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2)
의상스님이 법성게를 지은 유래에 대해 매우 신비스러운 설화가 전해진다.
최치원이 지은 의상전(義湘傳)에 기재되었다는 이 설화는 고려시대 균여대사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를 지어 그 속에서 인용 소개하는 내용이다.
의상스님이 그의 스승 지엄스님 문하에서 화엄을 수학하고 있을 때
한번은 꿈속에 이상한 모양을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의상에게
"그대가 깨달은 바를 저술하여 여러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하라."고 하였다.
또 꿈에 선재동자(善財童子)가 총명약을 주었다.
그리고 푸른 옷을 입은 동자가 다시 나타나 세 번째로 비결(秘訣)을 주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스승 지엄에게 하였더니 지엄이 듣고
"신인이 신령스러운 것을 나에게는 한 번을 주더니 너에게는 세 번을 주었구나.
널리 수행하여 네가 터득한 경지를 표현하도록 하라."고 했다.
의상이 명을 따라 그가 터득한 오묘한 경지를 순서대로 부지런히 써서
『대승장(大乘章』 10권을 짓고 스승에게 잘못이 없는지를 보아주기를 청했다.
이에 스승 지엄이 보고 난 뒤, 뜻은 좋으나 말이 너무 옹색하다 하여 다시 고쳐 지었다.
그리고 난 뒤, 지엄과 의상이 함께 불전에 나아가 그것을 불에 사르면서
"부처님의 뜻에 맞는 글자는 타지 않게 해 주소서."하고 기원을 하였더니
210자가 타지 않고 남았다.
의상이 타지 않고 남은 글자를 주워 다시 불 속에 던졌으나 마침내 타지 않았다.
지엄이 눈물을 흘리면서 감동하여 칭찬하였다.
의상이 글자를 연결하여 게(偈)가 되게 하려고 며칠 동안을 문을 걸고
글자를 연결해 맞추어 마침내 30구(句)를 이루니 삼관(三觀)의
오묘한 뜻을 포괄하고 십현(十玄)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었다 하였다.
이상과 같은 설화는 법계도가 만들어진 과정을 신비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의상이 스스로 깨달은 경지를 여러 사람에게 알려 주기 위하여
법계도를 만들었다고 그 동기를 분명하게 밝혀 놓았다.
이 점은 의상 자신이 직접 법계도 첫머리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理)에 의하고 교(敎)에 근거하여 간단한 반시(槃詩)를 만들어 이름에 집착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그 이름마저 없는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법성게를 짓게 된 동기를 밝혀 많은 사람들이 법성게를 통하여
참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삼국유사』의 의상전교편에서는 법계도가 완성된 때를
총장(總章 : 당 고종 때의 연호) 원년 무진년 (서기 668년)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그 해에 스승 지엄스님도 열반에 든다.
법계도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세계를 도인(圖印)을 통하여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을 곧잘 바다에 비유한다.
바다는 깊고 넓은 것이며, 또 한없는 보배를 간직하고 있다.
또한 만상(萬象)을 비쳐주는 능력이 있다.
마음의 바다도 이와 같아 깊고 넓으며 무한한 보배를 가지고 있으며
깨달음의 세계를 마음을 통하여 비춰 볼 수 있다.
다만 깨달음의 세계, 곧 참된 진리의 세계가 비워지기를 바라기 위해서는
먼저 물결이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파도가 일고 있는 바다에는 만상이 비춰지지 않는 법이다.
파도는 바람이 불어 일어난 것, 따라서 바람이 자면 바다는 고요하며
만상이 저절로 비춰지는 것이다.
마음의 바다에 무명의 바람이 불지 않아 번뇌의 파도가 쉬어지면
고요한 법성의 세계가 여실히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파도가 잠든 바다, 거기에 진실한 실상의 세계가 나타난 것을 일러
'해인' 이라 하고 번뇌가 잠든 마음의 바다를 '해인삼매'라 하는 것이다.
이래서 법계도는 해인도라고 바뀌어 불려지기도 한다.
법계도는 직관으로 밖에 증득할 수 없는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
하나의 표징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의상스님이 그의 제자들 가운데 공부가 성취된 사람에게 깨달음을
인정하는 증표로서 법계도를 수여하였던 것이다.
또 의상은 법계도에 대한 소(疎)를 지어 법계도의 이해를 도와주려 하였다.
법계도에 대한 주석서로는 의상 자신이 지은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隨錄』 2권과
고려 때 균여대사가 지은 『일승법계도원통기((一乘法界圖圓通記)』2권과
조선시대 생육신(生六臣)의 하나로 승명(僧名)을 설잠(雪岑)이라고 했던
매월당 김시습이 지은 『일승법계도주((一乘法界圖註)』 1권 등이 있다.
의상스님은 그의 소에서 법계도를 전체적으로 해석과 도인의 부분 하나하나에
개별적인 풀이를 하여 두 가지 면으로 해석하였다.
1. 총석인의(總釋印意)
총괄적으로 도장(도인)의 의미를 해석한다는 과목 이름을 붙여 법계도를 짓게 된 까닭을 밝혔다.
곧,"석가여래께서 가르치신 그물과 같은 교법이 포괄하는 3종의 세간을
해인삼매로부터 드러내 나타내기 위함이다."라고 하였다.
해인삼매에 들었을 때 나타나는 3종의 세간, 기세간(器世間)과 중생세간(衆生世間),
그리고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법계도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흰 종이 위에 붉은 도인의 길을 표시하는 줄과 검은 글자로 만들어진
법계도가 이 3종 세간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다시 있다.
"백지(白紙)는 기세간을 표시한다.
백지에는 본래 염색이 되어 있지 않다.
먹으로 점을 찍으니 검고, 붉은 획을 그으니 붉다. 기세간도 이와 같다.
깨끗하거나 더러운 어느 한 쪽에 치우쳐 있지 않다.
중생이 처하면 더러움에 물들고 성현이 처하면 맑고 깨끗하다.
그러므로 검은 글자는 중생세간을 나타낸다.
검은 글자는 모두 다 검고, 하나하나는 다 같지 않다.
중생도 이와 같다.
무명번뇌가 모두 자신을 어둡게 덮고 있고, 온갖 차별을 나타낸다.
반면에 붉게 그린 한 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짐이 없이 모든 글자들 속에서
연결된 고리를 이루고, 그 빛과 색을 분명히 하고 있다.
부처님 지혜도 또한 이와 같아 평등하고 광대하여 두루 중생들의 마음에 미친다.
십세(十世)가 상응하여 원만하고 밝게 비춰 준다.
이런 까닭에 이 인(印)은 3종의 세간을 다 갖추고 있다."
이어서 백지와 검은 글자와 붉은 줄이 서로 상호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것과 같이, 3종 세간이 융통상섭하여 혼연히 한 덩어리를 이루지만
그러면서도 문이 각각 달라 분명하고 동요하지 않는다고 설명하였다.
세간이란 세계라는 말과 같다.
앞서 설명했듯이 시간과 공간에 의하여 한계 지어지는 상태를 뜻한다.
범어의 'loka'를 '세간' 혹은 '세계'라 번역한다.
2. 별해인상(別解印相)
별해인상이란 도인(圖印)을 하나 하나 나누어 해석한다는 뜻인데, 여기에 다시
설인문상 (說印文相), 명자상(明字相), 석문의(釋文意)로 나누어져 설명된다.
가) 설인문상
의상스님이 직접 인문(印文)의 양상을 설명하는 것으로 이를 요약하면,
"인문이 하나의 길로 되어 있는 것은 여래의 일음(一音)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그 길이 번거롭게 많은 굴곡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중생들의
근기와 취향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 삼승교(三乘敎)가 이에 해당된다.
그리고 이 하나의 길에 시작과 끝이 없는 것은 여래의 선교 방편에는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대응하는 세계에 따라 적당하게
융통되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것은 원교(圓敎)에 해당한다.
4면이 4각으로 되어 있는 것은 사섭법(四攝法)과 사무량심(四無量心)을 나타낸 것이다.
이 인문은 삼승에 의하여 일승을 드러내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나) 명자상
시문(시문)의 모양을 밝히는 것으로 의상스님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시문은 시작과 끝이 있는데, 그것은 수행하는 방편을 나타낸 것이다.
인(因)과 과(果)가 다름을 나타낸다.
그리고 문중(文中)에 많은 굴곡이 있는 것은 삼승의 근기와 취향이
차별 되어 같지 않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또 왜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가 중앙에 있느냐 하면, 인과의 두 자리가
법성의 집 안의 진실한 덕(德)과 용(用)임을 표시하는 것인데
그 성품이 중도(中道)에 있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이 도인의 전체적인 의미 설명과 아울러 인문과 시문의
모양에 대하여 설명하고 문의(文意)의 해석에 들어간다.
다) 석문의
시문(詩文) 곧 법성게 한 게송 한 게송의 뜻을 자세히
풀이해 나가는 부분이다.
법성게는 7언 30구의 시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송부터 18송까지는 자리행(自利行),
19송부터 22송까지는 이타행(利他行)의 수행방법,
22송부터 30송까지는 수행의 이익을 나타내는 세 부분으로 나눠진다.
그리고 이 세 부분을 다시 자세하게 나누어 가면서
내용상 의미를 구분해 과목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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