茶 명상

[스크랩] 지운스님의 茶명상/③ 행다선

수선님 2018. 11. 25. 11:49

“일체동작을 스스로 자각하라”

행다할 때 어떻게 하면 마음이 고요해질까요. 두 가지의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차 모임의 의미를 통찰함으로써 행다선을 할 수 있습니다. 차모임의 의미는
상호관계성이며 상호관계성은 수용과 열림을 의미합니다. 이는 차모임을 가지며 차를 나누어 마신다는 것은 그대로 열린 모임이고 그 자체가 수행이며 선입니다. 차를 주고받는 사람들은 서로 다른 개체로 완전히 나누어져 있는 것 같지만, 차를 나누어 마실 때에는 서로 하나가 됩니다.

개개인은 부분이면서 동시에 전체이기도 합니다. 부분과 전체는 관계망(그물)
으로 이루어지기에 살아있는 관계성입니다. 모임은 관계 속에서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모임이란 서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맞지 않아도 차모임을 갖고 함께 차를 마심으로써 그 관계가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너와 나의 열림이며 상호수용인 연기(緣起)의 드러남입니다. 동시에 무아(無我)로서 깨어 있음이 됩니다.

관계란 개개인이 무아(無我)이면서 동시에 관계 속에서 너와 나가 살아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성은 차모임에만 한정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삶이 이러한 관계 속에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이것을 자각(自覺)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스스로 안다는 것은 자각한다는 뜻이며
알아차린다는 뜻입니다. 차 모임이 상호수용이며 상호 열림임을 알아차리게 되면 대립과 감정의 질곡이 사라진 평온의 상태가 됩니다. 알아차림은 생각이 아니라 보는 것입니다. 생각은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거기에는 자아가 들어가 있습니다.

 

이 나 라는 생각은 곧 너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너와 나는 서로 상호관계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로 인식되면서 대립과 투쟁의 대상으로 상호 단절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생명살림이 아니라 생명죽임이 되는 것입니다. 상호수용과 열림(緣起)이 생각에 가려져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나 봄은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이 아니므로 무아입니다. 알아차림이 되면 모임의 상호열림이 일어나 불편한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자기가 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아는 것입니다. 차를 따르고
찻잔을 조심스럽게 놓는 등 일체동작들을 스스로 자각하면서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으로 정성을 다하는 것, 그것은 바로 주의집중이며 자기 비움이며 상대방에 끄달려 가지 않음이며 마음챙김이며 깨어있음입니다.

 

이때는 상대를 주관적 시각으로 고정시키거나 자신을 내세우는 등의 번뇌는 일체 용납이 되지 않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다각(茶角)이 차를 정성스럽게 우려내어 손님에게 차 공양을 올리는 것도 자신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입니다. 차공양 받는 손님 또한 그 순간에는 빈 마음이 됩니다. 이렇게 알아차림의 자기비움은 곧 대립을 벗어난 상호수용과 열림의 현현입니다. 즉 알아차리는 순간순간 차 모임이 진리(연기)의 현현입니다.

그래서 한 잔의 차를 마시는 과정이 그대로 빈 마음으로 서로를 수용하므로
상입(相入)이며, 수용하여 너와 나를 하나로 열어서 구별이 사라지므로 상즉(相卽)입니다. 즉 차 한잔을 마시는 과정이 그대로 상즉상입의 연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출처 : 명상스쿨
글쓴이 : 선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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