니까?”

“괭이를 놓아버릴 땐 어떠하냐.”

“어떤 것이 공공(공공)입니까?”

“색(색)을 얻지 못한다.”

“어떤 것이 공공(공공)입니까?”

“공(공)이 아니다.”

그리고는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성주(성주)는 원래 요임금(제요)을 본받아

사람을 예의로써 다스리며 임금 허리를 굽히네

어느 땐 시끄러운 시장 앞을 지나며

곳곳 문물(문명)이 성스러운 조정을 축복하네.

성주유래법제요 어인이례곡용요

유시시시두변과 도허문명하성조

깨끗이 씻고 진하게 화장함은 누구를 위함일까

두견새 소리 속엔 사람더러 돌아가라 권하네

백화(백화)는 떨어졌으나 우는 소린 다함 없어

다시 어지러운 산봉우리 깊은 곳에서 우네

정세농장위아수 자규성이권인귀

백화락진제무진 경향란봉심처제

고목(고목)에 꽃이 피니 겁(겁) 밖의 봄이며

옥상(옥상)을 거꾸로 타고 기린을 쫓는다네

지금 천봉(천봉) 밖에 높이 은거하니

달 밝고 바람 맑아 좋은 날이라네.

고목화개겁외춘 도기옥상□기린

이금고은천봉외 월교풍청호일진

중생과 부처가 서로 침해하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은 절로 깊어라

천차만별한 현상은 분명한 일이니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새로워라.

중생제불불상침 산자고혜수자심

만별천차명저사 자고제처백화신

머리에 뿔이 갓 나면 이미 감당하지 못하며

헤아리는 마음으로 부처 구하니 부끄럽기도 하구려

아득한 공겁(공겁)에 아는 사람 없는데

남쪽으로 53선지식(오십삼선지식)에게 물으려 하겠는가.

두각재생이불감 의심구불호수참

소소공겁무인식 긍향남순오십삼

3. 부 촉

1.

조산(조산)스님이 하직하니 이때 스님께서 드디어 부촉하셨다.

“내가 운암선사(선사)에게 있으면서 보경삼매(보경삼매)에 도장찍듯 계합하여 그 요체를 몸소 궁구하였는데, 이제 그대에게 부촉하노라.”

그 말씀(사)은 이러하다.

불조께서 가만히 부촉하신

이러한 법을

네 지금 얻었으니

잘 보호할지어다.

여시지법 불조밀부

여금득지 선선보호

은주발에는 눈이 달렸고

밝은 달은 백로를 숨겼는데

종류는 같질 않으나

뒤섞이면 제자리를 안다.

은□성설 명월장로

류지불제 혼칙지처

뜻은 말에 있질 않으니

찾아오는 기연(기연)에

걸핏하면 소굴을 이루어

빗나가게 떨어져 잘못이네.

의불재언 래기역부

동성□구 차락고저

등지거나 맞닿음 양쪽 다 잘못이니

큰 불덩이 같아서

형색이 나타나기만 하면

바로 물듬(염오)에 속한다.

배촉구비 여대화취

단형문채 즉속염오

한밤중 그대로가 밝음이나

새벽이 드러나질 않았으니

중생을 위해 법칙을 짓고

이로써 모든 고통 뽑아주라.

야반정명 천효불로

위물작칙 용발제고

 

비록 함(유위)이 아니나

말이 없음도 아니니

보경(보경)에 임한 듯

형체와 그림자 서로를 마주본다.

수비유위 불시무어

여임보경 형영상□

너는 그가 아니나

그는 바로 너이니

세상의 어린 아이처럼

다섯 상호 완연히 갖추었다.

여불시거 거정시여

여세영아 오상완구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안주하지도 않는다.

시끄럽게 글 읽는 소리

유구(유구)와 무구(무구)로

끝내 사물을 얻지 못함은

말이 바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거불래 불기불주

파파화화 유구무구

종불득물 어미정고

중리(중리□□) 6효(육효)에

편(편). 정(정)이 번갈아 드니

포개면 3이되고

변화가 다하면 5를 이루나

질초(치초)의 맛같고

금강저(금강저) 같기도 하다.

중리육효 편정회호

첩이위삼 변진성오

여치초미 여금강저

정중(정중)에 오묘하게 끼어

북도 치고 노래도 부른다

산꼭대기 지나고 길바닥도 지나며

지방 따라 길 따라 가는데

어긋나면 길(길)하여

범하거나 거스르지 못한다.

정중묘협 고창쌍거

통종통도 협대협로

착연칙길 불가범오

천진(천진)스런 오묘함은

미오(미오)에 속하지 않는데

인연과 시절은

고요히 밝게 나타난다

미세하기는 틈 없는 데 들어가고

크기는 방향과 처소가 끊겼으니

 

털끝만큼의 차이에도

화음(률려)에 맞지 않는다.

천진이묘 불속미오

인연시절 적연소저

세입무간 대절방소

호홀지차 불응률려

지금 돈점(돈점)이 있어

이 때문에 종취(종취)를 세우니

종취가 나뉨이여

바로 법도(규지)가 되었도다

종취를 완전히 깨쳐

진상(진상)이 끝없이 흐르니

밖은 고요하고 중심은 요동하여

망아지를 매어 쥐를 조복시킨다.

금유돈점 연립종취

종취분의 즉시규□

종통취극 진상류주

외적중요 계구복서

선대의 성인은 이를 불쌍히 여겨

법을 위해 보시하고 제도하였다

중생의 전도됨에 맞추어

검은 것을 희게도 하였으며

전도된 생각이 없어지자

긍정하는 마음 스스로 허락하네.

선성비지 위법단도

수기전도 이뇌위소

전도상멸 긍심자허

옛 법도에 부합하려거든

옛것을 관찰하라

불도가 이미 이루어졌으니

10겁(십겁)동안 나무를 관(관)하라.

요합고철 청관전고

불도수성 십겁관수

호랑이의 결함같고

말 다리의 흰 점과 같아서

하열함이 있기 때문에

보궤(보궤)가 보물이 되며

경이(경이)함이 있기 때문에

이노(리노)가 백고(백고)가 된다.

여호지결 여마지주

이유하열 빈궤진어

이유경이 리노백고

예(예)는 교묘한 힘으로써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아 적중했으나

화살 끝과 칼 끝이 서로 만나면

교묘한 힘인들 어찌 당하랴.

예이교력 사중백보

 

전봉상직 교력하예

 

목인(목인)이 노래하니

석녀(석녀)가 일어나 춤을 춘다

정식(정식)이 도달하지 않는데

어찌 사려를 용납하랴

신하는 임금을 받들고

자식은 아버지에게 순종하는 법이니

순종하지 않으면 효도가 아니며

받들지 않으면 보좌가 아니다.

목인방가 석녀기무

비정식도 녕용사려

신봉어군 자순어부

불순비효 불봉비보

가만히 행동하고 은밀히 작용하여

어리석은 듯 노둔한 듯하라

그렇게 계속할 수만 있다면

주중주(주중주)라 이름하리라.

잠행밀용 여우약노

단능상속 명주중주

2.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말법시대엔 사람에게 마른 지혜(건혜)가 많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실하게 알고자 한다면 세 가지 병통(□누)이 있다. 첫째는 사견(견□누)인데 중

생의 근기가 지위를 떠나지 않고 독바다에 떨어져 있음을 말한다. 두번째는 망정(정□누)인데 향하느냐 등지느냐에 막혀 있어 견처(견처)가 치우치고 메마름을 말한다. 세번째는 망어(어□누)인데 오묘함을 참구하나 종지를 잃어 중생이 본말에 어두움을 말한다.

배우는 이가 탁한 지혜로 유전하여 이 세 가지에서 벗어나지 못하나니 그대는 이를 알아야만 한다.“

3.

또 강요(강요)가 되는 게송 셋을 말했다.

첫째, 북 치면서 노래하는(고창구행)게송.

금침(금침)에 두 바늘귀 갖추고

좁은 길에서 은밀히 모두 다를 꾸렸네

보인(보인)이 바람에 당하여 오묘하니

거듭거듭 비단 재봉선 열렸네.

금침쌍소비 협로은전해

보인당풍묘 중중금봉개

두번째, 쇠로 현로를 막는(금소현로) 게송.

밝음 속에 어둠이 엇바뀌니

노력은 다했으나 더더욱 깨닫기 어려워라

힘이 다하여 진퇴를 잊으니

펼쳐진 그물을 쇠로 막는구나.

교호명중암 공제전각난

력궁망진퇴 금소망만만

세번째, 범성에 떨어지지 않는(불추범성: 또는 이사부섭이라고도 한다) 게송.

사(사)와 이(이)에 모두 끄달리지 않고

돌이켜 관조함에 그윽하고 은미함 끊겼네

바람을 등져 좋은솜씨 나쁜솜씨 없는 터에

번쩍하는 번갯불 쫒아가기 어려워라.

사리구불섭 회조절유미

배풍무교졸 전화찬난추

4.

스님께서 몸이 편칠 못하여 사미(사미)더러 운거스님에게 말을 전하라 하고는 부촉하였다.

“그가 혹 스님께선 편안하시더냐 하고 묻거든 운암의 길이 차례로 끊겼다고만 말하라. 그대는 이 말을 하고서 멀리 서 있어야만 한다. 그가 그대를 후려칠까 두렵구나.”

사미는 뜻(지)을 알아차리고 가서 말을 전하였더니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운거스님에게서 한 방을 맞았다. 그러나 사미는 대꾸가 없었다.

동안 현(동안현)스님은 대신 말하였다.

“그렇다면 운암스님의 한 가지가 떨어지진 않았다 하리라.”

운거 석(운거석)스님은 말하였다.

“상좌야 말해보라. 운암스님의 길이 끊겼는지, 끊기지 않았는지를.”

숭수 조(숭수조)스님은 말하였다.

“옛사람이 후려쳤던 이 한 방망이의 의도는 무엇이냐?”

 

5.

스님께서 열반(원적)하면서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부질없는 이름이 세상에 남게 되었으니 누가 나를 위해서 없애주겠느냐.”

대중 모두 대꾸가 없었는데 그때 사미가 나와서 말하였다.

“스님의 법호를 가르쳐 주십시오.”

“나의 부질없는 이름은 이미 없어졌도다.”

석상스님은 말하였다.

“그에게 인정받은 사람이 없군.”

운거스님은 말하였다.

“부질없는 이름이 남았다면 나의 스승이 아니다.”

조산스님은 말하였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알아낸 사람이 없다.”

 

“소산스님은 말하였다.

“용은 물을 빠져 나올 기틀이 있으나 알아본 사람이 없구나.”

6.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선 몸이 편찮으신데 병들지 않는 자도 있습니까?”

“있지.”

“병들지 않는 자도 스님을 볼까요?”

“나는 그에게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본다.”

“스님께선 어떻게 그를 보는지 가르쳐 주시렵니까?”

“내가 볼 때는 병이 보이질 않는다.”

스님은 이어서 그에게 물으셨다.

“이 가죽 푸대를 떠나 어디서 나와 만나겠느냐?”

그 스님이 대꾸가 없자 스님은 게송으로 법을 보이셨다.

학인은 항하사같이 많으나 하나도 깨달은 이 없으니

혀 끝에서 길을 찾는데 허물이 있다네

형체를 잊고 종적을 없애려느냐

노력하며 은근히 공(공) 속을 걸어라.

학자항사무일오 과재심타설두로

욕득망형민종적 노력단근공이보

4. 천 화

이윽고 머리 깎고 목욕시키고 옷을 입히라 명하고는 종을 울려 대중과 하직하더니, 엄연하게 앉아서 천화(천화)하셨다. 그때 대중들이 울부짖고 통곡하며 한참을 지나도 그치질 않자 스님은 홀연히 눈을 뜨고 대중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인이라면 마음을 사물에 붙이지 않아야만 진실한 수행인이다. 삶을 수고롭게 하고 죽음을 애석히 여기며 슬퍼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랴.”

다시 일을 주관하는 스님에게 우치재(우치재)를 준비하라 하셨다. 대중들이 그래도 연연해 하자 7일간을 연장하였다. 음식과 도구가 갖추어지자 스님은 대중을 따르다가 재가 다하자 이윽고 말씀하셨다.

“절집이 무사하려면 대체로 떠날 때 시끄럽게 요동하지 말아야 한다.”

이윽고 방장실로 돌아가 단정히 앉아서 영영 떠나시니 그날은 함통(함통) 10년 3월이었다. 세수 63세. 법랍은 42세, 시호는 오본선사(오본선사), 탑은 혜각(혜각)이라 이름하였다.

동 산 록

(조당집)

1. 행 록

운암(운암)스님의 법을 이었고, 홍주(홍주) 고안현(고안현)에 살았다. 스님의 휘는 양개(양개), 성은 유(유)씨며 월주(월주) 저기현(제기현)사람이다. 처음에 마을에 있는 절(원, 보리원)의 원주(원주)에게 출가하였는데, 원주는 스님을 감당하지 못했으나 스님은 싫어하거나 꺼리는 마음이 전혀 없이 2년을 지냈다. 원주는 스님의 공손함을 보고 「심경(심경)」을 외우라고 했는데, 하루 이틀도 못가서 환히 외워버렸다. 원주는 그 다음 경을 외우라 하니, 스님이 대답했다.

“이미 외운 심경의 뜻도 아직 모르는데 그 다음 경을 더 배울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껏 줄줄 외워놓고 어째서 모른다 하는가?”

“심경에서 꼭 한 구절을 모르겠습니다.”

“모른다는 구절이 어디인가?”

“눈.귀.코.혀.몸.생각이 모두 없다(무안이비설신의)는 구절을 모르겠으니 스님께서 설명해 주십시오.”

원주는 말이 막혔다. 이로부터 이 법공(법공)이 예삿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원주는 곧 스님을 데리고 오설 영묵(오설 영묵: 747~818)스님에게로

가서 위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말했다.

“이 법공은 나로선 지도하기 어려우니, 스님께서 거두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허락하니, 스님은 그 아래서 허락을 받고 3년을 지도받고 계를 받았다. 그리고는 모든 법을 다 물은 뒤에 사뢰었다.

“저는 행각을 떠나고 싶으니 허락해 주십시오.”

오설스님이 말씀하셨다.

“찾아가서 물으려거든 남전(남천)스님에게 가서 물으라.”

“한 번 떠나면 인연이 다한 것이니 외로운 학은 둥우리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오설스님을 하직하고 남전스님에게로 갔다.

남전 보원(남천보원: 748~834)스님이 귀종(귀종)스님의 재(재)를 올리면서 법어(법어)를 내렸다.

“오늘 귀종스님을 위해 재를 지내는데 귀종스님이 오겠는가?”

아무도 대답이 없자 스님이 나서서 절하고는 “스님, 다시 물어 주십시오” 하여 남전스님이 물으니, “길동무가 있기만 하면 올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남전스님이 뛰어내려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씀하셨다.

“비록 후생(후생)이지만 다듬어봄직하겠다.”

이에 스님이 말씀하셨다.

“양민을 눌러 천민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이로부터 이름이 천하에 퍼져, 선지식(작가)이라 불리우게 되었다.

나중에 운암 담성(운암담성: 782~841)스님에게 가서 현묘한 뜻을 모두 알고는 대중(대중: 847~879)연간이 끝날 무렵에는 신풍산(신풍산)에 가서 선요(선요)를 크게 폈는데, 이때 한 스님이 와서 물었다.

“스님의 본래 스승을 뵙고자 하는데 어찌해야겠습니까?”

“나이가 비슷하니 걸릴 것이 없다.”

 

학인이 다시 의문나는 점을 물으니, 스님이 대답했다.

“앞의 발자취를 거듭 밟지 않겠으니, 다른 질문을 하나 하거라.”

그러자 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저는 스님의 본래 스승을 만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상좌(상좌)를 시켜 장경(장경)스님에게 가서 이 이야기를 들어 묻기를, “어떤 것이 나이가 비슷한 것입니까?” 하라 했더니, 장경스님이 말씀하셨다.

“옛사람이 그렇게 말한 것이 그대에게 여기까지 와서 무엇인가를 묻게 하였더란 말이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남전스님을 뵈었으면서 어째서 운암스님의 제사를 지냅니까?”

“나는 운암스님의 도와 덕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불법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스님이 나에게 설파(설파)해 주지 않은 것을 귀중히 여길 뿐이다.”

“무엇이 비로자나불의 스승이며 법신(법신)의 주인입니까?”

“벼 줄기, 조(율) 줄기다.”

스님이 백안(백안)스님에게 갔을 때 백안스님이 물었다.

“요즘 어디서 떠나왔는가?”

“호남(호남)에서 떠났습니다.”

“관찰사(관찰사)의 성이 무엇이던가?”

“그의 성을 알지 못합니다.”

“이름은 무엇이던가?”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밖에 나온 적이 있는가?”

“나와 본 적이 없습니다.”

“일을 마땅하게 처리하던가?”

“낭막(낭막)이 따로 있습니다.”

“비록 나오지는 않았으나 일은 바로 처리하는구나.”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백안스님은 하룻밤이 지나서야 아직 선당에 들어오지 않았음을 자각하고 물었다.

“어제 그 두스님(두타)은 어디로 갔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저올시다.”

“지난밤, 스님을 상대했으나 밤새도록 불안하였으니 불법이 퍽 어려운 것임을 알겠소. 두타가 여기서 여름을 지내면 나는 두 스님을 모시고 따라야 되겠소.”

그리고 대신 대답하기를 청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너무 존귀하십니다.”

운암스님이 원주가 석실(석실)로 떠나려는 길에 말씀하셨다.

“석실에 들어가거든 그대로 돌아와서는 안된다.”

원주가 대답이 없으므로 스님이 말했다.

“거기엔 벌써 누군가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운암스님이 다시 물었다.

“그대가 간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스님이 대답했다.

“인정을 끊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흡사 물소(해계서)같은 것이다.”

2. 대 기

1.

한 스님이 동산(동산)스님에게 물었다.

“때때로 부지런히 닦으란 말씀이 퍽이나 좋은데 어째서 의발을 얻지 못했습니까?”*

“설사 ‘본래 한 물건도 없다’ 했더라도 의발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의발을 얻겠습니까?”

“문으로 들어오지 않는 이가 얻을 것이다.”

“이 사람이 받겠습니까?”

“받지는 않으나 그에게 주지 않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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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조가 의발을 전수하는 과정에서 신수(신수)상좌는 ‘신시보제수 심여명경대 시시 근불식 막사유진애’라는 게송을 지어 바쳤으나 법을 전수받지 못하고, 노행자가 ‘보제본무수 명경역비대 본래무일물 하처유진애’하는 게송으로 6조가 되었다.

 

2.

한 스님이 물었다.

“뱀이 개구리를 삼키는데 구해줘야 합니까, 구해주지 말아야 합니까?”

“구해주자니 두 눈이 멀겠고, 구해주지 않자니 형상과 그림자가 나타나지 않겠구나.”

3.

운암(운암)스님의 재에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스승(선사)에게서 어떤 가르침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비록 거기에 있었으나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다.”

“받은 것이 없다면 재는 차려서 무엇합니까?”

“가르침을 받은 것은 없으나 스승을 저버릴 수는 없다.”

4.

또 재를 차리는데 물었다.

“스님께서 스승의 재를 차리시니, 스승을 긍정하는 것입니까?”

“반은 긍정하고 반은 긍정치 않는다.”

“어째서 전부를 긍정치 않으십니까?”

“만일 전부를 긍정하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다.”

 

어떤 스님이 이 일을 안국사(안국사)에게 물었다.

“전부를 긍정하면 어째서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안국사가 대답했다.

“금 부스러기가 비록 귀중하나 ‘아들을 아버지라고 할 수는 없다’고 백련(백련)스님이 말씀하셨다.”

한 스님이 이 일을 봉지(봉지)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반만 긍정하는 것입니까?”

봉지스님이 말씀하셨다.

“오늘로부터 향해 들어가되 친히 뵙는 것은 우선 보류해 두게.”

“무엇이 반은 긍정치 않는 것입니까?”

“행여 그대는 긍정하는 것이 아닌가?”

“전부를 긍정하는 것이 어째서 도리어 스승을 저버리는 것이 됩니까?”

“합당한 것을 붙들고 있으면 빠져나갈 길이 없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3신(삼신)중에 어느 부처가 테두리(수)에 떨어지지 않습니까?”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하였다.”

그 스님이 조산(조산: 840~901)스님에게 물었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항상 이 일에 간절했다’ 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조산스님이 대답했다.

“내 머리가 필요하거든 찍어 가거라.”

그 스님이 설봉(설봉: 822~908)스님에게 가서 물으니, 설봉이 주장자로 입을 쥐어박으면서 말씀하셨다.

“나도 동산(동산)에 다녀온 적이 있다.”

6.

어느날 밤에 등불을 켜지 않고 있는데 한 스님이 나서서 설법을 청하거늘 스님이 시자에게 ‘등불을 켜라’하였다. 시자가 등불을 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아까 이야기를 청하던 스님은 나오라.”

그 스님이 나서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밀가루 두서너 홉을 이 스님에게 갖다 주어라.”

그 스님이 소매를 떨치고 나갔는데 그후 이 일로 깨친 바 있어 의발을 받고 한차례 공양을 차렸다. 삼사년을 지나 하직하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잘 가라, 잘 가라.”

이때 설봉스님이 곁에 모시고 있다가 물었다.

“저 납자가 떠났는데 언제 다시 오겠습니까?”

“한 번 갈 줄만 알았지 다시 오는 것은 모른다.”

그 스님이 큰방에 가서 의발을 자리에 풀어놓고, 천화(천화)하였는데 설봉스님이 보고서 알리니,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다고 해도 나보다는 3생쯤 뒤졌다 하리라.”

이에 대해 다른 이야기가 있다. 두 스님이 길동무가 되었는데 한 사람이 병이 나서 열반당(열반당: 절 안에 늙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집)에서 쉬고 한 사람은 간호했다. 어느날 병난 스님이 길동무에게 말하였다.

“내가 떠나려는데 같이 갑시다.”

그러자 간호하던 스님이 대답했다.

“나는 병도 없는데 어째서 같이 가겠소?.”

“아직까지는 동행했다 할 수 없고, 이제부터 같이 가야 비로소 동행입니다.”

“좋소. 그렇다면 내가 스님께 가서 하직을 고하고서 가겠소.”

그리고는 스님께 가서 앞의 일을 자세히 고하니,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모든 것은 그대가 할 일이니, 잘 다녀오라.”

그 스님이 다시 열반당으로 가서 둘이 마주 앉아 온갖 일을 이야기하고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초연히 떠났다.

설봉스님이 이 법회(법석)에서 공양주(반두)를 맡고 있었는데, 그들이 차례

로 떠난 것을 보고 스님께 가서 말했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아까 와서 스님께 하직을 고하고 간 스님 둘이 열반당에서 마주 앉아 죽었습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이 두 사람은 그렇게 갈 줄만 알았고 전해 올 줄은 몰랐다.

내게 비한다면 3생이 뒤졌다 하리라.“

7.

스님께서 어느 때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나에게 헛된 명성이 자자한데 누가 없애 주겠는가?”

어떤 사미가 나서서 말했다.

“스님께서 법호를 하나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스님께서 백퇴(백퇴)를 치면서 말씀하셨다.

“이제 나의 헛된 명성은 사라졌다.”

이에 석상 경제(석상경제: 807~888)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아무도 그를 긍정할 이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가 다시 물었다.

“아직도 헛된 명성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장삼이사(장삼이사)는 남의 일이다.”

운거(운거)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헛된 명성이 있으면 우리 스승이 아니지요.”

조산(조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옛분터 오늘까지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소산 광인(소산광인: 당말오대인, 조동종)스님이 말씀하셨다.

“용은 물에서 나오는 기개가 있건만 사람에게는 알아내는 기능이 없습니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바르게 묻고 바르게 대답하는 것입니까?”

“입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다.”

“혹시 그런 이가 묻는다면 스님께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대가 묻는 것은 물음이 아니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병(병)입니까?”

“깜빡 일어나는 것이 병이다.”

“무엇이 약입니까?”

“계속하지 않는 것이 약이다.”

10.

동산(동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삼조의 탑전에서 옵니다.”

“조사의 곁에서 왔다면서 나는 만나서 무엇하려는가?”

“조사는 학인과 다르지만 스님과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대의 본래 스승을 만나고 싶은데 되겠는가?”

“저의 스승이 나오셔야 합니다.”

“조금 전에 내가 잠시 자리를 비웠었다.”

1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맹세코 일체 중생을 다 제도하고서 내가 성불하리라‘ 하였는데 무슨 뜻입니까?”

“마치 열 사람이 과거에 응시했는데 한 사람이 급제하지 못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치 못하거니와, 한 사람이 급제하면 아홉 사람이 모두 급제하는 것과 같다.”

“스님께서는 급제를 하셨습니까?”

“나는 글을 읽지 않았다.”

1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아무개라 합니다.”

“무엇이 그대의 주인공인가?”

“지금 스님 앞에서 응대하는 바로 이것입니다.”

“애닯어라! 요즘 학인들은 거의가 이렇구나! 그저 당나귀 앞이니 말 뒤니 하면서 자기의 안목을 삼고 있으니 이래서 불법이 침체되지 않을 수 없구나. 객 가운데 주인(객중주)을 가려내랴.”

“무엇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그대가 말해 보라.”

“제가 말하면 객 가운데 주인(객중주)이 됩니다.”

“그렇게 말하기는 쉬우나 계속하기는 퍽이나 어려울 것이다.”

운거(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제가 만일 말한다면 객 가운데 주인이 되지 못합니다.”

13.

스님께서 설봉(설봉)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디로 가려는가?”

“영(영)으로 들어가렵니다.”

“그대는 비원령(비원령)을 지나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올 때에는 어찌하겠는가?”

“역시 그리로 와야 됩니다.”

“누군가 비원령을 거치지 않고 거기에 이르는 이가 있다면 어찌하겠는가?”

“그 사람은 가고 옴이 없습니다.”

“그대는 그 사람을 아는가?”

“모릅니다.”

“알지도 못한다면 어찌 가고 옴이 없는 줄을 아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을 못하니 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저 모르기 때문에, 가고 옴이 없는 것입니다.”

14.

스님께서 언젠가 말씀하셨다.

“부처님의 위로 향하는 일(향상사)을 체득해야 그래도 이야기를 나눌 자격이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말할 자격입니까?”

“이야기를 할 때엔 그대는 듣지 못한다.”

“스님께서는 들으십니까?”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들을 것이다.”

15.

스님께서 어느 때 말씀하셨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만리 밖에 가서 서야 한다.”

한 스님이 이를 석상(석상)스님에게 가서 말하니, 석상스님이 말했다.

“문 밖에 나서면 어디나 풀밭이다.”

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말씀하셨다.

“당(당)나라 안에 그런 이가 몇이나 있을까?”

16.

염관(염관)스님 회상에 어떤 스님은 불법이 있는 줄은 알면서도 소임을 맡아 일하느라 수행을 못한 채 죽음에 이르렀다. 귀신 사자(귀사)가 와서 잡아가려 하니, 그가 말하되, “내가 소임을 보느라고 수행을 못했으니, 7일만 기한을 주시오” 하였다. 사자가 대답하되 “내가 가서 염라대왕께 사뢰어 허락하시면 7일 후에 다시 오고, 허락치 않으시면 곧 되돌아 올 것이다” 하였다. 7일 뒤에 사자가 다시 와서 찾으니 찾을 수 없었다.

스님께서 이 일을 이야기하시니 한 스님이 물었다.

“그가 왔을 때엔 어떻게 대꾸해야 됩니까?”

“벌써 그에게 들켰다.”

17.

한 스님이 조계(조계)에서 왔는데 스님이 물었다.

“육조께서 황매산(황매산)에서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으셨다는데 사실이던가?”

“여덟 달 동안 방아를 찧지 않았을 뿐 아니라 황매산에는 가지도 않았습니다.”

“가지도 않았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불법은 어디서 생겼을까?”

“스님께서는 불법을 남에게 주십니까?”

“얻기는 얻었으나 매우 저돌(저돌)하는 사람이로군.”

그리고는 대신 말했다.

“언제적인들 잃었던 적이 있던가?”

초경(초경)스님이 대신 말했다.

“스님께서는 어디서 받으셨습니까?”

18.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백 가지 대답을 해도 한 물음도 없다’하였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맑은 하늘에 밝은 달이로다.”

다시 물었다.

“지금은 ‘백 가지를 물어도 한 대답도 없다’하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나는구나.”

19.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무슨 도리를 보았기에 이 산에 사십니까?”

“진흙소(니우) 두 마리가 싸우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아직껏 소식이 없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백 천의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보다 닦을 것 없는 사문 한분에게 공양하

는 것이 낫다는데, 백 천 부처님께서는 어떤 허물이 있습니까?”

“허물은 없고, 그저 공덕을 쌓는 편에서 한 말이다.”

“공덕을 쌓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보림(보임)이 있어야 옳은 줄을 모르는구나.”

21.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새의 길(조도)*을 걸으라’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새의 길입니까?”

“한 사람도 만나지 못하는 곳이다.”

“어떤 것이 ‘걷는 것(행)입니까?”

“발 밑에 실오리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어째서 거꾸로 생각하느냐?”

“제가 언제 거꾸로 생각했습니까?”

“거꾸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하인을 상전으로 잘못 아느냐?”

“무엇이 본래 사람입니까?”

“새의 길을 걷지 않는 것이다.”

22.

한 스님이 물었다.

“6국(육국)이 편치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하에게 공이 없다.”

“신하에게 공이 있을 때엔 어떻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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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록」p.73각주 참조

“나라가 평안하다.”

“평안해진 뒤엔 어떻습니까?”

“군신(군신)의 도가 합한다.”

“신하가 죽은 뒤엔 어찌 됩니까?”

“임금이 있는 줄 모른다.”

23.

한 스님이 물었다.

“선지식이 세상에 나오시면 학인은 의지할 곳이 있겠지만 열반에 드신 뒤엔 어찌해야 모든 경계에 혹하지 않겠습니까?”

“마치 허공의 불꽃바퀴 같은 것이다.”

“그러나 지금도 끝없이 망령되이 일어나는데야 어찌하겠습니까?”

“태워버리는 것이 상책이다.”

24.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몇 사람에게나 스님의 불법을 인정받으셨습니까?”

“한 사람도 인정해 주는 이가 없었다.”

“어째서 인정해 주지 않습니까?”

“그들은 제각기 기상이 왕과 같기 때문이다.”

25.

스님께서 운거(운거)스님에게 물었다.

“그대는 형상(색)을 좋아하는가?”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아직 말상대가 안되는구나.”

운거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형상을 좋아하십니까?”

“좋아한다.”

“그렇게 형상을 볼 때에는 어떠십니까?”

“마치 한 덩어리 무쇠토막과 같다.”

2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이에 스님이 자기 이름 양개(양개)를 부르니 그 스님은 대답을 못했다.

이에 운거(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저는 빠져나갈 길이 없겠습니다.”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렇게 하시면 스님께 꽉 잡히고 맙니다.”

27.

스님께서 태장로(태장로)에게 물었다.

“이런 것이 있다. 위로는 하늘을 버티고 아래로는 땅을 버티고 늘 움직이면서 칠흙같이 검다. 그 허물이 어디에 있는가?”

“허물은 움직이고 작용하는데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혀를 차며 내쫒았다.

이에 석문(석문)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찾을래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러자 어떤 이가 나서서 물었다.

“어째서 찾을 수 없습니까?”

“칠흙같이 검기 때문이다.”

28.

설봉(설봉)스님이 장작을 나르는데 스님께서 물었다.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

“온누리 사람이 다 덤벼도 들지 못합니다.”

“어떻게 거기에 도달할 수 있으랴?”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운거(운거)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거기에 이르러야 비로소 들어도 들리지 않는 줄을 알 것입니다.”

소산(소산)스님이 대신 말했다.

“그저 거기에 도달할 뿐이지 어찌 든다고 들어질 것인가?”

29.

한 스님이 와서 뵈니, 스님께서 그의 특이함을 보시고 일어나 절을 받고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서천(서천)에서 왔습니다.”

“언제 서천을 떠났는가?”

“공양(제)하고 떠났습니다.”

“너무 더디군.”

“산과 물을 구경하느라 그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하는가?”

“그가 앞으로 나서서 차수(차수)하고 섰으니, 스님이 허리를 굽혀 인사(견)하고 말했다.”

“차나 마시라.”

30.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산 구경을 하고 옵니다.”

“산꼭대기까지 갔었던가?”

“갔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사람이 있던가?”

“없었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산꼭대기엔 안 갔었구나.”

“산꼭대기까지 가지 않았으면 어찌 아무도 없는 줄 알았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대는 어째서 거기에 살지 않았는가?”

“살기는 사양치 않으나 서천(서천)의 누군가가 긍정치 않을 것입니다.”

31.

스님께서 운거(운거)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다녀오는가?”

“산을 둘러보고 옵니다.”

“어느 산이 살 만하던가?”

“어느 산인들 살지 못하겠습니까?”

“그렇다면 당(당)나라 안의 모든 산을 몽땅 그대가 차지해야 되겠구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들어갈 문턱을 얻었구나.”

“길(로)이 없습니다.”

“길이 없다면 어떻게 나를 만나러 왔는가?”

“길이 있다면 간격이 생깁니다.”

“이 사람은 뒷날 천 만 사람이 잡아도 머물지 않을 것이다.”

32.

스님께서 늑담(륵담)에 갔더니 정상좌(정상좌)가 대중에게 설법하기를, “그것 참 신기하구나! 불가사의한 도의 세계(도계)여, 불가사의한 부처님의 경계(불계)여!” 하였다. 그것을 보고 스님께서 불쑥 물었다.

“도계다 불계다 하는 것은 묻지 않겠으나 도계다 불계다 하는 이는 어떤 사람인가?” 이 한 마디만 하여라.“

상좌가 잠자코 말이 없으니 스님이 재촉했다.

“왜 얼른 말하지 못하는가?”

“다투면 얻지 못합니다.”

“하란 말도 못하고서 어째서 다투면 얻을 수 없다 하는가?”

상좌가 대답을 못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다 도다 하는 것은 그저 이름뿐이다. 경전을 인용해서 대답해 보겠는가?”

“경전에선 무어라 했습니까?”

“뜻을 얻고는 말은 잊으라 했다.”

“아직도 경전의 뜻을 마음에다 두어 병을 만드시는군요.”

“도계다 불계다 하는 자는 얼마나 병이 들었는가?”

상좌는 그 일로 목숨을 마쳤다.

33.

스님께서 설봉(설봉)스님에게 물었다.

“어디를 갔다 오는가?”

“흠대(조)를 파고 옵니다.”

“도끼를 몇 번 찍어서 만들었는가?”

“한 방에 다 해냈습니다.”

“저쪽 일(나변사)은 어찌 되었는가?”

“손을 쓸 곳이 없습니다.”

“그것은 아직 이쪽 일(언 변사)이다. 저쪽 일은 어찌되었는가?”

설봉스님이 대답이 없거늘 소산(소산)스님이 대신 말했다.

“낫과 도끼가 없는 경지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단칼에 들어가 스님의 머리를 끊으려 할 때엔 어찌합니까?”

“당당하여 표면도 끝도 없느니라.”

“지금은 약하고 열세임을 어찌합니까?”

“사방 이웃에 어딘들 없으랴. 잠시 주막거리에 머물렀다 간들 괴이할 일이 있겠느냐?”

35.

스님께서 또 학인들에게 분부하셨다.

“천지 사이 우주 안에 보배 하나가 산덩이 속에 숨겨졌는데, 신통하게 사물을 알아보나 안팎이 공적하여 어디에 있는지 찾기란 매우 어렵다. 깊고 깊으니 다만 자기에게서 구할 일이지 남에게서 빌리지 말라. 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다. 모두가 남의 마음이니, 제 성품만 못하다. 성품이 청정하면

이것이 법신이다.

초목에서 나왔도다.

견해가 이와 같다면 머무를 때엔 반드시 벗을 가려서 때때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 멀리 갈 때엔 반드시 좋은 벗에 의탁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밝힐 것이다. 그러므로 ‘나를 낳은 이는 부모이고, 나를 완성해 주는 이는 벗이라’ 하였다. 선한 이를 가까이하면 마치 안개 속을 다니는 것 같아서 비록 옷이 젖지는 않으나 차츰차츰 눅눅해지고 쑥이 삼(마)이나 대(죽)속에 나면 붙들어 주지 않아도 저절로 곧아진다. 흰 모래가 진흙과 함께 있으면 함께 검어지니, 하루 스승이 되면 종신토록 하늘 같이 존중하고, 하루 주인이 되면 종신토록 아버지같이 존귀하다.

옥은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못하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도를 알지 못한다.“

36.

스님께서 병든 스님을 문병하며 “힘들겠구려”하니, 병든 스님이 말하였다.

“생사의 일이 큽니다. 스님이시여.”

“어찌 차조밭으로 가지 않는가?”

“그러면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는 훌쩍 떠났다.

37.

한 스님이 물었다.

“모든 것을 다 놓아버려도 오히려 나기 전과 같을 때가 어떠합니까?”

“누군가는 그대 손이 빈 줄을 알지 못할 것이다.”

38.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다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한 스님이 나서서 물었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제방에는 사람을 놀라게 하는 구절이 있지만 여기 내게는 뼈를 깎는 말이 있다’ 하셨다는데 그렇습니까?”

“그렇다. 이리 오너라. 그대 뼈도 깎아 주겠다.”

“이쪽 저쪽 다 깎아 주십시오.”

“깎지 않으리라.”

“그 좋은 솜씨로 어째서 깎아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 세상의 명의(명의)는 손을 쓰지 않는다 하였다.”

운문(운문)스님이 서봉(서봉)에 이르니, 서봉스님이 물었다.

“나는 동산스님이 뼈를 깎아 준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히 알지 못하는데 그대가 자세히 말해 주지 않겠는가?”

이에 운문스님이 앞의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니, 서봉스님이 합장을 하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자세히 가르쳐 주셨구나.”

운문스님이 다시 이 일을 서봉스님에게 물으니, 서봉스님이 대답했다.

“동산스님이 앞에서 했던 말을 해보아라. 너의 뼈를 깎아 주겠다. 나그네 제2기(빈가제이기)가 왔을 때엔 어째서 깎아 주지 않는다 하였겠느냐?”

서봉스님이 한참 읊조린 끝에 “상좌야!”하고 불러 상좌가 대답하니 “쓰레기더미로구나!” 하셨다.

 

39.

스님께서 대중에게 설법하셨다.

“손을 펴서도 배우고, 새의 길에서도 배우고, 현묘한 길에서도 배운다.”

이에 보수(보수)스님이 수긍치 않고 법당 밖으로 나가서 말씀하셨다.

“저 노장은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는가?”

이에 운거스님이 스님께로 가서 말했다.

“스님의 그런 말씀을 어느 한 사람은 수긍치 않습니다.”

“수긍하는 이를 위해서 말했지 수긍치 않는 이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수긍치 않는 자를 나오라 하라. 내가 만나 보겠다.”

운거스님이 말씀하셨다.

“수긍치 않는 자가 없습니다.”

“그대는 금방 말하기를, ‘누군가 한 사람은 수긍치 않는다’ 하더니, 어째서 다시 ‘수긍치 않음이 없다’ 하는가? 어서 나서게 하라.”

“나서면 수긍하는 것입니다.”

“그렇다. 수긍하는 것이 수긍치 않는 것이고, 나서는 것이 나서지 않는 것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싱싱하게 푸른 대가 모두 진여요. 빽빽한 국화는 반야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그 뜻이 무엇입니까?”

“두루하지 않은 빛이다.”

“어째서 두루하지 않은 빛이라 하십니까?”

“진여도 아니고 반야도 없다.”

“드러나기는 합니까?”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다.”

“어째서 세상에 드러나지 않습니까?”

“세상이 아니다.”

“세상이 아니란 뜻이 무엇입니까?”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기에 모른다고 대답하는가? 그대로 하여금 알게 해 주겠다.”

“스님께선 어째서 그르쳐주지 않으십니까?”

“어찌 어찌 하다보니 어쩔 수 없게 되었다.”

“어째서 알아들을 수 없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남의 말에 막히는가?”

“그렇다면 말이 없으리이다.”

“말이 없지 않느니라.”

“말이 없는데 어째서 아니라 하십니까?”

“말 없는 것이 아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서로 만나서 아무 것도 드러내지 않았으나 마음을 움직였다하면 알아차린다 하였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스님께서 손을 머리까지 올려 합장하였다.

보자(보자)스님이 이 일을 어떤 스님에게 물었다.

“동산스님이 입 속으로는 그렇게 말해놓고, 그렇게 한 것이 합장정대인가?”

대답이 없자 스스로 대신 말씀하셨다.

“맥(맥) 하나로 양쪽을 잡았다.”

42.

한 스님이 물었다.

“맑은 강 저쪽에는 무슨 풀이 있습니까?”

“싹트지 않는 풀이다.”

“강을 건너간 이는 어떻습니까?”

“온갖 것은 다한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씀하셨다.

“싹트지 않는 풀이 어째서 큰 코끼리(향상)를 갈무리하는가. 큰 코끼리라 함은 지금(금시)의 공부가 결과를 이루는 것이요, 풀이라 함은 본래 싹트지 않는 풀이요, 갈무리한다 함은 본래(본래) 행상(행상) 채워나가는 것을 인정치 않으므로 갈무리한다고 한다.”

43.

한 비구니가 큰방 앞에 와서 말했다.

“이렇게 많은 무리가 몽땅 내 자식들이로다.”

이에 아무도 대답을 못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했더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나도 그대에게서 태어났다.”

44.

한 스님이 바리때를 들고 항상 가는 속인의 집에 갔더니, 속인이 물었다.

“스님은 무엇을 요구하십니까?”

“무엇을 가리겠소.”

속인이 풀을 가득 바리때에 채워 주면서 말했다.

“바로 이르면 공양하겠지만 이르지 못하면 그냥 가시오.”

그 스님은 대답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 스님께 이야기하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그것은 가리는 것이니, 안 가리는 것을 갖다 주시오.”

4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마음과 법 둘다 잊어 성품이 참되면, 그것은 몇째 자리가 되는가?”

“두번째 자리입니다.”

“어째서 그것을 첫번째 자리라 하지 않는가?”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법을 다 잊었을 때는 마음도 아니고 법도 아닌데 어째서 다시 그렇게 말하는가?”

그리고는 대신 대답했다.

“참이 아니면 자리를 얻지 못한다.”

46.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아비가 젊다는 것입니까?”

“그대는 나이가 몇이던가?”

“어떤 것이 자손이 늙었다는 것입니까?”

“내가 평소에 사람들에게 현묘한 이야기를 했었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옛 사람이 말하기를, ‘그저 신령스럽게 알아차려야지 일을 통해 찾을 수는 없다’ 하였으니, 무슨 뜻입니까?”

“문으로 들어온 이는 귀한 사람이 아니다.”

“문으로 들어오지 않은 이는 어떤 사람입니까?”

“여기에는 아무도 알아볼 이가 없다.”

48.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과 법이 없어졌을 때는 어떻습니까?”

“입으로만 이야기한들 무슨 이익이 되겠는가? 입으로만 따지지 말고 당장 그렇게 해야 한다. 설사 그렇게 한다 해도 그것은 부처님 일이다.”

“무엇이 향상인(향상인) 부처인지 지적해 주십시오.”

“부처가 아니다.”

49.

한 스님이 물었다.

“4대(사대: 육신)가 화합하여 건강할 때 병들지 않는 이도 있겠습니까?”

“있다.”

“병들지 않는 이가 스님을 보겠습니까?”

“나야 그를 볼 때엔 병들은 것은 보지 않는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바로 이럴 때는 어떻습니까?”

“그대의 굴택이다.”

“이렇지 않을 때엔 어떻습니까?”

“신경쓰지 않는다.”

“신경쓰지 않는 그것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아닙니까?”

“신경쓰지 않거늘 소중히 여길 것이 무엇이겠는가.”

“무엇이 스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까?”

“그대에게 주먹을 날리지는 않겠다.”

“무엇이 제가 소중히 여길 점입니까?”

“내게 합장하지 말아라.”

“그렇다면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겠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대를 알아주겠는가?”

“결국에는 어떻습니까?”

“누가 크다 하며 누가 작다 하려 하겠는가?”

한 스님이 물었다.

51.

한 스님이 물었다.

“우두(우두)스님이 사조(사조)를 보기 전에 온갖 새가 꽃을 물고 와서 공양했는데 그런 때는 어떻습니까?”

“구슬이 손바닥에 있는 것 같다.”

“본 뒤엔 어째서 꽃을 물고 오지 않았습니까?”

“온 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52.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사람이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입니까?”

“마음.뜻.의식이 없지 않은 사람이다.”

“만나 뵈올 수 있겠습니까?”

"남이 전하는 말을 듣은 적도 없고 남의 부탁을 받은 적도 없다.“

‘가까이 모실 수는 있겠습니까?“

“그대 한 사람뿐 아니라 나도 할 수 없다.”

“스님께선 어째서 가까이 하시지 못합니까?”

‘마음.뜻.의식이 없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합(대합) 속에 구슬이 있는 줄 대합은 압니까?”

“알면 잃는다.”

“어찌해야 되겠습니까?”

“앞의 말에 의지하지 말라.”

53.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허공의 마음으로 허공의 이치에 합한다’했는데 무엇이 허공의 이치입니까?”

‘확 트여서 겉도 끝도 없다.“

“무엇이 허공의 마음입니까?”

“사물에 걸리지 않는다.”

“어찌해야 부합되겠습니까?”

“그대가 그렇게 말하면 부합되지 않는다.”

5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병(불병)을 가장 고치기 어렵다’ 했는데, 부처가 병입니까, 부처에 병이 있습니까?“

“부처가 병이다.”

“부처가 어떤 사람에게 병이 됩니까?”

“그에게 병이 된다.”

“부처가 그를 알겠습니까?”

“그를 알지 못한다.”

“그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그에게 병이 됩니까?”

“듣지 못했는가? 남의 가풍(가풍)에 누를 끼친다 했다.”

 

55.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속에서 적중(적중)함을 얻을 때가 어떠합니까?”

“적중했는데 무엇을 또 취한다 하는가”

“그렇다면 적중한 것이 아니겠습니다.”

“아닌 데서 적중이 있겠는가.”

55.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사람이 천 만의 사람 속에 있으면서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으니 그를 어떤 사람이라 하겠는가?”

“이 사람은 항상 눈앞에 있으면서 경계를 따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대의 이 말은 아비 쪽에서 하는 말인가, 자식 쪽에서 하는 말인가?”

“제 소견으로는 아비 쪽에서 한 말이라 여겨집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고 다시 전좌(전좌)에게 물었다.

“이게 어떤 얼굴인가?”

“그는 얼굴도 등도 없는 사람입니다.”

스님께서 수긍치 않으니, 또 다르게 대답했다.

“이 사람은 얼굴도 눈도 없습니다.”

“한 사람을 향하지도 않고 한 사람을 등지지도 않는 그것이 그대로 얼굴없는 사람인데 하필 그렇게 말할 것까지야 있겠느냐?”

이어 스님께서 대신 대답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나 어긋나지 않을 때는 어떻습니까?”

“이는 아직 닦는(공훈) 쪽의 일이다. 닦을 것 없는 닦음(무훈지공)이 있는데 어째서 그것을 묻지 않는가?”

“닦을 것 없는 닦음은 저쪽 사람 일이 아니겠습니까?”

“뒷날 그대의 그런 말을 비웃을 안목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편하고 자연스럽다(조연)하겠습니다.”

“조연하기도 하고, 조연치 않기도 하고, 조연치 않은 것도 아니다.”

“무엇이 조연한 것입니까?”

“저쪽 사람이라 해서는 안될 것이다.”

“무엇이 정연치 않은 것입니까?”

“가릴 곳이 없느니라.”

그리고는 갑자기 시자(시자)를 불러 시자가 오니, 스님께서는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대중에게 일러라. 추운 자는 불을 쪼이고, 춥지 않은 자는 상당(상당)하라고.”

58.

스님께서 언젠가 대중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일은 반드시 구절구절이 끊이지 않게 해야 한다. 마치 장안(장안)으로 통하는 여러 길이 실오라기같이 가늘지만 끊이지 않는 것 같아야 한다. 만일 하나라도 통하지 않는 길이 있으면 그것은 군주(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니, 이 사람은 목숨이 경각에 달렸을 것이다. 설사 훌륭하고 묘한 법을 배웠다하여도 역시 군주를 받들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그밖의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간 세상의 사소한 명리 때문에 큰 일을 놓치지 말라. 이런저런 상(상)을 내서 한 조각의 옷과 밥을 얻는다 해도 모두가 종이 되어 반드시 갚게 되어 있다. 옛어른이 말씀하시기를, ‘모든 종류마다 각각 분수(분제)가

있다’ 했으니, 이미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옷과 밥에만 매이지 말고 인연에 맡겨 집착을 내지 말라. 나의 가풍은 이럴 뿐이다. 듣고 안듣고는 끝내 관계치 않겠으니 이렇든 저렇든 그대들 마음대로 하라. 편히들 쉬어라(진중).”

 

3. 천 화

스님께서 함통(함통) 10년 기축(기축: 869) 3월 1일에 머리깎고 가사를 입으시고 종을 치게 하고는 엄숙하게 떠나시니, 대중이 통곡을 하였다. 그러자 다시 깨어나 말씀하셨다.

“마음을 물건에 두지 않는 것이 출가자의 참 수행이다. 어찌 슬퍼하고 안타까워할 일이 있겠는가.”

그리고는 원주를 불러 우치재(우치재)를 차리라 하니, 원주가 슬피 울면서 재를 차려 7일을 끌었는데 스님께서도 조금씩 잡수시더니, 마지막 날에 말씀하셨다.

“스님네들이 어찌 이다지 못났는가. 큰 길을 떠나는데 어째서 이렇게 소란하고 슬퍼하는가.”

여드레가 되는 날, 목욕물을 데우라 하여 목욕을 하시고 단정히 앉아서 떠나시니, 나이는 62세, 승랍은 41세였다. 시호는 오본(오본), 탑호는 혜각(혜각)이라 하였다. 제자들을 경책하는 게송들이 문도들 사이에 많이 퍼졌으나,

여기에는 수록치 않는다. 정수선사(정수선사)는 찬(찬)을 지었다.

스님께서 동산에 계시니

5백 대중이 모였네

눈으로 소리를 들으니

경계와 반연이 꿈과 같았다.

시냇가엔 곧은 대

하늘가엔 상서로운 봉황이라

세 부처에 속하지 않기에

나는 이를 애통한다.

사거동산 취오백중

안처문성 경연약몽

간반정균 천변서봉

불추삼신 오어차통

동산양개화상사친서(동산양개화상사친서)*

부모님을 하직하며

부처님도 세상에 나오실 때는 모두 부모님을 빌어 생명을 받았고, 만물이 생길 때도 하늘이 덮어주고 땅이 실어주는 덕분이라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아니면 태어날 수 없고 천지가 아니면 자랄 수 없으니, 다 길러주시는 은혜를 입고 덮어주고 실어주는 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아, 그러나 모든 중생과 갖가지 만상은 덧없는 것이어서 생멸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려서 젖을 먹여주신 정이 두텁고 길러주신 은혜가 깊으니, 돈을 꾸러미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이 글은 동산스님이 20세 전후에 쓴 것으로, 「5가어록 」에는 없으나 수행의 귀 감이 될 만하므로 여기 싣는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에서 쓰는 현행본 「치문」 에 수록되어 있어 널리 알려진 글이나 원래 「치문경훈」에는 실려 있지 않다. 번역은 조선 숙종 21년(1695) 백암 성총(백암성총)스님이 중간(중간)한 「치문집 주」의 원문을 저본으로 하였다.

 

채로 바친다 해도 그 은혜 다 갚기 어렵고, 고기를 봉양한다 해도 그것이 어찌 오래오래 사시게 하는 길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효경(효경)」에서는 “날마다 3생(삼생: 소.염소.돼지로 만든 음식)으로 봉양해도 오히려 불효다”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영원한 윤회에 들도록 서로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끝없는 은혜를 갚고자 한다면 출가하는 공덕이 최고입니다. 생사애욕의 강물을 끊고 번뇌의 고통바다를 뛰어넘어 천생만겁 내려오던 자애로운 부모께 보답하고 3계의 네 가지 은혜(은혜: 부처님.나라.부모.시주)를 다 갚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경에서는 “자식 하나가 출가하면 9족(구족)이 하늘에 태어난다”고 하였습니다.

저 양개(양개)는 맹세코 이 생의 몸과 목숨이 다하도록 집에 돌아가지 않고, 영겁 티끌몸(근진) 그대로 반야지혜를 활짝 깨치려 합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기쁜 마음으로 허락하시어 속으로 자꾸만 생각지 마시고 거룩한 정반왕(정반왕)과 마야(마야)부인을 본받으소서. 뒷날 부처님 회상에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선 헤어지고자 합니다.

저 양개는 부모봉양 못했다는 5역죄를 꺼려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음을 생각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몸을 금생에서 구제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몇생을 기다려 구제할 것인가”하고 하였습니다.

바라옵건데, 부모께서는 저를 잊어주소서. 노래로 말하렵니다.

마음 근원을 깨치지 못한 채 몇해 봄이 지나니

부평초 같은 세상 그럭저럭 보냄에 한숨만 쌓여갑니다.

많은 사람이 불법문중에서 도를 깨쳤습니다.

유독 저만이 세상 티끌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이제 짧은 글을 올려 권속의 사랑을 하직하고

큰 법을 깨쳐 자애로운 부모님께 은혜를 갚고자 합니다.

눈물을 뿌리면서 자꾸만 애닯게 생각할 것 없이

애초부터 이 몸이 없었던 듯 생각하소서.

 

숲 속의 흰구름은 언제나 짝이 되어주고

문 앞의 푸른 봉우리는 이웃이 되어줄 것이니

세상의 물질과 명예를 벗어나고

인간의 애정을 영원히 떠나렵니다.

조사의 마음은 말끝에서 그대로 깨치게 하고

현묘한 이치는 글귀 속의 진실을 꿰뚫게 해주니

온집안 친척들이여, 만나보고자 한다면

다가올 정직한 인과(인과)를 기다리소서.

뒤에 보낸 편지

제가 부모님을 떠나 지팡이 짚고 남쪽으로 내려온 지 벌써 10년이 지나 어느덧 눈앞에는 만리나 되는 갈림길이 막혀 있습니다.

바라옵건대, 어머님께서는 마음을 거둬들여 도를 바라보고 생각을 다잡아 공(공)으로 돌리소서. 이별의 마음을 머물러 두지 마시고 문에 기대 기다리지 마소서.

집안일이란 인연을 따르는 것이어서 갈수록 늘어나 나날이 번뇌만 더해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님은 힘써 효도하여 얼음 속에서 고기를 얻어낼 것이며, * 아우는 힘을 다해 모셔서 서리 속에서 죽순이 나오라고 울 것입니다.*

보통사람은 세상에 살면서 자기를 닦고 효도를 하여 본성(천성)에 합하고, 이 사문(사문)은 불법문중(공문)에서 도를 바라보고 참선하여 어머님의 은혜

를 갚을 것입니다. 이제 천산만수(천산만수)에 아득한 갈래길을 만났으니, 여덟 줄 한 장에 아쉬운대로 마음을 적어봅니다. 노래로 말하렵니다.

명리를 구하지도 선비가 되고자 하지도 않고

불법이 좋아서 세속을 버렸으니

번뇌가 다할 때 근심의 불 꺼지고

은혜의 정 끊기는 곳에 애욕의 강물 마르리

6근이 공해진 지혜(육근공혜)가 향기로운 바람에 실려와

한 생각 생기려 하면 지혜의 힘이 잡아주네

어머님께 아뢰오니, 슬퍼하며 기다리지 마시고

죽은 자식이라 없던 자식이라 여겨주소서.

어머니의 답서

 

내 너와 전생에 인연이 있어 처음 모자로 맺어질 때, 애정을 쏟아부어 너를 밴 뒤로 아들 낳게 해달라고 부처님과 신령님께 빌었느니라. 임신하고 달이 차서는 실낱 같은 목숨이었으나 마침내 바람이 이루어지고 나서는 너를 보배처럼 아꼈으니, 더러운 똥도 냄새난다 하지 않았으며 고생스럽게 젖먹일 때도 고생인 줄 몰랐느니라. 차츰 자라서 공부하러 보내놓고는 조금이라도 돌아올 때가 지나면 문에 기대 바라보곤 했었는데, 보내온 편지에 굳이 출가(출가)하겠다 하는구나. 그러나 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이 어미는 늙었으며, 네 형과 아우는 다들 살림이 가난하니, 내 누구를 의지하겠느냐. 자식은 어미를 버릴 마음이 있으나, 어미는 자식을 버릴 뜻이 없느니라. 네가 일단 다른 곳으로 떠난 뒤에는 밤낮으로 항상 슬픈 눈물을 흘리게 되었으니 너무도 괴로운 일이었구나. 그러나 이제 너는 집에 돌아오지 않겠다고 맹세했으니, 네 뜻대로 하기를 허락하노라.

나는 네가 얼음에 눕는 왕상(왕상)이나 나무를 새기는 정란(정란)*이 되기를 기대하지는 않으련다. 다만 네가 목련존자(목련존자)처럼* 되어서 나를 구제하여 윤회에서 해탈케 하고 나아가 부처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만일 그렇게 되지 못한다면 무거운 죄를 짓는 것이니, 깊이 새겨 듣도록 하여라.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정란(정란)은 어머니께 지극히 효도하다가 돌아가시자 나무로 어머니 모습을 만 들어 봉양했다.

* 목련존자는 천안통으로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생하심을 보고 간절한 기도로 구 제하였다.

조 산 록

(오가어록)

1. 행 록

스님의 휘(휘)는 본적(본적)이며, 천주(천주) 포전(포전) 황씨(황씨) 자손이다. 어려서는 유학(유학)을 공부하다가 19세에 복주(복주)의 영석산(영석산)에 가서 출가하였고, 25세에 구족계단(구족계단)에 올랐다. 그리고는 동산(동산)스님을 찾아뵈었는데 동산스님께서 물었다.

“스님은 이름이 무엇인가?”

“본적(본적)입니다.”

“저런, 쯧쯧.”

“본적(본적)이라 이름붙일 수 없습니다.”

동산스님은 스님을 깊이 그릇으로 여겼다.

「승보전(승보전)」에는 스님의 이름을 탐장(탐장)이라 하였는데, 여기서 는 「전등록(전등록)」에 실린 것을 그래로 따랐다.

이로부터 입실(입실)하여 여러 해를 지내다가 떠나겠다고 하직하자 동산스

님은 드디어 동산(동산)의 종지를 가만히 전수하고 다시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하지 않는 곳으로 가겠습니다.”

“변하지 않는 곳에 어떻게 감(거)이 있으랴.”

“간다 해도 변할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는 조계(조계)로 가서 육조(육조)의 탑에 절하고 길수(길수)로 돌아갔더니 대중들이 스님의 명성을 듣고 개법을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육조를 흠모하여 그 산을 조산(조산)이라 이름하였다.

마침 난리를 만나 의황(의황)으로 갔더니 거사 왕약일(왕약일)이 하왕관(하왕관)을 희사하여 스님께 주지(주지)하시기를 청하였다. 스님께서는 하왕(하왕)을 하옥(하옥)으로 고쳤는데, 이때부터 법석(법석)이 크게 일어나 학인들이 구름처럼 모여드니, 동산의 종풍이 스님에 와서 널리 퍼졌다.

 

2. 시 중

1.

스님께서 시중(시중)하셨다.

“범부의 마음과 성인의 지견(범정성견)이 모두가 오묘한 금사슬 길이니, 그저 회호(회호)하면 될 뿐이다.”

정명식(정명식)을 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세 가지 함정(삼종추)이 있다. 첫째는 축생이 되는 것이며(피모재각), 둘째는 성색을 끊지 않음이며(불단성색), 셋째는 음식을 받지 않음(불수식)이다.“

그러자 그때 법회에서 성긴 베옷을 입은 선승이 물었다.

“축생이 된다 함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부류에 떨어짐(류추)이다.”

“음식을 받지 않음은 무슨 함정에 떨어짐입니까?”

“존귀함에 떨어짐(존귀추)이다.”

이어서 말씀하셨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본분의 일이다. 본분인 줄 알면서도 취하지 않으므로 이를 ‘존귀에 떨어짐(존귀추)’이라 한다. 만일 처음 마음(초심)에 집착하면 자기와 성인의 지위가 따로 있는 줄 알기에 ‘부류에 떨어짐(류추)’이라 한다. 처음 마음을 가질 때는 자기가 있다고 자각하다가도 회광반조(회광반조)할

때에는 소리.색.향기.맛.감촉.법을 물리치고 평안하고 조용한 것으로 공부를 이루어 더 이상은 6진(육진)등의 경계에 집착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부분적으로 어두워져서 그대로 내버려두면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여섯 외도(육사외도)가 너의 스승이 된다’ 하였으니 스승이 떨어지는 곳에 따라서 떨어지게(수추)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어야 할 밥을 가려먹는 것이라야 정명식이다. 그것을 6근의 견문각지(견문각지)로도 말할 수 있다. 6근의 그것에게 더럽혀지지 않았는데도 ‘함정에 빠졌다’ 한다면 이는 그것과 균등했던 전과는 달라지는 것이다. 본분의 일도 취하지 않았는데 그 나머지 일이야 어떠하겠는가?

스님께서 말하는 ‘함정(추)’이란 뒤섞어서도 안되고 부류를 같게 해서도 안된다는 의미이고, 또한 ‘처음 마음(초심)’이라 하는 것은 깨닫고 나서가 깨닫기 전과 같다는 의미이다.“

2.

한 스님이 5위군신(오위군신)의 요지를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정위(정위)는 공계(공계)로서 본래 아무것도 없는 자리이며, 편위(편위)는 색계(색계)로서 만상으로 형태가 나타난 자리다.

정중편(정중편)이란 이치를 등지고 현상을 향하는(배리취사)자리이며, 편중정(편중정)이란 현상을 버리고 이치로 들어가는(사사입리)자리다.

겸대(겸대)란 뭇 인연에 그윽히 감응하면서 모든 유(유)에 떨어지지 않는 자리다. 더러움도 아니고 깨끗함도 아니며, 정위도 아니고 편위도 아니므로 텅 빈 대도(대도)이며, 집착 없는 진종(진종)이라 하는 것이다. 옛 큰스님들도 바로 이 자리를 쓰셨으니, 가장 현묘하므로 자세히 살펴 분명히 분별해야 한다.

임금(군)은 정위(정위)이며, 신하(신)는 편위(편위)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은 편중정(편중정)이며,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은 정중편(정중편)

이다.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은 겸대(겸대)라고 한다.“

그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임금입니까?”

“오묘한 덕은 세상에 드높고 밝아 허공에 환하다.”

“무엇이 신하입니까?”

“신령한 기틀로 성인의 도를 널리 펴고, 진실한 지혜로 뭇 생령을 이롭게 한다.”

“무엇이 신하가 임금에게 향하는 것입니까?”

“이류(이류) 중생에 떨어지지 않고 마음을 모아 성인의 모습을 바라본다.”

“무엇이 임금이 신하를 살피는 것입니까?”

“오묘한 모습 움직이지 않으나 밝은 빛은 본래 빠짐없이 비춘다.”

“무엇이 임금과 신하의 도가 합하는 것입니까?”

“뒤섞여 안팎이 없고, 녹아져 상하가 공평하다.”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임금과 신하, 편위와 정위로써 말한다면 중(중)을 범하려고 하질 않는다. 그러므로 신하는 임금을 지칭하는데 감히 배척해서 말하지 않는다 함이 이것이다. 이것이 우리 법문의 요점이다.”

그리고는 게송을 지었다.

학인은 무엇보다 자기 종지를 알아야 하니

진리(진제)로 허공(완공)을 뒤섞지 말아라

묘하고 밝은 바탕 다하면 상함을 알 것이니

힘써 인연을 만날 뿐 중도를 빌릴 것 없다네

말을 꺼냈다 하면 불타지 못하게 하며

가만히 행함은 옛사람과 같아야 하리

몸 없고 일 있음에 갈림길을 벗어나고

일 없고 몸 없으니 시종에 떨어진다네.

 

학자선수식자종 막장진제잡완공

묘명체진지상촉 역재봉연불차중

출어직교소불저 잠행수여고인동

무신유사초기로 무사무신락시종

다시 다섯 가지 모양을 만들고 게송을 붙였다.

서민을 재상에 임명하는 일

이 일은 이상할 것 없다네

대대로 내려온 벼슬아치들이여

숨 떨어질 때를 말하지 말라.

백의수배상 차사불위기

적대자□□ 휴언락비시

자시(자시)가 정위(정위)에 해당하니

밝음과 올바름이 임금과 신하에 있어라

도솔세계를 떠나지 않았는데

검은 닭은 눈 위로 간다네.

자시당정위 명정재군신

미리도솔계 조계설상행

불꽃 속에 찬 얼음 맺히고

버들꽃은 9월에 날리네

진흙소는 물 위에서 포효하고

목마는 바람따라 울부짖네.

염이한영결 양화구월비

니우포수면 목마수풍□

황궁에 처음 강생(강생)하신 날

하늘 나라를 떠날 수 없었네

쓸 것(공)없는 종지를 얻지 못하니

인간. 천상은 어찌 그리 더딜가.

왕궁초강일 옥토불능난

미득무공지 인천하태지

이치와 현상을 섞어 갈무리하니

그 조짐 끝내 밝히기 어려워라

위음왕불(과거불)도 깨닫지 못했는데

미륵불(미래불)이 어찌 깨닫겠는가.

혼연장리사 □조졸리명

위음왕미효 미륵기성성

3.

스님께서 행각할 때에 오석 관(오석관)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비로자나 법신의 주인입니까?”

“내가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따로 있는 것이 된다.”

스님께서 동산스님에게 말씀드렸더니 동산스님이 말씀하셨다.

“좋은 대화이긴 하다만 그대가 한 마디를 덜 했구나. ‘어째서 말씀해주지 않습니까’ 하고 왜 묻질 않았더냐.”

스님께서 다시 가서 앞 말에 이어 묻자 오석스님이 말하였다.

“내가 말해주지 않았다고 한다면 나를 벙어리로 만드는 셈이며, 말을 했다고 한다면 나를 말더듬이로 만드는 것이다.”

스님께서 돌아와 동산스님께 말씀드렸더니 깊이 수긍하셨다.

4.

운문(운문)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의 행동입니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절 밥 먹는 것이다.”

“그렇게 해나가고 있을 땐 어떻습니까?”

“쌓아 모을(축)수도 있느냐?”

“모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모으려느냐?”

“옷 입고 밥 먹는데 무슨 어려움 있겠습니까?”

“왜 털 쓰고 뿔 달린 축생이라고 말하지 않느냐?”

그러자 운문스님은 절하였다.

스님께서 시중(시중)하셨다.

“제방에서는 모두들 격식을 붙들고 있는데, 어째서 딱 깨치게 해 줄 한 마디를 던져 그들의 의심을 없애주지 않느냐.”

운문스님이 대중 속에서 나오더니 물었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어째서 있는 줄을 모릅니까?”

“바로 그 부사의함 때문에 있는 줄을 모른다.”

설두스님은 달리 대답(별어)하였다.

“달마가 왔군.”

운문스님이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해야 가까워질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아주 부사의한 곳에서는 가까이 하지 말게.”

“매우 부사의한 곳에서가 아니라면 어떻습니까?”

“비로소 가까이 할 줄 안다 하겠네.”

운문스님은 녜, 녜 하였다.

묘희(묘희)스님은 말하였다.

“탁한 기름에 다시 검은 등심지를 붙이는군.”

운문스님이 “뒤바뀌지 않는 사람이 찾아오면 스님께서는 맞이하시겠습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 조산은 그런 쓸데없는 짓은 안한다.”

5.

미화상(미화상)이 찾아와 만나보기도 전에 선상에 앉자 스님께서는 아예 나와보지도 않았고 미화상도 그냥 떠나버렸다. 그러자 일을 주관하는 스님이 물었다.

“스님, 선상에 어째서 다른 사람이 앉게 되었습니까?”

“떠난 뒤에 다시 돌아올걸세.”

미화상은 과연 돌아와서 스님을 만났다.

6.

지거(지거)스님이 스님을 찾아뵙고 물었다.

“옛사람은 저쪽 사람을 이끌어주었습니다. 저는 어떻게 체득해야 하겠습니까?”

“뒤로 물러나 자기에게 나아가면 만에 하나도 실수가 없다.”

지거스님은 말끝에 현묘한 이해(현해)를 싹 잊었다.

7.

금봉 지(금봉지)스님이 오자 스님께서 물으셨다.

“무엇하러 왔느냐?”

“지붕을 덮으러 왔습니다.”

“다 했느냐?”

“이쪽은 끝냈습니다.”

“저쪽 일은 어찌 되었느냐?”

“공사 끝나는 날 스님께 보고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래, 그렇지” 하셨다.

8.

청세(청세)라는 스님이 물었다.

“저는 외롭고 가난하오니 스님께서 구제해 주십시오.”

“청세는 이리 가까이 오게나.”

청세스님이 가까이 앞으로 가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청원(청원) 백가(백가)의 석 잔 술을 마시고서 입술도 축이지 못했다 하는구나.”

현각(현각)스님은 말하였다.

“어느 곳에서 그에게 술을 마시라고 주었느나.”

9.

경청(경청)스님이 물었다.

“맑고 텅 빈 이치라서 아예 몸이 없을 땐 어떻습니까?”

“이치(리)로야 그렇다치고 사실(사)은 어떡하려고.”

“이치로나 사실로나 여여합니다.”

“나 한 사람 속이는 것이야 그럴 수 있다치고 여러 성인의 눈을 어찌하겠느냐?”

“여러 성인의 눈이 없다면 그렇지 않은 줄을 어찌 비춰보겠습니까?”

“법으로야 바늘만큼도 용납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수레도 통할 수 있는 법이지.”

대위 철(대위철)스님이 말하였다.

“조산이 비록 옥을 잘 다듬기는 하나 경청의 옥에는 본래 흠집이 없었 는데야 어찌하랴. 알고 싶으냐. 잽싼 솜씨를 빌리지 않으면 결국 못쓰는 그릇을 만든다.”

10.

스님께서 덕상좌(덕상좌)에게 물었다.

“‘보살이 선정에 들어 큰 코끼리가 강을 건너는 소리를 듣는다‘하였는데 무슨 경에 나오는 말씀이냐?”

“「열반경」에 나옵니다.”

“선정에 들기 전에 들었겠느냐, 선정에 든 뒤에 들었겠느냐?”

“스님, 흘러갑니다.”

“말을 하려면 분명하게 해야 비로소 반쯤 했다 할 수 있다.”

“스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여울물 아래서 맞이해 오겠네.”

11.

지의도자(지의도자)가 찾아와 뵙자 스님께서 물었다.

“지의도인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무엇이 종이 옷(지의) 속의 일이더냐?”

“옷 하나 몸에 걸쳤다 하면 만법이 모두 다 여여합니다.”

“무엇이 종이 옷 속의 작용이더냐?”

지의도인은 앞으로 가까이 가서 끄덕끄덕하더니 선 채로 죽어(탈거)버렸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렇게 떠날 줄만 알았지, 어째서 이렇게 올 줄을 모르느냐?”

그러자 지의도인이 홀연히 눈을 뜨더니 물었다.

“신령하고 진실한 성품 하나가 어미 뱃속을 빌리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오묘함은 아닐세.”

“어찌해야 오묘함입니까?”

“빌리지 않는 빌림이라네.”

지의도인은 “안녕히 계십시오” 하더니 그대로 천화해 버렸다.

스님께서는 게송을 지어 법문하셨다.

원명(원명)한 각성(각성)은 모습 없는 몸이니

지견으로 멀다 가깝다 망상떨지 말아라

한 생각 달라지면 현묘한 바탕에 어두어지며

마음이 어긋나면 도와 이웃하지 못하리

마음(정)이 만법에 흩어져 목전의 경계에 잠기고

의식(식)으로 여러 갈래 비추어 본래 진실 잃는구나

이상의 말 속에서 완전히 깨달으면

옛날 일 없던 그 사람이라네.

각성원명무상신 막장지견망소친

념이편어현체매 심차불여도위린

정분만법침전경 식감다단상본진

여시구중전효회 료연무사석시인

12.

스님께서 강상좌(강상좌)에게 물었다.

“부처님의 참된 법신은 허공과 같되, 물에 달이 비치듯 사물에 응하여 모습을 드러낸다. 그 응해 주는 도리를 무어라고 말하겠느냐?”

“나귀가 우물을 보는 격입니다.”

“말을 하려면 확실히 해야 얼추 맞았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스님께서는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13.

육긍대부(육긍대부)가 남전(남천)스님에게 물었다.

“성이 무엇입니까?”

“왕씨(왕씨)요.”

“왕에게도 권속이 있습니까?”

“네 명의 신하가 어둡지 않습니다.”

“왕은 어느 자리에 거처합니까?”

“옥전(옥전)에 이끼가 끼었습니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거양)스님(조산)께 물었다.

“옥전에 이끼가 끼었다는 뜻이 무엇입니까?”

“정위(정위)에 자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팔방에서 찾아와 조회할 땐 어떻습니까?”

“그는 절을 받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찾아와서 조회를 할까요?”

“어기면 목을 베기 때문이지.”

“어기는 것은 신하의 일(분상)입니다만, 임금의 의도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추밀원(추밀원: 왕명 출납기관)은 왕명을 받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치를 빛낸 공로가 고스란히 재상에게 돌아가겠군요.”

“너는 임금의 의도를 아느냐?”

“밖(외방)에 감히 어쩌고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네.”

14.

한 스님이 말했다.

“저는 온몸이 병들었으니 스님께서 치료해 주십시오.”

“치료해 주지 않겠네.”

“어째서 치료해 주지 않으십니까?”

“그대를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하련다.”

15.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나에게 큰 병이 있는데 세속에서 고칠 병이 아니다’하였는데 무슨 병인지 모르겠습니다.”

“수술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이다.”

“일체중생에게도 이 병이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 있다.”

“스님도 이 병이 있습니까?”

“병이 생겨나는 곳을 딱 집어내지 못한다.”

“일체중생은 어째서 병들지 않습니까?”

“일체중생이 병들면 중생이 아니기 때문이지.”

“모든 부처님도 이 병이 있습니까?”

“있지.”

“있다고 한다면 무엇 때문에 병들지 않습니까?”

“그는 깨어있기(성성) 때문이다.”

16.

한 스님이 물었다.

“사문(사문)이라면 큰 자비를 갖춘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여섯 도적이 찾아오면 어찌해야 합니까?”

“역시 큰 자비로 무장해야 한다.”

“어떻게 큰 자비로 무장합니까?”

“단칼에 휘둘러 없애야지.”

“없앤 뒤엔 어떻습니까?”

“비로소 그들과 동화될 수 있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까요?”

“모른다.”

“어째서 모를까요?”

“한 곳에 있기 때문이지.”

“그렇다면 나누질 못하겠군요.”

“눈썹은 눈이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또록또록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의심한다.”

“스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그것을 의심하십니까?”

“의심하지 않으면 똑바로 가기 때문이지.”

18.

한 스님이 물었다.

“5위(오위)가 손님을 맞이할 땐 어떻습니까?”

“그대는 지금 어느 지위를 묻고 있는가?”

“저는 편위에서 오겠으니 스님께서는 정위에서 맞이해 주십시오.”

“맞이하지 않겠네.”

“어째서 맞이하지 않으십니까?”

“편위 속에 떨어질까 두려워서지.”

스님께서 되물었다.

“맞이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손님대접을 한 것인가, 안한 것인가?”

“벌써 손님대접을 마쳤습니다.”

“그래, 그렇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은 어디로부터 나옵니까?”

“전도(전도)에서 나온다.”

“전도하지 않을 땐 만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있지.”

“어디 있습니까?”

“전도해서 어찌하겠나.”

20.

한 스님이 물었다.

“싹 트지 않은 풀이 어떻게 큰 코끼리(향상: 마음자리)를 간직할 수 있습니까?”

“그대는 다행히도 작가(작가: 선지식)로구나.”

그리고는 다시 “나 조산은 어떤가?” 하고 물었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3계(삼계)는 시끄럽고 6취(육취)는 어두운데 어떻게 색(색)을 분별해야 합니까?”

“색을 분별할 수 없다.”

“어째서 분별할 수 없습니까?”

“색을 분별했다 하면 어두워진다.”

22.

스님께서 종소리를 듣고 야! 야! 하시니 한 스님이 “스님께선 무얼 하십니까?” 하고 묻자 말씀하셨다.

“내 마음을 때리는구나.”

그 스님은 대꾸가 없었다.

오조 사계(오조사계)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남의 마음 훔치는 도적아.”

23.

스님께서 유나(유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느냐?”

“식초통을 끌고 왔습니다.”

“험한 길을 가게라도 되면 또 어떻게 끌고 가겠느냐?”

유나는 대꾸가 없었다.

운거(운거)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잘 해보겠습니다.”

소산(소산)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진정 놓아버려야 할 것입니다.”

24.

스님께서 하루는 큰방에 들어가 불을 쬐는데 한 스님이 말했다.

“오늘은 매우 춥군요.”

“춥지 않은 자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네.”

“누가 춥지 않은 자입니까?”

스님께서 젓가락으로 불을 집어 보이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사람이 없다고 말하지 말아야 하겠군요.”

스님께서 불을 던지자 그 스님이 말하였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시 모르겠는걸요.”

“해가 차가운 물을 비추니 더욱더 밝아지네.”

25.

한 스님이 “만법과 짝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하고 묻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말해 보아라. 홍주성(홍주성)에 그 많은 사람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를.”

2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날 없는 칼입니까?”

“물에 담갔다 갈아서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을 쓰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닥치는대로 죽이지.”

“만나지 않은 자는 어찌됩니까?”

“역시 머리가 떨어지지.”

“닥치는대로 죽인다는 것은 굳이 그렇다쳐도 만나지 않은 자는 무엇 때문에 머리가 떨어집니까?”

“모두 다 없앨 수 있다고 하지 않더냐.”

“다 없앤 뒤에는 어찌됩니까?”

“이 칼이 있는 줄을 비로소 알게 된다.”

27.

한 스님이 물었다.

“모습에 있어서 무엇이 진실입니까?”

“모습 그대로가 진실이다.”

“당장 어떻게 보여주시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웠다.

28.

한 스님이 물었다.

“허깨비의 근본은 어떤 진실입니까?”

“허깨비의 근본이 원래 진실이다.”

법안(법안)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허깨비의 근본은 진실이 아니다.”

“당장 허깨비를 가지고 어떻게 드러내 보이시겠습니까?”

“허깨비 그대로가 드러나고 있다.”

 

법안스님이 달리 말하였다.

“허깨비라면 아무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시종 허깨비를 떠나는 적이 없겠군요.”

“허깨비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29.

한 스님이 물었다.

“마음 그대로가 부처라 한 것은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마음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 것입니까?”

“토끼 뿔은 없다 할 필요가 없고, 소 뿔은 있다 할 필요가 없다.”

30.

“어떤 사람이 항상 있는 사람입니까?”

“내가 잠시 나왔을 때 마침 만난 사람이다.”

“어떤 사람이 항상 있지 않는 사람입니까?”

“만나기 어렵지.”

31.

한 스님이 물었다.

“움찔했다 하면 부류에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움찔하지 않아도 부류에 떨어진다.”

“무엇이 다른 점입니까?”

“아픈지 가려운지를 알아야 하리라.”

32.

한 스님이 물었다.

“사람마다 다 있다 하였는데, 티끌 속에 있는 저에게도 있습니까?”

스님께서는 “손을 내 보아라” 하시더니 점을 찍으면서 말씀하셨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꽉 찼구나.”

3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 보운(노조보운)*스님께서는 면벽해서 무엇을 보여주려 하셨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서 넘어지면 누구나 땅을 딛고 일어선다’ 하니, 무엇이 넘어지는 것입니까?”

“하려 하면 넘어지지.”

“무엇이 일어남입니까?”

“일어나게.”

35.

한 스님이 물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돌아왔는데 어째서 아버지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까요?”

“도리상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부모자식지간의 은혜는 어디에 있습니까?”

“비로소 부자간의 은혜가 이루어진다.”

“어떤 것이 부자간의 은혜입니까?”

“칼과 도끼로 찍어도 쪼개지지 않는 것이지.”

36.

“영의(영의: 죽어서 입는 옷)를 걸치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나 조산 효만(조산효만)이지.”

“조산 효만, 그 뒤엔 어떻습니까?”

“나는 전주(전주)를 좋아한다네.”

37.

한 스님이 물었다.

“경에서 말하기를, ‘큰 바다는 죽은 시체를 머물러두지 않는다’하였는데, 어떤 것이 큰 바다입니까?”

“만유(만유)를 포함하는 것이다.”

“만유를 포함한다면서 어째서 죽은 시체는 머물러두지 않습니까?”

“호흡이 끊긴 자는 붙어 있지 못하기 때문이지.”

“만유를 포함한다면 무엇 때문에 호흡이 끊긴 자는 붙어 있지 못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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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동록」 p.202각주 참조.

 

“만유의 경우는 자기 힘이 아니기 때문이며, 호흡이 끊긴 자는 자기 성품이 있어서이지.”

“본래자리(향상)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느니 없다느니 해도 되겠지만 용왕이 칼을 어루만지는데야 어찌하겠나.”

3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지해)를 갖추어야 대중이 묻고 따지는 것에 능란하게 대꾸할 수 있겠습니까?”

“말하지 않는 구절(불정구)이다.”

“묻고 따지는 것은 무엇입니까?”

“칼과 도끼로 찍어도 들어가지 않지.”

“이렇게 묻고 따지는데도 긍정하지 않는 자가 있겠습니까?”

“있지.”

“그게 누군데요?”

“나일세.”

39.

한 스님이 물었다.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비싼 물건입니까?”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싸다.”

“어째서 죽은 고양이가 가장 비쌉니까?”

“아무도 값을 매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말 없음을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그렇게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어떻게 드러내야 합니까?”

“어젯밤 선상에서 돈 서푼을 잃었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해뜨기 전에는 어떻습니까?”

“나 조산도 그렇게 왔다.”

“해가 뜬 뒤엔 어떻습니까?”

“나 조산보다야 반달만큼 낫지.”

42.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무엇하느냐?”

“바닥 청소를 합니다.”

“부처님 앞에서 청소하느냐, 부처님 뒤에서 청소하느냐?”

“앞뒤 한꺼번에 청소합니다.”

“내게 신발을 갖다다오.”

오조 사계(오조사계)스님은 그 스님을 대신하여 말하였다.

“스님께서는 무슨 마음을 그렇게 쓰십니까?”

43.

한 스님이 물었다.

“옥석(□옥)스님께 드리오니 잘 다듬으십시오.”

“다듬지 않겠네.”

“어째서 다듬지 않습니까?”

“훌륭한 내 솜씨를 알아야 하네.”

44.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의 권속입니까?”

“백발이 줄을 이었고 정수리에는 한 떨기 꽃이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고덕(고덕)이 말하기를, ‘온 누리에 이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였는데, 어

떤 사람인지 모르겠습니다.”

“겹쳐보이는 달(제이월)이 있어선 안되지.”

“무엇이 겹쳐보이는 달입니까?”

“그대가 대답할 일이오.”

“무엇이 진짜 달(제일월)입니까?”

“험(험)!”

46.

한 스님이 물었다.

“일상생활 가운데서 제가 어떻게 간직해야(보임) 하겠습니까?”

“벌레와 독이 있는 고을을 지나듯 물 한 방울도 축여서는 안된다.”

47.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이 나라엔 사람이 없다고 여겼다.”

“이것이 바로 그것 아닐런지요.”

“목을 베어버려라.”

48.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 해야 몰랐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어야 한다.”

“이는 그래도 스님께 들을 수 있습니다만 어떤 것이 몰랐던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목석)과는 다른다.”

“무엇이 앞이고, 무엇이 뒤입니까?”

“듣지도 못했는가. 몰랐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한 것을.”

49.

한 스님이 물었다.

“성 안에서 칼을 어루만지는 자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지.”

법등(법등)스님은 달리 말하였다.

“그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다 죽이겠다.”

“홀연히 낳아주신 부모를 만나면 어떻하시렵니까?”

“무얼 가리겠나.”

“자기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에게야 어찌하겠느냐?”

“왜 스스로를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50.

한 스님이 물었다.

“가난한 집에서 도둑을 맞았을 때는 어떻습니까?”

“다 바닥낼 수는 없다.”

“어째서 바닥내지 못합니까?”

“도둑이 집안 식구이기 때문이지.”

51.

한 스님이 물었다.

“한 마리 소는 물을 마시고 다섯 마리의 말이 울지 않을 땐 어떻습니까?”

“나는 입 조심할 줄 알지.”

52.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침몰하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겹쳐보이는 달(제이월)이로구나.”

“벗어나려합니까?”

“벗어나려 해도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나면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형틀을 걸머진 자가.”

53.

한 스님이 물었다.

“눈이 모든 산을 덮었는데 무엇 때문에 한 봉우리는 하얗지 않습니까?”

“다름(이)속에 다름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름 속의 다름입니까?”

“갖가지 산색(산색)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54.

약산(약산)스님이 한 스님에게 물었다.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가?”

“일흔 둘입니다.”

“일흔 둘이라고?”

“그렇습니다.”

약산스님은 그대로 후려쳤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묻기를 “그 뜻이 무엇입니까?” 하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앞에 쏜 화살은 그래도 된 듯했는데 뒤에 쏜 화살은 사람을 깊이 맞첬다.”

“어찌해야 이 몽둥이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왕명이 시행되니 제후들이 길을 비킨다.”

55.

한 스님이 향엄 지한(향엄지한: ?~898)스님께 물었다.

“무엇이 도입니까?”

“고목(고목)속에서 용이 우짖느니라.”

“무엇이 도 가운데 사람입니까?”

“해골 속의 눈동자이지.”

그 스님은 알아듣지 못하고서 석상(석상)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고목 안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그래도 기뻐하는 빛을 띠고 있구나.”

“어떤 것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그래도 식(식)을 띠고 있구나.”

이번에도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스님께 물었다.

“어떤 것이 고목 속에서 용이 우짖는 것입니까?”

“혈맥이 끊기지 않는다.”

“어떤 것이 해골 속의 눈동자입니까?”

“다 마르지 않았다.”

“잘 모르겠습니다. 들을 수 있는 자가 있습니까?”

“온 누리에 듣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잘 모르겠습니다. 고목 속의 울음이란 무슨 법문(장구)입니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듣는 자는 모두 죽는다.”

그리고는 이어서 게송을 들려주셨다.

고목에 용이 우짖을 때 진실로 도를 보고

해골에 식이 없어야 눈이 비로소 밝아지리

기쁨과 식이 다할 때 소식도 다하는데

바로 그 사람, 어떻게 탁함 속의 맑음을 분별하랴.

고목용음진견도 촉루무식안초명

희식진시소식진 당인나변촉중청

56.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요지입니까?”

“도랑과 골짜기를 꽉 메웠다.”

5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짐승이 사자입니까?”

“아무 짐승도 가까이 하지 못하지.”

“어떤 짐승이 사자새끼입니까?”

“부모를 능히 삼킬 수 있는 자이다.”

“이미 뭇 짐승이 가까이 하지 못한다 했는데 무엇 때문에 새끼한테 먹힐까요?”

“새끼가 포효하면 할애비까지도 다 없어진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는가?”

“다한 뒤엔 어찌됩니까?”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가지.”

“할애비가 없어졌는데 아비는 어디로 돌아가는지요?”

“돌아갈 곳도 없다.”

“앞에서는 무엇 때문에 온몸이 아비에게 돌아간다 하셨습니까?”

“비유하면 왕자가 한 나라의 일을 해내는 것과 같다.”

다시 말씀하셨다.

“여보게, 이 일은 한쪽에 막혀서는 안되니, 고목 위에서 다시 몇 송이 꽃을 따와야 하리라.”

58.

한 스님이 물었다.

“시비가 일자마자 어지럽게 마음을 잃을 땐 어찌합니까?”

“베어버려라.”

59.

스님께서 두순(두순: 화엄종 초조)과 부대사(전대사)가 지은 법신게(법신게)를 읽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라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겠다.”

문도들이 다시 지어주십사 청하여 게송을 짓고 거기에 주석을 달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는 본래 나 아니며(내가 아니요)

나도 본래 그가 아니라오(그가 아니요)

그는 내가 없으면 죽고(너 때문에 살아가노라)

나는 그와 같으니, 부처이고(그래도 부처는 아니고)

내가 그와 같으니, 노새라네(둘 다 될 수 없도다)

공왕(공왕: 불)의 봉급을 먹지 않는데(임금의 밥을 받거든 그대로 토해낼 것이요)

어느 겨를에 기러기 서신 전하랴(소식이 통하지 않는구나)

나는 횡신창(횡신창)을 부르리니(멋대로 불러봐라)

그대는 배상모(배상모)를 추어라(너와는 같지 않다)

백설곡(백설곡:고상한 노래)을 부르려나 했더니(백설곡이라 여겼더니)

파가(파가: 저속한 노래)가 될까 두렵구나.(이 구절에는 주를 붙일 수 없다)

6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허공에 떴을 땐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아래 있는 자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맞이해 주십시오.”

“달이 진 뒤에 보세.”

「조주어록(조주어록)에도 같은 내용이 있는데, 여기에도 그대로 실어 둔다.」

61.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만 길 절벽에서 몸을 날려 떨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겠느냐?”

대중이 대꾸가 없자 도연(도연)스님이 나오더니 말하였다.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없다는 것이 무엇인데?”

“이제는 후려쳐도 부숴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스님께서는 그를 깊이 긍정하셨다.

62.

서원(서원)스님이 하루는 스스로 목욕물을 데우는데 한 스님이 물었다.

“왜 사미를 시키지 않습니까?”

서원스님은 손바닥을 세 번 비볐다.

한 스님이 이 이야기를 가지고 스님께 물었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무리들은 손뼉을 치며 손바닥을 비볐는데 그 중 서원스님은 이상하구나. 구지(구지)스님의 한 손가락 선(선)*은 알아차릴 곳에서 살피지 못했다 하리라.”

그 스님이 되물었다.

“서원스님이 손뼉을 쳤던 일은 종(노)이나 하는 짓이 아닙니까?”

“그렇지.”

“본래자리(향상)에도 이런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떤 것이 본분사(향상사)입니까?”

스님께서는 “이 중놈아!” 하면서 꾸짖으셨다.

63.

남주(남주) 장수 남평종왕(남평종왕)이 평소에 스님의 도를 전해 듣고 극진한 예우로 모시려 하였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가지 않고 게송을 써서 심부름꾼에게 부쳤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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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실제)라는 비구니가 삿갓을 쓰고 구지(구지)스님을 찾아 세 번 돌고 난 뒤 에 말했다. “바로 말하면, 삿갓을 벗으리다.” 이렇게 세 번 물었으나 모두 대답 치 않으니, 비구니가 그대로 떠나려 하자 스님이 말했다. “해가 이미 저물었으 니, 하룻밤 묵어가라.” “바로 말하면 자고 가겠소.” 대답이 없자 비구니가 떠나 니 이렇게 탄식하였다. “나는 비록 대장부의 형체를 갖추었으나 대장부의 기개 가 없다.” 그리고는 암자를 버리고 제방으로 참선을 하러 떠나려 하니, 그날 밤 에 산신이 나타나서 말했다. “이산을 떠나지 마시오. 오래지 않아 큰 보살이 와 서 스님께 설법을 해주실 것이오.” 과연 천룡(천룡)스님이 암자에 오니 스님이 맞이하고 앞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니, 천룡스님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이매 스님이 당장에 깨달았다. 이로부터 학인이 오면 스님은 손가락을 세웠다. 돌아 와서 말하니, 스님이 칼로 손가락을 끊었다. 펄펄 뛰면서 달아나는 것을 “동자 야!” 하고 부르니, 동자가 머리를 돌렸다 스님이 손가락을 세우니, 동자가 활연 히 깨달았다.

꺾여진 고목나무는 찬 숲을 의지하여

몇 차례 봄을 만났지만 그 마음 변치 않았네

나무꾼은 오히려 보고도 캐지 않는데

이름난 목수가 애써 무얼 찾는가.

최잔고목의한림 기도봉춘불변산

초객견지유불채 영인하사고수심

64.

스님께서 네 가지 하지 말라는 게송(사금게)을 지으셨다.

 

마음의 길 가지 말고

본래의 옷 걸치지 말라

어찌 딱 이것만이랴

정녕 나지 않았을 때를 조심하라.

막행심처로 불주본래의

하수정임마 절기미생시

65.

학인에게 게송으로 법문하셨다.

인연 따라 알아차리면 빨리 상응할 것이나

자체에서 없애고 막으면 더디게 힘을 얻으리

자리자리 없는 곳에서 문득 일어나

우리 부처님, 불가사의 법문을 잠깐 들려주시네.

종연천득상응질 취체소정득력지

별기본래무처소 오사잠설불사의

66.

스님께서 시중(시중)하셨다.

“스님네들이여, 이렇게 법복을 입었으면 도리상 본분사(향상사)를 통달해야 하니, 어정거려서는 안된다.

만일 분명히 깨쳤다 해도 저 모든 성인을 자기 등뒤로 던져 버려야(전) 자유로워질 것이다. 던져버리지 못한다면 설사 완전한 법(십성)을 배운다 해도 그들 등뒤에서 차수(차수)해야 할 것이니, 무슨 큰 소리를 치겠느냐.

자기를 던져버릴 수만 있다면 온갖 잡된(녹중) 경계가 다가온다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가령 진창에 처박힌다 해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 스님이 약산(약산)스님에게 묻기를, ‘삼승교(삼승교)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하자, ‘있지’하였다. ‘이미 있다면 달마스님은 무엇하러 오셨습니까?’ 하자 약산스님은 ‘까닭이 있어서 왔지’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주인공이 되고 나서 자기를 던져버리는 그곳으로 귀결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경전에서는 말씀하시기를, ‘대통지승불(대통지승불)은 십겁(십겁)을 도량에 앉아 있었으나 불법이 목전에 나타나질 않아서 불도를 이루지 못하였다’ 하였는데, 여기서 겁(겁)이라는 말은 ‘막힌다’는 뜻이다. 생각컨데 ‘완전히 이루

다(십성)’ 또는 ‘스미는 번뇌를 끊다’ 하는 것은 온갖 길이 끊겼으나 부처를 이루겠다는 생각을 놓지 못하기 때문에 ‘붙들고 앉아 탐착함을 <차례차례 깨달아 가면서 귀천을 분간하지 못함>이라 한다’고 하는 것이다.

내 총림을 보건대, 항상 이렇게 저렇게 의론하기를 좋아한다. 그래가지고 일을 해낼 수 있겠는가. 그것은 그저 지난일(향거사)을 늘어놓는 것일 뿐이다. 듣지도 못했는가. 남전(남천: 748~834)스님이 ‘설사 너희들이 완전히 이루었다 해도 내 한 가닥 길에 비하면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하신 말씀을.

이쯤 되어서는 정말 치밀해야만 명백하고 자재하리라. 천당.지옥.아귀.축생을 막론하고 어딜 가나 변함없으면 원래 옛사람이나 옛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기뻐하는 마음이 있으면 막히고, 벗어난다면 꺼릴 것이 없다. 옛

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윤회하지 못할까 두려울 뿐이다’ 하였는데 그대들은 어찌 생각하느냐.

요즈음 사람들은 청정한 경계를 말하며 지난일 말하기를 좋아하니, 이것이 가장 난치병이다. 잡된 세속사는 오히려 가벼우나 청정함은 중병이니, 예컨대 부처에 맛들리고 조사에 맛들리면 모두 막힘과 집착이다.

스승(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헤아리는 마음이 바로 파계이다’ 하셨으니, 맛을 챙긴다면 재(재)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맛이라고 하겠느냐. 부처 맛, 조사 맛을 말한다. 기뻐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면 바로 파계이다. 여기서 재를 파하고 계율을 파한다 함은 바로 지금 3갈마(삼갈마)의 경우에 벌써 파괴해 버린 것이다.

거칠고 무거운 탐.진.치는 끊기 어렵다 해도 도리어 가벼우나, 함이 없고 할일 없는 청정한 이것이 바로 더할 나위 없는 중병인 것이다. 조사도 이것 때문에 세상에 나오셨으며 유독 그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당장 부질없는 짓을 하지 말아라. 검둥이 종(조)과 흰 암소가 수행하는 편이 빠를 것이니, 그들은 선(선)이다 도(도)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희들은 부처니 조사니 나아가서는 보리열반까지 갖가지로 치달려 구한다. 그

러니 언제나 쉬고 결판을 보겠느냐. 그것은 모두 생멸하는 마음이라서 아무것도 모르는 멍청한 검둥이 종이나 흰 암소만도 못한 것이다. 그들은 부처도 모르고 조사도 모르며 보리열반과 선악인과까지도 모른다. 배고프면 풀 뜯어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실 뿐이다. 이럴 수만 있다면 이루지 못할까 근심할 것도 없다.

‘헤아려서는 이루지 못한다‘ 했던 말을 듣지 못했는가. 그러므로 있는 줄(유) 알아야만 축생도 끌어올 수 있다. 이 방편을 터득해야 좀 낫다 하겠다.

미륵보살과 아촉불과 모든 묘희세계(묘희세계) 등을 보지 못했는가. 그들 향상인(향상인)을 부끄러움과 게으럼이 없는 보살이라 하나 그들 역시 또 변역생사(변역생사)*를 한다고 한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게으를까 두려운데 본

분사에 있어서 어찌해야 하겠느냐. 매우 치밀해야 할 것이다. 사람마다 하나씩 앉을 자리가 있는데 부처가 세상에 나온다 해도 그것을 어찌하지는 못한다. 이렇게 체득해서 닦아가야지 재빠른 이익을 쫒아서는 안된다.

이 일을 알고 싶은가. 당장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된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며, 삼악도(삼악도)인 지옥과 육도(육도)에 떨어진다 해도 그저 이럴 뿐이다. 이렇게 아무 작용할 틈이 없으나 그렇다고 떠날래야 떠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에게 주인공이 되어 주어야 하리라. 주인공이 될 수 있다면 변역생사를 하지 않으며, 주인공이 되어 주지 못하면 변역생사를 하게 된다.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 하신 영가(영가)스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더냐.

‘무엇이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는 것입니까?’

‘모두 다이다’

‘어떻게 해야 면할 수 있겠습니까?’

‘있음을 알면 된다. 면하여 무얼 하겠느냐. 보리.열반.번뇌.무명 등도 전혀 벗어날 필요가 없으며 잡된 세간사도 있음을 알면 될 뿐, 벗어날 필요가 없으니 벗어나면 변역생사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는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며, 보리니 열반이니 하는 등의 재앙은 적은 것이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변역생사를 하기 때문이다. 변역생사를 하지 않으려거든 그저 부딪치는대로 자유로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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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생사(변역생사):나고 죽으면서 몸을 바꾸는 범부의 분단생사(분단생사)에 상 대되는 개념으로서, 미세망상이 남아 있는 보살의 생사를 일컬음.

* 증도가에 나오는 “활달히 공하다고 인과를 없다 하면(활달공발인과) 아득하고 끝없이 재앙을 부르리로다(망망탕탕초앙화)”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이다.

3. 천 화

스님께서 천복(천복) 신유(신유)년 밤에 지사(지사)에게 물었다.

“오늘이 몇 월 몇 일이냐?”

“6월 15일입니다.”

“나는 평생 행각해 왔는데,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을 삼았을 뿐이다. 내일 진시(진시)에 행각을 떠나련다.”

그 시각이 되자 분향하고 편안히 앉아서 천화(천화)하시니, 세수 62세, 법랍은 37세였다. 전신(전신)을 서쪽 산비탈에 안장하고, 시호는 원증선사(원증선사), 탑은 복원(복원)이라 하였다.

조 산 록

(조당집)

1. 행 록

동산(동산)스님의 법을 이었고, 항주(항주)에 살았다. 법명(위)은 본적(본적)이며, 천주(천주) 포전현(포전현) 사람으로 속성은 황씨다. 어릴 적부터 9경(구경)을 익혀 출가하기를 간절히 바라더니, 19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부모의 허락이 나서 복당현(복당현) 영석산(영석산)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25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은사가 계 받을 것을 허락하였는데 거동과 몸가짐이 마치 오랫동안 익힌 것 같았다. 그 길로 행각을 나서서 처음으로 동산스님 법회를 찾으니, 동산이 물었다.

“그대는 이름이 무엇인가?”

스님께서 아무개라고 대답하니, 동산스님이 다시 말했다.

“본분(향상)에서 다시 말해 보아라.”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말할 수 없는가?”

“아무개라고 이름 붙일 수 없습니다.”

그러자 동산스님이 근기를 깊이 인정하였다.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몇해 만에 비밀한 방에서 종지를 이어받았다.

어느날 동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동산스님이 물었다.

“어디로 가려는가?”

“변함없는 곳으로 가렵니다.”

“변함없는 곳이라면서 어떻게 감이 있겠는가?”

“가더라도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로부터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고 자유롭게 노닐었는데 도반될 만한 사람이 아니면 말하지 않고 깊이 숨어 자유로운 활동을 하지 않더니, 교화할 인연이 이르자 처음에는 조산(조산)에 살다가 나중에는 하옥(하옥)으로 옮겼다.

종릉(종릉) 대왕이 스님의 높은 덕망을 흠모하여 두세 번 사신을 보내 청했으나 스님은 병을 핑계로 가지 않았다.

세번째 사신을 보낼 때, 왕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도 조산대사를 데리고 오지 못하면 나를 만날 필요도 없다.”

사신이 왕명을 받들고 산에 와서 슬피 울며 말했다.

“대자대비를 베푸시어 일체중생을 구제해 주옵소서. 스님께서 이번에도 왕명에 따라 주시지 않는다면 저희들은 잿가루가 됩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신께 후환이 없도록 보증하기 위해 가실 때 옛 어른의 게송 한 수를 전하리다.”

그리고는 다음의 시를 보냈다.

꺾여진 고목나무 푸른 숲에 끼어 있어

몇 차례 봄을 만났건만 그 마음 안 변했네

 

나무꾼도 오히려 돌아보지 않거늘

이름난 목수가 무얼 애써 찾겠는가.

최잔고목의청림 기도봉춘불변심

초객견지유불고 영인나갱고추심

사신이 돌아와서 게송을 바치니, 왕이 보고 멀리 조산 마루를 향해 절을 하면서 말씀하셨다.

“제자는 금생에 영영 조산대사를 뵙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두 곳의 법석(법석)에서 20년 동안, 여름 겨울없이 대중이 항상 천 2, 3백명이나 되었다.

2. 상 당

스님께서 항시 상당하면 대중에게 이렇게 법문하셨다.

“여러분은 내가 말하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제방에는 말로 선사된 이가 많아서 여러분의 귓속이 모두 가득할 것이다. 온갖 법을 의지하지도 않고 접하지도 않고 다만 그렇게 체득하면, 그들의 차별된 알음알이가 그대들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아득한 천지에 온갖 일이 삼(마)같이 갈대(초)같이 가루(분)같이 칡덩굴(갈)같이 많은데 부처님이 세상에 나타나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며 조사께서 세상에 나오셔도 어찌하지 못할 것이니 오직 끝까지 체험해야 허물이 없을 것이다.

그대들은 천만가지 경론으로 도를 이룬 이가 자유롭지 못하고 시종(시종)을 초월치 못했음을 보았을텐데, 대체로 자기 일을 밝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일을 밝히면 저 모든 일을 굴려 그대 자신의 살림을 삼게 되겠지만 만일 자기 일을 밝히지 못하면 그대들이 여러 성인에게 연(연)이 되어주고, 여러 성인이 그대에게 경계(경)가 되어 경계와 인연이 서로 어울려도 깨달을

기약이 없을 것이니 어찌 자유로울 수가 있겠는가. 몸소 완전히 체득하지 못하면 저 모든 일을 굴려 떨쳐버릴 수 없을 것이며, 만일 완전히 체득하여 묘연히 얻으면 모든 일을 굴려 등 뒤로 던져 두고 하인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승(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본체는 미묘한 곳에 있으니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 하셨다. 이 경지에 이르면 귀천(귀천)도 없고 친소(친소)도 없어 마치 큰 부잣집 금고지기(수전노)가 물건을 쓸 때 동과 서를 전혀 모르는 것과 같다. 이 경지에 이르면 승속(승속)을 가리지 않는 것이며, 청탁(청탁)을 나누지 않는 것이다. 이때, 만일 낮은 사람이 나서서 주인보다 더 좋게 옷을 입고 단장했더라도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데야 어쩌랴. 내가 여러분께 말해주겠다. 향해 가는 말(향거어: 향상어)은 맑고 깨끗하나 일 위의 말(사상어: 향하어)은 맑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니, 무엇을 일 위의 말이라 하겠는가? 여기서는 격식을 벗어난 큰 사람을 가려낼 수 없다.“

3. 대 기

1.

한 스님이 물었다.

“제가 스님 회상에 온 뒤로 지금까지, 몸 빼낼 길(출신처)을 찾을래야 찾을 수 없으니, 스님께서는 몸 빼낼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어떤 길을 걸었던가?”

“여기서는 가려낼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몸 빼낼 길을 찾지 못했구나!”

2.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싹을 보고서 땅을 가리고 말을 듣고서 사람을 안다’ 했는데 지금 말하고 있으니 스님께서 가려 주십시오.”

“가릴 수 없다.”

“어째서 가리지 못하십니까?”

“내 솜씨가 좋다는 말을 듣지 못했는가.”

3.

한 스님이 물었다.

“노조(노조)스님이* 벽을 향해 앉았던 것이 무엇을 뜻합니까?”

스님께서 손으로 귀를 막았다.

4.

한 스님이 물었다.

“말이 없을 때엔 어떻게 나타납니까?”

“여기에는 나타날 수 없다.”

“어디에서 나타나야 합니까?”

“어젯밤 삼경에 돈 세 닢을 잃었다.”

5.

한 스님이 물었다.

“나오기 전엔 어떻습니까?”

“지난날 나도 그랬다.”

“나온 뒤엔 어떻습니까?”

“그래도 나에 비한다면 석달 쯤은 밥을 더 먹어야겠구나.”

6.

“옛사람이 벽을 향해 앉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두 그루의 고운 계수나무가 시들어가는구나.”

7.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서 원각(원각)을 말하면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노조 보운(노조보운)스님은 학인이 와서 법을 물으면 언제나 벽을 보고 앉아서 아무 대꾸도 안하는 것으로 지도했다.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 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

하고 원각을 말하는 것입니까?”

“마치 어떤 사람이 객지에서 집안 일을 이야기하는 격이다.”

“어떤 것이 그 원각의 성품도 윤회와 같다는 것입니까?”

“분명히 도중(도중)에 있구나.”

“길을 걷지 않고도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말할 길이 있으면 원각이 아니다.”

“그 말할 수 없는 자리도 유전(류전)합니까?”

“역시 유전한다.”

“어떻게 유전합니까?”

“또렷또렷하지 않아야 한다.”

8.

한 스님이 물었다.

“눈썹과 눈이 서로를 알아봅니까?”

“알아보지 못한다.”

“어째서 알아보지 못합니까?”

“같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누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눈썹이 눈은 아니다.”

“무엇이 눈입니까?”

“뚜렷한 것이다.”

“무엇이 눈썹입니까?”

“나도 그것을 의심한다.”

“스님께선 어찌하여 의심하십니까?”

“내가 만일 의심치 않는다면 뚜렷한 것이기 때문이다.”

9.

한 스님이 물었다.

“항상 생사 바다에 빠져 있는 이는 누구입니까?”

“겹쳐보이는 달(제이월)이다.”

“벗어나고자 합니까?”

“벗어나려 하나 길이 없을 뿐이다.”

“벗어날 때엔 어떤 사람이 그를 맞이합니까?”

“무쇠칼(철가) 쓴 자가 맞이한다.”

10.

한 스님이 물었다.

“밝은 달이 중천에 떴을 때는 어떻습니까?”

“그래도 섬돌 밑의 첨지이다.”

“스님께서 섬돌 위로 끌어올려 주십시오.”

“달 떨어진 뒤에 만나자.”

11.

한 스님이 물었다.

“매우 희박할 땐 어떻게 의지해야 합니까?”

“들릴락말락(희이)하지 않느니라.”

“무얼 하십니까?”

“재채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코를 흘려야겠습니다.”

“재채기하지 않는데 무슨 코를 흘리겠느냐.”

12.

한 스님이 물었다.

“소 한 마리가 물을 마시니 말 다섯 마리가 울지 못했는데 어떻습니까?”

“조산(조산)에 효도가 가득하다.”

13.

한 스님이 물었다.

“형상(상)에서 어느 것이 진실입니까?”

“형상 그대로가 진실이다.”

“무엇을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스님께서 찾종지를 번쩍 들어올렸다.

14.

한 스님이 물었다.

“도성 안에서 칼(검)을 휘두르는 이는 누구입니까?”

“나 조산이다.”

“누구를 죽이려 하십니까?”

“닥치는대로 다 죽인다.”

“갑자기 전생(본생)의 부모를 만나면 어찌하시렵니까?”

“무엇을 가리겠는가?”

“자기 자신이야 어쩌겠습니까?”

“누가 나를 어쩌겠는가?”

“어째서 죽이지 않습니까?”

“손을 쓸 수가 없어서이다.”

15.

한 거사(속사)가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누구에게나 있다’ 했는데 티끌세상에 사는 저에게도 있겠습니까?”

스님께서 손을 펴서 손가락을 꼽으면서 말했다.

“하나.둘.셋.넷.다섯 꽉 찼구나.”

16.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 쓰러진 이가 땅을 딛지 않고 일어나는 법은 없다’ 하였는데 무엇이 땅입니까?”

“한 자(척), 두 자.”

“무엇이 쓰러지는 것입니까?”

“긍정하는 그것이다.”

“무엇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일어났다.”

17.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지해(지해)를 갖추어야 대중의 물음에 잘 대답하겠습니까?”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말로써 표현하지 않는다면 묻기는 무엇을 묻겠습니까?”

“칼과 도끼로 쪼개도 들어가지 않는다.”

“그렇게 물음에 대답했을 때에도 긍정치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있다.”

“어떤 사람입니까?”

“나 조산이다.”

 

18.

한 스님이 물었다.

“환(환)의 근본이 어찌 진실입니까?”

“환의 근본은 원래 진실이다.”

“환인데 어떻게 나타납니까?”

“환 그대로가 나타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환을 떠나 있지 않았겠습니다.”

“환의 모습은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19.

한 스님이 물었다.

“어떤 도반을 가까이해야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들을 수 있겠습니까?”

“한 이불을 덮는 자이다.”

“그것은 스님께서나 들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듣지 못한 것을 항상 듣는 것입니까?”

“목석(목석)과 같을 수는 없다.”

“어느 것이 먼저이고 어느 것이 나중입니까?”

“듣지 못했는가? 듣지 못했던 것을 항상 듣는다 하였다.”

20.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알지 못하는데 삵과 암소는 알고 있다’ 하였는데 부처님들과 조사들은 어째서 알지 못합니까?”

“부처님들은 비슷하기 때문이며 조사들은 인가(인)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삵과 암소는 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삵과 암소라는 사실이다.”

 

“부처님과 조사들은 어째서 비슷하거나 인가에 집착합니까?”

“사람들이 막힘이 없으면 이 가운데서 묘하게 알 것이다.”

21.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천제(천제: 성불할 가망이 없는 종자) 한 사람을 죽이면 한량없는 복을 받는다’ 하였는데 무엇이 천제입니까?”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는 자이다.”

“무엇이 죽이는 것입니까?”

“부처다 법이다 하는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는 스님께서 다시 그에게 물으셨다.

“이것은 밝은 천제인가 어두운 천제인가?”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흰 뱃속에 검은 웃옷을 입었다.”

이렇게 말한 뜻은 소견을 일으킨 것은 밝음이므로 희다 하고 소견을 일으키지 않은 것은 어두움이므로 검다 하였다.

 

22.

스님께서 경전에 있는 일을 들어 대중에게 물었다.

“묻는 이가 없어도 스스로 설법하여 도 닦는 것을 칭찬한다는데 무엇이 묻는 이 없이 부처님 스스로 설하는 것이겠는가?”

누군가가 대답했다.

“온 누리 안에서 한 사람도 듣는 이가 없는 것입니다.”

“비록 그렇게 한 글자를 따내고 한 글자를 보탠들 불법이 크게 퍼지겠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으니, 스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온 누리에 한 사람도 듣지 못하는 이가 없다.”

23.

스님께서 법어를 내리셨다.

“이 자리는 높고 넓어서 나는 오를 수가 없으니, 무슨 자리라 불러야 되겠는가?”

강(강)상좌가 대답했다.

“이 자리라고 불러도 벌써 더럽힌 것입니다.”

“오를 이가 있기는 하겠는가?”

“있습니다.”

“누구인가?”

“발을 떼놓지 않는 사람입니다.”

“오를 수 있는 이는 자리 위의 사람이 아니겠는가?”

“역시 왼쪽과 오른쪽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리 위의 사람인가?”

“이 자리에 오르지 않은 사람입니다.”

“오르지 않는다면 자리는 해서 무엇하겠는가?”

“없으면 오를 수 없습니다.”

“그 자리는 따로 사람이 있는가, 자리 그대로를 최상의 몸으로 삼는가?”

“자리 그대로를 최상의 몸으로 삼습니다.”

스님께서 칭찬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24.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대광(대광)에서 옵니다.

“올 때에 광명이 나타나던가?”

“나타나지 않으면서도 항상 나타납니다.”

“비추던가?”

“비추지는 않습니다.”

“큰 광명(대광)은 어디에 있던가?”

그 스님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옥새(옥새)로 여겼더니, 알고 보니 천남각(천남각)*이로구나!”

스님께서 다시 대신 말씀하셨다.

“비추지 않아야 비로소 큰 광명이 됩니다‘ 하라.”

25.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자리를 차지하고 옷을 입는다’ 했는데 무엇이 자리를 얻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대답했다.

“이쪽 저쪽을 살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옷을 입는 것입니까?”

“벗을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옷이기에 벗을 수가 없습니까?”

“사람마다 모두가 가지고 있는 옷이 그것이다.”

“이미 사람마다 모두 가지고 있다면 입어서 무엇하겠습니까?”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들에 자생하는 흔한 풀. 무용지물을 비유함.

“일어서건 쓰러지건 항상 따라다니며 어디를 가나 살 길이 트인다‘ 한 말을 듣지도 못했는가?”

“이 뒤에 저절로 보게 될 일은 무엇입니까?”

“옷 입었음을 인정히 않는 것이다.”

스님께서 또 말했다.

“옷을 벗고 와서 나를 만나라.”

26.

한 스님이 물었다.

“10년을 돌아가지 못해 오던 길을 잊었다 하니, 무슨 뜻입니까?”

“즐거움을 얻고는 근심을 잊어버린다.”

“어떤 길을 잊었습니까?”

“열 곳(십처)이 바로 그것이다.”

“본래의 길도 잊습니까?”

“그것까지도 잊는다.”

“어째서 9년이라 하지 않고, 꼭 10년이라 하였습니까?”

“만일 한 곳이라도 돌아가지 않는 곳이 있으면 나는 몸을 나타내지 않는다.”

27.

한 스님이 물었다.

“경전에 말씀하시기를, ‘동자가 몸을 던지니, 야차(야차)가 게송 반마디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것이 동자가 몸을 던진 것입니까?”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부처님은 수행 과정에서 법을 얻기 위해 야차에게 몸을 던졌다.

“단정(단정)함을 잃은 것이다.”

“어떤 것이 게송 반마디를 읊은 것입니까?”

“흰 구름이 가시덤불에 얽힌 것이다.”

“어떤 것이 단정함을 잃는 것입니까?”

“소부(소부) 잃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8.

한 스님이 물었다.

“대궐(옥전)에 이끼가 끼었을 때는 어떻습니까?”

“제자리(정위)를 지키지 않는다.”

“팔방에서 조공을 바쳐올 때엔 어찌합니까?”

“절을 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엇하러 조공을 바치러 왔겠습니까?”

“어기는 건 잠시 어긴다 해도 순응하는 것이 신하의 분수이다.”

“임금의 뜻이 무엇입니까?”

“추밀(추밀: 왕명을 출납하는 관직)도 그 속 마음을 모른다.”

“그렇다면 나라를 다스리는 공은 몽땅 대신들에게 돌아가겠습니다.”

“임금의 성격을 알기나 하는가?”

“바깥 사람들은 감히 논할 것이 아닙니다.”

29.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이름이 무엇인가?”

“지륜(지륜)입니다.”

“지륜과 법륜(법륜)은 거리가 얼마나 되는가?”

지륜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막공(막공)스님이 대신 말씀하셨다.

“같기도 하고 같지 않기도 합니다.”

소공(소공)스님이 대신 말하였다.

“털끝만치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강(강)상좌가 대신 말하였다.

“가까워지려면 가까워지고 멀어지려면 멀어집니다.”

이에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가까워지려면 가까워지는 것인가?”

“같은 바퀴 자국(철)에 실린 것입니다.”

“무엇이 멀려면 먼 것인가?”

“여러 수레와 같지 않은 것입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가?”

“뭇 수레와 함께하지 않는 것이 먼저입니다.”

“옳은 말이다. 옳은 말이다.”

30.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법신의 주인입니까?”

스님께서 잠자코 계시자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스승(선사)께서 말씀하시기를, ‘공부가 깊지(현) 않으면 속된 중으로 타락하리라’ 하셨다는데 무엇이 깊음입니까?”

“그대가 질문하기 전의 일이다.”

“그렇다면 그대로가 깊음이 아니겠습니까?”

“깊다면 속된 중으로 타락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깊음입니까?”

“질문을 바꾸어라.”

31.

한 스님이 물었다.

“3승 12분교에도 조사의 뜻이 있습니까?”

“있다.”

“이미 조사의 뜻이 있었다면 다시 서쪽으로부터 와서 무엇하겠습니까?”

“그저 3승 12분교에 조사의 뜻이 있기 때문에 서쪽에서 왔다.”

3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스님의 가풍입니까?”

“그렇게 술취한 놈에게 물어서 무엇하겠는가?”

그리고는 또 말씀하셨다.

“그대가 묻지 않았더라면 나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33.

“어떤 것이 다른 종류(이류)입니까?”

스님께서 “다른 가운데서는 종류를 대답치 않는다” 하시고는 또 말씀하셨다.

“내가 그대에게 말로 해준다면 나귀해(□년)엔들 다름을 알겠는가?”

또 말씀하셨다.

“나에겐 단지 한 쌍의 눈썹이 있을 뿐이다.”

34.

한 스님이 물었다.

“문수(문수)는 어째서 부처님(구담)에게 칼을 뽑았습니까?”

“그대의 오늘을 위해서이다.”

“부처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를 잘 해친 이라 칭찬하셨습니까?”

“대비(대비)로 뭇 중생을 가엾이 여겨 덮어 주었기 때문이다.”

“다 죽인 뒤엔 어찌 됩니까?”

“죽지 않는 자임을 비로소 안다.”

“그 죽지 않는 자는 부처님에게 어떤 권속입니까?”

“그대에게 이름을 지어주면 되겠으나 권속이 되지 않을까 걱정일 뿐이다.”

“하루 동안 어떻게 시봉해야 됩니까?”

“그대는 반드시 잘 해치는 이가 될 것이다.”

35.

한 스님이 물었다.

“「화엄경」에 말씀하시기를, ‘큰 바다는 시체를 간직하지 않는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큰 바다입니까?”

“온갖 것(만유)을 포용한다.”

“무엇이 시체입니까?”

“숨이 끊어진 자이니 그들을 붙여두지 않는다.”

“이미 만유를 포용한다면 어째서 숨이 끊어진 자를 붙여두지 않습니까?”

“큰 바다는 그러한 공덕이 없는데 숨이 끊어진 자는 그러한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큰 바다에도 본분사(향상사)가 있습니까?”

“있다 해도 되고 없다 해도 되겠지만 용왕이 칼을 빼들고 있음이야 어찌하겠는가?”

36.

스님께서 한 스님에게 물었다.

“손에 든 것이 무엇인가?”

“부처님 머리 위의 보배 거울입니다.”

“부처님 머리 위의 보배 거울이라면 어째서 그대 손에 들어 있는가?”

대답이 없으니, 스님께서 대신 말씀하셨다.

“‘부처님들도 역시 저희 후손들입니다‘ 하라.”

37.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부처님도 도를 알지 못하니, 내 스스로 수행을 해야 한다’ 하였는데 어떤 것이 부처님이 도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까?‘

“부처의 경계에는 안다 할 것이 없다.”

석문(석문)스님이 말씀하셨다.

“더 알아서 무엇에 쓰겠는가?”

“어떤 것이 내 스스로 수행을 하는 것입니까?”

“위로 향하는 일에는 일이 없다.”

“그것뿐입니까, 아니면 별다른 도리가 있습니까?”

“그것뿐이라 한들 누가 어찌하겠는가?”

38.

한 스님이 물었다.

“잘 간직(보임)하는 사람이 한 생각을 잃을 때는 어찌됩니까?”

“비로소 간직을 하게 된다.”

“큰 마왕(마왕)이 되었을 때는 어찌합니까?”

“부처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마지막 일(말후사)은 어떻습니까?”

“부처도 그 일을 하지 않는다.”

39.

한 스님이 물었다.

“큰 이익을 짓는 사람도 비슷해질 수 있습니까?”

“비슷할 수 없다.”

“어째서 비슷하지 못합니까?”

“듣지도 못했는가? 큰 이익을 짓기 때문이다.”

“이 사람도 존귀한 분을 압니까?”

“존귀한 분을 모른다.”

“어째서 존귀한 분을 모릅니까?”

“그가 나 조산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조산입니까?”

“큰 이익을 짓지 않는 자이다.”

40.

한 스님이 물었다.

“듣건대 감천(감천)스님이 말씀하시기를, ‘밭 가는 농부에게서 소를 빼앗고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다’ 했다는데, 무엇이 밭 가는 농부의 소를 빼앗는 것입니까?”

“노지(로지)를 주지 않는 것이다.”

“무엇이 주린 사람의 밥을 빼앗는 것입니까?”

“제호(제호)를 물리치는 것이다.”

41.

한 스님이 물었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얕으나 쓸 때엔 깊다’ 하였다는데, 볼때에 얕고도 얕다는 것은 그만 두고, 무엇이 깊은 것입니까?”

이에 스님께서는 차수(차수)하고 눈을 감으셨다. 학인이 더 물으려는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칼(검)은 빠뜨린 지 오랜데 무엇하러 뱃전에다 표시를 하려는가?”

42.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현묘함(현)입니까?”

“어째서 진작 묻지 않았는가?”

“무엇이 현묘함 가운데의 현묘함입니까?”

“원래 한 사람이 있느니라.”

43.

한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 신풍(신풍: 동산)스님의 말을 인용하여, ‘한 빛깔이 있는 곳에 나눌 수 있는 이치와 나눌 수 없는 이치가 있다’하셨다는데 어떤 것이 나눌 수 있는 것입니까?”

“한 빛깔과는 같지 않다.”

“그렇다면 오늘(금일)을 따르지는 말아야겠습니다.”

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ꠏ

* 초(초)나라에 어리석은 사람이 물에다 칼을 빠뜨리고는 그 자리에서 뱃전에다 표 시해 두었다. 그리고는 강가에 닿자마자 표시해 둔 물밑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 다.

“그렇다.”

“어떤 것이 나눌 수 없는 이치입니까?”

“가릴 수가 없는 곳이다.”

“가릴 수 없는 그 자리야말로 부자(부자)가 온통 한 몸이 되는 곳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 그런데 그대도 알고 있었던가?”

“바야흐로 한 빛이 될 때엔 깨달음(향상사)도 없는 것으로 압니다.”

“깨달음엔 본래 한 빛이랄 것도 없다.”

“그 한 빛이란 것도 종문(종문)의 종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면 어떤 사람에게 말해 줍니까?”

“종문에 알아들을 이가 없기 때문일 뿐이니, 그러기에 그런 사람을 위해서 말해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활짝 깨치는 이(돈)도 있고 근기가 낮은 이(약)도 있겠습니다.”

“내가 활짝 깨치는 이와 근기 낮은 이를 말했다면 삿됨에 빠지는 것이다.”

“종문 안의 일을 어떻게 알아야 되겠습니까?”

“그 안의 사람이라야 한다.”

“어떤 사람이 그 안의 사람입니까?”

“내가 이 산에 살기 시작한 이래 아직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지금 사람 중에는 그런 이가 없다 해도 스님께서는 옛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받으시겠습니까?”

“손을 펴지만 말라.”

“그렇게 하면 스님께서 무엇인가를 주시겠습니까?”

“옛사람이 그대를 꾸짖는구나.”

44.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칼날없는 칼입니까?”

“삶거나 단련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사용하는 자는 어떻습니까?”

“맞서 오는 자는 모두가 죽는다.”

“맞서는 이가 없으면 어찌합니까?”

“역시 몰살을 당해야 한다.”

“오지 않는 이가 어째서 모두 몰살되어야 합니까?”

“듣지 못했는가? 모두 다 해치운다는 말을.”

“다한 뒤에는 어찌 됩니까?”

“이러한 칼이 있었음을 비로소 알게 된다.”

45.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사문(사문)의 모습입니까?”

“눈을 까뒤집고 봐도 안보이는구나.”

“그렇다면 가사는 입었습니까?”

“가사를 입었다면 사문의 모습이 아니지.”

“그렇다면 무엇이 사문의 행(행이)입니까?”

“머리에는 뿔을 이고 몸에는 털을 썼다.”

“이 사람은 누구의 힘을 빌어 이렇게 되었습니까?”

“종일 남의 힘을 얻어 쉬지 않고 다닌다.”

“이 사람은 무엇을 귀하게 여깁니까?”

“머리에 뿔을 이지 않는 것과 몸에 털을 쓰지 않은 것이다.”

4. 천 화

스님께서 천복(천복) 원년(원년) 신유(신유) 여름에 졸연히 한마디 하셨다.

“운암 노스님도 62세를 사셨고, 동산스님도 62세에 열반에 드셨다. 나 조산도 올해 62세이니, 앞 사람의 뒤를 따라 하나의 관례를 이루는 것이 좋겠다.”

윤(윤) 6월 15일, 밤이 되자 주사(주사)에게 물었다.

“오늘이 며칠인가?”

“윤 6월 15일입니다.”

“조산은 한평생 행각을 하는 동안 가는 곳마다 90일로 한 철을 삼았다.”

그리하여, 이튿날 진시(진시)가 되자 열반에 드시니, 춘추는 62세, 승랍은 37세이며, 시호를 원증(원증)대사라 하였다.

 

 

 

 

 

 

 

 

 

 

조동록

 동   산  록  (오가어록)  1. 행   록   스님의 휘(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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