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오온(五蘊. 색수상행식의 무더기)의 무아無我
1.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위빠사나 수행의 지도(地圖)
1) 위빠사나 수행은 자신의 몸과 마음, 즉 오온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사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괴로움은 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오온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잘못 알고, 오온을 집착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오온을 바르게 이해한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2) 위빠사나 수행은 항상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직접 알아차려서 몸과 마음의 고유한 특성과 조건적 특성과 일반적 특성을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오온을 있는 그대로 보는 안목을 기릅니다. 이 몸과 마음은 단지 다섯 무더기인 色蘊과 受蘊과 想蘊과 行蘊과 識蘊의 모임이며, 이것을 조절하는 실체는 없고, 다만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지는 물질과 정신이 있을 뿐이라고 이해할 수 있게 되면, 오온을 나라고 집착하는 지독한 고정관념인 오취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3) 실제로 마음은 한 순간에 하나뿐이며, 이 순간의 마음이 이 순간의 물질과 마음의 작용을 이끌어 함께 생멸하면서 계속 흐릅니다. 오온은 한 순간의 조건에 의해 일어나고, 그 조건이 소멸할 때 그 오온도 소멸합니다. 그러므로 오온 안에 나의 실체나 주인은 없고, 오직 그런 오온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들이 있습니다.
4) 우리는 매순간 감각 기관인 6근과 감각 대상인 6경이 촉하면서 6식이 생기고, 6식과 함께 일어난 느낌과 생각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의도가 일어나 생각과 말과 행위라는 업을 짓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며 진행됩니다. 즉 지금 부딪치는 대상에 대한 감수작용(受), 지각작용(想), 의지작용(行)의 보고를 받은 마음이 그 대상에 대하여 선하거나 불선한 의도를 일으키고, 물질은 그런 마음의 명령을 받아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할 뿐입니다.
5) 위빠사나의 알아차림은 외부의 대상에 대하여 내부의 정보들이 종합되어 의지작용(行蘊)을 일으킬 때, 불선한 마음 작용을 알아차려 알아차림이 있는 선한 마음의 의지작용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이 선한 마음의 행위조차도 알아차려 집착하지 않음으로 해서, 미래의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업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과거에 지은 선업이나 불선업의 과보로 나타난 현재를 알아차림으로 수용하여 과거의 업으로 인한 새로운 괴로움의 원인을 만들지 않고, 과거의 업을 받아들여 소멸해 갑니다.
이렇게 알아차림과 함께 일어난 선업의 힘이 윤회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 원인이 됩니다. 즉 알아차림은 지혜로 집착이 없는 행위를 하게 하며, 그 결과로 탐진치의 번뇌로부터 해탈을 이루고, 알아차림으로 미래에 생길 새로운 괴로움의 씨앗을 지금여기에서 제거합니다.
2. 오온에 대한 분석
1) 색온 - 물질의 무더기입니다. 물질은 마음과는 달리 모양과 형태를 갖추고 공간을 차지하여 분명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외부의 조건에 의해 변형되는 성질을 갖고 있습니다. 물질은 자신의 업에 의해 얻어진 땅의 요소, 물의 요소, 불의 요소, 바람의 요소가 모여서 몸이라는 물질의 무더기를 이룹니다. 그리고 이 물질의 무더기는 끊임없이 조건에 따라 생멸하며 성장하고 또 늙어갑니다. 우리는 이런 과정 자체가 불만족이며, 이런 불만족을 해결할 실체로서의 자아를 발견할 수도 없으면서 몸을 내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몸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직접 몸에서 지수화풍 4대의 요소가 조건에 의해 게속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통찰해야 합니다.
2) 수온 - 느낌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과 함께 반드시 느낌이 일어납니다. 느낌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이며, 즐거운 느낌은 탐욕으로, 괴로운 느낌은 성냄으로, 덤덤한 느낌은 그 느낌에 안주하는 어리석음으로 마음을 오염시킵니다. 이런 탐진치의 마음은 불선한 행위로 연결됩니다.
느낌을 알아차리는 수행은 매 순간 느낌에서 갈애가 생기지 않도록, 현재의 느낌을 법으로 알아차리고, 그 느낌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보고, 그 느낌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조건에 의해서 생긴 한 순간의 느낌이며, 감각기관이 느낀 것일 뿐이라고 있는 그대로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이럴 때 느낌은 단지 알아차릴 대상일 뿐 내 느낌이 아니며, 이 느낌은 찰나에 일어났다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3) 상온 - 지각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과 함께 과거의 경험으로 저장된 정보들로부터 얻은 대상에 대한 표상작용, 지각작용, 인식작용, 또는 언어적 개념으로 관념화하는데 그것이 상온(想蘊)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의 작용을 나와 동일시하여 내 것으로 집착합니다. 그러나 이런 想의 무더기는 자신만의 견해일 뿐 바른 정보가 아닙니다.
그 예로 어떤 한 물건을 100명이 보면 100개의 인식작용이 일어나지만 그 내용은 각기 다릅니다. 그래서 想도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이며, 자신의 정보가 보편타당한 것도 아니고, 찰나 생멸하는 想을 내 것이라고 할 수 없음을 통찰해야 합니다.
단지 조건에 의해 일어나는 상(想)을 나와 동일시해서 집착하면, 자로 자신의 생각의 노예가 되어 자신만이 옳다는 아만과 독선이 생기고 그것이 바로 자신을 괴롭힙니다. 그래서 상온이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통찰하여 상에 끌려가지 않으면,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시작되는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4) 행온 - 의지작용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과 감각대상이 만나서 대상을 인식할 때 함께 일어난 느낌과 생각에 의해 새로운 의도가 일어납니다. 이런 의도에 의해 즉시 말이나 행위를 합니다. 그래서 행온은 의업이며, 의업에 의해 구업과 신업이 일어납니다.
행온은 50가지로, 깨끗한 마음의 작용 25가지, 불선한 마음의 작용 14가지, 그리고 이 두 가지 마음작용에 함께 일어나 같아지는 마음작용 11가지가 있습니다. 이러한 의지 작용의 결과로 업이 생기고, 이 업의 과보로 새로운 물질과 정신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업(業)이 윤회의 주범입니다. 죽을 때 가지고 가는 재산은 오직 자신이 행한 업입니다. 중생은 이 업의 과보로 다시 태어나지만, 아라한은 업이 없어 생사윤회가 끝납니다.
5) 식온 -의식작용의 무더기입니다. 감각기관이 감각대상을 만나면 그것을 아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조건으로 일어나는 여섯 가지 의식은 반드시 조건에 의해 발생하고, 조건이 소멸하면 그 의식도 그 자리에서 소멸합니다. 예를 들면 등잔에 기름이 있을 때 심지에 불을 붙이면 불꽃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눈과 형상과 빛이라는 조건이 있을 때 안식이 생깁니다. 등잔의 불꽃은 세 가지 조건이 만나서 일어난 것이므로 그 중 한 조건이 사라지면 당연히 그 자리에서 불이 꺼집니다.
우리는 이런 등잔불의 이치는 잘 알면서도, 세 가지 조건에 의해 일어난 의식이나 느낌은 나와 동일시해서 내 것으로 붙잡고 그 느낌이나 마음 사라진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대상을 경험하는 주체를 '나'라고 아는 것이 무명이며, 이 무명을 바탕으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는 다시 집착과 업을 생성하여 괴로움을 일으킵니다.
수행자가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보면, 대상을 아는 마음은 찰나적인 것으로 내 마음이라고 할 수 없으며, 또한 몸과 마음 중에 마음이 다음 생으로 전이 되는 윤회의 주체도 아니며, 마음은 오직 조건에 의해 끊임없이 생멸하면서 흘러가는 것으로 다섯 무더기 중 하나이며, 마음은 한 찰나만 실재하는 것으로 내 마음이 아니며, 마음의 무상한 성품을 통찰합니다.
3. 오온의 무아.
우리는 흔히 몸과 마음을 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 안에는 나라고 할만한 실체는 없고, 다만 나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단지 조건에 의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물질과 정신을 나라고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아라는 말은 물질과 정신의 작용은 분명하게 있지만 그 물질과 정신은 이름처럼 내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매순간 경험하는 물질, 느낌, 지각, 의지, 아는 마음이 모두 내 것이 아니며,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닙니다. 오온 중 어느 것도 경험하는 순간 반드시 사라집니다. 그래서 오온 중 그 어떤 것도 붙잡을 수는 없으나 무명과 갈애가 남아있는 한 계속 새로운 오온이 일어나는 것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오온은 조건에 의해 일어났다 사라질 뿐인데, 그 생멸을 통찰하지 못하기 때문에 당연히 나라고 알고 붙잡습니다.
그래서 불교의 해탈 열반은 나라는 관념을 오온이라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법으로 해체하여, 이 법들의 무상, 고, 무아를 보고, 이 안에 나라고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아 나에 대한 집착이 완전 소멸될 때 증득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오온 자체는 매순간 생멸하도록 조건 지어져 있기 때문에, 무상하고 괴로울 수밖에 없는데도, 오온의 무상을 관찰하지 못하고 '나'라고 하는 집착으로 갈애를 일으키고, 그 과보로 일어난 괴로움을 피하려고 다시 업을 만들고 그 업의 과보로 계속 윤회를 합니다.
이 과정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 매순간 지금여기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오온의 작용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8정도를 닦는 길 밖에 없습니다. 지금까지 오온이 무상, 고, 무아인 줄을 몰라서 집착하고, 그 과보로 괴롭다면 지금부터라도 오온에 대한 바른 관찰을 시작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이 현재를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오온의 무상, 고, 무아를 직관하는 것이 8정도 위빠사나 수행이며, 위빠사나 수행으로 사성제를 통찰한 지혜가 모든 번뇌를 소멸하여 직접 열반을 체험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깨달음이며 불교 수행의 완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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