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은 몸과 마음과 행위가 중요"
우리에게는 옛 부터 내려오는 차의 전통 가운데 선(禪)의 경지에 이르는 다선(茶禪)이 있습니다.선(禪)은 어떤 지역적인 것이나 문화의 한 흐름으로만 인식될 것이 아닙니다. 고정된 틀을 무너트리는 그 무엇입니다. 왜냐하면 삶의 궁극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한 잔의 차를 마심에서도 禪이 된다면 그 차향과 차맛에서 삶의 진실한 의미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차 마심으로 사상이나 학문적 견해의 차이, 문화적 차이로 인한 반목과 질시와 투쟁과 같은 단단한 벽을 허물고 이것이 하나의 생명살림이 될 수 있다면, 이때의 차는 선(禪)과 한 맛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차와 선이 한 맛으로 삶을 풍요롭게 한다면 인생은 참으로 멋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차마심을 한갓 풍류로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차를 마시기 위해 환경을 고르고, 엄숙하고 경건하게 차를 마신다 할지라도 형식에 치우쳐 있다면 공허한 몸놀림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때 진정한 차 맛이란 형식에 가려 찾을 수 없게 됩니다. 방편을 떠난 형식에의 치우침은 하나의 허식에 불과할 뿐입니다.
茶를 마시기 위해 조용한 방을 선택하고 여럿이 모여서도 잡담을 금하며 조신한 품위로 차를 마시며 맛을 음미하는 것이 차마시는 목적은 아닐 것입니다. 오로지 차를 위해 그렇게 한다면 무언가 허전하지 않을 수 없겠습니까?
이러한 차마심의 형식에 생명을 불어넣는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삶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살림’의 혁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니, 생명을 불어 넣는 것, 그것은 바로 수행입니다.
차를 통해서 자신의 내부를 들여다볼 수만 있다면 그것은 수행입니다. 앉아서 선(禪)을 하면 ‘좌선’이요 걸으면서 선하는 것은 ‘행선(行禪)’이라면 차를 마시면서 선하는 것은 ‘다선’입니다. 선은 몸과 마음과 행위가 고요함을 뜻합니다.
차를 통해 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행다(行茶)를 통해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다면 ‘행다선(行茶禪)’이요 차의 색향미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다면 ‘색향미다선’이 됩니다. 차공양을 남에게 올려서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다면 ‘공양다선’이 되며 차의 일미(一味)를 통해서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다면 ‘일미다선’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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