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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갈등 해소의 불교적 해법 / 박경준

수선님 2025. 5. 25. 12:51
한국불교 미래 100년의 비전 : 사회적 역할

1. 갈등은 왜 문제인가

갈등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일이 까다롭게 뒤얽힘’이고, 두 번째 의미는 ‘서로 불화하여 다툼’이다. 원래 갈(葛)은 칡덩굴을 뜻하고 등(藤)은 등나무 덩굴을 뜻한다. 칡덩굴은 시계 반대 방향으로 나무를 감아 오르고 등나무 덩굴은 시계 방향으로 감아 오른다고 한다. 그러니 칡덩굴과 등나무 덩굴은 필연적으로 얽히고설킬 수밖에 없다.

갈등은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서 괴로움이다. 까다롭게 뒤얽혀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불교는 괴로움의 자각을 통한 괴로움의 극복을 가르치는 종교다. 다시 말해 괴로움은 불교의 시작이요 끝이다. 따라서 갈등 문제는 불교적으로 볼 때도 매우 중요한 문제요 주제라 할 수 있다.

또한 갈등은 언제나 위험성을 내포한다. 적절한 갈등은 자기 발전과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도 있지만, 갈등이 장기화하고 심화하면 공동체의 위기를 초래하고 개인과 사회를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개인적이고 내적인 파국은 자살이며 사회적이고 외적인 파국은 분쟁과 전쟁이다. 갈등 문제가 중요하고 위험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2. 한국사회의 갈등 현황

불교에서는 중생들이 사는 세간(世間)을 흔히 사바(娑婆)세계라고 한다. 사바세계란 잡다한 것들이 모여 있어서[雜會土] 견디고 참으며 살아가야 하는 세상[堪忍土]이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 세상은 근본적으로 갈등의 세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21세기 한국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그 정도가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와 한국리서치가 발표한 ‘2023 한국인의 공공 갈등 의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9.8%가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것으로 전한다. 위 조사에서는 갈등의 내용을 14항목으로 나누고 있는데 그 중 상위 9가지 갈등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의 숫자 단위는 %)

① 진보세력 vs 보수세력(86.6)

② 못사는 사람 vs 잘사는 사람(77.9)

③ 경영자 vs 노동자(77.0)

④ 정규직 근로자 vs 비정규직 근로자(73.9)

⑤ 젊은 사람 vs 나이 든 사람(71.8)

⑥ 수도권 vs 지방(65.3)

⑦ 영남 vs 호남(58.7)

⑧ 중앙정부 vs 환경단체(54)

⑨ 남자 vs 여자(53.1)

위 조사 결과를 볼 때, 우리 사회에서는 이른바 이념 갈등(86.6), 빈부 갈등(77.9), 노사 갈등(77.0), 세대 갈등, 지역 갈등, 젠더 갈등 등이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념 갈등에서 확증편향의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위에서 언급한 공공 갈등뿐만 아니라 개인 갈등 문제도 심각하다. 《2023 사법연감》에 따르면, 총소송 건수는 6,167,312건으로 민사사건이 4,227,700건, 가사사건이 177,310건, 형사사건이 1,483,102건에 이르고 있다.

한국사회의 갈등은 한동안 지속되거나 늘어날 전망이다. 핵가족화와 1인가구화는 더욱 빨라져 전통적인 가족과 친족 관계가 붕괴하고 있고, 성과급 제도 등의 경쟁 시스템 확산으로 직장 내의 동료애 등도 추락하고 있다. 나아가 스승과 제자, 친구와 친구, 이웃이나 지역주민들 사이의 인간관계도 빠르게 변하고 있다. 이분법적 사고와 흑백논리가 확산하면서 갈등 구조가 굳어지고 정치적 · 지역적 편가르기로 인한 국론 분열도 가속화되고 있다.

3. 갈등 해결의 불교적 접근

1) 개인적 차원

① 소욕지족(小欲知足)의 실천

불교 경전에서는 모든 욕망을 부질없고 위험하며 경계하고 회피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본다. 예컨대 《숫따니빠따》에서는 올바른 생각으로 피안에 도달하려는 사람은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듯 또는 배에 스며든 물을 끊임없이 퍼내듯 욕망을 극복해야 한다고 설한다. 욕망이 모든 고통과 끝없는 생사윤회의 근본 원인이기 때문에 욕망을 다스리고 끊어야 한다는 가르침은 단순한 교훈의 차원을 넘어 불교의 근본 교리를 구성하고 있다. 고, 집, 멸, 도 사성제(四聖諦)가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이기적 욕망이 충돌하여 발생하는 사회의 갈등 문제도 소욕지족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소욕지족은 무엇보다도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평상시에 태양과 땅과 물과 공기에 대해 감사함을 모르고 살아간다.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태양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가능할까. 땅과 물과 공기가 없다면,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우리는 과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렇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하루하루 삶은 한없는 자연의 은혜와 수많은 사람의 도움 속에서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은혜와 도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만족을 알게 되고 지나친 욕심의 유혹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②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독일의 프랑크푸르트학파에서는 인간의 이성(理性)을 ‘도구적 이성’이라고 규정한다. 이성이란 한낱 계층 간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처럼 각자의 소속, 이해관계, 권위, 관습, 경험, 신념 등의 색안경을 쓰고 사물과 사람을 대하면서 편견과 편향에 빠진다. 사회적 갈등은 이러한 편견과 편향에서 비롯된다.

유식불교에서는 이것을 가리켜 ‘일수사견(一水四見)’이라고 한다. 하나의 물을 두고 천인(天人)은 보석으로, 인간은 물로, 아귀는 피고름으로, 물고기는 집으로 본다는 말이다. 군맹무상(群盲撫象)의 비유 또한 사람들이 자기가 경험한 진리의 편린만을 주장하지 온전한 진리, 전체적인 진리를 깨닫지는 못하고 있음을 꼬집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들 자기 생각이 옳다고 고집하지만, 색안경을 벗어놓고 욕심을 내려놓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된다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내가 틀릴 수도 있다’고 한 걸음씩 물러선다면 세상의 갈등은 줄어들고 평화가 싹트지 않겠는가.

③ 육화경(六和敬)의 실천

갈등을 해소하고 화합과 평화를 이루기 위한 육화경의 가르침은 여러 불전에서 발견된다. 육화경이란 신(身)화경, 구(口)화경, 의(意)화경, 계(戒)화경, 견(見)화경, 이(利)화경을 일컫는다.

즉 신, 구, 의 3업을 붓다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다스리고 계율을 함께 지키며, 불교와 세상에 대한 바른 견해를 공유하고 모든 이익은 균등하게 나눔으로써 화합을 도모하라는 가르침이다.

불교 승가는 화합승(和合僧)인바 육화경의 실천은 필수적이지만, 여러 공동체(집단)의 구성원들도 여기에서 유익한 지혜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만장일치를 원칙으로 하는 대중공사의 전통에서 보듯, 불교에서는 과정과 절차를 중시한다. 결론과 결과도 중요하지만, 공적인 일을 결정하고 추진할 때는 공개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끌어내야 한다.

2) 사회적 차원

불교의 업설은 개개인의 운명과 세계 변화의 제1 원인을 중생의 업(Karma)으로 본다. 인간의 행복과 불행은 신이나 숙명 또는 우연에 의해 규정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설은 윤회사상과 결합되어 업보윤회설 또는 삼세윤회설로 전개되면서 숙명론으로 곡해되기도 하였다. 업설의 곡해는 개인의 삶을 규정하는 변수를 개인의 업에 한정시킴으로써 사회적 변수를 제외시키는 문제점을 노출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타난 개념이 공업(共業)이다. 중생 각자의 업이 쌓여 이루어진 것은 불공업(不共業, 또는 別業)인바, 이 밖에 일체중생의 업이 쌓여 이루어진 공업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비달마 논서에서는 불공업은 각각의 중생[衆生世間]을 규정하고 공업은 자연환경 또는 세계[器世間]를 규정한다고 설한다.

공업설의 대두와 함께 《대승열반경》에서는 인간의 운명을 규정하는 원인이 자신의 과거 본업(本業)만이 아니고, 현재의 사대(四大), 시절, 토지, 인민이라고 설파한다. 이 네 가지 원인은 모두 공업의 산물인 기세간의 범주에 포함된다. 사대와 토지는 자연환경이고, 시절과 인민은 사회환경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연장선상에서 《대승열반경》은 업설을 법과 제도와 관련지어 해석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과 해석은 도덕결정론적 사고방식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불교 업설 이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업설의 새로운 관점을 현실에 적용해 보자.

우리는 대학 입학을 위해 많은 수험생이 입시지옥에서 고통받는 것을 본다. 우리가 이들을 위해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열심히 공부하라고 독려한다든가 열심히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모든 수험생이 각자 최선을 다하여 공부한다고 해서 모두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는 없다. 어차피 상당수의 수험생은 떨어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모든 수험생을 돕기 위해서는 교육제도와 입시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아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서도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환경과 여건을 조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여기에서 수험생이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개인적 선’이라고 할 수 있고, 바람직한 교육 · 입시제도와 희망이 살아 있는 사회환경의 조성은 ‘사회적 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개인적 선과 사회적 선이 동시에 구현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그동안 불교의 윤리적 분석들은 개인의 업, 그리고 고통의 원인으로서 개인의 무지[無明]에만 초점을 맞춰 왔다. 그래서 사회적 실천보다는 깨달음을 향한 개인적 수행만을 중시하여 왔다.

우리는 이제 “추상적인 수준에서는 그렇게 전범(典範)이 되는 가르침을 가진 종교가 어떻게 일상생활과 실제의 사회조직에서는 그렇게 잘못될 수 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라는 리타 그로스의 애정 어린 비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리고 그의 제언처럼, 불교도들이 사회적 문제의 관점에서 더 많이 생각하고, 인간이 만든 제도들이 고통을 야기하는 방식들에 대해 관찰하고, 고통을 줄이기 위해 그 제도들을 변화시키는 집단적 방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야말로 칡덩굴과 등나무 덩굴처럼 뒤얽힌 한국사회의 여러 갈등들을, 개인적 수행과 공동의 사회적 실천을 통해 불교가 앞장서서 해결해 나가도록 힘써야 할 때이다. ■

 

박경준 sjkj@dongguk.edu

동국대 불교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 박사).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를 지내면서 중앙도서관장, 불교문화원장 등과 《불교평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 〈불교적 관점에서 본 자연〉 〈노동소외 극복을 위한 불교적 접근〉 〈불교사상으로 본 사회적 실천〉 등과, 저서로 《원시불교 사상론》 《불교사회경제사상》 《붓다의 생활 수업》 등이 있다. 현재 동국대 명예교수.

 

 

 

 

 

 

사회적 갈등 해소의 불교적 해법 / 박경준 - 불교평론

1. 갈등은 왜 문제인가갈등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는 ‘일이 까다롭게 뒤얽힘’이고, 두 번째 의미는 ‘서로 불화하여 다툼’이다. 원래 갈(葛)은 칡덩굴을 뜻하고 등(藤)은 등나무 덩굴을 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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