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 해설

[스크랩] [碧巖錄] 제100칙 巴陵吹毛劍 - 파릉화상의 취모검

수선님 2018. 10. 28. 12:49

관련 이미지 <벽암록> 제100칙은 파릉 화상의 취모검(吹毛劍)에 대한 질문을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어떤 스님이 파릉 화상에게 질문했다. ‘어떤 것이 취모검입니까?’ 파릉 화상이 말했다.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이 달려 있구나.’

擧。僧問巴陵。如何是吹毛劍. 陵云。珊瑚枝枝撑著月.

본칙 공안의 출처는 잘 알 수가 없는데, <오등회원> 15권 파릉 선사전에 전한다. 파릉 화상은 운문문언(864~949)선사의 선법을 이은 호감(顥鑑)선사로 동정호에 가까운 악주(岳州) 파릉 신개원(新開院)에서 교화를 펼쳤는데, 변론의 대가였다고 한다. 특히 본칙의 공안과 <벽암록> 13칙에 어떤 스님이 제바종(提婆宗)의 종지를 묻는 질문에 파릉 화상은 ‘하얀 은쟁반위에 하얀 눈을 쌓은 것(銀椀盛雪)’이라고 대답한 말, 그리고 ‘어떤 것이 도(道)인가’라는 질문에 ‘눈 밝은 사람이 우물에 떨어졌다’는 파릉의 삼전어(三轉語)라는 유명한 공안이 전한다.

파릉 화상의 대답은 운문 선사의 교화수단을 그대로 잘 계승하였다고 하여 그를 운문의 적자(的子)라고 한다. ‘평창’에 운문의 문하에 뛰어난 3명의 선승(三尊宿)이 있는데, 마삼근(麻三斤)으로 유명한 동산수초(洞山守初), 나한광과(羅漢匡果), 그리고 파릉 선사다. ‘전등록’ 23권에 어떤 스님이 이들 3명의 선승에게 똑같이 취모검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수초 선사는 ‘금주(金州)의 객(客)’이라고 대답하고, 광과 선사는 ‘끝났다(了)’라고 대답하고, 파릉 화상은 본칙과 같이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이 달렸구나!’ 라고 대답하였다.

원오는 이들 세 사람 가운데, 오직 파릉 화상의 대답이 가장 뛰어났고, 불법의 본지를 분명히 드러냈다고 칭찬하며, 광과 선사가 ‘了(끝났다)’ 라고 한 말과 파릉 화상이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이 달렸구나!’라고 한 말과 ‘같은가, 다른가?’를 반문하고, 광과 선사가 ‘끝났다(了)’고 한 말은 불법의 냄새와 깨달음의 향기가 남아 있지만, 파릉 화상의 대답은 이러한 자취나 흔적을 모두 초월한 경지에서 분명하게 제시한 안목이라고 칭찬하고 있다.

취모검(吹毛劍)이란 칼날 위에 솜털을 올려놓고 입으로 불면 끊어지는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로 고대의 명검이다. 선어록에는 금강보검(金剛寶劍), 막야검(鏌鎁劍), 관우 장군의 대도(大刀)가 자주 등장하는데, 반야의 지혜의 영묘한 작용을 비유한 것이다. <유마경>에 지혜의 검으로 번뇌의 적을 타파한다고 하는 것처럼, 일체의 사량분별을 끊어버리고 곧바로 여래의 경지를 체득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지혜의 칼로 일체의 번뇌 망념을 끊어버리는 비유를 많은 경전과 어록에서 설하고 있다. <임제록>에도 지혜의 칼이 작용하면 무일물(無一物)의 경지(空)라고 설하며, <증도가>에도 “대장부가 지혜의 칼을 잡으니 반야의 칼날이요, 금강의 불꽃이다. 외도의 심장을 쳐부술 뿐 아니라, 천마의 간담도 떨어뜨렸다”고 읊고 있다.

<회요> 23권에 도한 선사는 “영묘하고 예리한 보검(寶劍)이 항상 눈앞에 나타나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조당집> 7권에 협산이 “석상은 살인도는 있지만, 활인검이 없고, 암두 선사는 살인도도 있을 뿐만 아니라 활인검도 있다”고 평하고 있는 것처럼, 선승들이 반드시 구족해야 하는 지혜작용을 살인도(殺人刀)와 활인검(活人劍)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든 사물은 모두 두 가지 얼굴이 있는데, 살인도는 부정적이고 파괴하는 얼굴이며, 활인검은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얼굴이다.

즉 살인도는 번뇌 망념의 중생심을 차단하는 교화수단이고, 활인검은 일체의 번뇌 망념을 텅 비우고 반야의 지혜를 작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살인도는 종래의 구습에 젖은 중생의 생멸심과 차별, 분별심을 제거하고 없애는 지혜의 칼이고, 활인검은 본래 청정한 불심의 지혜를 회복하여 지금 여기 자신의 일을 반야의 지혜로 보살도의 삶으로 활발하게 작용하는 방편수단의 칼이다.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空)의 실천이 살인도이고, 본래 청정한 불성의 지혜로 만법을 여여하고 여법(如)하게 창조적인 삶을 살아가는 반야지혜가 활인검이다.

선의 수행은 분별의식과 상대적인 대립관념이라는 번뇌 망념을 텅 비우는 공의 실천을 죽인다는 살인도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불법의 대의를 체득하지 못하여 반야지혜의 작용이 없이 중생심으로 사는 수행자를 혼이 흩어지지 않은 사인(死人)이라고 한다. 잠시 번뇌 망념에 떨어져 본래심을 상실한 수행자를 죽은 사람과 같이 취급한다. 그래서 지혜작용을 죽이는 일체의 번뇌 망심을 죽인다고 표현한다.

임제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인다고 표현한 것처럼, 부처나 조사라는 고정관념에 떨어지면 자신이 반야지혜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일체의 경계나 차별심을 끊어버리고 텅 비운다는 선수행을 죽인다고 한다. 죽이기만 하고 살리는 능력이 없다면 사람을 못쓰게 하고, 지혜작용을 살리기만 하고 죽이는 작용을 쓰지 못하면 정사를 판단하는 안목이 없고, 선병을 진단할 능력이 없는 눈먼(暗證)선승이다. 살인도와 활인검을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선승의 지혜작용을 살활자재(殺活自在)라고 하는데, 선승은 반야지혜의 예리한 취모검의 두 칼날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어야 문수의 지혜의 칼인 금강보검을 갖게 되는 것이다.

본칙에 어떤 스님이 취모검을 묻는 질문에 파릉 화상은 보월관휴(禪月貫休, 832~912) 선사가 벗을 그리며 읊은 시의 한 구절로 대답한 것이다. “두껍기는 철위산위의 무쇠와 같고, 얇기로는 쌍성선(雙成仙)의 몸에 걸친 비단 같도다. 촉 지방의 비단위에 수놓은 봉황무늬 사르르 움직이고, 산호의 가지마다 달이 걸려 있구나. (이하 생략).” 이 시는 <선월집> 제2권에 싣고 있는데, 그리운 벗의 인품을 형용한 것이다. 파릉 화상이 취모검에 대한 대답은 바다 속에 있는 산호의 가지가지마다 달빛이 밝게 비추어 빛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같다. 달빛의 광명(지혜)이 산호 가지마다 서로서로 비추어 걸림 없이 상즉상입하여 무애자재한 경지이다. 이러한 경지를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있겠는가.

원오는 “광채가 만상을 삼켰다”고 착어했다. 이 말은 반산보적 선사의 유명한 게송 “마음 달이 홀로 원명하니 빛이 만상을 삼킨다(心月孤圓 光呑萬象)”는 일절이다. 또 “사해(四海) 구주(九州) 온 세상이 광명으로 가득찼다”고 착어한 것처럼, 본래 구족한 불심의 반야지혜칼(吹毛劍)의 광명이 온 천하에 두루하고 있다고 하였다. 원오는 평창에 파릉 화상은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여 그 스님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는데도 그는 모르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설두 화상은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읊고 있다.

“공평하지 못한 일을 공평하게 하네.” 옛날 협객이 길에서 불평(不平)을 보고, 강한 사람이 악한 자를 능멸하기에 칼로 강한 자의 머리를 쳐 날렸다고 하는 고사에 의거하여, 선승은 미간에 보검을 감추고, 소매에 금추(金鎚)를 감추어 천하의 공평치 못한 일을 처단한다. 취모검을 질문한 스님의 견해(不平)를 파릉 화상은 반야지혜인 산호 가지의 보검으로 공평하게 하였다.

“뛰어난 솜씨는 졸작과 같네.” <노자> 45장의 말인데, 파릉의 뛰어난 지혜는 오히려 졸렬한 것처럼 보이는 것. 산호 가지에 달빛이라는 일구(一句)로 불평을 공평하게 한 지혜작용은 보검을 사용한 것 같지 않고 취모검을 휘둘렀다.

“혹은 손가락, 혹은 손아귀에 나타나.” 검도의 달인은 손가락과 손을 자유자재로 쓴다. 각자가 구족한 불심의 지혜인 취모검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야 한다. “하늘까지 뻗치는 빛 눈을 비춘다.” 파릉 화상이 휘두른 취모검의 광명이 너무나 차가워 눈과 서리를 비춘다.

“대야(大冶)라는 훌륭한 대장장이라도 이 칼을 갈지 못하고, 양공(良工)이라는 뛰어난 기술자라도 털고 닦느라 쉬지 못하네.” 이 두 구절은 취모검을 갈아서 날을 세우기 어렵고, 갈을 잘 갈아서 녹슬지 않도록 보존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읊고 있다. 털어버리기 어렵다는 말은 사람들의 본분상에 구족되어 있는 금강보검을 결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갈고 털어버릴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별다르고 별다르다.” 이 금강 보검은 세간의 보검과는 전연 다르고, 사용하는 방법도 다르다. 군병에서 사용하는 칼과는 격별한 것이다. “산호의 가지가지에 달이 걸려 있구나.” 설두 역시 파릉 화상이 대답한 취모검의 지혜로 자신의 입장을 마무리하고 있다.


성본스님/동국대 불교문화대학 교수

출처 : 淨土를 그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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