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품에 계실 부모님께

수선님 2018. 7. 22. 13:39

A. [세다까에서 경] - 마음챙김과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실천


상윳따니까야 47(마음챙김 상윳따).19.sedaka

정원 김재성 번역

한 때, 세존은 숨바(sumbha)에 있는 세다카라는 숨바의 마을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정말로 세존은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옛날 어느 대나무 곡예사가 곡예용 대나무를 세워 놓고 조수(시자) 메다까탈리카에게 말했다. '오라. 자네 메다까탈리카여, 그대는 곡예용 대나무에 올라가서 내 어깨 위에 서 있어라'고. [말했다]'알았습니다. 스승이시여' 라고 정말로, 비구들이여, 조수 메다까탈리카는 대나무 곡예사에게 대답 하고 나서, 곡예용 대나무에 올라가서 스승의 어깨 위에 섰다."

"비구들이여, 바로 그때, 대나무 곡예사는 조수 메다까탈리카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네 메다까탈리카여, 그대는 나를 보호해라. 나는 그대를 보호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서로서로 지키고, 서로서로 보호해서, 곡예를 보여주고, 이득을 얻고, 무사히 곡예용 대나무에서 내려와야 할 것이다.'고 [말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했을 때, 조수 메다까탈리카는 대나무 곡예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스승이시여, 하지만 정말로 이것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스승이시여, 당신께서는 자신을 보호하시고,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들이 자기를 지키고, 자기를 보호해서, 곡예를 보여주고, 이득을 얻고, 무사히 곡예용 대나무에서 내려와야 할 것입니다.'고 [말했다]"

"그 경우에는 그것이 방법이다."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조수 메다까탈리카가 [그의] 스승에게 말한 것처럼, 비구들이여,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네 가지] 마음챙김(알아차림)을 닦아야 하고, '우리는 남을 보호할 것이다.' 라고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자기를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보호할 때,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yathā medakathālikā antevāsī ācariyam avoca, attānam bhikkhave rakkhissāmī ti satipat*t*hānam* sevitabbam*. param rakkhissamā ti satipat*t*hānam* sevitabbam*. attānam bhikkhave rakkhanto param* rakkhati. param* rakkhanto attānam* rakkh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자신을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하는 것인가? [가르침을] 실천함,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닦음, 많은 수행에 의해서이다. 비구들이여, 정말로 이와 같이 자기를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한다."

kathañ ca bhikkhave attānam rakkhanto param rakkhati. āsevanāya bhāvanāya bahulīkammena.

evam* kho bhikkhave attānam* rakkhanto param* rakkhati.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남을 보호할 때 자기를 보호하는 것인가? 인내와 해치지 않음과 자애와 연민에 의해서이다. 비구들이여, 정말로 이와 같이 남을 보호할 때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

kathañ ca bhikkhave param* rakkhanto attānam* rakkhati. khantiyā avihim*sāya mettatāya nudayatāya. evam* kho bhikkhave param* rakkhanto attānam* rakkhati.


"비구들이여,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나는 남을 보호할 것이다.'라고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자기를 보호할 때, 남을 보호하는 것이며, 남을 보호할 때, 자기를 보호하는 것이다고 [말한다.]"

attānam* bhikkhave rakkhissāmī ti satipat*t*hānam* sevitabbam. param* rakkhissāmī ti satipat*t*hānam* sevitabbam*. attānam bhikkhave rakkhanto param* rakkhati param* rakkhanto attānam* rakkhatī ti.

B. 가전연경 - 연기법으로 보는 것이 바른 견해이다.

깟짜야나 고따 숫따(Kaccāyanagotta Sutta, S.12.15)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 번역

잡아함경 301. 가전연경迦旃延經) 동국역경원 번역

주) 깟짜야나 고따 숫따에 번호를 붙이신것은 초기 불전연구원 각묵스님입니다. 그것을 참조하여 잡아함경 한글번역문에 번호를 붙여보았습니다. 두경의 같은 번호를 비교하시면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깟짜야나 고따 숫따(Kaccāyanagotta Sutta, S.12.15) -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 번역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 제따와나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깟짜야나 곳따 존자가 세존을 뵈러갔다. 뵈러가서 세존께 큰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3. 한곁에 앉아서 깟짜야나 곳따 존자는 세존께 이와 같이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올바른 견해[正見, sammādit*t*hi], 올바른 견해라고들 합니다. 무엇이 올바른 견해입니까?"

4. "깟짜야나여, 이 세상은 거의가 다 둘을 의지하고 있나니 '있다(atthi)'거나 '없다(natthi)'는 것이다."

5. "세상의 일어남(samudaya)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sammappaññāya) 보는 자는 세상들이 없다는 그런 [견해가] 없다. 세상의 소멸(nirodha)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는 세상들이 있다는 그런 [견해가] 없다."

6. "깟짜야나여, 세상은 대부분 끌림과 취착 때문에 독단적 해석에 계박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그런 끌림과 취착, 마음의 고집, 독단적 신조, 잠재성향에 [계박되지 않은 사람은] '나의 자아이다' 라고 따라가지 않고 취착하지 않고, 고집하지 않는다."

"고가 생겨나면 생겨나는구나, 고가 멸하면 멸하는구나라고 하여 의심하지 않고 혼동하지 않는다. 여기서 [이런 것이] 그가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은 지혜이다."

"이런 것이 참으로 바른 견해[正見]이다."

7.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 는 것은 하나의 극단이다. '모든 것은 없다' 는 것은 두 번째 극단이다. 깟짜야나여, 여래는 이들 두 극단을 따르지 않고 중(中, majjhena)에 의지해서 법을 설한다."

8. "무명을 반연(기초)하여 [업]형성들(상카라)이 있고 [업]형성들을 반연하여 알음알이가 있고, 알음알이를 반연하여 정신-물질이 있고, 정신-물질을 반연하여 여섯 감각장소가 있고, 여섯 감각장소를 반연하여 감각접촉이 있고, 감각접촉을 반연하여 느낌이 있고, 느낌을 반연하여 취착이 있고, 취착을 반연하여 존재가 있고, 존재를 반연하여 태어남이 있고, 태어남을 반연하여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있다.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남이다."


"무명이 남김없이 빛 바래어 소멸하면 [업]형성들이 소멸하고 .... 이것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하는 것이다."

C. 잡아함경 301. 가전연경迦旃延經) 동국역경원 번역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나리(那梨)라고 하는 마을 깊은 숲 속에 있는 대빈사(待賓舍)에 계셨다.

2. 그 때 존자 산타가전연([跳-兆+散]陀迦旃延)이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나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바른 소견[正見]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하며, 어떤 것을 세존께서 시설하신 바른 소견이라고 합니까?"

4. 부처님께서 산타가전연에게 말씀하셨다.

"세간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유(有)와 혹은 무(無)이다."

6. "취함[取]에 부딪히고, 취함에 부딪히기 때문에 혹은 유에 의지하고 혹은 무에 의지한다. 만일 이 취함이 없다면 마음과 경계를 얽어매는 번뇌를 취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으며, 헤아리지 않을 것이다. 자신에게 괴로움이 생기면 생겼다고 보고, 괴로움이 소멸하면 소멸했다고 보아 그것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미혹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아는 것을 바른 소견이라고 한다. 이것이 여래가 시설한 바른 소견이니라."

5. "왜냐 하면 세간의 발생을 사실 그대로 바르게 알고 본다면 세간이 없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세간의 소멸을 사실 그대로 알고 본다면 세간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니,"

7. "이것을 두 극단을 떠나 중도에서 말하는 것이라고 하느니라."

8. "이른바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즉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내지)…… 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발생하며,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이 소멸하고 ……(내지)……순전한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산타가전연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D. 소오나 경 - 부처님을 친견하고 싶다.

a. 재가신자인 소오나는 마하깟쨔야나(가전연) 존자에게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나 두 번을 거절당하고 3 번째에 출가하엿다. 그러나 당시 아완띠에는 구족계를 줄 10 명의 비구가 없어서 소오나는 3 년이 되서야 정식 비구가 되었다.

b. 소오나 비구는 부처님을 직접 친견하기 위하여 마하깟짜나 장로에게 허락을 받고 사왓띠로 간다. 소오나 비구는 바라던대로 부처님을 친견한다.

c. 부처님은 멀리서 온 소오나 비구를 옆에 머무르게 하시고 새벽녘에 법(숫따니빠따 제 4장 의품의 16개의 경, 앗타까왁가)을 외워보라고 하신다. 소오나 비구는 바르게 법을 외워 부처님의 칭찬을 듣는다. 부처님이 왜 이렇게 출가가 늦었는가를 묻는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때 마하깟짜나 존자는 꾸라라가라 근처 빠왓따 언덕에서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를 후원자로 하여 아완띠 사람들 사이에 머물고 있었다.


주) 마하깟짜나 존자는 마하가전연 존자이다. 논의제일 가전연.


그런데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가 외떨어진 곳에서 홀로 [선정에 잠겨] 있는 동안에, 그의 마음속에 이런 일련의 생각이 떠올랐다. '마하깟짜나 스승님께서 법을 가르치시는 길에 따르면,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깍고 물들인 옷[染衣]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까?' 라고.


그러자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다가가 절을 올리고 한곁에 앉아서 "스승님! 지금 막 외떨어진 곳에서 홀로 있는 동안에 '마하깟짜나 스승님께서 법을 가르치시는 길에 따르면, .... 집을 떠나 출가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습니다. 존경하는 마하깟짜나 스승님! 제 출가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을 했을 때, 마하깟짜나 존자가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에게 "소오나여! 남은 일생 동안 하루 한 끼만 먹고 홀로 외롭게 잠을 자는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것은 어렵소. 소오나여! 자 이제, 그대는 가장[재가자]으로 남아 있으면서 부처님들의 가르침[諸佛敎]에 일신을 바치고, 제한된 기간에만 하루 한 끼만 먹고 홀로 외롭게 잠을 자는 청정범행을 살도록 하시오." 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의 출가를 하겠다는 생각은 진정되었다.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가 외떨어진 곳에서 홀로 [선정에 잠겨] 있는 동안에 재차 똑 같은 생각이 다시 일어났다. 그는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가서 출가하게 해달라고 간청하였으나, 또 다시 [앞서와] 똑 같은 대답을 들었다.


그러나 세 번째 [간청]에 마하깟짜나 존자는 재가 신자인 소오나 꾸띠깐냐가 출가하도록 허락하였다. 그 때에 아완띠 나라 남쪽 지방에는 비구들이 별로 없었고 따라서 3 년이 지난 뒤에 마하깟짜나 존자가 이곳 저곳에서 그곳에 비구들의 승단을 (구성할 수 있는) 10 명의 (비구들) 모임을 힘들게 모이게 해서 소오나 존자에게 구족계를 줄 수 있었다.


주) 원래 10 명의 비구가 잇어야 구족계를 줄 수 있었다. 마하깟짜나 존자가 소오나 비구의 예를 들어 부처님께 청하여 5 명으로 구족계를 줄수 있도록 율이 조정되었다고 한다. Vinaya (Mv.V.13.1-13)


그리고 나서 우안거 뒤에 외따로 떨어져서 홀로 앉아있다 깨어난 소오나 존자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이 일어났다. "나는 [이제까지] 세존을 친견하지 못했다. 그 분이 이렇고 저런 분이라는 것을 듣기만 했을 뿐이다. 만약 내 계사(戒師)께서 허락해 주시면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세존을 뵈러 갈 터인데."


그리하여 저녁에 소오나 존자는 외따로 떨어져서 홀로 앉아있다 깨어나서 마하깟짜나 존자에게 다가가 절을 올리고 한곁에 앉아 말씀 드렸다. "스승님! 지금 막 제가 외따로 떨어져서 홀로 앉아있는 동안에 '나는 [이제까지] 세존을 친견하지 못했다. .... 만약 내 계사(戒師)께서 허락해주시면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세존을 뵈러 갈 터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오나여, 착하고 착하구려! 소오나여, 가서 아라한 정등각자이신 세존을 뵈시오. 소오나여! 신뢰와 믿음을 생기게 하시는 분, 감각 기관들을 고요하게 하고 마음을 평온하게 하신 분, 완벽[원만]한 침착과 고요함을 성취하신 분, [스스로 잘] 다스려진 분, 완성에 이르신 분, 절제된 감관으로 [중생을] 살피시는 분인 세존을 그대는 꼭 뵈어야 하오. 그대가 그 분을 뵙거든, '스승님! 제 계사인 마하깟짜나가 그 분 머리를 세존의 발에 대어 경배를 드리고 혹 그 분께서 편찮으신 데는 없으신 지, ... 쾌적하게 지내시는지' 라고 말씀을 드려서 내 이름으로 세존의 발에 그대 머리를 대어 경배를 드리고 혹 그 분께서 편찮으시고 불편하신 데는 없으신지, 건강하고 쾌적하게 지내시는지 여쭈시오."


소오나 존자는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마하깟짜나 존자의 말씀에 기뻐하고 고마워하며 그는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마하깟짜나 존자 앞에 무릎을 꿇어 [작별 인사를 드리고] 그 분을 향해 오른 쪽으로 돌아서 [떠났다.] 숙소를 정리하고 자기 발우와 겉옷을 지니고 사왓띠를 향한 유행(遊行) 길을 떠났다. 쉬엄쉬엄 걸으면서 여행을 해서 사왓띠[舍衛城]의 제따 숲에 있는 급고독원에 도착해서 세존께 갔다. 세존께 다가간 절을 올리고 한곁에 앉아 세존께 "스승님! 제 계사인 마하깟짜나 존자가 .... 세존께서 .... 쾌적하게 지내시는지 여쭙니다."고 말씀 드렸다.


"비구여! 그대는 편안한가? 건강은 좋은가? 이곳까지 오는 여정에 지치지는 않았고 탁발 음식을 얻는 데 어려움은 없었느냐?" "세존이시여! 저는 편안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건강합니다. 스승님! 이곳까지 오는 여정에 지치지도 않았고 탁발 음식을 얻는 데에도 어려움 하나 없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아난다! 새로 온 이 비구를 위해 숙소를 마련해 주어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서 '아난다! 새로 온 이 비구를 위해 숙소를 마련해 주어라.' 라고 내게 분부를 하실 때에는, 그 분께서 이 비구와 함께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서] 따로 머물고 싶어하시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소오나 존자와 함께 따로 머물고 싶어하신다." 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세존께서 머무시는 처소에 소오나 존자를 위해 숙소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나서 밖에서 앉아 대부분의 밤 시간을 보내신 세존께서는 당신 발을 씻으시고 처소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소오나 존자도 그와 같이 하였다. 그러다가 새벽이 가까워지자, 세존께서 당신 자리에서 일어나 소오나 존자에게 "비구여! 그대가 법을 암송해 보면 좋겠다.(patibhātu tam bhikkhu dhammo bhāsitun)" 라고 요청하셨다.


소오나 존자가 세존께 "스승님! 잘 알겠습니다" 고 대답을 드리고 앗타까왁가의 16 개 항목 전체를 낭송하였다. 소오나 존자의 낭송이 마무리되자, 세존께서는 대단히 기뻐하시고 "비구야, 착하고도 착하다! 비구야, 그대는 앗타까왁가의 16 개 항목 전체를 제대로 배웠고, 그것들을 깊이 생각하고 제대로 기억해냈다. 그대는 의미를 뚜렷하게 해주는, 카랑카랑하고 선명한 멋진 목소리를 가졌다. 비구여, 그대는 얼마나 많은 우기를 보냈는가?" 라고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한 번의 우기를 보냈습니다." "비구여! 어찌하여 그렇게 오래도록 지연되었는가?" "스승님! 저는 오랜 동안 감각적 욕망에 따르는 위험을 보아왔습니다만, 해야 할 활동과 일이 많은 재가 생활이 [출가를 못하게] 저를 붙잡아 왔습니다."


주) 숫따니빠따 제4장 앗타까왁가(At*t*haka-vagga, 의품義品, 16 개의 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숫따니빠따에서도 최고층의 경전들로 알려져 있다)


그 때, 그것의 의미, 중요성을 깨달으시고서 세존께서는 바로 그 순간 영감을 주는 이러한 게송을 읊으셨다.

“Disvā ādīnavam loke,

ñatvā dhammam nirūpadhim;

ariyo na ramatī pāpe,

pāpe na ramatī sucī”ti.


"세상에 있는 위험을 보고

집착이 없는 경지를 아는

성인은 악惡을 즐기지 않네.

청정한 사람은 악에서 즐거워하지 않네."


E. 잡아함경 468. 삼수경(三受經) 빠알리삼장 : s.36.3.Pahānasutta.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게서 왕사성 가란다 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라후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1.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신(識身)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 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과 같은 번뇌의 얽매임 따위가 없어지겠습니까?"

世尊。云何知.云何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得無有我.我所見.我慢繫著使。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2.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롭다는 느낌, 즐겁다는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즐겁다는 느낌을 관찰해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고],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는 것이다.]

만일 어떤 비구가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안다면, 이것을 비구가 애욕의 결박을 끊어 없애고 모든 결박과 교만을 버리며 빈틈없고 한결같아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즐겁다는 느낌을 받을 때

즐겁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탐욕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樂受所受時  則不知樂受

貪使之所使  不見出要道

괴롭다는 느낌이 받을 때

괴롭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성냄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苦受所受時  則不知苦受

瞋恚使所使  不見出要道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바르게 깨친 이의 말씀대로

자세히 잘 관찰하지 못하면

끝내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리.

不苦不樂受  正覺之所說

不善觀察者  終不度彼岸

비구들아, 부지런히 정진하여

바르게 알고 흔들리지 말라.

이와 같이 모든 느낌을

지혜로운 사람은 깨달아 아나니

그 모든 느낌을 깨달아 아는 자

현세에서 모든 번뇌 다하리.

比丘勤精進  正知不動轉

如此一切受  慧者能覺知

覺知諸受者  現法盡諸漏

밝고 지혜로운 자 목숨 마치면

중생의 부류로 떨어지지 않나니

중생으로의 윤회가 이미 끊어져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느니라.

明智者命終  不墮於衆數

衆數旣已斷  永處般涅槃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상윳따니까야 36.1.3.Pahānasutta 버림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역경

3. "비구들이여, 이들 세 가지가 느낌이라니, 무엇이 그 셋인가?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

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비구들이여, 이것들이, 곧 세 가지 느낌이니라."

4. "비구들이여, 즐거움을 느낄 때 탐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원주8】을 버려야 한다. 괴로움을 느낄 때 저항(염오)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경우, 무지(無知)해지려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5. "비구가 즐거운 느낌을 대하여 탐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고, 괴로운 느낌을 대하여 저항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대하여 무지해지려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다면, 그 때 그는 고질적 잠재성향에서 벗어나 올바로 보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갈애를 끊었고 (다음 생에 다시 몸을 받게끔 묶는) 족쇄를 풀어 버렸으며, '아만'【원주9】을 철저히 꿰뚫어보아 고(苦)를 끝낸 것이다."

6.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면

그는 '탐욕'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1

“Sukhaṃ vedayamānassa,

vedanaṃ appajānato;

so rāgānusayo hoti,

anissaraṇadassino.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면

그는 '미움'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2

“Dukkhaṃ vedayamānassa, vedanaṃ appajānato;

paṭighānusayo hoti, anissaraṇadassino.

"그리고 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주9),

대지혜자 그것을 평화롭다고 말하지만,

그것 또한 맛들여 매달린다면,

그는 결코 고(苦)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3

“Adukkhamasukhaṃ santaṃ, bhūripaññena desitaṃ;

tañcāpi abhinandati, neva dukkhā pamuccati.

"그러나 비구가 열심이어서

분명히 알아차리는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그는 모든 느낌의 본성을 꿰뚫게 될 것이다." 4

“Yato ca bhikkhu ātāpī, sampajaññaṃ na riñcati;

tato so vedanā sabbā, parijānāti paṇḍito.

"또 그렇게 됨으로써 그는 바로 이생에서

번뇌가 다할 것이며,

지혜가 성숙하고, 법의 길에 확고하며

(언젠가) 수명이 다하여 몸이 무너질 때엔

어떤 헤아림으로도 개념으로도

그를 가늠할 길은 없으리라." 5

“So vedanā pariññāya, diṭṭhe dhamme anāsavo;

kāyassa bhedā dhammaṭṭho, saṅkhyaṃ nopeti vedagū”ti.

주해9) 영역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여기서부터는 거의 대부분 neutral feeling 이라 옮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원문에 충실하여 계속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이라 옮기기로 한다. 그것은 neutral이 단순히 평면적인 의미에서 "중간의, 중립의" 뜻으로 이해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71쪽의 목수 빤짜깡가의 얘기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

원주8). 고질적 잠재성향: anusaya 를 영역에서는 the underlying tendency로, 한역에서는 使隨眠으로 옮긴다. 여기서는 niranusaya의 뜻으로 고질적 잠재성향으로 옮겼다.

원주9). `자만'(conceit)은 특히 아만(asmimaano) 즉 지, 정 양면의 인격체의 대한 믿음[有身見].

F.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경(Ānāpānasati sutta M118, 出入息念經, 아나빠나사띠 경)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 역경

서문


a. 들숨날숨의 공부지음
b.사념처와의 관계
c. 칠각지와의 관계
d. 영지(靈知)와 해탈


서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많이 잘 알려진 장로 제자들과 함께 즉, 사리뿟따 존자, 마하목갈라나 존자, 마하깟사빠 존자, 마하깟짜야나 존자, 마하꼿티따 존자, 마하깝삐나 존자, 마하쭌다 존자, 아누룻다 존자, 레와따 존자, 아난다 존자와 그 외 여러 잘 알려진 장로 제자들과 함께 사왓티에 있는 동승원의 녹자모 강당에 머무셨다.


2. 그 무렵에 장로 비구들은 신참 비구들을 훈도하고 훈도하였다. 어떤 장로 비구들은 열 명의 신참 비구들을 훈도하고 훈도하였고 어떤 장로 비구들은 20 명의 …30 명의 … 40 명의 비구들을 훈도하고 훈도 하였다. 그들 신참 비구들은 장로 비구들의 훈도과 훈도를 받아서 차례대로 고귀한 특별한 경지를 알게 되었다.


3. 그 무렵에 세존께서는 [우안거 해제일]의 보름 포살일의 보름 달 아래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침묵]하고 침묵하는 비구 승가를 둘러 보시고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4. "비구들이여 나는 이런 도닦음 때문에 흡족하다. 비구들이여, 나의 마음은 이런 도닦음 때문에 흡족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더욱더 정진을 하라. 그리하여 [얻지 못한 것을 얻고], [증득 못한 것을 증득하고], [실현 못한 것을 실현] 하도록 하라. 나는 여기 사왓티에서 네 번째 달의 [꼬무디]를 맞을 것이다."


5. 지방에 거주하는 비구들은 세존께서 그곳 사왓티에서 네 번째 달의 '꼬무디'를 맞을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들 지방에 거주하는 비구들은 세존을 뵈러 사왓티로 떠났다.


6. 그러자 그 장로 비구들은 더욱더 신참 비구들을 훈도하고 훈도하였나니 어떤 장로 비구들은 열 명의 신참 비구들을 훈도하고 훈도하였고 어떤 장로 비구들은 20 명의 …30 명의 … 40 명의 비구들을 훈도하고 훈도하였다. 그들 신참 비구들은 장로 비구들의 훈도를 받아서 차례대로 고귀한 특별한 경지를 알게 되었다.


7. 그 무렵에 세존께서는 네 번째 달의 '꼬무디' 보름 포살일의 보름달 아래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지에 앉아 계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참묵하고 침묵하는 비구승가를 둘러 보시고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8.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잡담]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떠들지 않아서] 순수한 적목질(赤木質)로 이루어져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 승가는 이러하고 이 회중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공양]을 올려 마땅하며, [시중]들어 마땅하며, [보시]하여 마땅하며, [합장]드려 마땅하며, 이 세상에 다시없는 [복전(福田)]이니 이 비구승가는 이러하고 이 회중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적게 보시해도 많은 [과보를] 가져오고], [많이 보시하면 더 많은 [과보를] 가져오나니], 이 비구승가는 이러하고 이 회중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세상에서 친견하기 어렵나니 이 비구승가는 이러하고 이 회중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이 회중은 [여행할 채비]를 하여 친견하러 먼 거리라도 가기에 충분하나니 이 비구승가는 이러하고 이 회중은 이러하다."


9.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아라한들이 있어서 [번뇌]가 다하였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 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가 멸진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이러한 비구들이 있다."


10.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제거하여 모두 [정거천에] 화생할 비구들이 있다. 그들은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는 돌아오는 법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이러한 비구들이 있다."


11.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하고 [탐욕]과 [성냄]과 [미혹]이 엷어진 한 번만 돌아 올[一來] 비구들이 있나니, 그들은 한 번만 이 세상에 돌아와서 괴로움을 끝내어 버릴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이러한 비구들이 있다."


12.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하여 흐름에 든[預流] 비구들이 있나니 그들은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이러한 비구들이 있다."


13.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을 닦기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들이 있다.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들이 이 비구승가에는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네 가지 바른 노력[사정근]을 …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을 … 다섯 가지 기능[五根]을 … 다섯 가지 힘[五力]을 …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를 …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를 닦기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들이 있다. ―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이런 비구들이 있다."


14.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자애]를 … [연민]을 … 같이 [기뻐함]을 … [평온]을 닦기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들이 있다. ―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들이 이 비구승가에는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부정관]을 … 무상의 인식을 닦기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들이 있다. ― 비구들이여, 이런 비구들이 이 비구승가에는 있다. 비구들이여, 이 비구승가에는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기에 몰두하여 머무는 비구들이 있다."


15. "비구들이여,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비구들이여,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지으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사념처]을 성취한다. 네 가지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칠각지]들을 성취한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많이 지으면 '영지(靈知)'와 '해탈'을 성취한다."


16. "비구들이여, 어떻게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어떻게 많이 지어야 큰 결실이 있고 큰 공덕이 있는가?"


17.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 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겨 숨을 내쉰다."


18. "길게 들이쉬면서는 [나는 길게 들이 쉰다] 고 꿰뚫어 알고(pajaanaati),

길게 내쉬면서는 [나는 길게 내쉰다] 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 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나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sikkhati)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신행 (身行)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신행을 가라앉히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19.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심행(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심행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심행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심행을 가라앉히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20.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기뻐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기뻐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21. "[무상을 수관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무상을 수관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탐욕이 빛바램을 수관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수관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소멸을 수관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소멸을 수관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놓아버림을 수관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놓아 버림을 수관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22. "비구들이여,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지으면 큰 결실이 있고 큰 공덕이 있다."


G. 사념처와의 관계


23. "비구들이여,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지으면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四念處]을 성취하는가?"


24. "비구들이여,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 [나는 길게 들이쉰다] 고 꿰뚫어 알고(pajaanaati),
길게 내쉬면서는 [나는 길게 내쉰다] 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쉬면서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 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쉬면서는 [나는 짧게 내쉰다] 고 꿰뚫어 안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sikkhati)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신행(身行)을 가라앉히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신행을 가라앉히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몸에서 몸을 따라 관찰하면서[身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들숨, 날숨이란 것은 몸들 가운데서 한가지 [형태의] 몸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 때에 몸에서 몸을 따라 관찰하면서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무는 것이다."


25. "비구들이여, 비구는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심행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심행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심행을 가라 앉히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심행을 가라앉히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관찰하면서[受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들숨, 날숨을 잘 마음에 갈무리하는 것은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느낌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 때에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관찰하면서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며 머무는 것이다."


26.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기뻐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기뻐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 며 공부 짓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 관찰하면서[心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마음 챙김을 놓아 버리고 분명히 알아 차리지 못하는 자가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는다고 나는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 때에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 관찰하면서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무는 것이다."


27. "비구들이여, 비구는 [무상을 수관하면서 들이 쉬리라] 며 공부 짓고

[무상을 수관하면서 내 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탐욕이 빛바램을 수관하면서 들이 쉬리라] 며 공부 짓고

[탐욕이 빛바램을 수관하면서 내 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소멸을 수관하면서 들이 쉬리라] 며 공부 짓고

[소멸을 수관하면서 내 쉬리라] 며 공부 짓는다.

[놓아버림을 수관하면서 들이 쉬리라] 며 공부 짓고

[놓아버림을 수관하면서 내 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법들에서 법을 따라 관찰하면서[法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문다. 그는 그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이 제거됨을 통찰지로서 보고서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 때에 법들에서 법을 따라 관찰하면서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무는 것 이다."


28. "비구들이여,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을 이와 같이 닦고 이와 같이 많이 지으면 [네 가지 마음챙김] 의 확립을 성취한다"


H. 칠각지와의 관계


29.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성취하는가?"


30. "비구들이여, 비구가 몸에서 몸을 따라 관찰하면서[身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물 때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때에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1. "그는 그처럼 마음 챙겨 머물면서 그런 현상[법]을 통찰지로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처럼 마음 챙겨 머물면서 그런 현상을 통찰지로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하면 그때에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 요소[擇法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2. "그가 그런 현상[법]을 통찰지로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할 때 불굴의 정진이 자리잡기 시작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런 현상[법]을 통찰지로서 조사하고 고찰하고 철저하게 검증하여 불굴의 정진이 자리잡기 시작하면 그때에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精進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3. "정진이 자리잡기 시작한 자에게 출세간적인 희열이 일어난다."

"비구들이여 비구의 정진이 자리잡기 시작하여 출세간적인 희열이 일어나면 그때에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喜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4. "희열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몸도 역시 편안하게 되고 마음도 역시 편안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희열하는 마음을 가져 몸도 역시 편안하게 되고 마음도 역시 편안하게 되면 그 때에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輕安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5. "몸이 편안하고 행복을 느끼는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든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몸이 편안하고 행복을 느껴서 마음이 삼매에 들면 그때에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定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6. "그는 그처럼 삼매에 든 마음으로 안으로 평온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그처럼 삼매에 든 마음으로 안으로 평온하게 되면 그때에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捨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비구는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게 되며,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7. "비구들이여, 비구가 느낌들에서 느낌을 따라 관찰하면서[受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물 때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 (§§30-36의 반복) …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捨覺支]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그때에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念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


38.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따라 관찰하면서[心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두고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물 때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때에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 (§§30-36의 반복) …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捨覺支]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39. "비구들이여 비구가 법들에서 법을 따라 관찰하면서[法隨觀] 세속에 대한 탐욕스러움과 정신적 고통을 제쳐 두고서 열심히, 분명히 알아 차리고 마음 챙기며 머물 때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비구가 마음 챙김을 확립하고 놓아 버리지 않으면 그때에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念覺支]가 비구에게 자리잡기 시작하고, .... (§§30-36의 반복) .... 그렇게 되면 비구에게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捨覺支]는 닦음을 통해서 성취가 된다."


40. "비구들이여,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지으면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성취한다."


I. 영지(靈知)와 해탈


41.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지으면 영지(靈知)와 해탈을 성취하는가?"


4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한적한 곳(떨쳐버림?)에 의지하고 탐욕이 빛바램에 의지하고 지멸에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염각지]를 닦는다."

".... 법을 가름하는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닦는다."


43.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 요소를 이렇게 닦고 이렇게 많이 지으면 영지(靈知)와 해탈을 성취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경이 끝났다)

J. 잡아함경 607. 정경(淨經) 81자의 작은경전입니다.

빠알리 원본은 S.47.18.Brahmā.

주) 사념처 관련경전은 잡아함경에 많이 나오는데요.. 가장 간단한 경으로 한번 올려봅니다. ^^ 부처님이 사념처를 중생을 청정하게 하는 일승도로써 설하십니다. 빠알리 경전에 의하면 이 경전은 깨달음을 얻으신 후 얼마되지 않아 범천에게 설하신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如是我聞。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爾時。世尊告諸比丘。

여시아문。일시。불재사위국기수급고독원。이시。세존고제비구。

"모든 중생을 깨끗하게 하여 근심과 슬픔을 벗어나게 하고 번민과 고통을 없애 참다운 법[如實法]을 얻게 하는 일승(一乘)의 길1)이 있나니, 이른바 4 념처를 말한다."

有一乘道。淨諸衆生。令越憂悲。滅惱苦。得如實法。所謂四念處。

유일승도。정제중생。영월우비。멸뇌고。득여실법。소위사념처。

주) 일승도 一乘道. Pāli: ekāyano maggo. (에까야나 막가)

得如實法. Pāli: Ñayassa adhigamāya nibbānaṃ sacchikiriyāya

"어떤 것들이 네 가지인가?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身身觀念處]와, 느낌[受], 그리고 마음[心]과, 법(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염처[法法觀念處]이니라."

何等爲四。身身觀念處。受.心.法.法觀念處。

하등위사。신신관념터。수.심.법.법관념처。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佛說此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불설차경이。제비구문불소설。환희봉행。

K. 부처님의 마지막 발자취(대반열반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 Mahāparinibbana Sutta, D16, 디가니까야16) 번역: 각묵 스님

부처님이 입멸하셨다. 남은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제자들이 가졌던 당연한 문제 의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들에게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 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아난다여,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 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 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 §6.1)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바로 부처님 말씀을 결집하는 대합송 작업에 들어갔다. 그 작업은 라자가하의 칠엽굴에서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두 달 뒤에 시작하여 장장 7 개월에 걸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디가 니까야 제3권 부록『장부 주석서』서문 §69)

그리고 그들은 부처님의 마지막 행적을 소상히 합송하여 부처님의 위대한 발자취를 전승해 주고자 했을 것이며, 그것이 제자 된 자들의 당연한 도리라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탄생한 것이 본경이다. 본경은 세존께서 입적하시기 약 2 년 전의 행적부터 시작해서 부처님 유체를 화장하여 사리를 분배하고 탑을 만든 것까지 총 6 개의 바나와라가 되는 많은 분량으로 이루어져 있다.

본경은「유행경」(遊行經)으로 한역되어서『장아함』의 두 번째 경으로 중국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동진(東晉) 때 법현(法顯) 스님이「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으로 단행본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본경은 담무참(曇無讖)이 번역한 것으로 전해오는 대승의「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과는 그 체제나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본경은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전 1~2 년 동안에 하신 말씀을 모은 경이다. 그런 만큼 세존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하시고자 한 육성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본경에 나타나는 여러 말씀은 불제자들이 가슴 깊이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려 노력해야 할 것이다. 특히 마지막 제자인 수밧다에게 하신 '불교 교단에는 팔정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사문의 집단' 이라는 취지의 말씀과 경의 도처에서 마음 챙김을 강조하신 점과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는 마지막 유언은 우리가 가슴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라고 파악한다.


L.「사문과경」(沙門果經, Sāmaññaphala Sutta, D2) 출가 생활의 결실

출가란, 말 그대로 집을 떠나는 행위이다. 집을 떠난다 함은 단순히 물질적인 집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모든 의무나 권리나 욕망이나 희망을 모두 접는다는 뜻이기도 하다.「사문과경」이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경의 제목처럼 이러한 출가 즉 사문됨(출가 생활)의 결실이다.

본경에서 출가 생활의 결실을 세존께 질문하는 사람은 '아자따삿뚜' 라는 당대에 제일 막강했던 '마가다' 를 통치하는 왕이다. 그는 그 시대를 풍미하던 여섯 종교 지도자들의 사상과 비교하면서 불교 수행자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실현하게 되는 결과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아자따삿뚜 대왕이 세존께 다음과 같이 질문하였다.

"세존이시여, 세상에는 여러 가지 기술 분야들이 있습니다 .... 그런 기술의 결실은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으며, 그들은 그런 결실로 살아 갑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처자식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친구와 동료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며, 사문․바라문들에게 많은 보시를 합니다. 그러한 보시는 고귀한 결말을 가져다 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 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도 이와 같이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출가 생활의 결실을 천명하실 수 있습니까?"

이러한 왕의 질문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23 가지로 정리된 계, 정, 혜 삼학의 정형구로 대답하시는 것이 본경의 전체 구조이다. 「사문과경」은 출가자가 닦아야 할 것으로 3 가지 계의 무더기와 감각대문의 단속 등의 공부 지음을 들고, 이것을 통해서 4 가지 禪과 8 가지 지혜를 실현하는 것을 사문됨의 결실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것을 정리해 보면 모두 23 가지가 되는데 그것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 그는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②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③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④ 짧은 길이의 계 - 모두 26 가지로 계를 지닌다.

⑤ 중간 길이의 계 - 모두 10 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멀리 한다.

⑥ 긴 길이의 계 - 모두 7 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 한다.

⑦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

⑧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⑨ 비구는 마음 챙김과 알아 차림을 잘 갖춘다.

⑩ 비구는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⑪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 해태와 혼침을 버려,

...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 의심의 강을 건너서 편안한 곳에 머문다.(다섯 가지 장애의 극복)

⑫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⑬ 제 2 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⑭ 제 3 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⑮ 제 4 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16. 지(知)와 견(見)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17.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18. 신통변화[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19.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 天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20.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21.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22.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23.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꿰뚫어 안다.

..........................................................................................................................................

이렇게 모두 23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본서「수바 경」(D10)에서 아난다 존자는 이 가운데 부터 까지를 [계의 무더기(戒蘊), sīlakkhandha]라고 정리하고 있고, 부터 까지를 [삼매의 무더기(定蘊), samādhi- khandha]라고 정리하고 있으며, 16 부터 23 까지를 [통찰지의 무더기(慧蘊), paññā-khandha]라고 정리하고 있다. 이렇게 [계온]과 [정온]과 [혜온]은「사문과경」에서 모두 23가지로 정리되어 나타난다.

물론 보는 입장에 따라서 예를 들면 오개(五蓋)의 극복에 대한 정형구를 초선에 포함시킨다든지 하여 23가지보다 더 적게 정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역자는 이렇게 23 가지로 파악하는 것이『디가 니까야』의 다른 경들이나 다른 니까야의 경들에 나타나는 정형구들과 비교해 볼 때 가장 적절한 분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경은 우리에게 육사외도(六師外道)로 알려진 부처님 시대의 여섯 명의 종교 지도자의 사상을 서로 비교해서 살펴볼 수 있는 경이다. 육사외도 가운데 불가지론(不可知論)으로 알려진 산자야를 제외한 나머지 5 명은 적취설(積聚說)로 대표되는 인도 사문 전통의 가르침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M. 몸에 대한 마음챙김경 (念身經, kāyagatāsatisutta, M119)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이 역경.
한역은 중아함경 81.염신경(念身經) K-648-81(17-1218). T-26-81(1-554).


§§ 서
§§ 들숨 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
§§ 행주좌와에 대한 마음 챙김
§§ 위의에 대한 마음 챙김
§§ 몸의 32 부분에 대한 마음 챙김
§§ 4 大에 대한 마음 챙김
§§ 묘지에 대한 마음 챙김(부정관)
§§ 初禪의 정형구
§§ 二禪의 정형구
§§ 三禪의 정형구
§§ 四禪의 정형구
§§ 영지[明]
§§ 마라
§§ 신통지(神通智)
§§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공덕

§§ 서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와티에 있는 제타 숲의 아나타삔디까 승원에 계셨다.

2. 어느 때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온 많은 비구들이 강당에 모여 앉아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正等覺者), 세존께서 말씀하신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은 이를 닦고 많이 지으면 실로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습니다."

여기서 비구들의 이야기는 중단되었다. 그때 세존께서 저녁 무렵에 [낮 동안의] 홀로 앉으심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강당으로 오셨기 [때문이다]. 오셔서는 마련해 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가 중단한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점심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여기 강당에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아라한, 정등각자(正等覺者), 세존께서 말씀하신 '몸에 대한 마음챙김'은 이를 닦고 많이 지으면 실로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이런 이야기가 중단되고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3.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어떻게 닦고 어떻게 많이 지어야 큰 결실과 큰 공덕이 있는가?"
katham bhāvitā ca, bhikkhave, kāyagatāsati katham bahulīkatā mahapphalā hoti mahānisamsā?

4.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거나 하여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마음 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 챙겨 숨을 내쉰다."

"길게 들이 쉬면서는 '나는 길게 들이 쉰다'고 꿰뚫어 알고(pajānāti),

길게 내 쉬면서는 '나는 길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짧게 들이 쉬면서는 '나는 짧게 들이쉰다'고 꿰뚫어 알고,

짧게 내 쉬면서는 '나는 짧게 내쉰다'고 꿰뚫어 안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 쉬리라'며 공부 짓고(sikkhati)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내 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신행 (身行)을 가라 앉히면서 들이 쉬리라'며 공부 짓고

'신행을 가라 앉히면서 내 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주) 신행 (身行) kāyasankhāra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 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행주좌와에 대한 마음챙김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걸어 가면서는 '나는 걷고 있다'고 꿰뚫어 알고,

서 있으면서는 '나는 서 있다'고 꿰뚫어 알며,

앉아 있으면서는 '나는 앉아 있다'고 꿰뚫어 알고,

누워 있으면서는 '나는 누워 있다'고 꿰뚫어 안다.

그의 몸이 다른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든 간에 그 자세대로 꿰뚫어 안다."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위의에 대한 마음챙김


6.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나아갈 때에도 물러날 때에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 행한다(sampajānakāri).

앞을 볼 때에도 돌아 볼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에도 펼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 발우, 의복을 지닐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에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서면서, 앉으면서, 잠들면서, 잠을 깨면서, 말하면서,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는다."


§§ 몸의 32부분에 대한 마음챙김


7.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이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내려가며 반조한다(paccavekkhati)."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위 속의 음식, 똥, 뇌,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고."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아가리가 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밭벼, 논벼, 콩, 완두, 기장, 현미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밝은 사람 이 그 자루를 풀고 일일이 헤쳐보면서 '이것은 밭벼, 이것은 논벼, 이것은 콩, 이것은 완두, 이것은 기장, 이것은 현미다' 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이 여러 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 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래로 내려가며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위 속의 음식, 똥, 뇌,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고."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4大에 대한 마음챙김


8.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요소[界]별로, 구성되어 있는 대로, 작용하고 있는 대로 반조한다. '이 몸에는 땅[地]의 요소, 물[水]의 요소, 불[火]의 요소, 바람[風]의 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아서 각을 뜬 다음 큰길 네 거리에 이를 벌려 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을 요소 별로, 구성되어 있는 대로, 작용하고 있는 대로 반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있다'고."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 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묘지에 대한 마음챙김(부정관)


9.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죽은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 된 시체가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upasamharati)."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 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는다."

1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가 마구 쪼아먹고,

솔개가 마구 쪼아먹고,

독수리가 마구 쪼아먹고,

개가 마구 뜯어먹고,

자칼이 마구 뜯어먹고,

수없이 많은 갖가지 벌레들이 덤벼들어 파먹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는다."


11-14.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로 얽 히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은 없이 피만 엉긴 채 힘줄로 얽히어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는 없고,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힘줄도 사라지고,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 저기에는 가슴뼈, 저기에는 팔뼈, 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15-17.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뼈가 조개껍질 색깔같이 하얗 게 백골이 된 것을 보는 것과 같이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단지 뼈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었다가 다시 삭아서 티끌로 변한 모습을 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도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초선初禪의 정형구


18.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 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 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 pīti]과 행복[樂, sukha]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고 고루 배게 한다.

온 몸 속속들이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배어들지 않은 데가 없다."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때밀이나 그 조수가 금속 대야에 목욕 가루를 쏟아 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 가며 계속 이기면 그 목욕 가루덩이가 반죽이 잘 되어 물기가 안팎으로 흠뻑 배어 들지만 결코 액체상태로 되지 않는 것처럼."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고 고루 배게 한다. 온 몸 속속들이 떨쳐 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배어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는다."


§§ 2선二禪의 정형구


19.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sampasādana)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 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고, 고루 배게 한다.

온 몸 속속 들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배어 들지 않은 데가 없다."

"비구들이여, 마치 밑바닥에 있는 샘에서 나오는 물로 채워지는 못이 있는데,

동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으며,

또 하늘에서도 때때로 소나기도 내리지 않는다면

그 못의 밑바닥 샘으로부터 솟아나는 차가운 물이

그 못을 차가운 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어 고루 배게 할 것이다.

전체 호수의 그 어느 한 부분도 이 차가운 물이 배어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고 고루 배게 한다. 온몸 속속들이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이 배어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 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3선三禪의 정형구


20.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희열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 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게 마음챙기며 행복에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 3 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무희열의 행복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고 고루 배게 한다. 온 몸 속속들이 무희열의 행복이 배어들지 않은 데가 없다.

"비구들이여, 만약 청련못이나 홍련못이나 백련못에 있는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 속에서 발아하여 물 속에서 자라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 속에 잠긴 채로 우거져 있는데 차가운 물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어 고루 배어든다면 그 어느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도 물이 배어들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무희열의 행복감으로 흠뻑 적시고 두루 채우고 충만시키고 고루 배게 한다. 온 몸 속속들이 무희열의 행복감이 배어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4선四禪의 정형구


21.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捨念淸淨] 제 4 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극히 청정하고 극히 순결한 마음으로 고루 채우고서 앉아 있다. 온 몸 속속들이 극히 청정하고 극히 순결한 마음으로 채워지지 않은 데가 없다."

"비구들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극히 청정하고 극히 순결한 마음으로 고루 채우고서 앉아 있다. 온 몸 속속들이 극히 청정하고 극히 순결한 마음이 배어들지 않은 데가 없다."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기억과 생각들(sarasam*kappā)이 사라진다. 그런 것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전일(專一)해져 삼매를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 영지[明]


22.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짓는 사람은 영지[明]에 기여하는 유익한[善] 법들을 포용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마치 큰 바다를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은 그 바다로 흘러드는 모든 강물도 포용하고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와 같이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짓는 사람은 영지[明]에 기여하는 유익한[善] 법들을 포용하게 된다."


§§ 마라


23.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짓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고 마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비구들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무거운 돌멩이를 질퍽한 진흙무더기에 던졌다고 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무거운 돌은 질퍽한 진흙무더기에서 파고들 틈을 얻게 되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짓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고 마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24. "비구들이여, 만약 말라서 물기가 없는 나무토막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부시막대를 가져와서 '불을 피워 열을 내야겠다'고 한다 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말라서 물기가 없는 그 나무 토막에다 부시막대를 비벼대서 불을 지피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짓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고 마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25. "비구들이여, 만약 빈 물독이 독대에 놓여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짐을 지고 왔다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물독에 물을 부을 수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지 않고 많이 짓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고 마라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26.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마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만약 어떤 사람이 가벼운 실타래를 나무심[心材]으로 만든 견고한 문짝에 던진다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가벼운 실타래가 나무심으로 된 견고한 문짝에서 틈을 얻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마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27. "비구들이여, 만약 물기가 많은 젖은 나무토막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부시막대를 가져와서 '불을 피워 열을 내야겠다'고 한다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물기가 많은 젖은 나무토막에다 부시막대를 비벼대서 불을 피우고 열을 낼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마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28. "비구들이여, 만약 까마귀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찬 독이 독대에 놓여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짐을 지고 왔다하자.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비구들이여. 그 사람은 물독에 물을 부을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누구나 마라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마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 신통지(神通智)


29.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신통지(神通智, abhiññā)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경지[법]는 그것이 어떤 경지이든, 신통지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이기만 하면 어느 것이든 실현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만약 까마귀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찬 독이 독대에 놓여 있는데 힘센 사람이 그것을 기울이기만 하면 그 물은 흘러나오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신통지(神通智, abhiññā)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경지[법]는 그것이 어떤 경지이든, 신통지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이기만 하면 어느 것이든 실현하게 된다."

30. "비구들이여, 만약 평평한 땅에 까마귀가 먹을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찬, 사방이 둑으로 싸인 연못이 있는데 힘센 사람이 그 둑을 튼다면 물이 흘러 나오겠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신통지(神通智, abhiññā)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경지[법]는 그것이 어떤 경지이든, 신통지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이기만 하면 어느 것이든 실현하게 된다."

31. "비구들이여, 만약 평평한 땅 큰길 네 거리에 마차가 있어, 혈통 좋은 말을 매고 채찍도 갖추어 떠날 준비가 다 되었는데 능숙한 조련사인 솜씨 좋은 마부가 이에 올라탄다면, 왼손에는 고삐를 쥐고 오른손에 채찍을 잡고서 그는 가고 싶은 대로 마차를 몰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누구든지 누구든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지은 사람은 신통지(神通智, abhiññā)로 실현시킬 수 있는 경지[법]는 그것이 어떤 경지이든, 신통지로 그 경지를 실현하기 위해서 마음을 기울이기만 하면 어느 것이든 실현하게 된다."


§§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공덕


32.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받들어 행하고, 닦고 많이 짓고, 수레로 삼고, 기반으로 삼고, 확립하고, 공고히 다지고, 적절히 시도할 경우 다음의 열 가지 공덕을 기대할 수 있다. 그 열 가지란 어떤 것인가?"

33. (1) "그는 싫고 좋음을 극복한다. 그는 싫은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싫은 생각이 일어나는 족족 이를 지배하고 머문다."

34. (2) "그는 두려움과 공포를 극복한다. 그는 두려움이나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두려움이나 공포가 일어나는 족족 이를 지배하고 머문다."

35. (3) "그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에 닿음과, 받아 들이기 힘든 나쁜 말들과,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심하고, 좋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36. (4) "그는 보다 높은 마음이요(ābhicetasika), 바로 지금 여기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그 네 가지 선[四禪]을 원하는대로 힘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게 누리게 된다."

37. (5) "그는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얻는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 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 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身足通]."

38. (6) "그는 또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써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는다[天耳通]."

39. (7) "그는 또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꿰뚫어 안다.

"그는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성냄을 여읜 마음은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어리석음[무명]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무명]이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어리석음[무명]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무명]을 여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수축한 마음은 수축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고귀한 마음은 고귀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고귀하지 않은 마음은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더이상] 위가 없는 마음[無上心]은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삼매에 든 마음은 삼매에 든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삼매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꿰뚫어 알고,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꿰뚫어 안다[他心通]."

40. (8) "그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할 수 있다. 한 생 전, 두 생 전,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 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 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 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 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宿命通]."

41. (9)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으로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 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비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天眼通]."

42. (10) "그는 또한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지혜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신통지에 의해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漏盡通]."

43.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 챙김을 받들어 행하고 닦고 많이 짓고 수레로 삼고 기반으로 삼고 확립하고 공고히 다지고 적절히 시도할 경우 이들 열 가지 공덕을 기대할 수 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경이 끝났다.)

N 염신경(念身經)


Kāyagatā sati Sutta (Mindfulness of the Body)

칸띠빨로 스님 엮음현음 스님 옮김


A treasury of the Buddha's Discourses from the Majjhima-nikāya(Middle Collection) Volume Ⅱ
Translated byVen. Nyanamoli Thera

부처님께서 선정공부를 지어가는 방법에 대해 설하신 경은 여럿이 있다. 그 중 잘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것으로 염처경과 출입식념경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비교적 주목을 못끌고 있을지 몰라도, 여기에 소개하는 염신경(念身經) 은 어쩌면 그러한 일련의 경들 중 가장 먼저 설해진 기본적인 경인지도 모른다. 용어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논의의 타당성 여부는 뒤로 비루더라도 짧은 가운데 주요한 점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경부터 먼저 독자에게 소개해드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되어 이번에 옮기기로 하였다.


중부(中部)의 제 119 경인 이 경의 중요성을 소개한 칸띠빨로 스님의 글을 옮겨본다.


"이 몸뚱이를 당연히 [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우리는 이 몸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들 말한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신체에 대한 염] 을 말씀하신 취지를 알고 나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 몸이 실제로는 낡은 지도상에 공백으로 남아있는 인적미답의 처녀지나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갖가지 관법(觀法) 훈련을 써서 이 [미지]의 땅을 탐험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기 때문에 마음이라는 깊은 정글 속에 탐욕과 집착이 계속 숨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비구들이여, 신체에 대한 염의 맛을 못 본 사람은, 감로[不死]의 맛을 못보고, 신체에 대한 염의 맛을 본 사람은 감로의 맛을 본다(증지부1,45)" 는 말씀도 그 중의 한 예이다."

"따라서 신체에 대해 염하지 않으면 거듭되는 생사의 고통 속에서 헤매이게 되고, 반대로 신체에 대한 염을 '익히고 끊임없이 닦으면' 불사의 경지, 즉 열반을 증득하게 된다. 이 공부를 함으로써 얻게 되는 열 가지 이익을 생각하면 그것만으로도 수행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될 것이다."

우리는 빠알리경을 남들보다 뒤늦게 접하는 입장이다. 그 동안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많은 연구가 진척되었고 훌륭한 번역들도 나와 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그들의 연구성과를 차근차근 섭렵하여 소화하는 일부터 해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결연한 자세가 견지 되어야 한다. 이번 경의 옮김도 그러한 입장에서 외국의 학적 성과를 수용하는 데 치중했다.


O. 제번뇌 단속경(Sabbāsavasamvara Sutta, M2)


초기불전연구원 각묵스님이 역경함.

- 초기 불전연구원 게시판에 경을 역경하여 올리시면서 제번뇌 단속경과 관련하여 하신 말씀 "이 경은 어떻게 번뇌를 단속하여 이를 소멸시켜 해탈열반을 성취할 것인가 하는 주제를 다룬 초기경들 가운데서도 아주 중요하고 널리 읽히는 경입니다."

"이 경에서 세존께서는 번뇌들을 일곱으로 분류하고 이들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하고 계십니다. 본 경은 그만큼 귀중한 경이니 법우님들께서는 꼭 읽어보시고 자신의 수행에 적용시켜 점검해보실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각묵 합장"

- 한역 아함 대응경전은 중아함경10.누진경(漏盡經)이 있으며, 참조경전은 중아함경77.사계제삼족성자娑鷄帝三族姓子경입니다.

차례

1.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라.
2.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3. 단속으로써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4. 수용함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5. 인내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6. 피함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7. 버림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8. 수행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9. (끝)


1 -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라.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 있는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라고. "세존이시여" 라고 그들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모든 번뇌를 단속하는 법문을 설하리라. 그것을 잘 들어라. 잘 마음에 잡도리 하라. 이제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존자시여" 라고 그들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셨다.


주)여기서 번뇌는 asava이다. 한역에선 漏라고 새겼다.

3. [비구들이여, 나는 알고 보는 자에게 번뇌들이 소멸한다 라고 말하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번뇌들이 소멸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에게 번뇌들이 소멸하는가?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如理作意]과 근원을 벗어나서 마음에 잡도리함이다. 비구들이여, 근원을 벗어나서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아직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제거된다.]

4. "비구들이여,


① 관찰[見]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② 단속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③ 수용함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④ 인내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⑤ 피함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⑥ 버림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⑦ 수행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 있다."


주) dassanā(관찰), samvarā(단속), patisevanā(수용함), adhivāsanā(인내), parivajjanā(피함), vinodanā(버림), bhāvanā(수행)

2 -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Dassanā pahātabbāsavā

2-1.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1

5.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정통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의 법에 정통하지 못하여 바른 사람의 법에 인도되지 못하여


주) 바른 사람(sappurisā)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지 못하여서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는다."


주) 잡도리하여야 할 법(manasikaran*īye dhamma)

6.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잡도리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 kāmāsava]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더욱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 bhavāsava]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더욱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 avijjāsava]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더욱 증가한다.
이 법들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이다.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잡도리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제거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제거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제거된다.
이 법들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지만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이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증가한다."

2-2.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2


7. "그는 다음과 같이 근원을 벗어나 마음에 잡도리한다.
'나는 정말 과거에 존재했는가
아니면 과거에 존재하지 않았는가?
나는 과거에 무엇이었을까?
나는 과거에 어떠했을까?
나는 과거에 무엇이 되었기 때문에 무엇이 되었을까?

나는 정말 미래에도 존재할까
아니면 미래에 존재하지 않을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나는 미래에 어떠할까?
나는 미래에 무엇이 되기 때문에 무엇이 되어 있을까?

지금에 현재에 대해서도 안으로 의심이 있다.
나는 존재하기는 하는가?
나는 존재하지 않는가?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떠한가?
이 [나라는] 중생은 어디서 와서
그는 어디로 가게 될 것인가?' 라고"

8. "이와 같이 근원을 벗어나 마음에 잡도리하는 자에게 여섯 가지 견해들 가운데 하나의 견해가 생겨난다.
㉮ '나에게 자아는 있다'라고 그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견해가 일어난다.
㉯ '나에게 자아란 없다'라고 그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견해가 일어난다.
㉰ '나는 자아로서 자아를 인식한다'라고 그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견해가 일어난다.
㉰ '나는 자아로서 무아를 인식한다'라고 그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견해가 일어난다.
㉱ '나는 무아로서 자아를 인식한다'라고 그에게 분명하고 확고하게 견해가 일어난다.
㉲ 혹은 그에게 이런 견해가 있게 된다. '이러한 나의 자아는 말하고 경험하며 여기저기서 선악의 업들의 과보를 누린다. 그런 나의 자아는 항상 있고 견고하고 영원하여 변하지 않는 법이어서 영원히 그렇게 확고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주) 여기서 나는 aham 자아는 atta 무아는 anatta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해에 빠짐, 견해에 붙들림, 견해의 황무지, 견해의 뒤틀림, 견해의 요동, 견해의 족쇄라 한다. 비구들이여, 견해의 족쇄에 계박되어서 배우지 못한 범부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탄식·괴로움·슬픔·절망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2-3.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3


9. "비구들이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정통하며 성스러운 법에 잘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고 바른 사람의 법에 정통하고 바른 사람의 법에 잘 인도되어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안다. 그는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꿰뚫어 알아서 마음에 잡도리 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 하여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한다."

10.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잡도리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더욱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더욱 증가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더욱 증가한다."

"이 법들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이다."

"무엇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고 마음에 잡도리 하여야 할 법들인가? 비구들이여 마음에 잡도리하면 아직 일어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慾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가 제거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존재에 기인한 번뇌가 제거되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무명에 기인한 번뇌가 제거된다. 이 법들이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고 마음에 잡도리 하여야 할 법들이다."

"그가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아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마음에 잡도리하여야 할 법들을 마음에 잡도리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은 번뇌들은 일어나지 않고 이미 일어난 번뇌들은 제거 된다."


11.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따라야할 길이다'라고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한다.

그가 이와 같이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하면 세 가지 족쇄들이 제거되나니 유신견[有身見]과, 의심[疑]과, 계와 서원에 대한 집착[戒禁取]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관찰[見]로서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이라 한다.


3 - 단속으로써 제거해야 하는 번뇌들
Samvarā pahātabbāsavā


12.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단속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눈의 감각기능[眼根]을 잘 단속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여 머무는 자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여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번뇌들과 속상하고 열 받는 일들이 없다."


주) 단속(samvarā)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귀의 감각기능[耳根]을 잘 제어하여 머문다. …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코의 감각기능[鼻根]을 잘 제어하여 머문다....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혀의 감각기능[舌根]을 잘 제어하여 머문다.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몸의 감각기능[身根]을 잘 제어하여 머문다....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마노의 감각기능[意根]을 잘 제어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마노의 기능을 잘 단속하지 못하여 머무는 자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노의 기능을 잘 단속하여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잘 단속하지 못하여 머무는 자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잘 단속하여 머무는 자에게는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단속으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라 한다."

4 - 수용함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Patisevanā pahātabbāsavā


13.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수용함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의복을 수용하나니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부끄러운 부분을 가리기 위해서이다."

14. "그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음식을 수용하나니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며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치장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장식을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유지하고 잔인함을 쉬고 청정범행(梵行)을 잘 지키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오래된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잘 부양될 것이고 비난받지 않고 안온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15. "그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거처를 수용하나니 추위를 물리치고, 더위를 물리치고,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와 닿는 것을 물리치고, 오직 기후의 변화에서 생기는 위험을 없애고, 한거(閑居)를 편안히 하기 위해서이다."


16. "그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수용하나니 오직 일어난 고통스러운 느낌들을 물리치고 병없음을 최상으로 하기 위해서이다."

17. "비구들이여, 수용하지 않으면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수용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용함으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라 한다."

5 - 인내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Adhivāsanā pahātabbāsavā

18.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인내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인욕을 한다.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파리 모기 바람 햇빛 파충류에 닿음과, 받아들이기 힘든 나쁜 말들과,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심하고 좋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감내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감내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감내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라 한다."

6 - 피함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Parivajjanā pahātabbāsavā

19.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피함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숙고하기 때문에 근원적으로 사나운 코끼리를 피한다. 사나운 말을 피한다. 사나운 소를 피한다. 사나운 개를 피한다. 뱀, 그루터기, 가시덤불, 협곡, 낭떠러지, 더러운 물구덩이[泥沼], 더러운 웅덩이[小澤地]를 피한다.

적합한 자리가 아닌 곳에 앉는 것, 갈 곳이 아닌 곳에 다니는 것, 나쁜 도반을 사귀는 것을 지자인 동료 범행자들이 나쁜 경우에 속한다고 지적을 할 것이므로 그런 자리가 아닌 곳, 갈 곳이 아닌 곳, 나쁜 도반들을 반조하여 근원적으로 피한다."

"비구들이여, 피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피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피함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라 한다."

7 - 버림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Vinodanā pahātabbāsavā

20.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버림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숙고하기 때문에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을 근원적으로 허용하지 않고 제거하고 내쫓고 끝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일어난 악의의 생각을 .... 일어난 잔인한 생각을 ....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삿되고 해로운 법들을 허용하지 않고 제거하고 내쫓고 끝장내고 존재하지 않게 한다."

"비구들이여, 버리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버리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버림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라 한다."

8 - 수행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
Bhāvanā pahātabbāsavā

21. "비구들이여, 어떤 것이 수행으로써 제거해야할 번뇌들인가? 비구들이여, 여기서 비구는 근원적으로 숙고하기 때문에 떨쳐 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 의지하고 그침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마음 챙김의 깨달음의 각지[念覺支]를 닦는다."

근원적으로 숙고하기 때문에

.... 법을 결택(決擇)하는 깨달음의 각지[擇法覺支]를 닦는다.

.... 정진의 깨달음의 각지[精進覺支]를 닦는다.

.... 희열의 깨달음의 각지[喜覺支]를 닦는다.

.... 고요함의 깨달음의 각지[輕安覺支]를 닦는다.

.... 삼매의 깨달음의 각지[定覺支]를 닦는다.

근원적으로 숙고하기 때문에 한적한 곳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 의지하고 그침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을 의지한 평온의 깨달음의 각지[捨覺支]를 닦는다."

"비구들이여, 수행하지 않으면 그에게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일어날 것이다. 수행하면 그러한 속상하고 열 받는 번뇌들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수행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이라 한다."

22. "비구들이여, 비구가


관찰[見]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은 관찰로서 제거해야한다.


단속으로 제거해야 할 번뇌들은 단속으로 제거해야한다.


수용함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은 수용함으로서 제거해야한다.


인내로 제거해야할 번뇌들은 인내으로서 제거해야한다.


피함으로 제거해야할 번뇌들은 피함으로서 제거해야한다.


버림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은 버림으로서 제거해야한다.


수행으로서 제거해야할 번뇌들은 수행으로서 제거해야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가 모든 번뇌를 단속하여 머문다고 한다.


그는 갈애를 잘라 버렸고,
족쇄를 풀어 버렸고,
자만을 바르게 꿰뚫어 버렸고,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 버렸다."

ayam vuccati, bhikkhave–
‘bhikkhu sabbāsavasamvarasamvuto viharati,
acchecchi tan*ham,
vivattayi samyojanam,
sammā mānābhisamayā
antamakāsi dukkhassā”’ti.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주) 중아함경77.사계제삼족성자娑鷄帝三族姓子경에는 이와같이 여러가지 번뇌를 단속하는 방법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즉 여래는 모든 번뇌를 끊고 알았기 때문에가 하나고, 둘째는 몸·육입·수명때문이라고 하였다. 경의 문장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아나율타야 여래는 모든 번뇌와 더러움을 - 재생을 가져오는, 괴로운과보를 가져오는, 생로병사의 원인인 - 끊었고 알았기 때문에 [번뇌를 끊는 법으로] 除·用·堪·止·吐 가 있음을 안다. 아나율타야 [번뇌를 끊는 방법이 除·用·堪·止·吐가 있음은] 몸때문에, 6입처(入處)때문에, 수명때문에 그런 것이다. 諸漏穢汚爲當來有本。煩熱苦報。生.老.病.死因。如來非不盡。非不知故。因此身故。因六處故。因壽命故。"


P. 깨끗함 경 (A3:118)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608페이지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깨끗함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몸이 깨끗함, 말이 깨끗함, 마음이 깨끗함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몸이 깨끗함인가? 여기 어떤 사람은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몸이 깨끗함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말이 깨끗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이간질을 멀리 여의고, 욕설을 멀리 여의고, 잡담을 멀리 여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말이 깨끗함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마음이 깨끗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간탐하지 않고, 악의 없는 마음을 가지고, 바른 견해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마음이 깨끗함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깨끗함이다."


초기불경 4 아함과 5 니까야중 상윳따 니까야에는 비구니들과 악마의 대화가 실려 있다. 그 대화를 기록한 것이 상윳따 니까야의 제5. 비구니 상윳따의 10 개의 경이다. 이 대화록은 잡아함경 비구니상응에도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상윳따 니까야 제5. 비구니 상윳따 s.5.Bhikkhunīsamyuttam

잡아함경 45 권 비구니상응( 1198경~1207경)

상윳따 니까야의 한글번역은 전재성님의 쌍윳따니까야를 참조하여 간략히 하였고, 해당하는 잡아함경의 경전은 동국역경원 잡아함경 검색에서 참조할수 있다. 널리 알려지고 중요한 게송은 빠알리 원문을 첨부하였다.

경의 차례는 다음과 같다. 1) 알라비까, 2) 쏘마, 3) 고따미, 4) 비자야, 5) 우빨라반나, 6) 짤라, 7) 우빠짤라, 8) 씨쑤빠짤라, 9) 쎌라, 10) 바지라

1) 알라비까 Ālavikā

잡아함경 1198. 아라비경阿臘毘經

[빠삐만] "세상에 출리(出離)란 없으니 멀리 떠나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감각적 쾌락을 즐겨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아야 하네."

[알라비까] "세상에는 출리가 있으니 나는 지혜로써 잘 파악하고 있네.

게으름의 벗, 빠삐만이여 너는 그러한 발자취를 알지 못하네.

감각적 쾌락은 창의 쐐기와 같고 모든 구성요소는 형틀과 같네.

그대가 감각적 쾌락이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네."

 

註.

- #빠삐만: 악마. 마라의 다른 이름으로 “사악한 자”란 의미이다.

- 알라비까 : 알라비(alavi)는 자따까 등에 자주 언급되는 인도의 도시 이름이다.

붓다고사에 의하면, 알라비까라는 수행녀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이름은 쎌라

였다. 오늘날에도 스리랑카에서는 태어난 곳의 이름을 따라 법명을 주는 습관이 있다.

- 출리 : 붓다고사는 출리를 열반(nibbanam)으로 해석했다.

2) 쏘마 Somā

잡아함경 1199. 소마경(蘇摩經)

[빠삐만] "성자만이 도달할 수 있을 뿐 그 경지는 성취하기 어렵네.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네."

“Yam tam isīhi pattabbam, t*hānam durabhisambhavam;

na tam dvangulapaññāya, sakkā pappotumitthiyā”ti.

[쏘마]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법을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데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

“Itthibhāvo kim kayirā, cittamhi susamāhite;

ñānamhi vattamānamhi, sammā dhammam vipassato.

“Yassa nūna siyā evam, itthāham purisoti vā;

kiñci vā pana aññasmi, tam māro vattumarahatī”ti.

註.

- 쏘마 : 마가다 국의 빔비사라 왕의 제사장의 딸이라 한다.

-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 :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잴 수 있는 만큼의 크기로,

아주 작은 양을 의미한다.

3) 고따미 Kisāgotamī

잡아함경 1200. 구담미경(瞿曇彌經)

[빠삐만] "그대 아들을 잃어 버리고 홀로 슬퍼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가?

외롭게 숲속 깊이 들어와 혹시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고따미] "언제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아니고 남자도 이미 지난 일이네.

나는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으니 벗이여,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

모든 쾌락은 부서졌고 어두운 구성요소는 파괴되었네.

죽음의 군대는 승리하여 속세의 번뇌없이 나는 살아가네."

註.

- 고따미 : 그녀는 부유한 집에 시집을 가서 아들을 낳고 귀여움을 독차지했는데,

그 아들이 일찍 죽자 비탄에 잠겨 죽은 아기를 업고 되살리기 위해 약을 구하려 다녔

으나 사람들이 비웃을 뿐이었다. 어떤 슬기로운 자가 그녀를 부처님께 인도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이 죽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구해오면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고따미는 나중에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는 죽은 아이를 내려놓고 출가하였다.

그녀는 곧 진리의 흐름에 들었으며 부처님이 그녀 앞에 눈부신 광채로 나타나자 아라

한이 되었다. '끼싸' 는 가냘팠던 그녀의 몸매를 뜻한다. 그녀는 수행녀 가운데 가장

존경을 받았다.

4) 비자야 Vijayā

잡아함경 1204. 비사경(毘闍經)

[빠삐만] "그대는 젊고 아름다우며 나 또한 젊은 청년이네.

사랑스런이여, 오라 다섯 악기로써 즐겨보세."

[비자야] "마음을 즐겁게 하는 색깔과 소리와 맛과 향기와 접촉을

나는 그대에게 넘겨주니 악마여, 그것은 내게 필요하지 않네.

이 취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부패하는 몸에 대하여

나는 곤혼하여 참괴하니 애욕의 갈애는 내게서 근절되었네.

형상의 세계에 들어선 뭇삶들과 무형상의 세계에서 지내는 자들

선정의 성취마저 고요해지면 모든 곳에서 어둠은 사라지네."

5) 우빨라반나 Uppalavannā

잡아함경 1201. 우발라색경(優鉢羅色經)

[빠삐만] "수행녀여, 위 아래로 아름답게 꽃핀 쌀라 나무 아래 그대가 외롭게 서 있으니

그대의 아름다움은 견줄 데 없네. 어리석은 이여, 악인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우빨라반나] "백 명, 천 명의 그대와 같은 악한이 여기에 와 있더라도

터럭만큼도 동요가 없어 두려워하지 않네.

악마여, 나는 홀로지만 그대를 무서워하지 않네."

[빠삐만]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그대에게

또는 그대의 미간에 서면 그대는 나를 볼 수가 없네."

[우빨라반나] "나는 마음의 자재함을 얻어 신통력의 기초를 잘 닦았네.

모든 속박에서 해탈하여 벗이여,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

註.

- 우빨라반나 : 아름다움으로 유명한 수행녀. 수행녀 중 신통력 제일이다.

6) 짤라 Cālā

잡아함경 1205. 차라경(遮羅經)

[빠삐만] "수행녀여,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짤라] "벗이여, 나는 태어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빠삐만] "왜 태어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짤라] "태어나면 감각적 쾌락을 즐기게 된다."

[빠삐만] "수행녀여, 태어남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누가 그대에게 가르쳤는가?"

[짤라] "태어나면 죽음이 있게 되며 감옥에 갇히고 살해당하는 환난의

괴로움들을 태어나서 경험하니 나는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네.

태어남에서 뛰어넘는 가르침을 부처님께서 설하셨으니

모든 괴로움을 버리게 하시고 나를 진실에 들게 하셨네.

형상의 세계에 사는 뭇삶들도 형상이 없는 세계에 사는 자들도

괴로움의 소멸을 알지 못하여 다시 태어남으로 복귀하는 것이네."

註.

- 짤라 : 짤라는 사리불의 여동생으로 알려져 있다.

7) 우빠짤라 Upacālā

잡아함경 1206. 우파차라경(優波遮羅經)

[빠삐만] "수행녀여, 그대는 어디에 다시 태어나길 바라는가?"

[우빠짤라] "벗이여, 나는 어디에도 태어나고 싶지 않다."

[빠삐만] "도리천이나 야마천 또는 도솔천의 신들

또는 화락천의 신들 또는 다화자재천의 신들.

그들에게 마음을 바치면 그대는 즐거움을 경험하리."

[우빠짤라] "도리천이나 야마천 또는 도솔천의 신들

또는 화락천의 신들 또는 타화자재천의 신들.

그들은 애욕의 줄에 묶여 다시 악마의 영토로 들어가네.

세상은 모두 불이 붙었고 세상은 온통 연기에 휩싸였네.

세상은 모두 불길을 토하고 세상은 온통 뒤흔들리네.

뒤흔들리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곳 범상한 사람이 도달하지 못하는 곳

악마가 도달하지 못하는 곳 그곳에서 내 마음이 즐거우리."

8) 씨쑤빠짤라 Sīsupacālā

잡아함경 1207. 시리사차라경(尸利沙遮羅經)

[빠삐만] "수행녀여, 그대는 어떠한 이교도의 가르침을 기뻐하는가?"

[씨쑤빠짤라] "벗이여, 나는 어떠한 이교도의 가르침도 기뻐하지 않는다."

[빠삐만] "왜 머리를 삭발했는가? 그대는 수행녀처럼 보이는데

이교도의 가르침을 기뻐하지 않으면서 어리석게 무엇을 하고 있는가?"

[씨쑤빠짤라] "외도(外道)인 이교도들은 잘못된 견해를 믿으니

나는 그들의 법을 기뻐하지 않네. 그들은 법을 잘 모르네.

여기 싹가 족의 집에 태어난 이 깨달은 이, 견줄 데 없는 이

모든 것 극복하고 악마를 제거하고 모든 것에 정복되지 않으며

모든 것에서 자유롭고 집착이 없는 이 눈 있는 자로서 모든 것을 보네.

모든 업력의 멸진에 이르러 집착이 파괴되어 해탈했으니

세상의 존경받는 분이 나의 스승이네. 나는 그의 가르침을 기뻐한다네."

9) 쎌라 Selā

잡아함경 1203. 비라경(毘羅經)

[빠삐만] "누가 이 환영을 만들었는가? 환영을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환영은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이 환영은 어디에서 소멸되는가?"

“Kenidam pakatam bimbam, kvanu bimbassa kārako;

kvanu bimbam samuppannam, kvanu bimbam nirujjhatī”ti.

[쎌라] "이 환영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며 이 재난은 타인이 만든 것도 아니니

원인을 연유로 생겨났다가 원인이 멸하면 사라져버리네.

마치 어떤 씨앗이 밭에 뿌려져 흙의 자양분을 연유로 하고

습기를 조건으로 하여 그 두가지로 성장하듯이.

이와 같이 존재의 다발과 구성요소 또는 이들 감각영역들은

원인을 연유하여 생겨났다가 원인이 소멸하면 사라져버리네."

“Nayidam attakatam bimbam, nayidam parakatam agham;

hetum paticca sambhūtam, hetubhangā nirujjhati.

“Yathā aññataram bījam, khette vuttam virūhati;

pathavīrasañcāgamma, sinehañca tadūbhayam.

“Evam khandhā ca dhātuyo, cha ca āyatanā ime;

hetum paticca sambhūtā, hetubhangā nirujjhare”ti.

註.

- 존재의 다발... 감각영역 : 존재의 다발(khandha)은 오온, 구성요소(dhatu)는 18계,

감각영역(ayatanani)은 육입처를 말한다.

10) 바지라 Vajirā

잡아함경 1202. 시라경(尸羅經)

[빠삐만] "누가 이 뭇삶을 만들었는가? 뭇삶을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뭇삶은 어디에서 생겨나고 뭇삶은 어디에서 사라지는가?"

“Kenāyam pakato satto, kuvam sattassa kārako;

kuvam satto samuppanno, kuvam satto nirujjhatī”ti.

[바지라] "그대는 왜 뭇삶이라고 집착하는가? 악마여, 그것은 그대의 사견일 뿐.

단순한 행위(業)의 집적인데 여기서 뭇삶을 찾지 못하네.

마치 모든 부속이 모여서 수레라는 명칭이 있듯이.

이와 같이 존재의 다발에 의해 뭇삶이란 거짓이름이 있다네.

괴로움만이 생겨나고 괴로움만이 머물다가 사라진다.

괴로움밖에 생겨나지 않으며 괴로움밖에 사라지지 않는다."

“Kim nu sattoti paccesi, māra dit*t*higatam nu te;

suddhasankhārapuñjoyam, nayidha sattupalabbhati.

“Yathā hi angasambhārā, hoti saddo ratho iti;

evam khandhesu santesu, hoti sattoti sammuti.

“Dukkhameva hi sambhoti, dukkham titthati veti ca;

nāññatra dukkhā sambhoti, nāññam dukkhā nirujjhatī”ti.

註.

- 이 시는 밀란다왕문경(milindapanha)에도 등장하는 아주 잘 알려진 가르침이다.

Q.- R. 잡아함경 815. 포살경(布薩經)


잡아함경 815 포살경은 부처님과 장로비구들과 신참비구들을 포함한 초기승단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경전으로 매우 감동적이다. 특히 이 경에는 초기불교의 다양한 수행법들이 보여지고 있으며, 그 모든 수행의 출발로서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 챙김(입출식념, 안나반나념)을 마지막에 설하시고 있다. 이 경의 빠알리 대응경전은 대념처경 염신경과 더불어 유명한 맛지마니까야 118번째 경인 "들숨 날숨에 마음 챙기는 경(m118.anapanasatisutta)" 이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머무시면서 여름 안거(安居)를 지내셨다.

1. 승랍이 적은 비구들


그 때 많은 상좌(上座) 성문들은 세존의 좌우에 있는 나무 밑 굴 속에서 안거하고 있었다. 그 때 승랍이 적은 비구들이 많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부처님께서 여러 승랍이 적은 비구들을 위해 갖가지로 설법하시어 가르쳐 보이시어 그들을 기쁘게 해주셨고, 가르쳐 보이시어 그들을 기쁘게 해주시고 나서는 잠자코 계셨다. 그러자 여러 승랍이 적은 비굴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났다.

여러 승랍이 적은 비구들은 상좌(上座)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그 상좌 비구들의 발에 예배하고 한쪽에 앉았다. 그 때 모든 상좌 비구들이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이 여러 승랍이 적은 비구들을 받아들여 보살펴 주어야 한다. 혹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한 사람이 둘, 셋, 여러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받아들여 보살펴 주되, 혹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한 사람이 둘, 셋, 여러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혹 어떤 상좌 비구는 60명까지 받아들이기도 하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보름날 포살(布薩)할 시기가 되어 대중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관찰해 보시고 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나는 지금 비구들이 온갖 바른 일을 행하는 것을 기뻐한다. 그러니 비구들아, 부지런히 정진해야 한다."


2. 인간세상을 유행하던 비구들


이 사위국에서 만가저월(滿迦低月)8)에 여러 곳의 인간 세상을 유행하던 비구들이 세존께서 사위국에서 안거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만가저월의 기한을 지내고 가사 짓기를 마친 뒤,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사위국 인간 세상을 유행하였다. 사위국에 점점 가까이 이르러, 가사와 발우를 챙겨두고 발을 씻은 뒤에, 세존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가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나서 한쪽으로 물러앉았다.

그 때 세존께서 인간 세상을 유행하던 비구들을 위해 갖가지 법을 설하시어, 가르쳐 보이시고 기쁘게 해주신 뒤에 잠자코 계셨다. 그 때 인간 세상을 유행하던 비구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기뻐하고 따라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고 떠나갔다.

그들은 상좌 비구들의 처소를 찾아가 그 발에 머리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에 물러앉았다. 그 때 상좌 비구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였다.

'우리들은 마땅히 이 인간 세상을 유행하는 비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혹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하고, 혹은 한 사람이 둘, 셋……(내지)……여러 사람을 받아들이기도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곧 그들을 받아 들였는데, 혹은 한 사람이 한 사람을 받아 들이기도 하고, 혹은 한 사람이 둘, 셋,……(내지)……60 명까지 받아들인 사람도 있었다.

저 상좌 비구들은 인간 세상을 유행하던 여러 비구들을 받아들여 훈계하고 가르쳐 앞뒤의 차례를 잘 알았다.

3. 부처님이 포살 때 여러 비구들이 이룬 것을 말하시며 칭찬함.


그 때 세존께서는 보름날 포살할 시기가 되어 대중들 앞에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을 관찰해 보시고 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모든 비구들아, 나는 지금 그대들이 행하는 바른 일을 기뻐하고 그대들이 행하는 바른 일을 즐거워한다. 비구들아, 과거 여러 부처님에게도 비구들이 있어 지금 너희들처럼 바른 일을 행하였고, 미래 여러 부처님들에게도 마땅히 이와 같은 비구들이 있어 지금 너희들처럼 바른 일을 행할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 이 대중 속의 여러 장로(長老) 비구들로서 어떤 이는 첫 번째 선정을 얻기도 하고, 두 번째 선정·세 번째 선정·네 번째 선정과, 자애로움·불쌍히 여김·기뻐함· 평정과, 공입처(空入處), 식입처(識入處), 무소유입처(無所有入處), 비상비비상입처(非想非非想入處)를 얻어 머물기도 한다."

所以者何。今此衆中諸長老比丘。有得初禪․第二禪․第三禪․第四禪。慈․悲․喜․捨。空入處․識入處․無所有入處․非想非非想處具足住。


"어떤 비구는 세 가지 결박[結]이 다 끊어져서 수다원과를 얻어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으며, 결정코 곧바로 삼보리(三菩提)로 향하며 일곱 번 천상과 인간 세계를 오가면서 태어났다가 결국에는 괴로움의 끝[苦邊]을 다하게 되는 이도 있다. 어떤 비구는 세 가지 결박이 다 끊어지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과를 얻고, 어떤 비구는 5 하분결이 다 끊어져서 아나함과를 얻고 생반열반(生般涅槃)9)에 들어 다시는 이 세간에 환생하지 않는다. 어떤 비구는 한량없는 신통 경계인, 천이, 타심지, 숙명지, 생사지, 누진지를 얻은 이도 있다."

有比丘三結盡。得須陀洹。不墮惡趣法。決定正向三菩提。七有天人往生。究竟苦邊。有比丘三結盡。貪․恚․癡薄。得斯陀含。有比丘五下分結盡。得阿那含。生般涅槃。不復還生此世。有比丘得無量神通境界。天耳․他心智․宿命智․生死智․漏盡智。

"어떤 비구는 부정관(不淨觀)을 닦아 탐욕을 끊고 자애로운 마음[慈心]을 닦아 성냄을 끊으며, 무상한 것이라는 생각을 닦아 아만(我慢)을 끊고 안나반나념(安那般那念)을 닦아 거친 생각[覺想]을 끊었기 때문이니라."

有比丘修不淨觀。斷貪欲。修慈心。斷瞋恚。修無常想。斷我慢。修安那般那念。斷覺想。

"비구들아, 어떻게 안나반나념을 닦아 거친 생각을 끊는가? 비구는 촌락을 의지해 살면서....(내지)....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여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한 것을 그대로 배워야 한다. 이것을 안나반나념을 닦아 거친 생각을 끊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云何。比丘。修安那般那念斷覺想。是比丘依止聚落。乃至觀滅出息如觀滅出息學。是名修安那般那念斷覺想。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안나반나념의 내용

위의 경문 중에서 마지막 부분의 ....(내지)....에 속하는 내용은 부처님이 안나반나념을 설하는 관용구로 여러경들에서 반복되어 설해지고 있다. 잡아함경 803. 안나반나념경(安那般那念經) ② 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아 적어본다.

"어떤 것을 안나반나념을 닦아 익히되 많이 닦아 익히고 나면 몸과 마음이 그쳐 쉬게 되고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으며, 고요하고 순일하여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된다고 하는가?"

"만일 그 비구가 촌락(村落)에 의지해 살거나 성읍(城邑)에 머물러 살면서, 이른 아침에 가사를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할 때에는, 그 몸을 잘 단속하고 여러 감관의 문[根門]을 지키고 마음을 잘 매어두어야 한다."

"걸식을 마치고 나서는 머물던 곳으로 돌아와 가사와 발우를 챙겨두고 발을 씻은 다음, 혹 숲 속이나 고요한 방이나 나무 아래든지, 혹은 텅 빈 노지(露地)에서 몸을 단정히 하고 바로 앉아야 한다. 그리고 생각[念]을 눈 앞에 매어두고, 세상의 탐욕과 애정을 끊고 욕심을 여의어 청정하게 하고, 성냄[瞋?], 잠[睡眠], 들뜸[掉悔], 의심[疑]을 끊어, 모든 의혹에서 벗어나고 온갖 착한 법에 대해 마음으로 확고히 증득하면, 지혜의 힘을 약하게 하고 장애거리가 되어 열반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5개(蓋)의 번뇌심(煩惱心)을 멀리 여의게 될 것이다."

"그러니 숨을 들이쉬고[內息:入息] 있다고 생각하고는 생각을 잡아매어 잘 배우고, 숨을 내쉬고[外息:出息] 있다고 생각하고는 생각을 잡아매어 잘 배워야 한다. 또 긴 숨인지 짧은 숨인지와, 온 몸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숨을 들이쉬고 있다고 잘 배우고, 온 몸으로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한다."

"또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들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하며,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는 온 몸으로 행하면서 숨을 내쉬고 있다고 잘 배워야 한다.2)"

"또 기쁨[喜]을 깨달아 알고 즐거움[樂]을 깨달아 알며, 마음이 행하는 것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우며,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행할 때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

覺知喜。覺知樂。覺知身行。覺知心行息入息。於覺知心行息入息善學。覺知心行息出息。於覺知心行息出息善學。

"또 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의 기쁨을 깨달아 알며,

마음의 안정됨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들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우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알고,

마음이 해탈하여 숨을 내쉬고 있음을 깨달아 아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한다.4)"

覺知心。覺知心悅。覺知心定。覺知心解脫入息。於覺知心解脫入息善學。覺知心解脫出息。於覺知心解脫出息善學。


"무상함[無常]을 관찰하고

사라짐[斷]을 관찰하며,

욕심 없음[無欲]을 관찰하고

들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며, 들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잘 배우고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며, 내쉬는 숨이 멸함을 관찰하는 것에 대해 잘 배워야 하나니,"

觀察無常。觀察斷。觀察無欲。觀察滅入息。於觀察滅入息善學。觀察滅出息。於觀察滅出息善學。

"이것을 안나반나념을 닦으면 몸이 그쳐 쉬게 되고[止息] 마음이 그쳐 쉬게 되며,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어서, 몸과 마음이 그쳐 쉬게 되고 거친 생각도 있고 세밀한 생각도 있으며, 고요하고 순일하여 분명한 생각을 닦아 익혀 만족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니라."

是名修安那般那念。身止息․心止息。有覺有觀。寂滅․純一。明分想修習滿足。

잡아함경 639. 포살경(布薩經)

雜阿含經卷第二十四

S.47.14.ukkacela


잡아함경 639. 포살경은 사리불 존자와 목건련 존자가 열반한지 얼마 후의 일을 담고 있다. 부처님이 보름날 포살을 맞아 비구들에게 두 상수 제자의 열반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마투라국(摩偸羅國) 발타라(跋陀羅)강 가에 있는 산개암라(傘蓋菴羅) 숲에 계셨는데, 존자 사리불과 목건련이 열반하고서 오래지 않은 때였다.

그 때 세존께서는 그 달 보름날 포살(布薩) 때 대중 앞에서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세존께서는 대중의 모임을 관찰하신 뒤에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대중을 관찰해보니 텅 빈 것처럼 보이는구나. 그것은 사리불과 대목건련이 반열반(般涅槃)하였기 때문이다. 나의 성문(聲門)들 중에 오직 이 두 사람만이 능히 잘 설법하고 훈계하고 가르치고 변설(辨說)하기를 만족스럽게 행했었다."

爾時。世尊月十五日布薩時。於大衆前敷座而坐。爾時。世尊觀察衆會已。告諸比丘。我觀大衆。見已虛空。以舍利弗.大目揵連般涅槃故。我聲聞唯此二人善能說法。敎誡.敎授。辯說滿足。

"두 종류의 재물이 있으니 금전이란 재물과 법이란 재물이다. 금전이란 재물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구했었고, 법이란 재물은 사리불과 목건련으로부터 구했었지만, 여래는 이미 세간[世]23)의 재물과 법의 재물에서 떠났느니라."

"그러나 너희들은 사리불과 목건련이 열반하였다고 하여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비유하면 큰 나무의 뿌리, 줄기, 가지, 잎, 꽃, 열매가 무성한 데서 큰 가지가 먼저 부러지는 것과 같고, 보배산에서 큰 바위가 먼저 무너지는 것처럼, 여래의 대중 가운데서 사리불과 목건련이라는 두 대성문(大聲聞)이 먼저 반열반한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너희들은 근심하거나 괴로워하지 말라. 생긴 법, 일어난 법, 지어진 법, 만든 법, 무너지는 법으로서 어떻게 닳아 없어지지 않을 것이 있겠는가? 아무리 무너지지 않게 하려 하여도 그것은 있을 수 없느니라. 내가 전에 이미 말한 것처럼, 사랑스러운 어떤 것도 모두 떠나고 흩어지기 마련이니, 나도 오래지 않아 가버리고 말 것이다."

是故。比丘。汝等勿生愁憂苦惱。何有生法.起法.作法.爲法.壞敗之法而不磨滅。欲令不壞。無有是處。我先已說。一切可愛之物皆歸離散。我今不久亦當過去。

"그러므로 너희들은 '자기[自]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 고 한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른바 안의 몸을 몸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지혜(正知, 알아차림)와 바른 기억(正念, 마음챙김)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항복 받아야 한다."

"그와 같이 바깥의 몸과 안팎의 몸과, 느낌, 마음도 마찬가지며, 법을 법 그대로 관찰하는 생각에 머물러 방편으로 꾸준히 힘써, 바른 지혜와 바른 기억으로 세간의 탐욕과 근심을 항복 받아야 하느니라. 이것이 '자기를 섬으로 삼아 자기를 의지하고, 법(法)을 섬으로 삼아 법을 의지하며, 다른 것을 섬으로 삼지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라."

是故汝等當知。自洲以自依.法洲以法依.不異洲不異依。謂內身身觀念住。精勤方便。正智正念。調伏世間貪憂。如是外身.內外身。受.心.法法觀念住。精勤方便。正智正念。調伏世間貪憂。是名自洲以自依。法洲以法依。不異洲不異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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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멸죄호제동자다라니경

"바두미바 두미제비 해니해니 해니제리 제라제려 후라후려 유려유라

유려바라 바려문제 진질빈질 반서말질 지나가리 사바하"

금강력사 주(呪)

"다디야타 전달리 전달라비제 전달라마 훔 전달라발제 전달라불리 전달

라사이 전달라지리 전다페양 전도루 전달라바라자 전달라물달리 전달라바디이 전달라바양 전다라카기 전달라노기 사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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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영지(靈知)의 일부 경」(A2:3:1)

사마타와 위빳사나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211페이지에 실린 짧은 경의 전문이다.

1. "비구들이여, 두 가지 법은 영지(靈知)의 일부이다. 무엇이 둘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이다."

"비구들이여, 사마타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마음이 개발된다. 마음이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욕망이 제거된다."

"비구들이여, 위빳사나를 닦으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통찰지가 개발된다. 통찰지가 개발되면 어떤 이로움을 경험하는가? 무명이 제거된다."

2. "탐욕에 오염된 마음은 해탈하지 못하고, 무명에 오염된 통찰지는 개발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탐욕이 제거되어 마음의 해탈[心解脫]이 있고, 무명이 제거되어 통찰지를 통한 해탈[ 慧解脫]이 있다."

참조: 빠알리 원문입니다.

1.Dve me, bhikkhave, dhammā vijjābhāgiyā. Katame dve? Samatho ca vipassanā ca.

Samatho, bhikkhave, bhāvito kamattha manubhoti? Cittam bhāvīyati. Cittam bhāvitam kamatthamanubhoti? Yo rāgo so pahīyati.

Vipassanā, bhikkhave, bhāvitā kamatthamanubhoti? Paññā bhāvīyati. Paññā bhāvitā kamatthamanubhoti? Yā avijjā sā pahīyati.

2.Rāgupakkilittham vā, bhikkhave, cittam na vimuccati, avijjupakkilitthā vā paññā bhāvīyati. Iti kho, bhikkhave, rāgavirāgā cetovimutti, avijjāvirāgā paññāvimuttī”ti.

은혜에 보답하지 못함 경 (A2:4:2)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214페이지 은혜에 보답하지 못함 경 (A2:4:2)

1. "비구들이여, 두 사람의 은혜에 대해서는 쉽게 보답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한다. 어떤 사람이 둘인가? 부모님이다."


"비구들이여, 수명이 백 년인 때에 태어나 백 년 동안 살면서 내내 한쪽 어깨에 어머니를 태우고, 다른 한쪽 어깨에 아버지를 태워 드리더라도, 향을 뿌리고, 안마를 해드리고, 목욕시켜 드리고, 몸을 문질러 드리면서 봉양을 하더라도, 대소변을 받아 내더라도, 그들은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그의 부모님을 비록 칠보가 가득한 큰 대지를 통치하는 최고의 왕위에 모시더라도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부모는 참으로 자식들에게 많은 것을 하나니, 자식들을 키워주고, 먹여주고, 이 세상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은 신심이 없는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삼보에] 신심을 가지게 하고, 신심에 머물게 하고,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계를 파한 부모로 하여근 스스로 계를 가지게 하고, 계에 머물게 하고, 계를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인색한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보시하게 하고, 보시하는 것에 머물게 하고, 보시하는 것을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통찰지가 없는 부모로 하여금 스스로 통찰지를 가지게 하고, 통찰지에 머물게 하고, 통찰지를 확고하게 굳히도록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참으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다."


A. 여래의 제자들 중 으뜸 품

앙굿따라니까야 제1권 112페이지 여래의 제자들 중 으뜸

참고: 부처님의 탁월한 제자들로 10대제자들이 유명하다. 이러한 10대제자는 대승경전에서 처음 정형화 되었는데 모든 분이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훌륭하신 분들이다. 초기불경엔 부처님이 제자들을 칭찬하신 예가 매우 많다. 특히 앙굿따라 니까야에 실린 제자들 품이나 한역 증일아함경의 청신사품 청신녀품에선 매우 많은 제자들을 부처님이 직접 칭찬하신다. 이 [여래의 제자들중 으뜸]품과 [청신사]품 [청신녀]품을 읽다보면 우리 부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더욱 생생하게 알수 있다.

(1) 첫 번째

1-1. "비구들이여, 나의 구참(久參)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안냐꼰단냐가 으뜸이다."

1-2. "큰 통찰지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사리뿟따(사리불)가 으뜸이다."

1-3. "신통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마하 목갈라나(대목련)가 으뜸이다."

1-4. "두타행을 하는 자들 가운데서 마하 깟사빠(대가섭)가 으뜸이다."

1-5. "천안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누룻다(아나율)가 으뜸이다."

1-7. "감미로운 목소리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라꾼따까(키 작은) 밧디야가 으뜸이다."

1-8. "사자후를 토하는 자들 가운데서 삔돌라(식탐 많았던) 바라드와자가 으뜸이다 ."

1-9.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만따니의 아들 뿐나(부루나)가 으뜸이다."

1-10. "간략하게 설한 것에 대해 상세하게 그 뜻을 설명하는 자들 가운데서 마하 깟짜나(대가전연)가 으뜸이다."

(2) 두 번째

2-1. "비구들이여, 마음으로 만들어진 몸을 창조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쭐라빤타까가 으뜸이다."

2-2. "마음의 전개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쭐라빤타까가 으뜸이다."

2-3. "인식의 전개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마하 빤타까가 으뜸이다."

2-4. "평화롭게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수부띠(수보리)가 으뜸이다."

2-5. "공양받을 만한 자들 가운데서 수부띠가 으뜸이다."

2-6. "숲 속에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아카시아 숲에 머무는 레와따가 으뜸이다."

2-7. "선(禪)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깡카레와따가 으뜸이다."

2-8. "열심히 정진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나 꼴리위사가 으뜸이다."

2-9. "감미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나 꾸띠깐나가 으뜸이다."

2-10. "공양을 얻을 자들 가운데서 시왈리가 으뜸이다."

2-11. "신심이 깊은 자들 가운데서 왁깔리가 으뜸이다."

(3) 세 번째

3-1. "비구들이여, 배우기를 좋아하는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라훌라가 으뜸이다."

3-2. "믿음으로 출가한 자들 가운데서 랏타빨라가 으뜸이다."

3-3. "가장 처음으로 식권을 받은 자들 가운데서 꾼다다나가 으뜸이다."

3-4. "영감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왕기사가 으뜸이다."

3-5. "모든 면에서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왕간따의 아들 우빠세나가 으뜸이다."

3-6. "거처를 배당하는 자들 가운데서 말라의 후예 답바가 으뜸이다."

3-7. "신들을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하는 자들 가운데서 삘린다왓차가 으뜸이다."

3-8. "빠르게 최상의 지혜를 얻는 자들 가운데서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은 바히야가 으뜸이다."

3-9. "다양하게 설법하는 자들 가운데서 꾸마라깟싸빠가 으뜸이다."

3-10. "무애해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마하 꼿티까가 으뜸이다."

(4) 네 번째

4-1. "비구들이여, 많이 들은[多聞] 나의 비구 제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4-2. "마음챙김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4-3. "총명한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4-4. "활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4-5. "시자들 가운데서 아난다가 으뜸이다."

4-6. "큰 회중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우루웰라깟사빠가 으뜸이다."

4-7. "자기 가문에게 청정한 믿음을 가지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깔루다이가 으뜸이다."

4-8. "병 없이 [장수하는] 자들 가운데서 박꿀라가 으뜸이다."

4-9. "전생을 기억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비따가 으뜸이다."

4-10. "율을 호지하는 자들 가운데서 우빨리가 으뜸이다."

4-11. "비구니들을 교계하는 자들 가운데서 난다까가 으뜸이다."

4-12.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보호하는 자들 가운데서 난다가 으뜸이다."

4-13. "비구들을 교계하는 자들 가운데서 마하 깝삐나가 으뜸이다."

4-14. "불의 요소에 능숙한 자들 가운데서 사가따가 으뜸이다."

4-15. "[스승으로 하여금 법을 설할] 영감을 일으키게 하는 자들 가운데서 라다가 으뜸이다."

4-16. "남루한 옷을 입는 자들 가운데서 모가라자가 으뜸이다."

(5) 다섯 번째

5-1. "비구들이여, 나의 구참 비구니 제자들 가운데서 마하 빠자빠띠 고따미가 으뜸이다."

5-2. "큰 통찰지를 가진 자들 가운데서 케마가 으뜸이다."

5-3. "신통력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웁빨라완나가 으뜸이다."

5-4. "율을 호지하는 자들 가운데서 빠따짜라가 으뜸이다."

5-5.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담마딘나가 으뜸이다."

5-6. "선(禪)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난다가 으뜸이다."

5-7. "열심히 정진하는 자들 가운데서 소나가 으뜸이다."

5-8. "천안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사꿀라가 으뜸이다."

5-9. "빠르게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곱슬머리 밧다가 으뜸이다."

5-10. "전생을 기억하는 자들 가운데서 밧다 까삘라니가 으뜸이다."

5-11. "위대한 최상의 지혜(초월지)를 얻은 자들 가운데서 밧다 깟짜나가 으뜸이다."

5-12. "남루한 옷을 입는 자들 가운데서 끼사고따미가 으뜸이다."

5-13. "신심이 깊은 자들 가운데서 시갈라마따가 으뜸이다."

(6) 여섯 번째

6-1. "먼저 나의 가르침에 귀의한 남자 신도[淸信士] 제자들 가운데서 따빳수와 발리까 상인이 으뜸이다."

6-2. "보시자들 가운데서 수닷따 급고독 장자가 으뜸이다."

6-3. "법을 설하는 자들 가운데서 맛치까산다의 �따 장자가 으뜸이다."

6-4. "네 가지 섭수하는 행위[四攝事]로 회중을 잘 섭수하는 자들 가운데서 알라위의 핫타까가 으뜸이다."

6-5. "뛰어난 보시를 하는 자 가운데서 사꺄 족의 마하나마가 으뜸이다."

6-6. "마음에 흡족한 보시를 하는 자들 가운데서 웨살리의 욱가 장자가 으뜸이다."

6-7. "승가를 시봉하는 자들 가운데서 욱가따 장자가 으뜸이다."

6-8.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수라 암밧타가 으뜸이다."

6-9. "사람들을 신뢰하는 자들 가운데서 지와까 꼬마라밧짜가 으뜸이다."

6-10. "[나와] 친근한 자들 가운데서 나꿀라삐따 장자가 으뜸이다."

(7) 일곱 번째

7-1. "먼저 나의 가르침에 귀의한 여자 신도[淸信女] 제자들 가운데서 세나니의 딸 수자따가 으뜸이다."

7-2. "보시자들 가운데서 미가라마따(녹자모) 위사카가 으뜸이다."

7-3. "많은 들은 자[多聞]들 가운데서 쿳줏따라가 으뜸이다."

7-4. "자애가 가득한 마음으로 머무는 자들 가운데서 사마와띠가 으뜸이다."

7-5. "선(禪)을 얻은 자들 가운데서 웃따라 난다마따(난다의 어머니)가 으뜸이다."

7-6. "뛰어난 보시를 하는 자들 가운데서 꼴리야의 딸 숩빠와사가 으뜸이다."

7-7. "병자를 돌보는 자들 가운데서 숩삐야가 으뜸이다."

7-8.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까띠야니가 으뜸이다."

7-9. "[나와] 친근한 자들 가운데서 나꿀라마따가 으뜸이다."

7-10. "소문을 통해서도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는 자들 가운데서 꾸라라가라의 깔리가 으뜸이다."

T. A3:31.범천과 함께 함 경

앙굿따라 니까야 제1권 335페이지 범천과 함께함 경 (A3:31.Sabrahmaka)

1. "비구들이여, 아들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가문은 범천과 함께하는 가문이다.

아들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가문은 최초의 스승과 함께 사는 가문이다.

아들들이 집에서 부모를 공경하는 그런 가문은 공양받아 마땅한 자와 함께 사는 가문이다.

비구들이여, 여기서 범천이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이전의 스승이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공양물을 보시 받을만한 자이란 부모를 두고 한 말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부모는 참으로 자식들 에게 많은 것을 하나니, 자식들을 키워주고, 먹여주고, 이 세상을 가르쳐주기 때문이다."

2. "아들들에게 부모는 범천이요 최초의 스승이요

공양물을 받을만한 자이다. 그분들은 자식들에게 항상 연민을 가진다.

그러므로 현자들은 음식, 마실 것, 의복, 침상을 구비하고

문질러드리고 목욕시켜드리고 발 씻어드려

그분들께 귀의하고 존경해야 하리.

이렇게 부모를 잘 봉양하는 사람들

이생에서 현자들의 찬탄을 받고

다음 생에는 천상에서 기쁨 누리리."

1. 4:61.합리적인 행위 경

앙굿따라 니까야 제2권 184페이지 합리적인 행위 경(A4:61)

1. 그때 급고독 장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급고독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장자여, 네 가지 법들이 있으니, 그것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무엇이 넷인가?"

"나에게 법답게 재물이 생기기를! 이것이 첫 번째로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법답게 재물을 얻은 뒤, 친척들과 스승들과 더불어 명성이 나에게 오기를! 이것이 두 번째로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법답게 재물을 얻고, 친척들과 스승들과 더불어 명성을 얻은 뒤, 나는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지게 되기를! 이것이 세 번째로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법답게 재물을 얻고, 친척들과 스승들과 더불어 명성을 얻고, 오래 살고 긴 수명을 가진 뒤,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 [善處], 천상 세계에 태어나기를 ! 이것이 네 번째로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장자여, 이러한 네 가지 법들이 있으니, 이것은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것이다."

3. "장자여, 이처럼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지만, 세상에서 얻기 어려운 네 가지 법들을 얻기 위해서는 네 가지 조건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믿음을 구족하고, 계를 구족하고, 보시에 대해 관대함을 구족하고, 통찰지를 구족하는 것이다."

4.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믿음을 구족함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여래의 깨달음에 믿음을 가진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 [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 [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 [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 [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 [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 [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 [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 [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 [佛]이시며, 세존 (世尊)이시다.' 라고, 장자여, 이를 일러 믿음을 구족함이라 한다."

5.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계를 구족함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삿된 음행을 멀리 여의고, 거짓말하는 것을 멀리 여의고,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을 멀리 여읜다. 장자여, 이를 일러 계를 구족함이라 한다."

6.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보시에 대해 관대함을 구족함인가?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인색함의 때가 없는 마음으로 재가에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장자여, 이를 일러 보시에 대해 관대함을 구족함이라 한다."

7. "장자여, 그러면 어떤 것이 통찰지를 구족함인가?"

"장자여, 여기 어떤 이는 욕심스러움이라는 강력한 탐욕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물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은 흩어지게 된다."

"장자여, 악의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물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 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은 흩어지게 된다."

"해태와 혼침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물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은 흩어지게 된다."

"들뜸과 후회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물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은 흩어지게 된다."

"의심에 지배된 마음으로 머물면서,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게 된다.장자여,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면, 그의 명성과 행복은 흩어진다. "

8. "장자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욕심스러움이라는 강력한 탐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탐욕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악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악의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해태와 혼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해태와 혼침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들뜸과 후회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들뜸과 후회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의심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의심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다.

"장자여, 성스러운 제자가 '욕심스러움이라는 강력한 탐욕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탐욕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악의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악의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해태와 혼침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해태와 혼침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들뜸과 후회가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들뜸과 후회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의심이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알고서, 의심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다."

이와 같이 탐욕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악의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해태와 혼침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들뜸과 후회인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고,

의심이라는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했기 때문에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큰 통찰지를 가졌다, 광활한 통찰지를 가졌다. 분명한 시계(視界)를 가졌다, 통찰지를 구족했다고 하나니, 이를 일러 통찰지를 구족함이라 한다.

9. "장자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네 가지 일을 한다. 무엇이 넷인가 ?"

10.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키도록 한다. 부모를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키도록 한다. 아들과 아내와 하인과 일꾼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키도록 한다. 친구와 친척들을 행복하게 하고, 만족하게 하고, 바르게 행복을 지키도록 한다."

"장자여, 이것이 [ 네 가지 가운데서] 첫 번째이니, 그가 합리적이고 알맞게 재물로써 행한 것이다."

11. "다시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모든 재난, 즉 불과 물과 왕과 도둑과 적과 [나쁜 마음을 가진] 상속인 등의 여러 가지 재난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 그는 자신을 안전하게 지킨다."

"장자여, 이것이 두 번째이니, 그가 합리적이고 알맞게 재물로써 행한 것이다."

12. "다시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나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다섯 가지 헌공을 하나니, 그것은 친지에게 하는 헌공, 손님에게 하는 헌공, 조상신들에게 하는 헌공, 황에게 하는 헌공(세금), 신에게 하는 헌공이다."

"장자여, 이것이 세 번째이니, 그가 합리적이고 알맞게 재물로써 행한 것이다."

13. " 장자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사문 바라문들에게 정성을 다한 보시를 한다. 그러한 사문 바라문들은 교만과 방일함을 금하고, 인욕과 온화함에 헌신하여 살면서, 각자 자신을 길들이고, 각자 자신을 제어하고, 각자 자신을 완전한 열반에 들게 한다. 이러한 사문 바라문들에게 하는 보시는 고귀한 결말을 가져다 주고, 신성한 결말을 가져다 주며, 행복을 익게 하고, 천상에 태어나게 한다."

"장자여, 이것이 네 번째이니, 그가 합리적이고 알맞게 재물로써 행한 것이다."

14. "장자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열정적인 노력으로 얻었고, 팔의 힘으로 모았고, 땀으로 획득했으며, 법답고, 법에 따라서 얻은 재물로 이러한 네 가지 일을 한다."

"장자여,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일 이외에 다른 일로 재물을 쓰는 자를 두고 합리적이지 않고, 알맞지 않게 재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장자여, 누구든지 이러한 네 가지 합리적인 행위에 의해서 재물을 쓰는 자를 두고 그가 합리적이고 알맞게 재물을 사용했다고 한다."

15. '나는 재물을 수용하였고 나를 의지하는 자들을 부양하였고 재난을 건넜다. 높은 존재에 태어나는 데 도움이 되는 보시를 하였고 다섯 가지 공물을 베풀었다. 계를 구족하고 제어되고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을 섬겼다.'

현명한 재가자는 어떤 목적을 위해 재물을 원하나니 나는 그 목적을 이루었고 후회하지 않는 행을 하였네.' 인간은 이런 것을 기억하면서 성스러운 법에 굳게 서나니 여기 [이 세상에서는] 칭송을 받고 죽은 뒤에는 천상에서 기쁨 누리리.

U.「정신경」(淨信經, Pāsādika Sutta, D29) - 청정한 믿음을 내게 하는 가르침


* 아래의 본문에서 본서란 부처님이 길게 설하신 말씀을 모은 [디가 니까야]를 말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참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군사부일체라 하였으며 인도 바라문 전통에서도 스승은 부모 이상으로 중시하였다. 그러면 이러한 스승과 제자를 이어주는 연결 고리는 무엇일까? 만일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속된 말로 파투(破鬪)가 난다면 그 잘못의 원인은 무엇이며,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어디에 있는가?

부처님 후반기에 니간타의 지도자였던 나따뿟따가 임종하였다. 그가 임종하자 니간타는 극심한 분열을 맞게 되었다. 이건 불교 교단에서도 타산지석이 될 중요한 사건이었다. 특히 데와닷다의 분열을 경험한 뒤라서 더욱더 그러했을 것이다. 그래서 본서(디가 니까야)「합송경」(D33)은 이러한 소식을 접한 사리뿟따 존자가 대중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법수별로 정리해서 설하는 것이다.

니간타의 분열에 관한 소식을 쭌다 사미로부터 전해들은 세존께서는 본「정신경」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엄밀하게 살펴보시면서 그것을 불교 교단에 적용하여 말씀하시고 당부하신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가 당신의 가르침과 불교 교단에 대해서 어떠한 평가를 하고 계신가하는 점이다.

부처님께서는 스스로가 한 점 오점이 없는 스승이라는 확실한 입지를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계시며, 아울러 부처님뿐만이 아니라 불교 교단에는 여러 단계에 머물고 있는 수많은 제자들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훌륭한 교단이 갖추어야 할 구비조건을 다 갖추었다고 단언하신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불법에 대한 여러 가지를 길게 말씀하신 뒤,

"쭌다여, 이러한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들과 이러한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들을 제거하고 뛰어넘기 위해서 나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고 천명하였다."

라고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을 당부하시면서 긴 말씀을 마치신다.(§40)

네 가지 마음챙기는 공부는 부처님 말씀의 핵심이다. 니간타 나따뿟따의 임종에 대한 소식을 듣고 설하기 시작하신 길고 간곡하신 부처님의 말씀은 마음챙김의 확립으로 이제 귀결이 되고 있다.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몸, 느낌, 마음, 심리현상[身, 受, 心, 法]에 대해서 마음 챙김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에 속거나 계박(繫縛)되는 것을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부처님께서는 천명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본경의 제목인 청정한 믿음은 마음 챙기는 공부를 할 때 실현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본서의 도처에서 마음 챙김이야말로 가장 요긴한 부처님의 말씀임을 보았다. 특히 본서 제2권「대반열반경」에서는(D16 §2.12, §2.26 등) 네 가지 마음 챙김의 확립이야말로 자귀의, 법귀의, 자등명, 법등명을 실천하는 것임을 천명하고 계시며,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인 불방일(appamāda)도 주석서에서는 마음 챙김의 현전(sati-avippāvasa) 혹은 지혜를 수반한 마음 챙김으로 해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본서 제2권「대반열반경」(D16) §6.7의 주해를 참조할 것)

그러므로 아지랑이와도 같은 자아와 세상에 대한 존재론적인 실체를 찾아 귀중한 시간을 다 허비할 것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몸, 느낌, 마음, 법으로 해체해서 꿰뚫어 보는 마음챙김을 매순간 닦아야 할 것이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부처님 제자라 할 것이며, 부처님께 대한 청정한 믿음을 낸 사람이라 할 것이다.

「�타빠다 경」(Pot*t*hapāda Sutta, D9)


인간의 정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인간을 설명하시면서 심리현상들[行, 상카라] 가운데서 인식[想, 산냐]을 따로 독립시켜 오온에다 따로 인식의 항목[想蘊]을 넣으셨다. 그러면 도대체 이러한 인식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 인식이 있다면 인식하는 주체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아니면 적어도 영원한 인식이 있어서 그것을 자아라고 불러야 하지 않는가?

이런 미묘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 바로 본경이다. 본경에서는 이러한 인식과 인식을 하는 자는 도대체 어떻게 해서 존재하는가를 두고 �타빠다라는 유행승과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고 심도 깊은 대화가 전개된다. 역자는 본서(디가 니까야) 제1권의 중요한 경 세 가지만을 들라면 주저하지 않고「범망경」(D1)과「사문과경」(D2)과 본경을 들고 싶다.

본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혀주신다.


① 인식은 수행의 정도에 따라 바뀐다.
② 무소유처가 인식의 구경이다.
③ 인식의 완전한 소멸도 가능하다. 그것을 상수멸이라 한다.
④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식은 그것이 아무리 미묘하고 섬세하다 하더라도 존재론적 실체인 자아가 아니다.
⑤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상정하든 그것은 바뀔 수밖에 없다. 존재란 흐름 자체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유가 응유(curd)로, 생 버터로, 정제된 버터(ghee)로, 최상의 버터[醍醐]로 바뀌어 가는 것과 같다. 자아라는 것은 흐름의 특정한 기간의 특정한 상태를 인습적으로 이름붙인 것일 뿐 고정불변의 실체는 없다.

이처럼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단순히 대상을 무엇이라고 아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은 매순간 촐랑대는 그런 종류의 인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행을 통해서 실현되는 삼매의 경지 혹은 경계에서 드러나는 고상한 인식(sukhuma-sannā)을 말하고, 이는 사문들이 삼매 수행을 통해서 실현하고자 하는 일종의 이념이나 이상향 등을 나타내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본경에서 말하는 인식[想, 산냐]은 자아라는 인식[我相], 중생이라는 인식[衆生相], 영혼이라는 인식[壽者相], 개아(個我)라는 인식[人相]으로 대표되는 금강경의 4상(相, 想, 산냐)과 일맥상통한다.

본경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이처럼 '존재론적 실체, 즉 자아란 결코 없다.' 는 것이다. 그러나 세존의 고구정녕하신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타빠다는 안타깝게도 계속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고 그것을 세존께 질문한다.

본경은 무언가 궁극적 실재를 상정하는 그런 관념과 관심을 버리지 못하는 한 결코 부처님의 메시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것은 현재 우리 불교 수행자들도 깊이 새겨볼 말씀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름만 불교를 하고 있지 어쩌면 대아, 진아, 주인공, 불성, 여래장이라는 존재론적인 실재를 상정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그것을 깨치고 그것과 하나 되거나, 아니면 그것의 은총과 광명으로 살려는 발상을 굳게 움켜쥐고 놓지 못하고 있지나 않는가? 참으로 이런 다른 발상을 가지고 있다면 그는 부처님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수행, 다른 스승, 다른 가르침을 불교라는 이름으로 거머쥐고 있는 것이리라. 그런 자는 부처님의 고구정녕한 메시지를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타빠다는 세존의 말씀을 공감하고 세존을 존경하였기에 세존의 신도는 되었지만 자아라는 존재론적인 단정에 대한 집착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세존 문하로 출가하지는 못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본서 제 8 경의 나체 수행자 깟사빠와 대조가 된다. 깟사빠는 계, 정, 혜 삼학의 길이야말로 사문이 닦아야 할 본업이라는 세존의 말씀을 완전히 이해해서, 고행이야말로 사문의 본업이라는 그의 견해를 버리고 세존의 문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

그러나 본경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따는 자아와 세상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관심이 괴로움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해탈․열반의 실현과는 아무 상관이 없음을 분명히 파악하고 부처님 문하에 여덟 번째로 출가를 결심한다. 그는 이전에 일곱 번이나 출가와 환속을 거듭했지만, 본경을 통해서 부처님의 이와 같은 심심미묘한 가르침을 정확히 파악하였기에 다시 여덟 번째로 출가를 감행하여 다시는 환속하지 않았고 아라한이 되었다. 존재론적인 가설을 끝까지 버리지 못했던 유행승 �타빠다와는 큰 대조를 이룬다.


2. 정사유경(正思惟經)


여기서 하신 말씀 역시 제타 동산에서 많은 비구들에게 설법하신 것으로 1장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는 그대로의 반복입니다. 다만 1장에서는 세상만사가 뜬구름이며 아침이슬 같다는 사실을 잘 이해(인식)하라고 강조하셨는데, 다만 여기서는 "잘 이해하시오" 가 아니라 "잘 생각하시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즉 1 장에서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셨다면, 여기서는 세상에 대한 올바른 생각은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생활 속에서도 바른마음, 바른생각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의 도덕책 이름도 "바른생활" 이였던 것이 기억납니다. 바른생활이란 인간으로서 가장 근본된 도리와 상식과 질서를 벗어나지 않는 정당한 삶의 방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른생각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부처님이 바로 이 장에서 가르쳐 주시는 것입니다. 바른생각이란, 이 세상이 항구불변하지 아니하고, 풀잎에 앉은 아침이슬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가는 바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르게 생각하고 살아야죠. 천 년 만 년이나 살 것 처럼, 이 세상과 나의 환경이 영원이 존속될 것처럼. 그렇게 아웅다웅하며 살아서는 그것은 올바른 생각도 아니며, 올바른 길도 아닌 것입니다. 번민과 고통과 삶의 왜곡도 우선은 우리가 세상에 대해서 바른생각을 갖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것입니다.


세상이 아침이슬이니 바람이니 구름이니 .... 이렇게 그 무상성(無常性)을 강조하면 어떤 불자님들은 그렇다면 살 가치가 어디있냐? 그렇게 오해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과 무(無)는 "없다" 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은, 허무가 아니라 공(空)입니다. 다 그게 그 말인데..... 뭐가 차이가 나느냐? 한 마디로 말씀드리면 불교에서 말하는 무와 무상은 "없다(不存在)"라는 것이 아니라 "아니다(不定)"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세상이 무가치하고 쓸데없는 것이라는 말이 아니라, 불자님 여러분들이 모두 세상을 잘못 이해하시며 잘못 바라 보고 계시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세상과 명예와 물질과 돈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이 존재하며 불교에서도 존재자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스님들에게도 명예는 필요하며, 절간 기와 하나를 올리려 해도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다만 명예와 욕심과 돈이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인지 분명히 알아라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요.

돈도 명예도 욕심도..... 그것이 가진 성질은 바로 무상입니다. 쓸데 없는 것이 아니라, 뜬구름처럼 일시적이고 순간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것에 매달리다간 고통과 번민만 깊어질 따름이라는 말씀이죠. 산길을 걷다가 문득 소나무 가지에 걸린 탐스런 구름을 봅니다. 토끼 모양이 되었다간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 어떨 땐 그리운 여인의 얼굴이 되기도 하고 .... 그러나 그 구름에 집착하여 나무에 올라가서 구름을 딸려고 바둥바둥거리는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은 살아가기에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그런 구름과 같은 무상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씀이지요. 돈, 사랑, 명예, 소유욕.... 이 모두를, 자! 아름다운 산사 중화사 가는 길 하늘에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여기며 사십시오. 부처님은 그런 삶이야 말로 가치있는 삶 .... 진리의 길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세상의 부정이 아니라 세상의 올바른 모습과 아름다운 가치를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제1권/1. 무상경(無常經)


제1권 1장에서는 어느날 부처님께서 '슈라바스티'라는 고장의 한 동산에서 많은 비구들을 모아놓고 펴신 설법의 내용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현상(色 물질)들은 영원히 존속할 수 없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라고 이르십니다. 물질계의 유한성을 똑바로 이해해야지만, 탐심과 욕심을 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이 돈이든 귀금속이든 사람이든, 우리가 소유욕과 탐심에 불타는 것은, 우리가 그 모든 물질과 현상들이 영원불변하다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가장 기초적인 조건이 바로, 세상의 모든 현상(색)을 무상한 것으로 똑바로 이해하는 것이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로 이해해야 할 것은 세상의 유한성에 그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인간의 육신으로 느끼는 것(受), 생각하는 것(想), 행동하는 것(行), 인식하는 것(識) 역시 영원불변한 것이 아님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집이나 이기심에 사로잡히는 이유는 내 생각, 내 느낌, 내 행동, 내 경험이 제일이라고 착각을 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해탈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우리 삶의 환경이 되고 있는 모든 물질과 물건과 부와 명예... 그리고 내 생각 내 행위 내 감정.... 이러한 모든 현상들이 영구하지 않고, 바람이나 구름처럼 변화무쌍하여, 무상(無常)하며 공(空)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바람이나 구름에 집착치 않으며 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바람이든 구름이든 그것은 한 번 지나가고 나면 다신 만날 수 없는 무상하고 허망한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돈, 명예, 애증, 갈등, 탐욕....... 그 모든 인간세상의 현상들이 한 줄기 바람, 한 점 구름임을 분명히 이해하는 것이 해탈의 첫걸음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것입니다


『般若心經』은 大乘佛敎의 핵심경전으로. 大乘佛敎의 근본경전인 반야계 경전의 요지가 이 경에 담겨져 있다. 따라서 大乘佛敎가 보급되고 있는 곳에서는 어느 종파 어떤 행사이건, 이 시경이 주야로 독송되고 종교의식 속에 중요 절차로 자리하고 있다. 『般若經』을 비롯해 『維摩』·『法華』·『華嚴』·『無量水經』 등의 경전성립으로 발달되어 왔다. 이들 경전 가운데에서 가장 기본되고 중심되는 것이 『般若經』이다.

반야계통의 중요경전은 통칭 '十本般若'라고 지적되듯이, 小品·大品·仁王·金剛·濡首·勝天王·理趣·大盤若智 등이며, 대체로 그 집대성으로 간주되는 『大般若經』은 6백 卷이나 되는 방대한 것이다. 『인왕반야경』과 『般若心經』만은 이 『大般若經』에 예속되지 않는다. 이 반야부경전 중에서 가장 일찍 이루어져 원초적인 것은 『金剛般若經』, 가장 짧게 간추려져 그 요지 정수를 잘 나타내는 것이 바로 『般若心經』이다.

따라서 발달불교인 大乘佛敎의 기본 줄거리가 '반야계 경전'에 담겨 있고, 이 계통경전 중의 핵심요지가 이 『般若心經』에 설파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대승 가운데의 대승요지를 설하는 경전 중의 핵심경전이 바로 『般若心經』이라고 평가된다. 『般若心經』은 반야분의 중심사상을 간략하게 압축하여 제시한 극히 짧은 경으로서, 다르고 있는 주요내용은 般若, 5蘊, 諸法, 6根, 界, 12因緣 4諦, 無所得, 涅槃, 般若바羅密多, 아뇩다라삼먁삼보리등입니다.

『般若心經』에는 '반야바라밀다'의 실천내용 설명이 태반을 차지한다. 곧 부처될 후보자요, 부처 뜻 실현자로서 내세워진 보살 중 가장 현실적인 '관세음보살'이 이것을 실천할 때에, 五蘊 모두가 空性임을 관조하여 온갖 괴로움을 해결한다고 교설하기 시작하여, 이 가운데 五蘊皆空 즉 만물(구성요소 다섯)은 공성에 지나지 않음을 다각도로 길게 역설하고 있다.

예컨대 만물(諸法)이 空性인 모습(특징 : 실상)을, 생김도 아니요 없어짐도 아니요 또 不垢不淨 不增不減이라고 변증하고 있다. 생과 사, 현실과 이상, 그리고 增益과 減損 등은 대립하는 양극단이요, 절대가 못되는 상대세계이며 기쁨과 슬픔이나, 지옥과 천국 등을 되풀이 왕복하는 동요의 세계이어서, 안정과 판안이 이루어질 수 없지 않는가.

따라서 이와 같은 양극단 대립하는 상대 세계를 부정 초월함으로써 진실의 세계가 열려오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생사를 거부하는 不生不滅이라는 변증논리로써 치우친 세계에서 벗어난 中道實相 곧 空性(평등의 조화)인 모습이 설명되고 있다. 이 '제법의 공성인 실상'은 근본불교의 緣起觀과 諸法無我의 취지를 되살려 낸 것이요, 훗날 諸法實相이라는 기치아래 오묘한 철학체계를 꽃피우게 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有나 無나 또는 생과 멸 등의 양극단적 세계관은 상대적으로 대립하는 우리들의 세계요, 개념화된 견해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들로써 '사물의 실상'에 접근하기는커녕 편견에 빠져 치우친 행동을 유발하여 생활을 막는 결과에 이르고 만다.

따라서 『般若心經』에서는 당시까지 불교일반에서 중요시 되었던 교리내용마저 부정 거부하여 '만물의 실상'을 완벽하게 나타낼 관인 五蘊과 18界로도 '만물의 실상'을 완벽하게 나타낼 수 없으므로 공성안에는 이들도 없다고 설명하고, 나아가 이상실현 방법인 12인연의 順觀과 逆觀이나 4성제 그리고 궁극 목표인 智와 得, 즉 보리와 열반마저도 없다고 부정한다.

위세서처럼 兩刀論法과 부정논리를 통해 만물의 실상(諸法空相)을 밝혀냄을 일반적인 경험과 지식과 인식 개념의 불완전한 결합과 모순을 철저히 비판하여 언어나 사념 이전의 근원적 본질을 알게 함이요,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물들지 않은 인간 본성의 깨끗함을 닦아 길러가게 하고 보다 높은 차원의 가치세계를 창조 참여하게 하며, 나아가 끌리고 막히는 등의 흔들림 없이 굳은 자아의식의 확립과 인간 주체의 존엄을 고추하여 마음의 활달한 자유와 인생의 평온을 이루게 함이다. 결국 보살이 만물의 空性無所得無自性을 알아내는 '반야바라밀다'의 실천에 의해 마음 흔들림이나 두려움 그리고 번뇌망상은 없어지고 최고열반을 증득하게 하는 것이 『般若心經』의 중요 글자이다.


1. 般若經의 思想的 意味

『般若心經』은 大乘佛敎의 독특한 사상을 전하고 있는 중요한 경전 중의 하나(로)이다. 그렇다고 해서 『般若心經』이 수많은 대승경전 가운데 그저 한 가지 경에 불과하다는 말은 아니다. 왜냐하면『般若心經』은 260자라는 짧은 경문이지마, 大·小乘 경전의 내용을 간결하고도 풍부하게 응축하고 있어서, 예불이나 각종 의식에는 물론 식사 때에도 지송하고 있을 뿐 아니라 초종파적으로 공통으로 독송하는 경전(입니다)이다.

佛敎에 입문하지 않더라도 불교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전이 뜻하는 바를 이해하기 앞서 외워두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할 만큼 불교 입문서로서의 대표성도 가지고 있다. 『般若心經』을 포함하고 있는 일련의 경전들을 보통 '般若經'이라 부른다. 학자들은 이 般若經을 근본 반야경전, 잡부 반야경전, 기타 반야경전으로 구분하고 있다.

근본 般若經典에 속하는 것으로 600부 ≪大般若經≫≪大品般若經≫≪小品般若經≫이 있고, 잡부 般若經에 속하는 것으로 ≪金剛經≫이나 지금 논하고자 하는 ≪般若心經≫등이(있습니다)있다. 그러다 보니 般若經의 양은 엄청나게 많아서 현재 남아 있는 대승경전의 거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般若經이 大乘佛敎에서 가장 중요(한것은)하다고하는 까닭이 양적으로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般若經이 가지는 大乘佛敎의 선구적인 역할(인데)이다. 즉 수많은 대승경전 중에서 가장 먼저 성립된 경전이 바로 '반야'라는 이름을 가진 경이고, 이 般若經이 성립되어 문자화된 것은 大乘佛敎의 발생과 거의 같은 시기인 서력 전후라는 사실이다. '大乘'이라는 말이 般若經에서 처음으로 나타내는 것을 비롯하여 大乘佛敎의 모든 사상을 이 경전들이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維摩經]은 般若經의 中心 思想을 드라마 형식으로 전개한 것이고, [法華經]이나 [華嚴經]도 각각 특색 있는 구성을 하고는 있지만, 사상적으로 말하면 般若經에 나타나는 여러 사상 가운데 몇 가지에 역점을 두어 보다 발전시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般若經과는 전혀 이질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토경전까지도 般若經의 보살사상을 토대로 해서 비로소 전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般若心經]은 이렇게 양적으로 방대하고 질적으로 大乘佛敎의 전 사상을 내포하고 있는 般若經의 내용 중 가장 핵심만을 설한 것이다.

2. 大乘佛敎

불교의 사상은 크게 소승과 대승으로 나누어 말하고 있다. 우선 소승이란 범어로 히나야나라고 하는데, '작은 수레'라는 뜻을 갖는다. 소승이란 의미가 그렇듯이 소승불교는 출가인의 개인적인 수행만을 제일주의로 여겼다. 小乘과는 대조적으로 大乘이란 범어로 마하야나라고 하는데, '큰 수레'라는 뜻이다.

大乘佛敎의 긍극 목표는 부처님께서 가르치고자 하는 근본 뜻을 좇아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중생이 다함께 불도를 이루자는 데 있다. 다시 말해서 자비와 이타라는 보살행의 실천을 통해서 다함께 成佛하자는 데에 최고의 목적이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생존 당시부터 입멸 후 백년까지를 흔히 원시불교 시대라고 말한다. 그 후 部派佛敎 시대를 맞이했는데, 그것은 계율의 해석 차이로 인해 갈라진 불교시대이다. 大乘佛敎 운동은 부처님의 입멸 후 오백년 경부터 시작되었다. 原始佛敎와 部派佛敎 시대를 거치면서 일어난 大乘佛敎 운동은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볼 때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大乘佛敎 운동은 한 마디로 부처님의 근본 사상으로 돌아가자는 외침이기도 한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고자 하는 진정한 뜻을 찾는데 있어서 단지 이론이나 관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보살행의 실천으로 돌아가자는 부르짖음이었다.

부처님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을 표방하는 대승불교 운동은 곧 공사상(空思想), 반야사상(般若思想), 연기설(緣起說), 중도사상(中道思想), 유심사상(唯心思想), 열반사상(涅槃思想), 보살사상(菩薩思想) 등을 그 사상적 배경으로 한다. 그 중에서 공사상은 반야심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서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중요한 핵심 사상이다.

空思想은 존재의 원리를 파헤친 것으로 반야사상과 연기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盤若思想은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을 설한 空思想을 실천적인 면에서 완성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반야는 공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緣起說은 우주와 인생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 법칙이다. 생사윤회의 순환고리인 십이연기는 부처님의 직접적인 깨달음의 내용인 것이다. 연기법은 공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와 인생에 대해 철저히 파헤침으로써 존재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이론이다.

3. 오시교(五時敎)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이루시고 사십구년 동안 각처를 다니시면서 가르침을 전하셨다. 그 가르침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설해졌기 때문에 그 양과 내용은 참으로 방대하였다. 그렇게 하여 남겨진 말씀들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전문적인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재정립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사십구년 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는데,. 그것을 五時敎라고 하는바,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화엄시(華嚴時)로, 성도 후 최초의 삼칠일간 [華嚴經]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부처님께서는 華嚴經에서 깨달음 전체를 설하셨지만 일반 사람들은 아무도 알아 듣지 못했다. 그래서 다시 쉬운 차원으로 끌어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둘째는 아함시(阿含時)로, 그 다음의 십이년 간 阿含經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객관적인 물질계에 대한 가변성과 욕망의 절제 등에 대해서 설하셨다.

셋째는 방등시(方等時)로, 그 다음의 팔년 간 [유마경]. [금광명경], [능가경]. [승만경]. [무량수경] 등 방등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緣起의 법칙과 주관에 대한 부정을 언급하셨다.

넷째는 반야시(盤若時)로, 그 다음의 이십일년 동안 <반야부>의 여러 경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주로 부정의 부정을 통하여 空의 세계를 밝히셨다. 반야부 계통의 경전은 무려 육백여 부에 해당되며, 그 중에서 [盤若心經]은 반야의 골수만을 간추린 경전에 속한다.

반야시는 설 법 기간도 가장 길며 반야부의 경전들을 통하여 깨달음의 정수를 드러냈던 것이다. 반야부 경전은 가장 방대한 양을 차지하고 있으며, 또 교리적인 면에서도 가장 중심에 들어 있다. 반야부 경전은 소승불교에서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여 盤若思想을 바탕으로 大乘佛敎를 꽃피운 점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반야부 경전의 중심 내용인 공사상, 반야사상은 대승불교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다섯째는 법화열반시(法華涅槃時)로, 최후의 팔년 간 [法華經]과 [涅盤經]을 설한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부정의 부정을 거쳐서 대긍정의 세계를 설하셨다.

이상의 다섯 가지 분류를 내용면으로 볼 때 阿含時만 小乘經典에 속하고, 그 나머지는 大乘經典에 속한다. 또 아함, 방등, 반야, 법화열반의 네 가지는 하나의 화엄으로 종합할 수 있다.

4. 삼종(三宗)

五時敎와 연관지워 불교경전을 내용적인 면에서 다시 삼종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설법은 처음에는 자신이 깨달으신 전체 내용을 화엄사상으로 드러내 보였다. 그러나 그 차원이 너무 높아 아무도 알아 듣지 못하자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한 법락(法樂)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 하셨는데, 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로 끌어내려 차츰 높은 단계에 이르는 방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세 가지 단계로 설하셨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경전들은 이 세 가지 三宗의 범주 안에 들게 되는 것이다.

첫째는, 모든 現像界를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상(相)과 유(有)의 차원이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된다. 존재하는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괴로움도 있고, 괴로움의 원인도 있고, 괴로움의 소멸도 있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분명히 있는 괴로움과 그 괴로움에 대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있다는 입장에서 사성제와 팔정도가 설해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십년 간을 주로 모든 현상계가 있다고 하는 有와 相의 상식에서 법을 설하셨다. [阿含經]은 주로 有의 입장에서 설해진 경전에 속한다. 有의 차원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많은 부분이 방편설(方便說)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有의 사상은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차원입니다. 그러나 有의 상식으로 풀어지지 않는 많은 문제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설해진 것이다.

둘째는, 모든 現像界를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空과 無의 차원이다. 이것은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자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空의 사상을 낳게 했다.

모든 현상계는 텅 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상을 空한 것으로 보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십일년 간을 주로 空의 입장에서 법을 설하셨다. 반야부의 많은 경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하며, <盤若心經>은 바로 空이나 無의 입장에서 설해진 대표적인 경전에 속한다.

셋째는, 모든 現像界를 존재하는 그 자체로 '眞理'라고 보는 성(性)의 차원이다. 이것은 진성(眞性).법성(法性).진여(眞如)의 차원을 포함하는 것으로, 가장 차원이 높은 견해인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팔년 간을 性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설하셨다. 性의 차원에서 설해진 경전으로는 [화엄경]. [법화경]. [능엄경]. 열반경] 등이 있다.

性의 차원은 또 '비유비무 역유역무(非有非無 亦有亦無)'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그것은 곧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性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과도 잘 통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대로 진리와 연결되는 것이다.

三宗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인 양 착각하여 사는 것은 相이나 有의 입장이다. 그러나 인생이 空한 것인 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은 空이나 無의 입장이다. 그러나 공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相의 입장에서는 사는 일 그 자체에만 매달려 살지만 空한 입장에서는 인생의 空한 일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지혜의 안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가장 차원이 높은 性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진리 그 자체로 본다. 그래서 진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도 크게 뭉뚱그려 보면 위의 相.空.性 세 가지 견해에 비추어 볼 수 있다. 현상계를 볼 때 한 가지 견해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5. 삼관(三觀)

相. 空. 性 三宗과 함께 우리의 안목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시 세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것을 三觀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공관(空觀)이다. 모든 현상을 공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空觀은 결국 空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관찰하는 입장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의 실체는 본래 공한 것이며, 인연에 따라 잠깐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空觀은 三宗에서 無와 空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이해하는 차원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둘째는 가관(假觀)이다. 모든 현상계는 본래 공한 것인데 거짓 모습에 속아서 보는 것을 말한다. 가관은 앞의 三宗 중 有와 相의 입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假觀은 모든 현상을 가상의 입장에 집착해서 보는 착각을 말한다.

셋째는 중도관(中道觀)이다다. 중도관은 현상계를 그대로 진리의 차원에서 보는 안목을 말한다. 중도관은 가장 이상적이고 차원 높은 입장으로, 三宗 중 性의 견해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五時敎와 三宗, 三觀을 통하여 <盤若心經>의 경전 상 위치와 내용적인 면을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반야심경]은 반야부 경전의 중심이며, 동시에 불경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팔만대장경 전체의 정수는 반야부의 경전이며, 그 반야부의 정수가 바로 [반야심경]인 것다.

6. 반야심경의 사상

공(空)

三宗, 三觀을 통하여 살펴볼 때 <반야심경>의 주된 내용은 空사상을 그 밑바탕에 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空이란 범어로 수냐(Sunya)라고 하는데, 그 뜻은 '텅 비었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공의 본래 의미는 일체법(一切法)은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므로 거기에는 아체(我體), 본체(本體), 실체(實體)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제법개공(諸法皆空), 일체개공(一切皆空)이라고 한다.

그러나 空은 허무가 아니다. 공을 관찰하는 것은 그대로 진리에 대한 발견인 것이다. 그래서 진공(眞空)은 그대로가 묘유(妙有)라고 해서 진공묘유(眞空妙有)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즉, 진정한 공은 아주 교묘하게 있는 것(존재)이라는 말이다. 공에 대한 가르침은 불교경전 전반에 거쳐 설해진 매우 중요한 교리이기도 하다. 특히 대승불교의 반야부 경전에서 그 이론이 두드러져 있다.

공의 종류는 매우 많다. 크게는 아공(我空)과 법공(法空)이 있으며, 많게는 이십공(二十空)까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현상은 한 마디로 공한 그 자체로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을 바꾸어서 말하면 존재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바로 공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이란 존재의 실상을 철저히 규명짓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般若心經]에서 말하는 空사상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현상을 텅 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존재의 실상이 텅 빈 것이기 때문이다. 존재의 실상을 실상대로 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끝없는 문제가 생겨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온갖 괴로움을 뿌리째 뽑아 버리기 위해서는 空觀으로 현상계를 관찰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생각할 때, 분명히 있는 것인데 왜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우선 모든 것을 공한 것으로 본다는 것은 어떤 실체이든 하나로 고정된 것이 없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현상계의 모든 것은 공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다. 공이라고 하는 것은 처음부터 어떤 고정불변한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공의 입장은 무엇이든지 되고자 한다면 그 의지대로 변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공이라고 해서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진정하게 공한 것은 묘하게 '있는' 것이다. 더구나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무시하거나 허무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의 차원은 본래 공이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변화, 발전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공의 차원에서 가장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空觀이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분명히 있는 것으로 깊이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자기라고 하는 거짓 껍데기에 집착하여 생기는 문제는 끝이 없다.

특히 보이지 않는 감정으로 인해 빚어지는 문제는 우리에게 가장 큰 상처를 가져다 준다. <盤若心經>에서 우리의 몸과 마음이 텅 빈 것임을 거듭 강조해서 설명하고 있다. 나라고 하는 실체가 텅 빈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자기라고 하는 실체는 텅 빈 것이므로 그 텅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우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자질 수도 있다. 이것은 곧 자기의 인생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통하는 말이다.

공과 반야

앞에서 공이란 일체의 현상계가 존재하는 영원 불변한 법칙임을 밝힌 바 있다. 이러한 존재 법칙으로서의 공의 실상을 파악하는 일 그 자체가 곧 盤若이다. 반야는 범어로 프라야나(Prajna)라고 하는데 '혜(慧).지혜(智慧).명(明)' 등의 뜻이 있다.

즉, 반야는 모든 사물의 실상을 꿰뚫어 보는 안목을 말한다. 반야의 지혜를 통해야만 성불이 가능하다. 그러므로 반야는 모든 부처님의 스승이며, 어머니인 것이다. 또한 반야는 제법(諸法)의 여실한 이치를 밝힐 뿐만 아니라 중생을 교화하는 실천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반야의 지혜는 단순한 세속적인 지혜가 아니다. 인생과 우주의 참 모습을 텅 빈 것으로 보는 일 그 자체가 바로 반야의 지혜이다. 다시 말해서 공성(空性)의 도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최상의 완전한 지혜가 바로 반야이다. 그래서 空과 盤若는 하나로 연결되어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의 이해가 곧 반야이며, 반야는 곧 공의 실상을 깨닫는 일인 것이다. 반야는 일체의 사물이나 도리를 궁극점까지 추적해서 그것의 영원한 진실을 파악하는 일 자체를 말한다.

인간은 누구나 처음부터 반야의 지혜를 갖추고 있다. 다만 탐.진.치 삼독과 번뇌로 뒤덮여 반야가 가려져 있을 뿐이다. 번뇌를 제거하는 일이 곧 반야를 드러내는 일이다. 결국 번뇌와 반야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이다. 왜냐하면 번뇌와 반야의 실상은 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盤若心經>의 중심 사상은 空이며, 盤若이다. 이것은 곧 불교의 궁극 목표이기도 하다. 반야의 완성, 곧 지혜의 완성을 향한 부단한 노력없이는 깨달음을 성취할 수 없다.

공과 연기(緣起)

공사상과 관련지워 연기설(緣起說)은 불교의 중심사상으로 모든 현상계의 이치를 밝히고 있다. 이 연기법에 의해 모든 현상들은 생성, 변화, 발전, 소멸하는 것이다. 연기의 법칙을 빼고는 불교를 논할 수 없을 만큼 연기설은 중요한 교리이다.

연기는 범어로 프라티탸샤무파다(Pratitya - Samutpada)라고 하는데, 인연생기(因緣生起)를 줄여서 말한 것으로, 무수한 원인에 의해서 무수한 결과가 생기는 원리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존재는 여러 자기 조건, 곧 인연에 의해서 잠정적으로 그와 같은 모습으로 성립되어 간다는 것이다.

일체법은 조건에 따라서 변하기 때문에 독립적인 존재성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모든 존재의 실상을 空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일체가 공이기 때문에 연기의 법칙이 가능하다. 결국 공사상과 연기의 법칙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연기의 공식은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因此有彼 無此無彼 此生彼滅 此滅彼滅-중아함 권47)'이다. 이 말씀은 연기의 법칙을 단적으로 말해 주는 중요한 원리이다. 모든 현상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 상호 관계를 가짐으로써 성립되는 것이다. 그 어떤 현상도 독립적이며 자존적인 것은 없다. 따라서 조건이나 원인이 없으면 결과도 없는 것이다.

[반야심경]에서 말하고 있는 일체개공(一切皆空)도 연기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일체의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상호의존 관계에 의해 현상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각각의 현상은 개별적으로 자성(自性)을 갖고 있지 않다. 이것이 바로 空이다.

그러므로 모든 물체는 연기에 의해 존재하며 自性이 없는데, 그것은 곧 공이라는 등식이 성립하는 것이다. 이 말은 모든 현상계는 본질적으로 텅 비어 있지만, 다만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말한다.

그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연기의 법칙 때문이다. 緣起란 한 마디로 이야기해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 조건이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인연은 자꾸 변하는 성질을 가진다.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니다. 존재의 법칙은 인연에 의해 잠깐 있는 것이지 결코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空思想 역시도 텅 비어서 전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런 저런 인연에 의해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본질은 텅 빈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인연이 흩어지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입장에서 보면 공인 것이다.

또 자기 자신의 입장에서 비추어 볼 때, 살아 있으니 확실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엔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 마는 것이다. 결국 인연이 다했을 때는 사라져 없어지는 존재이다. 이 세상에서 고정된 실체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생성, 변화, 발전, 소멸하고 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성주괴공(成住壞空), 생주이멸(生住離滅)'이란 말로 설명한다. 성주괴공이란 물질이 구성되어 없어지는 기간을 사기(四期)로 나눈 것이다. 물질이 처음에 생겨서 얼마 동안 존재하다가 점차 파괴되어 끝내 없어져 공무(空無)한 것을 성주괴공이라고 말한다. 또 생주이멸은 주로 정신적인 측면의 변화 상태를 말하는데, 한 생각이 일어나서 머물렀다가 변화하여 소멸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다.

緣起의 법칙은 절대적이다. 어떤 존재이든 모든 것은 성주괴공, 생주이멸의 과정을 거칩니다. 고정불변한 존재는 없다. 모든 현상은 단순하게 보이지만 온갖 복잡한 인연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다. 옷깃을 한 번 스쳐도 오백년 인연이라는 말이 있듯이 하나의 물질이나 현상이 생기기까지는 엄청난 인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기성복처럼 이미 만들어져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찮은 물건 하나가 생기는 것도 많고 많은 인연의 결합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세상에 고정불변한 것이란 아무것도 없는 것임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무엇이든 고정불변한 것이라고 믿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거의 무의식적이며 본능적인 것으로 굳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이든 인연에 의해 생기면 반드시 멸하게 되어 있다. 연기로서 존재한다는 법칙을 원리대로, 또 사실대로 이해한다면 설사 문제가 일어나도 그것은 괴로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맞는 일만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싫어 하거나 부정하는 데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이다. 좋은 감정과 싫은 감정은 결코 둘이 아니다.

이처럼 現像界의 모습은 緣起의 법칙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은 空이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空과 緣起의 관계 또한 두 가지 원리를 함께 이해해야 할 것이다. 空이기 때문에 因緣을 만나면 생기게 되고 인연이 사라지면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緣起法의 근간에는 空思想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V-W. 천수경(千手經) - 염불의 경전

대다라니 중심 --- 관음신앙 고취



영국의 대문호 서머셋 모옴은 그가 가난한 무명작가 시절, 책을 한 권 출판했는데 광고비가 든다는 이유로 출판사 측에서 광고를 내 주지 않아 책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신문에다 엉뚱하게도 구혼(求婚)광고를 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인즉 "나는 백만장자로서 결혼할 여성을 찾습니다. 내가 바라는 여성상은 최근 서머셋 모옴이 쓴 소설의 여주인공과 닮은 사람입니다. 그 소설의 주인공과 닮았다고 생각되시는 분은 곧바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물론 그의 소설은 날개 돋인 듯이 일주일만에 매진이 되었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 가지 생각이 한 번의 실행만 못하다." 는 옛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불교에서 가장 폭넓게 유포되고 있고, 또한 가장 깊숙이 뿌리내린 경전인 천수경을 한번 독송해 보십시오.

어떠한 사찰에서나 새벽예불 때 도량석을 하거나, 사시마지(巳時摩旨)를 올릴 때, 그리고 천도재나 영산재 등 모든 법요식에서 제일 먼저 독송하는 것이 바로 [천수경]입니다.

사실 우리 나라 불자님치고 [천수경]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더구나 대승 불교를 표방하는 한국불교에서 우리 불자님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가고 있는 경전이라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천수경은 광본(廣本)과 약본(略本)이 있습니다. 광본의 갖춘 경명은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千手千眼觀世音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大陀羅尼)]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은 어떤 인연으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이 되었는지의 설명과, 이 경전이 설해진 인연을 자세히 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약본의 이름은[천수천안 관자재보살 광대원만 무애대비심 대다라니(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碍大悲心大陀羅尼)》로서 다만 광본의 '관세음보살'이 '관자재보살'로 바뀌어져 있을 뿐이고, 똑같은 보살을 가리킨다는 것은 [관음경]을 다루는 장에서 이미 설명하였으니까 그것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광본이나 약본 그 어느 쪽도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중심이 되고, 그 전후에 관세음보살의 예찬이라든가 불자들의 올바른 신행방법을 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외에도 대정신수대장경(大正新脩大藏經)에 의하면,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신앙을 고취하는 의궤와 경전류가 모두 19 종류나 소개되어 있는데, 특히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수행방법을 설하고 있는 의궤는 7 종류이고, 관세음보살의 신앙만을 고취하고 있는 경전은 12 종류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천수경] 의 '신묘장구대다라니'는 7 세기 중엽에 가범달마(伽梵達摩)가 번역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고 있는 [천수경]은 [신수대장경]에 실려 있는 그대로가 아니고, 대비주(大悲呪) 즉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하여 의식과 독송에 편리하도록 새롭게 재편집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신수대장경]에서는 [천수경] 을 '밀교부'로 분류해 놓고 있는데, 왜 현교(顯敎)를 표방하는 우리 나라 사찰에서 밀교 계통의 경전을 매일 독송하고 있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천수경]의 핵심적 내용이 '신묘장구대다라니' 이기 때문에 밀교부에다 소속시켰을 뿐이지, 실은 현교의 다른 경전에서도 '다라니'와 '진언'은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부분의 불자들이 누구나 다 외우고 있는 [반야심경] 에서도 마지막 부분이 "아제 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라는 주문(呪文)으로 끝맺고 있고, [능엄경] 에서도 그 유명한 '능엄주(楞嚴呪)'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불교의식을 진행하는 데도 '다라니'와 '진언'이 염불 속에 상당히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천수경]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불교의 의식이나 신행생활에 밀교적인 요소가 생각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천수경]의 경명(經名)이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실은 그 점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 내용은 건성으로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을 것입니다.

'천수천안관자재보살(千手千眼觀自在菩薩)'까지는 설명이 되었고, 그 다음 '광대원만(廣大圓滿)'은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넓고(廣) 크며(大) 모나지 않고 둥글면서(圓) 꽉 차있다는(滿) 뜻입니다. 그 다음 무애대비심(無碍大悲心)에서 '무애'는 걸림이 없다는 뜻인데, 중생제도 하는데 누구의 눈치를 보거나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지 않는 대자대비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중생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이 너무나 크고 깊어서 인간적인 사랑이나 정을 뛰어넘어 자비로 승화하였기 때문에 걸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관세음보살은 어째서 모든 중생들의 그 많은 요구와 그 많은 욕심에도 전혀 싫어하는 기색하나 없이 달려가 주실 수 있는 것일까? 라거나 혹은 나도 깨달음을 얻으면 저렇게 신통을 얻고 또한 저러한 무애대비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런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이 바로 '대다라니'이지요. 다시 말해서 '신묘장구대다라니' 입니다.

아시다시피 '다라니(dharani)' 라는 말은 신비한 힘을 가진 주문이란 뜻인데, 한역으로는 '총지(總持)'라고 번역합니다. '총'이란 '모든 공덕이 다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고, '지'는 '마음에 새겨서 잊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모든 잘못을 사전에 미리 막아낸다는 뜻에서 '능차(能遮)' 라고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언과 다라니는 부처님의 위신력을 주문의 형식을 빌려서 적어 놓은 것이기 때문에, 그 원음(原音) 속에 모든 공덕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함축된 진리의 말씀이므로 진리 그 자체와 합일하기 위해서라도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원음을 따라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하여 예로부터 번역하지 않고 소리나는 대로 옮겨 [천수경]의 신묘장구대다라니도 '나모라 다나다라 ....' 라고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근래에 접어들면서 학자들 중에는 다라니와 진언의 뜻풀이를 시도해보는 경우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정작 "아제 아제 바라아제...."를 뜻풀이해서 [반야심경] 을 더 공경하게 되지도, 더 신심이 나지도 않았습니다. 학문적 입장에서는 뜻풀이가 필요할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신앙적 입장에서는 부처님의 거룩한 참된 말씀이려니 하며 그대로 독송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됩니다.

광본 천수경에서도 대범천왕이 관세음보살에게 '다라니'의 본질을 질문하자, 관세음보살은 다음과 같이 대답해 줍니다.

"크게 자비로운 마음이고, 평등한 마음이며, 집착이 없는 마음이고, 공(空)이라 관찰하는 마음이며, 위없는 보리의 마음이니, 마땅히 알지니라. 이와 같은 마음들이 곧 다라니의 본질이니라."

이는 다라니의 문자적 해석보다 오직 다라니를 외우면 이러한 마음을 지닐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하튼 지금까지의 해제를 간추려 보면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으로 세상의 소리를 다 관찰하고 계시는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의 넓고 크고 원만하며 걸림이 없는 대자대비한 마음을 지닌 다라니 경'이라는 뜻이 됩니다.

바로[천수경]의 주인공은 바로 ‘천수천안관세음보살’입니다. 그분은 왜 천 개의 손을 가지고, 천 개의 눈을 가지지 않으면 안되었을까요? 그것은 그토록 많지 않으면 도저히 중생들의 고뇌와 고통을 감싸줄 수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때로는 더 많은 손과 눈이 있었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는데, 자비심으로 모든 중생들을 어루만져 주시고 보살펴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관세음보살님이야말로 두말 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긴 어찌 천 개의 손과 눈뿐이겠습니까? 천 만억의 손과 눈으로도 오히려 부족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천수경]은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중심으로 그 내용에서 관음보살을 예찬하는 게송을 비롯하여 사방을 깨끗이 하는 게송, 참회하는 게송과 진언 등이 포함되어 있고 깨달음의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기를 원하는 여래의 열 가지 발원과 모든 불보살이 한결같이 일으키는 총원인 ‘사홍서원(四弘誓願)’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천수경] 을 통해서 관세음보살의 대자비심을 만나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어떻게 수용하고, 어떻게 베풀어야 할 것인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과보호 속에서는 자식들의 독립과 성장을 기대할 수 없듯이, 우리도 언제까지나 관음보살의 보살핌만을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 관음보살이 되고자 다짐하고 노력할 때, 비로소 진정한 관음보살의 가피를 입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X. 지장경(地藏經) - 끝없는 중생구제

지옥중생 구제 서원



자비와 기쁨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하나는 받는 입장에서의 자비와 기쁨이고, 다른 하나는 주는 쪽에서의 자비와 기쁨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받기만 하는 자비와 기쁨은 조금씩 조금씩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또한 받을 것을 기다리다 보면, 어느새 괴로움으로 변해버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베푸는 자비와 기쁨은 그 자체가 욕심의 소멸이기 때문에 그것은 마치 퍼낼수록 맑게 고여드는 샘물처럼 정신적인 넉넉함이 생겨납니다.

이 베푸는 자비를 기꺼이 실천하고 계시는 분이 바로 지장보살이십니다. 대승불교에 출현하는 그 많은 불보살들 가운데 지장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우리들에게 아주 친근한 보살이지요. 관세음보살처럼 화려한 모습은 아니시지만, 단정한 사문의 모습에다 한 손에는 석장(錫杖)을 들고 내임(來臨)하시는 그 모습이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친밀감을 더해 주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지장보살은 모든 지옥에서 마지막 한사람의 중생도 없게 될 때까지 자신의 성불을 뒤로 미루어 두고 오직 중생구제만을 위하여 헌신하시는 분입니다. 더구나 지장보살님은 지옥문 앞에서 중생들이 생전에 지은 죄업으로 인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안쓰러워서 울고 계신다고 합니다.[지장경]은 바로 이러한 지장보살님의 서원을 기록해 놓은 경전입니다.

이 경전이 갖춘 경명(經名)은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이고, 경전 자체에서 소개하고 있는 다른 이름도 3 가지나 있습니다. [지장본원(地藏本願)]과 [지장본행(地藏本行)] 그리고 [지장본서력경(地藏本誓力經)]이 그것입니다.

위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장경]에는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본원과, 백천만억의 위신력으로 중생들을 구원하고 있는 본행, 그리고 미륵불이 출현하실 때까지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본서력 등의 의미가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체는 2권 13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품(序品)에 해당하는 ‘도리천궁신통품(도利天宮神通品)에서는 문수보살이 상수가 되어 부처님께 지장보살은 어떠한 인연으로 그러한 서원을 세우게 되었는지를 묻는 과정으로 시작하여 지장보살의 본생담(本生譚)이 설해져 있습니다.

이렇게 [지장경]은 지장보살의 서원을 시작으로 내용이 전개 되는데, 특히 지장보살의 형상을 조성하거나 공양하고 예불하는 중생들은 모든 업장이 소멸되어 해탈을 얻게 된다는 것과 영가들이 어둠 속에서 갈 길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7·7 일 즉 49 일 동안 지장보살을 칭념(稱念)해야 한다는 것, 지장보살의 대비원력이 모든 보살들 중에서도 가장 수승하다고 찬탄하는 내용이 인상적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장보살님을 예배 공양하거나 찬탄하면 28 가지 공덕과 이익이 있다는 설명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내용을 지닌 [지장경]은 물질만능주의에 젖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탐욕을 부리느라 자신이 언젠가는 내려야 할 종착역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 버리고서 숱한 죄를 짓고 사는 우리들에게 지옥이라는 종착역을 알려줌과 동시에, 또한 거기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까지도 친절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속고승전] 등의 자료에서 살펴보면 이러한 지장신앙은 당나라 때부터 널리 보급되어 민간신앙으로 자리잡았다고 하며, 뿐만 아니라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이 관음, 세지보살인데도 불구하고 신라에서는 아미타불의 좌우에 관음, 지장의 양대보살을 모셨다는 기록이 [삼국유사] 에 보이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나라에서도 일찍부터 지장신앙이 성행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일본에서는 수자(水子) 즉 빛을 못보고 죽음을 맞이한 태아영가를 돌보아주는 보살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산천초목을 무성하게 자랄 수 있게 해 주는 대지처럼 넉넉하게 베풀어주는 후덕한 보살이라는 뜻에서 지장보살이라고 이름하였듯이, 현세이익 뿐만이 아니라 저 세상(冥符)의 중생까지도 구제해 주시고자 원력을 세운 보살이 바로 지장보살이시고, [지장경]은 바로 지장보살의 서원과 공덕을 배울 수 있는 경전입니다.


Y. 사십구제의 유래

불교에서는 다른 종교에 비교하여 진리를 설명하는 교리도 풍부하지만 의식도 풍부하다. 의식의 종류를 몇 가지 들어 보면 아침과 저녁으로 올리는 예불 의식과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불공 의식, 부처님께 기도 드리는 기도 의식, 그리고 승려와 신자들이 계(戒)를 받는 수계의식, 종교적으로 영혼을 천도하는 천도 의식 등이 있다.

이제 쓰고자 하는 사십구제의식은 천도 의식에 속하는 것으로서 그 중 가장 중요시 여기는 의식인 것이다.

천도 의식의 종류는 사람이 죽을 때 바로 영혼을 천도하는 의식이 있고, 죽은지 일주일만에 지내주는 초칠일제(初七日祭)가 있고 이주일이 되면 지내주는 삼칠일제, 사칠일제 .... 라고 한다. 이 가운데 최후의 칠칠일제(七七日祭)는 사망한지 사십 구일이 되는 천도제라는 뜻으로 사십구제(四十九祭)라고 한다.

이와같이 사십구제를 올려 주는 경우는 대부분 자손과 친척들이 지내 주는 것으로서 이때의 영혼을 유주고혼이라한다. 그러나 우주 공간에는 자손이 없거나 자손이 있어도 사망 일자를 모르는 영혼들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영혼을 무주고혼이라고 부른다.


그리하여 불교에서는 이들 무주고혼들을 불쌍히 여기고 또 천도하려는 목적으로 육지와 바다에서 천도식을 오려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불교의 자비심에서 비롯된 의식으로서 이를 수륙제라고도 한다.

그런데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되고 있는 천도의식은 사십구제이다.

왜냐하면 인간이 사망한 후 사십구일이 되면 최종적으로 내세의 과보를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들 천도 의식에 대한 학술적인 배경을 설명해 보면 다음과 같다. 불교의 윤회설은 원시 불교 시대에 이미 있었지만 이를 좀 더 이론화하고 조직. 체게화한것은 소승불교 시대라 볼 수 있다.

소승 불교의 대비바사론에 의하면 인간이 사망하여 내세에 태어날 때까지의 기간이 있는데 이에 대한 학설이 분분하다. 어떤 학자는 사망하자마자 즉시 내세에 태어난다고 주장하였고, 어떤 학자는 사망 후 즉시 태어나지 않으면 일주일간 허공에 있다가 내세의 인연을 만나 태아나게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망 후 일주일(初七日)이 되어도 내세의 과보를 결정하지 못하면 영혼이 상태에서 다시 죽음을 겪게 되고 또 일주일을 더 기다리다가 그래도 내세(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국)의 과보를 결정할 인연을 만나지 못하면 다시 죽음을 겪게 되며 또 다시 살아나서 삼주일째 내세를 기다리게 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되풀이 하여 4 주일, 5 주일 또는 6 주일과 7 주일과 사십 구일까지 기다렸다가 사십 구일이면 누구나 내세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떤 학자는 또 이에 반대하여 일정하게 중유(中有)의 기간을 정할 수 없다고 하였다. 중유는 사람이 사망한 이후부터 내세에 태어날 때 까지의 기간에 있는 영혼을 뜻하는 것으로 그 중유기간설은 설마달다라는 소승 학자가 주장한 49 일설이 가장 유력하였던 것이다.

이 49 일설이 그 후에 소승 불교의 최고의 논사인 세친보살에 의하여 저술되는 구사론에 나타나 있고 또 대승불교의 논서이며, 유식학의 근본 논전인 유가사지론에도 그대로 실려있다.

이와같이 대승론과 소승론에 49 일설이 나타나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당시의 불자들은 거의 이 학설을 믿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 밖에 경전으로는 지장경을 들 수 있다. 이 지장경은 영혼 천도에 있어서 가장 많이 신앙되고 있는 경전이다. 그런데 이 지장경의 '이익존망품'에 의하면 중생이 사망하면 즉시 내세의 과보를 받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49 일 이내에는 내세의 과보를 받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기간에 이승에 있는 친척들이 천도제를 지내주고 선과복을 닦으면 그 영혼은 천당과 극락 세계에 가서 태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유족들도 복덕과 가호를 받게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상과 같이 기록들은 현재 나타난 기록들로서 앞으로 더 연구하면 더 나타날는지 모르나 신라의 고승 둔윤법사도 유가론기에 비바사론과 구사론 그리고 유가사지론의 49 일설만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상 잘 나타나지않을 것 같다. 아뭏든 위에서 살펴 본 논전과 경전의 기록에 의하여 천도 의식을 올리는 기일이 정해져 내려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기록들에 의하여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는 순간에도 염불을 해주고, 축원을 해주며, 또 사망한 지 일주일이 되면 초 칠일제를 지내준 것 같다. 그리고 이주일고 삼주일 내지 칠주일인 49 일까지 천도제를 올려주는 의식이 발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같은 천도제를 올리는 가운데에도 49일제를 성대하게 지내주는 이유는 이상과 같이 중유 기간의 영혼이 49 일이 되면 반드시 내세의 과보를 받게 된다는 신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승에 있는 자손과 친척들로서는 극락 세계로 천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에서 이날만은 특별히 천도 법회를 하고, 기도하며 축원을 올려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천도 의식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알 수 없으나 부처님 당시부터라고도 하지만 그러나 그 후 중유 기간의 설정 문제가 대두되는 것으로 보아 소승불교 시대 전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데 천도 의식을 올려주면 그 영혼에게 어떠한 이익이 있게 되는가? 이는 여러 면에서 설명될 수 있다. 우선, 간단히 요약하여 보면 영혼에게는 이승에서 많은 죄업을 쌓았고 또 부모와 처자 그리고 이승에 두고온 재산과 같은 애착물이 많이 있다. 이러한 죄업과 번뇌 그리고 애착심은 지혜의 장애물로 나타나 극락과 천당으로 가려는 판단을 흐리게 하는 요인이 되어 지옥으로 인도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염불과 독경의 내용은 이승의 애착을 없애주는 무상의 진리를 설해주고 평소 범했던 잘못된 번뇌심을 깨닫게 하여 주는 진리의 말씀이 가득 차 있다.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듣는 순간 영혼의 생각은 일단 업력으로 된 이승의 몸을 벗어났기 때문에 매우 예민하여 즉시 그 진리를 께닫게 되며, 곧 지혜를 나투어 올바른 길을 택해 갈 수 있는 혜안이 생기게 된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영혼은 이승의 애착을 버리고 혼연히 지혜의 눈으로 저승의 선한 세계를 택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영혼(중유)에게는 업력에 따라 보고 들을 수 있는 천안(天眼)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이 천안과 빠른 생각은 아무리 먼 곳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보고, 듣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염불과 독경으로 진리롭게 바로 잡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론들을 뒷받침하여 천도제를 지내주며 사십구제를 올려주는 유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Z, 무간지옥의 실상 (지장경에서) |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 부인이(도리천에서) 공경스럽게 합장하고 지장보살님께 여쭈었다.

[성자시여! 남염부제 중생이 업을 짓는 차별과 받게 되는 응보는 어떠하옵니까?]

지장보살이 대답하셨다.

[천만 세계, 모든 국토에는 혹 지옥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혹 여인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혹 불법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성문이나 벽지불도 역시 그러하옵니다. 지옥의 죄보도 똑같은 것만이 아니옵니다.]

마야 부인이 거듭 보살 님께 여쭈었다.

[그러면, 남염부제에서 죄보로 나쁜 곳에 떨어져 과보 받는 것을 듣고저 하옵니다.]

[성모여! 잘 들으소서. 제가 대강 말씀 드리겠나이다.]

[성자시여! 어서 말씀하옵소서.]

이때 지장보살께서 성모에게 말씀하셨다.

[남염부제의 죄보를 말씀하면 이러하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부모에게 불효하고 혹 살해까지 하였다면 마땅히 무간 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부처님 몸에 피를 내고, 삼보를 훼방하고, 경전을 존중치 않으면, 역시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절 재산에 손해를 주거나 비구, 비구니를 더럽히거나, 혹은 절안에서 방자하게 음욕을 행하거나 죽이고 해친다면, 이런 무리들도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 중생이 마음은 사문이 아니면서 거짓으로 사문이 되어, 절 재산을 함부로 쓰고, 신도를 속이며 계율을 어겨 갖가지 나쁜 짓을 하면, 이같은 무리들도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으로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만약 어떤중생이 절 재산을 훔치돼, 재물, 곡식, 음식, 의복을 한 가지라도 주지 않는 것을 취한 자는 마땅히 무간지옥에 떨어져 천만억 겁이 지나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성모여! 만약 어떤 중생이라도 이 같은 죄를 지으면 마땅히 오무간지옥에 떨어져 잠깐만이라도 고통이 멈춰주기를 원해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마야부인이 거듭 여쭈었다.

[어떤 것을 무간지옥이라고 하옵니까?]

[성모여! 모든 지옥이 대철위산 속에 있는데, 그 중에 큰 지옥은 열 여덟 곳이나 됩니다. 그 다음 것이 오백인데 이름이 각각 다르고 ,그 다음 것이 천배이나 되는데 역시 이름이 각각 다릅니다. 무간지옥이라는 곳은 그 옥성 둘레가 팔만여 리가 되며, 그 성은 순전히 쇠로 되었고, 높이는 만 리인데, 성 위에는 불더미가 조금도 빈틈없이 이글거리며, 그 성 중에는 또 여러 지옥이 서로 이어졌는데 그 이름도 각기 다릅니다.]

[여기에 유독히 한 지옥이 있어서 이름을 무간이라고 하는데, 이 옥의 둘레는 만팔천 리요, 담장 높이는 천 리이며, 아랫불은 위로 치솟고 윗불은 아래로 쏟아져 내려오며, 쇠로 된 뱀과 개가 불을 토하면서 담장위를 동서로 마구 달립니다. 옥중에는 넓이가 만 리에 가득찬 평상이 있는데, 한 사람이 죄를 받아도 그 몸이 평상 위에 가득차게 누워있는 것을 스스로 보게되고, 천만 사람이 죄를 받아도 역시 각자의 몸이 평상 위에 가득참을 보게 되는데, 뭇 죄업으로써 이와같은 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또 모든 죄인이 온갖 고초를 골고루 다 받는데, 천백 야차와 악귀들이 어금니는 칼날같고, 눈은 번갯빛 같으며, 손은 또 구리쇠 손톱으로 되어, 죄인의 창자를 끄집어 내어서 토막토막 자릅니다. 또 어떤 야차는 큰 쇠창을 가지고 죄인의 몸을 찌르는데, 혹은 입과 코를 찌르며, 혹은 배나 등을 찔러 공중으로 던졌다가 다시 받아서 평상 위에 놓기도 합니다.]

[또 쇠로 된 매가 있어서 죄인의 눈을 파먹으며, 또 쇠로 된 뱀이 있어서 죄인의 목을 감아 조이고, 또 온 몸 마디마디에 긴 못을 내려박기도 하며 또 혀를 빼어 보습으로 갈때 죄인이 끌게하고, 구리 쇳물을 입에 붓기도 하며, 뜨거운 철사로 몸을 감아서 만 번 죽였다 만 번 살렸다 하나니, 업으로 받는 것이 이와 같아서 억 겁을 지내도 벗어날 기약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 세계가 무너질 때는 다른 세계로 옮겨 가서 나고, 그 세계가 또 무너지면 다른 세계로 옮겨가고 또 옮겨가고 하다가, 이 세계가 또 이루어지면 다시 돌아옵니다. 무간 지옥의 죄보가 이러하옵니다. 또한 다섯 가지 업감이 있으므로 무간이라고 합니다.]

[다섯 가지라 함은,

-첫째는 밤낮으로 죄를 받아서 겁이 거듭하여도 끊어질 때가 없으므로 무간이라고 하는 것이며,

-둘째는 한 사람이라도 가득 차고 많은 사람이라도 역시 가득 차므로 무간이라고 하는 것이며,

-셋째는 죄받는 기구에 쇠몽둥이, 매, 뱀, 이리, 개, 맷돌, 톱, 도끼, 끊는 가마, 쇠그물, 쇠사슬, 쇠나귀,

쇠말 따위가 있으며, 생가죽으로 목을 조르고, 뜨거운 쇳물을 몸에 부으며, 주리면 철환을 삼키고, 목마르면 뜨거운 쇳물을 마시면서 해를 넘기고 겁을 보내어 그 수가 한량없는 겁에 이르러도 고초가 잇달아 끊임이 없으므로 무간이라 하는 것이며,

-넷째는 남자, 여자, 호랑이, 늙은이, 어린이, 천한이, 용, 신, 하늘 사람, 귀신 할 것 없이 죄를 지으면 그 업에 따라 받는것이 모두 똑 같으므로 무간이라고 하는 것이며,

-다섯째는 만약 이 지옥에 떨어지면 처음 들어올 때부터 백천 겁에 이르도록 날마다 밤마다 만번 죽었다가 만번 살았다가 하여 잠깐도 멈춰짐이 없다가 , 나쁜업이 다 삭아져야만 비로소 딴 곳에 태어납니다.

이렇게 줄곧 잇달아 끊이지 않으므로 무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모여! 무간지옥에 대하여 대강 말씀한 것이 이러하오나 만약 형벌 받는 기구 등의 이름과 그 온갖 고초받는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자면 한 겁 동안에도 다할 수 없습니다.]

마야부인이 이 말씀을 듣고는 근심 깊은 얼굴로 합장 정례하고 물러갔다.

 

 

 

 

 

 

 

 

 

 

 

 

 

 

 

수보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haha723/13689196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