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

수선님 2025. 7. 6. 12:28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

칠성각(봉은사)

사찰에서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을 혼용해서 쓰기도 하나, 원칙적으로 삼신각과 삼성각은 다르다.

삼신각(三神閣)은 대개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모신다.

삼성각(三聖閣)은 원래 우리의 조상신, 즉 환인, 환웅, 단군, 세분을 모시던 삼성(三聖)신앙이 불교가 한국사회에 토착화하면서 토속신앙이 불교에 습합돼 생긴 신앙형태이다.

이러한 삼성각이 고려 말에는 변해서 통도사의 경우, 삼성각에 고려 말의 삼대성승(三大聖僧)이었던 지공(指空)화상과 나옹(懶翁)화상 및 무학(無學)대사 세 분의 영정을 모셔놓고 있다.

지공(指空禪賢, 1300~1363) 화상은 인도 승으로 원나라 연경(燕京)에 와 있다가 고려에서 유학을 간 나옹(懶翁)화상 백운 경한(白雲景閑, 1298~1374) 화상 등이 가르침을 받았고, 그런 인연으로 지공화상이 고려를 다녀가기도 했다. 통도사에서 부처님의 가사를 친견하고 사리계단에 참배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당시 고려 불교계에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한다.

나옹 화상은 공민왕 때는 왕사(王師)였고, 무학(無學)대사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였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에는 일찍부터 도교 및 유교, 불교 등 외래종교가 들어 와서 그때마다 우리의 민속문화 속으로 스며들어가 습합되는 현상을 보였다. 그리하여 삼신각(三神閣)은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모셨고, 이를 삼성각이라고도 했다.

또 삼신각은 산신각(山神閣), 칠성각(七星閣), 독성각(獨聖閣)이란 이름으로 각각 별도 전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 동아시아에서도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는 한국 특유의 전각으로, 한국불교의 복합성을 나타내는 현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러한 전각들은 대개 대웅전 뒤에 세워지는데, 본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의 삼신을 모시던 유습(도교적, 토속적)이 합쳐진 형태여서 사찰 경내의 외진 곳에 세웠다. 그리고 불교 밖의 신앙대상을 모셨으므로 건물 이름을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했다.

전각 내부에는 각 신앙 존상과 탱화를 모신다. 산신(山神)은 산신령에 해당하는 호법선신(護法善神)으로 산신이라는 인격신과 화신인 호랑이로 나타낸다. 인격신으로서 산신은 나이 든 도사 모습이다.

독성(獨聖)은 대개 나반존자(那畔尊子)를 일컫는다. 나반존자는 오직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신앙대상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선 나반존자가 ‘홀로 깨친 이’라는 뜻에서 독성 또는 독성님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나반존자는 불경에는 그런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 최남선(崔南善)은 원래 불교의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 고유 신앙의 것, 곧 단군의 상을 나반존자로 파악했다.

그런데 불교계 일부에서는 독성각 건립이 조선후기에 나타는 것으로 미루어 봐서, 나반존자를 단군으로 보지 않고, 말세의 ‘복 밭’으로 보고, 복을 줄 수 있는 아라한의 한 사람으로 신앙하며, 18나한의 하나인 빈두로존자(賓頭盧尊者)를 이름만 바꾸어 신앙대상으로 승격된 것으로 보고 있다.

칠성(七星)은 수명장수신(壽命長壽神)으로 일컬어지는 북두칠성을 뜻하며, 북두칠성을 의인화한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주존으로 모신다.

산신, 나반존자, 치성광려래, 세 가지 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본래 일신(一神)이지만 그 하나 속에 셋이 깃들어 있는, ‘즉일즉삼(卽一卽三)’의 원리로 만유를 창조, 섭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조선조는 통치이념으로 성리학을 내세워 불교의 종파를 통폐합하고 사찰의 주 수입원인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는 탄압을 가속했다. 백성들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생명을 위협받고 양반의 횡포가 심해져 기아와 병고에 시달리는 고달픈 삶이 이어가는 고통스러운 생활이었다. 이러한 현상에서 탄압받는 불교는 생존을 모색하고,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백성들은 의지처가 필요하니 산신, 칠성, 독성신앙이 사찰에 들어와서 중생을 위안하는 신앙이 됐다.

사실 중생들의 바람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그저 굶지 않을 만큼의 재물을 얻어서 까운 친인척과 이웃사람들과 어울려 친하게 지내고, 추하지 않게, 건강하게 살고, 자식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불가에서는 그런 소박한 바람마저 버리라 하기에 너무나 야박한 일이었다. 그래서 중생들의 소박한 바람과 불교가 타협을 하게 됐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재물을 주는 산신(山神)과 새 생명을 주는 칠성(七星), 복을 주는 독성(獨聖)이 사찰에 들어오게 된 이유다.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은 민중들의 삶의 터전이다. 산이 아니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음에도 호환(虎患)을 자주 당하니 두려움과 함께 경외하는 마음이 산신을 사찰에 들인 이유이다. 이러한 세신의 내용을 좀 더 살펴보자.

칠성신(치성광여래)

• 칠성은 수(壽)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칠성은 북두칠성을 말하는데, 별나라의 주군(主君)으로 인간의 복과 수명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사찰에 칠성을 모시게 된 것은 중국의 도교사상이 불교와 융합돼 나타난 현상이다. 도교에서는 칠성이 인간의 길흉화복을 맡고 있다고 해서 칠원성군 또는 칠성여래라고도 한다. 이와 같은 칠성의 주존으로는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모시는데, 손에 금륜을 가지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에 협시로 배치된다.

• 산신(山神)은 재(財)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사찰에서 산신을 모시는 것은 민간의 토속신앙이 불교에 습합돼 들어온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사찰이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일종의 외호신중으로 산신령을 모시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민간신앙에서는 산에 사는 영물로 호랑이를 산군으로 모시기 때문에 하얀 긴 수염에 나이 든 도사 모습을 한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되고 있다.

• 독성(獨聖)은 복(福)을 의미한다.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불리는 독성은 12인연(十二因緣)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서 성인의 위치에 올라 말세 중생에게 복을 내린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말세의 복 밭(福田)이라고 신앙되는 나반존자가 정확히 어떤 분인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다만 머리카락이 희고 눈썹이 긴 모습으로 보아 16나한의 한 분인 빈도라발라사가 아닌가 여겨진다. 빈두로존자라고도 불리는 빈도라발라사는 코삼비국 재상의 아들로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귀의해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어느 날 목건련과 시내로 탁발을 나갔을 때 어떤 부호가 전단향나무를 공중에 매달아 놓고 누구든지 신통력으로 그것을 가져가라고 하는 것을 보고 그가 신통력을 나타내어 그것을 따냈다. 그러나 그 때문에 외도들의 조소를 받았으므로 부처님으로부터 부질없이 신통을 나타내지 말라는 질책을 들었다. 민간신앙에서는 부처님의 명을 받아 열반에 들지 않고 남인도의 마리산에 있으면서 불멸후에 중생을 제도하도록 돼있으므로 ‘주세(住世)’ 아라한이라고도 일컬어진다.

그리하여 우리나라에서는 독성(獨聖) 또는 나반존자(那畔尊者)라 불리면서 공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또 사찰에 따라서는 독성과 산신과 용왕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모두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들로서, 하근기(下根機) 중생을 위한 방편으로 채택된 것이다.

――――산신각(山神閣)의 특징――――

1) 절에 웬 단군상(檀君像)인가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불교사찰이 있다. 불교가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지 어언 2천년이나 되었으니 불교도 이제는 한국전통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불교가 우리 고유의 종교가 아닌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우리민족 고유 종교는 신교(神敎), 즉 단군교(檀君敎)였다. 그래서 불교가 처음 고구려나 백제, 신라에 들어 왔을 때 모진 박해를 받았다.

흔히 불교와 신교가 함께 공존 공생하는 현상을 신불습합(神佛褶合)이라 한다. ‘불교가 신교와 겹쳤다’는 뜻인데, 달리 말하면 겹옷을 입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속에는 불교 옷을 입었는데 겉에는 신교, 즉 단군교의 옷을 걸쳤다는 의미이다. 이런 현상은 역사가 오랜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태초에 신교 즉 단군교가 있었고 다음에 불교가 들어왔다. 이런 경우 단군이 주신(主神)이 되고 부처는 객신(客神), 즉 손님신이 되는 것이다. 두 신은 한동안 서로 힘겨루기를 하다가 결국 싸움을 멈추고 서로 손을 잡고 공존공생하기로 한다. 이것을 신불습합이라 하는 것이다. 절에 더러 단군상을 모셔놓은 것이 바로 신불습합의 좋은 사례이다. 그래서 삼성각이나 산신가각에 산신으로 단군을 모시기도 한다.

그리고 사찰의 중심 전각을 대웅전(大雄殿)이라 이름 하는 것도 한국에만 있는 명칭인데 그 어원을 따져보면 환웅전(桓雄殿)이 대웅전이 됐다는 것이다.

2) 산신(山神)의 수염은 검은가 흰가.

김천 직지사(直指寺)에는 걸작이라는 유명한 산신도가 있다. 그 산신도의 수염이 검다. 다른 절의 산신도에는 산신의 수염이 백발이다. 이런 흰 수염은 중국의 도교에 물든 산신도이다. 산신 무릎에 안기듯이 바짝 붙은 호랑이 역시 위엄이 있다. 직지사 산신도의 호랑이 눈빛은 살아 있다.

산신의 뒤에는 늙은 소나무가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이 노송이 다름 아닌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 와서 신시(神市)를 열었고 또 그곳에서 웅녀를 만나 단군을 낳았다는 신단수(神檀樹)를 기리는 것이다.

-----------------------------------성불하십시오. 작성자 아미산(이덕호)

※이 글을 작성함에 많은 분들의 글을 참조하고 인용했음을 밝혀둡니다. 감사합니다.

================================================================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 사찰에서 삼신각(三神閣)과 삼성각(三聖閣)을 혼용해서 쓰기도 ...

blog.naver.com

 

'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찰 주련(寺刹 柱聯)  (0) 2025.03.16
불교의 역사적 배경  (0) 2023.08.13
남방 및 북방불교사  (0) 2023.08.13
동남아시아 불교사  (0) 2023.08.06
三國遺事 「義解」 삼국유사 「의해」  (0) 202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