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을 통해 보는 '욕망끊기'
철우스님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
파계사 영산율원 율주.1959년 청도 적천사에서 출가득도. 67년 해인사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지. 68년 해인총림율원 졸업. 90년 자운스님의 계맥을 이음. 현재 조계종 계단위원 등을 맡고 있음. <사분율><사미율의><식차마나니 계본> 등 저서 다수.
1. 시작의 말
사람에게 성에 대한 욕망은 먹고 싶고, 갖고 싶고, 하고 싶은, 세 가지 욕망 가운데에 하나이다. 그리고 성적 욕망을 즐기는 것이 사음(邪淫)이며, 즐기는 것을 금하는 것이 불사음(不邪淫)이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물질화 되어 무엇이든 물질로 본다. 인간의 존귀함도 잊고 인간 자체가 상품화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성의 상품화이다. 사람이 인격적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노리개로 전락되어 돈으로 매매되고 있다.
불음계(不淫戒)는 마음속 행위도 금지했고, 불사음(不邪淫)은 문란한 성관계를 금지하는 개개인의 수행차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간단하지 않다. 지나친 탐욕에서 보이는 성의 상품화, 포르노 등 성적인 흥분을 강요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정조라는 것은 자칫 잠꼬대로 들릴 수도 있다. 섹스만을 탐닉하는 우리들에게 온갖 변태가 만연하고 에이즈라는 불치병까지 불러들였다.
이는 성 자체에 국한시켜서는 해결책이 구해지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인간 본래 심성의 존엄성을 찾아가는 수행을 통해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인간관계를 가꾸어 나가야 한다. 인간 존엄성을 위협하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이해와 사고가 필요하다. 그래서 계율이 제정된 시작과 첫 번째로 제정된 음계(淫戒)와 경전 속의 말씀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계율의 시작
어느 때에 부처님께서 사위국을 지나실 적에 큰 비구들 오백 사람과 함께 걸으셨다. 비란야 마을에 이르러서는 니련하 강변의 만다라 나무 아래에서 묵으셨다. 비란야 마을에 사는 바라문은 이러한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했다.
“부처님은 석씨 종족으로써 출가수행 하다가 소라파국(蘇羅婆國)으로부터 큰 비구들 오백 사람을 거느리고 걸어서 이 마을까지 오셔서 니련하(尼連河) 강변의 만다라 나무 아래에 계신다. 참 반가운 일이다. 우리들은 이 같은 부처님을 만났으니 모두 가서 문안을 드리자.”
그리고 곧 부처님 계신 곳으로 가서 문안을 드리고 나서 발 아래 절하고 한 켠에 앉으니,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설법해 주셨다. 그들은 설법을 듣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들의 청을 받아 주소서. 비구 스님들과 함께 우기(雨期) 철인 석 달 동안 여름 안거를 이곳에서 하게 하옵소서.”
그때에 부처님과 비구들은 묵묵히 그 청을 받아들였다. 비란야의 바라문은 부처님께서 청을 받으시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예배 올리고 물러 나왔다.
그때 파리(波離)나라에서 온 말장사가 오백 마리의 말을 몰고 우기를 지내기 위해 비란야 마을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때 마을은 가뭄으로 곡식이 귀하여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고 비구들은 비란야에서 걸식을 할 수 없어 모습은 초췌해지고 힘들었다. 비란야의 바라문은 우기철 석 달 동안 부처님과 비구들을 모셨지만 필요한 것과 공양은 전혀 공급하지 못했다. 그 까닭은 마왕 파순(波旬)이 방해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비구들은 파리(波離) 나라에서 온 말 장사에게 가서 걸식을 했다.
그때 말 장사는 “요즘 세상에는 곡식이 귀하여 사람들이 굶주려서 비구들이 걸식을 하여도 얻을 수 없어 몸들이 저렇게 야위었지 않은가? 저 비구들이 걸식을 하다가 얻지 못하여 나에게로 왔으니, 내가 비구들에게는 날마다 말보리 닷 되, 부처님께는 한 말씩을 주리라.” 생각하고, 매일 비구들에게는 닷 되, 부처님께는 한 말씩 드렸다.
부처님께서는 얻어온 보리를 아난(阿難)에게 주어 갈아서 건반(乾飯)을 만들게 하시어 부처님께서는 건반을 잡수셨고, 비구들은 보리죽을 끓여 먹으니, 부처님과 비구들의 음식이 같지 않았다. 그때 목건련존자가 부처님께 머리 숙여 절하고, 한 켠에 앉아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이시여, 지금은 곡식이 귀하고 백성들이 굶주려 걸식하기가 어렵고 비구들은 음식이 거칠어 모두 야위었나이다. 만일 부처님께서 허락만 하신다면 신통있는 비구들이 저 울단월(鬱單越)에 가서 자연산 쌀을 가져다가 먹도록 하겠나이다.”
부처님께서 목건련에게 말씀하셨다.
“신통 있는 비구들은 가서 가져 올 수 있겠지만 신통이 없는 이는 어찌하겠느냐?”
“신통이 있는 이들은 자기 마음대로 가고, 신통이 없는 이들은 제가 신통의 힘으로 데리고 가겠나이다.”
“그만두어라. 그런 말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너희들 같은 신통을 얻은 대장부는 가히 하려니와 오는 세상의 비구들은 어찌 하겠느냐.”
한편 사리불존자가 고요한 곳에서 생각하였다.
“어느 부처님께서 범행(梵行)을 닦으실 때 불법이 가장 오래 머물렀으며, 또 어느 부처님께서 범행을 닦으실 때는 불법이 오래 머무르지 못했을까?”
사리불은 곧 일어나 옷을 바로 하고 부처님 계신 곳에 가서 머리 숙여 발 아래 절하고 한 켠에 물러 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조금 전에 저는 조용한 곳에 앉아서 생각하기를 ‘어떤 부처님이 범행을 닦으실 때 불법이 가장 오래 머물렀으며, 또 어떤 부처님이 범행을 닦으실 때 불법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였을까?’ 생각하였나이다. 바라옵건대 잘 말씀하여 주옵소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비바시불, 시기불, 구류손불, 가섭불은 계율을 제정하여 범행을 닦아 오래 불법이 머무르게 하셨고, 수섭불, 구나함모니불은 계율을 제정하지 않아 불법이 오래 머무르지 못하였느니라.”
그때에 사리불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꿇어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계율을 제정할 때가 아닌가 하옵니다. 바라옵건대, 비구들에게 계율을 말씀해 주시어 모두가 범행을 닦아 불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옵소서.”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가만히 있으라. 내가 그때를 알아서 하리라. 사리불이여, 나는 모든 비구들을 위해 지금은 제정하지 않겠노라. 왜냐하면 아직은 비구들이 유루법(有漏法)을 범하는 이가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유루의 법을 범하는 이가 있으면 그때 비로소 나는 비구들을 위하여 계율을 제정하리니, 지금은 그들이 유루법을 끊으려 하기 때문이니라.
사리불이여, 비구들이 이양(利養)을 얻지 못하는 동안에는 유루의 법이 생기지 않지만 이양을 얻으면 곧 유루의 법이 생기나니, 유루의 법이 생기면 나는 비구들을 위해 계율을 정하리라. 사리불이여, 비구들이 유루의 법이 생기지 않는 것은 명예와 지식과 재물이 있지 않기 때문이지만 만일에 명예와 또는 재물이 많아지면 곧 유루의 법이 생기나니, 유루의 법이 생긴 뒤에야 나는 계율을 제정하리라. 그들이 아직은 유루의 법을 끊으려고 노력하는 때문이니라. 그러므로 사리불이여, 너는 기다리라. 내가 때를 알아 하리라.”
3. 첫 번째로 제정된 불음계
어느 때 부처님께서 비사리에 계셨다.
그때 가란타 마을 출신에 수제나 라는 비구는 믿음이 견고하여 출가하여 도를 닦았다. 그 무렵 비구들은 흉년이 들어 곡식이 귀하였으므로 걸식하기가 힘들었다. 수제나는 생각했다.
“지금 마을에는 흉년이 들어 곡식이 귀하므로 비구들이 걸식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내가 비구들과 같이 고향 가란타 마을에 가서 걸식하면 비구들은 나 때문에 큰 이양을 얻어 범행을 닦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의 친척들도 기꺼이 보시하므로 온갖 복덕을 짓게 되리라.” 하고, 곧 비구들과 같이 고향으로 갔다.
수제나의 어머니는 아들이 비구들과 같이 가란타 마을로 돌아 온다는 말을 듣고 아들을 맞으러 가서 말했다.
“수행을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좋겠다. 왜냐하면 너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나 혼자 있으니, 우리 집 재산이 관가에 몰수될까 두렵다. 너의 아버님 재산도 많거니와 할아버님 대로부터 내려오는 재물은 더욱 많으니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므로 너는 도를 버리고 집으로 오너라.”
수제나 비구는 대답하였다.
“저는 수행을 그만두고 옳지 못한 법을 익힐 수 없습니다. 지금 저는 범행을 매우 좋아하여 위없는 도를 닦고 있습니다.”
세 번이나 말했으나 수제나의 대답은 도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수제나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며느리에게 말하였다.
“네 몸의 것이 있을 때가 되거든 내게 알려다오.”
며느리는 그때가 돌아왔음을 알렸다. 수제나의 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분부하였다.
“너는 처음 시집 올 때에 입었던 옷을 모두 입고 오너라.”
곧 분부대로 몸소 치장하고 시어머니와 함께 남편 수제나가 있는 곳으로 가서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지금이 꼭 알 맞는 때이다. 도를 버리고 속가로 가자. 왜냐하면 네가 도를 버리지 않으면 재물은 모두 관가에 몰수되기 때문이다.”
“저는 도를 버릴 수 없습니다.”
“너의 처에게 자식이라도 하나 두어 대가 끊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일이야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그때는 부처님께서 아직 계율을 제정하시기 전이므로 수제나는 더러운 것으로 생각지 않고, 곧 부인의 팔을 잡고 숲 속의 외딴 곳으로 가서 세 차례의 음행(淫行)을 하였다. 그때 숲 속에 살던 귀신이 목숨이 다하여 수제나 부인의 태에 든 지 아홉 달만에 남자 아이로 태어났다. 얼굴이 단정하고 세상에 견줄 이가 없었다. 이름을 종자(種子)라고 지었다. 모든 감각이 뛰어나고 건강하였다. 점점 자라 머리를 깎고 견고한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움에 있어 부지런하고 게으르지 않아 아라한이 되었다. 신통 변화와 위덕이 뛰어났으므로 종자(種子)존자라 부르게 되었다.
수제나는 사문의 위의를 익혀 모르는 것이 없고 당하는 일마다 행하였으며 다른 사람을 교화하기까지 하였다. 수제나는 부정한 행위를 한 뒤로부터는 항상 근심과 걱정에 쌓여 있었다. 같이 배우는 비구들이 물었다.
“수제나 스님은 어찌하여 근심합니까? 그대는 오래도록 범행을 닦아 위의와 예절을 모르는 것이 없거늘 무엇이 근심이 되기에 범행을 좋아하지 않습니까?”
“나는 범행을 매우 좋아 하였는데 요즘 들어 외딴 곳에서 부정한 짓을 범하였습니다. 옛 아내와 음행을 한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비구들이 말하였다.
“수제나여,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 나쁜 짓을 하였소. 여래의 청정한 법이 음욕을 없애고, 더러움을 없애어 욕망을 끊고, 둥우리와 굴택을 깨트리고, 결박을 제하여 애욕이 다함으로서 열반을 얻게 하거늘 그대는 이렇게 깨끗한 법에서 어찌 옛 아내와 음행을 하였소?”
그때에 비구들이 부처님께 가서 머리 숙여 발 아래 예배하고 한 켠에 앉아 이러한 일 들을 사뢰었다. 부처님께서는 들으시고 이제 계를 설할 때가 되었음을 아시고 수제나에게 물으셨다.
“너는 참으로 옛 아내와 음행을 하였느냐?”
“그러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부정한 행을 범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잘못을 말씀하셨다.
“네가 한 일은 옳지 못하다. 위의가 아니요, 사문의 법이 아니요, 청정한 행이 아니요, 수순하는 행이 아니어서 응당 할 바가 아니다. 너는 이 청정한 법을 수행하여 애욕을 다하고 열반을 얻어야 하거늘 어찌하여 옛 아내와 부정한 음행을 하였느냐.”
부처님께서는 이어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시었다.
“여인과 부정한 짓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여자를 범하면 몸과 목숨이 다한 뒤에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지기 때문이니라. 내가 무수한 방편으로써 애욕 끊는 법을 말하여 애욕의 생각과 기억을 끊고, 애욕의 인연을 제거하고 속박을 면하게 하려는 때문이었다.
여러 가지 방편으로 말하기를 애욕은 불길과 같고, 불꽃을 만지는 것과 같고, 나무의 열매와 같고, 비치는 것과 같고, 마른 뼈와 같고, 살덩이 같고, 꿈에 본 것과 같고, 칼날을 밟은 것과 같고, 새로 만든 질그릇에 물을 담아 햇볕에 놓은 것과 같고, 독사의 머리와 같고, 구르는 칼날과 같고, 뾰족한 말뚝에 앉은 것과 같고, 날카로운 가시와 같아 매우 더러운 것이며, 부처님이 꾸짖는다 하였느니라. 수제나여, 나의 청정한 법에서 끝내 애욕을 다하고 열반에 이르러야 할 것이거늘 어찌하여 아내와 음행을 범했느냐?”
이렇게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방편으로 나무라신 뒤에 다시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4. 계를 제정하는 열 가지 뜻
“수제나, 이 어리석은 비구는 세상에서 가장 처음으로 계를 범하였느니라.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율을 제정해 주려는 열 가지 뜻을 말하겠다.
첫째는 대중의 통솔을 위하여, 둘째는 대중의 화합을 위하여, 셋째는 대중의 안락을 위하여, 넷째는 다스리기 어려운 사람을 다스리기 위하여, 다섯째는 뉘우친 사람의 안락을 위하여, 여섯째는 믿지 않는 사람을 믿게 하기 위하여, 일곱째는 이미 믿는 사람의 신심증장을 위하여, 여덟째는 현재의 번뇌를 끊기 위하여, 아홉째는 미래의 욕망을 끊기 위하여, 열 번째는 정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려는 것이다. 계를 말하려는 이는 이와 같이 말하라. 어떤 비구가 부정한 행을 범하고 음행을 하면 이 비구는 바라이 (波羅夷)죄를 범한 것이다. 대중과 함께 살지 못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교단이 생긴지 5년 만의 일이다. 이때부터 때와 장소에 따라 모든 비구들의 잘못이 보일 때마다 널리 분별하시어 말씀하셨다.
5. 파계의 다섯 가지 재앙과 지계의 다섯 가지 불이익
출가자는 일체 부정한 행위를 금했고 재가자는 불사음(不邪淫)인데, 자기 처첩이 아닌 다른 여자나 남자와 음사하는 것을 말한다. 주색 따위의 향락에 빠져 몸가짐이 좋지 못하거나, 식사와 행동하는 것을 삼가고, 몸과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가르침이다. 탐애하고 쾌락을 즐기거나, 사물을 탐애하고 얻고자 하는 마음을 모두 버리라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의하면 계를 범한 자에게는 5가지 재앙이 생긴다고 했다. 첫째는 게으름으로 인해 커다란 재물의 손실이 생긴다. 둘째는 나쁜 명성이 생긴다. 셋째는 모든 모임에 들어가도 불안하고 당황하게 된다. 넷째는 계를 범한 사람은 죽을 때에 두려워한다. 다섯째는 죽은 뒤에 몸에서 악취가 나고, 죽어 지옥에 난다는 것이다.
계를 지키는 사람에게는 또 다섯 가지 이익이 있다고 했다. 첫째 계를 지키는 사람은 게으름으로 인해 큰 재물을 얻게 한다. 둘째 좋은 명성이 높아진다. 셋째는 모든 모임에 들어가도 자신이 생기고 당황하지 않는다. 넷째 죽을 때에 두려워 않는다. 다섯째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세속에서는 여인이 부정했다는 누명은 도둑의 누명처럼 쉽게 밝힐 도리가 없는 것이니 품행을 삼가라는 뜻으로 ‘도둑의 때는 벗어도 화냥의 때는 못 벗는다.’는 속담이 있다. 재가자는 세속 티끌 속에 사는지라 발을 빼기란 쉬운 일은 아니라서 불사음이라 했지만 수행자는 번뇌의 속박을 벗지 않으면 그 과오를 벗어나기 어렵다.
그러므로 부처님 생전의 선근이 두터운 시대에 제자들에게도 음욕의 얽매임은 벗기 어려워서 불음계가 가장 먼저 제정된 것 아닌가싶다. 그런데 말세에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청정하기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그래서 지계에는 출가자와 재가자의 차이가 있다. 재가자는 행위만이라도 금할 수 있기를, 출가자자는 적극적으로 마음까지도 금하기를 당부하셨다.
6. 경전 속의 말씀
능엄경 제6권 수도분(修道分)중 섭지궤칙과(攝持軌則科)에 ‘네 가지 율의’에 대해서 하신 말씀이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수많은 대중과 함께 계실 때에 어느 날 아난존자는 합장하고 정례하면서 다음 세상의 중생들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부처님께 사뢰었다.
“부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뒤에 말법시대에 사특한 무리들이 나와서 그들이 그릇되게 주장하는 설법들이 항하의 모래알처럼 많을 적에 부처님 법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그 마음을 어떻게 가다듬고 자리 잡아야 온갖 장애를 물리치고 보리심에서 물러남이 없이 위없는 공부를 능히 성취할 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는 수많은 대중들을 향하여 아난의 물음을 칭찬하시면서 대답하셨다.
“아난이여, 너의 물음과 같이 말세에 헤매는 중생들을 구하는 방법은 그 마음을 올바르게 자리잡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행하는 데에는 마음을 거두는 계와, 계로 인하여 정(定)이 생기고, 정으로 인하여 혜(慧)가 생기는 세 가지 무루학(無漏學)이 있다.
아난이여, 이 세상의 육도(六道) 중생들이 음란한 마음만 없으면 바로 생사를 해탈할 수 있다. 수행하는 목적은 번뇌를 벗어나려고 하는 것인데 음란한 마음을 끊지 않으면 절대로 번뇌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설령 근기가 뛰어나 선정이나 지혜가 생겼다 하더라도 음행을 끊지 않으면 반드시 마도(魔道)에 떨어져서 으뜸은 마왕이 되고 중간은 그 백성이 되고 끝으로는 그들의 계집이 될 것이니, 그들도 무리를 이루어 제각기 위없는 도를 얻었다 할 것이다.
내가 열반에 든 뒤 말법시대에는 이러한 악마의 무리들이 세상에 많이 성행하여 음행을 탐하면서도 선지식 노릇을 하여 무지한 중생들로 하여금 애욕과 사견의 구렁에 빠지게 할 것이다. 네가 세상 사람들에게 삼매를 닦게 하려거든 제일 먼저 음욕부터 끊게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첫째 결정인 맑고 깨끗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아난이여, 음욕을 끊지 않고 수행하는 것은 모래를 삶아 밥을 지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모래를 가지고는 비록 백 천겁을 삶더라도 밥이 될 수 없는 것과 같이 음행하는 몸으로 깨달음을 얻으려 하면 아무리 깨닫는다 하여도 근본이 음욕이었기 때문에 삼악도에 떨어져서 헤어날 수 없는 것인데 어떻게 열반의 길을 증득하겠는가. 반드시 음란한 뿌리를 몸과 마음에서 끊어버리고 끊었다는 생각까지 없어야만 부처님의 보리를 희망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는 말은 부처님의 말씀이고 이와 같이 하지 않는 말은 악마의 말이니라.”하셨다.
또 부처님은 무량수경에 말씀하시기를 “모든 사람이 사악한 생각을 품고 있기에 마음을 태우고 남녀간의 계율을 흐리며 그 때문에 서로 싸움을 하고 불의와 패덕을 쌓는다. 사람은 혼탁한 애욕의 세상에 혼자 태어났다가 혼자 죽는다. 내세에 받을 응보는 누구도 대신 받아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혼자서 이를 당하지 않으면 안된다” 하셨다.
또 원각경에서는 “모든 중생이 나고 죽음을 끊임없이 되풀이함은 다 애욕으로 그 근본을 삼기 때문이다. 모든 중생은 끝없는 과거로부터 온갖 애욕의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에 윤회가 있느니라” 했고, 대열반경에서는 “애욕은 번뇌의 왕이며 갖가지의 번뇌들이 그 뒤를 따른다. 애욕은 꽃 뒤에 숨어 사는 독사와 같아서 욕망의 꽃을 탐하는 사람들을 독니로 물어서 죽인다.”했다.
잡아함경에서는 “사음의 죄가 있으면 그 원한의 인연으로 두려움이 생기고, 그 원한을 떠나면 그 인연으로 생긴 두려움이 없어진다”했고, 본생경에서는 “연상의 여인은 어머니로 알라. 중년쯤의 여인은 누이로 알라. 젊은 여인은 딸로 보라. 이런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하여 불제자들은 젊은 몸이면서도 욕정에 끌리지 않고 자신의 몸을 깨끗이 보전하고 있다.” 했다.
7. 유가서(儒家書)의 말씀
불사음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경전 속의 말씀만이 아니라 속세의 유가의 글에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명심보감〉에 “유순하고 정렬한 것은 부인의 덕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부인의 복이라” 했다. 또 장자는 “부덕이라는 것은 정조를 맑게 하고 곧게 지키며, 분수를 지키고 몸을 정돈하며, 행동을 얌전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했다.
또 《체근담》에서는 “기녀라도 늙으막에 어진이를 따르면 한 세상 분 냄새가 거리낌이 없을 것이요, 정숙한 부인이라도 늙으막에 정조를 잃고 보면 반생의 깨끗한 고절이 아랑곳 없으리라” 했다.
8. 아나율의 지계
어느 날 아나율 존자가 여행하는 도중에 날이 저물어 음녀의 집에 머물기를 청했다. 처음에는 문간에서 머물려 했으나 뒤이어 코살라의 나그네 일행이 닥쳐 몹시 붐볐으므로 음녀는 존자에게 방에 들어가길 권했다. 존자는 그녀의 청에 따라 방에 들어가 가부좌를 틀고 일심으로 성제만을 사유했다.
존자의 단정한 모습을 본 음녀는 그를 유혹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으나 존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음녀는 존자에게 감동하여 공손히 합장하고 존자에게 절을 하며 삼보에 귀의하는 우바이가 될 것을 맹세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있은 후 승단에는 아나율 존자가 음녀와 하루밤을 새웠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어떤 경우일지라도 음녀와 동숙하는 것을 금한다고 말했다.
아나율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어떤 젊고 예쁜 여인이 시어머니와 말다툼을 벌이고 친정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침 길에서 아나율 존자와 동행하게 되었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달려온 남편과 만나게 되었다. 남편은 잘 생긴 사문과 나란히 걷고 있는 아내를 발견하고 화가 복받쳐 ‘이 사내는 아내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존자를 마구 때려 길가에 쓰러뜨렸다.
아나율 존자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과 마음을 가다듬었다. 남자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제 정신이 들어 아나율 존자가 삼매에서 깨어나길 기다려 자신의 죄를 빌었다. 아나율 존자는 그에게 여러 가지 설법을 해 돌려 보냈으나, 이를 안 부처님은 사부대중을 모아놓고 부녀자와 길동무하는 것을 금한다고 말씀하셨다.
9. 맺는 말
이 글을 부탁받고 많이 망설였다. 계율을 기록한 율장은 금서(禁書)이며, 이런 이야기가 요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관심조차 두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율과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혼탁한데 무슨 말을 감히 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가 있다. 여름철 손자가 배탈이 나면 할머니가 배를 쓰다듬어 주면서 ‘중도 고기 먹나. 중도 고기 먹나.’ 했다고 한다. 중이 고기 먹을 리 없으니 내 손자 병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세태는 어떤가?
그러나 속세에서도 수행자 못지않게 정결을 지키는 이들이 있고 승가에도 청정 범행을 닦는 이들이 있다. 작은 씨앗하나가 온 천지를 뒤덮듯이 지계정신이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쓰기로 했다.
행도행음(行盜行淫)이 무방반야(無妨般若)란 말과 무애행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물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귀를 잡고 뽀뽀를 한 기인의 행각을 수행담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파계에 버금가는 일이다. 율장이 아니라도 능엄경에 부처님의 말씀을 간절하게 생각하고, 풀어헤쳤던 가슴 다시 한 번 여미는 것이 바로 수행이다. 계율이 살아 있어야 불법이 살아난다. 성욕의 불꽃을 꼭 꺼야 한다는 것이 율장의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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