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반야심경

[스크랩]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수선님 2019. 2. 10. 12:26

 

25

"須菩提於意云何汝等勿謂如來作是念我當度衆生須菩提莫作是念何以故實無有衆生如來度者若有衆生如來度者如來則有我人衆生壽者須菩提如來說有我者則非有我而凡夫之人以爲有我須菩提凡夫者如來說則非凡夫"

 

 

化無所化分 第二十五
須菩提야 於意云何오 汝等은 勿謂如來作是念호대 我當度衆生이라하라

須菩提야 莫作是念이니

何以故오 實無有衆生如來度者니 若有衆生如來度者면 如來가 卽有我人衆生壽者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說有我者는 卽非有我어늘 而凡夫之人이 以爲有我일새

須菩提야 凡夫者는 如來가 說卽非凡夫가 (是名凡夫니라)

 

 

 

 

금강경 강의(25)/해안 스님




 경문.第二十五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

 

 

須菩提  於意云何  汝等  勿謂  如來作是念  我當度衆生 須菩提  莫作是念 

何以故  實無有衆生  如來度者  若有衆生  如來度者  如來  則有我人衆生壽者

須菩提  如來說  有我者  則非有我  而凡夫之人  以爲有我

須菩提  凡夫者  如來  說則非凡夫



須菩提 야 於意云何 오 汝等 은 勿謂
수보라 야 어의운하 오 여등 은 물위

如來作是念 하되 我當度 衆生 이라하라 須菩提 야
여래작시념 하되 아당도 중생 이라하라 수보리 야

莫作是念 이니 何以故 오 實無有衆生 하여
막작시념 이니 하이고 오 실무유중생 하여

如來度者 니 若有衆生 하여 如來度者 인덴
여래도자 니 약유중생 하여 여래도자

如來 則有我人衆生壽者 니라 須 菩提 야
여래 즉유아인중생수자 니라 수보리

如來說 有我者 는 卽非有我 어늘 而凡夫之人 이
여래설 유아자 는 즉비유아 어늘 이범부지인

以爲 有我 니 須菩提 야 凡夫者 는
이위 유아 니 수보리 야 범부자

如來 說卽非凡夫 가 是名凡夫 니라
여래 설즉비범부 가 시명범부 

주석.

수보리야 네뜻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여래가 이런생각을 갖는다고 이르지 말라.
(내가마땅히 중생제도한다)고
수보리야. 이런생각을 가지지 말라함은,
어찌한 소이이냐,실로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음이니,
만약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있다하면,
여래가 곧 아,인중생,수자상 이 있음이니라,
수보리야 여래의 말에 내 라고 있는것은,
곧 내가 있음이 아니어늘,
범부들이 내가있음을 삼느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여래의 말씀에는 곧 범부가 아니고 이 이름이 범부 이니라.


 
해설.

이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을 주하고,
마음을 항복받기 위하여 사상을 여의도록 하신 법문 이시니,
우리 본 마음인 보리 가 본래 상이 없기 때문에
본마음에 돌아 가도록 하신것이 부처님의 뜻이 어늘,
범부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나를 말하면 아상에 걸리고
중생이라고 말하면 중생에 걸리고
범부라고 말하면 범부에 걸리나니
여래의 말씀이신 나나,중생이나,범부는 이름만
다른 한 사람임을 알면 명상에 속지않을 것이며,
상을 여윈자라 할것이다.

 

 

..

 

『수보리야, 네 생각에는 어떠하느냐? 너희들은 여래가 "내가 중생을 제도하리라"고
생각한다고 여기지 말라. 수보리야, 그런 생각을 하지 말 것이니,
무슨 까닭이겠는가하면, 진실로는 어떤 중생도 여래가
제도할 중생이 없느니라.
만일 여래가 '제도할 어떤 중생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여래가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있다는 것 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기를 「아상이 있다.」한 것은 곧 아상이 있는 것이
아니거늘,
범부(凡夫)들은 아상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니라.
수보리야, 범부라는 것도 여래는 말씀하시기를 범부가 곧 범부가 아니며,
다만 범부라 부르는 것이니라.』



실은 여래가 제도할 중생은 없다(實無有衆生 如來度者) :


'중생을 제도하였으되, 제도한 바가 없다' 라는 말씀은,

㉠ 제3 대승정종분(大乘正宗扮)과 ㉡ 제17 구경무아분(究竟無我分), 이곳 ㉢ 화무소화분(化無所化分)에서

모두 세 차례 나온다.


첫번째 것내가 중생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여의라는 뜻 이요,
두번째 것중생을 제도한 이가 바로 나가 아닌가 라는 의문에 대한 것이요,
세번째 것참 법계는 평등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이 맞지 않겠구나 하는 것에 대한 내용이다.



범부(凡夫) :
원어는 발라 프리타크 쟈나(bala-prithag-janah). 직역하면 '따로 따로 태어나서 사는 사람' 이라는 뜻이라

한다.
범부란 어리석고 슬기가 모자라는
중생을 말하는 것으로 성자의 반대말이다.
이 말은
우자(愚者)로도 번역된다. 불교에서 번뇌에 얽매어 생사를 초월하지 못 한채 미계를 헤매고 있는 어리석은 일반 사람들을 이름하는 것이다. 즉 부처의 이치를 올바르게 깨닫지 못한 자를 뜻 하며,

그 깨우친 정도에 따라서 저하(底下) · 범외(凡外) · 범내(凡內)의 세 단계로 나눈다.


이 분절에서 말하는 범부에 대해 육조(六祖)대사의 해석을 빌면,


'나'와 남(他)이 있으면 곧 범부이고,

나(我)나 '남'이라는 생각을 내지 않으면 범부가 아니며,

마음에 생과 멸이 있으면 범부이고 마음에 생과 멸이 없으면 범부가 아니며,

반야바라밀을 깨닫지 못했으면 범부이고 반야바라밀을 깨달았으면 범부가 아니며,

마음에 주관 · 객관이 있으면 범부이고 주관과 객관을 갖지 않고 있으면 범부가 아니다.'



③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의 네개를 아인사상(我人四相) 또는 사상(四相)이라

하는데, 이것은 중생들이 범하기 쉬운 집착상을 경계하는 말이다.
아상(我相)은 '나'라는 相에 집착하는 것을 말하는데
오온(五蘊)이 가합하여 이루어진 가변의 존재인 자기

자신을 마치 무슨 실재가 있고 또 "내가 있다"고 그릇되게 생각하는 견해이다,
인상
(人相)은 아상처럼 집착하는 모습의 하나인데, '남'을 의식하는 데에서 오는 행동과 생각을 말한다.
중생상
(衆生相)은 괴로운 것을 싫어하고 즐거운 것을 탐내는 등 현실주의적인 행동이나 상념의 집착을 규정하는 말이며,
수자상(壽者相)은 인간은 선천적으로 길든 짧든간에 일정한 수명을 하늘에서 받아 그 수명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의 집착을 말한다.

 

 

 

 

【언해본】

“須菩提야! 네) 뜻(生覺)에 어떠냐?
너희들은 如來가 이(다음과 같은) 生覺을 하되, ‘내가 衆生을 마땅히 濟度?解脫(解脫)하(였)노라.??한다고 여기지 말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아라.
어째선가? 實로 衆生이 如來(에게) 度脫한 이가 없으니 만약 衆生이 如來에게 度脫한 이가 있다고 하면 (이것은) 如來가 곧 我·人· 衆生·壽者(相)을 둔 것 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말씀한 ??내??가 있음이 아니거늘, 凡夫의 사람들은 ??내??가 있는 것으로 삼으니,
須菩提야! 凡夫는 如來가 이르는 것이 곧 凡夫가 아니라, (다만) 이 이름을 凡夫인 것이다.”

 

度脫 중생()을 제도()하여 번뇌()ㆍ미망()에서 벗어나 오도()의 경지()에 이르게 함

제도해탈()

 

【범어본】

須菩提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나는 衆生을 解脫시켰다라는 그러한 生覺이 如來에게 일어나겠는가?
그러나 須菩提여, 實로 이와 같이 보아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如來가 解脫시켰다고 하는 그러한 衆生은 없기 때문이다.
須菩提여, 만일 如來가 解脫시켰다라는 그러한 衆生이 있다면 如來에게는 我執이 있는 것이 될 것이다.

衆生執(살아 있는 것에 대한), 壽者執(個體에 대한), 人執(個人에 대한)이 있는 것이 될 것이다.
須菩提여, 아집이라는 것은, 즉 執이 아니다라고 如來는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저 充分히 成熟하지 못한 一般사람에 의해서 執着되고 있는 것이다.
須菩提여, 充分히 成熟하지 못한 一般사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如來가 말씀하셨기 때문에 充分히 成熟하지 못한 一般사람에 의해서 執着되고 있는 것이다.
須菩提여, 充分히 成熟하지 못한 一般사람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如來가 말씀하셨기 때문에 充分히 成熟하지 못한 一般사람들이라고 말해지는 것이다.

 

【몽고본】

수부티여, 어떻게 生覺하는가? 如來는 이와 같이 “나는 一切의 有情을 度脫시킬 것이다”라고 思惟할 것이라고 生覺한다면 수부티여, 그것은 그와 같이 生覺하지 말지어다. 그것은 왜냐하면 如來가 度脫하신 有情은 하나도없기 때문이니라.
수부티여, 만약 如來가 어떤 有情을 도탈시켰다면 그 如來는 實로 自我에 執着한 것이다.

有情에 執着하고 壽命에 執着하고 人間에 執着한 것이다.
수부티여, 我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相이 아니라고 如來는 說하셨다. 그러나 모든異生(凡夫)은 執着하는 것이다.
수부티여, 모든 異生이라고 하는 그들은 곧 實在하는 有情이 아니라고 如來는 說하신다. 그러므로 異生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티베트본】

“쑤부띠여, 이것은 어떻게 生覺하느냐? 如來는 이처럼 ‘나는 뭇 삶을 제도했다고 生覺한다고 여긴다면,

쑤부띠여, 그렇게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이야?

쑤부띠여, 如來가 제도한 어떠한 뭇 삶도 없기 때문이다. 쑤부띠여, 만약 如來가 어떤 한 뭇 삶이라도 제도했다면 이것은 如來의 자아에의 執着이며, 뭇 삶에의 執着이며, 개인에의 執着이며, 영혼에의 執着이 될 것이다. 쑤부띠여, 自我에의 執着이라고 하는 것은 執着이 아니라고 如來가 말했다. 그것을 그런데 어리석은 일반사람들이 執着하고 있다. 쑤부띠여, 어리석은 일반사람들은 사람들이 아니라고 如來는 말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一般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다.”

 

 


【용성】

須菩提야 저 뜻에 어떻다 하느냐. 너희 등이 如來께서 이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고 이르지 말라. 이 生覺을 하지 말지니 어찌한 緣故인가하면 實로 衆生이있고 없음이 如來가 濟度한 자이니라.

만일 衆生이 있어 如來가 濟度한 자라 할진데 如來가 곧 아. 인 衆生. 壽者가 있음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我가 있음을 말하는 자가 곧 我가 있음이 아니언마는 어리석은 사람이 이 我가 있다고 하나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자는 如來가 凡夫를 말씀하심이 아니라 이 이름이 凡夫이니라.

 


【운허】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너희들은 如來가??衆生을 濟度하리라??고 生覺한다고 말하지 말라.
須菩提야, 그런 生覺을 두지 말지니, 왜냐하면, 眞實로 어떤 衆生이나 如來가 濟度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如來가 衆生을 濟度할 것이 있다면 이는 如來가 내라, 사람이라, 衆生이라, 오래 산다는 固執이 있음이 되느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말하되 내라는 固執이 있다는 것은 내라는 固執이 있는 것이 아니거늘 凡夫들은 내라는 것이 있다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는 말하기를, 凡夫가 아닐 새 凡夫라고 이름하느니라.”

 


【신소천】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냐? 너희들이 如來가 이러한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고 이르지 마라.
須菩提야! 이러한 生覺을 짓지 말지니라.
어찌한 緣故이냐? 實相은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없었더니라. 만약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다 하면 如來는 곧 我·人·衆生·壽者가 있는 자이다.
須菩提야! 如來가 我가 있음을 말함은 곧 我가 있음이 아니건만 凡夫의 사람들이 써하되 我가 있다 하나니라.
須菩提야! 凡夫라 함도 곧 凡夫 아님을 如來가 說함이니, 이 이름이 凡夫이다.

 


【권상로】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뇨 너희들은 如來가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일체衆生을 濟度하리라 한다고 이르지 말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내지 말지니 어쩐 緣故냐 하면 實로 衆生을 如來가 濟度할 자가 없나니라 만일 衆生을 如來가 濟度할 자 있다면 如來도 곧 아 인 衆生 수자가 있나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말씀한 我가 있다는 것은 곧 我가 아니함 이언마는 凡夫 사람들은 써 我가 있다고 하나니라
須菩提야 凡夫란 자는 如來가 말씀하시되 곧 凡夫가 아니므로 이를 凡夫라고 이름하나니라

 


【명봉】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너희들이 如來께서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하리라한다 이르지 말아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지니 어쩜인고 實로 衆生이 如來가 濟度할 자가 없나니 만약 衆生을 如來가 濟度할 자 있으면 如來가 곧 我·人·衆生·壽者가 있음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께서 ‘아??가 있다 說 한자는 곧 ??아??가 있지 않음이거늘 凡夫 사람이 써 ??아??가 있다고 하며,
須菩提야! 凡夫도 如來께서 곧 凡夫 아닌 것을 이 이름 凡夫라 說하시나니라.

 


【기산】

須菩提야! 내 뜻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如來가 生覺을 하시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하노라 한다고 하지 말라 아예 이런 生覺을 하지 말라 왜냐 하면 如來가 實로 衆生을 濟度한 것이 없나니 만일 如來가 衆生을 濟度한다는 生覺이 있으면 如來도 곧 我·人·衆生·壽者가 있기 때문이다.
須菩提야! 如來가 我가 있다고 說한 것은 곧 我가 있는 게 아니거늘 凡夫들이 我가 있다고 한 것이다.
須菩提야! 凡夫라 한 것은 如來가 곧 凡夫가 아니라 이것을 凡夫라 이름한다고 說한 것이다.

 


【해안】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如來가 이런 生覺을 갖는다고 이르지 마라.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고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가지지 말라 함은 어찌한 所以이냐? 實로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없음이니 만약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다 하면 如來는 곧 我·人·衆生·壽者가 있음이니라.
須菩提야! 如來의 말에 내라고 있는 것은 곧 내가 있음이 아니어늘 凡夫들이 내가 있음을 삼느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의 말씀에는 곧 凡夫가 아니고 이 이름이 凡夫이니라.

 


【청담】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너희들은 如來가 生覺하기를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하리라.??한다고 말하지 말라.
須菩提야! 그런 生覺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實로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없기 때문이니라.
만일 衆生이 있어서 如來가 濟度하였다면 如來는 곧 나라는 生覺, 이라는 生覺, 衆生이라는 生覺, 오래 산다는 生覺이 있는 것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나라는 生覺이 있다 함은 곧 나라는 生覺이 있는 것이 아닌데 凡夫들이 나라는 生覺이 있다고 함이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는 곧 凡夫가 아니라고 말하나니 이름을 凡夫라 하느니라.”

 


【탄허】

須菩提야! 뜻에 어떠한고. 너희 등은 如來가 이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 말하지 말라
須菩提야! 이 生覺을 짖지 말지니 어찌 쓴 緣故뇨. 實로 衆生을 如來가 濟度한 것이 없나니 만일 衆生을 如來가 濟度함이 있다면 如來가 곧 我·人·衆生·壽者가 있는 것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說하되 我가 있다는 것은 곧 我가 있음이 아니어늘 凡夫의 人이 써 我가 있음을 삼음 일새니 須菩提야! 凡夫란 것은 如來가 說하되, 곧 凡夫가 아닐 새 이 凡夫라 名함이니라.

 


【광덕】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너희들은 如來가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한다고 이르지 마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하지 말지니라. 어찌한 까닭이랴? 實로는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없나니 만약 衆生이 있어 如來가 濟度할진댄 如來는 곧 아와 인과 衆生과 壽者가 있음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我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我가 있음이 아니거늘 凡夫인 사람들이 이를 我가 있다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는 곧 凡夫가 아님을 말하는 것이니 그 이름이 凡夫니라.


【월운】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如來가 ??衆生을 濟度하리라??고 生覺한다고 여기지 말라.
須菩提야, 그런 生覺을 하지 말지니, 무슨 까닭이겠는가? 眞實로 어떤 衆生도 如來가 濟度할 것이 없느니라. 만일 어떤 衆生을 如來가 濟度할 것이 있다면 이는 如來가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있다는 것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말하기를 ‘我相이 있다.??한 것은 곧 我相이 아니거늘 凡夫들은 我相이 있다고 여기느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는 말하기를, ‘凡夫가 아니라?? 하느니라.??

 


【무비】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너희들은 如來가 이런 生覺을 하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고 여기지 말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하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實로는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없음이니, 만약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다면 如來는 곧 아와 인과 衆生과 壽者가 있음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說하되, 我가 있다는 것은 곧 我가 있음이 아니거늘 凡夫들이 이를 我가 있다고 여기느니라.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가 說하되 곧 凡夫가 아니고 그 이름이 凡夫니라.”

 


【석진오】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그대들은 如來가,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하리라”라는 生覺을 낸다고 말하지 말라.
須菩提여, 그런 生覺을 하지 말라.
왜냐하면 實로 衆生으로서 如來가 濟度해야 할 衆生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衆生으로서 如來가 濟度해야할 衆生이 있다면, 如來에게는 즉 我·人·衆生·壽者가 있는 것이다.
須菩提여, 如來는, “自我가 있다는 것은, 곧 自我가 있음이 아니다”라고 說한다. 그런데도 보통 사람들은 自我가 있다고 生覺한다.
須菩提여, 如來가 보통 사람이라는 것은 곧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홍정식】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如來가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해야 한다는 生覺을 한다고 말하지 말아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도 갖지 말아라. 어째서인가. 實相 如來가 濟度할 衆生은 없는 것이다. 만일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다고 하면, 如來가 곧 나와 개아와 衆生과 壽者의 상을 가진 것이 된다. 須菩提야, 如來의 말씀에 내가 있다고 하신 것은 내가 있다는 것이 아닌데도 凡夫들이 내가 있다는 것으로 生覺하고 있다.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도 如來는 凡夫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김기추】

“須菩提야! 뜻에 어떠하느냐. 너희들은 如來가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고 이르지마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지니 무슨 까닭으로써이냐. 實로 如來가 濟度한 衆生이 없음이니, 만약 如來가 濟度한 衆生이 있다면 如來는 곧 我·人·衆生·壽者가 있는 자이리라.
須菩提야! 如來로서 我가 있음을 말함은 곧 我가 있음이 아니언마는 凡夫인 사람들이 我가 있다고 하느니.
須菩提야! 凡夫라 함은 如來가 말한 곧 凡夫가 아니요, 이 이름이 凡夫니라.”

 


【이기영】

“須菩提여, 네 生覺이 어떠하냐? 너희들은 如來께서 ‘내가 마땅히 衆生을 건지리라’ 이렇게 生覺하리라 하고 生覺하지 말라.
須菩提여, ‘이런 生覺을 하지 말라’함은 무슨 까닭인가? 實은 如來가 濟度한 衆生은 없으니, 만약 如來가 濟度한 衆生이 있다면, 如來는 곧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있음이니라.
須菩提여, 如來께서는 ‘나’라고 함은 곧 ‘나’가 아니니라. 이렇게 말씀하시나 凡夫들이 그것을 ‘내가 있다’라고 하는 것이니라.
須菩提여, 凡夫라는 것에 대해서도 如來께서는 곧 凡夫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니라.”

 


【송찬우】

須菩提야, 너의 意圖론 어떻게 여기느냐.
너희들은 如來께서 <나는 마땅히 衆生을 濟度하리라.>하는 生覺을 하리라고 말하진 말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은 하지 말라.
무슨 意味 때문에 이런 生覺을 하지 말라고 하는가.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부처는 전체가 眞如法계이며 衆生들은 비록 아직은 전체가 眞如法界인 理致를 證得하

지 못했다곤 하나, 妄想의 因緣을 따라서 임시의 虛想으로 이루어진 衆生의 모습엔 實體적 存在가 없으며,

그 實體가 없다면 역시 그들도 그 自體에 있어선 眞如法계와 동일한 모습이며, 따라서 자연히 그들은 부처님

과 平等하다. 그러므로 如來가 相對的으로 濟度할 衆生의 모습이란 없게 된다.

부처님의 眞如法계엔 我相과 人相이 없기 때문에 相對的으로 濟度할 衆生이 있다는 差別的인 見解를 갖지

않게 된다. 理致가 이러한데도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다고 한다면 그 如來에겐 즉시 我·人·衆生·壽者相이

있게 된다.
須菩提야, 如來께선 비록 衆生을 濟度하는 我가 있다고 말하나 그것은 원래 ‘아’가 있지 않은 데서 하는 말인데도 凡夫들은 부처에겐 <衆生을 濟度하는 相對的인 부처님이라는 ‘아’가 있다.>라고 여긴다.
須菩提야, 내가 비록 凡夫라고 말은 했지만 如來께서 하신 말씀은 凡夫의 인이 아닌 데서 凡夫라는 허구적인 名稱의 ‘인’으로 불렀을 뿐이다.”

 


【이제열】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너희들은 이렇게 生覺하지 말라. ‘내(如來)가 마땅히 衆生을 濟度한다는 生覺’을 가지고 있다고,
須菩提야, 너는 그런 生覺을 짓지 말지니라.
왜냐하면 實로 如來는 濟度할 衆生이 없이 濟度하기 때문이니라. 만약 衆生이 있고 또 如來가 濟度하는 것이라면 如來에게는 곧 ‘나라는 生覺’, ‘남이라는 生覺’, ‘衆生이라는 生覺’, ‘오래 산다는 生覺’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내가 있다’ 함은 ‘내가 있음이 아님’을 말하는 것이건만 凡夫둘이 ‘내가 있다’고 하느니라.
須菩提야, 凡夫하는 말도 如來는 곧 凡夫가 아님을 일컬은 것이니 이름하여 凡夫라 한 것이니라.”

 


【문제현】

須菩提야! 너는 어떻게 生覺하느냐? 너희들은 如來가 衆生을 濟度한다는 生覺이 있다고 하지 말라.
須菩提야! 그러한 生覺은 하지 말라.
왜냐하면 實로 如來에게는 濟度할 衆生이라는 것마저 없기 때문이다. 만일 如來에게 濟度할 衆生이 있다면 곧 如來에게 아와 인과 衆生과 壽者가 있는 것이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나라고 말한 것은 나라는 것이 있어서가 아닌데 凡夫들은 나라는 것이 있다고 生覺하느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말한 凡夫라는 것도 凡夫가 아니니, 이름하여 凡夫라고 할 뿐이니라.

 


【김용옥】

“須菩提야! 네 뜻에 어떠하뇨? 너희는 如來가 ‘나는 마땅히 衆生을 濟度하리라’고 이 같은 生覺을 지었다고 말하지 말라.
須菩提야! 이 같은 生覺을 지어서는 아니 된다. 어째서 그러한가? 實로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만약 如來가 濟度할 衆生이 있다고 한다면 이는 곧 如來가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가지고 있음이라.
須菩提야! 如來가 내가 있다고 한 것은 곧 내가 있지 아니한 것이다. 그러나 凡夫들은 내가 있다고 한 것에만 執着한다.
須菩提야! 그러나 如來는 말한다. 凡夫라는 것도 凡夫가 아니라고”

 


【조현춘】

須菩提야! 어떻게 生覺하느냐 ? 如來가 ‘나는 衆生을 濟度한다’ 는 生覺을 하겠느냐?
須菩提야! 그렇게 生覺하지 마라.
如來는 ‘衆生을 濟度한다’ 는 生覺을 하지 않는다
如來가 ‘衆生을 濟度한다’ 는 生覺을 한다는 말은 如來도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에 걸려있다는 말이 된다.
須菩提야! 如來는 我相을 말하되 我相에 걸리지 않으나, 凡夫들은 我相에 걸린다
須菩提야! 如來가 말하는 凡夫를 보되 凡夫라는 生覺에 걸리지 않아야 한다

 


【백성욱】

須菩提야! 뜻의 일은 어떠한고? 너희들은 말하지 말아라. 如來가 이런 生覺을 짓되 내가 마땅히 衆生을 제도하리라 한다고 하지 말아라
須菩提야! 이런 生覺을 짓지 말아라 왜 그런고 하니, 실로 衆生이 없어서 如來가 제도할 근본이 있지 않으니라 만약 어떠한 衆生이 있어 如來가 제도했다면 如來도 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이 있게 되니라.
須菩提야! 如來가 내라 그러는 것은 곧 내가 아니언마는 그런데 보통 사람이 如來가 나다 하면 그것이 참 내인 줄 안다.
須菩提야! 凡夫라는 것은 如來가 설한 凡夫가 아니고 그 이름이 凡夫니라.

 


【김운학】

須菩提야, 네 生覺에 어떠하냐? 너희들은 如來가 이런 生覺을 곧 내 마땅히 衆生을 제도할 것이다 라 한다고 말하지 말라.
須菩提야 이 같은 生覺을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실로 如來가 제도할 衆生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如來가 제도할 衆生이 있다면 如來는 곧 我, 人, 衆生, 壽者相이 있는 것이다.
須菩提야, 如來가 아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곧 아가 있음이 아닌데 凡夫의 사람들이 아가 있다고 生覺하는 것이다.
須菩提야, 凡夫도 如來의 설한 凡夫가 아니고 이 이름이 凡夫인 것이다.

 


【오진탁】

"須菩提여! 그대는 어떻게 生覺하는가? 그대는 如來가 스스로 衆生을 濟度한다 生覺하리라 여겨서는 결코

안 된다.
須菩提여! 추호도 이렇게 짐작해서는 안 된다. 왜 그럴까? 實로 한 衆生도 如來가 濟度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일 如來가 衆生을 濟度한다고 한다면 如來는 自己, 사람, 衆生, 存在에 대한 迷惑이 남아 있는 셈이다.
須菩提여! 如來가 말하는 自己란 말은 곧 自己가 아니거늘 사람들은 自己가 있다고 한다.
須菩提여! 사람은 곧 사람이 아니므로 그를 사람이라고 如來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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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마음의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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