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 세계

<은산철벽(銀山鐵壁)>

수선님 2024. 12. 1. 12:11

<은산철벽(銀山鐵壁)>

은산

은산철벽(銀山鐵壁)이든 철벽은산(鐵壁銀山)이든 은과 철은 견고해서 뚫기 어렵고 산과 벽은 높아 오르기 어렵다는 말로서 화두를 참구해서 깨닫는 일이 그와 같이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은(銀)으로 만든 산이요, 쇠[鐵]로 만든 벽에 사방이 꽉 막힌 것처럼 앞뒤가 다 끊어져버린 절박한 상황에 직면해, 너무도 막막해서 아무 사량분별(思量分別)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말한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이 은산철벽은 내 몸과 목숨을 다해서 뚫고 들어갈 수밖에는 없는 관문(關門)으로, 자기 본참공안(本參公案)에 마치 모기가 쇠로 된 소 등에 올라타고서 그 입부리를 소 등에다가 쑤셔 박는 것처럼, 무조건 여하약하(如何若何)라, 막론(莫論)하고 ― 묻지 말고 입부리와 머리와 몸을 압량해서, 합해서 처박고 돌격을 해 들어가야 한다.

자기의 근기(根機)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건강도 따질 것도 없고, 자기의 어리석고 영리한 것도 따질 것도 없고, 남녀노소도 따질 것도 없고, 유식 무식도 따질 것이 없다.

‘어떻게 하면 될 것인가?’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세를 바르게 하고,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하면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되 불급불완(不急不緩)이라, 너무 용을 쓰고 몰아붙여도 안 되고 너무 늘어져서 처져도 안 되고 성성(惺惺)하면서도 적적(寂寂)하게 자기의 본참공안을 들어야 한다. 공부가 되고 안 되고 하는 것도 따질 것 없다.

곧 손도 대어 볼 수 없는 어려움을 말한다. 참선하는 이들이 화두(話頭)를 들고 일념(一念)으로 정진할 적에 분석하고 추리하는 분별의 작용을 여의었지만 아직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중간 경계에서 은산철벽(銀山鐵壁)과 같은 정신상태를 경험하는 수가 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앞뒤로 꽉 막혀 있는 상태를 은산철벽에 갇혀 있다고 한다. 화두를 들 때는 이 은산철벽을 뚫고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런 절박한 상황을 일컫는 하구 많은 말 중에 왜 하필이면 은산철벽이라 했을까?

중국의 뻬이징(北京) 인근에 유명한 불교 성지 중 은산(銀山)이라는 곳이 있다. 이 은산의 탑들이 장관을 이루어 은산탑림(銀山塔林)이라 하는데, 관광지로서 이름이 높다. 이 은산에는 마조(馬祖道一, 709-788) 선사의 법을 이은 제자 등은봉(鄧隱峰) 선사가 머물러 교화를 펼쳤으며, 많은 스님들이 와서 절을 짓고 법을 설했다고 한다. 그러한 분들을 기리기 위한 탑들이 이 산의 곳곳에 산재해 탑림(塔林)을 이루어 장관을 이루고 있어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여하튼 은산철벽은 화두의 세계에 등장하는 상상 속의 산만은 분명 아니고, 실제로 은산이 있다.

은산 탑림

은산은 철벽은산(鐵壁銀山) 혹은 은산철벽(銀山鐵壁)이라 일컫는다. 그곳은 은이 많이 매장돼있다는 의미에서의 은산은 결코 아니다. 그 은산은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겨울이 되면 흰 눈이 흩날려 눈과 얼음을 흠뻑 안아 산 전체가 하얗게 변하고, 산이 가파르고 암벽 색깔이 철과 같이 검다고 해서 철벽이라고 했고, 그래서 은산철벽이라 불렸겠다.

이렇게 은산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기에 맨손으로 그곳을 오르기란 불가능하며, 바위산이 철벽처럼 가로 막혀 있기에 그것을 뚫고 나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이러한 은산철벽의 의미가 나중에 은으로 만들어져 아주 미끄러운 데다가 두꺼운 쇠로 이루어진 철벽같은 산의 의미로 쓰였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어쨌거나 은산철벽은 넘을 수 없고 뚫을 수 없는 산이요 절벽이다. 따라서 이 은산철벽에 갇혀 있으면 위나 밑으로도, 뒤나 앞으로, 좌나 우로도 전혀 출로가 없고 퇴로도 없다. 오도 가도 못하는 아주 갑갑한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화두는 은산철벽으로 다가온다. 은산철벽은 화두의 궁극적 의미를 드러내는 상징으로 쓰이게 된 것이다.

화두는 생각의 출로를 차단하는 근본적인 의심이다. 가사와 발우를 빼앗으려고 대유령(大庾嶺)까지 달려온 혜명(慧明)에게 육조 혜능(慧能) 선사가 말했다.

“행자는 잠시 생각을 거두어라, 그리고 선도 악도 모두 생각하지 말라[불사선 불사악(不思善不思惡)],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이러한 때에 행자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 선악이 일어나기 이전의 행자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이 무엇이냐?” 즉, 천지미분전(天地未分前), 하늘과 땅이 생기기 전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일체 모든 의미의 상대적 인식이 생기기 이전의 절대적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에 혜명은 그 묻는 순간, 그 자리에서 깨닫는다. 가사를 빼앗으러 온 것은 악한 마음이요, 가사가 움직이지 않자, 법을 구하러 왔노라고 한 것은 선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오락가락하는 순간, 선악이 일어나기 이전 네 본래 모습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생각이 꽉 막혀버린 것이다. 바로 이렇게 생각이 빠져나갈 틈이 전혀 없는 순간이 은산철벽에 가로 막혀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화두를 들자마자 이러한 은산철벽의 상황으로 곧바로 몰입하기란 쉽지 않다. 대다수 사람들은 먼저 화두에 큰 의심을 일으켜 그 화두를 온 몸과 마음으로 끌어안으면서 간절하게 지속적으로 밀고나갈 때라야 그 화두와 내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른다. 그럴 때 화두에 대한 의심만 마음속을 차지하고, 오롯이 전혀 다른 생각은 흔적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화두란 모든 생각과 출로를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이렇게 생각해도 어긋나고 저렇게 생각해도 어긋난다. 아무리 생각으로 헤아려 본들 결국에는 모두 막혀버린다. 그렇게 철저하게 궁지에 몰리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궁지에 몰리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통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궁즉통(窮卽通)의 길인 것이다. 철저한 절망이 바로 희망의 길목이라는 의미이다.

은산철벽은 기대고 비빌 언덕조차 없는 난공불락이다. 그러나 화두를 들 때 마치 은산철벽 앞에 마주 선 것처럼 어찌해볼 수 없는 극단의 경계까지 자신을 밀어붙여 활구(活句)로 이를 타파해야 화두가 비로소 열린다고 본다. 은산철벽을 깨달음으로 가는 길에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다. 기필코 넘지 않으면 안 되는 은산철벽은 누구에게나 있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서 진일보(進一步), ― 한 걸음 더 내딛는 불퇴전(不退轉)의 정신만이 길을 열러준다.

이러한 상황을 중국 원대(元代)의 고봉(高峯原妙, 1238~1295) 선사는 <선요(禪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거친 가운데 미세한 것이 있고, 미세한 가운데 세밀한 것이 있다. 세밀하고 세밀해 아주 빈틈이 없어서 가는 티끌도 세울 수 없으니 바로 이러한 때가 은산철벽이다. 나아가자니 문이 없고 물러나자니 발을 헛디딘다. 만 길이나 되는 깊은 구덩이 속으로 떨어져 사면이 깎아지른 절벽의 가시나무 속에 있는 것과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맹렬한 영웅은 몸을 날려 뛰어나온다.

몸을 날려 뛰어나오는 것은 바로 화두를 타파한 경지를 일컫는다. 화두의심이 간절해 완전히 생각의 퇴로가 차단됐을 때, 더욱 맹렬하게 화두를 밀어붙이면 화두를 타파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은산철벽을 뚫고나간 것과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이 화두공부를 바르게 하려면 진실한 마음으로 간절하게 화두를 의심해야 한다. 화두에 의심이 생겨 간절하게 의심을 지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의심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이것을 의정(疑情)이라고 한다. ‘의정’이란 화두에 대한 의심이 끊이지 않고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화두를 간절히 의심해 들어가면 의정(疑情)이 무르익어 한 덩어리로 뭉쳐지는데, 이것을 의단(疑團)이라고 한다. ‘의단’이란 한 마디로 의심 덩어리 혹은 의심 뭉치다. 나의 온 마음과 몸이 화두에 대한 의심 덩어리로 꽉 뭉쳐진 것이다.

나와 의심이 한 몸이 될 때, 화두는 또렷한 한 조각을 이룬다. 화두와 내가 하나로 혼연일체가 되어 떼려 해도 떼어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상태를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 한다. 나와 화두가 단단히 뭉쳐져 한 조각 반달처럼 빛나는 모습, 타성일편이 된 상태를 은산철벽(銀山鐵壁)이라 한다.

화두가 내 몸과 하나가 되어 화두 의심 덩어리만 홀로 빛나는 것을 의단독로(疑團獨露)라고 한다. 그리고 화두와 내가 한 덩어리가 된 것을 타성일편(打成一片)이라고 한다. 그럴 땐 내가 화두요 화두가 나이다. 그것은 모든 생각이 출로가 은산철벽으로 완전히 막혀버려 화두의심만 맹렬하게 작용하는 상황이다.

※타성일편(打成一片)---타성일편이란 중생이 헛되게 헤아리고 가늠하는 판단을 버리고 수천 가지 차별되는 사물이 하나로 융합되는 것, 주객의 차별을 떠남을 말한다. 분별을 없애고 대립을 초월해 천차만별의 사물이 하나로 조화를 이룸으로써 다시는 나와 너, 이것과 저것, 주관과 객관 등 차별의 마음을 내지 않는 것, 마음의 경계가 사라져 걸림 없이 두루 통할 수 있게 되는 경지를 이르는 말이다. 즉, 타성일편(打成一片)이란 ‘쳐서 한 조각을 이룬다’는 말이다.

바로 그때 의심을 더 밀어붙이면 드디어 단단히 막아섰던 은산철벽이 와르르 무너진다. 은산철벽이 무너지면서 모든 아집, 아상, 업장, 편견 등이 다 떨어져 나간다. 마음에 전혀 걸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은산철벽은 서서히 구멍을 파서 차츰차츰 뚫고 나가는 것이 아니다. 단박에 '쾅'하고 뚫고나가야 한꺼번에 와르르 무너진다. 마치 장작을 단 한 번의 도끼질로 쫙 쪼개듯 말이다. 그렇게 모든 것이 다 떨어져나가니 고요하며 평화롭고 걸림이 없다. 지혜가 열린 것이다. 이러한 지혜로 사물에 즉하여 마음을 일으킨다. 마음을 일으켜 온갖 작용을 하더라도 사물에 오염되거나 걸리지 않는다.』― 고명석

화두는 의심이 생명이다. 의심이 걸리지 않는 화두는 죽은 말과 다름없다 해서 사구(死句)라 한다. 간화선에서는 이 의심과 관련한 여러 가지 용어가 있다. 의정(疑情), 의단(疑團), 은산철벽(銀山鐵壁) 등이 그것이다.

‘의정(疑情)’이란 화두에 대한 간절한 의심이 감정처럼 솟아나오는 것을 말한다. 감정이란 억지로 지어내선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푹 익었을 때, 마음이 그렇게 고조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흘러나오는 것이 감정이다. 흔히 감정은 속일 수 없다고 한다. 좋으면 좋아서 기뻐하면서 웃는 것, 슬프면 가슴 아파 흐느끼는 것, 부끄러우면 자신도 몰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연인을 사모하면 그리운 감정이 물밀 듯 터져 나오듯 말이다. 그렇게 감정은 스스럼없이 나오는 것이다. 화두에 대한 의심도 이렇게 감정처럼 되어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것을 일컬어 의정(疑情)이라 한다.

그것은 문고리에 고리가 걸리듯이 화두가 우리 마음의 한 복판에 자연스럽게 걸려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화두가 내 마음의 중심에 걸려 있으면 우리는 태산처럼 흔들리지 않고 오롯이 앉아 있을 수 있다.

이 의정의 농도가 매우 진한 상태를 의단(疑團)이라 한다. 의단이란 ‘의심 덩어리’, ‘의심뭉치’라는 뜻이다. 의심이 똘똘 뭉쳐 단단한 덩어리처럼 납작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의심덩어리가 뚜렷한 한 조각을 이루어 마음속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나와 화두가 빈틈없이 일치돼 나와 화두가 한 조각을 이룬 것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의심 덩어리 하나만 홀로 드러나 있는 상태를 의단독로(疑團獨露)라 한다.

의단이 하늘에 박힌 달처럼 뚜렷한 한 조각을 이루어 밝게 빛나는 상태를 더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 은산철벽(銀山鐵壁)이다.

그리하여 화두가 타파되면 모든 업장, 나를 둘러싼 아상(我相)의 두꺼운 껍질들이 다 뚫려버린다. 진정한 내 모습을 가리고 있던 모든 그림자, 벽, 자아의식, 경계가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그것은 심신이 탈락(脫落)돼 몸과 마음의 자취가 홀연히 사라져 빈 배에 달빛만 가득한 정경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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