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대품
Mahā-vagga
외도의 주장 경(A3:61)
Tittha-sutta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 등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지음 없음에 도달하고 만다. 어떤 것이 셋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
2. “비구들이여, 나는 이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이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욕설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꾸며낸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하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첫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註)숙작인론(宿作因論) : 모두 전생의 행위에 기인한 것이다라는 주장을 한역에서는 숙작인론이라고 한다. 붓다는 원인과 결과를 설하신 분이고 인과를 설하신 분이고 업을 설하신 분입니다. 그렇지만 지금 겪는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은 원인이 있다는 말과 지금 겪는 모든 즐거움과 괴로움은 전생의 업보이다라는 말은 다릅니다. 붓다는 숙작인론을 잘못된 극단적인 원인결과론으로 비판하고 계신 것입니다.
붓다는 지금 겪는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의 원임으로 업을 포함하여 8가지를 설하신 경이 상윳따니까야 느낌상응편의 시와까경 입니다. 외도의 주장과 시와까경을 함께 비교하여 보시면 공부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3.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이간질하는 말을 꾸며낸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일 테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註)존우론(尊祐論) : 모든 것은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한역에서는 존우론이라고 한다. 붓다 당시 이러한 존우론을 주장한 것은 바라문들의 창조주 브라흐마론과 불을 섬기던 배화교도(조로아스터교)의 유일신론이 있다. 바라문들의 창조주 브라흐마론에 대해서는 불교논문및 평론 48번글 '창조주 브라흐마(Brahma)에 신에 대한 비판 - 안양규 동국대 교수의 글을 참조 바랍니다. 그리고 배화교도로서 불교로 귀의한 분은 우루벨라 가섭삼형제가 유명하다.
4. “비구들이여, 나는 그 가운데서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그대 존자들은 ‘사람이 즐거운 느낌이나 괴로운 느낌이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것이 사실인가?’
내가 이와 같이 물었을 때 그들은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그대 존자들이 생명을 죽이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음행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이간질하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욕설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꾸며낸 말을 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탐욕스럽더라도 그것은 원이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마음이 성냄으로 가득하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고, 삿된 견해를 가지더라도 그것은 원인도 없을 것이고 조건도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떤 것에도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고 진심으로 믿는 자들에게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하려는 열의와 노력과 하지 않으려는 열의와 노력이 없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 진실함과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마음 챙김을 놓아버리고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머물기 때문에 자기들 스스로 정당하게 사문이라고 주장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 대한 나의 세 번째 정당한 논박이다.
註) 우연론(遇然論): 모두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다라는 것을 한역으로는 우연론이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세 가지 외도의 주장이 있다. 현자들이 그것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묻고 반복해서 질문하면 그것은 [스승들의] 계보에는 이르겠지만 결국에는 [업]지음 없음에 도달하고 만다.”
5. “비구들이여, 내가 설한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당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 내가 설한 법은 어떤 것인가?
(1)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과 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2)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3)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
6.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요소가 있다.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 허공의 요소[虛空界], 의식의 요소[識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의 요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조건하여 설했다.”
7.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觸處]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 눈의 감각접촉의 장소, 귀의 감각접촉의 장소, 코의 감각접촉의 장소, 혀의 감각접촉의 장소, 몸의 감각접촉의 장소, 마노(마음)의 감각접촉의 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감각접촉의 장소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조건하여 설했다.
8.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1) 눈으로 형상을 볼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형상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2) 귀로 소리를 들을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소리를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3) 코로 냄새를 맡을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냄새를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4) 혀로 맛을 볼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맛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맛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맛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5) 몸으로 감촉을 느낄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감촉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감촉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감촉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6) 마노로 법을 알 때 정신적 즐거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정신적 괴로움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하고 평정의 기반이 되는 법을 지속적으로 고찰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열여덟 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조건하여 설했다.
註) 한역에서는 18가지 마음의 지속적인 고찰을 18의행(意行)이라고 한다. 18계와 같은 의미이다.
9.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기자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했다. 이것은 무엇을 조건하여 설했는가?
여섯 가지 요소에 의지하여 모태에 들어감이 있다.
듦이 있을 때 정신∙물질[名色]이 있다.
정신∙물질을 조건하여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入]가 있다.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조건하여 감각접촉[觸]이 있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受]이 있다.
비구들이여, 나는 느낌을 느끼는 자에게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천명하고,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다.’라고 천명한다.”
10.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병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1.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集聖諦]인가?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의도적 행위.行)이,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의식을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갈애를 조건으로 취착이, 취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滅聖諦]인가?
무명이 남김없이 사라져 소멸하기 때문에 형성이[行]이 소멸하고, 형성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이 소멸하고, 의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물질(명색)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13.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의 성스러운 바른 길[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마음 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 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라고 내가 설한 이 법은 현명한 사문∙바라문들에게 논박될 수 없고 오염될 수 없고 비난받지 않고 책망 받지 않는다고 설한 것은 이것을 반연하여 설했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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