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대상이 왜 감각이며 무엇이 감각인가 ? 고엔카
담마(dhamma 法)는 괴로움을 소멸시키고 행복을 준다.
그럼 누가 이 행복을 주는가?
붓다가 아니라 몸에서 경험되어지는 무상의 지혜, 담마 바로 그것이 행복을 준다.
그렇기에 여러분은 수행해야만 되고 지속적으로 무상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 Sayagyi U Ba Khin -
스승 우 바 킨을 처음 만났던 때를 나는 잘 기억하고 있다.
그때 나는 나의 믿음에 대한 큰 애착과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스승은 내가 인도인 힌두 공동체의 지도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 물었다.
“여러분 힌두들은 도덕적인 지계(sīla)의 삶과 마음을 통달하는 선정(samādhi)의 삶,
그리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는 지혜(pañña)의 삶에 대해 어떠한 반대라도 있습니까?"
"제가 어떻게 반대할 수 있겠습니까! 거기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는 계속 말했다.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붓다가 가르치시는 것이자 또 내가 관심 있는 모든 것이고 당신에게 가르칠 모든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법에 대한 스승의 해석은 매우 보편적이었고 비종파적이었다.
그는 힌두로서의 내 존재에 대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첫 번째 위빠사나 코스는 나에게 붓다의 가르침을 알려 주었고, 내 삶을 영원히 변화시켰다.
논리적이면서 실제적이고 합리적이면서 보편적인, 그리고 비종파적인 그의 가르침에 나는 자석처럼 끌렸다.
그가 가르치는 것에 아무것도 반대할 것이 없었다.
그 동안 나는 번뇌의 소멸과 마음의 청정에 대하여 (힌두 가르침으로부터) 죽 들어왔고 또한 말해 왔다.
그러다가 첫 번째 코스에서 몸의 감각들을 관찰하기 시작하며
“이것이 어떻게 나를 돕게 될까?” 라고 처음에는 의심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곧 감각들을 관찰함으로써 번뇌의 뿌리로 접근해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실제로 나는 완전한 해탈과 자유를 향하여 걷고 있었다.
스승이 나에게 가르친 것은 단지 믿음을 고취시키거나 지적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이 두 가지가 중요할지라도 말이다.
그는 경험적인 차원에서 진리를 아는 방법을 가르쳤다.
만약 누군가 지적인 토론이나 논리적인 논쟁으로 붓다의 가르침을 나에게 설득하려 했다면,
나는 결코 설득되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내 믿음에 너무나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를 설득시키고 오늘의 결과를 준 것은 몸의 감각을 통한 진리의 경험이었다.
이 실제적인 도구는
나에게 모든 힌두들의 목표인 티따빤뇨(ṭhitapañño 영원한 지혜)를 얻은 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점점 수행해 갈수록 나는 붓다가 마음과 물질을 다루는 최고의 과학자였으며,
苦와 苦의 滅이란 진리의 최고 분석가였다고 더욱 더 확신하게 되었다.
붓다를 비할 데 없는 최고의 과학자로 만든 것은 바로 욕망(tanhā)이 감각(vedanā)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발견이었다.
나는 욕망이 바로 苦의 원인이라고 말했던 붓다 이전과 이후의 수많은 인도 스승들의 가르침을 공부해왔으나,
그들은 욕망이 오직 감각 대상들 때문에 일어난다고 알고 있었다.
그들은 가장 중요한 연결 관계(link)를 하나 놓치고 있었다.
즉 감각vedanā과 그리고 감각vedanā과 욕망tanhā과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들은 항상 외부의 감각 대상들이 욕망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딴하(tanhā)는 욕망, 갈애라는 뜻이다.
즐거운 것은 얻으려하고 지속시키려는 욕구이고, 괴로운 것은 제거하고 밀어내려는 욕구를 말한다.
그러므로 딴하는 사실 욕망과 혐오, 두 가지를 다 의미한다.
욕망의 실제 원인이 바로 감각이라는 붓다의 발견은 인류에게 있어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붓다의 선물이다.
이 하나의 발견으로 그는 우리가 자신 안에서 해탈과 자유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를 주셨다.
다른 이들은 ‘salayatana paccayā tanhā’ (육입 때문에 욕망이 일어난다)를 선언한다.
그러나 붓다는 ‘vedanā paccayā tanhā’ (감각 때문에 욕망이 일어난다)라고 발견했으며 그렇게 선언했다.
즉 번뇌들은 느낌(vedanā)의 단계에서 일어나며 vedanā 때문에 일어난다는 뜻이다.
만약 욕망tanhā이 감각vedanā 때문에 일어난다면,
욕망tanhā의 근원에 도달하고 욕망을 제거하려는 노력은 감각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있어야 하고,
감각vedanā이 어떻게 욕망과 혐오의 원인이 되는지에 대한 인식,
그리고 감각이 어떻게 욕망의 제거를 위해 사용되는지 아는 지혜를 포함해야만 이치에 맞는다.
Samāhito sampajāno, sato buddhassa sāvako;
vedanā ca pajānāti, vedanañca sambhavam
Yatha ceta nirujjhanti, maggañca khayagaminam;
vedanānam khaya bhikkhu, nicchanto parinibbuto'ti.
(SN, 2.4. 249 : from VRI edition)
집중되어 있고 무상에 대한 분명한 앎과 알아차림을 지닌 붓다의 제자는 감각과 감각의 일어남을 안다.
그리고 그것의 소멸과 소멸로 가는 길도 지혜로서 안다.
마침내 감각의 소멸과 그 너머에 도달한 수행자는
욕망에서 자유롭고 완전하게 해탈한다.
바로 이것이 붓다가 왜 마음과 물질(名色)에 대한 알아차림 수행을 실천하고 가르쳤는가에 대한 이유이다.
물질은 몸에 속하고, 감각(受 vedana)은 몸에서 느껴진다.
정신은 마음에 속하고, 마음의 현상들인 법은 마음에서 일어난다.
감각은 또한 마음의 작용(心所 cetasika)이다.
붓다가 “sabbe dhamma vedana samosarana”라고 말할 때,
그것은 모든 정신적인 작용(심소)의 경험은 감각과 분리될 수 없으며, 감각에 포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나의 이해에 의하면, 신념처나 수념처가 감각의 알아차림과 결부될 뿐만 아니라,
감각은 또한 법념처와 심념처에 있어서도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한다.
수행자가 신념처 수념처 심념처 법념처 등 어떤 것을 수행하든지간에 감각에 대한 알아차림은 계속된다.
그는 감각의 무상한 본질을 이해하며 그것의 알아차림을 유지함으로서 일어남의 현상과 사라짐의 현상을 자각한다.
이렇게 그는 감각으로 인해서 일어날 수 있는 욕망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즐거운 감각에 욕망으로 반응하지도 않고, 괴로운 감각에 혐오로 반응하지도 않는다.
수행자는 무상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평정심을 유지한다.
내 안으로의 여행은 하나의 행동 패턴이 무지의 어둠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나에게 분명히 보여주었다.
거기에서 우리는 몸의 감각에 대해 알게 모르게, 욕망과 혐오로 반응을 계속한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의 행동패턴에 노예가 되고, 의식의 가장 깊은 단계에서는 감각들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을 계속한다.
미세번뇌(snusaya kilesa)는 감각들에 대한 맹목적인 반응의 잠자는 화산이며 잠재적인 행동패턴이다.
붓다의 이 발견은 수행자들이 이런 맹목적인 행동 패턴을 벗어나도록 도와준다.
“Sukhaya bhikkhave, vedanaya raganusayo pahatabbo, dukkhaya vedanaya patighanusaya pahatabbo, adukkhanmasukhaya vedanaya avijjanusayo pahatabbo"
(SN 2.4. 251)
끊임없이 변해가는 감각의 본질을 알면서 평정심으로 관찰함으로서) 즐거운 감각을 사용하여 욕망의 잠재적인 성향을 버리고,
괴로운 감각을 사용하여 혐오의 잠재적인 성향을 버리며,
무덤덤한 중립의 감각을 사용하여 무지의 잠재성향을 버린다.
나는 인류에게 붓다의 유일한 공헌이 되는 이것을 깨달았다.
지금 드는 의문은 ‘우리가 vedana라고 말하는 것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Vedana는 마음의 네 가지 무더기(四溫)인 受想行識 중의 하나이며,
고통에서 해탈하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붓다의 말씀을 살펴볼 때 분명해진다.
사람이 몸에서 느끼는 vedana는 마음의 현상인 감각의 무더기, 수온(受蘊)에 의해서 경험된다.
물론 그것은 정신적인 受蘊이다.
물질 그 자체는 거기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경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고통에서 해탈하기 위한 수행에는 몸의 감각들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정신적인 느낌(somanassa domanassa)이 무시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동시에 계속된다.
사람을 고통에서 해탈하게 하는 법의 감로를 내가 마셨던 수행 전통은 레디 사야도 전통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실은 붓다의 전통이다. 이 전통은 몸에서 느끼는 감각에 모든 중요성을 부여한다.
내가 스승 우 바 킨 밑에서 첫 번째 코스를 했을 때, 나는 수행의 이런 독특한 관점에 굉장히 매료되었다.
단지 마음과 물질 현상의 무상한 본질에 대한 지적인 이해는
오직 지성을 어느 정도만 정화할 뿐이라는 것을 나의 첫 번째 위빠사나 코스는 보여주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행동패턴의 노예로 남고 철저한 무지 속에서 반응을 계속하는 마음의 심층에서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한다.
스승의 충고에 따라 붓다의 말씀을 공부하기 시작한 이 수행법에서 나는 너무나 많은 덕을 입었다.
나는 또한 이 고귀한 가르침을 인도가 왜 잃어버렸는가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붓다는 우리 전통에서 좋은 점들을 가져다가 자신의 가르침을 만들었으며,
거기에 새로운 어떤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내내 들어왔다.
그러나 실제적인 나의 수행경험은 이 믿음을 반대로 돌려놓았다.
나는 붓다의 가르침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이 주장에 대한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좀더 탐구하도록 만들었다.
붓다의 말씀(삼장)을 공부하는 것은 나에게 너무나 큰 기쁨을 주었다.
이전의 내 정보는 얼마나 잘못되었던가!
그것은 붓다의 강조점이 진리의 실제적인 경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어떻게 그토록 견고하게 실재에 근거를 둔 가르침을 그렇게 오해하도록 할 수 있었을까?
나는 이 길에 어떤 오류의 흔적도 없음을 간파할 수 있었다.
“bhavito bahulikato” - 이 말은 여러분 자신의 수행 경험으로 알고 그래서 삼장에 수차례 나오는 지혜를 스스로 얻고 키워가라는 것이다.
붓다는 “jana, passa” - 즉 여러분 자신의 경험으로, 스스로 알라 보라- 는 말을 자주 말씀하셨다.
있는 그대로서의 진리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은 거기에 어떠한 환상이나 착각도 없고,
또 이 길에 대한 상상이나 맹목적인 믿음이 없음을 보장한다.
붓다의 말씀은 또한 신체적인 몸의 감각들이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해탈을 위한 수행에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내 경험을 확고하게 했다.
둑카(Dukkha 괴로움)를 묘사하면서 붓다는 이렇게 말했다.
“katamanca bhikkhave, dukkham? Yam kho , bhikkhave kayikam dukkham kayikam asatam kayasamphassajam dukkham asatam vedayitam, idam vuccati, bhikkhave, dukkham.
(DN 2.393.)
비구들이여, 무엇이 괴로움인가?
비구들이여,
신체적인 괴로움, 신체적인 불편함, 혹은 신체적인 접촉의 결과로서 생긴 괴롭고 불편한 느낌, 이것을 괴로움이라 한다.
그리고 도마낫사(domanassa)를 묘사하면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katamanca bhikkave domanassa? yam kho bhikkhave, cetasikam dukkham cetasikam asatam manosamphassajam dukkham astam vedayitam, idam vuccati bhikkhave doamnassam'.
(DN 2. 394.)
비구들이여, 무엇이 고통(domanassa)인가?
비구들이여,
정신적인 괴로움, 정신적인 불편함, 혹은 정신적인 접촉의 결과로서 생긴 괴롭고 불편한 느낌- 이것을 고통이라 말한다.
다시 붓다가 dukkha vedana를 설명할 때, 그는 신체적인 감각들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붓다는 대념처경에서 “Atapi sampajana satima'라고 말한다.
Atapi와 satima는 이해하기가 쉽지만 나는 삼빠자노sampajano의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나는 그것이 분명하게 정의된 것을 발견했다. Sampajanna는 지속적이며 분명한 이해이자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구조(특히 감각)의 무상한 본질에 대한 투철하고도 철저한 이해를 의미한다.
Vedana는 몸에서 느껴진다.
그러나 그것은 마음의 한 부분이다.
그리고 그것의 관찰은 마음과 물질 현상의 관찰을 의미한다.
Kathan ca bhikkhave, bhikkhu sampajanao hoti? Idha bhikkhave, bhikkhuno vidita vedana uppajjanti, vidita upatthahanti, vidita abbhattham gacchanti. vidita vitakka upajjanti, vidita upatthahanti, vidita abbhattham gacchanti. vidita sanna uppajjanti, vidita uptthahanti, vidita abbhattham gacchanti. Evam kho, bhikkhave, bhikkhu sampajano hoti. Sato bhikkhave, bhkkhu vihareyya sampajano. Ayam kho amhakam anusasani'ti.
(SN 3.5.249)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철저하게 이해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한 비구가 그에게 일어나는 감각들을 알고, 그것들의 지속됨을 알고, 그것들의 사라짐을 안다.
그는 그에게서 일어나는 대상에 적용되는 마음을 알고, 그것의 지속됨을 알고, 그것의 사라짐을 안다.
그는 그에게서 일어나는 인식들을 알고, 그것들의 지속됨과 그것들의 사라짐을 안다.
수행자들이여, 이것이 바로 수행자가 철저하게 아는 방법이다.
비구는 알아차리면서 분명한 앎에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여러분을 위한 우리의 가르침이다.
붓다의 다음 말들은 vedana가 몸의 감각을 지칭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한다.
Yatha pi vata akase, vayanti vividha puthu
puratthima pacchima capi, uttara atha dakkhina.
saraja araja capi sita unha ca ekada
adhimatta paritta ca, puthu vayanti maluta.
Tathevimasmim kayasmim, samuppajjanti vedana
sukhadukkha samuppatti, adukkhamasukha ca ya.
Yato ca bhikkhu atapi sampajannam na rincati
Tato so vedana sabba, parijanati pandito.
So vedana parinnaya, ditthe dhamme anasavo
kayassa bheda dhammattho, sankhyam nopeti vedagu' ti.
(SN 2.4. 260)
하늘(허공)에는 여러 종류의 바람이 분다.
동쪽에서 서쪽에서 그리고 북쪽에서 남쪽에서
먼지 섞인 바람 먼지 없는 바람, 차가운 바람 더운 바람
사나운 바람 부드러운 바람 등- 많은 종류의 바람이 분다.
마찬가지로 이 몸에도 여러 종류의 감각들이 일어난다.
즐거운 감각 괴로운 감각, 그리고 무덤덤함 감각들.
비구가 열심히 수행하며 투철한 앎으로 감각기관들을 소홀히 하지 않을 때
그때 그런 지자(智者)는 모든 감각들을 완전하게 이해한다.
감각들을 완전하게 알면 바로 이 생에서 그는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몸이 죽을 때, 법에 확고하게 주하고 감각들을 완전하게 이해한 그런 사람은 묘사할 수 없는 그런 경지에 든다.
마찬가지로, vedana는 몸에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그는 말한다.
Seyyathapi, bhikkhave, agantukagaram, tattha puratimayapi disaya ... pacchimayapi disaya ... uttarayapi disaya ... dakkhinayapi disaya agantva vasam kappenti. khattiyapi... brahmanapi... vessapi... suddapi... agantva vasam kappenti. Evameva kho, bhikkhave imasmim kayasmim vividha vedana uppajjanti. Sukhapi... dukkhapi... adukkhamasukhapi vedan uppajjanti. Samisapi sukha... samisapi dukkha.. samisapi adukkhamasukha vedana uppajjanti. Niramisapi sukha... niramisapi dukkha... niramisapi adukkhamasukhapi vedana uppajjanti' ti.
(SN 2.4. 262)
수행자들이여, 가령 공공의 게스트 하우스(숙소)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동 서 남 북쪽에서사람들이 오고, 거기에 머문다. 크샤트리야, 브라만, 바이샤, 그리고 수드라들도 와서 거기에 머문다.
마찬가지로 수행자들이여, 이 몸에도 여러 가지 종류의 감각들이 일어난다.
즐거운 감각, 괴로운 감각, 그리고 무덤덤한 중립의 감각들이 일어난다.
집착이 있는 즐거운 감각, 집착이 있는 괴로운 감각, 집착이 있는 중립의 감각들이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집착 없는 즐겁고 괴롭고, 무덤덤한 중립의 감각들이 일어난다.
붓다가 vedana를 묘사할 때, 그것이 바로 신체적인 몸의 감각들을 의미하고 있음을 내가 계속 증명할 필요는 없다.
붓다의 설명은 나의 모든 의심을 제거해줬을 뿐만 아니라,
붓다 자신이 신체적 감각의 중요성을 나에게 가르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들도록 만들었다.
존경하는 나의 스승은 정기적으로 Tikappatthana를 염송하곤 했다.
나는 그것에 매우 고무되었다. Tikapatthana의 연구는 몸의 감각(kayikam sukham and kayikam dukkham)들이 열반의 성취에 가장 가깝고도 강한 연기 관계라는 분명하고도 명백한 붓다의 가르침을 드러낸다.
Pakatupanissayo-kayikam sukham kayikassa sukhassa, kayikassa dukkhassa, phalasampattiya upanissayapaccayena paccayo. Kayikam dukkham kayikassa sukhassa, kayikassa dukkhassa, phalasampattiya upanissayopaccayena paccayo. (Pathana 1.1.423)
즐거운 몸의 감각은 몸의 즐거운 감각, 몸의 괴로운 감각 그리고 강한 연기조건의 관계에서 과위(열반)의 성취가 일어나는 원인이다. 괴로운 몸의 감각은 몸의 즐거운 감각, 몸의 과로운 감각, 그리고 강한 연기조건의 관계에서 과위의 성취가 일어나는 원인이다.
그리고
Pakatupanissayo-kayikam sukham upanissaya.... vipassanam uppadeti, maggam uppadeti, abhinnam uppadeti, sampattitam uppadeti.
(Patthana 1.1.423.)
즐거운 몸의 감각으로 인해서..... 위빠사나가 일어나고.... 도가 일어나고 ... 지혜가 일어나고... 열반의 성취가 일어난다.
내 친구 중의 몇 사람은 vedana가 마음의 한 부분이며, 그래서 그것은 사실 몸의 감각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다른 의견들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그러나 경율론 삼장의 전체를 살펴 볼 때, 몸의 감각들은 정신적인 느낌만큼이나 vedana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수 있다. 오히려 몸의 감각들이 붓다의 가르침에서 더욱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Patthana는 몸의 감각이 해탈의 길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명백한 근거를 제시해 주었다.
나는 이것으로부터 무한한 혜택을 입었다.
그리고 존경하는 나의 스승이 몸의 감각에 중요성을 부여하면서 수행을 가르쳤던 것처럼,
나도 동일한 방법으로 이 위빠사나를 계속 가르치고 있다.
Somanassa와 Domanassa는 즐겁거나 괴로운 정신적인 느낌에 각각 사용된다.
Sukha와 dukkha는 넒은 의미로는 행복과 불행(괴로움)이지만,
붓다는 또한 그것들이 몸의 즐겁고 괴로운 느낌이라는 특정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Tisso ima bhikkhave, vedana. katama tisso? sukha vedana, dukha vedana, adukkhamasukha vedana. Ima kho, bhikkhave, tisso vedana.
(SN 2.4.250.11.)
세 종류의 몸의 감각들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즐거운 감각, 괴로운 감각,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중립의 감각이다.
붓다는 항상 위와 같은 방법으로 세 종류의 vedana를 열거했다.
somanassindriyam과 domanassindriyam은 다섯 가지 vedana를 열거할 때만 포함시켰다.
이것은 붓다의 가르침에서 정신적인 느낌보다 몸의 느낌이 우위에 있음을 나타낸다.
Katama ca, bhikkhave, tisso vedana? Sukha vedana dukkha vedana adukkhamasukha vedana- ima vuccanti, bhikkhave, Tisso vedana. katama ca bhikkhave, panca vedana? sukhindriyam, dukkhindriyam somanassindriyam domanassindriyam upekkhindriyam- Ima vuccanti, bhikkhave, panca vedana.
(SN 2.4. 270)
붓다는 사띠빳타나(염처)에 대해서 말할 때 sukha vedana, dukkha vedana로 vedana를 한정지었다.
삼빠쟌냐나 사띠빳타나의 문맥에서는 결코 somanassa vedana나 domanassa vedana는 언급하지 않았다.
삼장의 전체에서 vedana가 somanassa와 함께 언급되는 곳은 12번 정도 밖에는 되지 않지만, sukha dukkha vedana가 사용되는 곳은, 특히 사띠빳타나 수행과 관련된 문맥에서 수백 곳이 있다.
이처럼 괴로움을 소멸하는 수행에 대해서 말할 때,
붓다가 초점을 맞추는 것은 마음의 한 부분으로서, 몸에 확고하게 뿌리내린 vedana임이 분명하다.
이것은 또한 왜 무색계의 브라마 천신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할 수 없으며,
왜 붓다가 무색계정에 있는 과거의 스승들에게 법을 줄 수 없었는가에 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무색계 5정부터 8정에서는 마음이 몸으로부터 자유롭고(마음만 있을 뿐 몸이 없고),
그래서 거기에서는 vedana를 경험할 수 없다.
브라마 천신들은 몸이 없기에 몸의 감각을 경험할 수 없다.
그러므로 vedana를 알아차리는 수행은 불가능하며, 그래서 그들은 해탈의 길을 걸을 수 없다.
사마디(삼매) 수행에서 somanassa와 domanassa는 3선에서 사라지나,
sukha와 dukkha vedana는 오직 4선에서 사라진다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중립의 감각은 4선에서도 남아있다.
이것으로 볼 때, 우리는 몸의 감각들이 실재에 대한 더 강하고 지속적인 수행의 바탕을 제공하고,
그러므로 욕망의 근본원인에 대한 관찰을 제공한다고 무리없이 결론내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감각들을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감각들은 우리 자신의 해탈을 성취하기 위한 실제적인 도구를 제공한다.
나는 나의 스승이 가르친 이 수행법을 이용해 내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이것을 배웠다.
이런 배경에서, 붓다의 말씀은 너무나 설득력이 있고, 격려가 된다.
이 길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기쁨을 주었다.
스승의 권고로 나는 이 수행법을 인도와 세계 여러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해탈의 이 수행법을 여러 학생들과 나눌 때,
나는 그들 또한 감각의 수행으로 그것들의 참 본질을 이해하여 수행의 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안다.
분명하고 실제적이고 그리고 결과를 산출하는 붓다의 가르침은 나에게 너무나 많은 믿음과 확신을 주었다.
그것은 어떤 상상력이나 맹목적인 믿음으로 파악할 수 있는 범주를 벗어나 있다.
지금도 누군가는 나에게 와서 왜 몸의 감각에 그렇게나 많은 중요성을 두냐고 논쟁한다.
매우 겸허하게 나는 그에게, 혹은 그녀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직접 해보라고,
그리고 그것이 붓다의 가르침을 따른 것인지 아닌지 직접 시험해 보라고 청한다.
이 수행법에 대해서는 의심할 것이 없다.
나는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 세상이 낳은 마음과 물질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이며, 가장 위대한 마음의 의사인 붓다가 우리에게 보여준 그 길을 우리 모두 걷자. 우리의 철학적인 믿음들이 우리에게 장애가 되지 않기를.
Vedana는 불행에서 우리를 자유롭게 할 도구라는 붓다의 이 발견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부디 모두가 다 행복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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