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를 뽑는 자리
시방에서 함께 모여
개개인이 무위의 법을 배운다.
이곳이 부처를 뽑는 장소이며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여 돌아간다.
十方同聚會 箇箇學無爲 此是選佛場 心空及第歸
시방동취회 개개학무위 차시선불장 심공급제귀
- 방거사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인 큰 총림을 한마디로 잘 표현하였다. 총림이 아니더라도 큰 사찰에는 많은 수행자들이 모여 산다. 출신도 다르고 집안도 다르고 수준도 다르고 나이도 얼굴도 모두가 다르다. 그러나 목적은 하나다. 무위의 법을 배우려는 것이다. 불법(佛法)을 달리 표현하면 무위법이라고 한다. 어떤 일보다 열심히 하는 것이지만 하는 흔적이 없다. 함이 없이 하는 일이 불법이다.
그러므로 이곳은 부처를 뽑는 자리다. 사찰에서 선불장(選佛場)이라는 현판이 달린 건물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과거 시험장에서 과거를 치루게 하여 실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낸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마음이 공해야 급제할 수 있다.
이 게송은 중국의 대표적인 거사의 한분인 방거사의 글이다. 강원의 교제에 들어있는 선요(禪要)에서 어떤 학인이 고봉 스님의 첫 설법에 이 게송을 들고 나와서 그 뜻을 질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선방을 처음 열어서 대중들을 제접하는 첫 날에 멋지게 어울리는 장면이다. 선방은 곧 선불장이다. 선방에는 무위법을 배우고자 시방에서 모여든 수좌들이 꽉 차 있다. 그들은 용맹정진을 통해 마음이 공한 경지에 이르러 부처가 되고자, 부처에 급제하려는 목적으로 모였기 때문에 선방은 곧 부처를 뽑는 자리라 할 수 있다. 보다 격이 다른 의미를 생각하기 위해서 선요의 문답을 소개한다.
학인이 물었다.
“어떤 것이 시방에서 함께 모인 것입니까?”
“용과 뱀이 섞여 있고 범부와 성인이 함께 더불어 있는 것이다.”
“어떤 것이 개개인이 무위법을 배우는 것입니까?”
“입으로는 부처와 조사를 삼키고, 눈으로는 하늘과 땅을 다 살피는 것이다.”
“어떤 것이 선불장입니까?”
“동서가 십만 리이고 남북이 팔천 리이다.”
“어떤 것이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여 돌아가는 것입니까?”
“얼굴을 들면 옛 길을 거량하여 적적한 기틀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앞의 세 구절은 그런대로 이해가 가리라 생각이 든다. 마지막의 ‘마음이 공하여 급제하여 돌아가는’ 도리는 쉽지 않다. 마음이 공하다는 것은 단순한 공적에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활발발한 선기(禪機)를 발휘하는 일이다.
선요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변화다. 선은 변화무쌍해야 한다. 적적한 데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365일 내내 몸살이 나게 작용하고 변화해야 한다. 정체되어 있으면 그것은 이미 선으로의 가치와 역할을 잊은 것이다. 그래서 얼굴만 들어도 옛 불조의 걸어온 길을 흔들고 거량해야 한다. 그러니 한 순간도 조용히 있을 수 없다. 선이란 소극적이고 싸늘한 유골이 아니라 우레와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번개가 치고 지진이 일고 화산이 폭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선적(禪的) 인생은 그런 것이 매력이다.
출처 : 무비 스님이 가려뽑은 명구 100선 [진흙소가 물위를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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