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의 내용은 화엄경2. 정행품중의 내용입니다.
몸과 말과 뜻의 업
智首(지수)보살이 문수보살에게 물었다.
"불자여, 菩薩(보살)이 어떻게 허물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해롭지 않은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깨뜨릴 수 없는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不退轉(불퇴전)의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으며,
어떻게 청정한 몸과 말과 뜻의 업을 얻습니까?"
문수보살이 지수보살에게 말했다.
"보살이 마음을 잘 쓰면 온갖 뛰어나고 묘한 공덕을 얻어
모든 부처님의 법에 마음이 걸리지 않을 것이다.
과거.미래.현재의 여러 부처님 도에 머물며,
중생을 따라 머물러 항상 버리지 않을 것이며,
모든 법의 모양과 같이 다 통달하며,
모든 악을 끊고 선을 두루 갖추며,
普賢菩薩(보현십원)처럼 色相(색상)이 제일이고,
모든 行願(행원)을 다 갖추며,
모든 법에 자재하여 중생의 제2 스승이 될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써야 모든 뛰어나고 묘한 공덕을 얻을 수 있는가.
보살이 집에 있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집의 성질이 공함을 알아
그 고통을 면하게 하여지이다
부모를 효성으로 섬길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부처님을 잘 섬겨
모든 것을 護養(호양)하게 하여지이다
妻子(처자)가 모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怨親(원친)에 평등해서
貪着(탐착)을 아주 떠나게 하여지이다
五欲(오욕)을 얻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욕망의 화살을 뽑아버리고
끝까지 안온하게 하여지이다
즐거운 놀이에 모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법으로써 즐기고
놀이는 참이 아님을 알게 하여지이다
패물을 찰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이 거짓 꾸밈을 버리고
진실한 곳에 이르게 하여지이다
누각에 오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바른 법의 누각에 올라
모든 것을 꿰뚫어 보게 하여지이다
보시하는 일이 있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마음에 애착이 없게 하여지이다
군중이 집회를 가질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모이는 법을 버리고
온갖 지혜를 이루게 하여지이다
액난을 만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마음대로 자유로워
어디를 가나 장애가 없게 하여지이다
살던 집을 버릴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出家(출가)하여 장애가 없어지고
마음에 解脫(해탈)을 얻게 하여지이다
절에 들어갈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어기거나 다툼이 없는
갖가지 법을 말하게 하여지이다
크고 작은 스승을 뵐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스승을 잘 섬겨
선한 법을 익히고 행하게 하여지이다
출가하기를 청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불퇴전의 법을 얻어
마음에 장애가 없게 하여지이다
세속의 옷을 벗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善根(선근)을 부지런히 닦아
모든 죄의 멍에를 벗게 하여지이다
머리와 수염을 깎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번뇌를 아주 버리고
마침내 寂滅(적멸)하게 하여지이다
가사를 입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마음에 물들음이 없어
큰 성인의 도를 갖추게 하여지이다
바로 출가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부처님같이 출가하여
모든 중생을 구제하게 하여지이다
스스로 부처님께 귀의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佛種(불종)을 잇도록
위없는 뜻을 내게 하여지이다
스스로 가르침에 귀의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經藏(경장)에 깊이 들어가
지혜가 바다와 같게 하여지이다
스스로 스님들께 귀의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대중을 통솔하고 다스리되
모든 것에 장애가 없게 하여지이다
戒(계)를 받아 배울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戒行(계행)을 잘 배워
나쁜 일을 짓지 말게 하여지이다
敎授(교수)의 가르침을 받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위의를 갖추어
하는 일이 진실하게 하여지이다
和尙(화상)의 가르침을 받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생멸 없는 지혜에 들어가
의지할 데 없는 곳에 이르게 하여지이다
具足戒(구족계)를 받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모든 方便(방편)을 갖추어
가장 뛰어난 법을 얻게 하여지이다
僧堂(승당)에 들어갈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위없는 집[堂]에 올라가
편히 머물러 동요하지 말게 하여지이다
자리를 펴고 앉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한 법을 널리 펴서
진실한 모양을 보게 하여지이다
몸을 바로 하고 단정히 앉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菩提座(시좌보)에 앉아
마음에 집착이 없게 하여지이다
結跏趺坐(결과부좌)를 하고 앉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근이 견고하여
不動地(부동지)를 얻게 하여지이다
禪定(선정)을 닦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정의 힘으로 마음을 조복하여
究竟(구경)까지 남음이 없게 하여지이다
관법[觀]을 닦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실제의 이치를 보고
어기거나 다툼이 없게 하여지이다
내의를 입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모든 선근을 입고
부끄러움을 갖추게 하여지이다
옷을 입고 띠를 맬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근을 살피고 단속하여
흩어지거나 잃지 않게 하여지이다
손으로 칫솔을 잡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다 妙法(묘법)을 얻어
끝까지 청정케 하여지이다
대소변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貪.瞋.痴(탐.진.치)를 버리고
모든 죄를 덜게 하여지이다
몸에 때를 씻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깨끗하고 부드러워
마침내 때[垢]가 없게 하여지이다
물로 손을 씻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청정한 손을 얻어
부처님 법을 받아 지니게 하여지이다
물로 얼굴을 씻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청정한 법문을 얻어
영원히 때가 없게 하여지이다
손에 錫杖(석장)을 쥘 대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크게 보시하는 모임을 열어
참다운 도를 보게 하여지이다
바리[鉢盂]를 들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法器(법기)를 성취하여
하늘과 사람의 供養(공양)을 받게 하여지이다
길을 걸어갈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부처님의 행하시던 대로 나아가
의지 없는 곳에 들어가게 하여지이다
올라가는 길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三界(삼계)에서 아주 뛰쳐나와
마음에 怯弱(겁약)이 없게 하여지이다
내려가는 길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의 마음이 겸손하여
부처님의 선근이 자라게 하여지이다
굽은 길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바르지 못한 길을 버리고
나쁜 소견을 아주 버리게 하여지이다
곧은 길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의 마음이 정직해서
아첨하거나 속이지 말게 하여지이다
높은 산을 대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근이 뛰어나
그 위에 이를 이가 없게 하여지이다
가시가 달린 나무를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三毒(삼독)의 가시를
속히 끊게 하여지이다
나뭇잎이 무성함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선정과 해탈로써
그늘지고 가려지게 하여지이다
꽃이 피는 것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의 신통과 모든 법이
꽃 피듯 하게 하여지이다
큰 강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법의 흐름에 함께하여
부처님의 지혜 바다에 들어가게 하여지이다
다리 놓이 길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모든 중생을 濟度(제도)하기를
다리와 같게 하여지이다
밭 매는 것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오욕의 밭에서
애욕의 잡초를 뽑게 하여지이다
괴로워하는 사람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根本智(근본지)를 얻어
온갖 고통을 멸하게 하여지이다
병든 사람을 볼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육신의 공적함을 알고
어기거나 다투는 법을 떠나게 하여지이다
경전을 읽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모두 기억하고 잊지 말게 하여지이다
부처님을 친견하게 될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장애 없는 눈을 얻어
모든 부처님을 친견하게 하여지이다
발을 씻을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神足通(신족통)을 갖추어
다니는 데 걸림이 없게 하여지이다
누워서 잘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의 신체가 안락하고
마음이 흔들리지 말게 하여지이다
잠에서 처음 깰 때는
이와 같이 원하라
중생들이 온갖 지혜 깨닫고
시방세계를 두루 살피게 하여지이다
불자여, 보살이 이와 같이 마음을 쓰면 온갖 뛰어나고 묘한 공덕을 얻을 것이다.
모든 세간의 하늘과 악마와 梵天(범천), 沙門(사문), 婆羅門(바라문), 乾?婆(건달파),阿修羅(아수라)와 모든 聲聞(성문)과 緣覺(연각)들이 흔들지 못할 것이다."
삼수경(三受經) 느낌을 알아야 해탈한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게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라후라가 부처님 계신 곳으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부처님의 발에 예를 올린 뒤,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저의 이 식신(識身)과 바깥의 모든 대상에서 '나[我]다, 내 것[我所]이다'라고 하는 소견, 아만(我慢)과 같은 번뇌의 얽매임 따위가 없어지겠습니까?
世尊。云何知.云何見我此識身及外境界一切相。得無有我.我所見.我慢繫著使。
부처님께서 라후라에게 말씀하셨다.
세 가지 느낌이 있으니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니라. 즐겁다는 느낌을 관찰해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梵行)을 닦고,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으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끊기 위해서 내가 있는 곳에서 범행을 닦는 것이다.
만일 비구가 즐겁다는 느낌의 탐하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다는 느낌의 성내는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알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의 어리석은 번뇌를 이미 끊고 이미 안다면, 이것을 비구가 애욕의 결박을 끊어 없애고 모든 결박과 교만을 버리며 빈틈없고 한결같아서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라고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즐겁다는 느낌을 받을 때
즐겁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탐욕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樂受所受時 則不知樂受
貪使之所使 不見出要道
괴롭다는 느낌이 받을 때
괴롭다는 느낌을 알지 못하면
성냄이라는 번뇌에 휘둘려
그것을 벗어날 길 보지 못하리.
苦受所受時 則不知苦受
瞋恚使所使 不見出要道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
바르게 깨친 이의 말씀대로
자세히 잘 관찰하지 못하면
끝내 저 언덕으로 건너가지 못하리.
不苦不樂受 正覺之所說
不善觀察者 終不度彼岸
비구들아, 부지런히 정진하여
바르게 알고 흔들리지 말라.
이와 같이 모든 느낌을
지혜로운 사람은 깨달아 아나니
그 모든 느낌을 깨달아 아는 자
현세에서 모든 번뇌 다하리.
比丘勤精進 正知不動轉
如此一切受 慧者能覺知
覺知諸受者 現法盡諸漏
밝고 지혜로운 자 목숨 마치면
중생의 부류로 떨어지지 않나니
중생으로의 윤회가 이미 끊어져
영원히 반열반(般涅槃)에 머무느니라.
明智者命終 不墮於衆數
衆數旣已斷 永處般涅槃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라후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상윳따니까야 36.1.3.Pahānasutta 버림
-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역경
3. 비구들이여 이들 세 가지가 느낌이나니, 무엇이 그 셋인가?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 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이들이, 비구들이여, 곧 세 가지 느낌이니라.
4. 비구들이여, 즐거움을 느낄 때 탐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원주8】을 버려야 한다. 괴로움을 느낄 때 저항(염오)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의 경우, 무지(無知)해지려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려야 한다.
5. 비구가 즐거운 느낌을 대하여 탐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고, 괴로운 느낌을 대하여 저항하려드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으며,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대하여 무지해지려는 고질적 잠재성향을 버렸다면, 그 때 그는 고질적 잠재성향에서 벗어나 올바로 보는 사람이라 불린다. 그는 갈애를 끊었고 (다음 생에 다시 몸을 받게끔 묶는) 족쇄를 풀어버렸으며, 아만【원주9】을 철저히 꿰뚫어보아 고(苦)를 끝낸 것이다.
6. 즐거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면
그는 탐욕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1
“Sukhaṃ vedayamānassa,
vedanaṃ appajānato;
so rāgānusayo hoti,
anissaraṇadassino.
괴로움을 느끼면서도
느낌의 본성은 알지 못한다면
그는 미움에 마음이 쏠려
해탈을 얻지 못하리라. 2
“Dukkhaṃ vedayamānassa, vedanaṃ appajānato;
paṭighānusayo hoti, anissaraṇadassino.
그리고 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주9),
대지혜자 그것을 평화롭다고 말씀하셨지만,
그것 또한 맛들여 매달린다면,
그는 결코 고(苦)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리라. 3
“Adukkhamasukhaṃ santaṃ, bhūripaññena desitaṃ;
tañcāpi abhinandati, neva dukkhā pamuccati.
그러나 비구가 열심이어서
분명히 알아차리는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그는 모든 느낌의 본성을 꿰뚫게 될 것이다. 4
“Yato ca bhikkhu ātāpī, sampajaññaṃ na riñcati;
tato so vedanā sabbā, parijānāti paṇḍito.
또 그렇게 됨으로써 그는 바로 이생에서
번뇌가 다할 것이며,
지혜가 성숙하고, 법의 길에 확고하며
(언젠가) 수명이 다하여 몸이 무너질 때엔
어떤 헤아림으로도 개념으로도
그를 가늠할 길은 없으리라. 5
“So vedanā pariññāya, diṭṭhe dhamme anāsavo;
kāyassa bhedā dhammaṭṭho, saṅkhyaṃ nopeti vedagū”ti.
주해9) 영역자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여기서부터는 거의 대부분 neutral feeling이라 옮기고 있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원문에 충실하여 계속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이라 옮기기로 한다. 그것은 neutral이 단순히 평면적인 의미에서 "중간의, 중립의" 뜻으로 이해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71쪽의 목수 빤짜깡가의 얘기를 참작할 필요가 있다.)
원주8). 고질적 잠재성향: anusaya를 영역에서는 the underlying tendency로, 한역에서는 使隨眠으로 옮긴다. 여기서는 niranusaya의 뜻으로 고질적 잠재성향으로 옮겼다.
원주9). `자만'(conceit)은 특히 아만(asmimaano) 즉 지 정 양면의 인격체의 대한 믿음[有身見].
빠알리삼장 : s.36.3.Pahānasutta
출처 : 본인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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