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스님

[스크랩] 십바라밀(十波羅蜜)과 보살십지(菩薩十地)

수선님 2019. 1. 27. 11:32

가끔 그때그때 언급을 했습니다만 공부해가는 과정 즉, 위차(位次)를 가장 권위 있게 다룬 가르침이 보살십지(菩薩十地)입니다. 십지에 대해서는 연각십지나 또는 성문십지 등 여러가지가 있고, 다 소중한 것이지마는 가장 권위 있는 전거(典據)로 삼을 법문은 화엄경에 있는 보살십지입니다.

 

보살초지에 올라갈 때는 앞서 살펴본 사선근(四禪根四加行)을 이미 닦은 정도로서 설사, 난법(煖法) 4선근의 법상(法相)은 모른다 하더라도 선근이 쌓여서 마음의 번뇌가 사라져 가면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맑고 고요하게 되어야 하는데 더욱 정진하여 범부(凡夫)의 이생성(異生性)을 초월하고 불성(佛性)을 견성하는 보살초지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十波羅蜜菩薩十地

 

초환희지初 歡喜地; (보시)바라밀檀波羅蜜을 성취成就

2이구지二 離垢地; 계바라밀戒波羅蜜을 성취成就

3발광지三 發光地;인욕바라밀忍辱波羅蜜을 성취成就 

 

4염혜지四 焰慧地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을 성취成就

5난승지五 難勝地; 선정바라밀禪定波羅蜜을 성취成就

6현전지六 現前地; 혜바라밀慧波羅蜜을 성취成就 

 

7원행지七遠行地방편바라밀方便波羅蜜성취成就 

8부동지八 不動地; 원바라밀願波羅蜜을 성취成就    9선혜지九 善慧地; 력바라밀力波羅蜜성취成就   10법운지十 法雲地; 지바라밀智波羅蜜을 성취成就

4(方便 願 力 智)바라밀波羅蜜;6第六 혜바라밀慧波羅蜜 세분하여 10十地에 배대配對

 

처음에는 보살이 이미 탐심(貪心)3분의 2를 제하고 견혹(見感)을 파할새, 견혹은 견해에 따른 번뇌요, 견도후(見道後)에 닦는 번뇌 습기(習氣)는 수혹(修惑) 또는 사혹(思惑)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견도전(見道前)의 범부지에서는 수행(修行)이라 하고 견도 후에 비로소 참다운 수도(修道)가 되는 것입니다.

 

비로소 성인(聖人)의 성품을 얻어서, 진여불성을 현관(現觀)하여 즉, 불성과 계합하여 아() ()이 공()한 도리를 증명하고, 내가 있다는 실아(實我)와 또는 법이 있다는 실법(實法) , 금이요 다이아몬드요 또는 나요 너요 이런 것은 본래 실제에서 있지가 않다는 실법이 공한 도리를 증명한다는 말입니다.

 

대환희를 생()하니 환희지(歡喜地), 우리가 근본 성품을 깨닫고 우주와 하나로 되어버리면 한량없는 기쁨을 느끼게 되어 환희용약하니 환희지입니다.

 

동시에 일체를 구호하여, 본래 천지 우주와 하나가 되어버렸으니 나무도 내 몸이요 자기 원수도 내 몸이요 모두가 하나가 되어 자비심이 저절로 나오는 이른바 동체대비(同體大悲)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주상(無住相)의 보시를 행하고, 자타가 없거니 상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것에 근거해서 열반안(涅槃岸)에 이를새, 해탈의 언덕에 이른다는 뜻으로서 모든 번뇌와 일체 만사에 걸리지 않는 깨달음의 경계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바라밀을, 보시바라밀을 바로 성취한다. 그전에는 보시하기 싫어도 체면 때문에 주기도 하고 위선을 여읠 수가 없었으나 나와 남이 본래 둘이 아니니 상()이 없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를 행한다는 것입니다.

 

2에는 나머지 일분의 탐심을 제()함에 따라, 보살 초지에서는 3분의 2를 제거했지요. 따라서 보살 초지에서 견성오도를 했다하더라도 어떤 경계에 부딪치면 번뇌를 일으킬 때도있으나 파계(破戒)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2(二地)에서는 나머지 3분의 1의 탐심의 뿌리까지를 뽑는 것입니다. 저번에 소승4과 중 수다원(須陀洹豫流果)과 다음의 사다함(斯陀含)과까지도 탐심을 다 끊어버리지 못하고 약간 남아있기 때문에 일래과(一來果), 욕계에 한번 와서 공부해 가지고 성취한다고 하였습니다.

 

일찍이 견혹(見惑)에 근거했던 사혹(思惑修惑)을 제()하는 동시에, 사혹 즉 수혹이 분별에 근거해 있던 것이므로 이치만 통해버리면 과거 습기는 남아있을 망정 다시 새삼스럽게 번뇌를 일으킬 필요는 없겠지요. ()바라밀을 성취할새, 이미 범한 허물이라도 여읜 몸으로 하여금 사념(思念)이 청정하니 이구지(離垢地), 파계한 허물은 보살2지가 되어야 비로소 가시게 됩니다. 사혹을 제()하여 우리 생각에 있는 습기까지도 어느 정도 끊어버려야 과거에 지었던 파계의 허물, 이미 지었던 번뇌의 때를 벗어나는 경계라는 말입니다.

 

3에는 진심(嗔心)을 억제하고, 진심이 뿌리가 더 깊습니다. 탐심을 다 끊어버렸다 하더라도 물론 미세한 것이지만 진심의 습기는 아직 남아있는 것입니다. 인욕(忍辱)바라밀을 성취하여서 체찰법인(諦察法忍)을 얻으니, 모든 것을 뚜렷이 본래대로 여법히 통찰할 수 있는 것을 얻어서 지혜가 현발(顯發)할새 발광지(發光地), 우리가 천안통같은 신통을 하려면 적어도 발광지까지 정진해야 마음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선 수자가 되면 한사코 발광지까지는 밀어 부쳐야겠지요. 우리 자성이 본래 광명인데 본전은 좀 찾아야만 합니다.

 

4에는 정진(精進)바라밀을 성취하니 혜성(慧性)으로 하여금 치성케 할새 염혜지(焰慧地), 더욱더 지혜가 현발한다는 말입니다.

 

5에는 진심(嗔心)의 근본이 제거되는 동시에, 품위가 있고 자비심이 좀 있다 하여도 기분이 사나울 때는 찌푸리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참선을 오래 했다는 수행자도 기분이 언짢으면 불현듯 진심(嗔心)이 나오는 것인데, 진심의 근본이 제거되어야 선정(禪定) 바라밀을 성취하는 것이며, 진정한 선정이 된다면 마땅히 진심으로 동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5지에서 비로소 선정 바라밀을, 참다운 깊은 선정을 성취한다는 말입니다. 리사(理事)를 계합(契合)하여서, 원리나 현상이나 상대나 절대나 모든 상대관념을 다 비워버리고걸림없는 하나로 된다는 말입니다. 앞에는 약간 어렴풋이 계합하였지만 이제는 온전히 계합이 되어서 진속이지(眞俗二智)의 상응(相應)을 성공함에 따라 진사혹(塵沙惑), 항하사같은 번뇌를 다 제거하게 되니 지극히 극복하기 어려운 극난승지(極難勝地)를 성취하게 됩니다.

 

6에는 하등의, 이렇다 저렇다 할 탐심 진심이 이미 끊어짐에 따라 혜()바라밀을 성취하니 최승지(最勝智)를 발하여 염정(染淨), 염오되고 또는 청정함이 없는 일진법계(一眞法界)의 행상(行相)이 현전(現前)할새 현전지(現前地), 6지에 이르러야 삼천대천 세계를 앉아서 훤히 볼 수 있는 경계가 됩니다. 마치 손바닥에다 암마라(Amra과일 이름)과를 하나 놓고 보는 것과 같이 삼천 세계를 확연히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현전하므로 모든 현상을 다 통달하는 경지라는 말입니다.

 

7은 탐진이 이미 끊어짐에 따라 남아있던 일분의 치심이 제거되니, 물론 미세한 무명심은 아직도 남아 있겠습니다 마는 대비심(大悲心)을 발하여 방편(方便)바라밀을 성취하고,부처님께서 경을 설하실 때 그 심심미묘한 방편을 보십시오. 진정한 방편 지혜는 모든 탐진치 삼독심이 끊어져야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승(二乘)의 자도(自度)를 원리(遠離)할새, 성문이나 연각의 자기 스스로만을 제도하는 그런 옹졸한 경계를 떠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원행지(遠行地).

 

8지에는 이미 이승(二乘) 곧 성문(聲聞)연각(緣覺)을 멀리 여의고 보살의 대원을 발한지라 차지(此地)에서 원()바라밀을 성취하고 무상관(無相觀)을 작()하여 임운무공용(任運無功用)을 상속할 뿐이니 부동지(不動地), 그때는 아무런 것도 자기가 지어서 할 필요가 없이 신통도 마음대로 하고 모두가 다 마음먹는 대로 되어버린다는 말입니다.

 

9에는 역()바라밀을 성취하고 십력(十力)을 구족하여서 일체처에서 가도(可度)와 불가도(不可度)를 다 알아서 능히 설법할새 선혜지(善慧地).

 

10에는 장도(障道)무명의, 자성(自性)을 가리운 근본 무명의 근본을 다 끊어버리고서 수용법락지(受用法樂智) , 모든 영원한 안락, 극락세계를 다 수용할 지혜와 성숙유정지(成熟有情智) 곧 모든 유정을 성숙시키는 지혜로써 지()바라밀을 성취할새 무변(無邊)의 공덕을 갖추어서 무변의 공덕수를 출생하니 대운(大雲)이 청정한 진여불성의 물을 생()함과 같을새 법운지(法雲地), 후의 4바라밀이란 제6을 개()하여서, 곧 제6반야바라밀을 부연하여 십지(十地)에 배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수행 정진할 때는 여러 가지 경전이나 조사(祖師) 스님 어록도 많이 있는데 특히 화엄경 10지 법문을 소홀히 하면 공부 경계를 자기 나름대로 그릇 해석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공부하는 과정이나 차서를 참고할 때는 꼭 화엄경 같은 권위 있는 가르침으로 점검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출처: 금강(金鋼) 불교입문에서 성불까지 (http://cafe.daum.net/vajra) 

출처 : 진여불성
글쓴이 : 일심광명화신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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