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붓다의 옛길 - 올바른 생활 (正命)

수선님 2018. 11. 4. 11:12

붓다의 옛길

올바른 생활 (正命)

 

 

팔정도 가운데 계학에 속하는 세 번째 것이자 마지막 항목은 '올바른 생활'이다. 이것은 무기거래, 도살용 동물의 거래, 사람 거래(노예, 인신 매매등), 술 거래, 마약 거래를 하지 않는 것이다. 비록 붓다는 단지 이 다섯 가지만 언급했지만 사실 생계를 꾸려 가는데는 다른 많은 잘못된 방법들이 있다. 붓다가 다섯 가지만 언급한 것은 대부분 농부, 목축업자, 상인들로 구성되어 있던 기원전 6세기의 인도 사회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들임을 명심해야 한다.

 

경전에는 농부와 목축업자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흥미로운 부분들이 있다. [숫타니파타]의 두 번째와 네 번째 설법은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인도는 농업 국가였고 정부는 민주적이지 못했다. 대부분의 국가는 붓다 자신의 종족인 사카족과 마찬가지로 왕의 통치를 받고 있는 봉건 국가였다. 그러나 원로들과 집정관들에 의해서 통치되는 릿차비족과 같은 공화정도 있었다. 왕국의 왕은 모든 사람들의 추앙을 받고 그들의 충성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통치자 였다. 당시의 삶은 오늘날과는 자못 대조적이었던 것 같다. 당시는 오늘날과는 달리 생계 수단이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에 붓다는 이 생계 수단들 가운데 단지 다섯 가지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붓다가 단지 일반인들에게만 잘못된 생활의 좋지 못한 결과와 올바른 생활의 이점에 대해서 언급 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팔리어로 된 근본 다섯 니카야(Nikaya)가운데 디가 니카야(Digha-nikaya)와 앙굿타라 니카야(Anguttara-nikaya)에서 우리는 통치자들이 영위해야 할 생활에 대한 설법을 발견 할 수 있다. 거기에서는 왕은 올바르게 통치해야 하며 부당하게 통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단호히 지적하고 있다. 통치자들은 백성들과 동일한 규율을 준수하면서도 나라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모든 선한 자질들을 지녀야 한다. 경전에서는 왕의 열 가지 의무를 언급하고 있다.


그것은 1)보시를 잘 할 것, 2)도덕을 잘 지킬 것, 3)자기 희생적일 것 즉 이기심이 없을 것, 4)정직할것, 5)관대할 것, 6)사치스러운 생활에 빠지지 않을 것, 7)자제력이 있을 것, 8)화내지 않을 것, 9)폭력을 쓰지 않을 것, 10)인내심을 갖고 쾌활할 것이다.


붓다가 지적하고 있듯이 먼저 법 즉 자비와 정의를 수립해서 악을 피해야 할 사람은 바로 통치자이다. 통치자는 먼저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약 사람들 가운데 우두머리로 여겨지는 사람이 바르게 살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무슨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들은 남이 하는대로 할 것이다. 만약 왕이 올바르게 살아가지 않는다면왕국 전체가 고통 속에서 살아 갈 것이다.... 만약 왕이 올바르게 살아 간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의 행동을 본 받을 것이고 왕국 전체는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증지부 74)


"자신의 아이들에게 인자한 아버지처럼" 왕 즉 통치자는 이미 얻은 명예 마족하지 말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친절하고 의무를 다해야 한다. 방종과 권위 의식에 빠져 있는 왕은 칭찬받지 못하고 경멸 당한다.(상응부.i.100)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고 정당하고 정직하고 공명정대하기 위해서, 통치자는탐욕, 성냄, 두려움, 어리석음으로 백성들을 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것은 네 가지 잘못된 통치방법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모범적인 생활 때문에 후에 법아육(法阿育.Dhammasoka)으로 알려지게 된 인도의 아소카 왕은 모든 시대의 가장 정당하고 현명하며 관용적인 통치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여겨 진다. 그러한 사실은 그의 칙령에 잘 나타나 있다.


"모든 사람들은 나의 아이들이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이 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모든 번영과 행복을 누리기를 바라듯,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세상을 안락하게 해야 한다. 세상은 나로부터 슬픔이 아니라 행복을 받아야 한다."
"모든 세계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일보다 더 고귀한 의무는 없다."
"나는 모든 세계의 이익을 위해 일해야 한다."


한 나라를 바르게 통치하기 위해 붓다의 충고를 따랐던 아소카 왕이 모범적인 통치자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H.G. 웰스(Wells)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수많은 군주들 가운데 아소카라는 이름은 별처럼 독보적으로 빛난다."
 

아소카는 2,300여 년 전에 살았다. 당시는 사회의 인심이 흉흉해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일에는무관심했던 것 같다. 그들은 자신들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심지어다른 사람의 생명마저 빼앗아 갔다.
 

현대에 올바른 생활(정명.正命)은 가장 지키기 어려운 계율 가운데 하나 일지도 모른다. 상당히 많은일들이 사회에 해를 끼친다. 이러한 일들은 진실한 불교도들에게는 무가치한 것들이다. 군수 산업,주류 판매, 동물의 도살과 관계된 직업, 선정주의, 부정직한 광고와 출판, 고리 대금과 관계된 사업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불교는 편협한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이해와 연민을 가지고 인간의 약점을바라본다. 그러나 진지한 불교도들이 도덕적인 규범을 주장하면서 덜 도덕적인 직업으로 생계를 꾸려 나갈 수는 없다. (Hohn Walters, Mind Unshaken 1961)


올바른 생활과 관계된 계율은 개인과 사회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고 사람들 사이에 화합과 적절한유대감을 촉진하기 위해서 고안 되었다. 올바르지 못하고 잘못된 생계 수단은 개인뿐만 아니라 가족과 국가에도 적용된다. 잘못되고 옳지 않은 생계 수단은 그로 인해서 사회 전체에 큰 불행과 불화와 고통을 가져다 준다. 
 

한 사람 또는 한 공동체가 다른 사람들을 이용하는 나쁜 짓을 저질렀을 때, 그것은 사회의 평화와 조화를 해친다. 사람들은 바로 단순한 이기심과 탐욕에 의해서 잘못되고 불법적인 생계 수단을 가지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이웃과 사회에 입히는 손실과 고통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하다. 그래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이나 남을 위해서 악을 행해서는 안된다. 아들이나 부(富), 왕국을 탐내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성공하길 바라면 안 된다. 이것을 잘 지키는 사람이 참으로 덕이 높고 현명하며 정직한 사람이다."
(법구경 84)


붓다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재가 신도들이 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비구들에게 기대했던 윤리적인 행위를 그들에게 까지 동일하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재가 신도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덕적인 의무인 오계만은 적어도 준수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또한 올바른 수단과 올바른 행위로 생계를 꾸려 가고 아내와 아이들을 부양하려고 노력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살생, 도둑질, 사기, 부정직과 속임수를 통해, 부정하고 부당한 수단으로 생계비를버는 것은 '올바른 생활'로 생각될 수 없다. 이것은 윤리적인 부당한 생활, 걸맞지 않는 생활, 조화롭지 못한 생활이다.


붓다는 재가 신도들을 비난하지 않고 그들의 나약함과 결점을 측은하게 여겼다. 사회는 결국 집을 떠나 방랑하는 고행자나 사문들뿐만 아니라 사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세속의 남녀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사회집단으로서, 사회의 복지는 개인에게 달려 있다. 개인들이 선량하고 예의 바른 생활을 영위해 간다면 사회는 자연히 좋아지게 될 것이다.


경장에는 붓다가 특별히 재가 신도들의 올바른 생활을 위해서 설법한 재가 신도들의 규율이라 불리는 [시갈라 숫타(Sigala-sutta) 장부 31]와 가은 몇몇 경들이 있다. 이 경들은 붓다가 재가 신도들의 정신적인 향상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복지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첫 번째 경에서 붓다는 시갈라(Sigala)에게 그가 관계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야 할 재가 신도로서의 완전한 의무를 명쾌하게 설명해 준다.


즉 부모와 자식들, 스승과 제자, 남편과 아내, 친구들과 친척들, 주인과 히인 사이의 상호 의무, 그리고 사문과 바라문들에 대한 종교적 의무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이와 같이 붓다는 재가 신도들이 최선을 다해서 의무를 행하고 할 일을 남겨 놓는 일 없이 올바른 생활을 하도록 고무한다.


C.A.F. 리스 데이비즈 여사는 [시갈라 숫타]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사랑과 선의를 설하는 붓다의 가르침은, 가정적.사회적 윤리성이라는 측면에서 어디에서보다도 포괄적이고 상세하게 제시되고 있다...그리고 오늘날에도 우리는 (승가의) 수행 규율인 계율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붓다의 말씀은 복잡한 인간의 이해 관계를 근본적으로 설명하고 그것을 드러내는 지혜가 너무나 합리적이고 넓어서, 라자가하에서마큼 오늘날 영국에서도 신선하고 실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친절한 동료애와, 이러한 꾸밈없고 간단한 말속에 들어 있는 숭고한 정의 정신을 지니며 갠지스 강가에 살고 있었던 마을 사람들과 씨족들은 행복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오늘날 템즈 강가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에 못지 않게 행복할 것이다." (Dialogues of the Buddha)


알다시피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후 붓다는 줄곧 혼자 방에 틀어박혀 있지 않았다. 그는 인도의 크고 작은 길을 따라 이 도시에서 저 도시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유행을 했다. 그는 귀족들보다는 평민들과 함께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왕과 왕자들은 가르침을 받고 교훈을 얻기 위해 붓다를 찾아 왔지만 붓다는 가난하고 비천하고 길을 잃어 버린 사람들을 돕기 위하여 스스로 그들에게 갔다.


붓다는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가장 화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까지 모두 알았고, 당시 인도의 정치적.사회적. 경제적 상황도 잘 알고 있었다. 상황이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설법을 고도의 철학적.심리학적인 문제들에만 국한시키지는 않았다. 붓다는 무한한 자비심과 이해심을 가진 실천적인 스승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사회적. 경제적인 복지에 상당히 신경썼다.


그리고 항상 사람들이 그의 충고를 따라서 불행이 줄어들기를 바랐고 그들이 큰 불행 없이 살아가는 것을 보고 싶어했다. 진정한 행복은 청정하고 평화로운 삶 속에서 나온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어느 정도의 물질적.경제적인 보장 없이는 도덕적. 정신적인 향상도 있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한사실이다.
 

비구들이 청정과 자유를 얻기 위한 수행을 진전시키는 데는 네 가지 필수품이 필요하다. 가사, 음식,거처, 의약이 그것이다. 이것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최소한의 필수품들이다. 기본적으로 이것들은 또한 세속인들의 근본적인 필수품이기도 하다.
 

붓다는 제자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지내느냐? 무슨 문제는 없느ㄴ냐? 나는 그대들이 잘 지내고 건강 하기를 바란다." (중부 31, 증지부.i. 70)라고 말하곤 했다. 경전에는 잃어버린 소를 찾느라 점심을 거르게 된 한 목자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 (법구경) 피로와 배고픔에 지쳐 돌아오는 길에 그는 설법을 듣기 위해 붓다를 찾아갔다. 그러나 붓다는 그가 하루종일 굶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먼저 그가 식사를 할 수 있는지 어떤지를 사람들에게 물었다. 붓다는 먼저 배고픔을 달래지 않고는 사람들에게 법을 설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다음과 같은 게송에 잘 나타나 있다.


굶주림이 가장 큰 병이며
육체가 가장 큰 죄악이다.
이것을 분명히 알게 되면
열반, 그것만이 최상의 축복이다. (법구경 203)

 

비록 붓다는 현대적인 의미의 물질적인 풍요와 세속적인 복지에 큰 중점을 두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전적으로 무시하지도 않았다. 왜냐하면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그것은 인간의 정신적인 향상을 위한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물질적인 조건과 사회 복지의 어떤 측면에 대해서는 매우 솔직하게 말했다.

 

가난이 범죄의 주된 원인이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앞에서 언급한 네 가지 필수품 즉 최소한의 생필품을 박탕당하거나 그것이 부족하게 되면(특히 음식이 부족하면)불안해 진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없게 되고 하지도 않는다. 즉 올바른 생활에 대해 생각하지 않게 된다. 최소한의 욕구 앞에서는 법도 무력하게 된다. 생계를 꾸려 나기기 위해서 그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된다. 경제적인 안정과 돈이 부족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도둑지로가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

 

[쿠타단타 숫타(Kutadanta-sutta)장부 5] 에서는 한 나라의 사회적. 경제적 조건으 향상시키가 위한 방법으로, 농부와 상인들에게 농사와 사업에 필요한 설비들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에게 적당한 임금이 지불되어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사람들이 생필품을 충분히 가지게 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었을 때 범죄가 줄어들고 평화와 화합이 넘치게 된다.
 

또 다른 설법에서 붓다는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을 건립해서 기증했던 자산가 아나타핀디카(Anathapindika)에게 재가 신도들이 누려야 할 네 가지 행복에 대해서 설한다.

 

첫번째는 재산의 소유 즉 경제적 안정으로서, 앞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거래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이 노력해서 합법적으로 충분한 재산을 가지는 것이다. 두번째는 합법적인 재산을 현명하게 지출해서 얻는 기쁨, 행보이다. 세번째는 빚이 없는 기쁨으로 '나는 누구에게도 밎을 지고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 오는 기쁨과 만족이다. 네 번째는 비난을 받지 않는 기쁨으로 이것은 '나는 나의 행동, 말, 생각에서 비난받지 않는 복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에서 오는 만족이다. (증지부 ii 69, sutta 62)

 

불교의 이러한 모든 설법들은 사회의 일원인 재가 신도들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생계비를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경제적. 사회적 지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와 동시에 잘못되고 부당한 생활 방식을 피하고 의무와 정직의 길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올바른 생활에 대한 붓다의 교훈과 충고는 재가 신도들분만 아니라 승가의 구성원들(비구들)에게도 주어졌다. 붓다는 제자들에게 비구의 생활은 철저하게 청정해야 하고 남을 속여서는 안 된다고 설했다. 그는 이 점을 매우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구들아, 속이고 완고하고 수다스럽고 교활하고 애욕에 빠지기 쉽고 거만하고 들떠 있는 비구들은 결코 나의 제자들이 아니다. 그들은 이 법과 계율을 저버렸고 또한 이 법과 계율 속에서 자라지도 발전하지도 번영하지도 않는다." (증지부. ii. 26, sutta 25)


또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구들아, 이 청정한 삶(梵行.범행)은 남을 속이면서 사는 것도 아니고, 음모나 이익, 명예를 위해 사는것도 아니다. 이 삶은 잡담이나 실없는 소리를 하는 것도 아니며 '사람들이 나를 아무개라고 얄아 보도록'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사는 것도 아니다.

비구들아, 이 청정한 삶은 자제, 버림, 침착, (번뇌의) 소멸을 우해 살아가는 것이다."

(증지부. ii,26, sutta 26)


출가에 대한 설법 (숫타니파타. Pabbajja-sutta, 407)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붓다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제자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출가한 뒤에 나는
모든 나쁜 행위와 나쁜 말을 버리고
아주 청정한 생활을 하였다.


비구들은 사업을 하지 않고 가족들의 생활을 돌볼 책임이 없기 때문에 다섯 가지 나쁜 거래를 경계해야 하는 문제와는 관계가 없다. 그들은 집을 떠나 검소하게 살아가고 원하는 것도 거의 없다. 붓다가 언급하고 있듯이 재가 신도들은 비구들에게 네 가지 필수품인 가사, 음식, 거처, 의약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증지부, ii. 65 sutta 60)


청정한 삶을 시작한 사람인 비구들은 모두 잘못된 생계 수단을 피해야 한다. 비구로서 이 삶속에서 깨끗하고 순수하지 못하다면, 어느 정도 자신감과 만족을 가지고 청정의 길을 따라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한 길은(세속적) 이익으로 인도하고 다른 한 길은 열반으로 인도한다. 붓다의 제자인 비구들은 이것을 알아 세속적인 애정과 명예에 기뻐하지 말고 해탈을 추구하라. " (법구경 75)


이 장(章)과 더불어 팔정도 가운데 계육과 관계된 논의를 마친다. 바로 앞에 나오는 두 장에서 우리는 '올바른 생활'과 더불어 불교도의 도덕적인 규율 즉 윤리를 형성하는 '올바른 말'과 '올바른 행위'에  대해서 다루었다. 이 문제는 맛지마 니카야(Majjhima-nikaya)의 78번째 경에 나오는 붓다의 간결한 언급 속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장자야, 선한 도덕적 행위란 무엇인가? 나는 도덕적인 행위 속에 포함된 선한 육체적인 행위, 선한 언어 행위를 생활에서의 완전한 청정이라고 설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을 선한 도덕적 행위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한 도덕적 행위는 무엇으로부터 생긱는가?''' 그것은 마음으로부터 생긴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실로 마음은 다종다양하다. 탐욕이 없고 성냄이 없고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에서 선한 도덕적 행위가 생긴다."


말과 행위는 생각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것이다. 불교에서는 동기와 결과 둘 다를 참작한다. 동기가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결과가 좋지 못하다면 그것은 잘못된 말이나 행위이므로 경계해야 한다.

 

출처 : 붓다의 옛길
글쓴이 : 실론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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