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 스님은 자비광명에 의지하거나 스스로 닦아 나아가거나, 모든 수행문의 궁극은 일체 경계가 일심인 지혜를 증득하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일심의 지혜를 증득하면 자연히 동체대비심이 일어나 뭇 생명에게 이익 되도록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완성인 일심광명(一心光明)입니다. 그러므로 일체 경계는 일심이라는 부처님의 지혜를 우러러 믿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종교적 신념으로써 부처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고 깨달음도 성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의 꽃이라 부르는 정토(淨土)는 자연과 생명이 청정하여 마음이 편안하고 즐거운 세계입니다. 정토문은 진실한 믿음으로 정토를 염원하여 염불행을 실천함으로써 아미타불의 본원력(本願力)에 힘입어 정토에 왕생하도록 인도하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시어 “일체중생을 구제하리라” 하신 근본 뜻을 담고 있습니다. 정토는 일체 중생이 마침내 돌아갈 곳이지만, 범부에게는 자신의 현실과 거리가 먼 종교적 세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원효 스님은 일체 중생은 반드시 정토에 왕생하며, 보리심을 정인(正因)으로 삼아 십해초발심주(十解初發心住) 보살도 현실 가운데서 정토에 왕생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정토는 종교적 신념으로 염원해야 할 아미타불의 세계인 동시에 자비광명에 의지하여 성취할 수 있는 깨달음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원효 스님이 말하는 정토는 곧 일심의 바다로 향하는 깨달음의 세계이니, 바로 일심정토(一心淨土)입니다.
원효 스님의 염불관 가운데 ‘칭명(稱名)’은 믿음을 성취하는 방편이며, ‘관상(觀相)’은 깨달음을 성취하는 염불선(念佛禪)입니다. 번뇌가 심중한 범부는 명호(名號)를 생각(念)하고 부름으로써 결정된 믿음을 성취하고 안심을 얻어,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합니다. 선근이 깊은 근기는 경계를 관찰함으로써 깨달음을 성취하고 보살도를 실천하여 대도에 나아갑니다. 이와 같이 원효 스님은 범부로부터 현성에 이르기까지 다 함께 염불의 한 문(門)을 통해 일심정토에 나아갈 수 있도록 회통하였습니다.
원효 스님이 밝힌 일심정토는 서방정토(西方淨土)와 유심정토(唯心淨土)를 다 함께 포용하고, 불법의 씨앗을 민중의 땅에 뿌려 정토의 꽃을 피우는 독창적인 정토사상입니다. 민족의 창의성과 자긍심을 드높였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한국불교를 탄생시킨 위대한 업적이었습니다.
원효 스님은 일체중생은 누구든지 염불로써 일심의 바다요, 부처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으로 성취한 국토가 아미타불의 정토 혹은 법신보살의 정토는 아니더라도, 조금 깨달은 보살의 삶으로 최선을 다하는 국토라면 그것 역시 이 땅의 어둠을 밝히는 정토요, 일심정토에 나아가는 길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원효 스님이 역설한 일심의 도(道)는 곧장 부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불법의 큰 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치며 경론 해설하기를 산더미처럼 쌓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안락에 안주하는 것은 더욱 아니었습니다.
원효 스님의 일심은 곧 실천철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뇌하는 범부가 요원하게만 생각하는 그 깨달음의 세계를 바로 지금 현실적 고통이 끝없는 삶의 현장에 펼쳐 감로수를 뿌리고 갈증을 쉬게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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