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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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전에서 문수선원까지 차로 큰스님을 모셔온 능주스님이 계단을 오르시는 큰스님을 뒤에서 밀어드렸다.
“누가 받쳐주나 보다? 힘이 덜 드네?”
하고 큰스님이 계단을 오르면서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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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말에는 문수경전연구회 스님들의 성지순례 단체여행이 있었다. 여행을 다녀오신 스님들이 큰스님께 와서 인사를 하셨다. 스님들은 큰스님과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신청을 많이 하셨는데 떠나는 날 아침 큰스님이 감기몸살이 심하셔서 같이 떠나시지 못했다고 했다.
“내가 아주 실망이 컸다. 내 자신이 그때 가서 왜 그리 아파가지고.” 하시는 큰스님께 스님들도 “허탈정도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공항에서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들을 이야기 하셨다.
“상황이 그렇게 하루 일을 몰라요. 짐 다 싸놓고 몇 날 며칠, 거기다 뭐 넣어라 뭐 넣어라 그래 놓고는 정작 떠나는 순간에 못 떠나고.” 라고 하시는 큰스님께
“그런데 버스를 여섯 시간씩 타는 날도 있어서 큰스님 안오시기를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하고 스님들이 위로하셨다.
아름다운 경치를 많이 본 여행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이동 시간이 긴 구간들이 있었다고 했다. 6시간 버스이동은 큰스님께는 너무 무리한 일정이다.
“화엄성중들이 병을 딱 내가지고 못가게 한 모양이다.”라고 큰스님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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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화실 영상일기방에는 큰스님께 보여드리려고 귀국하자마자 용학스님이 사진을 올렸고, 큰스님은 꼼꼼하게 사진을 보신 모양이었다. 경치가 아름다운 육지 하롱베이며, 진국사, 보리사 라고 하는 불교 사찰 두 군데를 탐방한 이야기들을 스님들과 마치 다녀온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 하셨다. 그 중 한 사찰에서는 고아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비구니 스님 한 분께서 비상금을 털어 보시를 하고 오신 이야기까지도 다 알고 계셨다.
“넣어간 비상금이 딱 생각나서 얼마나 감사한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쓰는데 복 받게 되어 있다.”
“지금 복 받고 있습니다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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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가 끝나고 스님들이 다 나가신 후에 큰스님은 다시 책을 손에 드시면서 “나는 내한테 부여된 본분에만 충실해야 돼.”하셨다. 요즘 공부를 너무 많이 하셔서 눈이 피로하지 않느냐고 여쭤보니 눈이 피로하지 않도록 자주자주 쉬어주면서 공부하고 있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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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매화소식을 묻는 이들에게 큰스님은, 화엄전 매화는 조금 필락말락 빨리 필 건 일 주일 안에 필 것 같고, 한 열흘 후쯤 되면 만개까지는 아니어도 화엄전을 장엄할 것이라고 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十七
初發心功德品 第十六
二. 法慧菩薩의 說法
오늘 화엄경 공부는 초발심공덕품 449페이지(민족사 刊) 중간부터 할 차례다.
‘발심’은 불교의 수많은 용어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낱말이다. 어찌보면 제일 기본이 되고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불교에 호감을 갖지 않으면 불법에 대한 이해도 없다. 뿐더러 불교를 믿는 일도 없고, 특히 수행을 전문으로 하겠다고 하는 수행자가 되는 일은 더욱 더 엄두도 못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에 대한 신심을 처음 일으키는 발심이 불교수행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다.
초발심공덕품에서는 발심의 공덕과 여러가지의 경우를 비교하고 있다. 그동안 지루할 정도로 ‘이 비유는 그만두고’라고 하면서 ‘이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그러니 이 비유는 그만 제쳐두고 다시 또 새로운 비유를 들겠다’라고 하는 것을 열 번이 넘도록 반복하였다.
‘발심의 공덕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위대하고 위대하다’고 하는 내용이다. 경전에서 이렇게까지 발심에 대한 공덕을 찬탄하는 것만 봐도 발심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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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시 화엄경을 공부하겠다고 하는 한 마음을 내서 4년이라는 세월동안 꾸준히 공부를 해왔다. 이제 방대한 화엄경이 4분의 1 정도 끝나가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그렇다. 한 가지 뭔가를 할 때에는 최초에 누군가 한 마음을 일으킨 공덕이 있는 것이다. 절을 세우는 일도 그렇고, 우리나라에 불교를 들여오는 일도 그렇다.
한국에 불법을 전해서 1700여년이라는 세월동안 사람들에게 참지혜의 눈을 뜨게 해주는 기초가 된 것도 누군가의 발심에 의해서였다. 좋은 마음을 맨 처음 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
일생동안 우리는 수많은 마음을 내고 무너뜨리고 끝없는 발심을 하고 그 마음이 사라졌다. 그렇게 마음이 일어나고 무너지는 일의 연속이 인생이다. 그중에서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이라고 하는 가장 높은 깨달음에 대한 마음을 낸다는 것,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신 그 경지를 내가 이루겠다고 하는 그 마음을 낸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불법에 귀의하고, 세상에 가장 위대한 가르침인 화엄경을 공부하겠다고 하는 마음을 낸 것 역시 그 어떤 마음보다도 수승한 마음이다. ‘나는 화엄경 공부를 해서 화엄경을 마치겠다고 마음을 낸 사람이다. 함부로 건들지 마라’라고 스스로 자랑을 해도 충분하다. 발심의 공덕이 그 정도다.
(2) 發心과 妙果
以發心故로 常爲三世一切諸佛之所億念하며 當得三世一切諸佛의 無上菩提하며 卽爲三世一切諸佛이 與其妙法하며 卽與三世一切諸佛로 體性平等하며 已修三世一切諸佛의 助道之法하며 成就三世一切諸佛의 力無所畏하며 莊嚴三世一切諸佛의 不共佛法하며 悉得法界一切諸佛의 說法智慧니 何以故오 以是發心으로 當得佛故니라
“발심하였으므로 항상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의 생각하심이 되며,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보리를 얻을 것이며,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이 묘한 법을 주실 것이며, 세 세상 모든 부처님과 더불어 성품이 평등하며,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의 도(道)를 돕는 법을 이미 닦았으며,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의 힘과 두려울 것 없음을 성취하며, 세 세상 모든 부처님의 함께하지 않는 불법을 장엄하며, 법계의 모든 부처님의 법문 말씀하는 지혜를 모두 얻을 것이니, 왜냐하면 이렇게 발심함으로써 마땅히 부처가 될 것인 연고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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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심(發心)과 묘과(妙果) :발심으로 인하여 묘과(妙果)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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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에 대해서 마음을 냈다는 것은 보리심을 발했다는 말이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개나 고양이나 소나 말 같은 동물을 보면 “발보리심 해라”라고 으레 말해준다. 보리심을 발한다는 것이 값지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비록 나의 보리심이 온전치는 못해도 동물들을 볼 때는 발보리심을 해서 동물의 업보에서 벗어나라고 법문을 해주는 것이다.
‘발보리심 하라’고 하는 그 한마디가 발심이고, 동물의 업보를 벗어나게 하는 값진 일이다.
여기는 그러한 발심에 대한 미묘한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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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발심고(以發心故)로 :발심을 한 까닭에
상위삼세일체제불지소억념(常爲三世一切諸佛之所億念)하며: 항상 삼세 일체 모든 부처님이 억념하는 바가 된다. 삼세 모든 부처님이 나를 기억해 준다.
친구가 나를 기억해주는 것도 아주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주지(住持) 잘하는 요령 중에는 신도들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그 집 사정을 알아주고 그 집 가족들 생일을 기억해 주는 일이 있다. 전에 서울에서 방울스님이라고 하는 이가 있었다. 원래 불명은 홍도스님인데 키가 작아서 별명이 방울스님이다. 그 스님은 신심이 아주 장한 분이었다. 절의 축원카드에는 가족들 생일을 적는데, 방울스님은 평생동안 신도 집안의 생일을 전부 기억해서 오늘 그 집에 누구의 생일이 들었다 하면 어떻게 하더라도 조그맣게 시루떡을 해서 새벽에 배달을 하곤 했다.
예를 들어서 절의 신도가 백 명이라면 백 가족인데, 백 가족 중에 그날 생일을 맞은 사람이 겹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만약 오늘 열 명의 생일이 중첩됐다면 스님은 열 시루의 떡을 해서 차에 싣고 새벽에 신도들의 집을 돌았다. 그것을 받은 신도들은 얼마나 감동하겠는가.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주 감동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스님들이 이런 비결을 한 번 활용해 보면 좋을 것이다.
주지스님이 우리 집안 가족의 생일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큰 영광이다. 그런데 여기는 삼세 일체 제불의 기억하는 바가 된다고 하였다. 발심하는 사람에 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당득삼세일체제불(當得三世一切諸佛)의 :마땅히 삼세일체 제불의
무상보리(無上菩提)하며 : 최상의 보리를 얻게 된다. 발심을 통해서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을 나도 역시 깨닫게 된다.
즉위삼세일체제불(卽爲三世一切諸佛)이: 그리고 곧 삼세 일체 제불의
여기묘법(與其妙法)하며: 그 묘법을 줌이 된다. 모든 부처님이 터득하신 미묘한 법을 비장해 두었다가 발심한 사람에게 주는 것이다. 사실 발심을 하면 부처님이 갖다 주기도 전에 어느새 그 묘법이 내 마음 속에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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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여삼세일체제불(卽與三世一切諸佛)로 : 삼세 일체 제불로 더불어
체성평등(體性平等)하며 : 체성이 평등하다. 부처님과 몸이 같고 성품이 같다.
체성이 같아서 동일성이며 불이성(不二性)이다. 사실은 삼세일체제불과 본래 둘이 아니다.
그런데 그 둘이 아닌 것이 확연이 드러난 것이 체성이 평등하다는 것이다.
이수삼세일체제불(已修三世一切諸佛)의: 삼세일체제불의
조도지법(助道之法)하며 : 조도지법을 이미 수행한 것이 된다. 37조도품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도를 돕는 이치들, 도를 돕는 가르침을 이미 다 닦은 것이 된다. 발심하면 37조도품을 일일이 닦을 필요가 없다.
발심만 제대로 하면 이미 다 완성한 것이다.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한다. 처음 발심할 때 바로 이미 정각은 그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의상스님의 법성게에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是便正覺)’ 다음 구절이‘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다. 생사열반은 하나다. 본래 하나인데 우리는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데 발심을 하면 생사와 열반이 하나인 것도 수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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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취삼세일체제불(成就三世一切諸佛)의 : 삼세일체 제불의
역공무소외(力無所畏)하며 : 력과 무소외, 구체적으로 법수를 말하면 십력과 사무소외다.
십력과 사무소외를 성취하게 된다.
장엄삼세일체제불(莊嚴三世一切諸佛)의: 그리고 삼세일체제불의
불공불법(不共佛法)하며 : 불공불법은 부처님의 공불법인데 숫자로 따지자면 18불공법(不共法)이다. 부처님만이 갖는 특수한 18가지 법까지도 장엄하게 된다.
발심속에 그것이 다 들어 있어서 18불공도 다 갖추게 된다는 것이다.
몇 번 비유를 들었지만 예를 들어서 우리가 부산서 서울 에 가려고 마음을 딱 내서 표를 사고 차에 올라타면 그때는 책을 봐도 서울에 도착하고, 잠을 자도 서울에 도착하고, 누구와 잡담을 해도 서울에 도착한다.
발심은 그런 것이다. 그 가운데 이미 다 갖춰져 있다. 그러니까 18 불공법이 전부 그 속에 다 장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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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득법계일체제불(悉得法界一切諸佛)의 : 법계일체 모든 부처님의
설법지혜(說法智慧)니: 설법하는 지혜를 전부 얻게 된다. 그전에 나는 어떤 스님이 법문을 잘하려고 시내 웅변학원에 가서 웅변을 배우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있다. 나도 한 번 다녀볼까 하는 부러운 마음도 생겼는데, 법문하는 스님드이 기술적으로 그런 것들도 좀 갖춰 놓으면 좋다.
포교하는 데는 그런 것 까지 신경을 쓴다. 사실 그렇게 신경을 써야한다.
포교 전문가들 중에 어떤 거사는 스님들이 여름에 법문을 하다가 손을 한번 들면 장삼이 내려오면서 하얀 팔이 살짝 드러나 보이는 것이 그렇게 근사하다고 ‘내가 장삼을 입었으면 한 번씩 팔을 들텐데’ 하면서 스님들도 그렇게 하라고 일러주기도 하였다.
그렇게 손 한번 드는 것 까지도 전부 연출을 해야 된다.
사실 스님들은 연출이 너무 없다. 무턱대로 그냥 법만 전하려고 하는데 그 법을 전하는 그릇, 수단, 방법, 이런 것도 마음에 담고 좀 연구를 해두어야 할 문제들이다.
손 한 번 들고, 소리 한 번 치고, 음성 한 번 높이고, 낮추고, 이런 것들은 사실 배워서라도 연출을 해야 조금이라도 효과가 더 있다.
물론 그 전에 법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얼마나 자기가 신심을 가지고 불법에 임하는가 하는 것은 기본이다.
내가 가끔 일본의 500년 전 책인 도연초(徒然草)를 자주 인용한다. 도연초라는 수필은 일본 교과서에도 나오고 일본에서는 이 책을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수두룩 하다고 한다.
거기 내가 재미있게 읽어서 지금도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젊은 스님이 출가를 해서 ‘앞으로 내가 진로를 어떻게 정할 것인가’살펴보다가 법사가 근사해 보여서 ‘나도 법사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오백 년 전이니까 법사는 말을 타고 모셔가서 법문을 하고 대접을 받으며 돌아오는 것이 좋아보였다. 이 젊은 스님이 법사가 되려면 말을 타야 하니까 말타는 것부터 배워야겠다고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승마만 열심히 배우다가 그만 공부는 놓쳐버렸다.
선후(先後)가 뒤바뀌어서 신세를 망쳤다는 것이다.
유교에도 ‘지소선후(知所先後)면 즉근도의(則近道矣)’라는 말이 있다.
선과 후, 앞에 해야할 일과 뒤에 해야할 일을 제대로 알면 그 사람은 도에 가깝다는 것이다.
일머리를 제대로 분별해서 할 줄 아는 사람은 노력을 별로 안들이고도 일을 잘 한다. 일머리를 제대로 모르는 사람은 했던 일을 또 하고, 이미 다 해놓은 일도 고치다가 더뎌지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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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고(何以故)오: 왜 그러냐
이시발심(以是發心)으로: 이러한 발심으로 말미암아서
당득불고(當得佛故)니라: 마땅히 부처가 되기 때문이다. 부처라는 말 속에 답이 다 있다. 모든 조건들이 부처라는 말속에 다 포함 되는데, 부처가 되는 것 역시 발심 덕분이다.
발심을 안하고 부처되는 사람은 없다.
이 한 단락이 발심의 묘과를 잘 표현했다. 이러한 것들이 발심을 통해서 저절로 들어온다고 하는 것이다. 신심이 나는 내용들이다.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법문을 할 때도 마음을 내는 발심을 강조해야 한다.
(3) 佛果同等
應知此人은 卽與三世諸佛同等이며 卽與三世諸佛如來境界平等이며 卽與三世諸佛如來功德平等이며 得如來一身無量身이 究竟平等한 眞實智慧니라
"이 사람이 곧 세상 부처님과 평등하리니, 세 세상 부처님 여래의 경계와 평등하며, 세 세상 부처님 여래의 공덕과 평등하며, 여래의 한 몸과 여러 몸이 평등하고 진실한 지혜를 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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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동등(佛果同等):부처님과 평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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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지차인(應知此人)은 : 응당히 알아라 이 사람은
즉여삼세제불동등(卽與三世諸佛同等)이며 : 곧 삼세제불로 더불어 같다.
즉여삼세제불여래경계평등(卽與三世諸佛如來境界平等)이며 : 곧 삼세제불 여래와 더불어 그 경계가 평등하고
즉여삼세제불여래공덕평등(卽與三世諸佛如來功德平等)이며 : 또 삼세제불로 더불어 여래공덕이 평등하다.
득여래일신무량신(得如來一身無量身)이 : 여래일신과 무량신이
구경평등(究竟平等)한 : 구경에 평등한
진실지혜(眞實智慧)니라 : 진실 지혜를 얻게 된다. 일신(一身)이 다신(多身)이고 다신이 일신이다. 법성게에는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라고 표현했는데, 한 지혜가 많은 지혜를 포함하고 있고 또 한 몸이 많은 몸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한 세계 속에 또 많은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
내가 자주 세포의 예를 든다. 하나의 세포 속에 그 전체가 온전히 갖추어져 있다. 사람의 육신에는 60조의 세포가 있는데 그중에 한 개의 세포만 취해도 사람을 온전하게 다시 재현할 수 있다. 피 세포 따로, 뼈세포 따로, 머리카락 세포, 코 세포, 눈세포, 안이비설신의 세포를 따로 따로 넣어서 한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단 한 개의 작은 세포속에 인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조건들이 다 포함된다. 신기하다. 그러한 사실을 이 시대는 과학으로써 다 안다. 예를 들어서 달나라에 가서 흙 한줌만 가지고 와도 그 달이 언제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렀고 하는 역사를 환히 다 안다. 세상 지식이 발달할 대로 발달해서 대단한 경지에 올라 이런 것을 다 안다고 하지만, 화엄경에는 이미 ‘일미진중함시방’이라는 말이 나와 있다. 여래의 일신과 무량신, 한 몸과 한량없는 몸이 끝내는 평등하고 같은 것이 진실지혜라고 이렇게 나와 있다.
대승불교가 부처님 열반 이후 500여년 경에 발생했다손 치더라도 이미 2천여년 전에 화엄경에 이러한 이야기를 해 놓은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4) 能作佛事
纔發心時에 卽爲十方一切諸佛의 所共稱歎하며 卽能說法하야 敎化調伏一切世界所有衆生하며 卽能震動一切世界하며 卽能光照一切世界하며 卽能息滅一切世界諸惡道苦하며 卽能嚴淨一切國土하며 卽能於一切世界中에 示現成佛하며 卽能令一切衆生으로 皆得歡喜하며 卽能入一切法界性하며 卽能持一切佛種性하며 卽能得一切佛智慧光明이니라
"금방 발심하였을 적에, 곧 시방 모든 부처님의 함께 칭찬함이 될 것이며, 곧 능히 법을 말하며, 온갖 세계에 있는 중생들을 교화하고 조복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를 진동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를 비출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에서 나쁜 갈래의 고통을 멸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국토를 깨끗이 장엄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세계에서 성불(成佛)함을 보일 것이며, 곧 능히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환희하게 할 것이며, 곧 능히 일체 법계의 성품에 들어갈 것이며,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종성(種性)을 지닐 것이며, 곧 능히 일체 부처님의 지혜 광명을 얻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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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작불사(能作佛事):능히 불사(佛事)를 짓는다
*
재발심시(纔發心時)에: 막 발심했을 때
즉위시방일체제불(卽爲十方一切諸佛)의 : 발심만하면 일체 시방 부처님들이
소공칭탄(所共稱歎)하며 : 함께 칭송하고 찬탄한다. 시방일체제불이 다 찬탄하는 것이다. 마음만 내면 저절로 찬탄하게 되어 있다.
누가 화엄경 열심히 공부하겠다고 하면, 화엄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칭찬할 수 밖에 없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길을 가겠다고 마음 낸 사람을 칭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사람을 위해서 뭐든지 다 해준다.
심지어 다도공부를 하는 사람도 자기가 차에 대해서 상당히 마음을 많이 쓰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차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차도 사다주고 다기도 사다주고 그동안 사놨던 아주 값진 다기도 그냥 막 준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해 주는 것이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다. 자기가 마음 쓰는 일에 새로운 사람이 동참을 하게 되면 그와같이 애착을 한다. 부처님도 그 얘기다. 시방일체 제불이 함께 칭찬하는 바다.
즉능설법(卽能說法)하야 : 곧 능히 설법해서
교화조복일체세계소유중생(敎化調伏一切世界所有衆生)하며 : 일체세계 소유 중생을 교화하고 조복한다. 잘 가르쳐서 조복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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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능진동일체세계(卽能震動一切世界)하며 : 곧 능히 일체세계를 진동 시킨다. 지진을 일으키듯이 세계를 뒤흔들고 진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감동을 준다는 뜻이다. 일체세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즉능광조일체세계(卽能光照一切世界)하며 : 또 일체 세계를 광명으로 환히 비춘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대한 마음, 보리심에 대한 마음을 제대로 낸 사람은 세상의 빛이다. 세상의 광명이다. 세상의 모범임은 말할 것도 없고, 그렇게 빛나고 좋을 수가 없는 것이다.
즉능식멸일체세계제악도고(卽能息滅一切世界諸惡道苦)하며 : 일체세계의 모든 악도의 고통을 곧 쉬어서 소멸하게 한다. 한 사람이 제대로 발심을 하면 그 힘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준다.
나는 대만의 비구니스님인 증엄스님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주 칭찬한다. 그 한 스님이 발심해서 무수한 사람들의 고통을 소멸했다.
우리나라 음성의 오웅진 신부도 처음에 어떤 계기로 발심을 하여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고 마음을 내서 지금 어마어마한 봉사활동을 하고 사회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런 것이 마음 한 번 딱 내어서 일체 세계의 모든 악도고를 쉬어서 소멸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이 다 현실에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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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능엄정일체국토(卽能嚴淨一切國土)하며 : 또 일체 국토를 곧 능히 청정하게 장엄하며
즉능어일체세계중(卽能於一切世界中)에 : 일체세계가운데서
시현성불(示現成佛)하며: 성불함을 시현한다. 성불한 것을 바로 나타내 보인다.
즉능령일체중생(卽能令一切衆生)으로:일체중생으로 하여금 곧
개득환희(皆得歡喜)하며: 환희를 얻게 한다.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환희심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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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능입일체법계성(卽能入一切法界性)하며 : 일체 법계의 성품에 곧 능히 들어간다. 일체 법계와 하나가 된다. 발심을 하면 일체법계와 더불어 동일한 체성이 된다.
본래 ‘천지(天地)는 여아동근(與我同根)이요 만물(萬物)은 여아일체(與我一體)다’라고 하였다.
천지는 나로 더불어 같은 뿌리고 만물은 나로 더불어 한 몸이다. 본래 그렇게 되어 있다. 능입이라고 하는 들 입(入)자는 그러한 사실을 실현하는 것이다.
즉능지일체불종성(卽能持一切佛種性)하며 : 일체 불종성, 부처의 종자성품을 능히 가지게 되며
즉능득일체불지혜광명(卽能得一切佛智慧光明)이니라: 일체 부처님의 지혜광명을 능히 얻게 된다. 발심을 통해서 이러한 것들이 전부 갖추어 지고, 전부 무장이 된다.
그것이 능히 불사를 짓는 것이다.
(5) 大智慧現前
此初發心菩薩이 不於三世에 小有所得이니 所謂若諸佛과 若諸佛法과 若菩薩과 若菩薩法과 若獨覺과 若獨覺法과 若聲聞과 若聲聞法과 若世間과 若世間法과 若出世間과 若出世間法과 若衆生과 若衆生法에 唯求一切智일새 於諸法界에 心無所着이니라
“처음 발심한 보살은 삼세에 대하여 조금도 얻음이 없나니, 이른바 부처님이나 부처님 법이나 보살이나 보살법이나 독각(獨覺)이나 독각법이나 성문(聲聞)이나 성문법이나 세간(世間)이나 세간법이나 출세간이나 출세간법이나 중생이나 중생의 법이니라. 오직 온갖 것 아는 지혜를 구할 뿐이므로 모든 법계에 마음이 집착하지 않느니라.”
*
대지혜현전(大智慧現前): 큰 지혜가 앞에 나타남
*
차초발심보살(此初發心菩薩)이 : 이 초발심보살이
불어삼세(不於三世)에 : 삼세에
소유소득(小有所得)이니: 조금 얻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초발심보살은 과거 현재 미래의 적은 소득을 바라고 발심하는 것이 아니다
소위약제불(所謂若諸佛)과 : 소위 약제불과
약제불법(若諸佛法)과 : 약제불법과
약보살(若菩薩)과 : 보살과
약보살법(若菩薩法)과 : 보살법과
약독각(若獨覺)과 : 독각과
약독각법(若獨覺法)과 : 독각법과
약성문(若聲聞)과 : 성문과
약성문법(若聲聞法)과 : 성문법과
약세간(若世間)과 : 세간과
약세간법(若世間法)과: 세간법과
약출세간(若出世間)과 : 출세간과
약출세간법(若出世間法)과 : 출세간법과
약중생(若衆生)과: 중생과
약중생법(若衆生法)에: 중생법에
유구일체지(唯求一切智)일새 : 오직 일체 지혜를 구할새, 거기서 일체 지혜를 구하지만
어제법계(於諸法界)에: 그러면서도 그 모든 법계에
심무소착(心無所着)이니라: 마음에 집착하는 바가 없다.
대지혜가 현전해야 그 모든 것을 아우른다는 뜻이다.
부처님과 보살과 독각과 성문과 세간과 출세간과 중생과 중생법과 이 모든 것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아울러 내가 거기에 어떤 지혜로써 현현한다는 뜻이다.
三, 十方世界의 震動과 供養
爾時에 佛神力故로 十方各一萬佛刹微塵數世界가 六種震動하니 所謂動과 遍動과 等遍動과 起와 遍起와 等遍起와 踊과 遍踊과 等遍踊과 震과 遍震과 等遍震과 吼와 遍吼와 等遍吼와 擊과 遍擊과 等遍擊이요 雨衆天華와 天香과 天末香과 天華鬘과 天衣와 天寶와 天莊嚴具하며 作天妓樂하며 放天光明과 及天音聲하니라
“이때 부처님의 신통한 힘으로, 시방에 각각 일만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 같은 세계가 여섯 가지로 진동하니, 이른바 흔들흔들 두루 흔들흔들 온통 두루 흔들흔들, 들먹들먹 두루 들먹들먹 온통 두루 들먹들먹, 두루 울쑥불쑥 온통 두루 울쑥불쑥, 우르르 두루 우르르 온통 두루 우르르, 와르릉 두루 와르릉 온통 두루 와르릉, 와지끈 두루 와지끈 온통 두루 와지끈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하늘꽃, 하늘향, 하늘가루향, 하늘화만(華鬘), 하늘옷, 하늘보배, 하늘장엄거리를 내리며, 하늘풍류를 연주하고, 하늘광명을 놓으며, 하늘음성을 내었다.”
*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진동(震動)과 공양(供養): 시방세계가 진동하고 공양을 일으키다
*
이것은 여러 번 나왔지만 육종 십팔상의 진동과 공양에 대한 이야기다. 으레 큰 법이 설해지면 그 큰 법의 효과와 또 그 큰 법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충격과 감동이 있다. 좋은 노래 한 소절을 들어도 기립 박수를 치고 야단법석을 하는데 하물며 초발심 공덕에 대한 내용은 어마어마하여서 정말 감동할 내용들이었다. 10년 동안 가문 논 밭에 단비가 내려서 쑥쑥 스며들듯이 이 법문의 내용이 우리의 가슴에 스며든다면 정말 엄청난 감동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법문을 많이 들어서인지,혹은 받아들일 만한 흡입력이 부족해서 인지 아직 그렇게 큰 감동을 받을 마음의 토양이 갖춰져 있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는 이러한 법문을 듣고 난 후의 진동과 공양에 대해서 나온다.
*
이시(爾時)에 : 그때에
불신력고(佛神力故)로 :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시방각일만불찰미진수세계(十方各一萬佛刹微塵數世界)가 : 시방에 각각 일만불찰미진수세계가
육종진동(六種震動)하니: 육종진동하니
*
소위동(所謂動)과 : 소위 동과
변동(遍動)과 : 두루두루 움직임과
등변동(等遍動)과 : 평등하게 두루 움직임과
기(起)와 :아래서 위로 솟는 것이다.
변기(遍起)와
등변기(等遍起)와
용(踊)과 : 아래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솟는 것이다.
변용(遍踊)과
등변용(等遍踊)과
진(震)과 : 흔들리는 것이다. 진동
변진(遍震)과
등변진(等遍震)과
후(吼)와 : 소리가 나는 것이다. 부르짖는 소리와
변후(遍吼)와
등변후(等遍吼)와
격(擊)과 : 사정없이 산과 산이 부딪치는 모습이다.
변격(遍擊)과 :변격과
등변격(等遍擊)이요 : 등변격, 이것이 6종 18상이다.
우리 사람의 삶의 영역은 결국 육근(六根)과 육근의 대상인 육진(六塵: 육경(六境)과 동일), 육근과 육진과의 관계속에 일어나는 인식작용인 육식(六識) 이라고 하는 18계로 되어 있다.
이 18상이라고 하는 것이 결국 우리 삶의 전영역이다.
여기에서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의(意) 6근을 빼버리거나 6근의 대상인 색(色) 성(聲)향(香) 미(味) 촉(觸) 법(法) 육진을 빼버리면 아무 것도 없다.
또 6진과 6근의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인식작용인 안식(眼識) 이식(耳識) 비식(鼻識) 설식(舌識)신식(身識) 의식(意識)인 육식을 빼버리고 우리의 삶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 중에서 6근이 그 근본이다. 6근이 있어서 6근의 대상이 있고, 그 대상과의 관계속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마음 작용들이 엮어져서 돌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삶이라는 것이 그렇게 돌아간다. 그것이 6종 18상이다.
그 6종 18상이 초발심 공덕의 내용을 듣고 감동이 일고 전율이 일어나서 몸둘 바를 모르는 것이다. 그러한 심리적 현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
우중천화(雨衆天華)와 : 그러니까 하늘에서 꽃비가 내린다.
천향(天香)과 : 아름다운 향과
천말향(天末香)과 : 천말향은 가루향이다. 가루향과
천화만(天華鬘)과 : 아주 뛰어난 꽃다발과
천의(天衣)와 : 천의와
천보(天寶)와 : 천보와
천장엄구(天莊嚴具)하며 : 천장엄구 이런 것들을 하늘에서 비를 쏟듯이 쏟아내리며
작천기악(作天妓樂)하며 : 하늘이 기악을 연주하고
방천광명(放天光明)과 : 천광명과
급천음성(及天音聲)하니라: 천음성을 놓더라. 소리도 나고 음악도 나고 온갖 장엄구도 내리고 보석이다 옷이다 꽃다발이다 향이다 이 세상에 값지다고 하는 것은 그냥 다 비가 쏟아지듯이 쏟아지며 공양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초발심 공덕이 얼마나 값진가 하는 것을 짐작케 한다.
四, 十方諸佛의 證明
是時에 十方各過十佛刹微塵數世界外하야 有萬佛刹微塵數佛하시니 同名法慧라 各現其身하사 在法慧菩薩前하야 作如是言하사대 善哉善哉라 法慧여 汝於今者에 能說此法하나니 我等十方各萬佛刹微塵數佛도 亦說是法이며 一切諸佛도 悉如是說이시니라
이때 시방으로 각
각 열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 세계 밖에 일만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 부처님이 계시니, 명호가 같아서 모두 법혜(法慧) 부처님이라, 각각 법혜보살의 앞에 몸을 나타내고 이렇게 말씀하였다. "잘 하는 일이다. 법혜여, 그대가 지금 이 법을 능히 말하나니, 시방에 각각 일만 부처님 세계의 티끌수 같은 우리 부처들도 이 법을 말하며, 일체 부처님들도 다 이렇게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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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방제불(十方諸佛)의 증명(證明): 시방 부처님이 증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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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是時)에 : 그 때에
시방각과십찰미진수세계외(十方各過十佛刹微塵數世界外)하야 : 시방에 각각 십불찰 미진수 세계 밖을 지나서
유만불찰미진수불(有萬佛刹微塵數佛)하시니 : 만불찰 미진수 부처님이 계신다. 우리가 익숙한 말로 십불찰미진수 세계, 만불찰미진수 부처님이라는 표현을 한다.
십불찰미진수세계 하면 간단하게 말해서 지구 열 개를 부수어 작은 먼지를 만들어서 그 먼지 숫자와 같은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만불찰미진수도 역시 그런 소리다.
만불찰미진수 부처님은 지구를 만개를 부셔서 그 작은 먼지 숫자와 같이 많고 많은 부처님이니 그 숫자가 얼마나 많겠는가? 그런데 이것은 무슨 뜻인가? 두두물물이 전부 부처라고 계산을 해도 이 숫자를 다 채우지 못한다.
여기에 200명이나 되는 사람이 모였다. 한 사람 몸에 60조 세포가 있다고 했는데 그것을 낱낱이 다 계산하더라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세포를 다 동원하더라도 만불찰미진수 부처라고 하는 이 숫자를 채우려면 어림도 없다. 다 채우지 못한다.
이 세상 그 어떤 것을 다 동원하더라도 이 숫자를 채울 수 없으니 어떻게 이해해야 되겠는가?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않는 것이나, 있는 것이나 없는 것이나, 모두가 그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라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것도 비로자나 부처님, 보이지 않는 것도 비로자나 부처님, 있는 것도 부처님, 없는 것도 부처님이다. 귀에 들리는 소리도 부처님 설법소리고 들리지 않는 소리도 부처님 설법소리다. 궁극적으로 화엄경은 그런 차원이다. 다른 경전과는 차원이 다르고 다른 불교와도 영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쉽게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그래서 화엄경은 대심(大心)중생이 공부하는 경전이라는 말을 한다. 화엄경은 마음 큰 중생이 공부하는 경전이다.
그런데 자꾸 이런 소리를 듣고 경을 읊조리다 보면 소심중생도 자연스럽게 대심중생이 되어 간다. 화엄경 밖에 대심이 되는 길이 없다. 소심을 그대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큰마음 쓰는 중생이 되도록 하려면 화엄경이라고 하는 이 처방전이 최고다.
십불찰미진수세계를 지나서 만불찰미진수부처님이 계셨다.
동명법혜(同名法慧)라 :그런데 이름이 전부 법혜다.
그 많고 많은 부처님 이름이 전부 법 법(法)자 지혜 혜(慧)자다. 여기에는 우리들 모두가 다 포함된다. 우리 몸속에 있는 60조 세포까지 전부 법혜불이다.
그러니 나도 여러분도 모두 60조 법혜불을 가지고 있다.
이 몸뚱이를 함부로 하면 안된다.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은 전부 60조 법혜불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이다. 침도 함부로 뱉으면 안된다. 그 침속에도 다 무수한 법혜부처님이 계신다. 그냥 어름하게 부처라고 하지 않고 이름까지 법 법(法)자 지혜 혜(慧)자 법혜불이라고 확실하게 정해 주었다. 우리는 법혜라고 하는 부처님을 모시고 있다.
각현기신(各現其身)하사 :각각 그 몸을 나타내서
재법혜보살전(在法慧菩薩前)하야 : 또 법혜보살 앞에 있다. 온통 우주가 만불찰미진수 부처인데 이리 가도 법혜요 저리가도 법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을 다 동원해도 이 숫자에 차지 않는다. 대강 계산해도 그 숫자가 어림도 없다. 그러니까 부처니 보살이니 하는 것은 편의상 이름을 나눴을 뿐이다.모두가 다 법혜다.
참으로 화엄경을 설하신 보살님이나 부처님의 그 정신세계라고 하는 것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차원이다.
작여시언(作如是言)하사대 : 이와 같은 말씀을 하사대
선재선재(善哉善哉)라 : 훌륭하다 훌륭하다
법혜(法慧)여 : 법혜보살이여
여어금자(汝於今者)에 : 그대가 지금, 법혜부처님이 자기도 법혜부처님이면서 말하자면 법혜보살 앞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법혜여 그대는 지금
능설차법(能說此法)하나니 : 능히 이와 같은 법을 설하니, 이와 같은 법이란 여기서는 바로 초발심공덕품이다. 초발심에 대한 공덕을 설하니
아등시방각만불찰미진수불(我等十方各萬佛刹微塵數佛)도 : 나와 같은 시방의 각각 만불찰미진수부처도 또한
역설시법(亦說是法)이며 : 이러한 법을 설하며
일체제불(一切諸佛)도: 일체 모든 부처님도
실여시설(悉如是說)이시니라 : 또한 이와 같이 설함이니라.
법혜보살이 그동안 초발심공덕품을 설했다.
아직 초발심 공덕품이 많이 남아있고, 진짜 좋은 내용은 게송으로 나오지만, 이제 산문으로 설한 내용이 거의 끝나갈 단계라서 이런 표현이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만 초발심공덕을 설한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서 다 같이 초발심공덕을 설한다.
*
화엄경은 도대체 어디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그 실마리를 딱 잡아낼수는 없지만 참 대단하다. 나도 평생 이 화엄경 가지고 살지만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다’ 하는 식으로 그 글의 귀결처를 정확하게 딱 꼬집어 내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화엄경은 너무 좋고, 너무 풍성하고 넉넉하다.
이 내용들은 다른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개개인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왜소하게 생각하고 못나게만 생각하고 업 많은 중생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화엄경을 보니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완전무결한 존재이고 완벽한 존재다. 그리고 아주 넉넉하다. 원만구족한 존재다.
우리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진여생명, 진여불성, 법성진여 뭐라고 해도 좋다. 우리들 그 자체는 이와 같다. 화엄경에서 설명한 대로다. 화엄경이 그대로 우리들 진여생명 자체를 설명하고 있다. 그렇게 보니까 아주 넉넉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니까 화엄경만 제대로 공부해서 여기에 맛을 들이면 세상에 필요한 것도, 부러울 것도, 어떻게 더 해야 되겠다고 하는 것도 없다. 그저 화엄경의 바다속에서 마음껏 헤엄치면 그것으로 만족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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