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生의 뿌리 - 번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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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함』에서의 번뇌론
전호前號에서 12연기 상의 무명과 애愛·취取는 전생과 현생의 번뇌로서, 그것으로 인해 업(行과 有)을 일으키게 되고, 업으로 말미암아 현실의 괴로움을 초래하게 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초기불교 이래 불교의 일차적 목적은 번뇌를 끊어 그것으로부터 비롯된 현실의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열반에 있었으며, 불교의 교학 역시 오로지 번뇌가 생겨나는 조건과 그것의 단멸斷滅에 관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번뇌kres a란 무엇인가? 제론諸論에 따르면, 번뇌란 신심身心의 상속을 어지럽히고 핍박하는 심리작용(心所)을 총칭하는 말로서, 그 자체 염오染汚한 것이면서 그것과 상응하는 온갖 마음과 마음의 작용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번뇌’라고 하였다. 그러나 번뇌라는 말은 『아함』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대신 다양한 이명異名으로 언급하고 있는데, 결結·박縛·수면隨眠·누漏·폭류瀑流·액脈·취取·신계身繫·개蓋·수번뇌隨煩惱·전纏 등이 그것이다.
즉 번뇌는 생을 결박시키는 작용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결’이라 한 것으로, 여기에는 애愛·에迷·만慢·무명無明·견見·취取·의疑·질嫉·간袈의 9결이 있다. 또는 ‘결’을 욕계의 생을 쫓게 하는 것(5順下分結: 有身見·戒禁取·疑·欲貪·瞋迷)과 색계와 무색계를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5順上分結: 色貪·無色貪 ·掉擧·慢·無明)으로 나누기도 하였다.
혹은 동일한 결박의 의미에서 번뇌를 박縛이라고도 하였는데, 여기에는 탐·진·무명의 3박이 있다. 혹은 언제 어디서고 항상 심신의 상속에 수반되어 이를 속박하기 때문에 ‘수면(구역은 使)’이라 한 것으로, 여기에는 욕탐欲貪·진瞋·견見·의疑·유탐有貪·무명無明의 7수면이 있다.
혹은 유정을 무색계 비상비비상처로부터 무간지옥에 이르기까지 생사 중에 유전시키며, 6근을 통해 끊임없이 허물을 누설하게 하기 때문에 ‘누’라고 한 것으로, 여기에는 욕루欲漏·유루有漏·무명루無明漏 3루가 있다.
혹은 세찬 물줄기가 모든 것을 씻어내듯이 번뇌 또한 유정의 선한 품성을 모두 씻어버리기 때문에 ‘폭류’라고 이름한 것으로, 여기에는 욕·유·견·무명의 4폭류가 있다.
혹은 번뇌는 유정을 3계 5취(趣, 지옥 내지 천)와 결합(脈, yoga)시키기 때문에 ‘액’이라 한 것으로, 내용은 4폭류와 동일하다.
혹은 유정으로 하여금 어떤 대상에 집착하게 하기 때문에 ‘취’라고 한 것으로, 여기에는 욕취欲取·견취見取·계금취戒禁取·아어취我語取의 4취가 있다.
혹은 무루의 성도聖道를 가리어 장애하기 때문에 ‘개’라고 한 것으로, 여기에는 욕탐·진에·혼면(閻眠, 혼침과 수면)·도회(掉悔, 도거와 악작 즉 후회)·의疑의 5개가 있다.
2. 아비달마불교의 번뇌론
불타는 어떠한 까닭에서 번뇌를 이토록 다양한 갈래로 설하였던 것인가? 이러한 제 번뇌의 의미는 무엇이고, 상호관계는 어떠한가? 앞(제92호)서 언급하였듯이 불타는 이론가가 아니었으며, 그의 법문 또한 체계적으로 설해진 것이 아니었다. 병에 따라 약을 투여하듯이 그의 말씀 역시 듣는 이에 따라, 그들의 능력이나 근기에 따라 다양한 형식과 내용으로 설해졌던 것으로, 그의 입멸 후 어떤 식으로든 정리되고 해석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아비달마였다.
아비달마불교에서는 『아함』의 제 번뇌설 중 7수면설에 근거하여 그들의 번뇌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그런데 7수면설은 탐貪·진瞋·견見·의疑·만慢·무명의 6수면 중의 ‘탐’을 색·성·향·미·촉의 5욕경欲境을 대상으로 하여 외면적으로 일어나는 욕계 애탐인 욕탐과, 존재 자체를 대상으로 하여 내면적으로 일어나는 색·무색계의 애탐인 유탐으로 나눈 것이다. 즉 어떤 외도들은 바로 이러한 상2계를 해탈의 경지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유탐을 별도로 설정하였던 것이지만, 욕탐이든 유탐이든 애착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그 본질은 동일하다.
6수면설은 다시 그 중의 ‘견’을 유신견有身見·변집견邊執見·사견邪見·계금취戒禁取·견취見取의 다섯 가지로 분별함으로써 10수면으로 전개된다. ‘견(drsti)’이란 의식의 모든 순간에 나타나는 보편적 작용(즉 대지법) 중 ‘혜’로 분류되는 판단작용을 말하지만, 여기서의 ‘견’은 물론 그릇된 견해 즉 염오혜染汚慧를 말한다. 즉 그릇된 견해 역시 확인 판단된 것이기 때문이다.
먼저 유신견이란, 5온에 대한 애탐의 결과인 5취온取蘊을 ‘나’ 혹은 ‘나의 것’이라고 집착하는 염오혜를 말한다. 변집견이란, 바로 그렇게 집착된 ‘나’는 육체와 함께 사멸한다거나 혹은 육체의 사멸과는 관계없이 영원히 지속한다고 집착하는 염오혜을 말한다. 즉 단멸과 상주라는 양극단(邊)에 집착(執)하는 그릇된 판단작용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다.
사견이란 단멸론의 입장에서 업도 업의 과보도 없으며, 해탈도 해탈에 이르는 실천도 없다고 하는 염오혜, 이를테면 인과를 부정하는 극단적인 감각론을 말한다. 계금취란 이와 반대로 자재천自在天 등을 세간의 참된 원인이라 여기거나 고행 등을 참된 수행도라고 여기는 염오혜를 말한다. 그리고 견취는 이상과 같은 저열한 유루의 지식을 뛰어난 지식이라고 집착하여 추구하는 염오혜이다.
이 밖에 ‘탐’은 마음에 드는 대상에 대해 애착하는 의식작용, ‘진’은 마음에 들지 않는 대상을 미워하는 의식작용, ‘만’은 자신의 입장에서 타인을 차별하는 오만의 의식작용, 의疑는 4제의 진리성에 대해 의심하여 확정적 지식을 낳지 못하게 하는 의식작용이며, 무명은 정지正智의 결여로, 알지 못함을 본질로 하는 염오혜이다.
이상의 10수면은 다시 그것이 작용하는 세계 즉 욕·색·무색의 3계界와, 끊어지는 유형(部) 즉 4제 각각에 대한 네 가지 관찰(見, darsana)과 선정을 통한 반복된 관찰 수습(修, bhavana) 등 5가지 유형에 따라 98가지로 확장된다. 유정의 존재 영역이 3계에 걸쳐져 있는 이상 번뇌 또한 그러해야 하며, 동일한 세계에 속한 동일한 번뇌라 할지라도 그것의 대상과 성질이 동일하지 않을 뿐더러 끊어지는 유형 또한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다. 예컨대 같은 탐욕(혹은 무지)이라 할지라도 초등학생의 탐욕과 대학생의 그것은 다르며, 초등학생의 탐욕 역시 그 대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이유에서 유부 아비달마에서는 ‘98수면설’이라고 하는 대단히 번쇄한 번뇌의 이론을 전개시키고 있는데, 이에 따라 수행도와 성자에 관한 제 이론 역시 번쇄해질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번뇌는 이치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는 이지적 측면의 번뇌(이를 미리혹迷理惑이라고 한다)와 본능적 욕망에서 비롯되는 정의적 측면의 번뇌(이를 미사혹迷事惑이라고 한다)로 나눌 수 있다. 예컨대 이지적 번뇌는 나쁜 스승이나 사교邪敎·사설邪說에 의해 유도되거나 잘못 생각함으로써 일어나는 후천적 번뇌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예리하기는 하나 취약하여 올바른 관찰에 의해 그것이 오류라고 판단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제거될 수 있다. 이에 반해 정의적 번뇌는 음식이나 잠·섹스에 대한 욕망 등 유정이면 누구나 선천적으로 갖는 본능적 욕구이기 때문에 그 성질이 무디면서도 무거워 올바른 관찰만으로 즉각적으로 제거되지 않으며, 그것을 끊기 위해서는 그것이 오류라는 사실이 체득될 만큼의 오랜 기간 반복된 관찰 수습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어떤 이념은 그것이 오류라고 판단하기만 하면 즉각적으로 전향할 수 있지만, 담배는 그것이 나쁘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즉각적으로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유부 아비달마에서는 전자를 4제의 진리성을 관찰함으로써 즉각적으로 끊어지는 번뇌, 즉 견도소단(見道所斷, 혹은 줄여서 見所斷) 또는 견혹見惑이라 하고, 후자를 선정을 통해 반복적인 관찰함으로써 점진적으로 끊어지는 번뇌, 즉 수도소단(修道所斷, 혹은 줄여서 修所斷) 또는 수혹修惑이라고 하였다. 다시 견소단의 번뇌에는 고제(苦諦, 즉 무상 등 현실의 실상)에 미혹한 번뇌 내지 도제(道諦,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도)에 미혹한 번뇌 등 네 가지가 있는데, 이는 각기 고제 내지 도제를 관찰함으로써 끊어지는 번뇌이기 때문에 견고소단(見苦所斷, 온전한 명칭은 見苦諦所斷)·견집소단見集所斷·견멸소단見滅所斷·견도소단見道所斷이라고 한다. 이같이 번뇌에는 견소단의 네 가지와 수소단 한 가지, 도합 5가지 유형(部)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앞의 10수면은 여기에 어떻게 적용되는 것인가? 10수면 가운데 5견과 의疑가 오로지 견소단이라면, 나머지 탐·진·만·무명은 양자에 공통된 번뇌이다. 왜냐하면 탐·진·만 세 가지는 정의적 번뇌이기는 하나 결국 5견과 ‘의’를 조건으로 하여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5견에 탐착함으로써 그것을 정견이라 주장하고, 그러한 견해에 오만해 하며, 나아가 다른 견해를 무시하고 증오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무명의 경우, 그 자체로서 생겨나는 무명(不共無明)이나 5견과 상응하여 생겨나는 무명(相應無明)은 견소단이지만, 탐·진·만과 상응하여 함께 일어나는 무명은 수소단이자 견소단이기 때문이다. 지면관계상 98수면의 구체적 양상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3. 지말번뇌-수번뇌隨煩惱
유부 아비달마에서 이상의 10수면 이외에 『아함』에서 설해진 마음과 상응하는 그 밖의 염오한 심소를 수번뇌隨煩惱라는 명칭으로 통괄하고 있다. 이는 근본번뇌인 10수면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수번뇌’라 이름한 것으로, 여기에는 10전纏과 6번뇌구煩惱垢가 있다.
먼저 ‘전’은 전박(纏縛, 즉 속박)의 뜻으로, 무참無續·무괴無愧·악작惡作·수면睡眠·도거掉擧·혼침閻沈·분忿·부覆·질嫉·간袈의 10가지가 있다. 무참이란 계·정·혜의 온갖 공덕과 공덕 있는 자를 공경하지 않는 것을 말하며, 무괴란 공덕 있는 자의 꾸짖음이나 지은 죄에 대해 두렵게 여기지 않는 것을 말한다. 악작이란 그릇되게 행해진 일에 대해 후회하는 것이며, 수면은 마음이 흐리멍덩하여 몸을 가눌 수 없게 되는 상태이다. 도거는 마음이 고요히 안정되지 못한 상태, 혼침은 마음의 무기력함 또는 심신이 혼미하여 선법을 감당할 수 없게 되는 상태이다. 또한 ‘질’은 타인의 좋은 일에 대해 기뻐하지 않는 것이며, ‘간’은 재물이나 진리에 인색하여 다른 이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려는 심리작용이다. ‘분’은 유정이나 비유정을 미워하여 분노하는 것이며, ‘부’란 자신의 죄과를 감추려고 하는 심리작용을 말한다.
이중 무참과 간과 도거는 ‘탐’을 직접적인 원인으로 하여 생겨나며, 무괴와 수면과 혼침은 무명의 성질과 지극히 밀접한 것이며, 질과 분은 ‘진’과 그 특성이 동일하며, 악작은 유예猶豫 즉 망설임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의疑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부’의 경우, 학자나 관리와 같이 지식이 있는 자는 명리에 대한 탐욕 때문에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하며, 무지한 자는 참회할 줄 몰라서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고 하기 때문에 ‘탐’이나 무명으로부터 생겨난다.
번뇌구에는 뇌惱·해害·한恨·첨諂·광桂·교尻의 6가지가 있다. 여기서 ‘뇌’란 온갖 나쁜 일에 대해 견고하게 집착하는 의식작용으로, 이로 말미암아 참다운 충고도 받아들이고 회개하지도 않는다. ‘해’란 타인을 핍박하려는 의식작용으로, 이에 따라 타인을 구타하고 매도한다. ‘한’이란 앞에서 분별한 ‘분’의 대상에 대해 자주 생각하여 원한을 맺는 것을 말한다. ‘첨’이란 마음의 왜곡으로, 이에 따라 자신의 뜻을 드러내지 않고 남의 허물을 말하여 그를 미워하는 이를 기쁘게 한다. ‘광’이란 타인을 속여 미혹되게 하는 것을 말하며, ‘교’는 자신이 소유한 재물·지위·미모·지식 등에 집착하여 마음이 오만 방자해져 자신을 되돌아보지 않는 성질의 의식작용이다.
이와 같은 6가지 염오한 의식작용 역시 근본번뇌로부터 생겨난 것으로, 그 특성상 더럽고 거칠기 때문에 ‘번뇌구’라고 이름하였다. 즉 ‘광’과 ‘교’는 탐貪으로부터, ‘해’와 ‘한’은 진瞋으로부터, ‘뇌’는 견취로부터 생겨난 것이며, 마음의 왜곡이란 바로 악견惡見을 말하기 때문에 ‘첨’은 온갖 ‘견見’으로부터 생겨난 것이다.
아비달마불교의 번뇌론은 지극히 난해하고 번잡하다. 3계界 9지地에 따른 제 번뇌의 작용방식과 상호 포섭관계는 실로 머리카락을 헤아리는 것보다 난해하다. 본고에서는 지면관계상 대체적인 윤곽만을 스케치하였을 뿐이지만, 번뇌는 구체적인 현실의 문제이기에 반드시 음미(思擇)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야말로 불교에 대한 일반의 비평처럼 공리공론이 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지금 무슨 번뇌가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
출처 / http://donghaksa.or.kr/new/donghakji/tong_02.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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