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시집 《님의 침묵》을 읽는다
|
1. 지금-여기에서
시집 《님의 침묵》이 백 년이라는 시간의 마모를 견디며 우리 근대사의 기념비적 시집으로 남았다. 2025년인 내년이면 이 시집이 집필된 지 백 년이 되며, 이듬해인 2026년은 출간된 지 백 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 근대시사(近代詩史)에서 시집에 담긴 의미값이 소실되지 않은 채 백 년의 시간을 거뜬히 견딘 시집은 그리 많지 않다. 시집 《님의 침묵》이 이처럼 시간의 마모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우리 근대시의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도 문학적 예술미와 사유의 힘을 담아낸 사상성이 행복하게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집은 개인의 정서적 염원을 담은 한 권의 시집이면서 동시에 삶과 세계를 사유하는 길 안내를 자처한 한 권의 철학서이다. 또한 이 시집은 식민지를 살아가는 당대적 삶을 성찰하고 해방적 미래를 염원하는 역사성을 확보하면서도 동시에 보편적 삶의 모순과 그 극복이라는 초역사성을 함유하고 있다. 시와 철학, 역사와 형이상학을 가로지르는 이러한 사유의 원천이 불교사상으로부터 수혈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보면, 시집 《님의 침묵》은 한국 근대 불교시의 기념비적 시집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념비성은 니체(Nietzsche)가 근대적 역사 인식 방법을 비판하면서 열거한 기념비적 역사 인식 태도와는 결을 달리한다. 니체는 기념비적 역사 인식 태도를 비판하면서 이런 태도가 당대의 문제를 도외시하고 과거의 영웅에 감탄하는 일종의 ‘가장무도회의 의상’과도 같다고 보았다. 이러한 니체적 비판과 달리 이 시집이 갖는 기념비성은 과거나 현재에 고착되어 그것을 미화하고 가장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들을 직시하게 하면서 다른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생성의 사유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한용운이 조선불교의 개혁을 외치며 새로움은 파괴로부터(《조선불교유신론》) 시작된다고 외쳤던 문제의식을 이 시집의 배면에 놓고 보면, 이런 점은 더욱 돌올해진다. 선승 한용운과 시인 한용운은 당대적 삶의 모순을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예기하고자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주장한 불교 유신(維新)의 길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이 시집이 담고 있는 새로운 삶의 모색 역시 진행형으로 남아 있다. 백 년의 시간을 견디며 우리 앞에 놓인 이 시집을 찬미와 예찬의 대상으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 우리 시대의 문제와 적극적으로 대화하도록 하는 다시 읽기가 종요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용운은 새로운 현실을 만들고자 하는 강렬한 발원을 담아 이 시집을 썼다. 그는 주어진 경계를 지키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를 허무는 사람이었다. 안주하고 답습하는 삶이 아니라 창조하고 저항하는 삶을 살아내고자 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삶의 태도가 이 시집의 정동(affect)적 에너지로 작동했기 때문에 백 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었을 듯하다.
우리는 지금 재난과 파국이 일상화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인류의 생존 시간이 백 년도 남지 않았다는 인류 절멸의 경고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전송되는 전쟁과 재난의 참상은 사람과 삶, 지구와 우주에 대한 친숙한 사유들과의 결별을 요청받고 있다. 홀로의 삶이 만연하면서 사회적 공동체가 와해되고 기후재앙으로 인해 생태공동체가 파괴되면서 인간, 삶, 세계 어느 한 축도 위태로움 없이 바라보기 어려운 파국의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위기는 신분제 사회가 와해되고 제국과 자본이 결탁한 근대적 가치가 삶의 기율로 자리 잡아 갈 때, 사람과 삶, 삶과 세계에 대한 인식을 ‘깨침의 언어’로 찾아 나가고자 한 한용운의 고뇌를 떠올리게 한다.
2. 고가(高價)의 시집, 두 개의 광고문
《님의 침묵》은 1원 50전짜리 시집이다. 지금의 화폐가치로 보면 이 시집 가격은 값으로 인지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하지만 출간 당시인 1926년의 경제 상황에서 보면 대단히 높은 값을 매긴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시집이 출간된 1926년은 이 땅에서 근대 시단이 건설 중이던 시기로, 창작시집이라고 해야 김억의 《해파리의 노래》(1923)나 김소월의 《진달래꽃》(1925)을 포함하여 20권 정도였고, 번역 시집까지 포함해도 30권을 넘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127편의 시를 수록한 《진달래꽃》이 1원 20전이었고, 대부분의 시집은 1원 안팎의 가격으로 판매되었다. 이들과 비교하면 《님의 침묵》은 상당히 고가의 시집이었다. 현진건이 1924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주인공 김 첨지가 3원 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운수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교해 보아도, 1원 50전이라는 책값은 시집의 가격으로는 고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쌀값으로 환산하여 화폐가치에 실감을 부여한 자료에 따르면, 1920년대에 1원은 현재로는 약 1만 2천 원을 웃도는 환산 가치를 가진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환산에서 삶의 실상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실물에 견주어 보면 시집이 어느 정도의 값어치로 인식되었을지 확인할 수 있는데, 당시 천일염 100근이 1원 50전이고, 한 달 치 신문구독료가 1원이었다고 한다. 이런 물가를 고려하면 이 시집이 상당히 고가였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승려였던 시인이 보급용 시집을 발간하면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매긴 까닭이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근대에 접어들면서 문학의 시장화가 시작되고 있었지만, 시집은 그때나 지금이나 판매고를 올릴 수 있는 장르는 아니다. 더군다나 세속적 가치와 거리를 두고 사는 승려 시인이 시집 판매로 잇속을 차리려 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따라서 이렇게 높은 가격을 매긴 데에는 시집의 내용에 대한 시인과 출판사 측의 상당한 자부심이 작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자부심은 시집 출간과 함께 진행된 시집 홍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간과 동시에 이 시집은 양대 일간지인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광고가 실리면서 대중에게 널리 소개되었다. 신문사에 책을 보내 신간 소개 한 줄로 출간을 알리는 소극적인 방식이 아니라 공들여 쓴 광고문과 함께 시집 발간을 알리는 적극적인 홍보 방식이 채택되었다. 다소 장황하게 쓴 시집의 광고 문안은 이렇다.
사랑의 폭포냐 애국의 산호도(珊瑚島)냐 상화(想華)는 아름답고 정조는 괴롭다. 그러나 한 줄기 희망이 눈에는 비치지 아니하나 마음으로는 볼 수 있다. 미소인 듯하더니 눈물이 되고 눈물인 듯하더니 실안개 뒤에 숨어 있는 장미화가 된다. 웃으려야 입술이 움직이지 않고 울려야 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새 생명을 찾기 위하여 이 시를 읽어도 무방하다.
이 광고 문구를 보면 이 책은 사랑이라는 개인적 정서와 애국이라는 민족적 정서를 두루 포함하면서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시집은 정서적 표현마저 억압된 현실에서 생명력을 잃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새 생명을 회복하도록 돕는다고 소개되고 있다. 비유적이고 우회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이 시집에 담긴 메시지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는 광고문이다.
한편, 당시 불교계 기관지였던 잡지 《불교》(제24호, 1926년 6월)에도 신간 소개 형식으로 광고문이 게재되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통철(洞徹)한 선지(禪旨)와 치밀한 사색으로 경오(警悟)가 극(極)하고 우의(寓意)가 깊은 격외(格外)의 선어(禪語)며 발췌(拔萃)한 산문이라. 누구나 아니 읽을 수 없고 아니 찬탄할 수 없는 것은 만구(萬口)의 동평(同評)”이라고 시집을 소개하고 있다. 대중들이 보는 일간신문에 낸 광고문과 달리 여기서는 불교적 사색을 담은 텍스트로 이 시집을 소개하는 차이를 보인다. 시집을 소개하는 데 있어서 분명한 시각 차이를 보이지만, “통철(洞徹)한 선지(禪旨)”나 “격외(格外)의 선어(禪語)”라는 평가나, “누구나 아니 읽을 수 없고 아니 찬탄할 수 없는 것은 만구(萬口)의 동평(同評)”이라는 문구를 보면, 이 광고에서도 모종의 자신감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은 동일하다. 물론 이런 자부심이 시인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인지 상업적으로 기획된 출판사의 전략 결과인지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인식은 시집 발간 과정에서 시인과 출판사 간에 공유되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그 결과가 높은 시집 가격과 두 개의 광고문으로 표출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하나 흥미로운 것은 이질적인 독자를 향한 두 광고문에는 선승과 시인의 면모가 반사적으로 투영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일반 대중을 향한 광고문에는 ‘마음’으로 볼 수 있다는 이심전심의 선적 시각이 강조되며, 불교계의 독자들에게는 깊은 ‘우의(寓意)’라는 시적 의장이 강조된다. 시(詩)와 선(禪)의 횡단, 그 경계를 넘나드는 정동의 힘이 처음부터 이 시집을 감싸고 있었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3. 1925년, 반딧불 모으는 시간
한용운에게 시와 선, 선과 시는 평생 그의 영혼을 감싸는 주조음이었다. 이 둘의 화음이 어우러지면서 섬광처럼 빛을 발한 결정적 시간이 시집 《님의 침묵》을 탄생시킨 1925년이다. 시인은 세속 나이 47세가 되던 여름과 가을 동안을 내설악에 자리한 오세암과 백담사를 오가며 이 시집을 집필하고 탈고하였다. 그렇다면 1925년은 그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1925년은 그가 출가한 지 20여 년이 되는 시기였다. 승려가 된 후 그는 종횡무진의 삶을 살아냈다. 세계의 변화를 알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세계여행을 시도했지만 죽음의 위협을 느끼며 귀국해야 했다. 신식 교육을 받고 문명의 실상을 보고자 도쿄로 유학을 떠났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서둘러 귀국해야 했다. 좌절과 시련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우리 불교의 나아갈 방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조선불교유신론》을 썼고, 방대한 경전을 대중의 눈높이에서 정리한 《불교대전》을 출간했다. 그러면서 그는 불교계의 현실 변화를 위해 몸과 마음을 쏟아부었다. 또한 그는 일본 식민체제를 경험하면서 점차 민족의 현실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한일병합 후에 서간도로 건너간 그는, 당시 건설 중이던 독립운동 기지를 둘러보고 독립운동 지도자들과도 만났다. 이들 경험은 그를 거족적인 3 · 1운동의 중심으로 밀어 올렸다.
이런 활동을 해 나가면서도 그는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세상을 헤쳐나가는 섭세(涉世)의 길과 세상과 거리를 두는 출세(出世)의 길을 글쓰기를 통해 견주었다. 마음 수양의 길을 안내하는 《정선강의채근담(精選講義菜根譚)》(1917년)과 대중지의 성격을 띤 잡지 《유심(惟心)》(1918)을 발간하면서 마음 수양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이 많은 일들을 해내면서도 언제나 시를 썼다. 한시 창작단 ‘신해음사(辛亥唫社)’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한시를 발표했고, 한글 문장을 연마하며 자유시 형식의 시를 모색했다. 이처럼 불교와 민족의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실천적 활동과 정신적 수양이 문학적 연마와 함께 그의 삶에 역동적으로 갈마들었다. 그 사이 두 차례의 죽음의 위기도 겪었고 감옥에서 2년 10개월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런 열정적인 시간을 거친 뒤, 그는 1925년의 여름에 출가를 결행한 운명의 장소인 내설악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한용운은 시(詩)만으로도 선(禪)만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정신적 창발성을 경험하게 된다. 그에게 1925년은 그런 시간이었다.
한용운은 “새벽종을 기다리면서 붓을 던집니다.”로 끝을 맺는 시집의 말미에 “을축팔월이십구일밤 끝(乙丑八月二十九日밤 )”이라고 집필 완료 시기를 적시해 두었다. 양력으로 환산해 보면 10월 16일이다. 이 무렵이면 내설악에 단풍이 아름답게 드는 시절이다. 그는 가을의 절정에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님의 침묵〉)라는 이별의 탄식에서 시작해서 “네 네 가요 지금 곧 가요”(〈사랑의 끝판〉)라는 만남의 예기로 끝나는 88편의 시를 완성했다. 서문인 〈군말〉과 발문인 〈독자에게〉까지 합치면 총 90편에 이르는 님의 노래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시집의 구조 면에서도 이 책은 서문과 발문이 호응하고, 첫 시와 마지막 시가 호응하는 높은 완결성을 보인다. 시인은 그 완결을 스스로 확인하듯 “을축팔월이십구일(乙丑八月二十九日)밤 ”이라고 쓰고 있다. 그동안 쓴 시를 모아 편집한 통상의 시집이 아니라 철저하게 의도하고 기획한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한 것이다.
이 시집을 탈고하기 직전에 그는 조동종 계열의 게송집인 《십현담》에 비평적 해석을 더한 《십현담주해(十玄談註解)》를 썼다. 한문으로 된 이 주해집의 말미에는 “을축유월칠일필(乙丑六月七日畢)”이 적시되어 있다. 을축년의 음력 유월과 팔월에 찍은 두 번의 마침표는 서로 맞닿아 있다. 집필한 시공간이 겹치기도 하지만 내용적으로도 두 저작은 상당한 상호텍스트성을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십현담주해》는 한용운의 불교 이해가 어떤 시각을 견지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요긴한 바로미터(barometer)이다. 이 책은 동안상찰(同安常察)이 지은 게송인 《십현담》에 한용운이 비(批)와 주(註)를 붙여 비평적 해석을 더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이들 비와 주를 통해 한용운의 사유를 읽어낼 수 있다.
이 게송집에는 심인(心印)에서부터 시작하여 조의(祖意) · 현기(玄機) · 진이(塵異) · 연교(演敎) · 달본(達本) · 파환향(破還鄕) · 전위(轉位) · 회기(廻機)를 거쳐 일색(一色)으로 마무리되는 총 10편의 칠언율시가 수록되어 있다. 표면적으로는 각각의 시편이 수행의 단계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시편마다 궁극의 이치를 시적 언어로 담아내고 있어서 엇비슷한 사유가 중첩되거나 변주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어느 게송에 대한 주해라도 한용운의 사유를 포착하기는 어렵지 않다.
한용운은 〈회기(廻機)〉 편에서 ‘다른 길로 가도 또한 윤회한다(行於異路且輪廻)’라는 원문에 이런 비(批)를 붙인다. “낚싯대 메고 풍월을 따라나서니 온 천지가 강호다(一竿風月 滿地江湖).”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분별심을 갖지 않으려는 삶의 자세가 엿보이는 진술이다. 이에 대한 해설에는 그의 생각이 한층 더 명시적으로 드러난다. 그는 해설하기를 “정위는 다른 길과 떨어져 있지 않고, 열반은 곧 윤회 속에 있다. 남아가 가는 곳이면 본지풍광이니 길이 윤회 속에 존재하되 나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고, 소도 되고, 말도 되고, 현관에 머물지 않으니 출세 대장부는 마땅히 이같이 할 것이다.(正位不離異路 涅槃卽在輪廻 男兒到處 本地風光 長在輪廻 不生不滅 爲牛爲馬 不居玄關 出世大丈夫 當若此也)”라고 했다. “사나이 가는 곳 어디나 고향(男兒到處是故鄕)”이라고 노래한 〈오도송(悟道頌)〉(1917)을 환기하는 이 평을 보면, 그는 소도 되고 말도 될 수 있는 정신의 유연함을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해석은 그가 정위와 편위, 열반과 지옥 같은 분별지에 빠지지 않으면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재한 세계를 지향했음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가 일체의 분별지로부터 자유로운 경지를 추구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세계의 무차별성을 인정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열 번째 게송인 〈일색(一色)〉의 마지막 물음에 대한 한용운의 비평적 해석은 그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오롯하게 담아내고 있다. 원문에서 상찰 선사는 “공중에 있는 월광을 움켜잡을 수 있겠는가(空裡蟾光撮得麽)”라는 화두를 던진다. ‘일색’은 불교에서 유무(有無)와 색공(色空), 미오(迷悟)와 득실(得失)이라는 분별과 대립을 넘어선 정신의 경지를 지칭하는 용어로 원융한 세계를 뜻한다. 한용운은 이 화두에 “천 개의 손이 이르지 못하니 만고의 명월이다.”라는 비(批)를 붙이고 담담한 어조로 자기의 갈 길이 개똥벌레(반딧불이)를 모으는 일이라고 적어두고 있다.
섬광이란 것은 월광을 말한 것이라, 허공에 뜬 월광을 움켜잡을 사람이 없으니 만일 섬광을 가히 움켜잡을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곧 현중곡을 해석할 수 있다. 어떻게 해서 섬광을 움켜잡을 수 있을까.(주장자로 세 번 때려 이르기를) 달빛이 능히 사람에게 비쳐 밝게 해주지 못하니 한가로이 아이를 불러 개똥벌레를 주워오게 하리라.(蟾光者 月光也 空裡月光 無人撮得 有人撮蟾光可得 則解玄中曲矣 如何撮得蟾光 (打拄杖 三下云) 月光不能熙人明 閒得呼兒拾螢來)
— 《十玄談註解》 〈한빛(一色)〉
여기서 ‘달’은 우리가 궁극적 이치나 존재를 가정하고 이를 소유하거나 실체화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비유적으로 말해주는 객관적 상관물이다. ‘달’을 움켜잡을 수 없다는 진술은 실체에 얽매이지 않아야 한다는 정신의 원융무애함을 강조한 표현이다. 여기까지는 일체개공(一切皆空)의 불교적 이치를 발언한 것이라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한용운의 독창적 독해로 읽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달빛이 세상 사람을 밝혀주지 못하니 한가로이 아이를 불러 개똥벌레를 주워오게 하리라”라는 주해는 한용운의 사유가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달빛이 길을 비추어주지 않는 어둠의 시대를 살아가면서 한가로이 아이들을 불러 개똥벌레를 주워 오게 하는 행위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불교적 비유로서 달은 손가락과 쌍을 이루며[標月指] 불성이자 마음 그 자체를 가리켜 왔다. 한용운은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이 이러한 불성과 마음의 본래 자리가 사람을 밝게 비추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이를 타개할 방편으로 아이에게 개똥벌레(반딧불이)를 주워 오게 하겠노라고 다짐한다. 한용운은 잡히지 않는 달빛을 잡기 위해 허망한 애씀에 매달리기보다는 생활세계 안에서 반딧불이라도 모아 어둠을 밝히는 것이 자신이 선택한 삶의 태도임을 분명하게 말하는 것이다. 반딧불과 눈빛으로 책을 읽어 내일을 도모한 형설지공(螢雪之功)의 고사를 연상시키는 이 행위는, 불가능의 현실에서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 의지적 실천의 중요성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집 《님의 침묵》은 어두운 여름밤의 반딧불 모으기라 할 수 있다. 한용운은 작은 반딧불을 모아 세상의 어둠을 몰아내면서 잡을 수 없는 달빛을 간직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4.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님의 침묵》은 사랑의 시집이다. 시집 속 화자는 반복적으로 사랑하는 대상을 찬미하고 사랑의 영원성을 예찬할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 겪게 되는 여러 마음의 결들을 노래한다. 시적 상황은 사랑하는 대상과의 이별을 전제하고 있지만, 이별도 결국은 사랑을 강화하고 촉진하는 이별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이 사랑의 시집이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기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 시집을 사랑의 시집이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자칫 이러한 주제적 보편성이 시집의 가치를 보증해주는 것으로 오인할 수 있다. ‘사랑’은 ‘빵’과 더불어 위대한 문학과 예술의 지속적인 주제가 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이 시집이 이런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의미포착에 실패하고, 그럼으로써 진부하고 고답적인 시각에 빠질 위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시집의 가치는 사랑을 노래했다는 사실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랑을 노래했느냐는 구체적인 물음에서 찾아질 수 있다.
이 시집의 창작 동기에는 이른바 ‘연애열의 시대’로 불리던 1920년대 초반의 현실이 놓여 있다. 당대는 연애 과잉의 시대였다. 자유연애가 유행하고 연애 담론이 문화 담론의 중심을 휩쓸고 있었다. 한용운은 이러한 근대적 연애 문화를 보면서 진정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시적 의제를 꺼내 든다. 이러한 한용운의 의도를 직접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작품이 소설 〈죽음〉이다. 1924년에 쓴 이 소설은 내용에 담긴 혁명적 열정으로 인해 미발표 유고작으로 남았지만, 한용운 문학의 문제의식을 폭넓게 담고 있어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여기에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정성열이라는 신청년이 등장한다. 그는 와세다대학을 졸업한 문학도로 낭만주의 시인을 자처하는 인물이다. “오오!, 아아!, 사랑의 불꽃에 타는 가슴, 진주 눈물”이라는 감상적인 글을 쓰고 ‘연애는 신성’ ‘정조는 유동(流動)’이라는 말을 쏟아내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런 정성열은 근대적인 지식을 뽐내지만, 실상은 돈으로 신문사 편집국장 자리를 매수하는 비열한 행동을 일삼고 방종에 가까운 연애를 즐긴다. 특히 그는 사랑도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다. 한용운은 정성열로 대표되는 당대 젊은이들의 방종에 가까운 연애 행태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 진정한 사랑을 재발명하고자 하였다. 자유연애를 부르짖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연애 담론이 넘쳐나지만 사랑 자체는 심각하게 가난해지기 시작했음을 그는 직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는 사랑이 자유라는 의장을 달고 소비사회의 상품으로 변질하는 사태가 징후적으로 드러나던 때였다. 철학자 한병철이 제기한 ‘에로스의 종말’이 1920년대 이 땅에서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한용운은 이런 시대를 비판적으로 인식하면서 사랑은 재발명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시집을 쓴 것으로 볼 수 있다.
우리가 이 시집을 다시 읽게 되는 것은 1920년대에는 징후적으로 나타난 현상이 오늘날에는 일반적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사랑을 경제행위와 동일시하고 사랑하는 일을 고비용 저효율의 행위로 여기며 도외시하기에 이르렀다. 연애 불능의 시대니 연애 결핍증의 시대라는 말에는 이런 시대적 우울이 담겨 있다. 한용운은 우리 시대에 현실이 된 이런 사랑의 위기를 직관적으로 포착하면서 사랑의 재발명을 위해 참고할 만한 가이드북을 쓴 것이다.
그렇다면 한용운은 어떤 사랑을 재발명하고자 했을까. 그는 사랑을 철저히 수행성(performativity)의 차원에서 인식하였다. 이 시집에 수록된 88편의 각기 다른 시편을 통해 사랑의 노래가 반복적으로 변주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시집은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사랑의 정체 혹은 실체를 규명하는 데 집필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우리가 어떻게 사랑을 해야 하는가 하는 사랑의 기술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사랑에 대한 대중적인 고전의 하나인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문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라고 문제 제기하며 우리가 사랑에서 알아야 할 것은 사랑하는 방법 즉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이라고 주장한 것도 사랑의 수행성을 강조한 개념이다. 한용운 역시 사랑의 영원성이나 고귀함을 찬미하는 데 시적 주안점을 두고 이 시집을 쓰지 않았다. 그는 상투화된 사랑의 통념들을 반성적으로 성찰하면서 진정한 사랑하기가 무엇인가를 보여주고자 하였다. 시 〈수(繡)의 비밀〉은 한용운이 생각한 사랑의 기술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일례이다.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深衣)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는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 솜씨가 없는 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비밀은 나밖에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마음이 아프고 쓰린 때에 주머니에 수를 놓으려면 나의 마음은 수놓는 금실을 따라서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고 주머니 속에서 맑은 노래가 나와서 나의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아직 이 세상에는 그 주머니에 넣을 만한 무슨 보물이 없습니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입니다
— 〈수(繡)의 비밀〉 전문
이 시는 사랑이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생활 속에서 경험되는 하나의 사건(event)임을 바느질하기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시적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외출복도 만들고 일상복도 만들고 그 옷에 주머니를 덧대어 수놓기를 반복한다. 그런데 문제는 수놓기가 계속 지연되고 연기(延期)된다는 사실이다. 시적 화자는 짐짓 주머니에 넣을 보물이 없다는 분명한 이유를 내세우며 자발적으로 수놓기를 지연하고 있는 것처럼 진술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적 화자의 수놓기는 수를 놓은 과정에서 만나는 ‘맑은 노래’를 통해 촉진되고, 이를 통해 반복적 수놓기 자체에 사랑의 비밀이 숨어 있음을 말해준다. “이 작은 주머니는 짓기 싫어서 짓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짓고 싶어서 다 짓지 않는 것”이라는 고백은, 사랑의 불가능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불가능의 가능성이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놓기는 완성을 약속할 수는 없지만 지속적인 수행을 통해 사랑의 충일성을 확보해가는 사랑의 기술에 대한 시적 메타포이다. 이것이 시인이 말하는 수의 비밀이자 사랑의 비밀이다.
당시 유행하던 낭만적 사랑 담론에는 영혼의 완전한 합일이나 일체화라는 피상적이고 관념적인 사랑의 이상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한용운은 완벽한 이상을 설정하고 거기에 도달하는 것이 사랑이 아니며, 매일의 일상에서 마치 수를 놓듯 사랑을 수행하는 일이 사랑이라고 말한다. 이런 사랑을 재발명하기 위해서 그는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군말〉)라거나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금’(〈복종〉)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성스럽고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관념적 사랑이 아니라 실패할 줄 알면서도 지속적으로 의욕하는 ‘사랑-하기’를 창안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런 태도는 앞에서 살핀 달빛이 비치지 않으니 반딧불이라도 모으겠다는 행위와 유비적으로 조응한다.
한용운은 사랑이 관념이 아니라 동사적(動詞的) 수행성을 통해 현현되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 사랑의 노래에는 자기 욕망에 충실한 갈애에서부터 타자의 고통을 돌봄의 윤리로 보듬어 안는 자비심까지 여러 겹을 가진 마음의 결이 동참한다. 문제는 사랑이라는 통어하기 어려운 감정을 구체적인 생활로 옮겨서 삶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일일 것이다. 적어도 이 시집에는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부단한 물음과 지향이 녹아 있다. ■
이선이 budatree@khu.ac.kr
경희대학교에서 한용운 문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저서로 《근대 문화지형과 만해 한용운》 《만해시의 생명사상 연구》 《생명과 서정》 《상상의 열림과 떨림》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교수.
'불교관련'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강경 독송으로 삶의 지혜를 얻다 / 정천구 (9) | 2024.11.03 |
---|---|
[논단] 자비 없는 불교는 없다 / 방영준 (1) | 2024.11.03 |
인도불교-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1) (3) | 2024.10.20 |
부처님 울타리 속에서 평생을 살다 / 송석구 (11) | 2024.10.20 |
『숨』 - 죽음과 삶에 관하여 / 능행스님 (3) | 2024.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