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관련

불교와 천문학 / 강승환

수선님 2024. 12. 1. 11:57
특집 | 불교로 읽는 과학, 과학으로 읽는 불교

 

1. 사겁(四劫)

《화엄경》의 4겁

《화엄경》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로 나고 죽음을 반복하듯이 우주도 성주괴공으로 나고 죽음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우주가 처음 생겨나서는(成) 머물다가(住) 무너져서는(壞) 결국 비게 된다는(空) 것이다. 머문다는 것은 현 상태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곧 성주괴공은 우주의 생성과 유지와 소멸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이 성주괴공의 온전한 말은 성겁(成劫) 주겁(住劫) 괴겁(壞劫) 공겁(空劫)이다. 성주괴공에 겁을 합친 말이다. 학자에 따라서는 겁(劫)을 계산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그냥 오랜 기간이라고만 한다.

어쨌든 이 성주괴공 넷을 합쳐 4겁이라 한다. 그러나 순서를 바르게 하자면 공을 앞세워 공성주괴(空成住壞)라 하는 것이 좋다. 처음 비었는데(空) 무엇인가 생겨나서는(成) 어느 정도 머물다가(住) 결국 무너진다는(壞)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너진 뒤에는 어떻게 될까? 그대로 끝나는가? 그렇지 않다. 다시 비워진다. 그리고 다시 생겨나, 머물다가, 무너져서는, 다시 비워진다. 이와 같은 과정을 무한히 반복한다. 일종의 우주 순환론이다.

 

대붕괴

위에서 본 것처럼 한번 생겨난 우주는 그 상태가 영원히 유지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소멸한다. 종교적 견해는 대체로 우주의 소멸론이 우세하다. 종말론, 말세론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주의 소멸에 대한 과학적 견해는 분명치 않다. 우주 생성에 대해서는 곧잘 이야기하면서도 우주 소멸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견해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 이는 우주 소멸이 별로 유쾌한 주제가 못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과학도 은연중 우주의 소멸을 염두에 두고 있다. 대붕괴(大崩壞) 등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대파괴(大破壞), 대함몰(大陷沒)이라고도 하는데 영어로는 빅 크런치(big crunch)이다. 우주가 언젠가는 모두 붕괴되어 소멸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에 소멸에 대해서는 불교나 과학이 상통한다고 할 수 있다.

 

2. 사륜(四輪)

4상

위에서 우주는 성주괴공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는데, 그러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어느 시기일까? 마지막 순환기라 추정하고 이 순환기만을 살펴보기로 한다.

석가모니가 우주를 마음으로 관조해 보니 지금의 우주 모습은 연꽃처럼 둥글었다. 또한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의 상태였다. 이를 빈 모습 즉 공상(空相)이라 했다.

그러다가 무엇인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있었다. 이를 바람의 모습, 풍상(風相)이라 했다.

다음에는 바람이 더 발전하여 다소 구체적인 물질이 되었다. 그렇지만 역시 무엇인지 확고하지는 않았다. 이를 물의 모습, 수상(水相)이라 했다.

이 물의 모습이 더욱 발전하여 결국은 굳고 단단한 모습이 되었는데 이를 쇠 모습 즉 금상(金相)이라 했다. 현재 우리 우주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 우주의 전체적 모습은 연꽃이나, 처음에는 텅 빈 것과 같았고, 다음에는 바람과 같았으며, 그다음에는 물과 같았고, 마지막에는 쇠와 같았다. 처음 빈 것에서 무엇이 생겨나 점점 구체화하여서는 결국 굳어지는 점진적 과정을 거치고 있었다.

물론 이 4단계 사이에도 무수한 단계가 있다. 하지만 그 대표적인 것을 들면 위에 말한 빈 것, 바람, 물, 쇠의 4가지 모습이다. 이를 4상(四相)이라 한다.

여기서 말하는 바람, 물, 쇠 등은 꼭 바람, 물, 쇠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석가모니의 생존 당시 사용할 수 있는 용어가 이런 것들뿐이어서 이런 말을 들어서 비유로 삼은 것뿐이다.

바람은 무엇인가 있어서 느낄 수는 있지만 잡거나 만질 수는 없는 것이고, 물은 다소 구체화되었지만 확고하지 않은 것이며, 쇠는 확고히 굳어진 것 등 말이다. 만약 현대적 용어를 알았더라면 좀 더 정확히 표현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쇠의 모습 금상(金相)에서 큰 연꽃이 피어나며 큰 바다가 생겨난다. 이 바다 위에 수미산이 솟아 있고 주변에 사대주(四大洲)가 있어 중생들이 사는 땅이 된다.

 

4륜과 인다라망

처음 석가모니께서 우주의 변천 과정 곧 4상을 설명하자 제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다. 연꽃같이 둥근 우주를 늘어놓거나 한 줄로 세워서는 그 변천 과정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범망경》에서 수레바퀴와 그물망을 들어서 비유로 설명했다.

연꽃같이 둥근 우주를 양옆에서 손바닥으로 힘을 주어 힘껏 눌렀다. 그랬더니 수레바퀴처럼 납작하게 되었다. 이 납작한 모습을 쌓아 놓으니 그 변천 과정이 잘 나타났다.

맨 아래는 빈 바퀴인데 빈 모습을 뜻하고, 그 위는 바람 바퀴인데 바람 모습을 뜻하며, 그 위는 물 바퀴인데 물의 모습을 뜻하고, 맨 위는 쇠 바퀴인데 쇠의 모습을 뜻했다.

이를 공륜(空輪) 풍륜(風輪) 수륜(水輪) 금륜(金輪)이라 하며, 통틀어 4륜(四輪)이라 한다. 이때 바퀴는 말할 것도 없이 우주를 뜻한다. 물론 이들 사이에 무수한 단계가 있지만 그중 4가지를 대표로 든 것이다.

이번에는 이 바퀴를 더 납작하게 눌렀다. 그랬더니 그물망같이 얇게 되었다. 이 얇은 그물망을 겹겹이 쌓아 놓으니 수없이 많은 변천 과정이 잘 표현되었다. 이를 중중루망(重重累網) 곧 겹겹이 겹친 그물망이라 한다. 이때 그물망은 우주를 뜻하고 그물 매듭은 은하를 뜻한다.

중중루망에서 그물망 하나는 제망찰해(帝網刹海) 또는 인다라망(因陀羅網)이라 한다. 흔히 제석천에 드리워진 그물망이라고 해석하는데 그렇지 않다. 제석천을 포함한 모든 하늘을 그물에 비유했다. 곧 우주를 비유했다. 제석천은 그 일부일 뿐이다.

 

평행우주와 중첩우주

현대 과학에 평행우주(平行宇宙, parallel universe)라는 말이 있다. 우주가 평행하며 평평하다는 말인데 이는 위에 말한 4륜이나 중중루망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우주가 공륜 풍륜 수륜 금륜으로 변천하는 과정을 포개 놓았을 때 이를 옆에서 보면 평행하게 보이기 때문이고, 그물망을 겹겹이 쌓아 놓았을 때 이를 옆에서 보면 평행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곧 평행우주는 우주의 변천 과정을 통틀어 나타내는 개념이다.

또 현대 과학에 중첩우주(重疊宇宙) 중복우주(重複宇宙) 다중우주(多重宇宙) 다차원우주(多次元宇宙) 등의 말이 있다.

우리말로는 겹쳐 있는 우주, 합쳐진 우주, 포개진 우주, 다져진 우주, 숨겨진 우주, 말려진 우주, 구겨진 우주, 뒤틀린 우주, 숨겨진 차원, 여분의 차원 등등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모두 비슷한 뜻으로 겹쳐진 우주의 모습을 뜻한다. 이것도 위에 말한 4륜이나 중중루망의 뜻으로 평행우주와 같은 뜻이라 생각된다.

 

3. 연화와 연화장

연화

우주의 모습이나 변천 과정을 관조하거나 꿰뚫어 보기 위해서는 우주를 마음의 눈 심안(心眼)으로 봐야 한다. 곧 우주를 빛과 보석처럼 밝고 투명하게 꿰뚫어 봐야 한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명(明), 광명(光明), 대광명(大光明) 등 갖가지 빛과 금강, 영락, 수정, 유리, 마노, 파리 등 갖가지 보석이 등장한다. 《화엄경》이 특히 그러하다.

그러면 그 모습은 어떨까?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연꽃이다. 곧 현재 우주의 모습은 연꽃처럼 둥근 모습이다. 이를 연화세계(蓮華世界)라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우주의 모습도 실제로 우주의 전체적 모습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의 모습만을 말하는 것인지는 알 수가 않다. 단지 어느 것으로 보든 그 모습은 같을 것이라고 추정할 뿐이다.

현대 과학은 우주의 전체적 모습에 대한 견해가 없다. 육안으로 보는 당연한 결과이다.

연화장과 중중루망

연화세계는 다 형성된 우주 곧 현재 우주, 육안의 우주, 겉모습 우주라 할 수 있다. 4상의 마지막 단계인 금상(金相)의 모습, 4륜의 마지막 단계인 금륜(金輪)의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그 앞의 형성 과정이나 변천 과정은 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위에 말한 것처럼 석가모니는 우주의 형성 과정과 변천 과정 전부를 봤다. 갖가지 빛과 보석으로 관조해서 말이다. 만약 석가모니처럼 우주의 생성과 소멸 등 성주괴공 전 과정을 꿰뚫어 보면 그 모습은 어떨까?

연꽃이 중첩된 모습, 연꽃이 겹쳐진 모습이 될 것이다. 우주가 처음 옅은 것에서, 다음은 다소 짙은 것으로, 끝에는 아주 짙은 것으로 변천되었다면, 연꽃의 모습도 처음 옅은 연꽃에서, 다음은 다소 짙은 연꽃으로, 종국에는 아주 짙은 연꽃으로 변천될 것이다. 만약 보석처럼 본다면 옅은 보석에서, 다소 짙은 보석으로, 아주 짙은 보석으로 변천될 것이다.

이제 이 겹겹이 변천된 모습을 마지막 단계에서 거꾸로 바라보면 그 모습은 어떨까? 매우 장엄하고 찬란할 것이다. 옅은 보석의 연꽃에서, 다소 짙은 보석의 연꽃으로, 끝에는 아주 짙은 보석의 연꽃까지 겹겹이 겹쳐서 찬란히 빛나기 때문이다.

우주의 형성 과정이 차곡차곡 겹쳐 보인다고 해도 되고 공륜, 풍륜, 수륜, 금륜이 차곡차곡 겹쳐 보인다고 해도 된다.

이를 화장세계(華藏世界)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라 한다. 화려한 연꽃이 숨겨진 세계라는 뜻이다. ‘숨을 장(藏)’을 쓴 것은 앞의 과정이 숨겨져서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니, 앞서 말한 중첩우주, 중복우주, 다중우주와 같은 뜻이다.

그러면 어디에 겹쳐지고 숨겨졌을까? 말할 것도 없이 현재 우주에 겹쳐지고 숨겨졌다. 육안의 우주, 겉모습 우주에 겹쳐지고 숨겨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실은 이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이 숨겨진 우주 곧 연화장(蓮華藏)은 보지 못하고, 육안의 우주 곧 연화(蓮華, 蓮花)만 본다는 것이다.

어쨌든 여기서는 연화와 연화장을 구분한다. 연화라 했을 때는 현재 우주, 육안의 우주, 겉모습 우주를 뜻하고, 연화장이라 했을 때는 그 변천 과정 전부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앞서 그물망을 겹겹이 쌓으면 우주의 변천 과정을 잘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중중루망(重重累網)이라 해서 그물망은 하늘을 뜻하고 그물 매듭은 은하를 뜻한다고 했다.

이것도 연화와 연화장처럼 구분해서 설명할 수 있다. 얇은 그물망을 죽 걸어 놓는다. 그러면 처음은 옅은 보석의 그물망이 되고, 다음은 다소 짙은 보석의 그물망이 되며, 끝에는 아주 짙은 보석의 그물망이 된다. 이들이 순차적으로 늘어서서 찬란하게 빛난다.

이를 앞에서 바라보면 그 찬란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것이 중중루망 곧 겹겹이 겹친 그물망이란 뜻으로 우주의 변천 과정을 통관한 견해이다.

이때 그물망 하나 특히 마지막 그물망 하나를 인다라망이라 한다. 곧 중중루망은 연화장의 개념이고, 인다라망은 연화의 개념이다.

‘염화미소(拈華微笑)’ ‘염화시중(拈華示衆)’이란 말이 있다. 석가모니가 영취산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자 모두 가만히 있었는데 가섭(迦葉)만이 빙그레 웃었다는 유명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염화미소 염화시중이 바로 연화장세계를 가리키는 것일 수도 있다.

 

4. 연화장세계

세계해

이제 연화 곧 현재 우주, 육안의 우주, 겉모습의 우주만을 보기로 한다.

《화엄경》 〈여래현상품〉에는 세계해(世界海)라는 생소한 말이 나온다. 우리말로는 세계 바다인데, 이 우주에는 수없이 많은 세계해가 있다고 하면서 그중 11개를 예로 들고 있다. 예를 들면 가운데에는 화장장엄세계해(華藏莊嚴世界海)가 있고 그 동서남북 사방에는 또 무슨 무슨 세계해가 있다는 식이다.

이는 우주 전체를 세계해라 했는데 이를 나눈 부분도 세계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수없이 나뉜 세계해가 모여, 하나의 전체적인 세계해를 이루는데, 그 모습이 연꽃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그리고 나눠진 세계해에는 각각 국토 부처가 있다. 예를 들면 가운데 있는 화장장엄세계해에는 연화장이라는 국토가 있고, 비로자나불이라는 부처가 있다는 식이다. 이 화장장엄세계해가 연꽃이 숨겨진 장엄한 세계로 지금 우리가 사는 이른바 연화장세계이다.

〈세계성취품〉은 세계해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수없이 많은 세계해의 모습이 있다고 하면서 그중 둥근 모습(圓) 모난 모습(方) 등 11개를 예로 들고 있다.

 

세계해 모습 11가지: 둥근 모습(圓), 모난 모습(方),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은 모습(非圓方), 차별이 한량없는 모습(無量差別), 물이 도는 모습(水旋形), 산의 불꽃 모습(山焰形), 나무 모습(樹形), 꽃 모습(華形), 궁전 모습(宮殿形), 중생 모습(衆生形), 부처님 모습(佛形).

 

그러나 위에 말한 11개 세계해의 모습이 각각 어떤 모습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따라서 어느 세계해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가운데 있는 화장장엄세계해 곧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연화장세계의 모습은 알 수 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연꽃(연화)이다.

〈화장세계품〉은 이 화장장엄세계해에 대해서만 상세히 설명하고, 다른 세계해에 대해서는 거의 설명이 없다. 따라서 여기서도 화장장엄세계해만을 본다.

화장장엄세계해

〈화장세계품〉에 의하면 우리의 화장장엄세계해(華藏莊嚴世界海)는 향수해(香水海) 향수하(香水河) 세계종(世界種) 세계(世界)로 구성되어 있다. 모두 생소한 말인데 향수 바다, 향수 하천, 세계 씨, 세계로 풀이된다.

화장장엄세계해 전체를 향수해라 하는데 이를 나눈 부분도 향수해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강이나 하천같이 생긴 모습을 특히 향수하 곧 향수 하천이라 한다. 또 향수해 안에 있는 은하를 세계종이라 하며, 세계종 안에 있는 별을 세계라 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향수해와 향수하에 대한 설명은 더 이상 없다. 이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화장장엄세계해가 연꽃 모양으로 그 모습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계종에 대한 설명은 있으며 그 모습도 이야기하고 있다. 세계종의 모습이 수없이 많다고 하면서 그중 수미산 모습, 강 모습 등 20가지를 예로 들고 있다. 세계종을 은하로 보면 은하의 모습이 20개가 되는 셈이다.

 

세계종 모습 20가지: 수미산 모습, 강 모습, 회전하는 모습, 소용돌이치는 모습, 수레바퀴 모습, 전단 향나무 모습, 나무 수풀 모습, 높은 다락집 모습, 산당 모습, 넓게 모난 모습, 태아 모습, 연꽃 모습, 대나무 소쿠리 모습, 중생 모습, 구름 모습, 부처님 모습, 가득 찬 밝은 빛의 모습, 갖가지 구슬 그물 모습, 여러 문(門) 모습, 장엄구 모습.

또 각각의 세계종에는 각각 수많은 세계와 부처가 있다. 이른바 백천억화신(百千億化身)의 개념이다. 그러면서 세계의 모습도 이야기한다. 역시 수없이 많다고 하면서 그중 회전하는 모습, 강이나 하천 모습 등 18가지를 예로 들고 있다. 그 모습은 대체로 위에 말한 세계종과 비슷하다. 만약 세계를 별들로 본다면 그 모습이 18개가 되는 셈이다.

 

세계 모습 18가지: 회전하는 모습, 강이나 하천 모습, 소용돌이 모습, 수레바퀴 모습, 벽돌 모습, 나무숲 모습, 누각 모습, 시라당(보배 옥) 모습, 보만(보물의 주위에 치는 장막) 모습, 자궁 모습, 연꽃 모습, 구륵가(용의 이름) 모습, 갖가지 중생 모습, 불상 모습, 둥근 빛 모습, 구름 모습, 그물 모습, 문 모습.

은하

위에 말한 향수해, 향수하, 세계종, 세계 등의 개념을 현대 과학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재미있다. 현대 과학에서는 이 우주에 3,000억 개의 은하가 있으며, 각각의 은하에는 3,000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물론 3,000억 개라는 숫자에 너무 집착할 필요가 없다.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이 숫자는 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숫자가 아닌 현대 과학이 본 것과 불교가 본 것을 비교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현대 과학은 이 3,000억 개 은하의 전체적 분포 상태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설명하고 있다. 곧 연꽃이다. 이는 이 우주에 은하들이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몰려 있음을 뜻한다. 몰려 있는 곳은 몰려 있지만, 드문 곳은 드물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 몰려 있는 모습은 어떨까? 강이나 하천처럼 길게 늘어선 모습이다. 마치 연꽃의 꽃잎과 같다. 이를 《화엄경》에서는 향수하(香水河) 곧 향수 하천이라 했다. 이 향수하들이 모이면 당연히 연꽃이 된다.

이제 연꽃잎 하나를 살펴보자. 사실 이는 수십억 수백억 개의 은하를 보는 것이다. 이 많은 은하가 모여 연꽃잎 하나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연꽃잎 하나를 잘라서 본다. 아주 작게 말이다. 그러면 하나의 은하를 보는 것이다. 사실 이 하나의 은하도 3,000억 개의 별들이 모인 것이다. 이 엄청난 별들이 모여 연꽃잎의 작은 부분을 이루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록 3,000억 개의 별이 모였다고 하지만 우주 전체로 봐서는 별것 아니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숫제 작은 씨(種)라고 표현했다. 위에서 말한 세계종의 종(種)이 그것이다. 곧 씨는 3,000억 개의 별이 모인 은하이다.

이번에는 별 하나를 본다. 그러면 이 별 하나에도 많은 위성이 있다. 마치 우리 태양에 화성, 수성, 지구, 목성, 금성, 토성 등 많은 행성이 있는 것과 같다.

이때 별 하나 또는 태양 같은 것을 《화엄경》에서는 그냥 세계라 했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연꽃을 이룬다. 어찌 보면 불교와 현대 과학의 견해가 비슷한 점이 있다.

은하 모습

위에서 세계종의 모습 20가지와 세계의 모습 18가지를 들었는데 그 모습은 서로 비슷하다고 했다. 현대 천문학도 은하의 모습을 설명한다. 막대 모습, 나선형 모습(바람개비), 수레바퀴 모습, 타원 모습, 안테나 모습, 소리굽쇠 모습 등등이다. 그러나 그 숫자가 많지 않다. 대여섯에 불과하다. 육안으로 보는 결과이다.

그러나 본 모습은 서로 비슷한 면이 있다. 예를 들어 불교가 말한 강이나 하천 모습은 현대 과학이 말한 막대 모습과 비슷하고, 둥글지도 모나지도 않은 모습(非圓方)은 타원 모습과 비슷하며, 소용돌이치는 모습은 나선형 모습(바람개비)과 비슷하고, 수레바퀴 모습은 말 그대로 수레바퀴 모습이다.

은하 미리내(은하수)를 옆에서 보면 가운데가 볼록한 접시 모습이고, 위에서 보면 4개의 날개가 회전하는 바람개비 모습이다. 그런데 《화엄경》에도 이와 비슷한 표현이 있다.

 

4천하 티끌 수만큼의 향수하가 있는데 오른쪽으로 휘감아 돈다(有四天下微塵數 香水河 右旋圍遶).

 

여기서 말하는 4천하를 4개의 날개로 보고, 오른쪽으로 휘감아 돈다는 말을 바람개비로 볼 수도 있다. 이는 불교와 현대 과학이 서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한편 현대 과학은 은하의 크기에 따라 은하, 은하군, 은하단, 초은하단 등의 용어를 쓰지만, 불교는 위에서 본 것처럼 세계, 세계종, 향수하, 향수해 같은 단어를 쓴다.

 

5. 공간의 두께

현재에 겹침

위에서 중첩됐다, 중복됐다, 겹쳐졌다, 포개졌다 등등의 표현을 했는데 그러면 어디에 겹쳐지고 포개졌을까?

말할 것도 없이 현재 우주, 육안의 우주, 겉모습 우주이다. 4겁 중 주겁(住劫)이라 할 수도 있고, 4륜 중 금륜(金輪)이라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겹쳐지고 포개졌을까? 현재 우주에 각 단계의 형상(形狀)이 그대로 겹쳐지고 포개졌을까, 아니면 각 단계의 성질(性質)이 겹쳐지고 포개졌을까? 참으로 대답하기 곤란하다. 모르기 때문이다.

만약 형상이 그대로 겹쳐지고 포개졌다면 현재 우주에서 초기 우주를 그대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성질이 겹쳐지고 포개졌다면 초기 우주를 찾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둘을 모두 인정하는 것 같다. 형상이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은 석가모니처럼 수행에 따라 성주괴공을 그대로 꿰뚫어 보기 때문이고, 성질이 들어 있다는 것은 수행에 따라 점점 더 깊은 공(空)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둘이 같은 뜻일 수도 있다.

불교는 사실과학이고 사실이론이다. 막연한 것도 아니고 신비한 것도 아니며 허황된 것도 아니다. 있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뿐이다. 단지 사람들이 잘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공간의 두께

공간의 두께(Space Dugge), 우주의 두께(Cosmos Dugge)라 했지만 적절한 표현인지 알 수가 없다. 물질의 두께(Matter Dugge), 만물의 두께라 할 수도 있다. 삼라만상 일체 만물에 두께가 있다.

영어로는 두께(thickness)가 좋지만 너비(width, breadth), 깊이(depth), 길이(length), 부피(volume) 등이 될 수도 있고, 한자로는 폭(幅)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두께를 표현할 마땅한 용어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연화장세계가 연꽃들이 숨겨진 세계라면 연화장에는 연꽃들이 숨겨질 곳이 있다는 이야기이니 이는 숨겨질 두께가 있다는 뜻이다.

4겁, 4륜 등 변천하는 과정이 마지막 단계에 겹쳐 있다면, 마지막 단계에는 두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야 겹쳐질 곳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두께가 없으면 겹쳐질 곳이 없다. 나아가 4겁, 4륜 등이 존재할 곳도 없고 변천할 곳도 없다. 이를 공간의 두께, 물질의 두께라 했다.

사실 불교뿐만 아니라 이기론(理氣論)이나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 모두 두께를 전제로 하고 있다. 이(理), 기(氣), 질(質)로 변하는 것, 무극(無極), 태극(太極), 음양(陰陽), 오행(五行) 물질(物質)로 변하는 것 모두 적어도 마지막 단계인 물질에 두께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4겁이나 4륜처럼 변천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중첩됐다, 중복됐다, 겹쳐졌다, 포개졌다 등도 모두 그럴 곳이 있다는 이야기니 이는 그럴 수 있는 두께가 있다는 뜻이다. 두께가 없으면 그럴 곳이 없기 때문이다. 더 들어본다.

 

현실이 다른 외부 세계가 우리 세계에 투영되어 있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정보는 현재의 순간에 모두 각인되어 있다.

하늘의 실체는 우주의 복잡한 구조를 덮고 있는 얇은 천에 불과하다.

막이 아주 방대한 영역에 퍼져 있다.

중력파는 시공간에 주름을 만든다.

시간과 공간은 견고하게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주어진 조건에 따라 고무처럼 휠 수 있다.

 

위의 이야기는 중첩우주 나아가 우주의 두께를 뜻한다. 투영, 각인, 얇은 천, 막, 주름, 휘어짐 같은 말이 특히 그러하다.

투영되고 각인되는 것은 그럴 곳이 있다는 이야기이니 이는 그럴 두께가 있다는 이야기이고, 얇은 천은 막(膜, 브레인(brane), 멤브레인(membrane)) 이론임은 말할 것도 없다. 막이 곧 두께이다. 주름 역시 평평한 면에 굴곡을 이루는 것이니 두께를 뜻하며, 휜다는 말 역시 공간의 두께를 뜻한다.

홀로그램, 곡률반경(曲律半徑), 스펀지 등의 말도 쓰는데 역시 두께를 뜻한다. 곧 위의 이론들은 모두 두께의 어느 특정 성질을 나타내는 말들이라 할 수 있다.

개념을 명확히 함

그럼에도, 모두들 두께란 개념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친다. 그리고는 구멍, 터널 등 신비한 말까지 등장시킨다. 이는 두께가 잘 이해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말이나 글로써 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고, 있는 곳을 현실에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이다. 믿을 건 오직 듣는 이의 지혜뿐이다. 미비한 설명을 듣고 스스로 이해하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

가령 두께가 물질의 안에 있다, 밖에 있다, 위에 있다, 아래 있다, 너머 있다, 형이상학적으로 있다 해도 정확한 표현이 못 된다. 물질의 안에 들어 있다, 내포되어 있다, 포함되어 있다 해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 역시 정확한 표현이 못 된다.

또 두께는 실물에서 나타낼 수 없다. 부피를 가진 실물에서 이 두께를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적어도 필자의 견해로는 그렇다.

현대 물리학에 끈 이론(string theory, super-string theory)이 있다. 필자는 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지만, 만약 끈의 두께를 세로로 아주 얇게 자른 것으로 이해한다면 이는 공간의 두께를 뜻하는 것이 된다.

물질을 입자로 파악하면 두께가 표현되지 않지만, 끈으로 파악하면 두께가 잘 표현된다. 끈 자체가 두께이기 때문이다. 입자는 연화(蓮華)를 뜻하고 끈은 연화장(蓮華藏)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여기서는 공간의 두께, 만물의 두께라는 개념을 명확히 한다. 불교와 현대 과학은 물론 모든 종교와 문화가 만나는 중요한 길목(접점)이기 때문이다.

 

6. 공색(空色)

문화

공간의 두께는 정신세계, 성질의 세계라 할 수 있다. 이승과 저승에서 저승이 형성되는 곳이고, 천당과 지옥이 있을 수 있는 곳이며, 우리 마음이 머물러 미련과 원한이 머무는 곳이고, 선업과 악업이 축적되는 곳이다. 또 사물의 성질이 거처하는 곳이고, 만유인력에서 인력이 머무는 곳이다,

이와 같이 두께에는 여러 성질이 한데 어우러진다. 불교에서 말하는 ‘있다, 없다(有無)’ ‘살았다, 죽었다(生死)’ ‘움직인다, 고요하다(動靜)’ ‘오고, 간다(去來)’ ‘물들었다, 깨끗하다(染淨)’ 등 서로 상반되는 두 상황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고,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양극 음극’ ‘양자 전자’ ‘물질 반물질’ 등 서로 상반되는 두 상황이 한데 어우러질 수 있다고 생각된다.

이런 성질의 두께를 나름대로 설명한 것이 위에서 말했듯이 각종의 문화, 종교, 철학, 과학이 된다. 이 중 조금 더 체계적이고 뛰어나게 설명한 것이 각종의 뛰어난 문화와 종교, 철학, 과학이 되는 것이다.

곧 불교는 석가모니가 이 두께를 공색, 3계 10계 등으로 나눠서 설명한 것이고, 이기론은 성리학자들이 이 두께를 이기질, 음양 5행 등으로 나눠서 설명한 것이며, 유일신은 신학자들이 이 두께를 신과 인간 등으로 나눠서 설명한 것이다. 현대 과학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려진 것들은 모두 두께의 무한한 성질 중 어느 일부를 설명하는 데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전반적이고 총체적인 설명은 못 된다는 뜻이다. 왜 그런가? 지금의 종교나 과학이 모든 것을 다 속 시원히 설명해 주지 못하고 인류를 구제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이 외에도 새로운 설명법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반증이 된다. 인류를 구제할 참신한 설명법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공의 뜻

불교의 공색(空色)은 공간의 두께를 크게 이등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공과 물질, 본질과 현상의 뜻도 된다. 참과 거짓, 진실과 허망이라 해도 된다.

물론 나눌 수 없는 것을 나눈 것이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것은 나눌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불교 이론이 그렇든 공색도 방편이다. 이제 공과 색을 나눠서 본다.

색은 항상 한계에 도달한다. 움직이고 변하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변하는 것에는 불변의 진리가 없다. 이른바 제행무상(諸行無常)으로 모든 움직이는 것에는 항상함이 없다. 결국 허망하다. 따라서 불교는 색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그러면 공은 이해하기 쉬운가? 만만찮다. 우선 공은 어떤 형상이나 모습이 있는가? 아니다. 어떤 현상(現狀)이나 상태를 뜻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곧 한결같고 균일하며 평등하고 변함없는 그런 상태이다. 어떤 기복(起伏)도 없다. 이런 공은 물질로 다뤄질 수 없다. 공은 색깔이 있는가? 있다면 무슨 색깔인가? 잘 모른다. 공의 모습을 모르니 색깔도 알기 어렵다. 어떤 이는 희다(白) 밝다(光) 검다(黑) 등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필자의 수준을 뛰어넘으므로 논외로 한다.

또 불교의 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진공(眞空) 곧 우주의 진공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는 다른 것이다.

우주의 진공은 진공이라는 물질이다. 원래 우주에 골고루 퍼져 있어야 할 물질이 몰려서 별이 된 후 남은 것이 진공이다. 따라서 진공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진공이라는 그 어떤 물질이다.

위에서 우주는 성주괴공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했는데 이때의 공들은 서로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잘 알 수가 없다. 단지 같은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切同) 곧 과거, 현재, 미래 삼세의 모든 여래는 모두 같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 성주괴공의 공과 불교에서 수행을 통해 들어가는 공이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이것도 확언할 수가 없다. 모두 실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성주괴공의 공도 아직까지 객관적으로 실증하지 못했고, 수행해서 들어가는 공도 적어도 필자는 실증하지 못했다. 따라서 뭐라고 단언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먼저 성주괴공의 공을 무엇인가 있는 공 또는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진짜 진공(true vacuum)으로 보고, 수행도 초기 단계로 본다. 그렇다면 이는 같을 수도 있다. 이때는 불교의 공과 현대 과학의 공이 같다. 이는 곧 불교와 과학이 서로 통하며 불교의 공이 과학적으로 증명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니 연구실에서 어느 정도의 깨침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물론 초보 단계일 것이다.

그러나 성주괴공의 공을 아무것도 없는 공 또는 현대 과학에서 말하는 가짜 진공(false vacuum)으로 보고, 수행도 깊은 단계로 보자. 그러면 이는 과학으로는 도달할 수가 없다. 실증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수행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 맑은 마음으로만 가능하지 생각과 사고로는 이르지 못한다.

불교는 이 2가지 개념을 모두 아우르는 것 같다. 곧 불교의 공은 무언인가 있기도 하고, 아무것도 없기도 하다.

 

공의 유형

무엇인가 있는 공은 무엇인가 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지만 분명히 무엇인가 있다. 우리는 이 공을 중시한다. 이 공을 거쳐야 없는 공으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공을 이해하고 터득하는 것이 수행의 출발점이 된다. 원효는 《대승기신론소》에서 이렇게 말한다.

 

빈 것(공)에는 …… 언제나 변하지 않는 맑은 진리가 가득 채워져 있다(不空者……常恒不變 淨法滿足).

 

곧 공은 비지 않았고 어떤 맑은 진리가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이다. 이 맑은 진리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지만. 물론 물질적 개념이 아닌 정신적 개념일 것이다.

그런데 현대 과학에도 이런 견해가 있다.

 

텅 빈 공간이라 해도 거기에는 영혼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눈에 보이는 물질과 함께 영적인 물질도 함께 포함하고 있다.

공간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

 

이와 같은 말들은 공(空)이 말 그대로 텅 빈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있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없는 공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다. 일체의 움직임과 사유를 뛰어넘는다. 움직임과 사유가 없으니 시간과 공간도 없다. 이런 개념도 없다. 이런 것이 없으니 그 이후 아무것도 없다. 적멸(寂滅), 적정(寂靜), 고요 그런 상태다. 삼천대천세계가 무너진다. 부처의 삼매나 열반이 그런 상태일 것이다.

 

인법유무제등(人法有無齊等)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공과 현실, 진실과 허망 사이에서. 일찍이 원효대사는 《이장의(二障義)》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람과 우주의 있고 없음이 가지런히 같다(人法有無齊等).

인법유무제등. 이 말은 원효대사 《이장의》의 총결 구절이다. 있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이 있다는 것이고, 없다는 것은 나를 포함한 우주 삼라만상이 없다는 것이다. 있다는 것은 허깨비라도 있다는 뜻이고, 없다는 것은 그것도 빈 것이란 뜻이다.

성주괴공 중 성주괴(成住壞)가 ‘있다’에 속하고, 공(空)이 ‘없다’에 속할 수도 있고,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이 ‘있다’에 속하고, 죽은 뒤가 ‘없다’에 속할 수도 있으며, 깨치지 못해서 육도를 헤매는 것이 ‘있다’에 속하고, 깨쳐서 공에 이른 것이 ‘없다’에 속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 삼라만상 모든 것이 결국 환상이고 헛것이다. 결국은 무너지고 부서지고 말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바탕 꿈이고 연극이다. 결국은 죽고 사라지고 만다. 그렇다고 지금 현실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 세상과 나 자신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이에 이 둘을 아우를 필요가 있다. 이것이 ‘있고 없음이 가지런히 같다’이다. 똑같지는 않지만, 같다고도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에 거리낌 없는 행동이 나온다. 도무지 거리낄 것이 없다. 집착할 것도 없고 미련 둘 것도 없다. 일체가 무대이고 나는 배우인데 무엇을 거리끼는가? 배우가 무대에서 어찌 노래하고 춤추지 않겠는가? 이에 노래하고 춤춘다, 곧 무애가(无㝵歌), 무애무(无㝵舞)다. 거리낌 없는 노래, 거리낌 없는 춤이다. 통틀어 무애행(无㝵行)이라 한다.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 위대한 철학가 신라 원효대사가 한바탕 살다 간 모습이다. 생사를 뛰어넘는 자유를 대자유(大自由), 무애(无㝵)라 한다. ■

 

강승환 kp8046@naver.com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지리학과 졸업. 생업에 종사하다가 40세가 넘어 원효대사를 비롯, 우리 문화 연구에 매진하였고 틈틈이 관련 저서를 펴냈다. 소설 《땅따먹기》 《이야기 원효사상》 《우리도 잊어버린 우리문화 이야기》 《불교에서 본 우주》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 권으로 만나는 원효전서》 《원효의 눈으로 바라본 반야심경》 등의 저서가 있다.

 

 

 

 

 

 

 

불교와 천문학 / 강승환 - 불교평론

1. 사겁(四劫)《화엄경》의 4겁《화엄경》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이야기한다. 우리 인간이 생로병사(生老病死)로 나고 죽음을 반복하듯이 우주도 성주괴공으로 나고 죽음을 반복한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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