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등의 분별을 짓고 살았지만 이 모두가 인연따라 조건따라 잠시 이름지어진 것일 뿐 딱히 고정지어 이러저러하다고 할 만한 ‘나’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나’는 없다는 것, 무아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아상(我相)이 깨어진 자리를 설하는 것입니다. 다른 무엇도 딱히 내세울 것이 없으며,그런 까닭에 일체제법엔 자성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무자성(無自性)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돌아가는 이 세계의 모습을 바로 공성(空性)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일체가 공(空)했다 이 말입니다. 불교의 근본사상인 연기법인 것입니다. 이런 연기의 세계, 공성의 세계인 이 세계를 법계(法界)라고 부릅니다. 제정립한 중관 사상의 핵심논서인 『중론』 관사제품에서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것은 임의로 만들어진 가짜의 이름이며, 또한 중도의 의미이다. 일찌기 한 법도 인연으로 좇아 생하지 아니함이 없으니, 이런 연고로 일체법은 공 아님이 없다.“ 연기의 세계입니다.이처럼 일체가 상대적으로 돌아가는 상대의 세계에서, 이 경의 제목에는 재미있게도 ‘마하’라는 절대 개념이 붙어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마하’는, ‘절대적으로 크고 많고 뛰어남’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어떤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것이 아니고, 절대적으로 큰 것, 즉 일체를 초월하는 절대적으로 큰 것입니다. 함축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크고, 많고, 뛰어나다는 것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초월합니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일체의 모든 상대적인 것과 둘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둘이 아니므로 대비할 상대가 없는 것입니다. 있는 것입니다. 너와 내가 따로 따로 있게 되면 상대적으로 크고 상대적으로 작아질 수 밖에 없지만, 일체가 둘이 아닌 하나의 자리에서는 내세울 상대가 없어지기 때문에 절대를 내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단순한 문자의 표현이 아니라, ‘최고의 경지, 부처님의 깨달음’ 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일체가 둘이 아닌 법신 부처님의 법계 편만하시고, 원융(圓融)하신 모습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마하’를 좀 더 자세히 구분해 보면, 크게 세 가지의 의미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우주, 허공, 삼천 대천 세계, 수미산 등을 부를 때 쓰여지는 공간적인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라는 불교 용어에서 지극히 많음을 표현하는 수식어로 양적인 개념으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불교 경전에서 ‘팔만사천’ 혹은 ‘항하사’ 등의 비유가 나오면 그 말의 의미는 실제로 팔만 사천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많다는 개념, 즉 마하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불변, 진실, 수승(殊勝)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재듯이 재어 볼 수 있는 경지가 아닙니다. 처음 중국에 불경이 전해질 때, 그 뜻을 번역할 단어가 마땅하지 않았기 때문에,다른 단어로 번역하면 의미가 변질될 것을 우려해 ‘마하’라는 말을 발음 그대로 옮기게 된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으로 인해 의미가 한정되어질 수 있음을 경계한 까닭입니다. |
출처 : 붓다의 향기 뜨락
글쓴이 : 여실각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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