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의 이해를 위하여
우리 나라는 적어도 불교의 나라였다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신라나 백제 또는 고구려 그리고 통일신라, 고려국까지 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가 없었기에 자신있게 불교나라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유교(儒敎)가 있었으나 유교라는 것은 종교라기보다는 공자의 가르침을 전하는 인간교육에 중점을 둔 가르침의 수준이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조에 와서 고려를 쓰러뜨린 관료들이 국가를 떠받치는 이념으로 유학을 택하였다. 조선은 유학을 국가를 이루는 기본 골격으로 삼았으니 당연히 유교국이 되었다. 그러나 기층의 백성들은 하루 아침에 유교로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고려의 귀족불교에서 일반 백성의 불교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을 법하다.
그러나 양반계급은 급속도로 불교를 배척하는 편에 서서 곳곳에서 불교를 배척하였다. 그래도 일반 백성의 종교적 신앙 자체가 무너진 것은 아니다. 그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지금까지 불교는 산중 곳곳에 대찰(大刹)로 발전하는 기이한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아마도 역사상 중국이나 일본 그리고 동남아 어느 나라도 500년 이상 불교를 탄압한 나라는 넚다. 그런데도 우리 나라에서 불교가 끝까지 살아 남았다면 이는 기적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부터 화엄사상이 연연이 이어져 온 나라이다. 중국불교가 선불교 또는 교학으로 원각경을 중히 여겼다면 한국은 화엄경이라 하고 일본은 법화경이라고 한다. 신라의 의상(義湘)스님은 태백산 부석사를 비롯하여 화엄(華嚴)십찰(十刹)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가야산의 해인사, 경북 안동에 있는 봉정사, 영주 부석사 등은 대표적 화엄사찰이다.
지금도 우리 나라 스님들 중에는 보현행자(보현 보살의 가르침으로 사는 수행자라는 뜻이니 이는 화엄경 말미에 있는 보현행원품에서 유래한 것임) 니, 화엄행자니 하면서 수행하는 스님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나라 여러 고승대덕은 "한국불교의 특질을 말하여 주십시오"하면 서슴없이 화엄사상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우리 나라는 화엄경을 중히 여겨왔다고 볼 수 잇다.
조계종의 스님들은 사람들에게 가장 맞는 대승경전을 한 권 들라면 금강경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사상을 말하라 한다면 화엄경이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화엄경은 한량없는 보살행을 중시한 화합정신이 들어 있기에 그러하다.
신라에 전래된 화엄경은 원효와 의상이라는 당대의 고승들에 의하여 해동화엄이라는 사상으로 발전되어 왔고 고려조에서는 화엄종으로 발전하였다. 실로 오늘날 한국불교의 사상과 그 뿌리는 화엄경이라 할 수 있다. 화엄경에 있어서 주불은 비로자나(毘盧遮那) 부처님 이시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바로 법불(法佛)이시니 법은 일심법계(一心法界)의 상주불신(上住佛身)이기 때문이다. 화엄사상이 곧 우리나라 불교사상으로 발전한 것은 우연한 것이 아니라 생각된다.
화엄경을 읽다 보면 인간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라기보다는 천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처님과 보살들의 법회를 많이 접할 수 있다. 또 화엄경이 설해진 곳과 시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후 21일간에 다 설(說)해 마치셧다든가, 또 화엄경이 설해진 장소가 지상세계와 천상세계인데, 예컨대 야마천궁회라든지 도솔천궁 같은 곳에서 설법했다는 것이다. 자연히 그 곳에 모인 대중은 보살이요, 부처님이다.
다음으로 화엄경은 단일 경전으론 그 양이 엄청나게 많은 대하(大河)이다. 경전의 권수에서도 알 수 있듯이, 40화엄경, 60화엄경, 80화엄경이 있는데 모두가 다 많은 분량이다. 물론 대반야경과 아함경 같은 경전군들이 있지만 화엄경은 역시 무량하다. 아침 종성을 할때 화엄경의 글자 수를 말하는 염불이 있는데 그 숫자가 엄청나다. 화엄경의 글자 수는 10조9만5천4십8자라 한다. 글자 수를 계산해보면, 요즘 나오는 책으로 봐서 한 쪽에 2천5백 글자로 환산하여 400쪽 정도의 책이라는 5십만 자로 해서 권수로 하면 약 2조 권에 달한다. 요즘은 경(京)을 쓰지 않지만 실제로는 조(兆)는 경(京)의 만배가 되는 수치이다.
그러면 왜 화엄경을 10조9만5천4십8자라 하였을까. 그것도 5천4십8자라고 작은 숫자까지 언급하였는지 의심이 가지만 알 수가 없다. 80화엄경이나 60화엄경이나 40화엄경은 모두 약본이라고 한다. 그리고 화엄경에 5본이 있는데 상본(上本) 하본(下本) 항본(恒本)은 그야말로 중중무진의 세계에 두두물물의 일체 모든 것이 부처님의 법문이 아님이 없다는 것이다. 일체의 것은 모두 법문이라고 하는 사상에서 이러한 화엄경의 무량한 숫자가 나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화엄경은 부처님의 자설(自說)법문(法門)이 아니라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3,7일간 백천삼매[또는 화엄삼매라 함]에 드시어 부처님의 뜻을 문수보살, 보현보살, 법수보살, 지장보살등 수없이 많은 보살들이 부처님의 가피력을 받아 설한 경전이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깨우치신 후 삼칠일간 삼매에 드시고 이 때에 부처님은 신통력으로 지상과 천상의 세계에 있으면서 여러 보살들이 찾아와서 법문을 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 80화엄경에서 부처님은 일곱 군데에서 아홉 번[ 7처(處) 9회(會)] 설법하신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설법장소와 설법한 횟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적멸도량 마가다국 적멸도량(2품):
① 세간정안품 ②노사나불품
2. 보광법당회 보광법당(2품) 2품은 지상에서:
③ 여래명호품 ⑧현수보살품
3. 수미산정회: ⑨ 불승수미정품 ⑭ 명법품
4. 야마천궁회 야마천궁의 보장엄전:
⑮ 불승야마천궁자재품 ? 보살십무진장품
5. 도솔천궁회 도솔천궁의 일체보장엄전:
? 여래승도솔천궁 ? 일체보전품 (21)금강당보살회향품
6. 타화천궁회 타화자재천궁의 마니보전:
(22)십지품 (32)보왕여래성기품
7. 보광법당중회 보광명전: (33)이세간품
8. 중각강당회(서다림원회) 기수급고독원의 중각 강당:
(34)입법계품
마지막 2차에 걸쳐서는 지상에서 설법을 하신다. 제7의 보광법당중회는 제2회와 같은 장소이므로 법회가 열린 것은 9회이지만 장소는 일곱 군데 7처(處)이다.
아수라의 전쟁
일본의 화엄학자 카마타시케오 교수가 지은 『화엄경 이야기』에 이런 이야기가 잇다. 오아시스의 도시 우전국(지금의 티벳지역의 위쪽 그러니까 타클라마칸 사막)은 불교를 숭상하는 나라였는데, 그 나라에 반야미가박(般若彌伽薄)이라는 스님이 살았다. 그는 일심으로 화엄경을 공부하며 독송을 하였는데, 화엄경은 다 읽자면 보통 끈기가 아니면 다 읽어낼 수가 없었으므로 반야는 열심히 화엄경을 독송하는 것을 기도삼아 독송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인간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어떤 이상하게 생긴 두 사람이 나타나 합장하며 인사하였다. 반야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니, 하늘을 가리키면서 저 곳에서 왔ㄷ자고 하면서 오늘 우리들이 온 것은 하늘나라 천재가 스님을 꼭 모시고 오라 하여 왔으니 가자고 하였다. 반야가 어떻게 가느냐고 하니 아무 걱정 말고 눈만 감으라 하여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런데 금세 알 수 없는 사이에 두 사람과 함께 천상의 세계에 왔다 하였다.
반야는 너무 신기하여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생각하였는데 천제(天帝)가 오더니 반야의 앞에 무릎을 끓고, "지금 하늘나라에서는 전쟁이 났습니다. 아수라들이 우리 하늘나라 병사들을 격퇴시키기 위하여 수도 없이 와서 공격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제발 화엄경을 독송하여 법력으로 저 병사들을 물리쳐 주십시오." 하였다. 그리하여 반야는 하늘의 전차를 타고 깃발을 흔들면서 큰소리로 화엄경을 외웠다. 반야와 함께 하늘병사들도 용감히 맞서 싸우자 이를 지켜본 아수라들은 놀라서 흩어져 도망갔다.
이 때 하늘나라 사람들은 기뻐서 말하길, "모두 당신 덕분입니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씀하여 주십시오. 당신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바치겠습니다." 하니, 천재가 말하길 , "그것은 우리들도 어찌 못합니다. 우리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하고 다른 것을 소원하라고 하였으나 반야는 오직 깨달음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반야 스님은 지상으로 내려 왔다. 그런데 반야가 입고 있던 가사와 의복에 향기로운 향기가 났는데 향기가 배어서 그가 죽은 후에도 그 향기가 변함없이 났다는 것이다.
반야는 죽게 되었을 때 부처님처럼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대고 열반하였는데 반야는 말하길 "나는 이제 불국토에 태어나게 되었다." 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우전국에 있던 삼장법사(三藏法師)인 인타라파아가 중국의 화엄종의 대성자(大聖者)인 법장(法藏)스님에게 말하길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우전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라고 하면서 말해 주었다
-『화엄경전기』
※이 이야기는 잡아함경 정법염처경(正法念處經)에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갖가지 꽃으로 장식하다
화엄경을 읽다 보면 갖가지 꽃으로 장엄을 한다는 말이 수도 없이 나온다. 이 중에서 갖가지 꽃으로 장엄한다는 것은 잡화엄식(雜華嚴飾)의 의미인 것이다. 화엄경을 범어로 말하면 간다뷔하(Ganda-vyuha)이다. 이것을 한자어로 표하면 잡화엄식(雜華嚴飾)이 된다. 잡화엄식이란 갖가지 온갖 꽃으로 꾸몄다는 얘기이다. 갖가지 꽃이란 연꽃같이 아름답고 품위 있는 꽃과 봄에 피는 진달래와 국화, 장미, 들국화, 산야에 피는 모든 꽃들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계에는 갖가지 꽃과 장신구와 보석 그리고 광명으로 온 천지가 가득하고 일체 세계가 모두 부처님과 보살들로 가득찼다는 것이다. 천상의 세계는 지구의 열배 백배나 더 나은 장엄을 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아무리 이 세계가 아름답다고 하여도 빛이 없다면 볼 수 없듯이 부처님은 항상 무량광명을 놓는다고 하였다.
청정(淸淨)한 눈을 얻는다
뭇 어리석은 중생은 봉사라서 눈이 없네
고통받는 중생을 위하여 청정한 눈을 뜨게 하고
중생에게 지혜의 등불을 비추어
부처님은 여래의 청정한 몸을 보게 하시네.
이와 같이 일광(日光)천왕은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세간정안품(世間正眼品)에서 부처님은 정안(正眼)이라는 말씀으로 법문을 하신다.
일체 중생이 바르고 깨끗한 눈을 갖는다는 것은 곧 청정한 삶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마음이 깨끗하면 눈도 깨끗하여 지는 법, 일체의 번뇌가 없고 욕심이 없는 사람은 눈이 맑다는 것이다. 우전국에서 반야 스님의 눈에 하늘사람이 보였다는 것은 그의 눈이 맑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흔히 우리들은 "부처는 부처를 보고, 돼지는 돼지를 본다"는 조선 왕조 태조에게 한 무학 대사의 말을 떠올린다.
부처님이 응현(應現)해 준다는 것은 곧 부처님이 32응신(應身)으로 모든 중생들을 구제해 주시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는 천룡팔부(天龍八部)신장(神將)이 있어 나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벌을, 좋은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그 앞길을 인도한다고 되어 있다. 이 천룡팔부 신장은 천(天), 룡(龍), 야차(夜叉), 아수라(阿修羅), 가루라, 건달바, 긴나라, 마후라가 등이 있다.
여기서 하늘이라는 천(天)은 부처님 세계에서 천신(天神)을 말한다. 이 천신들의 나라인 하늘나라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우전국의 반야가 읽는 화엄경 독경소리에 아수라들이 놀라 도망을 쳤다는 것인데 그러면 왜 화엄경 읽는 독경소리를 듣고 돌아갔는가? 라는 것이다. 이는 화엄경은 곧 부처님 말씀인데 이 모든 하늘신장[天神]이라든가 모든 귀신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한편 그 말씀을 듣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되어 있다.
보살들의 등장
화엄경에는 신장(神將)들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보살들도 다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보살들의 역할이 많이 잇다. 그 가운데에서도 관세음 보살과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이 경에 나타나는 보살 가운데 그 역할이 제일 많이 언급되어 잇다. 문수 보살의 한없는 지혜와 보현보살의 원력은 우리들에게 많은 용기와 할 수 있다는 의지를 심어 준다. 그리고 관세음 보살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없애 주고, 그리하여 용기와 지혜와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성취하여 깨달음을 얻게 하는 것이다.
한편 화엄경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입법계품일 것이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善知識: 선지식은 이미 알고 있는 선생님이라는 뜻)을 찾아간 것은 그 모든 선지식의 가르침을 내것으로 하기 위하여서 였다. 내것으로 한다는 것은 실천(實踐)을 말하는 것인데, 화엄경은 곧 실천을 하기 위하여 설해진 경전으로 보면 될 것이다. 특히 여기에 나오는 42번째의 마야 부인은 가비라 성의 정반왕(淨飯王:범어로는 슛도다나 왕)의 부인으로 싯다르타(석가모니 부처님의 출가 전 이름)를 낳았지만 그것은 단지 중생의 어머니로서 서원(誓願)과 환술(幻術)로써 이 세상에 온 것이며, 일체 노사나불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마야 부인은 단지 중생을 가르칠 부처님을 잉태하여 낳고는 바로 입멸하였던 것이다.
선지식은 자애로운 아버지이시고, 큰 스승이시며, 훌륭한 의사이고, 뱃사공이라 하였다. 인생에 있어서 선지식이라고 말할 수 잇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선지식을 만날 수 있다는 것도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만약 진정한 선지식을 만나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 생활한다면 그는 운명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설사 선지식을 만난다고 하여도 그를 따르거나 실천하지 않는다면 타오르는 번뇌의 불길을 어찌 끌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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