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제49칙은 삼성화상과 설봉화상이 황금빛 물고기를 잡는 대화를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삼성화상이 설봉화상에게 물었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해서 잡아야 할까요?” 설봉화상이 말했다. “그대가 그물을 빠져나오거든 말해주겠다.” 삼성화상이 말했다. “1500명의 학인을 지도하는 선지식이 화두(話頭)도 알지 못하고 있군!” 설봉화상이 말했다. “노승은 주지로서 하는 일이 바쁘다.”
擧. 三聖問雪峰, 透網金鱗. 未審以何爲食. 峰云, 待汝出網來, 向汝道. 聖云, 一千五百人善知識, 話頭也不識. 峰云, 老僧住持事繁.
이 공안은 <분양송고(汾陽頌古)> 제46칙과 <종용록> 제33칙에도 수록돼있다. 설봉화상은 <벽암록> 제5칙에서 언급했다. 삼성(三聖)화상은 임제의현의 법을 이은 혜연(慧然)선사로 <임제록(臨濟錄)>을 편집한 사람이다. 그의 전기는 <전등록(傳燈錄)> 제12권, <회요> 제10권에 앙산(仰山)과 덕산(德山), 설봉(雪峰) 등 당대의 선지식을 두루 참문한 대화를 전하고 있다. 삼성은 임제선사를 17년 모셨다고 하며, 임제의 임종에 즈음하여 정법안장의 부촉하는 선문답으로 임제의 정법을 계승한 사실을 <임제록>에는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임제선사가 입적하려고 할 때에 벽에 기대어 말했다. ‘내가 죽은 뒤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을 멸각해 버리면 안 된다!’ 그 때 삼성이 나와서 말했다. ‘어찌 감히 화상의 정법안장을 멸각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임제선사가 말했다. ‘뒷날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불법의 대의를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삼성이 곧바로 고함(喝)을 쳤다. 임제선사가 말했다. ‘나의 정법안장이 저 눈먼 당나귀한테서 멸각돼버릴 줄 누가 알았겠나!’ 말을 마치고 단정히 앉아 입적했다.” 이 일단은 원오가 ‘평창’에도 인용하고 있는데, 정법안장은 불법의 대의를 체득해 정법을 바로 볼 수 있는 지혜의 안목을 구족한 선승을 말한다. 임제가 체득한 정법안장은 누구라도 멸각 시킬 수가 없는 것처럼, 각자가 정법안장을 구족해야 정법을 계승할 수 있는 것이다. 삼성의 일갈은 임제의 선풍과 정법을 계승한 지혜작용인 것이다.
삼성화상이 제방을 행각할 때에 설봉화상에게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무엇을 미끼로 해서 잡아야 할까요”라고 문제를 던졌다. 그물은 오욕과 탐착의 그물, 언어문자의 그물, 편견과 착각의 그물, 깨달음에 집착한 그물 등 중생의 그물(선병)을 말한다. 금인(金鱗)은 황금 비늘의 물고기로 뛰어난 선기와 안목을 갖춘 훌륭한 선승을 말한다. ‘그물을 뚫고나온 황금빛 물고기’는 불법이나 계율, 규칙, 깨달음의 틀까지 완전히 초월한 자유자재한 선승을 비유한 것이며, 원오는 ‘수시’에서 ‘일체를 초월한 사람(過量底人)’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삼성이 자신은 일체의 그물을 초월한 황금빛 물고기인데, 나와 같은 선승을 어떻게 제접하겠습니까 라고 설봉화상에게 법전(法戰)을 도전하고 있다. 설봉화상은 “그대가 그물을 빠져나오거든 말해주겠다”라고 가볍게 응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선문답은 많다. 예를 들면 방거사가 마조선사를 찾아가서, “만법과 짝이 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질문하자, 마조는 “그대가 한 입에 서강수(西江水)를 다 들어 마실 때 말해 주겠다”라고 대답하고 있다. 만법과 자기와 짝이 되는 것은 주객의 대립과 상대적인 차별을 벗어나지 못한 중생이다. 자기와 만법과 하나가 되는 것은 본인이 만법일여(萬法一如), 만물일체(萬物一體)의 경지를 체득해야 한다. 즉 아상(我相), 인상(人相)과 주객(主客)의 상대적인 차별심이 없어진 허공과 같이 텅 비운 마음은 서강수를 한 입에 들어 마시는 일 뿐만 아니라, 삼라만상의 일체 만물을 포용하게 되며 만법일여, 만물일체의 경지가 되는 것이다. 본인이 그러한 경지를 체험함으로서 저절로 그러한 사실을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언어 문자로 설명해도 본인이 체험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진실을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직접 체험해서 알도록 지시하고 있는 법문이다.
설봉이 ‘그물을 뚫고 나오면 말해 주겠다’라고 대답한 것은 설봉의 입장에서 볼 때 삼성이 아직 그물 속에서 헤매고 있는 물고기로 보였기 때문이다. 즉 그대가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본인이 직접 일체의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고기가 돼 봐라. 그 때에 한마디 멋있는 법문을 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다. 원오는 설봉이 삼성의 명예에 관계되는 말이라고 하면서, ‘설봉 노인은 작가 종사’라고 칭찬하고 있다. 삼성은 그물을 뚫고 나왔다고 하는데, 설봉은 그물을 뚫고 나오라고 하고 있다. 설봉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그물을 뚫고 나왔다고 주장하는 놈은 진짜 그물을 뚫고 나온 녀석이 아니다. 뚫고 나왔다는 그 그물에 걸려있는 녀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삼성은 임제의 정법안장을 인가받은 당대의 선승이다. 설봉의 이러한 응수에 결코 그대로 물러설 수 없는 기지를 발휘하고 있다. 삼성은 “1500명의 학인을 지도하는 선지식이라는 사람이 내가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말귀(話頭)도 알아듣지 못하고 있네”라고 날카롭게 비판하고 있다. 원오는 삼성의 기지는 “청천에 벽력이 떨어진 것처럼, 설봉산의 대중이 놀랐다”라고 하고, 또 “삼성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다”라고 착어하고 있다.
설봉화상은 “노승은 주지로서 하는 일이 바쁘기 때문에 이만 실례하네”라고 역시 가볍게 대응하고 있다. 삼성이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도록 내버려두고, 나는 주지로서 사찰의 업무에 무척 바쁘다고 하면서 삼성의 무모한 법전(法戰)에 응수할 여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원숙한 경지에서 학인을 지도한 설봉의 대답이다. 삼성의 폭탄적인 법전에 한발 뒤로 물러선 후퇴인가 아니면 삼성이 그물을 뚫고 나온 것을 인정한 것인가. 원오가 “승부가 없다”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삼성이 이긴 것도 아니고, 설봉이 진 것도 아니다. 설봉이 주지일로 바쁘다고 한 말은 “가장 독한 말”이라고 원오는 착어하고 있는데, 그것은 설봉이 앞에서 ‘그대가 그물을 뚫고 나오면 말해 주겠다’는 말보다 더 혹독한 말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삼성이 더 이상 법전을 계속한다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설두는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그물을 뚫은 황금빛 물고기” 삼성이 설봉에게 질문한 말을 읊고 있다. 설봉이 그물을 뚫고 나오면 말해 주겠다는 대답은 삼성이 그물 속에 있는 것으로 판단한 것인데, 설두는 설봉에게 “물속에 있다고 말하지 말라”고 질책하고 있다. “하늘을 흔들고 땅을 움직이네.” 그물을 뚫고 나온 황금빛 고기가 자유자재로 작용하는 모습은 천지를 진동하고 대기대용을 발휘하고 있다. 원오도 ‘작가 작가’라고 착어하고 있는 것처럼, 역시 삼성은 작가 중의 작가라며, ‘일체를 초월한 사람(過量底人)’이 아니라면 이러한 활동은 불가능하다고 칭찬하고 있다. “지느러미를 떨치고 꼬리를 흔드네.” 황금 물고기(삼성)가 기세 좋게 활동하는 모습을 읊은 것이다.
다음 삼성이 설봉에게 1500 대중을 지도하는 선지식이 말귀도 모른다고 한 법전의 기세는 ‘고래가 뿜어대는 거대한 파도는 천 길이나 나는 것처럼’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한다고 읊고 있다. 설봉이 노승은 주지 일로 바쁘다고 한 말은 ‘진동하는 우레 소리에 맑은 회오리바람이 일어난다’고 읊고 있다. 설두는 ‘맑은 회오리바람 일어난다’고 다시 한번 반복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제시하면 또다시 새로운 것이다. 다시 청풍(淸風)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비가 온 뒤에 푸른 산을 보는 것과 같이 진실로 신선하게 보이는 것이다. 설봉의 한마디는 일체의 시비를 초월하고 선승의 본분에서 안목있는 자신의 일을 하는 신선한 청풍이다. 설봉의 법문을 체득해 아는 사람은 드물다. “천상과 인간에 청풍이 어디 있는지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 설두도 묻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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