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이 정립될 당시 중국의 사회역사적 현실은 커다란 위기 상황이었다. 송나라가 금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사회가 어지럽고 경제가 어려워져 백성들이 혼돈과 절망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대혜 종고 선사는 간화선을 체계화하여 출가자와 재가자들에게 일상생활을 하면서 화두를 참구하는 법을 가르쳤다. 선사는 도탄에 빠진 백성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무너져 가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지혜를 밝히기 위하여 자유자재하고 활발발한 선을 널리 전파하였던 것이다.
간화선은 조사선의 전통을 계승하여 선을 대중화하고 사회화하면서 정립된 생활 수행법이다. 대혜 선사의 『서장書狀』을 보면 대혜 선사와 선禪 수행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많은 재가 수행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개 당시 나라살림을 맡고 있던 지금으로 보면 국무총리나 장, 차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많았다. 대혜 선사는 전쟁에 패하여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선을 가르쳐 아집과 양변을 여의고 바른 가치관으로 국정을 이끌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국가 지도자들이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주객을 뛰어 넘은 동체대비심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보살피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간화선이 정립되던 당시 중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지난 시대에 비해 물질생활 수준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문화의 성숙도와 교양의 깊이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아직도 남북 분단의 비통한 역사 현실과 동서, 노사, 진보와 보수 등등으로 대립하는 사회 흐름은 우리의 삶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서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이 멈출 날이 없는 것이 인류 문명이 도달한 현주소이다.
다행히 근래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선남선녀들이 정신문화의 향상을 위하여 수행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밝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유럽 등 서양에서도 물질 지향적 가치관을 반성하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행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모습은 인류 문명이 앞으로 어떤 가치관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좋은 소식이다. 욕심과 경쟁을 앞세운 과학 기술과 물질 문명의 흐름은 이제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과 문화로는 쉼없이 닥쳐오는 스트레스, 화, 그리고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그동안 발전을 구가해온 과학기술과 물질적 풍요는 마음과 인류 평화에 기여하기 보다는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오래 살려고, 좀 더 편해지려고 얼마나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시비분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선禪을 이 땅은 물론 전 인류에 널리 알려 생활을 바르게 하고 마음의 평안을 이루어 보다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인연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한국 불교는 일본이나 티벳, 또는 동남아 불교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선禪이 있다. 한국 불교에는 선이 정착하여 면면히 계승 발전하여 왔다. 그래서 다른 어느 나라 불교보다 법을 깊이 본다. 선종, 즉 조사선ㆍ간화선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온 곳이 한국이다. 우리는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정도로 선사상과 실참 실수의 면에서 대단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수행자들의 삶과 수행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법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에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교법과 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한 이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선 수행자와 종단 사부대중의 겸허한 반성과 뼈를 깎는 정진이 필요하다. 이 점을 개선한다면 한국 선禪은 우리 국민과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에 여러 나라가 있고 다양한 종교가 있어 왔지만, 이념과 종교, 인종 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러나 불교는 전쟁과 극한 대립을 일으킨 역사가 없었다. 불교의 선을 제대로 알면 서로 평등하게 보아 대립과 갈등을 하지 않으며, 무한 경쟁시대에 무한 향상으로 이러한 문제를 능히 해소할 수가 있다.
선禪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화급을 다툴 정도로 간절하고 시급하다. 삶을 떠받치고 있던 모든 가치 토대가 허물어지고 개인주의와 욕망으로 대변되는 척박하고 황폐한 우리 시대의 정신문화는 이제 우리에게 어떤 현실적 위안도 장미빛 미래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오직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일거에 뛰어 넘어 각자 자기 직분에서 무한 향상하여 서로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중도연기와 선禪 체험이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하겠다.
이제 인류의 제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한 출·재가 수행자들은 개인과 시대를 아우르는 크나큰 발심을 일으켜 치열한 선禪 수행의 길을 가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먼저 출·재가 수행자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생활의 모범을 세우면서 이 땅에 선禪의 가치를 널리 알려 선禪 사상과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禪의 자유자재하고 활발발한 기상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전파되어 각자의 마음이 평화롭고 지혜롭고 자유로워지는데 기여해야 하겠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모양도 자취도 없지만,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이 마음을 바로 보자.
자기 자신을 바로 보자.
우리는 본래 부처다.
흰 구름 담담히 떠가고 白雲淡?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도다. 水注滄溟
만법은 본래 한가하건만 萬法本閑
사람 스스로 시끄럽구나. 而人自鬧
간화선은 조사선의 전통을 계승하여 선을 대중화하고 사회화하면서 정립된 생활 수행법이다. 대혜 선사의 『서장書狀』을 보면 대혜 선사와 선禪 수행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은 많은 재가 수행자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대개 당시 나라살림을 맡고 있던 지금으로 보면 국무총리나 장, 차관 같은 고위 공직자들이 많았다. 대혜 선사는 전쟁에 패하여 실의에 빠진 이들에게 선을 가르쳐 아집과 양변을 여의고 바른 가치관으로 국정을 이끌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하였다. 그리하여 국가 지도자들이 깨어 있는 마음으로 나라를 바로 세우고 주객을 뛰어 넘은 동체대비심으로 백성들의 어려운 삶을 보살피도록 하였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간화선이 정립되던 당시 중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지난 시대에 비해 물질생활 수준은 나아졌다고 하지만, 정신문화의 성숙도와 교양의 깊이는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또한 아직도 남북 분단의 비통한 역사 현실과 동서, 노사, 진보와 보수 등등으로 대립하는 사회 흐름은 우리의 삶을 더욱 힘겹게 하고 있다. 더 나아가 지구촌 곳곳에서 대립과 갈등, 그리고 전쟁이 멈출 날이 없는 것이 인류 문명이 도달한 현주소이다.
다행히 근래에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은 선남선녀들이 정신문화의 향상을 위하여 수행에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만난 것처럼 밝고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유럽 등 서양에서도 물질 지향적 가치관을 반성하고 마음의 평화를 위해 수행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모습은 인류 문명이 앞으로 어떤 가치관에 근거해야 하는지를 암시하는 좋은 소식이다. 욕심과 경쟁을 앞세운 과학 기술과 물질 문명의 흐름은 이제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이러한 가치관과 문화로는 쉼없이 닥쳐오는 스트레스, 화, 그리고 대립과 갈등을 피할 수가 없다.
그동안 발전을 구가해온 과학기술과 물질적 풍요는 마음과 인류 평화에 기여하기 보다는 또 다른 대립과 갈등을 낳고 있다. 더 많이 가지려고, 더 오래 살려고, 좀 더 편해지려고 얼마나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시비분별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러한 까닭에 우리는 부처님의 가르침, 그 중에서도 선禪을 이 땅은 물론 전 인류에 널리 알려 생활을 바르게 하고 마음의 평안을 이루어 보다 인간답게 살아 갈 수 있는 인연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한국 불교는 일본이나 티벳, 또는 동남아 불교와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로 선禪이 있다. 한국 불교에는 선이 정착하여 면면히 계승 발전하여 왔다. 그래서 다른 어느 나라 불교보다 법을 깊이 본다. 선종, 즉 조사선ㆍ간화선의 전통을 가장 잘 지켜온 곳이 한국이다. 우리는 당당하게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정도로 선사상과 실참 실수의 면에서 대단한 가치를 간직하고 있다.
하나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 수행자들의 삶과 수행이 일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법을 중심으로 일상생활에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부처님의 교법과 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또한 이를 생활화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선 수행자와 종단 사부대중의 겸허한 반성과 뼈를 깎는 정진이 필요하다. 이 점을 개선한다면 한국 선禪은 우리 국민과 인류에 많은 기여를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세계에 여러 나라가 있고 다양한 종교가 있어 왔지만, 이념과 종교, 인종 간의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는커녕 더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 아닌가? 그러나 불교는 전쟁과 극한 대립을 일으킨 역사가 없었다. 불교의 선을 제대로 알면 서로 평등하게 보아 대립과 갈등을 하지 않으며, 무한 경쟁시대에 무한 향상으로 이러한 문제를 능히 해소할 수가 있다.
선禪의 가치를 세상에 널리 알리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중요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화급을 다툴 정도로 간절하고 시급하다. 삶을 떠받치고 있던 모든 가치 토대가 허물어지고 개인주의와 욕망으로 대변되는 척박하고 황폐한 우리 시대의 정신문화는 이제 우리에게 어떤 현실적 위안도 장미빛 미래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오직 인류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를 일거에 뛰어 넘어 각자 자기 직분에서 무한 향상하여 서로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중도연기와 선禪 체험이 인류 문명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어야 하겠다.
이제 인류의 제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한 출·재가 수행자들은 개인과 시대를 아우르는 크나큰 발심을 일으켜 치열한 선禪 수행의 길을 가야 할 때이다. 무엇보다 먼저 출·재가 수행자들이 참선 수행을 통해 생활의 모범을 세우면서 이 땅에 선禪의 가치를 널리 알려 선禪 사상과 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워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선禪의 자유자재하고 활발발한 기상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전파되어 각자의 마음이 평화롭고 지혜롭고 자유로워지는데 기여해야 하겠다.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자리에서 모양도 자취도 없지만, 활발하게 살아 움직이는 이 마음을 바로 보자.
자기 자신을 바로 보자.
우리는 본래 부처다.
흰 구름 담담히 떠가고 白雲淡?
물은 푸른 바다로 흐르도다. 水注滄溟
만법은 본래 한가하건만 萬法本閑
사람 스스로 시끄럽구나. 而人自鬧
출처 : 通達無我法者
글쓴이 : CD굽던노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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