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불교학당

[스크랩] 법화경 10. 우리나라의 법화경

수선님 2018. 6. 17. 12:46

 

10. 우리나라의 법화경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중국의 스님 순도에 의해 불교가 전래된 뒤 고구려의 혜자스님이 일본에 건너가 당시 일본왕의 태자였던 성덕에게 법화경을 가르쳤으며, 백제의 현광대사는 중국의 남악혜사대사로부터 법화경안락행문을 전수 받고 당시 백제 땅이었던 웅주 옹산에서 법화경을 폈고 또 신라의 원효대사는 법화경종요를 지어내고 會三歸一一佛乘(회삼귀일일불승)사상으로 삼국을 통일하는 원동력이 되게 하였다.

조선조에 들어와서는 유교를 받들고 불교를 배척하기도 했으나, 천태종의 조구화상을 국사로 삼았으며, 세조는 간경도감을 두어 한글로 법화경을 인출하면서 신미대사와 함께 직접 법화경을 언해하였다. 한편 생육신의 한사람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은 법화경별찬을 지었는데 이것은 제1서품부터 제28품까지 모두를 찬양한 것이다.

특히 우리가 간과 할 수 없는 사실은 고려 고종 23년 (1236-1876)부터 조선조 고종 13년까지 약 640년간에 제일 많이 인출된 경전이 법화경이라는 사실이다.

이처럼 법화경이 수없이 번역되고 수지. 독송. 해설. 서사 되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법화경이 삼승을 모아서 일승으로 돌아간다는 것과 석가모니께서 가야성을 떠나 6년 고행 끝에 도를 얻으신 것이 아니라 구원한 옛적부터 이미 부처님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또 석가여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 일체 중생이 모두 다 법화경으로 성불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시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이와 같은 겨리 내용에 따라 상하만민이 신앙으로 융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도 종파를 가리지 않고 대승경전인 법화경을 수지 독송하고 있다.


법화경은 이처럼 우리 민족의 얼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린 불교사상의 정수라 할수 있다.



11. 참고 문헌


이 경전에 대한 주석으로는 楕의 天台大師가 저술한 法華三大部만큼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주석서는 없다.


{법화현의}, {法華文句}, {마하지관}이 그것인데, 이것들의 저술을 통해 법화경을 주석했다기보다는 天台의 사상을 구성하는 재료로서 법화경을 사용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주석서들은 아직까지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洪庭植 박사의 논문 {法華佛敎硏究}(1974)가 법화경의 역사 및 사상을 잘 정리하고 있다.

근래에 일본에서 발간된 문헌으로는 Shoko Watanabe{Saddharmapu**a **ika Manuscripts found in Gilgit}(Tokyo : The Reiyukai, 1975)와 中央公論社에서 발행한 {法華經}Ⅰ,Ⅱ {大乘佛典}4,5,19,79,1976)가 있다. 법화경에 대한 최근의 연구서로는 春秋社에서 발행한 {法華思想}, {講座·大乘佛敎} 제3,1983)가 여러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고있다.

출처 : 불 교 학 당
글쓴이 : 賢友(法悟)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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