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스크랩] 4. 보살품(菩薩品)

수선님 2018. 1. 14. 13:34

4. 보살품(菩薩品)


그 때에 부처님께서 미륵보살(彌勒菩薩)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에게 가서 문병을 하도록 하라."

미륵보살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제가 도솔천왕(兜率天王)과 그 권속들을 위하여 불퇴전지(不退轉地)의 수행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데,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미륵이여, 세존께서는 그대에게 수기(授記)를 주시기를 이제 한 생(生)만 더 태어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고 하셨다는데, 어느 생(生)에서 수기를 받으렵니까? 과거의 생입니까, 미래의 생입니까, 현재의 생입니까? 만약 과거의 생이라고 한다면, 그 과거의 생은 이미 사라져 버렸고, 만약 미래의 생이라고 한다면,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고, 만약 현재의 생이라고 하여도 그 현재의 생은 (끊임없이 流動하고 있어서) 한 군데 머무르는 일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같이 비구여, 그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태어나고 늙으며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만약 무생(無生)37)의 경지에서 수기를 받은 것이라면, 정위(正位)이므로, 이 정위에서는 수기를 받는 일도 없을 것이며, 또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일도 없는 것입니다. 


미륵이여, 어느 생에서 수기를 받으려 합니까? 여여(如如)한 경지가 생기는 것으로부터 수기를 받으렵니까, 아니면 여여한 경지가 멸(滅)하는 것으로부터 수기를 받으려 합니까? 만약 여여한 경지가 생기는 것으로써 수기가 이루어진다면 여여는 거기에는 생기는 일이 없으며, 만약 여여한 경지가 멸하는 것으로써 수기가 이루어진다 해도 여여에는 멸(滅)이 없는 것입니다. 일체 중생이 여여하고, 일체법이 여여하며, 모든 성인과 현자도 여여하니, 그대 미륵까지도 여여합니다. 그러므로 만약 그대 미륵이 수기를 얻었다고 하면, 일체 중생도 예언을 얻은 것이 됩니다. 왜냐 하면 여여에 있어서는 두 가지 다른 것이 아니기[不二不異] 때문입니다. 


만약 그대 미륵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고 하면, 일체 중생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일체 중생 그대로가 깨달음의 실상[菩提相]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대 미륵이 깨달음의 경계[滅度]에 이른다고 한다면, 일체 중생도 깨달음의 경계에 이를 것입니다. 왜냐 하면 제불(諸佛)께서 일체 중생이 필경 깨달음[寂滅]을 얻고, 그대로 열반의 모습이며, 다시는 멸하는 일이 없다고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륵이여, 이러한 (나는 장차 깨달음을 얻으리라는 수기를 받았다는) 것을 설하여 천상(天上)의 신들을 유혹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일으킨다는 것도 없고, 또한 그러한 마음이 후퇴한다는 것도 없는 것입니다. 


미륵이여, 이 모든 천상의 신들로 하여금 보리(菩提, bodhi)를 분별하는 생각[見]을 버리게 해야 합니다. 왜냐 하면 보리라는 것은 몸[身]으로 얻을 수도 없는 것이며, 마음으로도 얻을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적멸(寂滅)이야말로 보리이니, 모든 모습[相]을 멸하였기 때문입니다. 

관하지 않는 것이 보리이니, 온갖 대상과의 관계[緣]를 떠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행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보리이니, 잊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憶念]이 없기 때문입니다. 

끊어 없애는 것[斷]이 보리이니, 모든 그릇된 견해[邪見]를 끊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떠나는 것[離]이 보리이니, 모든 망상을 떠나기 때문입니다. 

장애(障碍)가 보리이니, 모든 잘못된 바람[願]을 막아 버리기 때문입니다. 

들지 않는 것[不入]이 보리이니, 탐착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따르는 것[順]이 보리이니, 여여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머무는 것[住]이 보리이니, 법성(法性)에 머물기 때문입니다. 

이르는 것[至]도 보리이니, 실제(實際)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이 아닌 것[不二]이 보리이니, 마음과 대상[法]으로부터 떠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등함[等]이 보리이니, 허공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위(無爲)가 보리이니, 생(生)하고 머무르며, 멸(滅)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는 것[知]이 보리이니, 중생의 심행(心行)을 명확하게 알기 때문입니다. 

만나지 않음[不會]이 보리이니, 마음과 그 행을 알게 하는 대상[諸入]이 만나 결합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합하지 않음[不合]이 보리이니, 번뇌의 습기(習氣)로부터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자리함이 없는 것[無處]이 보리이니, 형색(形色)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명(假名)이 보리이니, 이름과 문자[名字]가 공(空)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허깨비[幻]와 같은 것이 보리이니, 취(取)하고 버리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혼란이 없는 것[無亂]이 보리이니, 항상 스스로 고요하기 때문입니다. 

미혹을 떠난 경계[善寂]가 보리이니, 그 성품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취하지 않음[無取]이 보리이니, 마음이 대상에 의하여 움직임[攀緣]을 멀리 떠났기 때문입니다. 

다르지 않음[無異]이 보리이니, 모든 존재[法]는 동등(同等)하기 때문입니다. 

비교할 길이 없음[無比]이 보리이니, 비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미묘함이 보리이니, 제법(諸法)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같이 설법하였을 때, 2백의 천상의 신들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동자(童子)인 광엄(光嚴)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서 문병하도록 하라."

광엄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제가 비야리 대성을 나가려 하였을 때에 유마힐이 마침 성문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었습니다.

'거사님, 어디서 오십니까?'

그는 대답하였습니다

'저는 도량(道場)에서 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도량이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그는 답하였습니다.


'올곧은 마음[直心]이 도량이니, 거짓이 없기 때문입니다. 

올곧은 마음으로 행하는 것[發行]이 도량이니, 만사를 판별[辦]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마음[深心]이 도량이니, 공덕을 증대시키기 때문입니다.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菩提心]이 도량이니, 잘못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보시(布施)가 도량이니, 보답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계(持戒)가 도량이니, 바람[願]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욕(忍辱)이 도량이니, 모든 중생에 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정진(精進)이 도량이니, 게을러 물러서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정(禪定)이 도량이니, 마음이 조화롭고 부드러워지기 때문입니다. 

지혜(智慧)가 도량이니, 눈앞에 있는 제법을 환히 보기 때문입니다. 

자(慈)가 도량이니, 모든 중생에게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비(悲)가 도량이니, (중생을 구제하는데) 피곤함과 괴로움을 잘 참아 내기 때문입니다. 

희(喜)가 도량이니,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좋아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사(捨)가 도량이니, 사랑과 미움을 끊어 버리고 평등하게 대하기 때문입니다.

신통(神通)이 도량이니, 6신통[通]을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해탈(解脫)이 도량이니, 8배사(背捨 : 8解脫)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방편이 도량이니,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입니다. 4섭(攝)이 도량이니, 중생을 아우르기[攝]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많이 듣는 것[多聞]이 도량이니, 들은 대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伏心]이 도량이니, 제법을 바르게 관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37도품이 도량이니, 유위법(有爲法)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4제[諦]가 도량이니, 세간을 속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연기(緣起)가 도량이니, 무명(無明)에서 늙음과 죽음까지, 그 모두가 다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온갖 번뇌가 도량이니, (무명번뇌의 본바탕이 불성임을) 여실하게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도량이니, 중생이 무아(無我)임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일체법이 도량이니, 제법의 실성이 공함을 알게 하기 때문입니다. 

항마(降魔)가 도량이니, (악마로 인하여 마음이) 움직이고 기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삼계가 도량이니, (마음이 업에 얽매이지 않아) 갈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자후가 도량이니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10력(力), 4무소외(無所畏), 18불공법(不共法)이 도량이니, 모든 잘못이 없기 때문입니다. 

3명(明)이 도량이니, 천안통(天眼通)·숙명통(宿命通)·누진통(漏盡通)으로 3세의 이치에 통달해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생각[一念]으로 일체법을 아는 것이 도량이니,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선남자여, 보살이 만약 온갖 바라밀에 따라서 중생을 교화하고 모든 일을 하면 일거수일투족[擧足下足], (그 모든 말과 행동이) 모두가 도량으로부터 나와서 불법에 머물게 되는 것으로 알아야만 합니다.'

  

이같이 설할 때 5백 명의 천인들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세보살(持世菩薩)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서 문병을 하도록 하라."

지세보살도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도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저는 조용한 방에 있었는데, 그 때 마왕 파순[魔波旬]이 1만 2천의 천녀를 거느리고 마치 제석천과 같이 꾸며서 북을 치며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제가 있는 곳으로 와서는, 제 발에 머리를 숙여 예배하고 두 손을 합장하고 나서 한쪽에 늘어섰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이들을 제석천이라고 생각하고 말했습니다.


'잘 오시었소, 교시가(憍尸迦)여. 그대에게 비록 복덕이 마땅히 갖추어져 있다 해도 스스로 방자해서는 안 됩니다. 마땅히 5욕은 무상하다고 관하고, 이로써 공덕의 근본[善本]을 구하며, 신체와 목숨과 재물49) 이 세 가지를 견고하게 간직할 수 있는 수행[堅法]을 닦을 수 있도록 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제 말에 그가 곧 말하였습니다.

'보살[正士]이여, 이 1만 2천의 천녀를 받아 주셔서 씻고 닦는 일을 시켜 주십시오.'

저는 교시가에게 말했습니다.

'교시가여, 이는 법도에 맞지 않는 일이라 제게는 필요 없습니다. 저는 부처님의 제자[釋子]인 사문으로 이는 저에게 바람직한 것도 아닙니다.'

  

제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그 때에 유마힐이 저에게 와서 말하였습니다.

'이는 제석천이 아닙니다. 마군이 와서 당신을 희롱하고자 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리고는 곧 마왕 파순을 향하여 말하였습니다.

'이 천녀들을 나에게 주시오. 나와 같은 사람이나 받을 만하오.'

  

마왕은 두려움으로 떨면서, '유마힐이 나를 괴롭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곧 모습을 감추어 달아나려 했지만, 도무지 숨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그의 신력(神力)을 다해 보았지만, 달아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곧 공중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파순(波旬)아, 천녀들을 그에게 주어야만 도망갈 수가 있느니라.'

마왕은 두려운 나머지 용서를 빌며 천녀들을 주었습니다.


유마힐은 천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마왕은 그대들을 나에게 주었으니, 이제는 그대들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야만 하오.'


곧 그들 각자에게 마땅한 가르침을 설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道意]을 일으키게 하였습니다. 또 말하였습니다.

'그대들은 이미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켰으므로 각자가 즐길 만한 법락(法樂)이 있을 것이니, 다시는 (天上의) 5욕락(欲樂)으로 돌아가서는 안 되리라.'

천녀들은 물었습니다.

'무엇을 가리켜 법락(法樂)이라고 합니까?'

  

유마힐이 답하였습니다.

'항상 부처님에 대한 믿음을 즐기고, 그 가르침을 듣고자 원함을 즐기며, 스님[衆]들을 공양함을 즐기고, 5욕을 떠남을 즐기며, 5온[陰]을 관하기를 원수나 도둑과 같다고 즐기고, 4대(大)를 관하기를 독사와 같다고 즐기며, 마음[內入]을 관하기를 사람이 살지 않는 텅 빈 마을과 같다고 즐기고,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道意]을 지키겠다고 즐기며, 중생들에게 이익을 베풀기를 즐기고, 스승을 존경하며 공양하는 것을 즐기며, 널리 보시를 행하기를 즐기고, 굳게 계를 지키기를 즐기며, 인욕하고 부드럽게 조화하기를 즐기고, 부지런히 선근을 쌓고, 모으기를 즐기며, 선정에 들어 흐트러지지 않기를 즐기고, 번뇌를 떠나 지혜를 밝게 하기를 즐기며,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菩提心]을 넓히는 것을 즐기고, 수많은 마군을 항복시키기를 즐기며, 온갖 번뇌를 끊기를 즐기고,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기를 즐기며, 상호(相好)를 성취하기 위하여 많은 공덕을 닦기를 즐기고, 도량을 장엄하기를 즐기며, 대승(大乘)의 심원한 가르침을 듣고 두려워하지 않기를 즐기고, 공(空)과 무상(無相)과 무원(無願)의 3해탈문(解脫門)50)을 즐기며, 때가 아닌 때[非時]를 즐기지 않는다. 동학(同學)을 가까이 사귀는 것을 즐기며, 동학이 아닌 사람들 속에 있어도 분노와 미움을 갖지 않음을 즐기며, 악지식(惡知識)도 거느려서 지킴을 즐기며,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 사귀는 것을 즐기며, 마음으로 깨끗함을 기뻐함을 즐기며, 깨달음을 위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행을 닦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이것을 보살이 진리[法]를 익히는 즐거움인 법락(法樂)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왕이 천녀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대들과 함께 하늘의 궁전[天宮]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천녀들은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이미 우리들을 거사(居士)님에게 주었습니다. 우리들은 법락(法樂)을 알고서 대단히 즐기고 있습니다. 다시는 5욕락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악마가 말했습니다.

'거사님, 이 여인들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모든 소유(所有)를 남에게 보시하는 자가 보살인 것입니다.'

유마힐은 말했습니다.

'나는 이미 버렸느니라. 그대가 곧 데리고 가거라. 그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처럼 모든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구하는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하여라.'  

천녀들이 유마힐에게 물었습니다.

'저희들이 어떻게 마왕의 궁전에 머물 수가 있단 말입니까?'


유마힐이 말했습니다.

'자매들이여, 꺼지지 않는 등불[無盡燈]이라고 하는 법문이 있으니, 그대들은 이 법문을 배워야만 하오.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는 것은 비유하자면, 한 등불로 백천(百千)의 등불에 불을 밝혀 어둠이 모두 밝아지고 그 밝음이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오. 자매들이여, 이같이 한 사람의 보살이 백천의 중생의 마음을 열고 이끌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도록 하고, 그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부처님께서 설하신 가르침에 따라 스스로 모든 선법(善法)이 자꾸만 늘어나게 하는 것을 꺼지지 않는 등불이라고 하는 것이오. 그대들이 비록 마왕의 궁전에 있다 하더라도 이 꺼지지 않는 등불로써 무수한 천자의 천녀들에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게 한다면, 이야말로 부처님의 은혜를 갚고 또 모든 중생들에게 큰 이익을 베풀어 주는 것이 될 것이오.'

  

천녀들은 유마힐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다음 마왕을 따라 마궁으로 돌아가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유마힐은 이 같은 자유자재한 신통력과 지혜와 변재(辯才)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장자의 아들 선덕(善德)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찾아가 문병을 하도록 하라."

선덕은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생각해 보니, 예전에 저는 아버지의 집에서 성대한 보시 모임[大施會]을 열고, 모든 사문과 바라문, 그리고 수많은 외도와 가난한 사람, 비천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孤獨], 거지들에게 공양하였습니다. 마지막 7일째 되는 날, 그 때 마침, 유마힐이 찾아와 저에게 말하였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성대한 보시의 모임이라는 것은 그대가 하고 있는 것처럼 열어서는 안 되는 것이오. 마땅히 법을 설해 주는 모임[法施]을 해야지, 어찌하여 이같이 재물을 베푸는 모임을 열고 있는 것이오?'

저는 말했습니다.

'거사님, 어떻게 하는 것을 법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 합니까?'

거사가 말했습니다.


'법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는 것은, 앞뒤의 차이가 없이 일시에 일체 중생을 공양하는 것이니, 이것이 법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는 것이오. 무슨 말인가 하면, (중생에게) 깨달음[菩提]으로써 대자심(大慈心)을 일으키고,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키며, 정법(正法)을 지니려는 대희심(大喜心)을 일으키고, 지혜를 간직하려는 대사심(大捨心)을 행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오. 그것은 인색함과 욕심을 거두어들임으로써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일으키고, 계율을 범한 자를 교화하는 것으로써 지계바라밀(尸波羅蜜)을 일으키며, 무아(無我)의 진리[法]를 알게 함으로써 인욕바라밀[提波羅蜜]을 일으키고, 몸과 마음의 겉모양[相]에 집착하지 않음으로써 정진바라밀(毘梨耶波羅蜜)을 일으키며, 보리의 경계[相]로써 선정바라밀(禪波羅蜜)을 일으키고, 모든 것을 빠짐없이 아는 지혜(一切智)로써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일으키는 것이오.

 

또 중생을 교화하면서 공(空)하다는 생각을 일으키고, 유위법(有爲法) 을 버리지 않고서도 무상(無相)의 실상을 바르게 알며, 이승에 생을 받는 모습을 나타내더라도 무작(無作)이라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오. 정법을 잘 지키고 간직하면서 방편의 힘을 발휘하고, 중생을 제도하면서 4섭법(攝法)을 행하며, 모든 사람을 존경하고 봉사하기 위하여 교만한 마음을 없애고, 몸[身]과 생명[命]과 재산[財]에 있어서 (法身과 慧命과 法財의) 3견법(堅法)을 얻도록 노력하며, 6념(念)하면서 올바른 사념[正思念]을 잊지 않고, 6화경(和敬)을 행하면서 순박하고 올곧은 마음[質直心]을 가지며, 착한 일을 바르게 행하기를 노력하여 청정한 생활[淨命]을 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고 기쁜 마음으로 성인과 어진 이를 가까이하며, 악인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을 다스리도록 하고, 출가하는 마음으로 깊은 마음[深心]을 늘 간직하며,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행하기 위하여 보다 많이 듣고자 하고, 다툼이 없는 회합을 위하여 고요하고 한적한 수도장을 마련하며, 부처님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좌선[宴坐]을 행하고, 중생을 번뇌의 속박[縛]에서 해방시키기 위하여 수행의 단계[修行地]대로 올라가는 것이지요.

  

상호를 다 갖추고 불국토를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복덕을 짓는 업을 행하고, 일체 중생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 각자에게 마땅한 가르침[法]을 설하여 지혜의 업[智業]을 일으키며, 일체법을 취하거나[取] 버리지[捨] 않고서 일상문(一相門)에 들어가기 위해 지혜의 업[慧業]을 일으키고, 일체의 번뇌, 일체의 장애, 일체의 불선(不善)도 모두 끊어 버리고, 일체의 바른 일[善業]을 모두 행하며, 일체의 지혜와 일체의 공덕을 얻음으로써 불도(佛道)에 도움이 되는 일체의 보조적인 수행법을 빠짐없이 행하는 것이다.

  

이 같은 것을 법을 설해 주는 모임이라고 하오. 만약 보살이 이 같은 법을 설해 주는 모임에 머무른다면 그는 대시주(大施主)가 되고, 일체 세간의 복전(福田)이 될 것이오.'


세존이시여, 유마힐이 이러한 가르침을 설했을 때, 바라문들 중의 2백 명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 때 저는 마음이 깨끗해지고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감탄하고 그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한 다음 곧 몸에 두르고 있던 몇 십만[百千]이나 되는 값비싼 영락(瓔珞)을 풀어서 바쳤으나 받지 않았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거사님, 원하오니 아무쪼록 받으시어 당신의 뜻대로 주고 싶은 이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유마힐은 곧 영락을 받아 들고 반으로 나눈 뒤 그 모임에 온 사람 중에 가장 비천한 거지에게 절반을 주고, 나머지 반은 저 광명국토(光明國土)의 난승여래(難勝如來) 에게 바쳤습니다. 그 모임의 모든 대중[會衆]은 난승여래를 우러러 보았으며, 또 그 부처님께 바친 영락이 부처님 주위에서 네 개의 보배로운 대좌와 기둥이 되어 4면을 거룩하게 장식했는데도 서로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유마힐은 신통한 변화[神變]를 나타내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약 보시를 하는 사람이 평등한 마음으로 가장 비천한 거지에게 보시하면서 여래복전(如來福田)에 대하듯이 분별함이 없이 평등하게 대비심을 드리우고 과보를 바라지 않고서 보시한다면, 이를 빠짐없이 법을 설해 준다[具足法施]고 부르오.'

  

비야리성에서 가장 비천한 거지도 이 신력을 보고, 그 설법을 듣고 (다른 사람들과)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보살들도 저마다 부처님께 그들의 지난 경험[本緣]을 이야기하며 유마힐이 말한 것을 칭찬하면서 모두 그를 찾아가 문병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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