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바라문 품
Brāhmaṇa-vagga
두 바라문 경1(A3:51)
Dvebrāhmaṇ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사왓티의 제타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카 승원에 머물고 계셨다. 그 무렵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 두 명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들은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입니다. 저희들은 아직 덕행(kalyāṇa)을 하지 못했고 선행(kusala)을 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행(bhīruttttāṇa)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훈계하여 일깨워 주시고 또한 저희들을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은 저희들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3. “참으로 그대 바라문들은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아직 덕행을 하지 못했고 선행을 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이 세상을 휩쓸어갑니다.
바라문들이여,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의해 휩쓸려갈 때 몸으로 자제하고 말로 자제하고 마음으로 자제합니다. 그러면 그러한 자제가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에게 보호, 의지, 섬, 귀의처, 버팀목이 됩니다.”
4. “삶은 휩쓸려가고 생명은 덧없고
늙음에 휩쓸린 자에게 보호란 없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직시하면서
행복을 가져올 공덕을 지으라.
현생에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자제하고 살면서 공덕을 지은 것
그것이 죽을 때 그에게 행복을 가져오리.”
두 바라문 경(A3:52)
1. 그 무렵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 두 명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두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들은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된 바라문입니다. 저희들은 아직 덕행을 하지 못했고 선행을 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저희들을 훈계하여 일깨워 주시고 저희들을 가르쳐주십시오. 그것은 저희들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3. “참으로 그대 바라문들은 늙고,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오래 살았고, 생의 마지막에 이르렀고, 120살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대들은 아직 덕행을 하지 못했고 선행을 하지 못했고 위험에서 보호해줄 행을 하지 못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늙음과 질병과 죽음이 이 세상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바라문들이여, 이와 같이 이 세상이 늙음과 질병과 죽음에 의해 탈 때 몸으로 자제하고 말로 자제하고 마음으로 자제합니다. 그러면 그 자제함이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그에게 보호, 의지, 섬, 귀의처, 버팀목이 됩니다.”
4. “집이 불탈 때 가져나온 소유물과 타지 않은 것
그것은 집 주인에게 크게 쓸모가 있듯이
그와 같이 세상이 늙음과 죽음에 불탈 때
보시로써 자신을 지켜라.
이미 보시한 것은 잘 지킨 것이니라.
현생에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자제하고 살면서 공덕을 지은 것
그것이 죽을 때 그에게 행복을 가져오리.”
어떤 바라문 경(A3:53)
Aññatarabrāhmaṇa-sutta
1. 그 무렵 어떤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얼마만큼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까?"
2. “바라문이여, 욕망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욕망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사람은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성냄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에 압도된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3.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유행승 경(A3:54)
Paribbājaka-sutta
1. 그 무렵 바라문 출신의 유행승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바라문 출신의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도대체 얼마만큼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까?”
2. “바라문이여, 욕망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욕망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욕망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은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욕망을 버렸을 때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욕망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마음이 빼앗긴 사람은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욕망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타인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3. “바라문이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성냄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성냄을 버렸을 때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자는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성냄을 버렸을 때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타인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4.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에 압도된 자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에 압도된 자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른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말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고 마음으로 나쁜 행위를 저지르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에 압도된 자는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타인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타인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둘 모두에게 이로운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법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5.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열반 경(A3:55)
Nibbāna-sutta
1. 그 무렵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법은 열반으로 잘 인도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얼마만큼 열반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입니까?”
2. “바라문이여, 욕망에 물들고 욕망에 사로잡히고 그것에 정신을 쏟는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욕망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열반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3. “바라문이여, 성내고 성냄에 사로잡히고 성냄에 압도된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성냄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열반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4. “바라문이여, 어리석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히고 어리석음에 압도된 사람은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한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어리석음을 버렸을 때 그는 자기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타인을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고 둘 모두를 해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이렇게 열반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5. “바라문이여, 그는 욕망이 남김없이 다란 것을 경험하고 성냄이 남김없이 다한 것을 경험하고 어리석음이 남김없이 다한 것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열반은 현재에서 증명되는 것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과보가 있는 것이고, 와서 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고, 잘 열반으로 인도하는 것이고, 지혜 있는자 누구나 스스로 증득할 수 있는 것이다.”
6.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부자 경(A3:56)
Mahāsāla-sutta
1. 그 무렵 어떤 부유한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부유한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나이 들고 태어난 지 오래 되었고 스승들의 스승들이었던 옛날의 바라문들이 말씀하시기를 ‘옛날에 이 세상은 무간지옥을 떠올릴 만큼 사람들로 붐볐고, 마을과 성읍과 수도는 닭이 날아가서 앉을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없어지고 줄어들었습니다.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고, 성읍은 더 이상 성읍이 아니며, 도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고, 지방은 더 이상 지방이 아닙니다. 이것의 원인은 무엇이고 이것의 조건은 무엇입니까?”
2. “바라문이여, 지금의 사람들은 법답지 못한 욕망에 물들고 비뚤어진 탐욕에 압도되고 삿된 교리에 빠져있다. 그들은 법답지 못한 욕망에 물들고 비뚤어진 탐욕에 압도되고 삿된 교리에 빠져서 예리한 칼을 쥐고 서로의 생명을 빼앗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바라문이여, 지금의 사람들이 없어지고 줄어들어서,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고, 성읍은 더 이상 성읍이 아니며, 도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고, 지방은 더 이상 지방이 아닌 것은 바로 이것이 그 원인이고 이것이 그 조건이다.
다시 바라문이여, 지금의 사람들은 법답지 못한 욕망에 물들고 비뚤어진 탐욕에 압도되고 삿된 교리에 빠져있다. 그들이 법답지 못한 욕망에 물들고 비뚤어진 탐욕에 압도되고 삿된 교리에 빠져있을 때 비가 때맞춰 내리지 않았다. 기근이 들었고 농산물은 흉작이 되었고 병이 들었고 줄기로만 남아있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어죽었다.
바라문이여, 지금의 사람들이 없어지고 줄어들어서,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고, 성읍은 더 이상 성읍이 아니며, 도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고, 지방은 더 이상 지방이 아닌 것은 바로 이것이 그 원인이고 이것이 그 조건이다.
다시 바라문이여, 지금의 사람들은 법답지 못한 욕망에 물들고 비뚤어진 탐욕에 압도되고 삿된 교리에 빠져있다. 그들이 법답지 못한 욕망에 물들고 비뚤어진 탐욕에 압도되고 삿된 교리에 빠져있을 때 약카가 그들에게 큰 괴물을 보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바라문이여, 지금의 사람들이 없어지고 줄어들어서, 마을은 더 이상 마을이 아니고, 성읍은 더 이상 성읍이 아니며, 도시는 더 이상 도시가 아니고, 지방은 더 이상 지방이 아닌 것은 바로 이것이 그 원인이고 이것이 그 조건이다.”
3.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왓차곳따 경(A3:57)
Vacchagotta-sutta
1. 그 무렵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오직 나에게만 보시를 해야 하고 다른 자에게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의 제자들에게만 보시를 해야 하고 다른 자의 제자들에게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자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오직 나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자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오직 나에게만 보시를 해야 하고 다른 자에게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의 제자들에게만 보시를 해야 하고 다른 자의 제자들에게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자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오직 나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자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라고 그들이 말한 것은 고따마 존자가 설하신 것과 일치합니까? 고따마 존자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고따마 존자께서 설한 것을 반복한 것입니까? [고따마 존자가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사람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저희들은 고따마 존자를 비방하고 싶지 않습니다.”
2. “왓차여, 그들이 말한 사문 고따마는 ‘오직 나에게만 보시를 해야 하고 다른 자에게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의 제자들에게만 보시를 해야 하고 다른 자의 제자들에게 보시를 해서는 안 된다. 오직 나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자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오직 나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고 다른 자의 제자들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라는 것은 내가 말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
왓차여, 그들은 진실이 아닌 거짓으로 나를 비방한다.
왓차여, 다른 자로 하여금 보시하는 것을 막는 자는 세 사람을 방해하는 것이고 세 사람을 잃는 것이다. 어떤 것이 셋인가?
시주자가 덕을 쌓는 것을 방해하고, 보시 받을 자가 얻는 것을 방해하고, 먼저 자기 자신이 몰락하고 파멸한다.
왓차여, 다른 자로 하여금 보시하는 것을 막는 자는 이러한 세 사람을 방해하는 것이고 세 사람을 잃는 겄이다.
왓차여, 그러나 나는 이와 같이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이곳에 있는 중생(존재)들이 먹겠지.’하는 생각으로 항아리의 찌꺼기나 접시의 찌꺼기를 씻으면 그것으로도 그 사람은 덕을 쌓는다고 말하거늘 하물며 인간에게 보시한 것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3. “왓차여, 또한 나는 계를 지키는 사람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온다고 말한다. 계를 지키지 않는 사람에게 한 것은 그렇지 않다. 계를 지키는 사람은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고 다섯 가지 특징을 가졌다. 그는 어떠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는가?
감각적 쾌락을 버렸고, 성냄을 버렸고, 해태와 혼침을 버렸고, 들뜸과 후회를 버렸고, 의심을 버렸다.
왓차여, 그는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다.
그러면 그는 어떠한 다섯 가지 특징을 가졌는가?
그는 무학(無學)의 계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삼매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통찰지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해탈의 무더기를 가졌고, 무학의 해탈지견의 무더기를 가졌다.
왓차여, 그는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가졌다.
왓차여, 이러한 다섯 가지 특징을 버렸고 다섯 가지 특징을 가진 자에게 보시한 것은 큰 결과를 가져온다고 나는 말한다.”
4. “검은소, 흰 소, 붉은 소, 누른 소
자기 새끼와 같은 색깔의 소, 회색 소
이런 소떼 중에서 길들여져 있고 [무리를] 선도하고
짐을 충분히 감당하고 힘세고
옆길로 벗어나지 않는 황소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것의 색깔에 관계없이
오직 그 소에 짐을 싣는다.
마찬가지로 사람들 중에
끄샤뜨리야, 바라문, 와이샤, 수드라
불가촉천민의 어느 계급이든지
겸손하고 정직하고 법에 서있고 계를 지키고
진실을 말하고 양심이 있으며
생사를 버렸고 청정범행을 오로지하고
짐을 내려놓았고 윤회에서 벗어나고
할 일을 해 마쳤고 번뇌가 없으며
모든 법의 저쪽에 이르렀고 집착하지 않고
오염원이 소멸된 자가 있다.
오직 때가 없는 분, 진정한 들판인
그분에게 보시한 것은 풍성한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알지 못하고
통찰지가 없고 듣지 못하여
밖의 다른 교단에 보시를 하고
좋은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통찰지가 있고 지자들에 의해 존경받는
좋은 사람들을 섬기는 자는
선서에 대한 신심이 뿌리 깊숙이 확고하나니
이러한 지자들은 신의 세상에 가거나
혹은 이 인간 세상에서는 좋은 가문에 태어날 것이며
그는 서서히 열반을 증득할 것이니라.”
띠깐나 경(A3:58)
Tikaṇṇa-sutta
1. 그 무렵 띠깐나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띠깐나 바라문은 세존의 면전에서 삼명(三明)을 구족한 바라문들을 칭찬했다.
“고따마 존자이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삼명에 통달했고, 이런 이유로 바라문들은 삼명에 통달했습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어떻게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은 모계와 부계 양쪽 모두로부터 순수 혈통을 이어왔고 일곱 선대(조상) 동안 태생에 관한 한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는 베다를 공부하고 만트라를 호지하며 어휘와 제사와 음운과 어원에 이어 역사를 다섯 번째로 하는 삼베다에 통달하였고 언어와 문법에 능숙하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대인상에 능통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하는 것과 성스러운 교법에서 삼명을 정의하는 것은 다르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성스러운 교법에서는 어떻게 삼명을 정의합니까? 고따마 존자께서 성스러운 교법에서 정의하는 삼명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잘 마음에 새겨 듣도록 하라. 이제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띠깐나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3. “바라문이여,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전생의 여러 가지 삶의 형태를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宿命通]
바라문이여, 그는 첫 번째 영지[明]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4.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天眼通]
바라문이여, 그는 두 번째 영지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5.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성스러운 여덟 가지 바른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쾌락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바라문이여, 그는 세 번째 영지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6. “그는 변함없이 계를 지니고 근면하고 삼매를 닦고
그의 마음은 자유자재하고 일념이 되고 잘 집중되노라.
어둠을 흩어버리고 지혜 있고 삼명을 구족했고
죽음을 정복했고 신과 인간들에게 이익을 주고
모든 [불선법]을 버렸고
삼명을 구족했고 더 이상 미혹에 빠져 머물지 않고
깨달았고 마지막 몸을 받은 그를 고따마라 부르리.
그런 성자는 전생을 기억하고 천상과 지옥을 보며
태어남이 다 했고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쳤고
이 세 가지 영지에 의해 삼명을 갖춘 바라문이 되나니
그를 나는 삼명을 구족한 자라 부르리.
단지 말로만 그렇게 불리는 다른 자를
나는 삼명을 구족한 자라 부르지 않노라.”
7. “바라문이여, 성스러운 교법에서는 이와 같이 삼명을 정의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삼명과 성스러운 교법에서 가르치는 삼명은 다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삼명을 성스러운 교법에서 가르치는 삼명의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자눗소니 경(A3:59)
Jānussoṇi-sutta
1. 그 무렵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만약 어떤 사람에게 제사를 지낼 공물이 있고, 죽은 조상에게 올릴 음식이 있고, 훌륭한 사람에게 올릴 음식이 있고, 보시할 다른 물건이 있다면 그것을 삼명을 구족한 사람에게 보시해야 합니다.”
“바라문이여, 바라문들은 어떻게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은 모계와 부계 양쪽 모두로부터 순수 혈통을 이어왔고 일곱 선대(조상) 동안 태생에 관한 한 의심할 여지가 없고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그는 베다를 공부하고 만뜨라를 호지하며 어휘와 제사와 음운과 어원에 이여 역사를 다섯 번째로 하는 삼베다에 통달하였고 언어와 문법에 능숙하였으며 자연의 이치와 대인상에 능통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은 이렇게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바라문들이 바라문들의 삼명을 정의하는 것과 성스러운 교법에서 삼명을 정의하는 것은 다르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다면 성스러운 교법에서는 어떻게 삼명을 정의합니까? 고따마 존자께서 성스러운 교법에서 정의하는 삼명을 설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잘 마음에 새겨 듣도록 하라. 이제 설할 것이다.”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바라문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멀어지고 선하지 않은 법[不善法]으로부터 멀어져, 거친 사유(일으킨 생각.尋)와 미세한 사유(지속적인 고찰.伺)을 지닌, 멀어짐(분리)으로부터 생겨난 기쁨[喜.희열]과 즐거움[樂.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가라앉아, 안으로 고요해지고, 마음이 한 곳에 고정되어(心一境性), 거친 사유와 미세한 사유가 없는 삼매로부터 생겨난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기쁨을 떠나 평정이 머무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正念.正知)을 지녀, 즐거움을 몸으로 느끼는, 거룩한 이들이 말하는 바, '평정과 마음챙김을 지녀 즐거움이 머문다.' 고 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여기 비구는 즐거움이 끊어지고 괴로움이 끊어져, 이전의 기쁨과 근심이 사라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평정(upekkha.捨)을 통한 마음챙김의 청정[捨念淸淨]을 지닌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3. “바라문이여,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여러 전생을 기억한다.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백 천생, 수많은 무너지는 겁(세상), 수많은 이루어지는 겁, 수많은 무너지고 이루어지는 겁에 대해 기억한다. '거기에서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그곳에서 죽어 저곳에 태어나 거기에서의 이름은 이러했고, 가문은 이러했고, 피부색(종족)은 이러했고, 음식은 이러했고,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은 이러했고, 목숨의 마침은 이러했으며, 그와 같이 거기에서 죽어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특징을 지닌, 내력을 지닌, 다종 다양한 전생의 거처를 기억한다.
바라문이여, 그는 첫 번째 영지[明]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3. “바라문이여,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인간을 뛰어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참으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악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녀 삿된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고통스러운 곳, 비참한 곳, 험난한 곳, 지옥에 태어난다. 혹은 다시 그대들이여, 이러한 중생들은 몸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말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녔고, 마음에 의한 선한 행위를 지녀 성인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녀 바른 견해의 업을 받는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후 좋은 곳에 나아가 하늘세계에 태어난다'라고. 이와 같이 인간을 뛰어 넘은 청정한 하늘과 같은 눈으로 중생들을 본다. 죽어감, 태어남, 열등함, 수승함, 아름다운 용모, 추한 용모, 즐거운 곳, 고통스러운 곳에 그대로의 업에 따라가는 중생들을 알아차린다.
바라문이여, 그는 두 번째 영지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은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4. “바라문이여, 그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삼매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유연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이끌어 내고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바라문이여, 그는 세 번째 영지를 얻는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근면하고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기듯이, 그에게 무명을 사라지고 영지가 생기고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이 생긴다.”
5. “그는 계율과 의식을 지키고 근면하고 삼매를 닦고
그의 마음은 자유자재하고 일념이 되고 잘 집중되나니
그러한 성자는 전생을 기억하고 천상과 지옥을 보며
태어남이 다 했고 해야 할 일을 다 해 마쳤으며
이러한 세 가지 영지로 삼명을 구족한 바라문이 되나니
그를 나는 삼명을 구족한 자라 부르리.
단지 말로만 그렇게 불리는 자를
나는 삼명을 구족한 자라 부르지 않노라.”
6. “바라문이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교법에서는 삼명을 정의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삼명과 성스러운 교법에서 가르치는 삼명은 다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바라문들의 삼명은 성스러운 교법에서 가르치는 삼명의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상가라와 경(A3:60)
Saṅgārava-sutta
1. 그 무렵 상가라와 바라문이 세존께 찾아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상가라와 바라문은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희 바라문들은 스스로 제사를 지내기도 하고 다른 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기도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스스로 제사를 지내는 자와 다른 자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는 자는 모두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공덕을 닦나니 그것은 바로 제사로 인한 것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어떤 가족이든지 그 가족을 떠나 집 없이 출가한 자는 오직 자기 한 사람만 길들이고 자기 한 사람만 고요하고 자기 한 사람만 완전한 열반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는 공덕을 닦나니 그것은 바로 출가로 인한 것입니다.”
“바라문이여, 그렇다면 이제 그대에게 다시 물어 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하라. 바라문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세상에 여래가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완전히 깨달은 자[正等覺]이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佛]이며, 세상의 존귀하신 분(世尊)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오라, 이것이 법이고, 이것이 닦음이다. 나는 그 법을 의지하여 닦아서 청정범행의 최상의 목표인 열반을 내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한 뒤 그것을 그대들에게 설한다.
오라. 그대들도 내가 말한 대로 닦으면 청정범행의 최상의 목표인 열반을 그대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스승은 법을 설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얻기 위해 닦는다. 그들은 수백 명, 수천 명, 수십만 명에 달한다.
바라문이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할진대 출가로 인해 공덕을 쌓는 것이 오직 한 사람에게만 영향을 끼치겠는가, 아니면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출가로 인해 공덕을 쌓는 것은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2.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가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두 가지 닦음 가운데서 어떤 것이 고통은 더 적고 일도 더 적지만 대신에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어서 좋다고 생각합니까?”
이와 같이 말했을 때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마치 고따마 존자와 아난다 존자 두 분이 [다 공경할 만하고 칭송할 만한 것처럼] 이 둘 모두 공경할 만하고 칭송할 만합니다.”
두 번째로 아난다 존자가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이여,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을 공경하고 어떤 사람을 칭찬합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바라문이여, 이러한 두 가지 도 닦음 가운데서 어떤 것이 고통은 더 적고 일도 더 적지만 대신에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어서 좋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 존자에게 두 번째도 이와 같이 말했다.
“마치 고따마 존자와 아난다 존자 두 분이 [다 공경할 만하고 칭송할 만한 것]처럼 이 둘 모두 공경할 만하고 칭송할 만합니다.”
세 번째로 아난다 존자가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와 같이 말했다.
“바라문이여,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어떤 사람을 공경하고 어떤 사람을 칭찬합니까?’라고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바라문이여, 이러한 두 가지 도 닦음 가운데서 어떤 것이 고통은 더 적고 일도 더 적지만 대신에 더 큰 결실과 더 큰 이익을 가져다주어서 좋다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자 존자에게 세 번째도 이와 같이 말했다.
“마치 고따마 존자와 아난다 존자 두 분이 [다 공경할 만하고 칭송할 만한 것]처럼 이 둘 모두 공경할 만하고 칭송할 만합니다.”
3. 세존께서는 이런 생각이 드셨다. ‘세 번씩이나 상가라와 바라문은 아난다의 조리 있는 질문을 받고도 피해갈 뿐 대답을 하지 않는구나. 그러니 내가 이 [두 사람을 곤경에서] 벗어나도록 해야겠다.’라고.
세존께서는 상가라와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바라문이여, 오늘 왕궁에서 대신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무슨 얘기를 하였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오늘 왕궁에서 대신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옛적에는 비구들이 적었지만 많은 이들이 인간을 능가하는 법인 신통변화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비구들은 많지만 인간을 능가하는 신통변화를 보여주는 자들은 적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늘 왕궁에서 대신들이 함께 모여 앉아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4. “바라문이여, 세 가지 기적[神變]이 있다. 어떤 것이 셋인가?
신통의 기적과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觀察他心神變]과 가르침의 기적[敎誡神變]이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신통의 기적인가?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자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神足通]를 나툰다. 그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그는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그는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그는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그는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그는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친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觀察他心神變]인가?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으로 남의 마음을 읽는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으로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 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과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일으킨 생각(거친 사유(과 지속적인 고찰(미세한 사유)과 일으킨 생각의 여파로 인해 무의식으로 내는 소리를 듣고 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과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신의 소리를 듣거나 혹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과 일으킨 생각의 여파로 인해 무의식으로 내는 소리를 듣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없이 삼매에 들어 자기의 마음으로써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이 존자는 심행(心行)이 잘 안정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마음 바로 다음에는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바라문이여, 이를 일어 [남의 마음을 알아] 드러내는 기적이라 한다.
바라문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가르침의 기적[敎誡神變]인가?
바라문이여, 여기 어떤 자는 이렇게 남을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마음에 새겨라. 이렇게 마음에 새기지 마라. 이것을 버려라. 이것에 들어 머물라.’라고.
바라문이여, 이를 일러 가르침의 기적이라 한다.
바라문이여, 이러한 세 가지 기적이 있다."
5.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러한 세 가지 기적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하여서 좋다고 생각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러한 기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어떤 자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神足通]를 나툰다. 그는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그는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그는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그는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그는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그는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친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이 기적은 그것을 나투는 자만이 그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나투는 자만의 것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기적은 마치 환영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러한 기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으로 남의 마음을 읽는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으로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 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과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신의 소리를 듣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과 일으킨 생각의 여파로 인해 무의식으로 내는 소리를 듣고 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여기 어떤 자는 드러나는 몸짓과 인간이나 비인간이나 신의 소리를 듣거나 혹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과 일으킨 생각의 여파로 인해 무의식으로 내는 소리를 듣고 남의 마음을 아는 것이 아니라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없이 삼매에 들어 자기의 마음으로써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린다. ‘이 존자는 심행(心行)이 잘 안정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마음 바로 다음에는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그가 많은 사람에게 말을 하더라도 말한 대로 된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이 기적도 그것을 나투는 자만이 그것을 경험하고, 그것을 나투는 자만의 것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 기적도 마치 환영과 비슷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따만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러한 기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어떤 자는 이렇게 남을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마음에 새겨라. 이렇게 마음에 새기지 마라. 이것을 버려라. 이것에 들어 머물라.’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이 기적은 세 가지 기적 가운데서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하여서 좋습니다.
6.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께서 이것을 훌륭하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저희들은 고따마 존자께서 이 세 가지 기적을 갖추셨다고 기억할 것입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神足通]을 나투십니다.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습니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습니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습니다.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습니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습니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없이 삼매에 들어 자기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차립니다. ‘이 존자는 심행(心行)이 잘 안정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마음 바로 다음에는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렇게 남을 가르치십니다. ‘이렇게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마음에 새겨라. 이렇게 마음에 새기지 마라. 이것을 버려라. 이것에 들어 머물라.’라고.”
7. “바라문이여, 참으로 그대는 나의 공덕에 대해서 공격하고는 다시 나를 공덕의 가까이로 인도하는 말을 하였다. 그렇지만 내가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바라문이여, 나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神足通]를 나툰다. 하나에서 여럿이 되고 여럿에서 하나가 된다. 나타나고 사라짐에 담장이나 성벽이나 산에 걸림없이 넘나드는 것이 마치 허공에서와 같다. 땅 속에서 걸림없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이 마치 물 속에서와 같다. 물 위를 거침없이 가는 것이 마치 땅 위에서와 같다. 그는 공중에서 가부좌를 행하는 것이 마치 날개 달린 새와 같다. 대신변과 대위덕을 지닌 달과 태양을 손으로 어루만지고 쓰다듬는다. 범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육신으로 영향력을 미친다.
바라문이여, 나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없이 삼매에 들어 나의 마음으로 남의 마음을 잘 이해하여 알아찰니다. ‘이 존자는 심행(心行)이 잘 안정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 마음 바로 다음에는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이다.’라고.
바라문이여, 나는 이렇게 남을 가르친다. ‘이렇게 생각하라. 이렇게 생각하지 마라. 이렇게 마음에 새겨라. 이렇게 마음에 새기지 마라. 이것을 버려라. 이것에 들어 머물라.’라고.”
8. “고따마 존자시여, 고따마 존자 이외에 이 세 가지 기적을 나툴 비구가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백 명, 이백 명, 삼백 명, 사백 명, 오백 명이 아니라 더 많은 비구들이 이 세 가지 기적을 나툴 수 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 비구들은 지금 어디에 머물고 있습니까?”
“바라문이여, 바로 이 비구승가에 있다.”
9.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제6장 바라문 품이 끝났다.
실론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gikoship/15780945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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