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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간화선과 화두참구의 계승
월암 / 벽송선원 선주
목 차
Ⅰ. 서론
Ⅱ. 본론
1. 무자화두(無字話頭)
(1) 무자화두의 연원
(2) 무자화두의 참구법
2. 이뭣고(是甚麽)?
3. 본래면목(本來面目) 화두
4.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
Ⅲ. 결론
국문 초록
본고에서는 그중 사용 빈도수가 가장 많은 조주무자와 이뭣고? 그리고 본래면목과 만법귀일 등 화두에 대해 그 역사적 연원과 전승과정을 살펴봄으로 해서 간화행자들로 하여금 공안의 역사와 참구법을 정립하여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신심과 원력을 더욱 견고히 하고, 나아가 실참실구(實參實究)를 여물게 하여 명심견성(明心見性)하는데 지침이 되고자 한다.
화두의 연원과 전개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옛조사의 깨달음의 기연이 모두 이러한 화두의 참구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화두의 간택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간택한 그 화두가 실참수행자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이 되어야 한다.
무자화두가 되었든, 이뭣고? 화두가 되었든, 본래면목 화두가 되었든, 그 외에 어떤 화두를 참구하든 간에 화두에 의심을 돈발하여, 간절히 의심하고 의심이 사무쳐 불같은 의단(疑團)을 이루어 화두일념(一念話頭)이 되어야 한다. 또한 화두가 일념만년(一念萬年)이 되어 어느 때 시절인연(時節因緣)이 꽃피는 날을 당하여 일념(一念), 무념(無念)마저 뛰어 넘어 생사를 영단(永斷)하고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정안납자(正眼衲子)의 본분사(本分事)일 것이다. 이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눈이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길이다.
*주제어
화두의 연원, 화두의 참구법, 이뭣고, 본래면목, 만법귀일
1. 서론
한국의 조계종은 회통(回通)적 의미의 선종이다. 회통적 의미란 교(敎), 율(律), 밀(密: 密敎), 정(淨: 淨土)을 아우르는 의미이다. 만약 조계종을 선종으로 규정한다면 이는 모든 종파의 종지를 아울러 선(禪)으로 회통되어지는 의미로서의 선종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계선종의 입장에서 보면 선종은 선종만의 선종이 아니라 전불교의 화쟁(和諍)적, 회통적 의미의 선종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조계종 내의 수행가풍을 살펴보면 통불교(通佛敎)적 수행법이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수행법 가운데 가장 상위 개념의 수행이 참선수행으로 자리매김 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기조위에서 조계종의 종지를 말한다면 참선수행을 통한 견성성불(見性成佛), 요익중생(饒益衆生)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참선이란 주로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 선원에서 수행하는 참선수행은 전적으로 간화방법론에 입각해 있다고 할 수 있다. 간화선은 조사선 사상의 결론으로 제기된 최상승(最上乘) 수행법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간화선 수행이 최상승선의 실천이라는 전통은 그대로 견지되고 있으며, 간화선 수행자들을 수행대중의 표상인 수좌(首座)라고 지칭하고 있다.
이러한 정황에서 한국불교가 간화선의 전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간화선이 제창된 중국에서의 선정일치(禪淨一致)1]의 종풍에 의한 간화선풍의 퇴조와 일본불교의 종파불교적 특색과 세속화 현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화두참선이 수행의 본령을 차지하고 있는 한국불교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방선원에는 안거(安居)마다 2천여 수선대중(修禪大衆)이 운집하여 정진에 매진하고 있다. 이는 현대 문명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한국불교는 간화선의 보루라는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화두참구이다. 즉 화두를 간택하여 그 화두를 참구함으로 해서 간화선 수행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간화선 수행에 있어서 화두는 매우 중요하다. 즉 간화선 수행은 화두를 결택함으로 시작되어 화두를 타파하고 인가를 획득함으로 완성되어진다. 그러므로 화두는 간화선을 수행하는 납자에 있어서는 생명과도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개 화두는 선지식이라 일컫는 큰스님들로부터 결택 받는 것이 종문의 전통이다. 이러한 전통은 지금까지 충실히 계승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지금 현재에도 간화 수행자의 대부분이 방장이나 조실 등 큰스님들에게 화두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현재 선원에서 수행하는 납자들이나 재가 수선행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화두의 종류를 살펴보는 것은 한국 간화선의 역사 속에서 전승되어져 온 공안화두(公案話頭)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선원에서 가장 많이 간택하고 있는 화두의 종류는 대개 다음과 같다. 조주무자(無字), 이뭣고(是甚麽), 본래면목(本來面目), 만법귀일(萬法歸一),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2], 판치생모(板齒生毛)3], 마삼근(麻三斤)4], 일면불월면불(日面佛月面佛)5] 등이다.
1] 선(禪)과 정토(淨土)를 함께 닦는 염불선(念佛禪).
2]조주스님에게 물었다. “무엇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祖師西來意)입니까?” 조주스님이 대답하기를 “뜰 앞에 잣나무(庭前栢樹子이니라.” 그런데 여기서 전통적으로 잣나무라고 번역한 백수자(栢樹子)는 사실은 측백나무임.
3]조주스님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조사께서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앞니(板齒)에 털이 돋는 것(生毛)이니라.”
4]동산(洞山)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선사가 대답하였다. “마 삼근(麻三斤)이니라.”
5]마조대사가 몸이 불편하거늘 원주가 물었다. “화상이시여, 요즘 법체 어떠하십니까?” 마조가 대답하였다. “일면불(日面佛) 월면불(月面佛)이니라.”
본고에서는 그중 사용 빈도수가 가장 많은 조주무자와 이뭣고? 그리고 본래면목과 만법귀일 등 화두에 대해 그 역사적 연원과 전승과정을 살펴봄으로 해서 간화행자들로 하여금 공안의 역사와 참구법을 정립하여 수행과 깨달음에 대한 신심과 원력을 더욱 견고히 하고, 나아가 실참실구(實參實究)를 여물게 하여 명심견성(明心見性)하는데 지침이 되고자 한다.
Ⅱ. 본론
1. 무자화두(無字話頭)
(1) 무자화두의 연원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무자화두(無字話頭)의 연원은 당대(唐代)의 선사인 조주종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조주록(趙州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일단의 선문답(禪問答)이 기록되어 있다.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습니까?’ ‘다만 업식(業識)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 "6]
6] 『趙州錄』,
“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師云無. 學云, 上至諸佛, 下至螘子, 皆有佛性, 狗子爲什麽無. 師云 爲伊有業識性在.”
이 공안은 조주선사와 학인간에 이루어진 선문답의 일단이다. 무자 화두는 이 가운데 조주가 말한 “업식의 성품이 있기 때문이다.”라는 마지막 대답의 구절(答句)을 제하고 “위로는 모든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개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불성이 없습니까?”라는 의문의 구절에 대해 의심을 일으키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것은 아마도 조주가 대답한 마지막 구절, 즉 비단 개뿐만 아니라 일체 중생이면 다 공유하고 있는 ‘업식의 성품(業識性)’을 대답의 전형으로 삼지 않고, 다시 학인 자신의 물음으로 되돌려서 “일체 중생이 다 불성이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다고 말하는가?”라는 문제의식을 강조함으로 해서, 이른바 “무자화두”가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어째서 없다고(혹은 無라고) 했는가?”라는 문제의식이 뒷날 선문에서 무자화두 참구의 전형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런데『고존숙어록(古尊宿語錄)』4권과『선관책진(禪關策進)』에 의거하면 황벽의『완릉록(宛陵錄)』에 언급된 “구자무불성(狗子無佛性)”의 공안이 무자화두를 가지고 참구한 최초의 일이라고 전하고 있다.
"만약 장부라면 공안을 참구하라.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묻자, 대답하기를 ‘없다(無)’라고 하였다.
오직 스물 네 시간 가운데 ‘무(無)’자만 보아 밤낮으로 행주좌와(行住坐臥) 가운데 옷 입고 밥 먹고, 똥 싸고 오줌 누고 하는데서 생각 생각에 정성을 다하여 ‘무자’를 고수하면,
날이 가고 달이 지나 타성일편(打成一片)이 된다.
어느 날 문득 마음 꽃이 활짝 피어 불조의 심인을 깨달아 천하 노화상들의 말끝에 속지 않고 큰소리치게 되리라."7]
7]『宛陵錄』(『大正藏』48권, p.387中).
若是箇丈夫漢, 看箇公案.
僧問趙州, 狗子還有 佛性也無? 州云無.
但擧二六時中看箇無字, 晝參夜參行住坐臥, 看衣喫飯處, 阿屎放尿處, 心心相顧 猛看精彩, 守箇無字,
日久月心打成一片,
忽然心花頓發, 悟佛祖之機, 便不被天下老和尙舌頭瞞, 便會開大口.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조주와 황벽은 동시대 사람으로서 둘 다 마조스님의 법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조주는 80세가 되어 관음원(觀音院)에서 개당하여 설법교화하기 시작했으며, 황벽 역시 조주보다 50년 가까이 빨리 입적하였기 때문에 그가 조주 “무자화두”를 제시하여 총림에서 사용하였는지는 의문시 된다. 또한『완릉록』의 기록도 여러 유통분마다 이 부분에 대한 내용유무의 출입(出入)이 있고,『신수대장경』에도 맨 끝 부분에 증보(增補)된 내용인 것 같아 진위 여부는 명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사실여부는 차치하고 어쨌든 당대 조사선의 선수행 방법에도 이미 간화적 의미의 공안이 제시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종문에서 “무자화두(無字話頭)”를 정식으로 참구하게 하여 참선공부로 전환한 선사가 바로 오조법연(五祖法演)이다. 즉 정식으로 공안참구를 통한 간화선의 시작은 임제종 양기파의 조사인 오조법연(五祖法演:?-1104)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법연에 의해『조주록(趙州錄)』에 수록된 ‘구자무불성’의 선문답이 정식 공안으로 제시되어 참학자들이 전문적으로 참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상당하여 말했다. 어떤 스님이 조주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답하기를 ‘없다(無).’ 스님이 말했다.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개에게는 없다고 하십니까?’
선사는 이르기를, 대중 여러분! (조주의 구자무불성화에 대해) 평소에 어떻게 알고 있는가?
노승은 평소에 다만 무자(無字)를 들어 바로 쉰다. 그대들이 만약 이 무자를 투철히 깨달으면(透得) 천하의 사람들이 그대를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투철히 깨닫겠는가? 투철히 깨달아 철저해야 한다. 깨달은 자가 있으면 나와서 말해 보아라.
나는 있다고 말하는 것도 원하지 않고, 없다고 말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또한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말하겠는가?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라." 8]
8]『法演禪師語錄』卷下, (『大正藏』제47권, p.665中下).
“上堂擧, 僧問趙州狗子無佛性也無. 州云, 無. 僧問, 一切衆生皆有佛性, 狗子爲什麽却無.
……師云, 大衆爾諸人, 尋常作麽生會.
老僧尋常只擧無字便休. 爾若透得這一箇無字, 天下人不柰爾何.
爾諸人作麽生透. 還有透得徹底麽. 有則出來道看,
我也不要爾道有, 也不要爾道無, 也不要爾道不有不無,
爾作麽生道. 珍重”
위에서 법연이 강조하고 있는 점은 무자공안을 참구하여 투철히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무(無)”는 있다 없다의 무(有無之無)가 아니라고 말하고, 법연은 단지 이 무자(無字)로써 참학자의 사량분별(思量分別)을 절단하고 있다. 이러한 참구의 방법은 이미 훗날 대혜선사가 강력히 제창한 “조주무자화두”의 참구법에 대단히 근접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만약에 황벽의『완릉록』에 기록된 무자공안이 뒷날 첨가한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선종사에서 오조법연이 최초로 간화(看話)적 의미의 무자공안을 제시하고 참구케 한 선사가 되는 것이다.
법연선사의 어록에 보면 구자무불성의 화두를 제시한 것 외에 또한 일권화두(一拳話頭)9],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마삼근(麻三斤), 운문호병(雲門餬餠) 10]등의 화두를 제시하고 이것을 조사관(祖師關)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공안이 수행하는 납자가 생사를 해탈하여 조사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기 때문에 이를 조사관이라고 부른 것이다.
9]오조법연선사가 상당(上堂)하여 주먹을 쥐고, 만약 이것을 주먹이라 한다면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사람과 같고, 만약 주먹이 아니라고 한다면 바로 앞에서 속이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 외에 더 이상 주먹을 뭐라고 해야 하는가?
10]운문선사에게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부처를 초월하고 조사를 뛰어넘는(超佛越祖) 말씀입니까?” 선사가 말하였다. “호떡(餬餠)이니라.”
연이 거량한 무자화두는 대혜선사에게 계승되어져 공안의 꽃으로 발전되었다. 대혜는 간화선을 제창하면서 여러 종류의 공안을 들고 수십 종의 화두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무자화두를 가장 강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혜는 그의 법문 곳곳에서 일체의 사량분별을 일시에 누르고, 오직 꽉 눌러 내린 그곳에서 “무자화두”를 참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무(無)”라는 한 글자가 숱한 나쁜 지견들을 꺾는 무기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대혜는 그의『어록』에서 법연의 무자화두 참구법을 계승하여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유와 무의 상대적인 의식으로 알려고 해서도 안 되며, 도리로 알려고 해서도 안 되며, 의식으로 헤아려 분별해서도 안 되며, 눈썹을 치켜 올리고 눈을 깜빡거리는 곳에 머물러서도 안 되며, 말하는 그곳에서 살 궁리를 찾아도 안 되며, 아무 일 없는데 머물러서도 안 되며, 제시된 공안을 향하여 바로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문자 가운데서 증거를 찾으려 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하루 24시 행주좌와의 일상생활 가운데 항상 화두들 제시하여(時時提撕) 정신 차려서 참구해야 한다. “게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다(無)”라고 하는 화두를 일상생활 가운데서 여의지 않아야 한다".11]
11]『大慧語錄』(『大正藏』권 26, p.921下).
“不得作有無會, 不得作道理會, 不得向意根何思量卜度 不得向揚眉瞬目處根, 不得向語路上作活計, 不得颺在無事甲裏, 不得向擧起處承當, 不得向文字中引證, 但向十二時中四威儀內, 時時提撕, 時時擧覺, 狗子還有佛性也無? 云無.”
위에서 열거한 여덟 가지 외에 다시 “참으로 없다고 헤아리지 말며(不得作眞無)”,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리지 말라(不得將心待悟)“는 두 가지를 합해서 무자화두 참구의 열 가지 병통(無字話頭十種病痛)이라 한다. 이와 같이 대혜선사 역시 간화선을 제창하면서 특히 무자화두를 확립하여 지해를 소탕하고 깨달음으로 나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무문혜개(無門慧開) 또한『무문관(無門關)』에서 다른 어느 공안보다 무자화두를 강조하여 제1칙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무자화두를 선종의 “무문관(無門關)”이라 칭하고 반드시 이 조사관(祖師關)을 투과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조주화상은 어떤 스님이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없다(無)”라고 대답했다.
무문(無門)이 말했다. 참선은 반드시 조사의 관문(祖師關)을 통과해야 한다. 미묘한 깨달음(妙悟)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망상(心路)이 완전히 끊어져야 한다.
조사관을 투과한 체험도 없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망상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한 사람은 마치 초목에 붙어사는 정령과 같은 존재이다.
어떤 것이 조사관인가? 오직 무자공안만이 종문의 하나의 관이다. 그래서 이것을 ‘선종무문관’이라고 한다. 만약 이 조사관을 투과한다면 비단 조주를 친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역대의 모든 조사들과 손을 맞잡고 함께 진리의 세계를 걸어갈 수 있다.
또한 역대의 모든 조사들과 똑같은 경지에서 (눈썹을 결합하여) 그들과 똑같은 안목으로 진리를 보고, 똑같은 경지의 귀로써 들을 수가 있을 것이니 이 어찌 기쁘지 않으랴! "12]
12]『無門關』
“趙州和尙 因僧問,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 無.
無門曰, 參禪須透祖師關. 妙悟要窮心路絶.
祖關不透, 心路不絶. 盡是依草附木精靈.
且道.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遂目之曰, 禪宗無門關.
透得過者, 非但親見趙州,
便可與歷代祖師, 把手共行, 尾毛厮結, 同一眼見, 同一耳聞. 豈不慶快.”
여기서 무문은 오조법연의 조사관 사상을 계승해 조주의 무자화두가 수선자가 반드시 통과해야 할 조사의 관문이라고 주장하고, 나아가 종문의 가장 중요한 일관(一關)이라고 강조하고 이를 ‘선종의 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오조법연으로부터 시작하여 대혜종고를 거쳐 무문혜개에 이르러 무자화두가 종문에서 가장 중요한 공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송말(宋末), 원대(元代)에 이르러서도 당시 선문에서 무자공안이 가장 많이 참구되어지고 있었다. 특히 천목중봉(天目中峰), 환산정응(晥山正凝), 몽산덕이(蒙山德異)에 의해 무자화두의 참구법이 크게 선양되게 되었다.
이러한 무자화두의 전통은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고려 중엽 보조지눌(普照知訥)의『간화결의론』에 “무자화두”와 무자화두의 십종 병이 소개되고 있으며, 그의 제자 진각혜심(眞覺慧諶)이 찬집(撰集)한『선문염송(禪門拈頌)』에도 417칙에 무자공안을 수록하고 있다. 또한 고려 말 태고보우(太古普愚)와 나옹혜근(懶翁慧勤)에 의해 본격적으로 본참공안으로 무자화두가 실참되기 시작했다. 이후 조선의 벽송지엄(碧松智嚴)이 무자화두에 의해 의심을 타파하고 간화경절(看話徑截)을 선양하고 있다.
그리고 근세에 경허와 용성에 의해 무자화두가 선문에 널리 참구되게 되었다. 특히 용성은『수심정로(修心正路)』에서 대혜와 몽산, 보조의 사상을 이어 무자화두의 열 가지 병통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용성, 만공 시절에 무자화두가 천하선림(天下禪林)을 풍미했음을『만공법어』에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망월사 용성(龍城) 조실스님에게 대중이 이르기를, “지금 제방에 월분과도(越分過度)하는 학인(學人)들이 많습니다. 무슨 문제 하나 내 주시면 제방에 돌려 경책(警策)하려 합니다.” 하였다. 용성스님이「조주(趙州)스님 무자화두에 열 가지 병을 여의고 한 마디 일러 보시오.」하는 글귀를 각 선방(禪房)에 돌렸다.
이에 덕숭산(德崇山) 만공(滿空)스님의 회답은, “중이 조주에게 묻되 ‘개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스님 이르되, ‘무(無)’라 하였다.”고 하였고,
금정산(金井山) 혜월(慧月)스님은 답하기를 맹성(猛聲) 일할(一喝)하고 “나의 이 한 할이 옳으냐, 그르냐?”하였고,
태화산(太華山) 성월(星月)스님은 답하기를 “망월산 마루턱 구름이요, 금정산 아래 도적이로다.”하였고,
상왕산(象王山) 보월(寶月)스님은 “이 낱 무(無)자가 몇 가지 병인가?”하였고,
삼각산(三角山) 용성스님의 자답은 “박넝쿨이 울타리를 뚫고 나가 삼밭에 누웠도다.”라고 하였는데.
후일 혜암(惠菴)스님은 평하기를 “한가한 경계에 병들어 누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13]
13] 만공문도회 편,『滿空法語』(충남 예산 : 德崇山能仁禪院, 1982), pp.96-97. (이하,『滿空法語』)
이와 같이 무자화두는 종문에서 가장 선호하는 본참공안으로서 면면히 참구되어져 수많은 정전조사(正傳祖師)들에게 대오정안(大悟正眼)을 열게 하는 활구로써의 역할을 해왔음이 분명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간화행자(看話行者)들은 무자공안에 대한 정확한 안목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근자에 무자화두에 대한 이설(異說)이 분분하여, 이에 종문에서 확립되어진 무자화두 참구법에 대한 정설을 확립함으로써 실참납자들의 혼란을 줄여야 한다.
(2) 무자화두의 참구법
위에서 살펴본 바에 의하면 무자화두는 대혜의 간화선 참구에 있어서 가장 강조되어진 화두이며, 무문혜개(無門慧開)에 이르러서 “선종의 무문관”이라 칭할만큼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그런데『대혜어록』이나『무문관』등 당시의 선적(禪籍)에는 무자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오늘날과 같은 참구법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지 않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무자(無字)를 보라”고 지시하고, 또한 “화두에 의심을 하라.” 고만 가르치고 있을 뿐 구체적 참구의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하여 뒷날 무자화두 참구에 혼란이 야기되었던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일부 선자들 가운데 무자화두를 참구함에 “무자를 보라” 혹은 “무자를 들어라.”고 한 말에 착안하여 의심이 없이 다만 “무!” “무!” 하고 앉아 있는 폐단이 생겨났던 것이다.
성철선사의 법문에 의거하면, 예전에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가 처음 무자화두를 참구했을 때 의정을 일으키지 않고 그냥 앉아서 “무(無)”라고 했다. 그냥 “무, 무”하고 삼년을 해도 아무런 진척이 없고 공부가 제대로 되지를 않았다. 훗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를 참구하다 본래소식을 접하고 출세(出世)한 뒤에는 그만 “무자화두”를 참구하지 못하게 했다. 왜냐하면 그 때 당시 사람들이 그냥 “무, 무”하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의 제자인 중봉명본(中峰明本)이 무자(無字)를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무자를 참구하는 방법을 “어째서 무(無)라고 했는가?”라고 고치라고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조주는 어째서 무라고 했는가(趙州因甚道無)?”라는 말이 생겨 내려오게 된 것이다.14]
몽산덕이도 화두 참구하는 공부방법에 대해 “반드시 본참공안 위에서 의정을 일으켜야 하니, 크게 의심해야 크게 깨칠 수 있다. 그러니 천 가지 만 가지 의심을 아울러 한 개의 의심으로 만들어 본참공안(本參公案)에서 깨달음을 이루어야 한다. 화두에 의심이 없는 것이야말로 공부의 가장 큰 병이다”15]라고 설파했다.
그리고 그가 각원상인(覺圓上人)에게 설한 법문에 보면 “조주무자화두”를 참구할 것을 당부하면서 “항상 의심을 일으키되 ‘일체 중생이 모두 불성이 있는데 조주는 어째서 없다고 했는가? 필경 없다고 한 뜻이 무엇인가?’하고 의심하라”16]고 말하고 있다. 또한 명대(明代)의 독봉(毒峰季善)선사는 화두를 참구함에 깊이 의정 속으로 들어가라고 지시하고 있다.
14] 性徹,『話頭하는 法』p.19.
15]『蒙山法語』p.52. “當於本參公案上有疑, 大疑之下, 必有大悟. 千疑萬疑, 倂作一疑, 於本參公案上取辦. 若不疑言句, 是爲大病.”
16]『蒙山法語』p.17. “道箇無字意, 作生麽,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畢竟者箇無字, 落在甚處.”
"혹 무자를 참구하려 하는가? 그러면 모든 힘을 다해 ‘조주는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 하였는가?’라고 의심하여라. 혹 만법귀일(萬法歸一)을 참구 하려는가? 그렇다면 모든 힘을 다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고 의심하라. 혹 염불로 참구하려 하는가? 그렇다면 목숨 바쳐 ‘염불하는 이 놈이 누구인가?’라고 의심하라. 마음을 돌이켜 화두를 비춰보며 깊이 의정에 들어가라."17]
17]『禪關策進』(『大正藏』48권, p.1104中).
“화두에 의심을 일으키라.” 이것은 선가의 불문율이라 역대 간화종장 어느 조사치고 이런 가르침을 펴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여기서 이 말을 틀렸다고 한다면 이는 역대조사의 깨달음을 올바른 깨달음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 가르침을 외도사설(外道邪說)로 치부하는 천연외도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고려시대에 원나라에 유학하여 임제종을 계승하고 돌아온 태고와 나옹은 그들의 전적에서 한결같이 조주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해 “무엇 때문에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가?”라고 의심하고 의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면 여기서 경허(鏡虛)선사의 무자화두 참구에 대한 지침을 살펴보도록 하자.
"만일 참구하는 행문(行門)을 논할진댄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기를 “무(無)”라 하였으니, 길 버러지 날짐승이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조주는 무엇 때문에 “무(無)”라고 일렀는가? 하는 문제를 옷을 입고 밥을 먹거나, 대소변을 보거나, 시봉하고 남을 가르치거나, 경을 읽고,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거나 내지 가고 머물고 앉고 눕는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회광반조(廻光返照)하여 언제나 화두를 들어오고 들어감에 의심해 가고 의심해 가되…고양이가 쥐를 잡는 것과 같이 하라."18]
18]鏡虛惺牛禪師法語集刊行會 편,『鏡虛法語』(서울 : 인물연구소, 1981) pp.127-128. (이하,『鏡虛法語』)
여기서 경허선사는 망념이 일어나는 곳을 향해 “무(無)!”라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무엇 때문에(어째서) ‘무(없다)’라고 일렀는가?”라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고 지시하고 있다. 이것은 종문에서 무자화두를 드는 만고불변의 원칙이기 때문에 제론의 여지가 전혀 없다. 용성(龍城)선사 역시『수심정로(修心正路)』에서 무자화두를 참구(參究)하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자의 중국(中國)말과 우리말은 서로 다르다. 순전(純全)한 중국말로 하면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각성(皆有覺性)인데 조주인심도무(趙州因甚道無)라 하나니 이것을 전제(全提)라 하고, 인심도무(因甚道無) 이것은 단제(但提)라 한다.
또 순전히 우리말로 하자면 고물고물하는 미물(微物)이라도 신령(神靈)한 것을 머금고 있으며 모두 깨닫는 성품이 있다고 하셨거늘 조주(趙州)는 “무슨 까닭으로 없다고 하는고?” 또 “무엇으로 인하여 없다고 하는고?”하는 것이며, 우리말과 중국(中國)말을 섞어서 하자면 준동함령이 다 각성이 있다고 하셨거늘 조주는 “무엇으로 인하여 ‘무’라고 이르셨는고?”하는 것은 단제(但提)라 하는 것이다. 이 화두는 대각(大覺)의 말씀으로 보면 준동함령이 모두 대원각성(大圓覺性)이 있다고 하셨거늘 조주는 “어찌 없다고 하시는고?”하며 이로부터 의심한다."19]
19] 백용성,『覺海日輪』(서울: 세계불교성지보존회), pp.262-263. (이하,『覺海日輪』)
여기서 용성은 무자화두의 생명은 “무슨 까닭으로 무(無)라고 하는가?”라고 하여, 조주가 “무(無)”라고 한 것에 대한 의심의 참구가 무자화두참구의 본령이라고 설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의 주장처럼 의심이 없이 다만 망념이 일어나는 곳을 향해 무(無)! 무(無)!라 하고 앉아 있다면 올바른 참구가 아닐 것이다.
이런 모습에 대해 용성은 “또 입을 삐죽하여 ‘무’ ‘무’의 소리를 하고 앉았으니 생각을 붙들어 매자는 주의인가? 무슨 까닭인가? 하필 무자만 ‘무’ ‘무’ 할 것이 아니라 옴(唵)자라도 ‘옴’ ‘옴’하면 되지 아니할까? 내가 이런 것을 많이 보아왔다. 무릇 언구(言句)를 의심치 아니하는 것이 큰 병이다. 큰 의심이 있은 연후에야 크게 깨닫는다고 고인(古人)이 말씀하셨다"20]라고 경책하고 있다.
만공(滿空)선사 역시 무자화두 드는 법에 대해 자세히 일러주고 있다.
"한 중이 조주(趙州)스님께 묻되 “개도 도리어 불성(佛性)이 있나이까 없나이까?” 하니 조주 스님은 “무(無)”라 하였으니, 조주는 무엇을 인하여 “무”라 일렀는고?
이 한 생각을 짓되 고양이가 쥐 생각하듯, 닭이 알을 품듯 앞생각과 뒷생각이 서로 끊어짐이 없이 샘물 흘러가듯 하여 가되 아침 일찍 찬물에 얼굴을 씻고 고요한 마음을 단정히 하고 앉아 화두를 들되 개가 불성이 있단 말인가, 없단 말인가? 있고 없는 것이 다 공하여 참으로 없단 말인가? 이 같은 요별 망상은 옛 사당의 찬 향로와 같이 고요하게 하고, 화두는 성성하게 하여, 밝은 달이 허공에 뚜렷하게 드러난 것 같이 하여, 망상은 적적하고 화두는 성성하여 적적함이 달덩어리와 달 광명이 서로 어김없는 것같이 화두를 지어가라."21]
20]위의 책, p.264.
21]『滿空法語』p.236-237.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나라에서 경허, 용성, 만공 선사의 시대에 이르러 선문에 무자화두가 널리 참구되자, 전통적으로 전해오던 무자화두 참구법에 대해 완벽하게 재정립시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혜(大慧), 고봉(高峰), 몽산(蒙山), 무이(無異)선사 등 역대 모든 간화종장(看話宗匠)들도 일찍이 말하기를 “큰 의심에 큰 깨달음이 있고, 작은 의심에 작은 깨달음이 있고, 의심이 없으면 깨달음도 없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화두에 대해 의심을 지어 가다 보면 일체 사량분별이 사라지고 오로지 의심만이 성성적적(惺惺寂寂)하여 화두함(能)과 화두되어짐(所)이 하나가 된다.
만약 공안참구에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간화선이 아니다. 간화의 참구는 화두에 대한 의심이 지속되어야 한다. 불법의 대의나 정법에 대한 지혜를 구족하지 못한 중생이기 때문에 이것을 갖추기 위해서 화두를 의심하는 방편을 통해 번뇌 망념을 조복하려는 것이다. 화두에 의심을 일으킨 간화행자는 이미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의식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자일 것이다. 문제의식이 없이는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의식이 간절하면 의심은 저절로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문제의식은 가지고 의심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는 외도(外道)의 삿된 법이 된다. 화두는 간절하게 사무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참구해야 한다. 철저한 문제의식이 없이는 화두참구, 즉 의심이 일어날 수가 없다. 화두에 대한 의심이 돈발(頓發)되면 일체의 사량분별의 알음알이가 용납되어지지 않는다. 이에 대해 용성선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무릇 화두에는 의정(疑情)이 큰 불덩이와 같아서 참구하는 의정 밖에는 티끌만큼이라도 달리 아는 생각을 두지 아니하면 이것이 활구참선이 되는 것이다. "22]
22]백용성,「修心正路」『覺海日輪』(서울 : 세계불교성지보존회), pp.262-263.
이른바 “큰 불덩이와 같은 의정”이야말로 화두참구의 관건이다. 그 외의 소리는 망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듯 간화선의 생명은 화두참구에 있다. 참구는 의심의 참구이다. 그러므로 무자화두의 참구에 있어서 “어째서 조주는 무(無)라고 했는가?”라는 의심이 생명이 되는 것이다. 무자를 참구하여 의심하고 또 의심할 뿐이다. 의심이 하나의 큰 덩어리를 이루어(打成一片) 시절인연(時節因緣)이 맞아 떨어져 한 번 크게 분출하여(噴地一發) 명심견성(明心見性)하면 집 앞 뜰에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핀 소식을 알게 될 것이다.
2. 이뭣고(是甚麽)?
근세에 와서 “이뭣고(是甚麽)?” 화두를 수선납자들에게 정식으로 제시한 분은 경허선사와 용성선사이다. 사실 두 선사는 근세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라고 일컫는 분들이다. 이 두 분 선사에 의해 전통적으로 선문에 전해져 내려오던 “시심마(是甚麽)?” 화두가 다시 제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허는 참선곡과 법문곡을 통해 이뭣고? 화두를 선양하였고, 용성은 자신의 저술『수심정로(修心正路)』를 통해 이뭣고? 화두에 대해 자세히 제시하고 있다. 먼저 경허선사의 노래를 들어보자.
"그 마음을 알게 되면, 진작 부처 이것이니, 찾는 법을 일러 보세. 누우나 서나 밥 먹으나, 자나 깨나 움직이나, 똥을 누나 오줌 누나, 웃을 때나 화낼 때나, 일체 처 일체 시에, 항상 깊이 의심하여, 궁구하되 ‘이것이 무엇인고?’ 어떻게 생겼는가? 어두운가. 누른가. 푸른가. 있는 건가. 없는 건가. 어떻게 생겼는고. 시시때때 의심하여 의문을 놓지 말고 염념불망(念念不忘) 하여가면, 마음은 점점 맑고, 의심은 점점 깊어, 상속부단(相續不斷) 할 지경에 홀연히 깨달으면 천진면목(天眞面目) 좋은 부처 완연히 내게 있다."23]
23]『鏡虛法語』pp.161-162.
이것은 경허의「법문곡」의 일단이다. 여기서 경허는 단순히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성찰해 볼 것을 권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일체 처(處), 일체 시(時)에 온 힘을 다해 “이것이 무엇인고(是甚麽)?”라는 화두를 참구할 것을 노래로 선양하고 있다. 그는 유명한「참선곡」에서도 마찬가지로 “소소영령(昭昭靈靈) 지각하는 ‘이것이 무엇인고(是甚麽)?’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 부처 의심하고 의심하라.”고 하여 이뭣고?를 하나의 본참공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뭣고? 화두는 아마도 경허선사의 시대에 조선의 선풍(禪風)이 다시 진작되면서 선문에 널리 참구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허는 또한 그의 제자 혜월(慧月)을 “이뭣고?”화두로 개오시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허선사께서 이르시기를,
“사대(四大)가 본래 거짓으로 이루어져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허공도 또한 법을 설하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느니라. 다만 눈앞에 두렷이 밝은 한 물건이 있어서 능히 법을 설하고 듣나니, 고명(孤明)한 이 한 물건이 무엇인고?” 하시더니 재차 다그쳐 물으셨다.
“알겠느냐? 대체 어느 한 물건이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느냐? 형상은 없되 두렷이 밝은 그 한 물건을 일러라!”
혜월스님은 앞이 캄캄하여 이 순간부터 오로지 이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몰두했다. 앉으나 서나 일할 때나 잠잘 때까지도 ‘도대체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하는 일념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일념에 잠겨 참구하는 가운데 3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그리고 어느 날 혜월스님은 짚신 한 켤레를 다 삼아놓고서 잘 고르기 위해서 신골 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심삼매(無心三昧)에서 짚신을 다 삼아놓고서 신골을 치는데 ‘탁’하는 그 망치소리에 ‘이 한 물건이 무엇인가?’하는 의심이 환하게 해소 되었다.
혜월스님이 그 길로 경허선사를 찾아가니, 선사께서 간파하시고 물음을 던지셨다.
“목전(目前)에 고명(孤明)한 한 물건이 무엇인고?”
이에 혜월스님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 섰다.
“어떤 것이 혜명(慧明)인가?”
“저만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일천성인(一千聖人)도 알지 못합니다.”
경허선사께서는 여기에서, “옳고 옳다.”하시며 혜월스님을 인가(認可)하셨다. "
경허의 또 다른 제자 만공도 자화상에 찬하기를
“나는 그대를 여의지 않고(我不離汝),
그대 또한 나를 여의지 않았네(汝不離我).
그대와 내가 나기 이전에(汝我未生前),
알 수 없어라. 이것이 무엇인고?(未審是甚麽)”24]
라고 하였다.
여기서의 ‘시심마(是甚麽)?’는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전(父母未生前)의 본래면목(本來面目)에 대한 반추를 말하고 있다 하겠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만공선사는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는 화두로 깨침을 얻었는데, 뒷날 이 화두를 대중들에게 제시할 때 “이 화두는 이중적 의심이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갔다고 하니, 하나는 이 무엇인고?(是甚麽)”25]라는 말로 바꾸어 참구하게 한 바 있다. 여기서의 “하나라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요, 이 정신 영혼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니, 하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고?” 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다름 아닌 “한 물건(一物)”과 상통하는 것이다.
24]『滿空法語』p.165.
25] 위의 책, p.255.
이와 같이 경허에 의해 제시된 “이뭣고?” 화두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참구되고 선양되었으며 용성에 의해 정식으로 체계화되고 보편화되고 있다. 용성선사는『수심정로』에서 “시심마(是甚麽) 화두(話頭)에 병을 간택함”이라는 제목 하에 “이뭣고?” 화두에 대해 상세히 논술하고 있다.
"밝기는 백천일월(百千日月)로 견주어 말할 수 없고, 검기는 칠통(漆桶)과도 같다고 할 수가 없다. 이 물건이 우리가 옷 입고, 밥 먹고, 잠자는 데 있으되 이름 지을 수 없고 얼굴로 그려낼 수 없다.
이는 곧 마음도 아니요, 마음 아님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니요, 불(佛)도 아니요, 불 아님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요, 하늘 아님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귀신 아님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요, 허공 아님도 아니요, 일물(一物)도 아니요, 일물 아님도 아니니, 그것이 종종 여러 가지가 아니로되 능히 종종 여러 가지를 건립하나니 극히 밝으며, 극히 신령하며, 극히 비었으며, 극히 크며, 극히 가늘며, 극히 강(强)하며, 극히 유(柔)하다.
이 물건은 명상(名相)이 없으며, 명상 아님도 없다. 이 물건은 마음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없고, 마음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며, 언설(言說)로도 지을 수 없고, 고요하여 말 없는 것으로도 알 수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의심하고 또다시 의심하되 어린아이가 어머니 생각하듯이 간절히 하며, 닭이 알을 품고 앉아 그 따뜻함이 끊이지 아니하는 것과 같이 하면 참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깨친다."26]
26]『覺海日輪』p.251.
용성은 위에서 이뭣고?(是甚麽)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혹은 “이 물건이 무엇인가?”라고 의심을 지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용성이 제시한 이뭣고? 화두의 그 내용을 자세히 분석해 보면 종문에 내려오는 몇 칙의 화두가 복합되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가) 한 물건(一物)의 화두, (나) 본래면목(本來面目)의 화두, (다)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不是心 不是佛 不是物)의 화두 등이 한데 어우러져 “시심마(是甚麽)?” 화두를 형성하고 있다.
이 세 공안은 종문에서 다같이 한 물건(一物)에 대한 의심으로 소이연(所以然)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의심으로 참구하게 되는 것이다.
용성선사 자신도 “시심마(是甚麽)란 일물(一物)의 소이연(所以然)을 알지 못하여 의심하는 것”27]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그 연원이 바로 혜능과 회양의 한 물건(一物)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27]『覺海日輪』p.262.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시되 “나에게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위로 하늘을 받치고 아래로 땅을 괴었으며, 밝기는 일월 같고, 검기는 칠통과 같아서, 항상 나의 동정(動靜)하는 가운데 있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하시며, 또 육조 대사께서 회양(懷讓) 선사를 대하여 물어 이르되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 하시니 회양 선사는 이를 알지 못하여 팔 년 동안 궁구하다가 확철대오하였으니 이것이 화두하는 법이다."28]
28]위의 책, p.255.
용성은 이뭣고? 화두가 “일물(一物)의 소이연(所以然: 그렇게 됨)”에 대한 의심이며, 그 연원이 육조 혜능이 설한 일물(一物)과 회양이 말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다(設使一物也不中)”고 하는 법문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마조가 “마음이 곧 부처다(卽心是佛)”라는 말로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어느 날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不是心 不是佛 不是物)”라고 한데서 마음, 부처, 물건이 아니면 이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형성된 것이다.
용성은 위에 열거한 몇 종류의 공안이 모두 “이뭣고?”라는 근원적인 물음으로 귀결되는 것이기에 이를 종합하여 “이뭣고? 화두”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성철선사도 그의 법문에서 “이뭣고?” 화두에 대해 “마조선사가 ‘마음도 아니요(不是心), 부처도 아니요(不是佛), 물건도 아니다(不是物)’라고 했는데, 그러면 이것이 무엇인가(是甚麽)?” 라고 의심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화두의 연원은 마조(馬祖)이며,『벽암록』제28칙에 본칙공안으로 실려 있으며, 종문에서 참구된 전례는 대혜의『종문무고(宗門武庫)』와 운서주굉의『선관책진(禪關策進)』에 의거하면 원오와 걸봉세우(傑峰世愚: 1301-1370)의 법문에서 찾을 수 있다. 먼저 원오의 법문을 들어보자.
"범현군의 호는 적수도인이다. 성도(成都)에 있을 때 불과(佛果: 원오극근)선사를 찾아보니 불과선사는 그에게 ‘마음도 아니요(不是心), 부처도 아니요(不是佛), 물건도 아니다(不是物). 이것이 무엇인가(是什麽)?’라는 화두를 참구하도록 하였다. 한마디 할 수도 없고 입을 뻥긋할 수도 없고 계속 들었으나 착수할 곳이 없자 갑자기 근심이 되어 선사에게 물었다. “이 밖에 또 다른 방편으로 저를 깨닫게 해 줄 수 없습니까?” “방편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다.” 적수도인은 여기서 깨닫고는 말했다. “원래 이처럼 가까이에 있는 것을…” "29]
29]대혜종고,『宗門武庫』백련선서간행회 역, (서울: 藏經閣, 2000), pp.90-91.
생사대사(生事大事)의 관문을 투과하기 위해 “이뭣고?” 화두를 들으라고 가르치고 있는 걸봉의 법문도 원오의 법어와 대동소이하다.
"진실로 자신의 대사(大事)를 밝혀서 생사의 관문을 뚫고자 하거든 먼저 일체의 성(聖)이니 범(凡)이니 하는 허망한 견해를 모두 끊어 버리고, 십이시(十二時) 중에 회광반조(廻光返照)하되, 다만 ‘마음도 아니고(不是心) 물건도 아니고(不是物) 부처도 아닌(不是佛) 이것이 무엇인가(是箇甚麽)?’라고 의심하여라."30]
30]운서주굉,『禪關策進』광덕 역, (서울: 불광출판사, 1997), p.274.
이것은 중국에서 참구된 이뭣고? 화두의 한 형태이다. 고려의 나옹화상도 이와 똑같은 화두를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이 눈앞에 분명하고 역력하여 설법을 듣는 자는 누구이며, 합장하고 묻는 이는 누구이며,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누구인가?…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분명히 보며 분명히 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다. 알아내고 보아내는 그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조사도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들은 말해 보아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31]
31]백련선서간행회 역,『懶翁錄』(서울: 장경각, 2001), p.79.
그리고 “이뭣고?”라는 말이 아직 하나의 공안형태로 정형화 되지는 않았지만 조사선에서 선문답의 문제제기로 표기되어 있는 경우는 허다하다. 그 가운데 백장회해(百丈懷海)와 설봉의존(雪峰義存), 운문문언(雲門文偃)의 법문이 그 본보기가 되고 있다.
"어느 때에 설법을 마치고 대중이 법당에서 내려가자, 대중을 불렀다. 대중이 고개를 돌리자, 백장이 “이것이 무엇인가(是甚麽)?”라고 말했다."32]
32]『五燈會元』上 제3권 (중국: 中華書局), p.134.
"설봉이 암자에 머물 때 두 스님이 와서 절을 했다. 설봉이 보고 손으로 암자의 문을 박차고 뛰쳐나가면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인가(是甚麽)?”라고 하였다. 스님도 이르되 이것이 무엇입니까(是甚麽)? 하니, 설봉이 고개를 떨구고 암자로 돌아왔다."33]
33]백련선서간행회 역,『從容錄』中, (서울: 장경각 1993), p.100.
"향림징원(香林澄遠)이 18년 동안 (운문의) 시자를 했는데, 그를 가르침에 다만 “원시자(遠侍者)!”라고 부르면, 원시자는 “네”하고 대답하였고, 운문은 “이 무엇인가(是什麽)?”라고 말할 뿐이었다. 이렇게 하기를 18년 만에 어느 날 바야흐로 깨달으니, 운문이 말하기를 “내가 지금 이후로 다시는 너를 부르지 않으리라”고 하였다. " 34]
34]『碧巖錄』제6칙, (『大正藏』제48권, p.146上). “香林十八年爲侍者, 凡接他, 只叫遠侍者. 遠云, 喏. 門云, 是什麽? 如此十八年, 一日方悟. 門云, 我今後更不叫汝.”
그런데 한 물건(一物)에 대한 문제의식은 전불교를 관통해서 제기되고 있는 근본적인 화두라 할 수 있다. 중국에 선종이 흥하기 전에 이미 이러한 선(禪)적인 일물(一物)에 대한 사상적 맹아(萌芽)가 싹트고 있었다. 이른바 부대사(傅大士)의 법신송(法身頌)으로 불리는 게송의 일부에 한 물건에 대해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천지에 앞서 한 물건이 있으니(有物先天地),
형상 없고 본래 공적하며(無形本寂廖),
능히 만상의 주인이 되고(能爲萬象主),
사시 어느 때나 소멸됨이 없네(不遂四時凋). "35]
35]『善慧大士錄』권 3;『續傳燈錄』권24.
이러한 일물사상은 선종이 성립되면서 정식으로 수행방편인 선문답으로 재구성되고 있다. 일본의 스즈끼(鈴木大拙)박사도 주장하고 있듯이 근원적인 문제제기인 일물(一物)에 대해 “이것이 무엇인가?”라는 선문답을 통해 제자를 개도(開導)하고 있는 예는 이미 선종 초기 오조 홍인에게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대사가 말했다. 여기 한 채의 집이 있는데, 그 가운데 똥과 초토(草土)가 가득 찼다.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是何物)? 또 말했다. 똥과 초토(草土)를 전부 소제(掃除)하여 한 물건(一物)도 없으니, 이것이 무슨 물건인가? " 36]
36]『楞伽師資記』「弘忍章」(『大正藏』85권, p.1289下.)
위에서 홍인은 한 물건(一物)을 제시하고 “이것이 무슨(어떤) 물건인가(是何物)?”라고 묻고 있다. 선어록에서 “무엇(甚麽)”, “어떤(何)”, “누구(誰)” 등의 물음은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가 다 궁극적으로 일물(一物)에 대한 물음으로 통일되고 있는 것이다. 홍인선사의 이러한 일물사상의 전통은 북종선의 신수와 남종선의 혜능에게 계승되어져 한 물건(一物), 본래면목(本來面目), 주인공(主人公) 등 다양한 공안의 표현방식으로 하여 종문에 면면부절(綿綿不絶) 이어져 왔다. 특히 위에서 용성이 언급한바 있는 혜능과 회양의 일물(一物)의 공안은 중국의 선문에서 줄곧 제기되어 왔던 인간의 근원적인 물음이라 할 수 있으니, 황벽스님은 이를 “깨달음의 성품(覺性)”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신령스런 깨달음의 성품은 비롯함이 없는 옛날로부터 허공과 수명이 같아서 한번도 생기거나 멸한 적이 없으며, 있은 적도 없어진 적도 없다.
더럽거나 깨끗한 적도 없으며, 시끄럽거나 고요한 적도 없으며, 젊지도 늙지도 않으며, 방위와 처소도 없고, 안과 밖도 없다. 또한 수량도 형상도 없으며, 색상과 소리도 없다.
그러므로 찾을래야 찾을 수 없고, 지혜로써 알 수도 없으며, 말로 표현할 수도 없으며, 경계인 사물을 통해서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힘써 노력한다고 다다를 수도 없다.
이것은 모든 불보살과 일체 꿈틀거리는 미물까지라도 똑같이 지닌 대열반의 성품이다."37]
37]『傳心法要』“此靈覺性, 無始已來, 與虛空同壽, 未曾生未曾滅, 未曾有未曾無,
未曾穢未曾淨, 未曾喧未曾寂, 未曾少未曾老, 無方所無內外, 無數量無形相, 無色象無音聲,
不可覓不可求, 不可以智慧識, 不可以言語取, 不可以境物會, 不可以功用到.
諸佛菩薩, 與一切蠢動含靈, 同此大涅槃性.”
한 물건(一物)에 대한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태고(太古), 나옹(懶翁)과 조선시대 청허(淸虛) 등이 참구의 방법으로 제기해 왔던 본참화두인 것이다. 태고스님의 법문을 들어보자.
"한 물건(一物)이 있으니, 밝고 밝으며 역력(歷歷)하여 거짓도 없고 사사로움도 없다. 고요하여 움직임이 없고 크고 신령스런 지혜가 있다. 본래 나고 죽음이 없고 사량분별 또한 없다. 이름과 모양도 없어 말로 할 수도 없다. 허공을 전부 삼키고 천지를 덮었으며 빛이나 소리까지 덮었으며 체(体)와 용(用)을 갖추었다.
……이 한 물건(一物)은 사람들의 본분 위에 있어 발을 들거나 내려놓을 때나 경계에 부딪치고 인연을 만나는 곳에는 단정하고 분명하며, 분명하고 단정하여 사람마다에 밝고 물건마다에 나타난다.
……여기에 다만 밝고 또렷한 것이 나타날 것이니, 이런 때에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에 본래면목(本來面目)을 참구하라."38]
38]『太古語錄』「玄陵請心要」.
위에서 태고도 “일물(一物)”의 화두와 “본래면목(本來面目)”의 화두를 하나로 통일시켜 참구할 것을 지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태고의 이러한 “일물(一物)사상”은 조선의 청허에게 계승되고 있다. 청허스님은『선가귀감(禪家龜鑑)』의 서두에 다음과 같이 한 물건(一物)에 대한 법문을 혜능과 회양의 일물(一物)을 인용해서 재구성하고 있다.
"여기 한 물건(一物)이 있는데, 본래부터 한없이 밝고 신령스러워(昭昭靈靈), 일찍이 일어난 바도 없고 멸한 바도 없다.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이 한 물건이 어떤 물건인가? "
옛 사람(古人)이 게송으로 읊었다.
"옛 부처 나기 이전 古佛未生前
두렷이 하나의 원상이니 凝然一圓相
석가도 몰랐거니 釋迦猶未會
가섭이 어찌 전할 손가 迦葉豈能傳 "
이것이 한 물건이 일어난 것도 아니며, 멸함도 없고, 이름 붙일 수도 없고, 모양 그릴 수도 없는 까닭이다. 육조스님이 대중에게 묻기를 “나에게 한 물건이 있는데, 이름도 없고 모양도 없다. 너희들은 알겠느냐?”
……회양선사가 숭산으로부터 와서 뵈오니, 육조가 묻기를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느냐?”고 할 때에, 회양은 어쩔 줄 모르다가 팔 년만에야 깨치고 나서 말하기를 “설사 한 물건(一物)이라 하여도 맞지 않습니다.”고 하였다. "39]
39]서산휴정,『禪家龜鑑』(『韓國佛敎全書』제7권, p.634下-635上).
청허의『선가귀감』에 시설된 이 공안법문이 그대로 용성의 이뭣고? 화두에 전승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실에 근거해 보면 이뭣고? 화두는 우리나라에서 근대에 와서 어느 날 갑자기 근거 없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중국 조사선의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의 사상으로부터 시작되어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사상사에서 면면부절 이어져 내려온 조사활구로서의 본참공안(本參公案)이라는 것이 확실해 진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하나의 문제는 혜능스님이 “나에게 한 물건(一物)이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 언어표현상의 문제이다. 이 말은 자칫 영육이원론(靈肉二元論)의 입장에서 나의 육신 안에 하나의 신령한 물건(정신적인 빛)이 존재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는 위험의 소지가 있다. 즉 나의 육신 안에 실재하는 자아의 실체(아트만)를 찾는 것으로 선(禪)을 삼을 수 있는 혜능의 언어표현에 대해 용성은 이러한 소지를 없애기 위해 철저히 중도적 언어관40]에 기초해서 일물(一物)을 표현하고 있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실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가?”라는 혜능의 물음에 대해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는 회양의 대답에 이미 중도적 언어표현이 이루어지고 있다 할 것이다.
40]“밝기는 백천일월(百千日月)로 견주어 말할 수 없고, 검기는 칠통(漆桶)과도 같다고 할 수가 없다. 이 물건이 우리가 옷 입고, 밥 먹고, 잠자는 데 있으되 이름 지을 수 없고 얼굴로 그려낼 수 없다. 이는 곧 마음도 아니요, 마음 아님도 아니요, 생각도 아니요, 생각 아님도 아니요, 불(佛)도 아니요, 불 아님도 아니요, 하늘도 아니요, 하늘 아님도 아니요, 귀신도 아니요, 귀신 아님도 아니요, 허공도 아니요, 허공 아님도 아니요, 일물(一物)도 아니요, 일물 아님도 아니다.”라는 설명은 철저히 중도적 언어표현에 입각해 있다고 할 수 있다.
한 물건(一物), 본래면목(本來面目), 주인공(主人公), 자기(自己) 등으로 표현된 언어구조는 중국문자의 표현방식상의 문제인 것이지 그것이 번뇌 망념 너머에 실재하는 소소영령한 실체적 존재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뭣고?는 내 안의 신령한 빛을 찾는 따위의 힌두교의 브라흐만적 명상과는 질적으로 다름을 유의해야 한다.
그러므로 육조의 제자 남양혜충(南陽慧忠)이 말하기를 “요즈음 남방의 불법이 크게 변해버렸다. 그들은 사대육신(四大六身) 속에 신령한 성품이 들어 있어 불생불멸(不生不滅)한다고 한다. 또 이 사대가 파괴되더라도 이 성품은 파괴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인도의 외도(外道)들과 같은 것이다” 41]라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육신 안에 불생불멸(不生不滅)하고 소소영령(昭昭靈靈)한 주인공이 있다고 말하는 이는 외도의 견해라는 것이다. 종문에서는 현사(玄沙)선사에 의해 “소소영령(昭昭靈靈: 밝고 신령함)한 주인공”에 대한 법문을 상세히 밝혀진 바 있다.
41]백련선서간행회 역,『山房野話』上, (서울: 장경각, 2000) p.37.
"다시 한 가지로 소소영령(昭昭靈靈)하여 신령스럽게 아는 바탕인 지혜의 성품이 있어서 볼 수도 있고 들을 수도 있으며, 오온의 몸 속에서 주재하는 자(주인)를 짓는다고 말하니, 이렇게 선지식이 되면 사람을 크게 속이는 것이다. 내가 이제 그대들에게 묻노니, “그대들이 만약에 소소영령함이 바로 너의 진실이라고 인정한다면 왜 잠잘 때에는 소소영령함을 이루지 못하는가. 만약 잠잘 때 소소영령하지 않다면 왜 또 소소영령할 때가 있는가. 그대들은 알겠는가. 이것은 도적(소소영령한 것)을 잘못 알아 아들이라 여긴 것이니, 이는 생사의 근본이요, 망상이 만들어 낸 인연의 기운이다. 내가 그대들에게 말하겠다. 그대들은 소소영령함은 다만 앞의 경계인 빛깔ㆍ소리ㆍ냄새 등의 법으로 인해 분별함이 있어서 바로 이것을 소소영령이라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앞의 경계가 없으면 그대들의 이 소소영령함은 거북 털, 토끼 뿔과 같은 것이다." 42]
42] 『玄沙師備語錄』
“有一般說昭昭靈靈靈臺智性能見能聞, 向五蘊身田裏作主宰, 恁麽爲善知識, 大賺人, 知麽. 我今問汝, 汝若認昭昭靈靈是汝眞實, 爲什麽瞌睡時, 又不成昭昭靈靈. 若瞌睡時不是, 爲什麽有昭昭時. 汝還會麽? 遮箇喚作認賊爲子, 是生死根本, 妄想緣氣. 汝欲識此根由麽? 我今汝道, 汝昭昭靈靈只因前塵色聲香等法而有分別, 便道此是昭昭靈靈. 若無前塵, 汝此昭昭靈靈同於龜毛兎角.”
지금 우리의 목전에서 밝고 신령스럽게 아는 작용은 인식주체(六根: 眼耳鼻舌身意)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인식대상(六境: 色聲香味觸法)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 둘이 합쳐진 인식작용(六識: 眼識 내지 意識)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밝고 신령스레 알 때 알려지는 바 경계는 곧 밝게 아는 활동 자체로 주어지니, 능히 아는 자를 떠나서도 그 밝음은 없고, 알려지는 바를 떠나서도 그 밝음은 없으며, 밝은 작용 자체를 버리고도 그 밝음은 없다. 그래서 현사스님은 말한다.
"이 소소영령한 앎은 저 육진의 경계가 있음으로 해서 비로소 경계를 밝게 아는 앎이 된 것이니, 색성향(色聲香) 등의 경계가 없으면 이는 마치 거북 털, 토끼 뿔과 같다. 이와 같이 신령하게 앎 자체가 좇아온 바가 없는데, 소소영령하게 아는 주재자를 세운다면 이는 있되 있음 아닌 의근(意根)을 실로 있는 실체로 세우는 망상이다. "43]
43]鶴潭 평석,『현사사비선사어록』(서울: 큰수레, 2002), p.46.
그러므로 도적을 자식으로 오인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뭣고? 화두를 보고 듣고 아는 소소영령한 실체를 찾는 것으로 오인 한다면 이 또한 도적을 부처로 잘못 아는 격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용성은『수심정로』에서 “이뭣고?”의 참구가 “혹 소소영령한 놈이 무엇인가?”라는 실체적 물음으로 잘못 이해한 것에 대해 크게 경책하고 있다.
"육근문(六根門)의 머리에 아는 빛과 그림자의 식이 경계를 좇아 감각하는 대로 이것이 무엇인고? 하며, 또 뜻뿌리(意根)에 분별하는 그림자 식을 가지고 이것이 무엇인고? 하며, 또 생각으로 염(念)이 일어나는 뿌리(根)를 들여다보며 이것이 무엇인고? 하며 찾으니 이것으로부터 병이 많이 난다. 이런 사람은 공한 병이 아니면 맑은 병이며, 그렇지 아니하면 소소영령한 것을 지키는 병이 허다하다. 이와 같은 것으로 어찌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증득(證得)하겠는가? 천칠백 화두(千七百話頭)에 그 참구하는 법은 통틀어서 하나이니 어찌 다름이 있겠는가? 시심마(이것이 무엇인가?)는 한 물건을 알지 못하여 참구하는 것이다."44]
44]『覺海日輪』, pp.259-260.
용성은 “천칠백 공안이 그 참구하는 법은 결국 하나라고 말하고, 시심마(是甚麽: 이것이 무엇인가?) 화두는 한 물건을 알지 못하여 참구하는 것”이라고 결론짓고 있다.
앞에서 고찰해 본 결과에 의하면 홍인, 육조, 회양, 마조, 원오, 걸봉으로부터 우리나라의 태고, 청허, 경허, 용성에 이르기까지 종문의 정전(正傳)조사들에게 끊어짐 없이 “한 물건(一物)”과 “마음, 부처, 물건이 아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라고 묻는 본참공안이 전승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다.
3. 본래면목(本來面目) 화두
본래면목(本來面目) 화두의 연원은 육조혜능선사로 거슬러 올라간다.『육조단경(六祖壇經)』에 의거하면, 혜능이 홍인의 법을 받고 대유령을 넘어가는데 뒤쫓아 온 혜명(慧明)을 향해 묻기를 “선도 생각하지 말고(不思善) 악도 생각하지 말라(不思惡). 바로 이러한 때에 어떤 것이 혜명상좌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라고 묻는 말 아래 크게 깨달았다고 한다. 이 공안은 또한『무문관』제 23칙으로 실려 있다.
"육조는 혜명상좌가 대유령 고개까지 뒤쫓아 온 모습을 보고, 오조화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사와 발우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말했다. ‘이 가사는 전법의 신표이기에 무력으로는 가히 빼앗지 못할 것이다. 그대가 갖고 싶으면 가지고 가시오!’
그러자 혜명상좌는 그 가사와 발우를 들려고 하였지만, 마치 산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혜명은 망설이다가 두려워하면서 말했다. ‘내가 여기까지 그대를 뒤쫓아온 것은 불법을 구하기 위한 것이지, 가사와 발우를 욕심낸 것은 아니요. 행자는 나를 위하여 불법을 설해 주기 바라오.’
그래서 육조는 ‘선을 생각하지 말고(不思善), 악도 생각하지 말라(不思惡). 선악(善惡)을 모두 함께 생각하지 않을 때 어떤 것이 혜명상좌 그대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라고 다그쳐 질문했다.
혜명상좌는 이 말을 듣고 곧바로 대오하고, 전신은 땀으로 젖고, 눈물을 흘리면서 예배하며 말했다.
‘지금 가르침을 받은 비밀스러운 말씀과 마음 이외에 또다시 어떤 깊은 의지(意旨)가 있습니까?’
육조는 말했다. ‘내가 지금 그대를 위해서 제시한 법문은 비밀스러운 것이 아니다. 만약 그대 자신이 그대 자신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반조(返照)해 본다면 비밀스러운 것은 그대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본래면목은 모양을 본뜰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릴 수도 없다. 칭찬하는 말을 첨가할 수도 없는 것, 쓸데없는 신경은 쓰지를 말아라. 본래의 면목이란 것은 어디에도 감출 수가 없으니 설사 세계가 무너진다고 해도 그것(본래면목)은 썩지도 않으리라. " 45]
45]六祖, 因明上座, 趁至大庾嶺. 祖見明至, 卽擲衣鉢 於石上云, 此衣表信, 可力爭耶. 任君將去.
明遂擧之, 如山不動. 踟廚悚慄, 明曰, 我來求法, 非爲衣也. 願行者, 開示.
祖云, 不思善, 不思惡. 正與麽時, 那箇是明上座本來面目.
明當下大悟, 遍體汗流, 泣淚作禮.
問曰, 上來密語密意外, 還更有意旨否.
祖曰, 我今爲汝說者, 卽非密也,汝若返照自己面目, 密却在汝邊.
이른바 “선도 생각하지 않고(不思善), 악도 생각하지 않는다(不思惡).”는 것은 달마선의 “심불기(心不起: 마음이 일어나지 않음)”의 사상을 구체화한 것이다. 즉 선악을 분별하지 않는다는 것은 선악이라는 일념의 차별경계를 초월한 근원적인 본래심을 나타내는 말이다. 중생은 본래성불(本來成佛)이다. 본래성불인 본심, 즉 불성은 본래 청정하여 선악(善惡), 범성(凡聖), 진망(眞妄)의 차별을 여읜 것이다. 그래서 선과 악이라는 분별망념을 다 떨쳐버린 불이중도(不二中道)의 본래심의 입장에서 그대 자신의 본래의 얼굴(本來面目)을 돌이켜 보라고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른바 혜능의 “불사선(不思善) 불사악(不思惡)”의 구절은 돈황본『단경』에는 보이지 않고, 후대에 편집된『단경』에 증보된 말이다. 원래 이 말은『조계대사전』에 “불성은 선악을 생각하지 않는 것(佛性不念善惡)”, “불성은 선악을 초월해 있다(佛性非善非不善)”라는 구절과 신회의『단어(壇語)』가운데 “일체의 선과 악을(一切善惡) 모두 사량하지 않는다(總莫思量).”라는 구절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또한 혜해의『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에도『단어』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뒷날 편집된『단경』에 혜능이 대유령 고개까지 쫓아온 혜명상좌에게 설한 법문으로 재편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설한 선악의 차별심이 일어나기 이전의 상태를 황벽의『전심법요』에서는 또한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父母未生時)”으로 달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육조스님이 묻기를 ‘그대는 무엇을 구하러 왔는가? 옷을 구하는가, 아니면 법인가?’하니, 도명상좌가 ‘옷이 아니라 오로지 법을 위하여 왔습니다.’고 하였다.
육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잠시 마음을 거두고 선도 악도 전혀 생각하지 말라’하시자, 도명상좌가 말씀을 받드니,
육조께서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 바로 이러한 때 부모가 낳기 이전 명상좌의 본래면목(父母未生時面目)을 나에게 가져와 보아라.’ 하셨다. "46]
46]『傳心法要』(『大正藏』제48권, p.383下).
六祖便問 汝來求何事. 爲求衣爲求法. 明上座云 不爲衣來 但爲法來.
六祖云 汝且暫時歛念 善惡都莫思量. 明乃稟語
六祖云 不思善不思惡 正當與麽時 還我明上座父母未生時面目來.
이른바 “부모미생시면목(父母未生時面目)”이란 말은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의 자기 본래의 모습으로 생사를 여읜 불생불멸(不生不滅)의 진여실상(眞如實相)을 나타낸 말이다. 여기서 말한 “부모미생시면목”이란 말은 황벽과 동시대 법형제인 위산영우(潙山靈祐)가 그의 제자인 향엄지한(香嚴智閑)에게 제시한 공안에서도 같은 유형으로 표현되어진 말이다.『위산록(潙山錄)』에 소개된 위산과 향엄의 법문을 들어보자.
"위산스님께서 하루는 향엄스님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백장스님의 처소에 살면서, 하나를 물으면 열을 대답하고 열을 물으면 백을 대답했다고 하던데 이는 그대가 총명하고 영리하여 이해력이 뛰어났기 때문인 줄 안다. 그러나 바로 이것이 생사의 근본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父母未生時)에 어디서 왔는지 일구를 지어 보여라(試道一句看).’
향엄스님은 이 질문을 받고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방으로 되돌아와 평소에 보았던 모든 책(文字)을 뒤져가며 적절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를 써 보았으나 끝내는 찾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탄식하며 말하였다. ‘그림 속의 떡은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한다.’
그런 뒤로 향엄스님은 여러 번 스님께 가르쳐 주시기를 청하였으나 그럴 때마다 스님은 말씀하셨다.
‘만일 그대에게 말해준다면 그대는 뒷날 나를 욕할 것이네. 무엇이든 내가 설명하는 것은 내 일일 뿐 결코 그대의 수행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향엄스님은 이윽고 평소에 보았던 책들을 태워버리면서 말하였다 ‘금생에는 더 이상 불법을 배우지 않고 이제부터는 그저 멀리 떠돌아 다니면서 얻어 먹는 밥중노릇이나 하면서 이 몸뚱이나 좀 편하게 지내리라.’
이리하여 눈물을 흘리며 스님을 하직하였다. 곧바로 남양(南陽)지방을 지나다가 혜충국사(慧忠國師)의 탑을 참배하고는 마침내 그곳에서 쉬게 되었다. 하루는 잡초와 나무를 베다가 우연히 기왓장 한 조각을 집어 던졌는데 그것이 대나무에 ‘딱’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단박에 깨닫게 되었다.
향엄스님은 급히 거처로 돌아와 목욕 분향하고 멀리 계시는 스님(潙山)께 절을 올리고는 말하였다.
‘스님의 큰 자비여! 부모의 은혜보다 더 크십니다. 만일 그때 저에게 말로 설명해 주셨더라면 어찌 오늘의 이 깨달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에 게송을 읊었다.
딱 소리에 알음알이 떨쳐지니 一擊忘所知
다시는 닦을 필요 없게 되었네. 更不假修時
덩실덩실 옛길을 넘나드니 動容揚古路
초췌한 처지에 빠질리 없어라 不墮悄然機
곳곳에 자취를 남기지 않고 處處無蹤跡
빛과 소리를 벗어난 몸짓이니 聲色外威儀
제방의 도를 아는 이들은 諸方達道者
모두가 상상기라 하더라. 咸言上上機 " 47]
47] 백련선서간행회 역,『潙仰錄』(서울: 장경각, 1993), pp.53-55.
위의 이야기는『대혜어록』에도 그대로 인용48]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위산이 말한 이른바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父母未生時), 어디서 왔는지 일구를 지어 보여라(試道一句看)”고 한 말은 위에서 제시하고 있는 “부모미생시면목(父母未生時面目)”을 묻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부모미생시면목(父母未生時面目)”은『선관책진』에 기록된 설정(雪庭)화상과 태허(太虛)선사의 시중(示衆)에 정식으로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이란 정형화된 화두로 나타나고 있다. 48]『大慧語錄』卷 第13, (『大正藏』제47권, p.865下).
" 12시중에 씻은 듯이 가난한 마음49]으로 부모가 낳기 이전(父母未生前) 어떠한 것이 나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인가를 참구하되, 득력(得力)하든 득력하지 못하든 혼산(昏散)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하지 말고 다만 한결같이 지어 나가기만 하라."50]
49]가난한 마음: 가난한 마음이라는 것은 마음속에 일체의 알음알이나 소득심(所得心)이나 아만심을 툭! 털어버린 말끔한 마음이라는 뜻이니, 마음에 조그마한 것이라도 들어 있으면 불조의 말씀이 바로 들어가지 않고 공부가 올바르게 나가지를 못하게 된다. 마음을 비워야 한다.
50]운서주굉, 앞의 책, p.270.
“十二時中 一貧如洗 看箇父母未生前 那箇是我本來面目 不管得力不得力 昏散不昏散 只管提撕去."
"아직 깨닫지 못하였거든 모름지기 10년 20년 내지 30년이라도 포단위에 앉아 배겨 부모가 낳기 이전 면목(父母未生前面目)을 참구하라."51]
51]위의 책, p.289. "如未了悟 須向蒲團上冷坐 十年二十年三十年 看箇父母未生前面目.“
이러한 전통은 중국 근대불교에까지 전승되어지게 된다. 근세 중국선불교의 중흥조라 일컫는 허운(虛雲)선사는 오늘날 중국에서 가장 많이 참구되고 있는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佛者是誰)?” 라는 화두와 본래면목 화두와의 연계성을 설명하고, 두 화두 역시 “나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가?”로 귀착됨을 밝히고 있다.
"옛 사람들의 공안이 많으나, 후에 와서는 오로지 ‘화두를 보라’고만 가르쳤습니다. 예컨대 ‘이 송장을 끌고 다니는 것은 누구인가?’나,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어떤 것이 나의 본래면목인가(父母未生前 如何是我本來面目)?’ 하는 화두를 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근래에 와서 제방(諸方)에서 많이 쓰는 화두는 ‘염불하는 것은 누구인가?’하는 것인데, 이 화두는 실은 어떤 식으로 표현해도 다 마찬가지이며 모두 너무나 평범하여 별로 특별한 것도 없습니다. 말하자면, 경을 읽는 것은 누구며, 주문을 외우는 것은 누구며, 부처님께 절을 하는 것은 누구며, 밥을 먹는 것은 누구며, 옷을 입는 것은 누구며, 길을 가는 것은 누구며, 잠자고 깨어나는 것은 누구냐 하는 것들인데, 모두 같은 내용의 화두입니다."52]
52]虛雲,『參禪要旨』대성스님 옮김, (서울: 여시아문, 2004년), pp.23-24.
허운은『참선요지』에서 “부모에게 태어나기 이전의 본래면목을 본다(看)는 것은 곧 마음을 관(觀)하는 것”이며, “염불하는 자가 누구인가(念佛者是誰)? 하는 화두를 참구하는 것은 부처를 염하는 자기 마음을 관하는 것(觀心)”이라고 정의하여 “자심의 청정각체(自心淸淨覺體)를 관조(觀照)하는 것53]”으로 통일하고 있다.
53]虛雲, 앞의 책, pp.24-25.
『단경』에 나오는 혜능의 본래면목(本來面目) 화두는 우리나라에도 원형 그대로 전해져 고려시대 보조선사의 제자 진각혜심의『선문염송』제118칙에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고려 말 태고와 나옹 양 선사에 의해 본격적으로 “본래면목” 화두가 본참공안으로 참구되기 시작하였다.『태고어록』에는「최진사에게 주는 글」에 본래면목을 참구할 것을 아래와 같이 당부하고 있다.
"공(公)은 스스로 ‘무엇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父母未生前本來面目)?’ 하고 참구하여 보십시오. 그 한마디에 깨치면 그만이거니와 그렇지 못하거든, 다니거나 섰거나 앉거나 누울 때나 스물 네 시간을 마음마음이 어둡지 않고 생각생각 계속해야 합니다…….
그 방법을 말한다면, 공은 “4대로 된 내 몸뚱이는 부모가 낳아준 것으로서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무엇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父母未生前本來面目)?” 하고 생각하되, 부디 참구하여 어둡지 않게 하십시오. 이렇게 끊일 틈 없이 하면 공부가 저절로 순순히 익어지고 몸과 마음이 맑고 상쾌해져, 마치 싸늘한 가을 하늘의 기운과 같게 될 것입니다." 54]
54]백련선서간행회 역,『太古錄』(서울: 장경각, 1999), p.65.
위에서 태고선사가 설하고 있는 이른바 “사대로 된 내 몸뚱이는 부모가 낳아준 것으로서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무엇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라는 구절이 바로 우리나라에서 참구되어진 본래면목 화두의 정형구라 할 수 있다. 나옹선사 역시『나옹어록』에「상국 이제현(相國 李齊賢)에게 답하는 글」에 “본래면목”을 참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만일 철저히 깨치지 못했으면 꼭 하고야 말겠다는 큰 뜻을 일으켜 옷 입고 밥 먹고 담소하는 하루 스물 네 시간 어디서나 그 본래면목을 참구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의 말에, ‘금생에 이 세상에 나와 이런 모습이 된 것은 바로 부모가 낳아준 면목이지마는, 어떤 것이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본래면목인가?’ 하였습니다.
다만 이렇게 끊이지 않고 참구하여, 생각의 길이 끊어지고 의식이 움직이지 않아 아무 맛도 없고 더듬을 수도 없는 곳에 이르러 가슴속이 갑갑하더라도 공(空)에 떨어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것이야말로 상국께서 힘을 얻을 곳이요 힘을 더는 곳이며, 또 안신입명(安身立命)할 곳입니다. 간절히 부탁하고 부탁합니다."55]
55]백련선서간행회 역,『나옹록』, p.137.
당시 원(元)나라에 유학하여 여러 선지식을 참문하고 석옥청공(石屋淸珙)과 평산처림(平山處林)의 법을 이어온 태고, 나옹 선사는 “무자화두”와 함께 “본래면목 화두”를 매우 강조하고 있다. 태고화상은 이 화두를 강조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참선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스스로 꾸짖고 반성하되, 자기의 공부가 옛사람과 같은가 다른가를 생각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잘못된 데가 있거든 부디 스스로 꾸짖고, 다시 장부의 뜻을 내어 시시각각으로 일체의 선악을 전연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그때에는 무엇이 우리 부모가 낳아주기 이전의 본래면목인가를 잊지 않고 간절히 참구하여, 갑자기 마음이 갈 곳이 없어져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56]
56]백련선서간행회 역,『太古錄』(서울: 장경각, 1999), p.77.
이와 같이 고려 말의 선림에서 이미 본래면목 화두가 보편적으로 널리 승속 간에 참구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은 근세의 간화선사상으로 전승되어져 본참공안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경허선사는『참선곡』에서 “몸뚱이는 송장이요, 망상번뇌 본공(本空)하고 천진면목(天眞面目) 나의부처 보고 듣고, 앉고 눕고,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눈 한번 깜짝할 새 천리만리 다녀오고, 허다한 신통묘용 분명한 나의 마음 어떻게 생겼는고?” 라고 노래하여 본래면목을 참구할 것을 지시하고 있다.
용성선사 또한 그의『수심정로』에서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면목(本來面目)” 화두의 연원과 참구법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에 화두하는 법은 위산(僞山)이 향엄(香嚴)에게 묻되, “네가 부모미생전면목(面目)한 글귀를 일러오너라. 그런 연후에야 너와 더불어 서로 보리라!” 하시니, 부모는 나의 고깃덩어리 몸은 낳았을지라도 나의 본래 면목은 낳지 못하였으니 어떤 것이 나의 본래 면목인가를 의심하여 볼지어다
혹 어떤 사람이 묻기를, 그러면 내가 전세(前世)의 개가 사람이 되었는가? 사람이 스스로 사람이 되었는가? 의심하여 보라는 말인가요?
용성이 답하되, 그것을 궁구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의 천진본연면목(天眞本然面目)은 부모가 나를 생(生)하려 하여도 능히 생하지 못하고, 천지가 나를 생하며, 나를 덮으며, 나를 실으려 하여도 능하지 못하는데 나의 본래 옛주인(舊主人)의 면목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할 새 부모가 낳기 전에 어떤 것이 나의 본래 면목인고? 하며 의심하는 것이다."57]
57]「修心正路」『覺海日輪』, pp.266-267.
용성은 본래면목 화두의 연원이 위산영우와 그의 제자 향엄지한의 선문답에 있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본래면목에 대한 의심으로 그 참구법을 삼으라고 가르치고 있다. 즉 부모로부터 태아나기 이전의 전생사(前生事)를 참구하라는 것이 아니라, 불생불멸의 “천진본연면목(天眞本然面目)”을 의심하고 의심하는 것이 본래면목 화두의 올바른 참구법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본래면목 화두는 혜능의 “본래면목(本來面目)”과 위산의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이 어우러져 “부모로부터 태어나기 이전에 나의 본래 면목(모습)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로 정형화되어 참구하게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4.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는 조주종심선사로부터 시작되고 있다.『조주록』에 다음과 같은 법문의 일단이 설해져 있다.
"한 스님이 물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하나는 어디로 돌아갑니까?”
“나는 청주에서 베옷 한 벌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더라.” 58]
58]백련선서간행회 역,『趙州錄』(서울: 장경각, 1999), p.96.
“師云與麽嫌什麽問 萬法歸一 一歸何所
師云 我在靑州作一領布衫 重七斤”
위의 선문답 가운데 조주가 말한 답어를 제외한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萬法歸一)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一歸何處)?”라는 도입부를 자기 물음으로 전화(轉化)시켜 하나의 화두가 된 것이다. 즉 “만법은 어디로 돌아가는가? 하나로 돌아간다. 그러면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라는 공안에 대해 의심을 지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화두로써 의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라는 부분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만법이 하나로 돌아간다면 그 하나는 무엇인가?” 라는 의심이 가능하게 되고, 그리고 또한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라는 의심이 되어 이중적 의심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의문구조에 대해 초학자들이 참구할 때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래서 만공선사는 만법귀일 화두 참구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참선법은 상래로 있는 것이지만, 중간에 선지식들이 화두드는 법으로 참선하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그 후로 무수 도인이 출현하였나니, 화두는 일천 칠백 공안이나 있는데, 내가 처음 들던 화두는 곧 “만법이 귀일이라 하니 일(一)은 어디로 돌아갔는고?”를 의심하였는데, 이 화두는 이중적 의심이라 처음 배우는 사람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갔다고 하니, 하나는 무엇인고? 하는 화두를 들게 하는 것이 가장 좋으리라.
하나는 무엇인고? 의심하여 가되 의심한다는 생각까지 끊어진 적적하고 성성한 무념처에 들어가야 나를 볼 수 있게 되나니라.
하나라는 것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요. 이 정신 영혼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니, 하나라는 것은 과연 무엇인고? 의심을 지어 가되 고양이가 쥐를 노릴 때에 일념에 들 듯. 물이 흘러갈 때에 간단이 없듯, 의심을 간절히 하여 가면 반드시 하나를 알 게 되나니라." 59]
59]만공문도회 편,『滿空法語』p.255.
위에서 만공은 이중적 의심이 가능한 만법귀일 화두에 대해 초학자들은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라는『조주록』에서 제기한 본래의 의심을 참구하지 말고 “만법이 하나로 돌아감을 전제하고, 그렇다면 이 하나는 도대체 무엇인가?”로 바꾸어 참구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선문에서는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참구함에 있어서 두 가지로 나뉘어 참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이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 라는 공안 본래의 의심이며, 또 하나는 “이 하나는 무엇인가?” 라는 의심인 것이다.
그러나 종문에서는 예로부터 본래의 만법귀일 화두가 그대로 전승되어져 왔음을 볼 수 있다. 이 화두로 크게 깨친 분이 바로『선요(禪要)』로 유명한 고봉원묘(高峰原妙)선사이다. 고봉은 처음에 무자화두를 들었으나 별 진전이 없자 단교(斷橋)화상이 제시해 준 만법귀일 화두에 의정이 돈발하여 마침내 칠통을 타파하게 되었다.
"때는 이월 초로서 제방(諸方) 모든 선방(禪房)의 방부(房付)가 끝나 갈 수 있는 절이 없었기에, 보따리를 메고 경산사(徑山寺)로 올라갈 수 밖에 없어 이월 보름쯤에 승당(僧堂)으로 돌아갔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다음달 열엿샛날 밤 꿈속이었다. 홀연 단교(斷橋) 화상이 방장실에서 일러 주신 “만법귀일(萬法歸一) 일귀하처(一歸何處)”라는 화두가 기억되었고, 이로부터 단숨에 의정(疑情)이 생겨 한 덩어리가 되니, 바로 동서를 가리지 못하며 먹고 자는 것조차 잊어 버렸다.
이렇게 엿새째 되던 날 오전, 행랑 아래에서 거닐다가 대중 스님들이 승당에서 나오는 것을 만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그 대열에 섞여 삼탑각(三塔閣)에 올라가서 경을 외우다 머리를 들어 문득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의 진영(眞影) 찬(讚) 끝에 있는 두 마디, “백년삼만육천일(百年三萬六千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 본디 이 놈이다”라고 하는 내용을 보게 되었다.
그러자 이전에 스님께서 다그쳐 물으시던 “송장 끌고 다니는 놈”이라는 화두를 별안간 타파하여, 바로 혼(魂)이 날아가고 간담이 서늘해져 죽었다 다시 살아난 듯 하였다.
이것이 어찌 백스무 근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것과 같을 뿐이었겠는가."60]
60]『禪要』
時二月初 諸方掛塔 皆不可討 不免挑包上徑山 二月半歸堂
忽於次月十六夜夢中 忽憶斷橋和尙 室中所擧 萬法歸一 一歸何處話 自此疑情頓發 打成一片 直得東西不辨 寢食俱忘
至第六日 辰巳間 在廊下行 見衆僧堂內出
不覺 輥於隊中 至三塔閣上 諷經擡頭 忽覩五祖演和尙眞贊 末後兩句云 百年三萬六千朝反覆 元來是這漢
日前 被老和尙 所問 拖死屍句子 驀然打破 直得魂飛膽喪 絶後再甦
何啻如放下百二十斤擔子
60]운서주굉,『禪關策進』(서울: 불광출판사, 1997년), p.245.
그리고 고봉원묘의 문하에 참예하여 그의 법을 이은 단애요의(斷崖了義) 또한 “만법귀일” 공안을 참구하여 깨치고 게송을 짓기를
“대지여 산하여 한 조각 눈이로다(大地山下一片雪).
햇빛 한번 비치니 자취조차 사라지네(太陽一照便踪).
이로부터 모든 불조를 의심하지 않고(自此不疑諸佛祖)
나아가 동서남북이 모두 사라졌네(更無南北如東西).” 라고 하였다.
고봉스님이 인가하면서 네가 후에 “고봉절정(高峰絶頂)에서 크게 소리칠 것이다.” 라고 하였다.『선관책진』에 의거하면 대승산 보암단애(普巖斷崖)화상 또한 만법귀일 화두를 참구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공부를 짓되, 화두를 참구하지 아니하고 비고 고요한 것을 지켜 앉아있지 말며, 염화두(念話頭)를 하여 의정없이 앉아 있지 말지니라.
혹 혼침이 오거나 산란심이 들면 생각을 일으켜서 이를 쫓으려 하지 말고, 곧 힘차게 화두를 들고 신심을 가다듬어 용맹히 정채를 더하라.
그래도 아니 되거든 땅으로 내려와 경행하고 혼산이 사라지거든 다시 포단에 앉을지니
혹 화두가 들지 않아도 스스로 들리고 의심하지 않아도 스스로 의심되며 가도 가는 줄을 모르고 앉아도 앉아 있는 줄을 알지 못하여 오직 참구하는 생각 뿐이어서
“공부가 외로히 훤출하고 또렷하게 밝게되면(孤孤逈逈 歷歷明明)” 이곳을 번뇌가 끊어진 곳이라 하며 또한 아(我)가 없어진 곳이라 하느니라.
비록 이 경지에 이르렀다 하더라도, 아직 구경에 이른 것은 아니니 다시 채찍을 더하여 “저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궁구하라.
이 경지에 이르러 화두를 드는데는 별다른 절차가 없느니라.
화두가 간단이 없어 오직 의정이 있을 뿐이나, 혹 화두를 잊거든 곧 들지니 그 중에 돌이켜 비추는 마음이 다하게 되면 이때를 「법(法)이 없어졌다」고 하는 것이라 비로소 무심처(無心處)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이곳을 구경처라 할 것인가?
고인이 이르시기를 ‘무심을 도라 이르지 마라. 무심이 오히려 한 중관(中關) 격(隔)하였네.’ 하였으니
여기서 다시 문득 소리나 빛을 만나 축착 합착하여 한바탕 크게 웃음치고 몸을 뒤쳐 돌아와야
비로소「회주소(懷州牛) 여물 먹고 익주말(益州馬) 배부르다」하게 되는 것이다." 61]
61]운서주굉, 앞의 책, p.283.
“萬法歸一 一歸何處 不得不看話頭 守空靜而坐 不得念話頭 無疑而坐
如有昏散 不用起念排遣 快便擧起話頭 抖擻身心 猛看精采
更不然 下地徑行 覺昏散去 再上蒲團
忽爾不擧自擧 不疑自疑 行不知行 坐不知坐 惟有參情
孤孤逈逈 歷歷明明 是名斷煩惱處 亦名我喪處
雖然如是 末爲究竟 再加鞭策 看箇一歸何處
到這裏 提撕話頭 無節次了也
惟有疑情 忘卽擧之 直至返照心盡 是名法亡 始到無心處
莫是究竟麽
古云 莫謂無心 云是道無心 猶隔一重關
忽然遇聲遇色 磕看撞著 大笑一聲 轉身過來
便好道 懷州牛吃禾 益州馬腹脹.”
위에서 보암단애는 화두하는 법에 대해 설하기를 고요함을 지켜서도 아니 되며, 의정이 없이 염화두(念話頭)를 하여도 아니 되며, 혼침이나 도거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화두에 의심을 더하여 “외로이 훤출하고 또렷하게 밝게 되는(孤孤逈逈 歷歷明明)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이 경지에도 안주하지 않고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저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를 간단없이 참구하여 무심처(無心處)에 이르러야 하며, 여기서(無心處) 한 발짝 더 향상일로(向上一路)로 나아가 뒤집어져야 옛집에 이른 소식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 진각혜심이 찬한『선문염송』의 408조에 만법귀일 공안이 소개된 뒤 종문에 널리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고려 말 태고선사가 초학자 시절(19세)에 만법귀일 화두를 참구하였다고 전하고 있다.62] 그리고 나옹선사도 대중들에게 무자화두, 본래면목 화두와 함께 만법귀일 화두를 참구할 것을 제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62]백련선서간행회 역,『太古錄』p.208.
"만일 그렇다면 반드시 대장부의 마음을 내고 기어코 하겠다는 뜻을 세워
평소에 깨치거나 알려고 한 일체의 불법과 사육체(四六體)의 문장과 언어삼매를 싹 쓸어 큰 바다 속에 던지고 다시는 들먹이지 말아라.
그리하여 8만 4천 가지 미세한 망념을 가지고 한번 앉으면 그대로 눌러앉고, 본래 참구하던 화두를 한 번 들면 늘 들되,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라든가, ‘어떤 것이 본래면목인가?’라든가, ‘어떤 것이 내 본성인가?’라든가 하라.
혹은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조주스님은, “없다[無]” 하였다. 그 스님이 “꼬물거리는 곤충까지도 다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고 하십니까?” 라고 한 화두를 들어라."63]
63]백련선서간행회 역,『나옹록』p.92.
“若如此則須發丈夫心 立決定志
將平生悟得底 解會得底 一切佛法 四六文章 語言三昧 一掃掃向大洋海裏去 更莫擧着
把八萬四千微細念頭 一坐坐斷 却將本參話頭 一提提起
或萬法歸一 一歸何處 或那箇是本來面目 或那箇是我性
或僧 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因甚狗子 無佛性 只將末後一句.”
이러한 만법귀일 화두의 전통이 조선시대를 거쳐 근세의 용성과 만공선사 시대까지 전승되어 그즈음에 더욱 참구하는 납자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용성은『수심정로』에서「모든 화두마다 본의심(本疑心)이 있으며 또한 병된 것을 가림」이라는 조(條)에서 만법귀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참구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만법귀일화두(萬法歸一話頭)하는 법은 만법이 하나로 돌아가나니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고? 하며 의심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만법귀일 화두는 조주선사의 제시로부터 종문에 면면히 이어져 온 중요한 본참화두로서, 현재 한국의 선문에서는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느냐?”라고 의심하는 전통적 의미의 화두와 “이 하나는 무엇인가?”라고 의심하는 만공선사에 의해 제기되어진 또 하나의 화두로 나뉘어져 참구되고 있다.
Ⅲ. 결론
조주무자, 이뭣고?, 본래면목, 만법귀일 화두는 현재 한국선문에서 가장 많이 참구되어지는 본참공안이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화두의 연원과 전개과정을 대강 살펴보았다. 그러나 간화선에 있어서 화두의 연원과 전개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옛조사의 깨달음의 기연이 모두 이러한 화두의 참구로부터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화두의 간택은 매우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간택한 그 화두가 실참수행자의 현성공안(現成公案)이 되어야 한다.
즉 종문의 전통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본참공안으로서의 가치보다 그 공안이 실참자 자신의 간절한 현실문제로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납자들이 참선수행을 몇 년 하다가 토로하는 문제가 화두에 간절하고 절박한 의정(疑情: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정전의 본참공안이라 하더라도 화두에 자신의 의심이 돈발되지 않는다면 이 화두는 죽은 화두(死句)가 되고 만다. 그래서 화두의 생명은 의단(疑團)에 있다고 하는 것이다.
참선은 언어문자나 알음알이로 헤아려서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진참실오(眞參實悟)해야만 한다. 간화행자는 실참을 통해 견성성불(見性成佛)을 지향하고 나아가 일체 유정(有情)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饒益衆生). 그렇게 함으로 해서 선종의 견성성불, 요익중생의 종지가 성취되어지는 것이다.
선원에서 용맹정진하는 신심납자는 자비심의 발현으로 좌복 밑에 중생의 고통과 회한과 은혜를 깔고, 역사와 사회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활발발한 선풍을 진작시키고자 향상일로(向上一路) 매진해야 한다. 오직 “생사에도 머물지 않고(無住生死),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無住涅槃)” 무주행(無住行)의 대승정신을 토대로 삼아 실참실오(實參實悟)하는 것이 간화행자(看話行者)의 본분(本分)에 충실하는 길이다.
무자화두가 되었든, 이뭣고? 화두가 되었든, 본래면목 화두가 되었든, 그 외에 어떤 화두를 참구하든 간에 화두에 의심을 돈발하여, 간절히 의심하고 의심이 사무쳐 불같은 의단(疑團)을 이루어 화두일념(一念話頭)이 되어야 한다. 또한 화두가 일념만년(一念萬年)이 되어 어느 때 시절인연(時節因緣)이 꽃피는 날을 당하여 일념(一念), 무념(無念)마저 뛰어 넘어 생사를 영단(永斷)하고 일체 중생을 이롭게 하는 것이 정안납자(正眼衲子)의 본분사(本分事)일 것이다. 이것이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눈이요, 요익중생(饒益衆生)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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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文抄录>
韩国看话禅与话头参究的继承
月巖 / 碧松禪院 禪主
该论文着重研究了使用频率最高的“赵州无字”、“是什么?”、“本来面目”以及“万法归一”等佛教话头的历史渊源和传承过程,以帮助看话行者通过确立公案的历史和参究法,坚定对修行与觉悟的信心与愿力,畅行实参实究,最终能够得到明心见性。
话头的历史渊源和传承过程之所以受到重视,是因为过去的祖师们都通过对话头的参究而得到觉悟。话头选择非常重要,而更为重要的就是所选的话头能否成为实参修行者的现成公案。
无论选择“赵州无字”、“是什么?”、“本来面目”,还是选择“万法归一”,这一问题没那么重要。至关重要的问题在于既是选了一个话头,那么就对自己所选的话头彻底进行疑惑,疑惑到底,疑惑终于变为疑团,成为“一念话头”。将话头作为“一念万年”,当遇到时节因缘盛开之时,超越“一念”或“无念”,永断生死,普渡众生,这就是正眼衲子的终生大事。这既是见性成佛,又是饶益众生之路。
* 主题语
话头的渊源,话头的参究法,是什么,本来面目,万法归一
보조사상 27집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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