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 심경 에세이

[스크랩] ♡ 반야 심경 에세이)(5)

수선님 2017. 11. 12. 13:19



♡ 반야 심경 에세이)(5)

해탈과 열반
행복한 곳, 저언덕으로 갈때 저 혼자만 가는 것이 아니다.
부족하고 모자라고 가난하고 소외된 외로운 사람들과 함께 가야 한다.

근대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아집에 빠져서

돈과 명품이 난무하는 자기당착 만족에 빠저 저 언덕에는 관심이 없다.

호화롭고 풍족한 물질에 함몰되어 자신을 잊은 채 살아 간다.

허망한 욕망의 불이 활활타고 있는 집에 살면서도

어린아이처럼 불장난만 하며 불이 무서운지 조차 모른다.

...

불교를 믿는 수행자나 불자는 그 핵심 목적이 해탈과 열반이어야 한다.
기독교는 천당을 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
불교는 해탈과 열반을 얻기위해서 수행하고 믿는 것이 핵심이다.

오늘날 불교를 믿는 불자나 수행하는 스님들까지도 해탈과 열반에 관심이 없다.

오직 돈과 권력 명예 인기 모든 물질적 욕구에 맞추어 기도하고

불사 공덕을 짓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많은 불교인들이 불교를 잘못인식하고 잘못 믿고있다.
재물을 얻기 위해서 권력과 출세를 얻기 위해서 명예와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믿는다 .

어불성실이다.
부처님의 가르침과는 십만팔천리다.
돈과 권력으로 명예와 부로 괴로움에서 떨쳐 날 수 는 없다.
재물과 권력을 통해서는 해탈할수 없고 열반을 증득할수가 없다.

붓다는 왕의 자리가 보장되어 있어도 가시지 않으셨다.
바루때 하나로 일생을 자유자재하며 존경받고 예경 받으며 거지왕으로 살다 가셨다.
그리고 그가 열반에 든 후에도 수수 만 년을 수많은 불자들이 예경하고 공양 올린다.

절에 수 십 년 다녀도 영험이 없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은 바로 해탈과 열반을 공부하지 않고 명예와 출세 부와

인기와 물질적 요구만 하였기 때문이다.
오직 재수대통 소원성취만 발원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탈과 열반은 스님들의 고유 권한인 줄 모두들 착각하고 있다.
해탈과 열반은 만유의 사람들이 공유해야 하는 진리요. 자유요,해탈지견이요.

불생불멸 이다.

나를 보고 상대가 평가하는 것은 보는사람의 문제이지 나의 문제는 아니다.

칭찬에도 우쭐되지 않고 비난에도 화내지 않는 자기 성찰의 공부수행이 필요한 것이다 .
대충대충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하게 해야한다.
서성거리고 맴돌아서는 바른 믿음을 가질수 없다.
미미하고 더듬거려서는 확실한 믿음을 얻을수는 없다.

자기의 식견과 소견 아집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이 거의 대부분이다.

자기 아집에 갇히면 새로운 신천지 세계로 나아 갈 수 가 없다.

시비가 끊어 지지않는 것은 자신의 부족함이지 남의 탓이 아니다.
불교는 논설이나 교리로 따져서 찾는 것이 아니다.
교리와 논설을 떠난 자리 저 언덕에 부처는 항시 존재 하고 있다.

때목을 버리지 않고 떼목이 좋다고 노래하고 춤추는 뱃놀이나 하고

내리지 않는다면 저 언덕에 오를수가 없다.
자신이 부처란 말이 틀리지 않는 말이지만,

부처란 아집이 생기면 그 또한 부처가 아니다.
자기의 아집 자기의 식견에서 벗어날때 자기 부처를 이룬다.
자기를 비우는 새로운 변화가 성불로 가는 저 언덕이다.




출처 : 하남 광덕사
글쓴이 : 우현훈(道正도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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