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스크랩] 입법계품 41. 사자빈신 비구니의 법문

수선님 2018. 2. 25. 12:23

연화사 앨범 > 십우도 6. (기우귀가 ...선재동자는 다시 남쪽으로 가서 수나(輸那)라고 하는 나라의 가릉가(訶陵迦) 숲의 성(城)에 이르러 사자빈신비구니(獅子頻申比丘尼)를 찾아 보았다.

 

그 비구니가 승광왕(勝光王)이 보시한 일광(日光)동산에서 법을 설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그 동산에 가서 두루 살펴 보았다.


그 동산에는 가지 가지의 아름다운 나무들이 울창하고, 냇물과 샘과 못에는 수많은 꽃들이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한량없는 보배나무가 줄을 지어 늘어서 있고 나무 밑에는 사자좌가 놓여 있었다. 그 동산의 여러가지 훌륭한 풍광과 아름다운 장엄은 마치 하늘나라의 궁전과 같았다.


이 때 선재동자는 사자빈신비구니가 모든 보배나무 아래 놓인 사자좌에 두루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낱낱 사자좌에 모인 대중도 같지 않고 말하는 법문도 각각 달랐다. 사자빈신비구니는 그들의 욕망과 이해함이 서로 다른 차별에 따라서 법을 설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게 하고 있었다.


이것이 어떻게 해서 가능한가 하면, 이 비구니가 (1) 넓은 눈으로 모든 존재를 평등하게 본다[普眼捨得]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2) 일체의 불법을 설한다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3) 법계의 여러가지 차별을 밝힌다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4) 모든 장애의 바퀴를 없앤다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5) 모든 중생에게 착한 마음을 내게 한다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6) 훌륭한 장엄이라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7) 장애가 없는 진실을 안에 갈무리한다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8) 법계의 모든 영역[법계 만다라, 法界圓滿]이라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9) 마음의 보배 곳집[心藏]이라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10) 두루 널리 기쁨을 출생시키는 곳집이라고 하는 반야바라밀문 등의 열 가지 반야바라밀문을 머리로 삼아 수없는 백만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선재동자는 사자빈신비구니의 이러한 경계를 보고 또 부사의한 법문을 듣고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게 되었다. 선재동자가 합장하고 서서 보살행을 배우고 보살도를 닦는 법을 가르쳐 주기를 청하자, 비구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남자여, 나는 온갖 지혜를 성취하는 해탈을 얻었는데, 이 지혜의 광명은 잠깐 동안에 삼세(三世)의 모든 법의 장엄을 두루 나타나게 한다. 나는 이 지혜의 광명문에 들어가서 모든 법을 내는 삼매왕(三昧王)을 얻었고, 이 삼매로 인하여 뜻대로 태어나는 몸을 얻게 되어 시방 모든 세계의 도솔천궁에 있는 일생보처보살의 처소에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낱낱 보살의 앞에서 불가설세계의 티끌 수 몸을 나타내고 낱낱 몸으로 불가설세계의 티끌수 공양을 하였다.


어떤 중생이나 내가 이렇게 부처님께 공양한 줄을 아는 이는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가지 않았으며, 어떤 중생이든 나에게 오면 나는 반야바라밀다를 말하여 주었다.


선남자여, 나는 모든 중생을 보아도 중생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았으니, 지혜눈으로 보는 까닭이다. 모든 말을 들어도 말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마음에 집착이 없는 까닭이다. 모든 여래를 뵈어도 여래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의 몸[法身]에 대해서 통달한 까닭이다. 모든 법륜을 머물러 가지면서도 법륜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의 성품을 깨달은 까닭이다. 한 생각에 모든 법을 두루 알면서도 모든 법이라는 분별을 내지 않으니 법이 환술과 같음을 아는 까닭이다. 선남자여, 나는 다만 온갖 지혜를 성취하는 해탈을 알 뿐이다.”


사자빈신비구니가 설하고 있는 ‘온갖 지혜를 성취하는 해탈’법문은 반야의 지혜와 커다란 원[大願]에 의한 삼매가 중심을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 비구니가 일체세계의 다양한 중생들의 욕망과 이해력이 제각기 다른 데에도 불구하고 각기 알맞은 법을 설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서 물러나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은 그 비구니가 일체의 분별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반야의 입장을 근본으로 하여 열 가지 반야바라밀을 으뜸으로 삼는 셀 수도 없는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무수한 반야바라밀문에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 바로 일체지(一切智)를 성취하는 일이 된다. 반야의 지혜 광명은 일심(一心)의 순간에 모든 법의 장엄을 두루 나타나게 하는 여러가지의 삼매를 이루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을 공양한다고 하는 것도 반야의 지혜에 근거를 두고 지극한 원(願)에 의해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한 원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모습이 바로 여러 가지의 삼매인 것이다. 사자빈신비구니가 시방세계에서 어떠한 두려움이나 장애가 없이 적극적으로 중생을 교화할 수 있는 것은 반야의 지혜와 여래를 고양하려는 대원(大願)에 의한 것이다.

 

권탄준/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출처 : 忍土에서 淨土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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