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기원정사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그 무렵 팃사 비구도 기원정사에 있었는데 그는 ‘나는 부처님과 외사촌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공경할 필요도 없고 거리낄 것도 없다. 두려울 것도 없고 충고를 받을 이유도 없다’고 하면서 돌아다녔다. 소문을 들은 부처님이 팃사를 불렀다.
“팃사야, 듣자 하니 네가 ‘나는 부처님과 형제뻘이다. 그러므로 누구를 공경할 필요도 없고 충고도 들을 것이 없다’고 했다는데 사실인가?”
대중 가운데 불려 나온 팃사는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리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부처님은 엄하게 팃사를 타일렀다.
“팃사야, 그래서는 안 된다. 오히려 ‘나는 부처님 고모의 아들로 형제뻘이 되므로 누구에게나 공경해야 하고 두려워하고 충고를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만일 이렇게 하면 사람들은 네가 ‘부처님과 형제뻘이어서 훌륭한 수행자가 되었다’고 하리라.”
훈계를 받은 팃사는 그 후 겸손한 수행자가 되어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잡아함 38권 1068경 《저사경(低沙經)》
부처님의 여러 친족들이 불교교단으로 출가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10대 제자 중 라훌라는 아들이고, 아난다는 사촌 동생이었다. 배신자 데바닷타와도 사촌 지간이고 용모가 출중했던 난다는 배다른 동생이었다. 또 팃사 존자는 고모의 아들이었다. 부처님을 길러준 마하파자파티 부인과 아내 야소다라도 출가해 비구니가 되었다.
홍사성/불교방송 상무
이처럼 많은 친족들을 출가시킨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불법이야말로 윤회로부터 해탈을 얻을 수 있는 구원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가장 ‘행복한 삶’에 친족을 끌어들이는 것은 부처님에게도 인지상정(人之常情)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불교교단에 출가한 친족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엄격하게 대했다. 아들인 라훌라가 아직 나이가 어린 탓에 버릇없는 행동을 많이 하자 장로 사리풋타에게 부탁해 특별훈육을 시키도록 했다. 그래도 부족했던지 하루는 이런 방법으로 직접 가르쳤다.
라훌라에게 발 씻을 물을 떠오게 한 부처님은 발을 닦은 뒤 ‘이 물을 먹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라훌라가 ‘더러운 물이라 못 먹는다’고 하자 이번에는 물을 버리고 ‘그러면 이 그릇에 밥을 담아 먹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더러워서 그럴 수 없다’고 하자 다시 그릇을 내던지며 ‘저 그릇이 아깝느냐’고 물었다. 라훌라는 ‘더러운 것을 담았던 찌그러지고 깨진 그릇이라 아까울 것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때 부처님은 라훌라를 향해 이렇게 타일렀다.
“그렇다. 더러운 물은 먹을 수 없고, 더러운 그릇에는 밥을 담을 수 없고, 더러운 그릇은 깨져도 아무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사람도 그와 같다. 거짓말이나 하고 버릇없이 구는 사람은 더러운 물처럼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를 내팽개쳐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항상 행동을 조심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 부처님은 이복 동생인 난다가 항상 좋은 옷을 입고 다녀 말썽이 되자 이를 나무라고 타일러 버릇을 고쳐 주었다. 이 사실은 《저사경》 바로 앞에 있는 1067경 《난타경(難陀經)》에 기록되어 있다.
‘남편이 사장이면 아내는 회장이고, 남편이 사단장이면 아내는 군단장, 남편이 코치면 아내는 감독’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다 친족들의 처신이 진중하지 못해서 생긴 말이다. 높은 자리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친족 관리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또 친족이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도 모시는 어른에게 누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 이 경은 바로 이 점을 가르쳐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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