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복한 법문
보리(菩提)
무상 정등각(아뇩다라 삼막삼보리)를 보리라 한다.
무궁하고 무진하고 무한하여 자유로운 그 자리를 보리라 한다.
보리가 곧 행복이다....
바로보면 통하지 않는것이 없고, 바로보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바로 볼 줄 아는 마음이 "보리심"이다.
보리심을 얻으면 모든 번뇌와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할수 있다.
바로보아 지지않은 것은 사견(자기욕심)으로 보아 지기 때문이다.
사견(邪見)이란 나라는 아견(我相)에서 보아지는 것이다.
마음에 욕심이 많으면 포악해지고 심술 굳어져서 추하게 된다.
불자는 부질없이 일어나는 탐욕심을 잘 다루어야 한다.
먹고 마심에 절제가 있고 항상 정진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실천해야 한다.
욕심을 부채질 하는 것이 사악함이다.
심보,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픈 마음이다.
친구나 동료가 잘되면 시기심이 일어나는 마음이다.
친구와 동료을 칭찬하고 축하 해주는 벗이 진정한 벗이다.
번뇌가 모든 문제를 일으키고 망상을 피운다.
시시각각 일어나는 번뇌가 모여서 고통도 되고 보리심의 발로도 된다.
번뇌는 피할수 없는 우리들의 일상이요. 숨쉬는 산소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번뇌를 끊는 것이 아니라.
번뇌를 잘 씹어먹고 걸러서 소화을 잘하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마치 연꽃이 더러운 물에 뿌리을 내리고 살지만 더러운 물을 잘 여과하여
아름답고 영롱한 꽃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이치다.
덕행-남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계행-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덕행과 계행을 잘 실천하고 지키면 행복은 반드시 찾아온다.
항복기심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마음을 굴복 받으면
아라한의 자리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다.
진실을 거짓으로 생각하고 거짓을 진실로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행복할 수 없다.
자기식 아집과 견해가 진실을 거부하는 것이된다.
새를 사랑한다고 황금으로 된 새집을 만들어 준다고 해서 새가 행복할수는 없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한다고 맛있는 빵만 사주는 것 보다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 행복을 물러주는 복이 된다는 말이다.
왜 보리 달마(菩提達摩)라 하는가?
구년(九年) 면벽의 침묵은 내면의 세계를 바로 보라는 가르침이다.
해탈(解脫)이란 구하여 얻으려는 마음이 없는 자유로움을 말한다.
상(相)이 상 아닌 상(나라는 아만심을 버릴때)인줄 알 때
여래(자기부처 행복)를 볼수 있다는 것이다.
형상으로 나 비교 차별심으로 보지 말라.
모든 것은 심생적 종종법생(心生卽.從從法生) 마음이 일어나면 모든것이 일어난다.
미혹이(남을 기만하고 남을 업신여김이) 없는 마음이 보리심이다.
보리는 곧 불성이라서 누구는 있고 누구는 없는 그런 것이 아니다.
넓은 마음 잘 보는 마음이(이해하며 수용하는 마음이) 보리심이다.
너도 나도 편견을 버리고 서로 아오르는 일상의 삶인 우리가 될때
"무상정등각"(아뇩다라 삼막삼보리)
사람이 사람답게 보다 나은 내일의 진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려는
성숙된 가치가 "보리심"이요. 진정한 행복이란 것이다.
바람이 아무리 거세게 불어도 태산을 옮길 수는 없다.
그와 같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사람은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다.
행복 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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