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의 생애
위대한 종교(주1)인 붓교의 창시자 붓다는 2,500여 년 전 북인도에서 살았고, 그의 이름은 싯닷타 (Siddhattha, Skt. Siddhartha.목적을 성취한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성은 고타마(Gotama, Skt. Gautama)였다. 그의 아버지는 숫도다나(Suddhodana)는 오늘날 네팔의 국경 지역에 있었던 카필라밧투에서 사캬족의 영토를 통치하고 있었다. 숫도다나의 왕비는 콜리야족의 공주였던 마하마야(Maha maya)였다.
나무들에 잎과 꽃과 열매가 무성하고 사람, 새, 짐승들이 즐거움에 젖는 5월 보름, 마하마야 왕비는 당시의 관습에 따라 아기를 낳기 위하여 카필라밧투에서 친정이 있는 데바다하로 가는 중이었다. 그러나 두 도시의 중간 지점인 룸비니 동산에 있는, 꽃이 만발한 무우수 그늘 아래서 왕비는 아들을 낳았다.
지금은 룸민데이로 알려져 있는 룸비니 동산은 바라나시에서 북쪽으로 160KM 거리에 있으며 눈 덮인 히말라야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로부터 316넌 뒤 아소카(Asoka)왕은 붓다가 된 싯닷타 왕자가 태어난 이 잊지 못할 장소에 성지(聖地) 임을 표시하는 거대한 석주를 세웠다. 석주에는 아소칸 문자 93자가 다섯 줄의 비명(碑銘. 비석에 새긴 글)으로 새겨져 있는데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사캬족의 성자, 붓다가 태어 나셨도다."
7세기 중엽 중국의 승려 현장이 이곳을 찾았을 때도 석주는 벼락을 맞았지만 "방금 깎아 세워 놓은 듯 또렷하다"라고 전하고 있다. 이 거대한 석주는 지금도 남아 있다. 룸비니는 1896년 저명한 고고학자 커닝험(Cunningham)장군에 의해 발굴되어 그 존재가 확인 되었다.
어머니 마하마야 왕비는 아기가 태어난지 7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이모인 파자파티(Pajapati)가 아기를 양육하였다. 아기는 성인이 될 때까지 호화롭게 자랐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왕자가 받아야 할 교육도 빠뜨리지 않고 시켰다. 그는 여러 가지 학문에 통달하게 되었고 무술에서는 어느 누구보다도 뛰어났다.
그러난 왕자는 어린 시절부터 깊은 사색에 잘 잠겼다. 왕자가 장성하자 왕은 아들이 결혼해서 가족을 부양하고 자신의 훌륭한 후계자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한편 왕은 왕자가 어느날 갑자기 집을 버리고 떠나 방랑하는 수행자의길로 뛰어들지나 않을지 걱정했다.
당시의 관습에 따라 열여섯 살의 어린 나이로 왕자는 콜리야족의 숩파붓다(Suppabuddha)왕과 파미타 (Pamita)왕비의 외동딸이며, 자신의 외사촌인 야소다라(Yasodhara)공주와 결혼 했다. 공주는 왕자와 동갑내기였다. 왕자는 세속적인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슬픔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아들을 감각적인 쾌락 속에 묻히게 하여 세속적인 인간으로 만들려던 부왕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숫도다나 왕의 노력은 오히려 싯닷타 왕자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진리와 깨달음을 얻으려는 결연한 탐구욕만 부추켰다.
나이가 들어 성숙해지나 고타마는 세상의 고뇌를 어렴풋이 감지하기 시작했다. 경전에 따르면 그는 다음과 같은 네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맨 먼저 그는 늙어서 쇠약하고 극도록 무력한 사람을 만났다. 두 번째는 극도로 불행하고 절망적인 상태에서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세 번째는 사랑했던 사람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그를 화장하러 가면서 비통해하는 장례 행렬을 보았다. 이런 비참한 광경들로 인해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네 번째 광경에서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고요하고 평온하며 초연하고 당당한 수행자를 보았는데, 그 수행자는 생의 의문을 풀어 줄 진리를 찾고 청정한 삶을 살기 위하여 가정을 버린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출가에 대한 생각이 섬광처럼 왕자의 마음을 뚫고 지나갔다. 그는 깊은 사색에 잠긴 채 왕궁으로 발길을 돌렸다. 괴로워하는 중생의 고통은 그의 마음속에서 응답의 메아리를 찾았다. 궁 밖의 세상과 접촉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그는 이 세상에는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고요한 7월 보름날 밤 그는 생각했다. ' 인생의 전성기인 젊은 시절은 늙음으로 끝나고, 인간의 오관은 가장 필요할 때에 그를 저버린다. 튼튼하고 아주 건강한 사람도 갑자기 병에 걸리면 활기와 건강을 잃고 만다. 결국 예기치 못했던 죽음이 갑작스럽게 다가와 이 짧은 인생에 종지부를 찍고 만다. 분명히 이런 불만족으로부터, 늙음과 죽음으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러자 젊음, 건강, 삶에 대한 교만한 마음이 사라졌다. 이 세 가지에 대한 교만한 마음이 허망하고 위험한 것임을 알게 되자, 그는 자기 자신과 고통받고 있는 모든 중생들을 위해 죽음이 없는 세계를 찾아 내어 늙음, 병듬, 고통, 죽음(주2)으로 부터 완전히 벗어나고야 말겠다는 강한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그가 깨달음 즉 성불함으로써 끝나는 구도의 길로 들어서게 된 것은 바로 그의 자비심 때문 이었다. 아기를 안은 채 고이 잠들어 있는 사랑하는 아내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조차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던 것도 바로 이 자비심 때문 이었다.
꽃다운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그것도 아름다운 아내 야소다라가 자신의 한뿐인 아들 라훌라(Rahula) 를 낳은 바로 그날 그는 슬프고도 가슴 아픈 이별을 했다. 초인간적인 의지로 아내와 아들, 아버지 그리고 권력과 영광이 보장되어 있는 왕좌를 버리고 영원한 진리의 삶을 찾기 위하여 떠난 그는 허름한 수행자의 옷차림을 하고 한적한 숲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삶의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평안 즉 열반(Nibbana.주3)을 향한 구도의 길을 가는 위대한 출가였다.
그는 태어남, 늙음, 병듬, 죽음이라는 인생의 보편적인 괴로움에 대한 치유 방법을 발견하려는 고귀한 일에 몰두하면서 알라라 칼라마(Alara Kalama)와 웃다타 라마풋타(Uddaka Ramaputta)라는 유명한 두 현자에게 가르침을 구했다. 그들은 선정의 지도자들인 만큼 그에게 해탈의 길을 보여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지도로 그는 선정을 닦았고 마침내 그 선정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것은 최상의 깨달음이 아니었다. 그들의 지식과 신비적인 경험의 경지로부터는 그가 열렬히 찾고 있는 것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여전히 미지의 상태로 남아 있는 그 어떤 것을 찾기 위하여 그들을 떠났다.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그는 가야 지방의 네라자라 강가에 있는 우루벨라에 도착했다. 그곳의 조용한 숲과 맑은 강물이 그의 마음을 끌었다. 그는 그곳이 깨달음을 계속 추구하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하고 머물기로 했다.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그의 결연한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은 다른 다섯명의 수행자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그들은 콘단냐(Kondanna), 밧디야(Bhaddiya), 밥파(Vappa), 마하나마(Mahanama), 앗사지(Assaji)였다.
오늘날도 여전히 그렇지만, 당시의 인도에는 극심한 고행을 해야 번뇌로부터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궁극적인 해탈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고행자들이 많았다. 수행자 고타마는 그것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그는 이곳 우루벨라에서 마음이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 해탈의 저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기를 바라면서, 자신의 육체를 마음이 통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행에 엄청난 열성을 보였다. 그는 나뭇잎과 뿌리를 먹고 살았으며 점차 그 량도 줄여갔다.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다 떨어진 옷을 입었고 시체들 사이에서나 가시가 돋은 곳에서 잠을 잤다. 영양분이 너무나 부족해서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갔다.
"나는 처절한 고행을 했다. 어느 누구보다도 혹독한 고행 이었다. 나의 사지는 시들어 버린 갈대와 같았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 난 뒤에 붓다는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 장엄한 묘사로 자신이 수행 초기에 했던 고행담을 들려 주었다.(주4)
그는 이와 같이 6년동안 엄청난 노력을 하여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목표에는 가까이 가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몸소 겪은 체험을 통해 고행이 백해무익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것이다. 깨달음을 구하려던 그의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는 용기를 잃지 않고 고요하고 능동적인 마음으로 목표를 향해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우연히 어린 시절 갯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선정에 잠겼다가 얻은 평화로움을 기억하게 되었고 ' 그것이 깨달음으로 가는 길이다.' 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 길을 그와 같이 극도로 쇠약한 몸으로는 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행과 단식을 포기하고 정상적인 음식을 섭취했다. 마침내 쇠약해진 몸은 다시 이전의 건강을 되찾았고 잃었던 기력도 다시 회복 되었다. 그러나 그의 다섯 동료들은 실망한 나머지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들은 고타마가 부유한 삶을 살기 위해 수행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확고부동한 결심과 자신의 청정함, 정신력을 믿었기 때문에 보살(주5). 깨달음을 얻기 이전의 고타마를 의미한다)은 스승의 도움이나 동료도 없이 홀로 최후의 탐구를 시작하기로 했다.
감관을 부드럽게 해 주고 마음을 고무시켜 주는 쾌적한 가야(지금의 붓다가야)의 네란자라 강가에는 후에 깨달음의 나무, 지혜의 나무로 알려진 보리수(주6)가 있었다. 그 나무 아래서 결가부좌를 하고 앉은 보살은 불퇴전의 결심으로 마지막 수행을 시작하며 이렇게 결의했다. '비록 이 가죽, 힘줄, 뼈만 남고 피와 살이 말라 비틀어져 죽는다 할지라도 완전한 깨달음을 얻을 때 가지 이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겠다.' 그는 끈기있게 노력했고 전념했으며 진리를 깨달아 완전한 깨달음을 얻겠다고 굳게 결심했다.
그는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명상법(주7)인 '들숨과 날숨의 관찰'에 몰두하여 초선(jhana. Skt. shyana.주 8)에 들어가 머물렀다. 그는 점차 제2선, 제3선, 제4선에 들어가 머물렀다. 이와 같이 마음의 더러움을 제거하고,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을 전생을 기억해 내는 지혜로 기울렸다. 이것은 초저녁(6시-10시)에 얻은 첫번째 지혜였다. 다시 보살은 갖가지 형태의 중생들이 자기가 지은 업에 따라 좋은 상태로 또는 나쁜 상태로 태어나고 죽는 것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였다. 이것은 한밤중(밤 10-새벽 2시)에 얻은 두 번째 지혜였다. 또다시 그는 번뇌를 소멸시키는 지혜로 마음을 기울렸다.
그는 다음과 같이 있는 그대로를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
그는 또한 다음과 같이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이다. 이것이 번뇌의 원인이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길이다.'
이와 같이 깨닫고 이와 같이 보았을 때, 그의 마음은 감각적인 쾌락의 번뇌, 존재하고자 하는 번뇌, 무지의 번뇌로 부터 해방 되었다(주10). 마음이 해방되자 해탈 했다는 지혜가 생겼고, 다음과 같은 깨달음이 왔다.
'태어남은 파괴 되었고,
청정한 삶을 향유했고,
해야 할 일은 이미 다해서 마쳤으므로,
다시는 이러한 상태가 오지 않는다(더 이상 윤회가 없다).
이것이 새벽녘(새벽2시-6시)에 그가 얻은 세 번째 지혜였다.(주11)
곧 그는 다음과 같은 승리의 게송을 읊었다.
태어남, 늙음, 병듬, 죽음, 슬픔, 번뇌에 구속되어
그것들에 시달리는 가운데 위험을 보았네
그래서 태어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슬프지 않고, 번뇌가 없고,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평온한
열반을 찾았고, 마침내 그 열반을 얻었네.
그러자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한 것이고
이것이 마지막 탄생이며
더 이상 생성도 윤회도 하지 않는다는
지혜와 통찰력이 일어났네 (주12)
이렇게 고타마 보살은 5월 보름, 서른 다섯의 나이에 영원한 진리인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사성제)를 완전히 증득하여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중생들의 괴로움을 치료해 줄 수 있는 위대한 의사 중의 의사, 붓다(Buddha)가 되었다.
깨달음을 얻은 직후 일주일 동안 붓다는 해탈의 기쁨을 누리면서 보리수 아래에 앉아 있었다. 그때 연기(緣起. 의존적인 발생. 주13)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다. 그리고 붓다는 보리수 근처의 한적한 여섯 곳의 수행처에서 다시 6주를 보냈다(주14). 일곱째 주가 끝나 갈 무렵, 이전에 그의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옛길인 법(法.Dhamma)를 전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이 바라나시의 이시파타나(Isipatana. 지금의 사르나트로. 선인(仙人)들이 잘 모이는 곳이라는 뜻)에 있는 녹야원에서 여전히 극단적인 고행을 하며 무의미한 엄격성 속에 빠져 있다는 것을 알고, 붓다는 가야를 떠나 인도의 신성한 도시 바라나시(Baransi)를 향해 약 240KM 의 거리를 걸어갔다. 녹야원(鹿野苑. 사슴동산. Migadavana)에서 그는 다시 그들을 만났다.
6월 보름날, 달이 동쪽 하늘에 밝게 떠올라 올 저녁 무렵에 붓다는 다섯 수행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설했다.
"비구들아, 집을 나온 출가자들은 두 가지 극단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 두 가지란 무엇인가? 감각적 쾌락과 고행이 그것이니, 이 두 가지는 이익을 가져다 주지 못한다. 두 극단을 버린 후 완전한 사람, 여래(如來. tathagata.주15)가 깨달은 중도를 따라야 통찰력과 지혜가 생겨나고, 고요, 명료한 인식, 깨달음, 열반에 이를 수 있다. 그러면 비구들아, 중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가지 성스러운 길 [팔정도]이다. 올바른 견해(正見.정견), 올바른 생각(正思惟.정사유), 올바른 말(正語.정어), 올바른 행위(正業.정업), 올바른 생활(正命.정명), 올바른 노력(正精進.정정진), 올바른 주시(正念.정념), 올바른 집중(正定.정정)이 그것이다.(주16)
그리고 나서 붓다는 그들에게 사성제(주17)를 설했다. 이렇게 깨달음을 얻은 붓다는 법을 세상에 널리 설함으로써 비할 바 없는 '진리의 바퀴(法輪)'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법이 처음으로 널리 설해졌기 때문에 이시파나나에 있는 녹야원은 붓다의 초전법륜지 (初轉法輪地. 법을 처음 설한곳)이 되었다.(주18) 또한 이곳은 다섯 명의 수행자들이 처음으로 붓다에게 귀의한 곳이기 때문에 승려 자격을 갖춘 비구들의 공동체인 승가(僧家.sangha)가 탄생한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부유한 젊은이 야사(Yasa)가 이끄는 55명의 젊은이들이 승가에 들어왔다. 우기(7월-10월)가 끝났을 때 붓다는 아라한의 경지에 오른 60명의 제자들에게 법을 설했다.
"비구들아, 나는 인간계나 천상계에 속하는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너희들 또한 인간계와 천상계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자비심으로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신과 인간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길을 떠나라. 두 사람이 같은 방향으로 가지 마라. 처음도 뛰어나고, 중간도 뛰어나고, 끝도 뛰어나고, 의미와 내용이 있고, 더없이 완벽한 이 법을 설하라. 세사에는 눈에 먼지가 거의 없는 사람들도 있나니. 이들은 법을 듣지 못하면 깨닫지 못할 것이다. 나 또한 우루벨라와 세나니가마로 가서 법을 설하겠다.(주19)
이렇게 해서 붓다는 입멸하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숭고한 전도 활동을 시작했다.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인도의 크고 작은 길을 가며 무한한 자비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들을 감싸 안았다.
붓다는 법을 설할 때 카스트, 종족, 또는 계급에 대한 차별을 두지 않았다. 가난한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 하위층 사람이나 고위층 사람, 학식 있는 사람이나 무식한 사람, 바라문이나 불가촉 천민, 왕자나 거지, 현자나 죄인 등과 같이 서로 다른 계층의 남녀들이 붓다의 법을 듣고 귀의하여 평화와 깨달음의 길을 보여 주신 그분을 따랐다.
바라문들은 카스트를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겼지만, 붓다는 그것에 대해 매우 냉담했고, 오히려 바라문들이 사회의질을 떨어뜨린다고 했다. 붓다는 청정한 수행을 원한다면 어떤 카스트 출힌이라도 누구나 자유롭게 승가에 들어오도록 허락 하였고, 그들 가운데 몇몇은 승가 내에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붓다는 그때까지 카스트 계급의 차이로 산산이 분열되었던 사람들을 서로의 관용과 화합으로 묶으려고 노력한 당대의 유일한 스승이었다.
붓다는 또한 인도에서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켰다.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바라문교의 영향 때문에 붓다 당시에도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다. 아주 드물게 여성들이 철학적인 문제 등에서 박학다식할 때조차도 그들은 경멸 당했다. 마음이 넓고 관대한 붓다는 여인들을 정중하고 예의 바르게 대했다. 그리고 여인들에게도 역시 평화와 깨끗함과 신성으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 주었다. 그는 역사상 처음으로 비구니 승가를 건립했다. 여인들이 출가해서 수행 생활을 할 수 있는 비구니 승가가 그 이전에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모든 계층의 여인들이 승가에 들어갔다. 수많은 청정한 비구니들의 생활과, 해탈을 얻었을 때 부른 기쁨의 찬가가 [테리 가타(Theri-gatha)](주20)에 생생히 묘사되어 있다.
이 마을 저 마을, 이 도시 저 도시를 여행 하면서 많은 사람드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고 기쁘게 하던 붓다는, 무지에 빠져 자신들의 신들에게 동물을 죽여 바치는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았다. 붓다는 그들에게 말했다.
누구나 생명을 빼앗을 수는 있지만 줄 수는 없는 것.
모든 생명체들은
생명을 사랑하고 지키려고 애쓰네.
경이롭고 소중하고 기쁜 각자의 생명이여,
비록 하챦은 미물에게조차도...... (주21)
신의 자비를 구하기 위해 신들의 제단에 무고한 동물을 바치는 사람들은 무자비한 짓도 서슴치 않았다. 그로 인해 인도 전체가 피로 물들고, 고행자와 바라문의 유해한 의례와 의식은 재앙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불러 일으켰다. 그때에 자비와 지혜의 화신인 붓다는 정의와 사랑과 이해로 충만한 '깨달으신 분들의 길'인 '옛길'을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이 설한 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고, 항상 사무량심(四無量心. 주22)을 가지고 행동했다.
붓다는 결코 말다툼과 증오심을 부추기지 않았다. 어느때 제자들에게 설법을 하면서 그는 말했다.
'비구들아, 나는 세상 사람들과 다투지 않는다. 바로 세상 사람들이 나와 다툰다. 법을 설하는 자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주23)
승가는 처음에 단지 60명의 제자들로 시작되었지만, 곧 수천 명으로 늘어났다. 신자는 처음에 '삼귀의'를 함으로써 승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삼귀의는 다음과 같다.
붓다께 귀의 합니다.
법(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승가에 귀의 합니다.
두 번째로 붓다께 귀의 합니다.
두 번째로 법에 귀의 합니다.
두 번째로 승가에 귀의 합니다.
세 번째로 붓다께 귀의 합니다.
세 번째로 법에 귀의 합니다.
세 번째로 승가에 귀의 합니다.(주24)
비구들의 수가 증가되자 승원들이 건립되기 시작했고, 후대에 가서는 날란다, 비르카마실라, 오단타푸라와 같은 인도의 사원 대학들이 나타나 문화의 중심지를 형성하여 점차 전 아시아에 그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나아가 그것을 통해 인류의 정신 생활에도 크게 이바지 하였다.
45년간의 성공적인 전도 활동을 한 후 붓다는, 말라족들이 사는 쿠시나라의 사라나무 숲(주25)에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유훈을 남기고 80세를 일기로 입적했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것은 변하게 마련이다. 항상 깨어 있으려고 노력하라"(주26)
몇몇 제자들로 시작 되었던 불교는 여러나라(주27)에 전파되어 오늘날에는 전세계에 5억명이 넘는 신자를 가진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다.
불교가 이와같이 장족의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불교의 본질ㅈ거인 가치와 합리적인 설득력 때문 이었다. 그러나 그 밖에도 불교의 발전을 도운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었다. 법을 전하는 사람들은 불교를 전파하는데 결코 부당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한 유일한 무기는 보편적인 사랑과 연민 즉 자비였다. 그리고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 과정에서 불교가 기존의 신앙을 깨뜨리지 않고 평화롭게 전해졌다는 사실도 발전의 한 요인이 되었다.
불교는 종교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대적인 포교 활동을 하면서도 무력이나 강제적인 방법 또는 어떤 비난 받을 만한 방법을 사용한 적이 없었다. 불교도가 강제로 다른 사람들을 개종시킨 일은 알려진 바가 없으며, 붓다와 그의 신자들은 그것을 아주 싫어 했다.
그래서 리스 데이비즈(T.W.Rhys Davids)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불교의 모든 역사를 통들어, 불교도들이 오랫동안 전성기를 누렸던 많은 나라에서, 다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박해한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래서 불교는 전세계에 걸쳐 다양한 문화 속으로 전파 될 수 있었다.
주해.
1. 여기서 종교(religion)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의미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2. 증지부 146, sutta 38
3. 중부 163, sutta 26
4. 상세한 내용은 중부 36 에 나옴
5. 보살(Bodhisatta. Skt. Bodhisattva) 이란 깨달음이란 이상, 또는 사성제에 관한 지혜를 추구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살이란 깨달음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완전한 깨달음(正等覺.정등각)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구도자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보살은 붓다가 되려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자비를 바탕으로 해서, 이해력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욕망, 자만, 잘못된 견해에서 벗어나 있는 대단히 높은 수준의 근본적인 자질인 열가지 완성을 계발한다. 그것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방편, 원(願), 여(力), 지(智)이다.
6. 깨달음을 얻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는 보살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두 경(Majjhima-nikaya, nos. 26, 36)에 보리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좀 이상하다. 두 경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구들아, 그때 나는 무엇이든 선한 것을 추구하며 평화로 인도해 주는 비교할 곳이 없는 길을 찾아 순조롭게 여행 하면서 마가다국을 거쳐 우루벨라에 도착했다. 거기서 나는 시원하게 펼쳐진 땅, 아름다운 숲, 유쾌하게 흐르는 얕은 여울이 있는 강(네란자라 강)과, 공양을 구할 수 있는 근처의 마을을 보았다. 그때에 나는 생각했다. '참으로 이 지역은 시원하게 펼쳐진 땅, 아름다운 숲이 있어 정진을 시작한 젊은 사람에게 적합한 좋은 곳이다. ' 비구들아, 그래서 나는 '참으로 이곳은 정진하기 좋다.'라고 생각 하면서 바로 그곳에 앉았다."
아마 붓다는 사문이나 고행자들이 명상을 하기 위해 사방이 트인 나무 아래서 가부좌를 틀고 앉는 일이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앉아 있었던 나무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나 장부경 중 Mahapadhana-sutta에서는 그 나무가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신성한 보리수이다. 그 나무에 대한 언급은 붓다가 과거 여섯 붓다(과거 六佛)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나온다. 붓다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설법했다. "비구들아, 이제 나는 성취한 사람(아라한), 더없는 깨달음을 얻은 사람(정등각자)이다. 나는 보리수 아래서 최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7. 중부 36
8. 제4장 "올바른 집중'을 보라
9. 상세한 내용은 제3장 "불교의 중심 개념"을 보라
10. 다른곳에서는 네 번째 번뇌를 잘못된 견해의 번뇌로 본다
11. 중부 36
12. 중부 26
13. 깊고 심오한 이 교리는 이 책 제4장 p.64 에서 언급된다.
14. Viyaya, i. p. 1.
15. 붓다가 출현하기 전에도 여래라는 말은 있었지만 당시에는 '죽은 후에도 존재가 있는가?'라는 말에서처럼 유정(有情), 중생이라는 말로 쓰였다. 그러나 붓다가 출현하고 나서는 붓다의 또다른 이름으로 사용되었고, 그래서 그는 종종 자신을 지칭 할 때 이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Anguttara-nikaya 의 주석서등에는 이 말에 '진리를 얻은 사람,'사물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사람', '그와 같이 간'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6. Vinaya, i. 10 : S. v.420
17. 불교 교리 전체의 기본이 되는 사성제와 팔정도에 대해서는 앞으로 언급될 것이다.
18. 순례자로 이 신성한 곳에 온 아소카 왕은 일련의 기념비들과 사자를 새긴 받침이 있는 기념 석주를 하나 세우도록 했다. 법륜을 떠받들고 있는 네 마리 거대한 사자들이 새겨진 이 받침은, 지금은 사 르나트의 박물관 안에 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날 인도의 공공 문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법륜'축제는 여전히 스리랑카에서 계속되고 있다. Jawajarlal Nehru 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베나레스 근처에 있는 사르나트에서 나는 첫 설법을 하고 계시는 붓다를 보곤 했다. 그리고 기록된 그분의 설법 가운데 몇몇은 2,5000년을 관통해서 나에게 들려오는 먼 메아리처럼 다가오곤 했다. 비문이 새겨져 있는 아소카의 석주들은 고상한 말로 나에게, 어떤 왕이나 황제보다도 더 위대했던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해 주곤 했다."(The discovery of India, The Signet Press, Calcutta, p.44)
19. Vinaya, i, 21
20. C.A.F. Rhys Davids, Psalms of the Early Buddhists
21. Sir Edwin Arnold, The light of Asia
22. 네 가지 지고한 상태인 자애(慈.자), 연민(悲.비), 같이 기뻐함(喜.희), 평등심(捨.사)를 말한다.
이 책의 제8장 p.128 을 참조하라
23. 상응부 138
24. Vinaya, Maha-vagga, "Khandaka"
25. 인도의 성인들 가운데서 가장 위대한 붓다가 동산에 있는 나무 아래서 태어나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고 녹야원의 나무 아래서 법륜을 굴리고 마침내 사라쌍수 아래서 입적한 것은 어떤 면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붓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인도의 숲과 마을에서 보넸다.
26. 장부 16. 붓다의 열반에 대해 설한 경인 Paribibbana-sutta에서는 붓다의 생애가 끝날 무렵에 일어났던 모든 사건들을 상세하고도 생동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다.
27. 오늘날 불교가 전파된 나라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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