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불교학당

[스크랩] 제 2 방편품

수선님 2018. 6. 24. 12:46

 

제 2 방편품

 

 

부처님께서 삼매에서 일어나 법을 찬탄하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삼매에 일어나셔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부처님의 방편과 진실의 두 지혜는 매우 깊어 헤아릴 수 없다. 성문과 벽지불의 지혜로도 알기 어렵다. 부처님께서는 아주 먼 옛날부터 수많은 부처님을 섬기셔서 모든 부처님의 법을 수행하셨고, 용맹스런 마음을 가지고 일심으로 정진하여 심히 깊고 미묘한 최고의 진리를 깨달아,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적절한 방편으로 설하셨기 때문에, 참뜻이 어디에 있는지 알기 어렵다.

사리불아, 내가 성불한 뒤, 갖가지 인연과 비유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모든 법을 설하여 폈다. 수많은 방편으로 중생들이 모든 집착을 벗어나게 인도하였으니, 이것은 부처님의 방편 바라밀과 지견 바라밀의 공덕이다.

사리불아,부처님의 지혜는 온 우주의 진리를 통달하였고, 과거와 미래의 일까지도 모두 알고 계신다.(그것은 아래와 같다.)

 

사무량심 :

모든 사람을 더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마음인 자심(慈心),

모든 사람들의 괴로움을 들어주겠다는 비심(悲心),

모든 사람들의 행복을 함게 기뻐해주는 희심(喜心),

모든 사람에게 베푼 일에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남으로부터 받은 피해를 용서해주는 사심(捨心)

 

사무애(四無碍) :

가르침의 내용이 완전무결하고 누구에게나 타당한 법무애(法無碍),

가르침의 설명이 완전무결하여 누구나 이해하게 하는 의무애(義無碍),

가르침을 설하는데 가장 적절한 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여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사무애(辭無碍),

가르침을 설하는데 남이 감사하건 미워하건 비웃건 욕하고 때리고 목숨까지 빼앗아도 언제자 고맙고 기쁜 마음으로 설법하는 요설무애(樂說無碍) .

 

세상과 중생을 구제하는 열 가지 지혜의 힘 :

사람의 행동이 어떤 경우에 적당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아는 지혜의 힘,

사람들의 삼세 업보를 아는 지혜의 힘,

어떤 경우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은 지혜의 힘,

법을 듣는 사람의 근기를 아는 지혜의 힘,

법을 듣는 사람에 따라 이해 정도를 아는 지혜의 힘,

사람의 환경과 신분을 아는 지혜의 힘,

사람의 현재 상태에 따라 미래에 나아갈 길을 가르치는 지혜의 힘,

사람과 사물의 참모습을 아는 지혜의 힘,

전생으로부터 정해진 미혹을 제거하는 방법을 아는 지혜의 힘,

사람들의 나쁜 버릇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지혜의 힘

 

사무소외 :

모든 것을 알고 계시므로 생각하시는 바를 그대로 설함에 두려움이 없는 마음,

미혹이 없는 마음으로 가르침을 설하시므로 일절 두려움이 없는 마음,

장애가 되는 것이 있으면 대중 앞에 사실대로 밝혀 모든 장애를 제거하는 데 두려움이 없는 마음, 모든 인간의 괴로움을 없애는 길을 설하시는 데 두려움이 없는 마음

 

조용히 진리에 정신을 집중하여 움직이지 않는 선정, 괴로움에서 벗어나 참다운 평화를 얻는 해탈, 평온한 일념으로 염불이 계속되는 정신 통일의 삼매 이 모두를 얻었다.

사리불아, 부처님이 성취하신 진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것이므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뜻으로도 분별할 수 없으며, 성문이나 연각으로도 미칠 바가 아니며, 오직 깨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벽지불 -독각(獨覺)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법을 듣지 않고 홀로 깨달은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설하시기를 망설이시다

 

이때 대중들 중에 성문과 벽지불과 4부 대중들이 이런 생각을 하였다.

 

『부처님께서 한 해탈의 길을 설하셨으므로, 우리들도 이 가르침에 따라 번뇌를 끊고 열반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부처님께서 얻으신 법은 알기도 어려워서 모든 성문과 벽지불도 이를 수 없다고 하시는가?』

 

사리불 역시 이와 같이 생각하였으므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모든 부처님께서 가장 소중히 여기시는 방편과 매우 깊고 미묘하여 알기 어려운 법을 그토록 칭찬하십니까? 무슨 까닭으로 심히 미묘하고 알기 어려운 법이라고 칭찬하십니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만두라. 더 설하지 않으리라. 만약 설하면 세상의 하늘이나 인간들이 놀라고 의심하리라.』

 

그러자 사리불이 거듭 설해주시기를 청하였다.

부처님께서 거듭 말리셨다.

 

『사리불아, 만약 이 일을 말하면 모든 하늘과 사람과 아수라들은 다 놀라고 의심할 것이며, 깨닫지 못하였으면서 깨달은 체 하는 오만한 비구는 장차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사리불이 거듭 설하여주시기를 청하였다.

 

* 부처님께서 망설이시는 것 역시 방편일 수 있다. 어쨌든 법화경 내용이 믿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미리 예고하고 있다.

 

 

오직 일불승이 있음을 설하시다

 

부처님께서, 세 번이나 간청하니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그러자 법회에 참석한 4부 대중 5천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하고 떠나버렸다. 그들은 거만하게 깨닫지 못하였으면서도 깨달은 체 자만하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을 말리시지 않으셨다.

 

『가지나 잎은 없고 순수한 열매만 남았다. 그들이 물러감도 오히려 좋으리라. 이와 같은 미묘한 법은 입으로 말할 수 없고 뜻으로도 생각할 수 없으므로 모든 부처님께서도 때가 되어야 이를 설하리니, 우담바라 꽃이 때가 되어야 한 번 피는 것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는 세상을 청정하게 하고 모든 사람을 구제하기 위하여 오직 일대사인연을 가지고 세상에 출현하신다. 』

 

『부처님은 다만 보살을 교화하시는 법이며 여러 가지 하시는 일은 항상 중생과 세상을 위함이니 오직 부처님의 지혜를 중생에게 보여 깨닫게 하심이다. 부처님은 오직 일불승으로 모든 사람들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이 가르침을 설하실 뿐 다른 법은 없으니, 이승과 삼승이 있겠는가? 모든 시방세계의 부처님의 법도 이와 같다.

사리불아,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부처님이 한량없고 수 없는 방편과 갖가지 인연과 비유와 말씀으로 중생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모든 법을 설하였으니, 이 가르침도 일체 중생을 부처님의 경지로 인도하는 일불승을 위한 것이다. 모든 중생은 여러 부처님을 따라 섬기며 부처님으로부터 법을 받들어 듣고는 그 법대로 실천하여 최고의 지혜인 일체종지를 얻는다.

사리불아, 이 모든 부처님은 오직 보살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지혜를 열어 중생에게 보이고, 부처님의 지혜로 중생들을 깨닫게 하고자 하심이며, 중생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게 하고자 하심이다. 나도 또한 이와 같다.』

 

『사리불아, 시방세계에 진리는 둘이 있을 수 없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오탁악세를 맑고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출현하신다.

세상이 오래되어 생기는 혼란인 겁탁, 사람들이 번뇌가 치열해져 생기는 혼란인 번뇌탁, 사람들의 성질이 복잡해져 생기는 중생탁, 사람들이 삿되게 보는 견해가 뒤덮어 생기는 혼란인 견탁, 사람들의 수명이 짧아서 생기는 혼란인 명탁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흐리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세상에서 업장이 무거워져 인색하고 탐내고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치성하여 좋지 못한 근성이 마음을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모든 부처님께서는 바로 설하지 않으시고 방편으로 일불승밖에 없지만 삼승으로 나누어 설하신다.』

 

『사리불아, 비구 비구니가 자기는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여 인간으로는 다시 태어나지 않는 최후의 몸이 되었으며, 이것이 가장 높은 깨달음의 경지라고 하여 위없이 높은 부처님의 깨달음인 부처님의 지혜를 구할 뜻이 없다면, 이러한 무리는 깨닫지도 못하면서 깨달았다고 착각하는 교만한 자이다. 왜냐하면 일승법을 믿지 않고서는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신 뜻을 게송으로 다시 말씀하셨다.

(내용은 위와 같다. 일부를 소개한다.)

 

모든 부처 이 세상에 출현하여 나오심은 오직 하나 일승법만 참다운 진실이요, 달리 둘이 있다면 진실하지 못하나니, 마침내는 소승으로 중생 제도 못하노라.

아이들이 장난삼아 풀과 나무 붓이거나 꼬챙이나 손톱으로 부처모양 그리면 이와 같은 여러 사람 그 공덕이 점점 쌓여 큰 자비심 갖추어서 모두 성불 하였으니 모든 보살 교화하고 무량 중생 건졌노라.

어떤 사람 산란하고 어지러운 마음으로 탑과 법당 들어가서 거룩하신 부처님께 나무불을 한번해도 모두 성불하였노라.

지난 세상 여러 부처 계실 때나 열반한 뒤 법화경을 들은 이는 모두 성불하였노라.

적은 지혜 소승들이 자지 성불 믿지 않아 방편으로 분별하여 성문 연각 보살 경지 여러 가지 설했으나 다시 삼승 설한 것은 결국에는 보살들을 교화하기 위함일세.

 

*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이 듣는 이의 근기에 따라 삼승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부처님의 진리를 오직 일불승만 있을 뿐 나머지는 부처님 지혜에 이르기 위한 방편일 뿐이라는 것이다.

성문이나 연각이 다 깨달았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처 : 불 교 학 당
글쓴이 : 賢友(法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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