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경 이야기

[스크랩] 화엄경 노트 (48-2 초발심공덕품 2.법혜보살의 설법)

수선님 2018. 7. 29. 12:07

 

8, 衆生欲樂理解初發心功德

 

佛子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於一念頃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種種欲樂호대 念念如是하야 盡阿僧祗劫하며 次第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四維上下亦復如是하면 此十方衆生所有欲樂可知邊際어니와 菩薩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功德善根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佛子菩薩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欲樂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種種欲樂하며 廣說乃至欲盡知一切欲樂網故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 또한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욕망을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지겁이 다 하도록 하였고, 차례로 이렇게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으며, 남방. 서방.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시방 중생들이 가진 욕망은 그 끝 간 데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낸 공덕과 선근은 그 끝 간 데를 능히 아는 사람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욕망을 알기 위한 것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니,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욕망을 죄다 알려는 연고며, 널리 말하면 일체의 욕망그물을 모두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

중생(衆生)의 욕락이해(欲樂理解)와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중생들의 욕락을 아는 비유

*

중생은 욕락이 여러 가지다. 사람마다 욕락이 다 다르지만 한사람의 욕락도 그때그때 늘 다르다.

옛날에 즐기던 음식이 지금은 싫어지기도 하고 오늘 좋던 것이 내일 또 싫어지기도 한다. 나이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고, 철이 드는 것에 따라서 다르기도 하고, 습관을 어떻게 들이는가, 그 안목을 얼마나 넓히는가에 따라서도 그 욕락이 변한다.

*

불자(佛子)

부치차유(復置此喩)하고 : 이 비유는 그만 집어치우고

가사유인(假使有人): 가사 어떤 사람이

어일념경( 於一念頃): 일념경에

능지동방무수세계소유중생(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 동방 무수 세계 소유 중생의

종종욕락(種種欲樂)호대: 가지가지 욕락을 능히 알되

염념여시(念念如是)하야 : 생각생각에 이와같이 해서

진아승지겁(盡阿僧祗劫)하며: 아승지겁을 다하며

차제광설(次第廣說)하야: 차제로 광설해서

내지제십(乃至第十)하고 : 내지 제 십에 이른다.

*

남서북방(南西北方): 남서북방과

사유상하(四維上下): 사유상하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면: 역부여시 한다면, 동쪽으로도 그렇게 하고 남쪽으로도 그렇게 하고 서쪽으로 북쪽으로 네 간방으로 상방으로 하방으로 다 그렇게 한다면

차시방중생(此十方衆生): 이 시방 중생의

소유욕락(所有欲樂): 있는 바 욕락은

가지변제(可知邊際)어니와: 가히 그 끝을 알 수 있거니와. 이것도 화엄경이니까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백여 명이 모였는데 한 사람이 열가지씩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써내라고 한다면 그것도 참 여러가지일 것이다. 또 오늘 우리가 느낀대로 적는 것과 내일 느낀대로 다시 한 번 적는 것이 다를 것이다.

당장에 추우면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할 것이고, 배고픈 사람은 음식이 좀 필요하다 할 것이고 목마른 사람은 물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고, 피곤한 사람은 눕고 싶다거나 좋은 침대가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이런 예를 하나만 들어도 좋아하는 것들이 각양각색이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중생 소유욕락의 변제를 가히 안다고 하여도

보살(菩薩): 보살의

초발아뇩다라사먁삼보리심(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처음으로 발한

공덕선근(功德善根): 공덕의 선근은

무유능득지기제자(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그 끝을 능히 알 수가 없다.

*

하이고(何以故): 왜 그런고 하면

불자(佛子): 불자야

보살(菩薩): 보살이

부제한(不齊限)하야: 한계를 지어서, 제한해서

단위지이소중생욕락고(但爲知爾所衆生欲樂故): 다만 그러한, ‘이소그러한이라는 뜻이다. 앞에서 설명한 그러한 중생의 욕락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발심하였는가?

*

위진지일체세계소유중생(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진지 다 알려고 하는 것이다. 일체 세계 소유 중생의

종종욕락(種種欲樂)하며: 종종욕락을 다 알며

광설내지욕진지일체욕락망고(廣說乃至欲盡知一切欲樂網故): 광설하면 내지 일체 욕락의 그물을 다 알고자 하는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다.

보살이 보리심을 발한 이유 중에는 중생의 온갖 취향과 욕심과, 즐기는 거리와, 그 사람들의 문제와 그 사람들의 고통과 이런 것 까지 전부 아는 것이 포함이 되어 있다. 궁극에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보살이 발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의 말 못할 사정까지도 속속들이 다 알아야 된다는 뜻이 이 속에는 숨어 있다.  

 

 

 

9, 衆生方便理解初發心功德

佛子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於一念頃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種種方便하며 如是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四維上下亦復如是하면 此十方衆生種種方便可知邊際어니와 菩薩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功德善根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佛子菩薩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衆生種種方便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種種方便하며 廣說乃至欲盡知一切方便網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 또한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알며, 이렇게 모두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렀고, 남방. 서방.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하방도 역시 이와 같았느니라. 또한 시방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공덕과 선근은 그 끝 간데를 알 사람이 없나니,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방편을 모두 알기 위한 것이며, 널리 말하면 내지 일체의 방편그물을 죄다 알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

중생(衆生)의 방편이해(方便理解)와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중생들의 온갖 이해를 아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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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

부치차유(復置此喩)하고 : 다시 이 비유는 그만두고

가사유인(假使有人): 가사 어떤 사람이

어일념경(於一念頃): 일념경에

능지동방무수세계소유중생(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 동방 무수세계 소유 중생의

종종방편( 種種方便)하며 : 종종 방편을 능히 알며

여시광설(如是廣說)하야 : 이와 같이 광설해서

내지제십(乃至第十)하고 : 내지 제 십에 이르고

*

남서북방(南西北方): 남서북방과

사유상하(四維上下): 사유상하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면: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한다면

차시방중생(此十方衆生): 이 시방중생의

종종방편(種種方便): 가지가지 방편은

가지변제(可知邊際)어니와 : 가히 변제를 알거니와

보살(菩薩)

초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처음 아뇩다라 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공덕선근(功德善根): 공덕의 선근은

무유능득지기제자(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 능히 그 끝을 알 수가 없나니라.

복잡한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고 발심한 공덕은 참으로 헤아릴 수가 없고, 알 수가 없고,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더라도 발심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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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

불자(佛子)

보살(菩薩)

부제한(不齊限)하야 : 제한을 해가서

단위지이소세계중생(但爲知爾所世界衆生): 다만 그러한 세계의 중생의

종종방편고(種種方便故): 가지가지 방편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다.

*

위진지일체세계소유중생(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일체 세계의 소유 중생의

종종방편(種種方便)하며: 종종 방편을 다 알기 위해서 발심했으며, 결론은 이것이다.

광설내지욕진지일체방편망고(廣說乃至欲盡知一切方便網故): 광설하면 내지 일체 방편의 그물을 다 알고자 하는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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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의 문장은 옛날부터 장대화엄이라고 하였다. 옛날에는 생활속에서 장대가 매우 필요했다. 지금도 시골에서는 감을 따거나 빨래줄을 받칠 때 장대가 필요하고 초파일날 등을 칠 때도 장대가 필요하다.

화엄경 문장은 이런 장대처럼 죽죽 길게 내려간다고 해서 장대화엄이라고 한다.

기신론은 역대 논문치고 제일 조직화가 잘 되어 있고 논리정연하다. 그래서 깐깐기신이라고 한다. 능엄경은 글이 넉자로 되었는데 마치 유식30송처럼 한 글자 한 글자마다 뜻이 많이 포함되어 있고 글이 차돌처럼 야무져서 차돌능엄이라고 한다. 이런 것은 구전 불교다.

경전상에 그렇게 기록되었거나 전통 강원에서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불교다.

 

 

 

 

 

 

10, 衆生差別心理解初發心功德

佛子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於一念頃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種種差別心하며 廣說乃至此十方世界所有衆生種種差別心可知邊際어니와 菩薩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功德善根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何以故佛子菩薩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心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悉知盡法界虛空界無邊衆生種種心하며 乃至欲盡知一切心網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 또한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로 차별한 마음을 능히 알며, 널리 말하여 내지 시방세계에 있는 중생의 갖가지로 차별한 마음을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공덕과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마음을 알기 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온 법계 허공계의 끝없는 중생의 갖가지 마음을 모두 알기 위하여, 내지 일체의 마음그물을 모두 알기 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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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衆生)의 차별심이해(差別心理解)와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중생들의 마음을 아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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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

부치차유(復置此喩)하고: 앞에서 든 비유는 그쯤 해두고, 차유는 그만두고

가사유인(假使有人): 가사 어떤 사람이

어일념경(於一念頃): 한 생각 사이에

능지동방무수세계소유중생(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 동방으로 무수세계 소유 중생의

종종차별심(種種差別心)하며: 가지가지 차별심을 능히 알며

광설내지차시방세계소유중생(廣說乃至此十方世界所有衆生): 널리 설명하자면 이 시방 세계소유 중생의

종종차별심(種種差別心): 가지가지 차별심은

가지변제(可知邊際)어니와: 가히 그 끝을 안다고 하지만

보살(菩薩): 보살이

초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공덕선근(功德善根): 공덕의 선근은

무유능득지기제자(無有能得知其際者)니라 : 능히 그 변제를 알 길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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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

불자(佛子)

보살(菩薩)

부제한(不齊限)하야: 제한을 해서

단위지이소중생심고(但爲知爾所衆生心故): 다만 이러한 중생의 마음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보살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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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실지진법계허공계무변중생(爲悉知盡法界虛空界無邊衆生): 위실지, 다 알기 위함이다. 법계와 허공계 무변중생의

종종심(種種心)하며 : 종종심을 다 알며

내지욕진지일체심망고(乃至欲盡知一切心網故): 또 일체 마음의 그물을 다 알고자 하는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했다.

중생의 마음을 몰라서는 중생을 제도할 수가 없다.

중생의 마음은 각양각색이다. 그것을 다 알아야지 그야말로 사람 사람마다 딱 맞는 맞춤법문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옛날 법문은 이런 대중법문이 아니었다. 거의 맞춤 법문이었다. 11로 한 사람의 문제해결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설명하면 옆에 있던 제자들은 덩달아서 듣고 소득을 보는 것이다.

 

 

11, 衆生業理解初發心功德

佛子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於一念頃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種種差別業하며 廣說乃至此十方衆生種種差別業可知邊際어니와 菩薩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善根邊際不可得知니라 何以故佛子菩薩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衆生業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欲悉知三世一切衆生業하며 乃至欲悉知一切業網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 또한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로 차별한 업을 능히 알며, 널리 말하여 내지 시방 중생들의 갖가지로 차별한 업은 그 끝까지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선근은 그 끝까지를 알 수 없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중생들의 업을 알기위하여서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라, 삼세 일체중생들의 업을 모두 알기 위하여, 내지 일체 업의 그물을 모두 알기 위한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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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衆生)의 업이해(業理解)와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중생들의 업()을 아는 비유

*

불자(佛子)

부치차유(復置此喩)하고

가사유인(假使有人)

어일념경( 於一念頃): 일념경에

능지동방무수세계소유중생(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 동방무수세계 소유중생의

종종차별업(種種差別業)하며 : 종종차별업을 능히 알며

광설내지차시방중생(廣說乃至此十方衆生): 광설하면 내지 시방중생의

종종차별업(種種差別業): 종종한 차별업을

가지변제( 可知邊際)어니와 :가히 변제를 알거니와.

사실은 한 사람의 업도 제대로 알기 어렵다. 한 절에서 수십 년, 도반으로 같이 살아도 그 사람의 업을 모른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업이 툭툭 튀어나오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의 업을 알겠는가. 과거 수많은 생을 거듭해오면서 무슨 업을 익혔는지도 알 수가 없다. 부모도 자식이 어떤 업을 가지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래서 업력난사의(業力難思議)라고 한다. 우리 염불에서 업력난사의 대비무장애(業力難思議 大悲無障碍)’라는 구절도 있는데 그야말로 업의 힘은 불가사의하다.

한 사람의 인자 속에는 무수억겁의 삶이 그 속에 다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다. <화엄과 물리학> 같은 책들도 나오고 했는데, 천문학이나 전자산업, 물리학이 발달하면서 이 화엄경을 이해하기 좋도록 받쳐준다.

한 사람의 인자 속에는 그 사람 무수억겁의 삶이 포함되어 있어서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이 나온다.

내 마음이 업의 한 표현이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것이다.

내가 무슨 업을 짓고 과거 수많은 생을 살아왔는지 내 속에서 어떤 업이 튀어나올지 모른다.

여러분들이 여기서 화엄경 공부를 이렇게 하면 다 잊어버리고 흘려버리고 아무 것도 남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신도들을 만나서 불교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여기서 공부한 것들이 튀어나온다.

화엄경 공부하는 업이 씨앗으로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장식(藏識) 속에 갈무리 되어 있다가 필요할 때 건드려 줄 기회가 오면 자기도 모르게 그 업이 탁 튀어나온다.

무몰식(無沒識)이라고 해서 없어지지 않는 장식의 세계가 업의 인자다.

이렇게 한 사람의 업도 제대로 알기가 어려운데 여기 화엄경에서는 중생의 각양각색의 차별된 업을 다 알아서 그 끝을 다 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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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菩薩)

초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근변제( 善根邊際): 선근의 끝은

불가득지(不可得知)니라 : 가히 그 끝을 알 수가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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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

불자(佛子)

보살(菩薩)

부제한(不齊限)하야 : 제한을 해서 다만, 분제를 나누고 한계를 지어서, ()자가 보통 제한한다고 하는 그 제자가 아니고 분제를 나눈다는 뜻인데 분제라고 하는 것은 경계다. 경계를 딱 설정하고 한계를 나누어서

단위지이소중생업고(但爲知爾所衆生業故): 다만 그러한 중생의 업을 알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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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지삼세일체(欲悉知三世一切衆生業)하며: 삼세일체 중생의 업을 다 알고자 하며

내지욕실지일체업망고(乃至欲悉知一切業網故): 내지 일체업의 그물을 다 알고자 하는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니라.

 

화엄경은 법계연기사상(法界緣起思想)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특히 그물 망()자를 잘 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물처럼 서로서로 연결이 되어 있다. 연결하는 고리가 풀려버리면 그물이 안된다. 수천수만 개의 그물의 눈이 전부 다 연결이 되어 있다고 하는 화엄경의 안목으로 보면 나의 업과 너의 업이 전부 연관성이 있다. 그래서 내가 무슨 짓을 하면 다른 이들도 그것을 그냥 알아차린다. 다른 사람의 업이 튀어나오면 나도 그것을 안다. 세상이 전부 그물 형식으로 상호연관성이 있고, 법계연기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저 앞산 뒷산과 나는 아무 관계없이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 역시 다 연관이 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산에 가서 나무 한 그루를 새로 심는 것과 거기 있던 나무를 잘라버리든지 뽑아버린다든지 하는 것이 그 산 전체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다.

가까이 있는 것은 크게 영향을 끼치고, 멀리 있는 것은 적게 영향을 끼친다.

그물이 서로서로 연결되어 짜여져 있듯이 이 우주 법계 전체가 그렇게 연결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화엄경의 법계연기 사상이다. 그래서 화엄경에서는 그물 망자를 잘 쓴다. 일체욕락그물이라고 했듯이 욕심이나 자기가 좋아하는 것도 전부 그물처럼 연결이 되어 있다.

지나가는 사람이 좋아하는 것과 나는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내내 관계를 맺고 있다.

   

 

12, 衆生煩惱理解初發心功德

佛子復置此喩하고 假使有人於一念頃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種種煩惱호대 念念如是하야 盡阿僧祗劫하면 此諸煩惱種種差別無有能得知其邊際有第二人於一念頃能知前人阿僧祗劫所知衆生煩惱差別하야 如是復盡阿僧祗劫하며 次第廣說하야 乃至第十하고 南西北方四維上下亦復如是하면 佛子此十方衆生煩惱差別可知邊際어니와 菩薩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善根邊際不可得知니라 何以故佛子菩薩不齊限하야 但爲知爾所世界衆生煩惱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煩惱差別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所謂欲盡知輕煩惱重煩惱眠煩惱起煩惱一一衆生無量煩惱種種差別하야 種種覺觀으로 淨治一切諸雜染故欲盡知依無明煩惱愛相應煩惱하야 斷一切諸有趣煩惱結故欲盡知貪分煩惱瞋分煩惱癡分煩惱等分煩惱斷一切煩惱根本故欲悉知我煩惱我所煩惱我慢煩惱하야 覺悟一切煩惱하야 盡無餘故欲悉知從顚倒分別生根本煩惱隨煩惱因身見生六十二見하야 調伏一切煩惱故欲悉知蓋煩惱障煩惱하야 發大悲救護心하고 斷一切煩惱網하야 令一切智性淸淨故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불자여, 이 비유 또한 그만두고, 가령 어떤 사람이 한생각 동안에 동방의 무수한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갖가지 번뇌를 알며, 생각생각마다 이와 같이 하여 아승지겁이 다하도록 한다 하면, 이 모든 번뇌의 갖가지로 차별한 것을 그 끝을 능히 알 수가 없고, 또 둘째 사람은 한생각 동안에 앞의 사람이 아승지겁 동안에 아는 바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능히 알고, 이와 같이 하여 다시 아승지겁이 다하도록 하며, 차례차례로 이와 같이 말하여 열째 사람에게 이르되, 남방. 서방. 북방과 네 간방과 상방. 하방도 역시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불자여, 이 시방 중생의 번뇌가 차별한 것은 그 끝간 데를 안다 하더라도, 보살이 처음으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선근은 끝까지 알지 못하나니, 무슨 까닭이냐. 불자여, 보살이 다만 저러한 세계 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하여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데 제한한 것이 아니니라. 또한 일체 세계에 있는 중생들의 번뇌가 차별한 것을 모두 알기 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니, 이른바 가벼운 번뇌, 무거운 번뇌, 자는 번뇌, 일어나는 번뇌와 낱낱 중생의 한량없는 번뇌와 갖가지 차별을 모두 알고, 갖가지 각관(覺觀)으로 온갖 물든 것을 깨끗하게 다스리는 연고며, 또 무명을 의지한 번뇌와 애()와 서로 응하는 번뇌를 모두 알아서 모든 유()와 갈래의 번뇌 결박을 끊으려는 연고며, 또 탐하는 성품[貪分]의 번뇌와 성내는 성품의 번뇌와 어리석은 성품의 번뇌와 평등한 성품[等分]의 번뇌를 모두 알아서 일체 번뇌의 근본을 끊으려는 연고며, ''라는 번뇌와 '내 것'이라는 번뇌와 아만의 번뇌를 모두 알아서, 일체의 번뇌를 깨닫고 남음이 없게 하려는 연고며, 또 뒤바뀜과 분별로부터 근본 번뇌와 따르는 번뇌[隨煩惱]가 생기고, 몸이라는 소견으로 인하여 62(六十二見)이 생기는 것을 모두 알아서 일체 번뇌를 조복하려는 연고며, 또 덮는[] 번뇌와 막는[] 번뇌를 알고, 큰 자비로 구호하려는 마음을 내어 일체 번뇌의 그물을 끊고, 온갖 지혜로 하여금 청정케 하려는 연고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는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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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衆生)의 번뇌이해(煩惱理解)와 초발심공덕(初發心功德): 중생들의 번뇌를 아는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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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자(佛子)

부치차유(復置此喩)하고

가사유인(假使有人)

어일념경(於一念頃): 일념경에

능지동방무수세계소유중생(能知東方無數世界所有衆生): 동방무수세계 소유 중생의

종종번뇌( 種種煩惱)호대: 종종 번뇌를 능히 알되

염념여시( 念念如是)하야 : 염념에 이와 같이 해서

진아승지겁(盡阿僧祗劫)하면: 아승지겁이 다하면

차제번뇌종종차별(此諸煩惱種種差別): 이 모든 번뇌의 종종차별

무유능득지기변제(無有能得知其邊際): 그 변제를 능히 알 수 없음이니

*

유제이인(有第二人): 두 번째 사람이

어일념경(於一念頃): 일념경에

능지전인아승지겁소지중생번뇌차별(能知前人阿僧祗劫所知衆生煩惱差別)하야 : 전인의 아승지겁 중생 번뇌차별을 능히 알아서

여시부진아승지겁(如是復盡阿僧祗劫)하며:이와 같이 다시 아승지겁이 다하며

차제광설(次第廣說)하야: 차제로 널리 이야기 해서

내지제십(乃至第十)하고 : 두 번째 사람,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여덟 번째, 아홉 번째 이렇게 앞의 사람 것을 늘 다 알면서 열 번째에 까지 이르고

*

남서북방(南西北方): 남서북방과

사유상하( 四維上下): 사유상하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면 : 또한 다시 이와 같이 한다면

불자(佛子)

차시방중생(此十方衆生): 이 시방중생의

번뇌차별(煩惱差別): 번뇌차별은

가지변제(可知邊際)어니와: 가히 그 변제를 알거니와

보살(菩薩)

초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初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처음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근변제(善根邊際): 선근의 끝은

불가득지(不可得知)니라 : 가히 알 수 없느니라. 초발심, 발심, 보리심, 불심 이것을 자꾸 강조해야 한다. 자신의 불심도 깊어지고 또 타인의 불심도 깊어지도록 자꾸 보리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보리심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가는 1700년 전 한국에 불교를 처음 전하려고 했던 그 어떤 얼굴도 모르고 아무 것도 모르는 한 사람의 마음이 보리심을 발해서 오늘날까지 한국불교가 1700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무수한 중생들에게 이익을 준 것을 봐도 잘 알 수가 있다.

우리도 어떤 일을 해서 또 그와 같은 업적을 후손들에게 남길 수가 있다. 여러 스님들도 그 나름으로 포교당을 세우고 절을 짓고 자신의 터전을 마련하고 자기의 세계를 구축해서 뒷사람들에게 나누고, 옆 사람들에게 자꾸 파장을 일으켜 나간다면 그 또한 공덕이 클 것이다.

처음 마음 낸다는 것이 이와 같이 중요하다.

그 중에서도 제일 훌륭한 마음인 보리심, 불심을 자꾸 강조해야 된다. 세상은 물질이 자꾸 발전을 해서 풍요로워지지만 그럴수록 우리 마음은 자꾸 거칠어지고 황폐해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불심, 보리심이 더 필요하고 강조되는 시대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

하이고(何以故): 왜냐

불자(佛子)

보살(菩薩)

부제한(不齊限)하야 : 제한을 해서, 분제를 나누고 한계를 그어서

단위지이소세계중생번뇌고(但爲知爾所世界衆生煩惱故): 다만 이러한 세계 중생의 번뇌를 알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라 : 보리심을 발한 것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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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진지일체세계소유중생(爲盡知一切世界所有衆生): 위진지, 다 알기위해서다. 일체세계 소유중생의

번뇌차별고(煩惱差別故): 번뇌 차별을 다 알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 : 보리심을 발한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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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욕진지경번뇌(所謂欲盡知輕煩惱): 소위 가벼운 번뇌와

중번뇌(重煩惱):무거운 번뇌

면번뇌(眠煩惱):면번뇌의 면()은 잠잘 면자인데 가만히 숨어있는 번뇌다. 번뇌가 의식에 잠재되어 있을 뿐이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잠자는 번뇌가 참 많은데 걸핏하면 잠이 깨서 작동을 하고 휘젓고 다닌다. 그래서 옆 사람을 못살게 굴 수도 있고, 좋은 일을 할 수도 있다. 이런 면번뇌와

기번뇌(起煩惱): 일어난 번뇌, 지금 현전에 일어난 번뇌와

일일중생무량번뇌(一一衆生無量煩惱): 일일 중생의 무량 번뇌의

종종차별(種種差別)하야: 종종 차별을 다 알아서

종종각관(種種覺觀)으로 :가지가지 각관으로. 이것은 살펴서 관찰하는 수행법이다. 옛날에는 관이라고 하는 수행을 다 했다. 마음수행, 마음을 다스리는 것을 관, 각관이라고 표현했다. 지금도 지관(止觀)이라고 하는데 사마타는 지이고 위파사나는 관이다. 그것을 정혜라고도 표현 한다.

그런 수행법으로 예를 들어서 욕심이 많은 중생은 부정관을 한다. 원시불교에 그런 이야기가 많다. 옛날에 인도에는 묘도 제대로 안썼으니까 시체가 나오면 들판에 갖다 버리는데 사람 시체가 썩어서 그 속에 별별 충들이 생겨서 서로 파먹고 수만 마리가 웅성거리는 모습들을 가서 보고 그것을 기억해서 관()을 하기도 한다.특히 이성간에 탐욕이 많은 사람들은 그런 관법(觀法)을 짓도록 해서 옆에 예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의 얼굴에서 온갖 벌레가 득실거리고 흉칙한 벌레들이 온 몸을 파먹고 이리저리 설치는 것을 대입시켜서 보게 했다. 그러면 정나미가 싹 떨어져 버린다.

부처님 근본불교에서는 그런 관법을 많이 가르쳤다. 그것이 잘못되어서 자기 신체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고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았다.

중도적으로 하지 않고 너무 한쪽으로만 계속 마음이 몰입하다 보면 이 더러운 몸뚱이 이까짓 거 놔두면 뭐하나. 얼른 없애버려야지하고 팍 죽어버리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종종각관이라는 것이 그런 관법인데 초기불교에 많았다.

우리나라의 선방에도 앉아 있는 사람중의 3, 40 퍼센트가 간화선이 아닌 위파사나를 한다는 말이 2년 전에도 떠돌았다. 지금은 더 할 것이다. 그런 전통 관법으로

정치일체제잡염고(淨治一切諸雜染故):마음에 뒤섞이고 물든 욕망들을 깨끗이 다스리는 연고며

욕진지의무명번뇌(欲盡知依無明煩惱):욕진지 이 무명번뇌와, 무명에 의지한 번뇌라고도 볼 수가 있는데, 무엇엔가 의지한 무명번뇌라고 보는 것이 좋다.

애상응번뇌(愛相應煩惱)하야 : 애착하고 상응하는 번뇌를 다 알아서

단일체제유취번뇌결고(斷一切諸有趣煩惱結故): 모든 제유의 갈래, 삶의 방법들의 번뇌의 매듭을 끊기 위한 연고다. 사람마다 다 삶의 방법이 있다. 지옥 아귀 축생 인도 천도 아수라 이런 식으로 육도로 이야기 하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모든 일체 제유의 번뇌의 매듭을 끊기 위한 연고로 발심하였다.

번뇌를 맺을 결()자로 표현을 한다. 결박이라는 뜻이다. 불교는 교리적으로 그런 것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번뇌는 매듭이다. 오랏줄에 묶인 것과 똑같다. 어떤 생각이 한 번 일어나면 그 사람에겐 그 생각이 오랏줄이고 결박이다. 그래서 번뇌를 끊는다는 말이 나온다. 옆에서 제3자가 보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결박되어서 끙끙 앓고 있고 병이 들고 잠도 못자고 입맛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렇게 스스로 결박을 당한다. 그것은 전부 마음의 문제다. 그것을 끊기 위한 까닭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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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진지탐분번뇌(欲盡知貪分煩惱): 탐의 어떤 부분번뇌와. 탐도 얼마나 많은가.탐이라고 하는 분야

진분번뇌(瞋分煩惱): 진애라고 하는 분야

치분번뇌(癡分煩惱): 치라고 어리석음이라고 하는 분야

등분번뇌(等分煩惱): 등이라고 하는 분야, 등은 평등하다고 하는 입장인데 이것도 또 번뇌의 일종이다.

단일체번뇌근본고욕실지아번뇌(斷一切煩惱根本故欲悉知我煩惱):그런 번뇌를 다 알아서 일체 번뇌의 근본을 끊기 위한 연고며 또 아라고 하는 번뇌, 모든 번뇌의 근본은 아번뇌다. 나라고 하는 것에서 번뇌가 일어난다.

그래서 초기 불교에는 무아를 그렇게 많이 주장하였다.

우리도 반야심경을 외우면서 끊임없이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미촉법을 외우는데 그것이 전부 나는 없다라고 하는 무아다. 근본 불교에서는 무아가 빼놓을 수 없는 교리다. 모든 번뇌는 이 아가 중심이다. 그런데 진짜 보살의 무아는 어떤 무아인가? 보살의 무아와 근본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는 전혀 다르다.

소승불교, 근본 불교를 터득한 사람의 무아는 자기가 편하기 위한 무아다. 보살의 무아는 중생이 편하도록 하기 위한 무아다. 보살에게 자기는 이미 없다.

정행품에서 보았듯이 보살은 말을 할 때도 중생을 위해서 하고, 자나깨나 앉으나 서나 가나 오나 오직 중생만을 위해 행한다.그래서 항상 당원중생(當願衆生)’이라는 말이 꼭 붙었다. 보살이 누구와 대화를 할 때도 마땅히 중생이 이렇게 되기를 원할지니라라고 발원 하였었다.

부처님의 화두는 중생이다. 그러니까 나라고 하는 자기가 없는 것이다. 원력이 큰 사람, 봉사활동 잘하고 보살심 실천 잘하는 사람은 정말 자기 걱정은 하나도 안한다. 그런데 자기가 잘 사는가 해서 그 집에 가보면, 자신의 일도 태산처럼 밀려있다. 그래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 사람에겐 오로지 다른 사람 도와줄 생각밖에 없는 것이다. 자기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보면 우습지도 않다. ‘자기 집 꼬라지를 저렇게 해놓고 밖으로만 봉사한다고 돌아다닌다고 가소롭게 본다.

그러나 보살은 그렇게 깨끗하게 잘 치우고, 자기 일 잘하고, 잘 먹고, 등 따시게 자서 좋을 것이 뭐 있느냐, 어차피 썩을 몸, 봉사하다 가는 것이지라고 생각한다.

아소번뇌(我所煩惱): 아소는 나의 것인데, 나의 것이라고 하는 번뇌와

아만번뇌(我慢煩惱)하야 : 아만번뇌와

각오일체번뇌(覺悟一切煩惱)하야 : 일체 번뇌를 다 알아서

진무여고(盡無餘故): 다하여 남음이 없는 연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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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지종전도분별생근본번뇌(欲悉知從顚倒分別生根本煩惱): 분별로부터 나는 근본번뇌와

수번뇌(隨煩惱): 따라서 오는 번뇌와. 근본번뇌는 탐()()()와 만()(). 교만하고 의심하는 것 이 근본 번뇌이고 수번뇌는 그 근본 번뇌에 따라오는 또 많은 번뇌들이다. 기본 교리쪽으로 들어가면 번뇌만 해도 상당히 종류가 많다.

인신견생육십이견(因身見生六十二見)하야 : 신견을 인해서 육십이견을 내며. 자기의 어떤 몸을 통해서 생긴 소견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육십 두 종류의 소견이 또 일어난다. 이런 것을 다 알아서

조복일체번뇌고(調伏一切煩惱故): 일체 번뇌를 조복하기 위한 연고며

욕실지개번뇌(欲悉知蓋煩惱): 덮을 개()자다. 누구나 자기 허물은 덮는 것을 좋아하고 남이 아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 것이 덮는 것, 개번뇌다. 그런 번뇌와

장번뇌(障煩惱)하야 : 장애하는 번뇌, 선한 일을 장애한다든지 하는 장번뇌를 다 알아서

발대비구호심(發大悲救護心)하고 : 큰 자비로써 구호하는 마음을 발하고

단일체번뇌망(斷一切煩惱網)하야 : 일체 번뇌의 그물을 끊어서

영일체지성청정고(令一切智性淸淨故):일체 지성이 청정하게 하기 위한 까닭으로

발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니라: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는 것이니라.

중생의 번뇌를 잘 알아야지 보살이 중생제도를 제대로 잘 하는 것이다. 그래서 중생의 번뇌이해와 초발심 공덕 을 말했다.

출처 : 염화실
글쓴이 : 慧明華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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