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무드라 우빠데샤 <다른 번역본의 비교>
좌측에 있는 번역문은 탕구린포체의 법문을 통해,
가운데에 있는 번역문은 따시종의 깜툴린포체의 법문을 통해,
우측에 있는 번역문은 초걈트룽빠의 법문을 통해,
영문으로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곳 한국에는 초걈트룽빠의 번역본만이 알려져 있어,
마하무드라 우빠데샤의 내용을 본래의 취지대로 파악하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마하무드라 법통의 근본교재라 할 수 있는 이 글을
천천히 새겨보시기 바랍니다.
마하무드라 우빠데샤 |
나로빠에게 |
마하무드라 우빠데샤 |
[일곱 가지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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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네 분의 대 성취자에게 절 하나이다! 마하무드라에 절 하나이다! 금강행모에 절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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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공화하는 지혜에 절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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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견해 / 바탕] 마하무드라는 가르쳐질 수 없다 하더라도, 지성이 있고, 숙고의 과정을 지나온 나로빠여, 고통을 감내하면서 고행 속에 들어가, 구루에게 헌신하고 있는 그대여, 복된 자여! 이 것을 마음으로 행하거라. |
마하무드라는 가르쳐질 수 없다. 하지만 큰 지성을 지닌 나로빠여, 지금까지 고행 하면서 고통을 감내하고, 스승에게 헌신해 온 그대여, 축복받은 자여! 이 비밀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지니거라. | 마하무드라는 나타낼 수 없다. 그러나 구루에게 헌신한 그대를 위해, 고행을 마치고, 고통을 이겨낸 그대를 위해, 지성이 있는 나로빠여, 이 것을 마음에 깊이 지니거라, 복된 제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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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비유] 예를 들면, 허공 속에서(1) 어떤 주체가 어떤 대상에 머무르고 있는가? 인간의 마음, 마하무드라 속에는 나타내 보일 어떤 사물도 없다. 어떤 대상에도 마음을 향하지 말고, 본유의 상태에서 편안하게 머무르라. 예를 들면, 이 것은 허공 가운데를 바라보고 있으나,(2)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 같은 방법으로, 네 마음이 마음을 바라볼 때, 상념이 그치고, 위없는 보리심에 이른다. 상념의 속박이 풀리면, 분명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대지에서 피어올라, 구름이 되고,(3) 드넓은 창공으로 사라지는 안개처럼, 그 어디에도 가지 않으면서, 어디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같은 방식으로 마음속에서,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상념의 동요는 그대가 마음의 본성을 보는 순간 진정된다. 예를 들면, 허공의 본질이 색과 형상을 초월해 있고, 그 안에서 생겨나는 다양한 색과 형상에 의해, 영향을 받거나, 모양이 변하거나, 흐려지지 않는 것처럼,(4) 그와 같이 마음의 본질은 색과 형상을 초월하며, 선행과 악행이라는 영향을 받거나, 흐려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마음은 밝은 태양의 중심 같아서, 일천 겁의 어둠마저도 그 빛을 가릴 수 없는 것처럼,(5) 마음의 본질인 정광명은 무수겁 동안의 세속의 삶에 의해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공성을 허공에 비유하더라도,(6) 그렇게 묘사하고 있는 공간 속에는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그와 같이, 마음을 정광명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묘사하는 바탕인 마음속에 어떤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와 같이 마음의 본성은 허공과 같아,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 다르마는 하나도 없다. |
허공은 어디에 바탕을 두고 있는가? 어떤 대상에 이 것이 머무르는가? 허공과 같이 마하무드라는 어떤 사물에도 의존하지 않는다. 마음의 활동을 쉬고, 순수한 본성의 연속체 속으로 가라앉으라. 빈 하늘을 응시하면, 바라다 볼 대상이 없다.(2) 마찬가지로, 마음이 마음자체를 응시할 때, 끊임없이 동요하는 상념의 틀이 사라지고, 수승한 보리심이 일어난다. 그러면, 속박의 끈이 풀리고, 벗어남이 분명하다. 공중으로 흩어져 사라지는 아침 안개처럼,(3) 어디로도 가는 곳이 없지만 사라지고 없다. 형상화의 파도, 마음이 지어내는 무수한 꼴은 사라지고, 마음의 참 본성을 관조할 때, 순수한 허공은 색도 없고, 형상도 없기에,(4) 검거나 희게 물들 수 없다. 그래서 마음의 본질도 색과 형상을 다 넘어서 있기에, 검거나 흰 행위의 열매에 의해 더러워 질 수 없다. 일천 겁의 어둠도 태양 중심의 수정같이 맑은 본질을 흐리게 할 힘이 없다.(5) 마찬가지로, 삼사라의 무수겁은 마음의 본질이 지닌 정광명을 가릴 아무런 힘도 없다. 허공이 비어있음을 표현한 것이라 하더라도,(6) 실재로 이것은 표현 불가능하며, 마음의 본성이 정광명이라 하더라도, 그 것을 온전하게 묘사한다는 것은 근거 없는 말장난이다. 마음의 근본은 허공과 같다. 이 것은 태양 아래 있는 모든 사물에 스며들어가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 케호! 그대가 허공을 바라보면, 중심과 가장자리라는 고정된 상념은 녹아 없어진다(2). 마찬가지로 마음이 마음을 보면, 일체의 사념 작용은 사라지고, 무념의 상태에 남아 있게 될 것이며, 수승한 보리심을 자각하게 될 것이다. 대지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는(3) 구름이 되어 공중으로 사라지고, 사라졌을 때, 구름이 가는 곳을 알지 못한다. 그와 같이, 마음이 지어 낸 사념의 파도는 마음이 마음을 볼 때, 녹아 없어진다.
허공은 색깔도 모양도 없다.(4) 이는 불변하며, 희고 검은 것에 물들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빛나는 마음은 색깔도 없고, 모양도 없다. 이는 희고 검은 것, 선과 악에 물들지 않는다. 태양의 맑고 밝은 본질은(5) 일천 겁을 가려온 어둠에 의해 흐려지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빛나는 본질은 삼사라의 길고 긴 어둠에 의해 흐려질 수 없다. 허공이 비어있다고 말할 수는 있으나, 허공의 실재는 묘사될 수가 없다.(6) 마찬가지로, 마음이 밝게 비추고 있다고 말 할 수는 있으나, 마음의 표현은 그 것이 실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허공은 소재가 전혀 없다. 마찬가지로, 마하무드라인 마음의 본성은 어디에도 없다. 변화 없이, 근본상태에 편히 쉬라. 틀림없이 속박이 풀릴 것이다. 마음의 본질은 허공과 같아, 그 것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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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명상 후 행위조율: 몸, 음성, 마음] 모든 육신의 행위를 버리고, 수행자는 편안하게 쉬어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네 음성은, 메아리와 같아, 텅 빔의 바탕에서 구별되지 않는 소리가 된다. 마음으로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도약의 다르마를 바라보라. |
진정한 휴식 속에서 정지된 채 아무 저항 없이 머무르고, 입을 다물고, 네 음성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게 하라. 마음의 꾸밈을 멈추고, 모든 현상의 꼴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라. |
몸의 동작이 그치고, 참 휴식 속에 들어가게 하라. 쓸데없는 말을 그치고, 네 음성이 메아리가 되게 하라. 마음의 행위를 짓지 말고, 도약의 다르마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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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상-견해와 친숙해짐 -네 마음의 본성을,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의 속성을 그냥 바로 들여다보는 것]
몸은 아무 의미가 없고, 대나무 속처럼 비어 있다. 마음은 허공 한 가운데와 같아 파악이 불가능하다. 그 안에 편안하게 머무르라. 그 것을 떠나지도 말고, 거기에 붙어 있지도 마라. 그 것을 밀어내거나, 그 안에 잡아놓지 말고, 떠나게 놔두거나 붙잡으려 시도하지 말고, 저항 없이 머물러라. [마음에 일체 향함이 없으면, 그 것이 마하무드라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궁극적 깨달음에 도달하리라. |
몸은 본질적으로, 갈대 줄기처럼 비어 있다. 마음은 맑은 허공과 같아, 상념의 세계를 완전히 초월해 있다.
내버려두거나 조절하지 말고, 본래 갖추어진 성품 속으로 이완하라. 일체의 표상작용을 떠난 마음이 곧 마하무드라이다. 그리고 수행이 완전해짐에 따라, 최상의 깨달음이 성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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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빈 대나무와 같아, 아무런 특성이 없다. 마음은 허공의 본질과 같아, 상념이 머무를 장소가 없다.
네 마음을 편안하게 머무르라. 붙잡지도 말고, 방황하게 내버려 두지도 마라. 마음이 향할 목적이 없으면, 그 것이 마하무드라이다. 이 것을 성취함이 최상의 깨달음에 도달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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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싸마야-서약-마음의 본성을 알아차림] 자신이 속한 법통과 철학에 대한 집착을 가지고 밀교와 바라밀승 율의, 경전, 붓다의 다양한 가르침을 따르는 자는 빛나는 마하무드라를 보지 못하리라. 그러한 정광명의 자각은 그 것을 보려는 관념과 태도에 의해 가려지기 때문이다. 관념화된 서약을 수지하는 것은 싸마야의 의미를 감소시킨다. 대상으로 향하거나, 하나의 틀로 가꾸려 하지 말고, 일체의 의도에서 벗어나라. 상념은 물 위에 비친 그림자처럼 스스로 일어났다 사라진다. 그대가 머무르지 않는 다는 의미, 틀을 짓거나 집중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꼴을 넘어서지 못한다면, 마음의 분별을 넘어서지 못함으로 인해, 초월하지 못하고, 싸마야를 깨트리게 되리라. 그러므로 서약은 모든 어둠을 몰아내는 등불이다. | 마하무드라의 정광명은 대승의 경전과 철학적 해설, 바라밀다, 삼장에 의해 드러날 수 없다. 정광명은 관념과 형식에 의해 가려지기 때문이다.
고정된 관념의 행위에 의해, 참된 싸마야에 결함이 생긴다. 그러나 마음의 모든 행위를 그침으로서, 고정된 관념은 무너진다.
바다의 큰 파도가 심연과 하나가 될 때, 마음이 비 형상, 비관념의 진리에서 벗어나지 않을 때, 완전한 싸마야는 근본 무명을 밝히는 등불이다.
| 밀교와 바라밀승, 율의와 경전, 해설을 따르는 자는 자신의 경전과 철학적 교의로 인해, 빛나는 마하무드라를 보지 못하리라.
아무 마음의 추구도 없고 대상에 대한 욕망 없을 때, 저절로 생겨났다, 저절로 사라진다. 이 것은 물의 파도와 같다. 정광명은 대상에 대한 욕망이 일어남으로서 가려진다.
관념적 표현으로 꾸밈에 의해 참 싸마야의 계율이 깨어진다.
머무르거나, 파악하지 않고, 법성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대는 성스러운 수행자요, 어둠을 밝히는 등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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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마하무드라 수행의 이로움] 모든 마음의 의도에서 벗어나, 두 극단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붓다의 모든 가르침의 의미를 빠짐없이 보게 되리라.
그대가 여기에 머무른다면, 삼사라의 감옥에서 해방되리라. 이 안에 균등하게 머무른다면, 모든 악업과 장애가 소멸되리라. 이 것은 그러한 이유로 가르침의 등불이라 불린다. | 지적인 자부심에서 벗어나고, 교리를 거부한다면, 모든 법통과 경전의 진리가 드러나리라. 마하무드라에 몰입될 때, 그대는 삼사라의 감옥에서 벗어나리라. 마하무드라를 균등하게 유지한다면, 죄와 악이 소멸되리라. 그리고 마하무드라의 성취자로서, 가르침의 등불이 되리라.
| 욕망에서 벗어나 있고, 두 극단에 머무르지 않는다면, 그대는 모든 가르침의 다르마를 보게 되리라. 이러한 노력을 지속한다면, 삼사라의 감옥에서 벗어나리라. 이와 같이 명상한다면, 업의 더러움을 태워버리리라. 그렇게 해서 그대는 가르침의 등불이라 알려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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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마하무드라를 수행하지 않음의 해로움 ] 여기에 관심이 없는 아둔한 사람은 삼사라의 물살에 의해 끊임없이 끌려갈 수밖에 없으리라. 낮은 존재의 세계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이러한 아둔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라. |
자신의 무지에 빠져 있는 어리석은 자는 마하무드라를 경멸하면서, 삼사라의 파도 속에서 투쟁하고 있을 뿐임을 알라. 끊임없이 걱정·근심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자비심을 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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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르침에 헌신하지 않는 무지한 사람이라도 너로 인해 삼사라의 물에 가라앉고 있는 상태에서 구제될 수 있다. 이것이 낮은 세계에서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 대한 연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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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마하무드라의 본 수행] [a. 예비수행] 참을 수 없는 고통에서 해방을 얻고자 한다면 현명한 스승에게 의지하라. 구루의 은총이 네 심장으로 들어갈 때, 마음은 해방되리라. 들어 보라! 세속에서 누리는 것은 의미도 없고, 목적도 없으며, 고통의 원인이다. 이루어 놓고 가꾸어 온 이 모든 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으므로 의미 있는 것을 바라보라. | 무자비한 고통과 욕망의 병을 놓아버리고, 스승에게 의지하라. 은총이 네 가슴을 건드릴 때, 마음이 해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꺼이 들어보라! 삼사라에 투자하는 것은 무익한 일이며, 모든 근심의 원인이다. 세속적인 추구는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므로 실재의 중심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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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자는 현명한 스승을 구해야만 한다. 아디쉬타나, 구루의 은총에 사로잡히면 그대의 마음은 해방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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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마하무드라의 본 수행] [요약: 초심자의 관점에서] 그대가 객관 대상에 대한 내적 심상에 대한 모든 집착을 떠나 있다면, 모든 견해의 제왕이다. 동요 없이 부동에 머무른다면, 그대는 모든 명상의 제왕이다.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모든 행위의 제왕이다. 희망도 없고 두려움도 없을 때, 그 것은 궁극적 결과, 열매가 성취된 것이다. 이 것은 관념적 초점의 대상이 아니며, 마음의 본성은 정광명이다. 건너 갈 길이 있지는 않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붓다의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들어선다. 명상의 목표는 없다. 그러나 여기에 익숙해지면, 그대는 무상정등각에 도달하리라.
| 마음의 이중성을 넘어서는 것이 최상의 견해, 움직임 없이 고요한 마음이 최상의 명상,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최상의 행위이며, 희망과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목적이 달성된다. 마음의 상분별을 떠날 때, 마음은 투명하게 빛나고, 붓다의 길을 가는 것은 어떤 길도 가는 것이 아니며, 최상의 깨달음을 얻는 것은 방법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 마음의 본성은 맑게 빛나지만 인식의 대상이 없다. 명상의 길이 사라질 때, 붓다의 길을 발견할 것이요, 명상하지 않음을 명상할 때, 무상정등각에 도달하리라.
고정시키거나 취하지 않는 것이 견해의 왕이요, 마음의 동요가 사라짐이 명상의 왕이며, 얻으려는 노력이 사라짐이 행위의 왕이다. 희망과 두려움이 사라졌을 때, 목표를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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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 수행의 중요성]
세속적인 사물을 잘 관찰해 보라. 그렇게 해보면, 그 어떤 것도 지속되는 것이 없고, 그 어떤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그와 같이 세속의 것은 모두 꿈과 같고, 신기루와 같다. 꿈과 신기루는 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포기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세속적인 일을 버리라. 네 주변에 있는 관계와 삶의 내용을 이루어 온 것에 대한 집착과 반감의 끈을 자르고, 고립된 은둔처, 숲 등에서 명상하며, 홀로 살아가라. 명상하지 않는 그 상태에 머무르라. 나아가야 할 마음의 목표가 없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마하무드라에 도달한 것이다. | 케 마! 한번 잘 들어보라! 너의 삶의 조건을 관조함으로서, 아무 것도 지속되는 것이 없고, 모두 꿈처럼 환영적이라는 것을 깨달으라. 의미 없는 환영은 좌절과 권태를 일으킨다. 세속적 행위를 내버리라. 고향과 친분을 끊어버리고, 숲과 산정의 은둔처에서 홀로 명상하라. 무명상의 상태로 남아 있으라. 무학의 경지에 도달할 때, 마하무드라에 도달하게 된다.
| 세상의 모습을 들여다 보라. 그 것은 신기루나 꿈처럼 무상하다. 사실상 신기루와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포기하는 마음을 개발하고, 세속적인 행위를 버리라. 애정과 증오의 원인인 자신을 따르는 사람과 가까운 사람들을 포기하라. 숲과 은둔처에서 홀로 명상하라. 무명상의 상태로 남아 있으라. 무학의 경지에 도달할 때, 마하무드라에 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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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무드라 수행의 이로움]
예를 들면, 많은 가지와 잎을 달고 있는 나무의 뿌리를 자르면, 수많은 가지가 말라버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의 뿌리가 잘리면, 삼사라의 가지도 말라버린다. 예를 들면, 일천 겁 동안 축적된 어둠도 등불 하나가 비추자 사라지듯이, 마찬가지로, 단 한순간의 정광명의 지혜는 수많은 겁 동안 쌓아 온 무지와 죄업, 장애를 몰아낸다. | 나무 하나가 가지를 뻗고, 잎을 내 밀고 있다. 그러나 그 뿌리가 잘리면 무성한 잎이 마르듯이 마음의 뿌리가 잘려나가면 삼사라의 나무 가지도 죽는다.
등불 하나가 일천 겁의 어둠을 몰아내듯이, 마음의 정광명이 한 번 비추면, 여러 겁의 업장과 무지가 소멸된다. | 나무가 자라 가지와 잎을 내었을 때, 그 뿌리를 자른다면, 많은 잎과 가지가 마른다. 마찬가지로, 그대가 마음의 뿌리를 자른다면, 다양한 마음작용도 멈출 것이다. 천 겁 동안 쌓인 어둠도 일시에 소멸된다. 마찬가지로, 단 한 순간이라도 정광명의 마음을 체험하는 것은 모든 업장을 소멸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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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극단을 넘어서 있는 마음의 본성을 발견하기] 인간의 지성은 인식의 대상을 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없고, 나타나 있는 사물을 통해, 하나의 사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자각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대가 지성을 초월해 있고, 하나의 사물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깨닫고자 한다면, 마음을 유심히 관찰하고, 깨어서 지켜봄이 드러나게 하라. | 케 호! 한번 잘 들어보라! 마음을 초월해 있는 진리는 마음이라는 기능에 의해 파악될 수 없다. 무위의 의미는 움켜잡으려는 마음의 행위로는 이해될 수가 없다. 무위, 마음을 초월한 것을 깨달으려면, 마음을 그 뿌리에서 자르고, 뚜렷한 각성 속에 머물러라.
| 삼사라의 다르마는 다채로운 모양을 지으며, 호오애증의 마음을 일으킨다. 나타나 있는 사물은 고유한 자기 실재성이 없다. 그러므로 궁극의 본질을 구하라. 마음의 다르마는 초월심의 의미를 파악할 수 없다. 행위의 다르마는 무위의 다르마를 발견할 수 없다. 초월심과 무위를 깨달으려면, 마음의 뿌리를 자르고, 의식의 힘이 드러나게 하라. |
[중도: 받아들이지 않음, 거부하지 않음] 사념의 탁한 물이 맑아지도록 놓아두어라. 그것이 나타나는 모습을 없애려 하거나 연출하지 마라. 있는 그대로 내 버려두라. 나타난 모양을 받아들이지도 거부하지도 않을 때, 나타나 있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드라로 비추어질 것이다.
| 마음이 지어내는 흙탕물이 맑아지도록 놓아두어라. 마음의 심상에 대한 능동 수동적인 태도를 그만두고, 그 모습을 그냥 내버려두라. 꾸미려 하거나 없애려 하지 않을 때 나타나 있는 모든 현상은 마하무드라이다. | 마음이 지어내는 오염된 물이 맑아지게 놓아두어라. 마음의 심상을 멈추려 하지 말고, 저절로 멈추게 내버려두라. 거부함도 없고, 받아들임도 없다면, 그대는 마하무드라 속에서 깨어날 것이다. |
[비발생, 비소멸, 현상과 공성의 불가분성] 모든 사물의 바탕은 비발생이며, 그 사물의 비발생적 바탕 속에서 행위와 습성, 장애는 사라진다. 그러므로 하나의 모습으로 결정짓거나, 원하는 모양으로 가꾸지 말고, 나타남이 없는 본질에 머무르라. 그 상태에서 현상의 모습은 뚜렷하지만, 선명한 모습을 보면서도 그에 대한 관념이 사라 없어지게 하라. |
나타남이 없는 전편재의 바탕은 업·습과 미혹의 장애를 없앤다. 그러므로 어떤 모습으로 결론짓거나, 빈틈없는 모습으로 다듬지 말고, 나타남이 없는 본질 속에 머무르라. 그리고 자아와 현상에 대한 모든 관념을 녹여 없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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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남이 없는 알라야는 습성도 장애도 없다. 나타남이 없는 본질 속에 마음을 두어라. 명상과 후명상의 행위사이에 차이가 사라지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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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길과 열매(목표)의 궁극적 견해의 차원에서] 두 극단인 유·무의 견해에서 완전히 벗어남이 견해의 구경이요, 마음이 무한 광대하게 펼쳐짐이 명상의 구경이며, 지향하는 방향이 없고, 어디로도 기울지 않음이 행위의 구경이며, 기대나 희망이 일지 않는 자기충족의 해방이 구경의 목표, 열매이다. |
최상의 견해는 모든 문으로 통해 있고, 최상의 명상은 무한의 깊이를 헤아리며, 최상의 행위는 비결정의 상태로 내버려 두며, 최상의 목표는 희망과 두려움이 사라진 있는 그대로의 평범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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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심상이 다 비워졌을 때, 모든 한계에서 벗어나 있는 최상의 견해에 도달하고, 무한하고 깊음이 최상의 명상이며, 무위의 중심무변이 최상의 행위이며, 희망이 사라진 자기충족이 최상의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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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수준의 체험 단계] 처음에 이 것은 좁은 물목을 빠져나가는 급물살과 같다. 중간에 이것은 갠지스 강의 도도한 흐름과 같다. 끝에 이 것은 모든 강의 흐름이 어머니 바다로 들어감과 같다.
| 처음에 너의 까르마는 좁은 계곡을 지나 흘러내리는 급류와 같다. 중간 단계에 이 것은 가만히 넘실거리는 갠지스 강과 같다. 마지막엔 강이 바다와 합쳐지는 것과 같다. 어머니와 아들의 만남처럼, 이렇게 완성되어 끝난다. |
처음에 마음은 거친 강의 물살과 같다. 중간에 이 것은 갠지스 강처럼 천천히 흐른다. 끝에 가서 이 것은 모든 강이 합류되는 것 같고, 아들과 어머니의 만남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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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심자를 위한 방편] 지성이 무딘 자는 그 상태에 머무를 수 없다고 판단되거든, 호흡의 기술을 유지하고, 주의 깊게 깨어있음의 본질이 드러나게 하라. 그리고 한 점을 응시하여 마음을 거기에 두게 하고, 각성의 줄을 팽팽히 당겨라. 마침내 마음은 멈추어 있게 된다. 이 때, 지켜보는 의식이 마음의 본성에 머무를 때까지 마음의 파도를 조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
마음의 날이 무디고, 이 가르침을 수행할 수 없다면, 호흡의 본질을 유지하고, 주의 깊게 깨어있음의 수액을 사용하라. 시선을 한 곳에 모으고 마음을 집중하는 법을 수행하고, 지켜보는 의식이 완전히 머물러 있을 때 까지 네 마음의 흐름을 다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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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것을 파악할 수 없는 낮은 지성의 소유자는 주의력을 집중하여, 호흡에 초점을 맞추라. 한 점을 응시하고, 집중을 수행하여 네 마음이 저절로 멈출 때까지 마음의 흐름을 다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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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된 수행자를 위한 보조방편: 까르마무드라] 그대가 까르마무드라에 의지하면, 락공불이의 지혜가 일어나리라. 지혜와 방편을 성화한 결합 속으로 들어가라. 천천히 보리심을 떨어뜨려,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다시 되돌리고, 본래의 장소로 보낸다. 마침내 그 것을 방사시켜, 몸 전체에 퍼지게 한다. 애착과 욕망이 전혀 없다면, 지복과 공성의 지혜가 드러나리라. | 까르마무드라를 행할 때, 희열과 공성의 투명한 자각이 일어날 것이다. 지혜와 방편의 성스러운 결합속에 고요하게 가라앉혀, 보리심을 천천히 내려 보내고, 멈추었다가 다시 끌어 올린다. 그리고 근원으로 안내한다. 그러나 관능적 욕망과 애착이 없는 경우에만 그러한 자각이 일어나리라. | 까르마무드라를 추구한다면, 낙공불이의 지혜가 일어날 것이다. 방편과 지혜의 결합은 축복을 가져다 준다. 그 것을 내려 보내고 상승시켜 만달라에 이르게 하여라. 그 것을 본래 장소로 이끌어, 몸 전체에 퍼지게 하라. 욕망에 휩쓸리지 않는다면, 낙공불이의 자각이 일어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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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무드라 수행의 열매] 그 때, 흰 머리 없이 긴 수명을 누리고, 둥근 달처럼 젊음을 누리리라. 피부는 윤기가 흐르고, 사자와 같은 힘을 얻으리라. 재빠르게 일반 신통을 얻고, 구경의 성취에 도달하리라. |
그 때, 긴 수명과 젊음을 얻고, 둥근 달처럼 탄력이 생기리라. 생기가 넘치고, 사자와 같은 힘을 얻으리라. 재빠르게 세속의 신통을 얻고, 최상의 깨달음을 이루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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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명을 얻고, 흰 머리가 없으며, 둥근 달처럼 탄력이 있으리라. 생기가 돌고, 힘은 넘치리라. 재빠르게 상대적 성취를 얻고, 절대적 성취를 구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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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향] 마하무드라의 이 핵심 가르침이 고귀하고 복된 존재의 가슴에 머무르길 바랍니다. | 마하무드라의 이 핵심 가르침이 복된 존재의 가슴에 머무르길 기원합니다. | 마하무드라의 이 핵심 가르침이 복된 존재의 가슴에 머무르길 기원합니다. |
[후기] 이 가르침은 갠지스 강 언덕에서 크게 빛나는 성취자 띨로빠가 마하무드라를 깨달은 뒤 배움과 깨달음을 겸비한 까쉬미르의 대 학승, 나로빠에게 전수한 것이며, 나로빠가 열두 가지 고행을 마친 뒤였다.
이 것은 북방의 뿔라하리에서 나로빠에 의해 산스끄리뜨어로 옮겨지고, 대역경사 마르빠 초기 로되가 티벳어로 옮기게 되었다. 이 판본은 켄첸 탕구 린포체의 해설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라마 예쉐 걈쵸에 의해 영문으로 번역되었다. | [후기] 나로빠에게 스물여덟 구절로 교시한 띨로빠의 마하무드라는 스승이자 대 성취자인 띨로빠가 까쉬미르의 대학승인 나로빠에게 갠지스 강 언덕에서 전수하였고, 나로빠가 열두 가지 고행을 마친 뒤였다. 나로빠는 가르침을 스물여덟 구절의 산스끄리뜨 문장으로 써서 티벳의 대 역경사, 마르빠 최기 로되에게 전수하였고, 이 것을 마르빠는 부탄에 인접한 티벳의 뿔라하리에서 티벳어로 옮겼다. 이 판본은 <집대수인교의론>에 포함되어 있으며, 씨킴에 있는 갈와 깔마빠의 룸떽사원에서 인쇄되었다. 판본의 티벳 이름은 ‘착 갸 첸 뽀 맨 응악’이다. 이 티벳본의 영문 번역은 1977년, 인도 깡그라 계곡, 따시종에 계시는 캄뚤 린포체의 구전가르침이 전수된 후에 꾼상 텐진에 의해 이루어졌다. |
마하무드라에 관한 이 구전 가르침은 갠지스 강 언덕에서 쉬리 띨로빠가 나로빠에게 주었고, 역경사 마르빠 최기 로되에 의해 싼스끄리뜨어에서 티벳어로 번역되었다. 이 판본은 <해탈의 신화와 명상의 길>에서 초걈 뜨룽빠에 의해 1976년에 영문 번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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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cafe.daum.net/dharmalamp 올려주신 구현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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