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참구의 두 가지 방법과 漢岩禪
윤창화*1)
* 도서출판 민족사 대표.
• 목 차 •
Ⅰ. 서론
Ⅱ. 간화방법(화두참구법)의 두 갈래
1. 대혜종고의 간화방법-單提參句
2. 몽산덕이의 간화방법-全提參意
Ⅲ. 몽산의 대혜방법 비판
Ⅳ. 대혜⋅몽산 간화법의 한국 전래와 수용
1. 대혜방법의 전래와 수용
2. 몽산방법의 전래와 수용
Ⅴ. 漢岩禪의 간화방법
- 單提參句(대혜)⋅全提參意(몽산) -
Ⅵ. 한암의 화두참구법 - 중도
Ⅶ. 맺는말
한 글 요 약
간화선은 大慧宗杲(1089∼1163)에 의해 완성⋅체계화 되었다.
대혜는 “망념이 일어날 때는 오로지 이 ‘無’라고 하는 한 글자를 참구하라(妄念起時, 但舉箇無字).”, “조주가 ‘無’라고 했으니, 이 ‘無’라고 하는 한 글자는 곧 허다한惡知見)과 惡覺을 꺾어 버리는 도구이다.”라고 하며 단순히 無字만을 참구하라고 강조하였다. 이것을 ‘單提參句’ 방법, 또는 ‘單提無字參句’ 방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약 1세기 반 후 元代에 이르러 皖山正凝과 蒙山德異(1231∼1308?)에 의하여 수정된 새로운 참구법이라고 할 수 있는 全提參意방법이 제시되었다.
완산과 몽산은 疑團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일체 함령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는데 어째서 조주는 ‘無’라고 했는지 그 뜻을 참구해야 한다(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라고 하여, 대혜종고와는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
몽산의 全提參意방법은 우리나라에는 고려 후기에 들어와 조선, 근현대를 통하여 대혜의 單提參句방식을 제치고 주요 간화방법으로 정착되었다. 백용성⋅경허⋅만공⋅전강⋅성철 등 선승들은 몽산의 ‘趙州因甚道無’를 무자화두 참구방법으로 수용⋅권유했다.
그러나 간화선을 대성시킨 대혜선사는 그런 방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보조지눌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지눌은 “화두를 참구하는 데에는 參意와 參句라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데, 요즘(보조 당시) 參句하여 깨닫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거의가 參意방법을 택하고 있다.”라고 하며 參意방법을 비판했다. 그는 參意보다는 參句로 공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參意는 死句이고 參句는 活句라고 규정했다.
근대의 선승 漢岩重遠(1876∼1951)은 몽산의 全提參意방식은 수용하지 않았다. 대신 대혜종고의 單提參句방식을 수용했다. 한암은 대혜종고와 같이 ‘無字를 참구만 하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을 뿐, 몽산방식인 ‘어째서 조주가 無라고 했는지를 참구하라(趙州因甚道無)’는 논조로는 말한 적이 없다.
또 몽산이 깨달음의 척도로 삼았던 ‘動靜一如’, ‘夢中一如’, ‘寤寐一如’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한 적이 없다. 한암은 몽산의 간화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대혜의 단제방법 속에는 이미 疑團이 형성되고 있어서 몽산의 參意방법을 택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고 또 몽산의 參意방법은 死句에 가깝기 때문에 수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주 제 어
간화선, 무자화두, 대혜종고, 보조지눌, 몽산덕이, 나옹혜근, 單提參句, 全提參意, 한암중원
Ⅰ. 서론
한암중원은 근대의 대표적인 선승이다. 그의 수행법은 근현대 여타 선승들과 마찬가지로 간화선이다. 그는 활구참구를 강조했던 선승이었지만 경전과 계율도 매우 중시했다. 선에 경도된 선승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한암중원(1876∼1951)의 간화방법에 대하여 고찰1)해 보는 한편, 처음으로 간화선을 제창한 대혜종고(1089∼1163)의 간화방법(화두 참구방법)과 그리고 몽산덕이(1231∼1308)의 간화방법도 함께 고찰해 보
고자 한다.
간화선은 남송 때 대혜종고에 의하여 완성되었고 우리나라에는 보조국사 지눌(1158∼1210)에 의하여 도입되었다. 그 이후 한국 선불교의 대표적인 修證法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선승들 사이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간화방법)에 대하여 두 가지 참구방법이 공존⋅혼재했다. 하나는 ‘오로지 무자화두를 들기만 하라(但看話頭. 妄念起時, 但舉箇無字)’는 방
법이고, 하나는 ‘어째서 조주가 無라고 했는지, 그(조주) 뜻을 참구하라(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 參趙州因甚道箇無字)2)’고 하는 방법이다.
보조지눌의『간화결의론』과 백파의 『무자간병론 과해』 에 의거하여 이 두 가지 방법을 정의한다면, 전자는 單提參句⋅單提無字參句방법으로서 간화선의 완성자인 대혜종고가 제시한 참구방법(이하 대혜종고 방법)이
고, 후자는 全提參意⋅全提無字參意방법으로서 원대 완산정응(皖山正凝)⋅몽산덕이⋅중봉명본(中峯明本, 1263∼1323)이 제시한 방법이다.(이하 몽산덕이 방법)3)
몽산덕이의 방법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은 고려 말이다. 이후 간화수행자들은 대혜종고의 방법보다는 몽산덕이가 새롭게 제시한 全提參意방법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사실상 선원 등 간화수행자들은 거의 몽산의 방법을 택하고 있고, 대혜종고의 방법은 겨우 강원의 교재인 『書狀』에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1) 한암의 간화에 대한 고찰은 인경, 한암선사의 간화선 ,『한암사상』 제3집(2009)이 있고, 한암중원에 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글들이 있다.
윤창화, 한암의 자전적 구도기 일생패궐 ,『한암사상연구』제1집, 2006. ;
종범, 한암선사의 선사상 ,앞의 책. ; 김광식, 방한암과 조계종단 , 앞의 책. ;
김호성, 바가바드기타와 관련해서 본 한암의 염불참선무이론 , 앞의 책. ;
박재현, 방한암의 禪的지향점과 역할의식에 관한 연구 ,『철학사상』 제23호,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2006. ; 신규탁, 남종선의 지평에서 본 방한암선사의 선사상 , 『한암사상연구』 제2집, 2007. ;
고영섭, 한암의 일발선 앞의 책. ; 김종진, 한암선사의 참선곡 앞의 책. ;
윤창화, 한암선사의 서간문 고찰 앞의 책. ;
신규탁, 한암선사의 승가오칙과 조계종의 신행 ,『한암사상』제3집, 2009. ;
김광식, 한암의 종조관과 도의국사 , 앞의책, 2009. ;
윤창화, 경허의 지음자 한암 ,『한암사상』 제4집, 2011. ;
변희욱, 한암의 격외관문과 간화 ,『한암사상』 제4집, 2011 등이 있고, 단행본으로는 김호성, 『방한암선사』, 민족사, 1996. ; 김광식,『그리운 스승 한암스님』, 민족사, 2006 등이 있다.
2)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완산정응, 몽산덕이). 參趙州因甚道箇無字(중봉명본)
3) 이 주제와 관련이 있는 논문은 월암, 한국 간화선과 화두참구의 계승 Ⅱ - (2) 무자화두참구법 , 『보조사상』27집, 보조사상연구원, 2007, pp.39-90. : 자명, 몽산 간화의 비판적 연구 , 『선문답의 세계와 깨달음』, 민족사, 2014, pp.422-446.
Ⅱ. 간화방법(화두참구법)의 두 갈래
간화선은 대혜종고(1089∼1163)에 의해 확립된 화두수행법이다. 대혜종고는 종래 고칙⋅공안 전체를 참구하던 방법을 수정하여, 그 가운데 선사의 答語를 참구하는 이른바 화두참구방법(單提參句)을 고안했다.
그 대표적인 화두가 ‘무’⋅‘간시궐’⋅‘마삼근’⋅‘정전백수자’ 등인데, 그는 이 화두로써 사량분별심과 번뇌 망념 등 惡知, 惡覺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제접⋅지도했다.
그 가운데에서도 ‘무자화두’는 간화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화두이다.
그는 무자화두 참구법을 만들어서 그 하나로 모든 화두에 공통적으로 적용했다. 무자화두에 대하여 보조지눌(1158∼1210)은 『절요』와 『간화결의론』에서 ‘徑截門活句’라고 평했고, 무문혜개(1183∼1260)는 『무문관』에서 ‘宗門第一關’4)이라는 절대적인 평을 했다.
4)『무문관』 第一則趙州狗子(大正藏48, 292,c), “如何是祖師關, 只者一箇無字, 乃宗門一關也.”
1. 대혜종고의 간화방법-單提參句
대혜종고는 고칙⋅공안 가운데 답어인 ‘무’ ‘간시궐’ ‘마삼근’ 등을 뽑아서 화두로 삼았는데,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1) “다만 엣 조사들이 入道한 화두를 참구하라. 승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가 이르기를 ‘無’라 했으니, 이 한 글자는 곧 생사(번뇌 망념)를 단절시키는 칼이다. 망념이 일어날 때는 다만(오로지) 이 하나의 무자를 들라
(但只看箇, 古人入道底話頭.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只這一字, 便是斷生死路頭底刀子也. 妄念起時, 但舉箇無字.”5)
5)『大慧普覺禪師語錄』 22권(大正藏47, 903,c), 示妙心居士(孫通判長文) ,
“但只看箇古人入道底話頭. 移逐日許多作妄想底心來, 話頭上則一切不行矣.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只這一字, 便是斷生死路頭底刀子也. 妄念起時但舉箇無字. 舉來舉去, 驀地絕消息, 便是歸家穩坐處也. 此外別無奇特.”
(2) “오로지 번뇌 망념이 일어나는 곳에서 화두를 참구하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無.’ 바로 이럴 때 번뇌 망념이 火爐(화로) 위의 한 점 눈과 같게 될 것이다
(只就瞥起處, 看箇話頭, 狗子還有佛性也無.
無. 正恁麼時, 如紅鑪上一點雪相似).”6)
6)『大慧普覺禪師語錄(書)』 27권(大正藏47, 926,a), 答劉通判(彥沖) , “只就瞥起處, 看箇話頭, 狗子還有佛性也無. 無. 正恁麼時, 如紅鑪上一點雪相似.”
(3) “단지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가 말하기를 無라고 한 것을 참구할지언정, 절대로 분별의식으로 헤아리지 말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無. 단지 이와 같이 참구하라
(但只, 看狗子還有佛性也無,
趙州云無. 切不可向意根下卜度(……)
狗子還有佛性也無. 無. 但只如此參).”7)
7)『大慧普覺禪師語錄』 26권(大正藏47, 923c), 答陳少卿(季任) . “但只看狗子還有佛性也無. 趙州云無. 切不可向意根下卜度, 不可向言語上作活計, 又不得向開口處承當, 又不得向擊石火閃電光處會. 狗子還有佛性也無. 無. 但只如此參.”
(4) 승이 조주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조주가 말하기를 無라 하였으니, 이 無라고 하는 한 글자는 곧 허다한 악지견과 악각(惡覺, 잘못된 생각)을 꺾어 버리는 도구이다
(看箇話頭,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此一字子,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也).8)
8)『大慧普覺禪師語錄』(大正藏47, 921,c), 答富樞密(季申) , “看箇話頭。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此一字子,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也.”
인용문(원문) 가운데 전반부인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와 ‘看箇話頭,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는 무자화두의 機緣이라고 할 수 있고, 후반부인 ‘無. 但只如此參’과 ‘妄念起時, 但舉箇無字,’ ‘只這
一字(無), 便是斷生死路頭底刀子也,’ ‘此一字子(無),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也’는 화두참구방법 또는 화두의 기능과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위의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대혜종고는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번뇌 망념 등이 일어날 때는 오로지 이 ‘무’ 한글자를 들라(妄念起時, 但舉箇無字).” “다만(但, 只)” 또는 “오로지 이와 같이 참구하라(但只如此參)”고 지도하고 있다. ‘무’라고 하는 한 글자를 사용하여 모든 번뇌 망상과 惡知⋅惡覺, 사량분별심 등을 퇴치시켜 버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혜종고의 무자화두 참구법은 ‘但看話頭’ ‘但舉箇無字’로서, 그 기능이나 목적은 心一境性즉 화두삼매를 통하여 번뇌망상을 물리치는 데 있다. 모든 번뇌 망념은 커다란 불덩이(一團火)와 같은 무자 위에 올려놓으면 즉시 녹아 버리고(氷消) 해체⋅분해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필수조건이 ‘疑來疑去’로써 疑情이 동반되어야 한다.
무자화두는 사상이나 철학이 아니다. 무자는 정신통일의 방법이다. 조주선사는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한 것은 업식성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지만, 후대 간화선에서는 정신집중을 통하여 번뇌 망념과 사량분별심등을 퇴치하기 위한 용도로 만든 것이다. 대혜종고는 그러므로 오로지 무자를 생각만 할 뿐 그 의미에 대하여 이리저리 窮究하지는 말라는 것이다(州云無. 只管提撕擧覺, 左來也不是, 右來也不是).
이렇게 보면 ‘無’자는 천복승고의 ‘莫’과 같이, 그 어떤 생각이든 일체를 부정하는 ‘善惡都莫思量’ 또는 일체의 생각을 끊어 버리는 前後際斷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체의 생각(번뇌)을 끊어 버리는 그곳에서 자기 본성의 부처(自性佛)를 보라는 것이다. 대혜종고의 방법은 처음으로 무자 참구를 제시한 오조법연의 방법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9)
9) 무자화두는 대혜종고에 앞서 그의 老師인 五祖法演(?∼1104)으로부터 비롯되었다.
그는 『오조법연어록』하권, 상당에서 구자무불성을 거론한 다음 “여러분/ 그대들은 평소 어떻게 알고 있는가? 노승은 언제나 오직 이 무자를 들어서 망념을 쉬네(老僧尋常, 只擧無字便休). 자네들이 만약 이 조주의 무자를 투득한다면 천하의 사람들 그 누구도 그대들을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되네. 그대들은 도대체 어떻게 투득할 것인가? 철저히 투득한 사람이 있는가? 만약 있으면 이리 나와서 대답해 보도록 하라.”(大正藏47, 665,b).
2. 몽산덕이의 간화방법 - 全提參意
150여 년 후 元代의 선승 완산정응과 몽산덕이, 중봉명본은 대혜종고의 방법(單提參究)을 부정하고 “어찌하여 조주가 무라고 했는지, 그 뜻을 참구해야 한다(<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 완산, 몽산>, <參趙州因甚道箇無字. 중봉>)”고 하여 全提參意방법을 제시했다. 그 차이점은 參究와 參意에 있다.
元代의 선승으로서 처음으로 全提參意방법을 제시한 완산정응은 참구 방법을 배우고자 찾아온 몽산덕이에게 무엇보다도 “계율을 잘 지켜야 하며,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그것은 空中樓閣과 같다.”고 말한 후 무자화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看하라고 지도한다.
"이후에는 다만 무자만 看하라(此後, 只看箇無字). 사량분별하지 말고 유무의 알음알이를 짓지 말고 또 경전이나 어록 등도 보지 말고, 다만 오직 이 무자를 提起하되(只單單提箇無字), 하루 종일(十二時) 행주좌와 사위의 (四威儀) 속에서 모름지기 초롱초롱(惺惺)하게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어미 닭이 알을 품듯이, 끊어짐이 없이 지속하라. 뚫어 사무치지 못할 때는 마땅히 늙은 쥐가 板子를 씹듯이(이빨로 쌀뒤주를 갈 듯이) 하여 옮기지 말라.
때로 다시 채칙질하여 의심을 일으키되 일체 함령이 다 불성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어째서(무엇 때문에) 조주는 없다(無)고 했는지, 그 뜻이 무엇인지 참구하라(時復鞭起疑云, 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10)"
10) 皖山正凝禪師示蒙山法語(『蒙山和尙法語略錄』, 松廣寺板, 1608년, p.1,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師見蒙山來禮, 先自問云. 爾還信得及麼. 山云. 若信不及不到這裏. 師云. 十分信得更要持戒持戒易得靈驗若無戒行, 如空中架樓閣, 還持戒麼. 山云.見持五戒. 師云. 此後只看箇無字, 不要思量卜度, 不得作有無解會, 且莫看經教語錄之類. 只單單提箇無字, 於十二時中四威儀內, 須要惺惺, 如貓捕鼠, 如雞抱卵, 無令斷續. 未得透徹時, 當如老鼠咬棺材相似, 不可改移. 時復鞭起疑云. 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意作麼生.”
완상정응은 “오직 이 무자를 참구하라(只單單提箇無字).”고 하여 먼저 單提參句방법11)을 말해 줌과 동시에 “때때로 다시 채칙질하여 의심을 일으키되, 일체 함령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어찌하여 조주는
‘없다(無)’라고 했는지, 그 뜻(의도)을 함께 참구해야 한다(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고 하여 全提參意방법을 병행할 것을 강조했다.
11) 全提라는 말은 그 이전에도 사용되었지만, ‘單提’라는 말은 완산정응의 ‘只單單提箇無字’와 몽산의 무자십절목에 있는 ‘只單單提箇無字’에서 처음 보인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單提는 ‘無’자 하나만을 참구하는 것을 가리키고, 전제는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 전체를 참구하는 것을 말한다.
白坡는 『禪文手鏡』, 無字揀病論科解(韓佛全10, 527,a)에서 “一切話頭, 皆有單提全提.”라고 하여 구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如無字話云, 趙州因甚道無則名全提,亦名參意. 單擧無字云, 是什麽則名單提, 亦名參句. 單提, 有純正益, 而有死心病. 全提, 有起疑益, 而有亂想病. 初學必須單提, 念想都亡, 方可念提若不起疑, 未契祖意.
又有勤提, 心無間斷.”
완산은 화두참구의 前提조건인 의단을 강하게 형성하기 위해서는 막연하게 ‘무’를 참구하는 單提參句보다는 ‘趙州因甚道無意作麼生’의 全提參意방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몽산덕이는 완산의 말 가운데서 ‘只單單提箇無字’의 單提방법은 삭제해 버리고, “어째서 조주가 無라고 했는지[趙州因甚道無]를 참구하라”고 하여 全提參意방법만 강조했다.
"僧이 조주에게 묻되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선사가 ‘無’라고 하였으니, 준동함령도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는데, 어째서 조주는 없다(無)고 한 것인가(趙州因甚道無)? 만약 조주의 선을 구피변(口皮邊)으로 조고(照顧)하라고 말한다면 훗날 쇠방망이를 맞게 될 것(喫鐵棒)이다.12)"
12) 蒙山, 無字十節目(『蒙山和尙法語略錄』, 松廣寺板, 1608, p.24, 국립중앙도서관소장),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若言趙州禪, 口皮邊照顧, 他日, 喫鐵棒.”
‘구피변조고(口皮邊照顧)’란 어째서 조주가 없다(무)라고 했는지, 그 뜻[趙州意]은 참구하지 않고 그냥 ‘무-’하고 앉아 있는 것, 또는 단순히 입술로만 ‘무 무’ 하고 있는 것을 가리키는데, 사실 이것은 종전의 간화방법인 ‘只看箇無字’ 또는 ‘只單單提箇無字’를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몽산이 무자십절목 에서 전제방법인 ‘趙州因甚道無’만 제시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산과 몽산방법의 핵심은 疑團형성에 있다. 의심이 크면(大疑團) 크게 깨닫게 된다(大悟)는 관점 아래에 대의단을 형성하기 위한 것인데, 사실 대의단을 강조한 것은 무문혜개(1183∼1260)와 고봉원묘(1238∼1295)이다.
무문혜개는 『무문관』 1칙 趙州狗子공안에서 “삼백육십 骨節과 팔만사천의 털구멍 등 전신에 疑團을 일으켜 밤낮으로 이 ‘無’자를 들어 참구하라. 주야로 제기하라.”고 했고, 조금 후대의 선승인 고봉원묘는 ‘大信根, 大憤志, 大疑情’을 화두참구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웠다.
대혜종고도 ‘疑來疑去,’ ‘提撕來提撕去,’ ‘崖來崖去’라고 하여 疑情을 강조했지만, 무문혜개와 고봉원묘처럼 전제조건으로 강조하지는 않았다.13) 무문혜개⋅고봉원묘⋅몽산덕이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대의단은 이 시기(원대) 화두참구의 새로운 思潮중 하나였다는 점이다.
그런데 몽산덕이는 자신이 제시한 방법(전제)과 다르게 지도하거나 말한다면 훗날 쇠방망이를 맞게 될 것이라고 매우 강한 어조로 철봉을 내려치고 있는데, 몽산의 이 말 속에는 자신의 방법을 관철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가 있다.
13) 『무문관』 1칙 趙州狗子, “將三百六十骨節, 八萬四千毫竅, 通身起箇疑團, 參箇無字, 晝夜提.”
그런데 무문혜개처럼 삼백육십 骨節과 팔만사천의 털구멍 등 전신에 疑團을 일으켜 밤낮으로 이 ‘無’자를 들어 참구한다면 상기병에 걸리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기병은 待悟之心의 산물인데, 이것은 좀 무리라고 생각한다.
Ⅲ. 몽산의 대혜방법 비판
몽산은 무자십절목 후반부에서 대혜종고의 참구방법을 원색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1) 다만 이 無字는 전혀 근거(巴鼻, 파고 들어갈 여지)를 잡을 여지가 없다. 그러나 조금은 근거를 잡을 수 있다. 혹자는 ‘이것(無字)은 (사량분별심의) 목숨을 끊는 칼이라 하며 또 ‘차별지(방편적인 지혜)를 여는 열쇠’라 하는데, 삼십방을 맞아야 할 것이다(或者謂. 是(無字), 斷命刀子, 開差別智底鑰匙, 好與三十棒)’.
이것은 賞인가 罰인가? 비록 제대로 맞게 대답한다 할지라도 네가 어느 곳에서 조주를 보았는고?14)
14) 蒙山, 無字十節目(『蒙山和尙法語略錄』, 松廣寺板, 1608, p.24, 국립중앙도서관소장),
“只這箇無字, 全無巴鼻, 有些巴鼻. 或者謂. 是(無字), 斷命刀子, 開差別智底鑰匙, 好與三十棒.
是賞耶罰耶. 直饒道得諦當, 爾在甚處, 見趙州”
(2) 근래 대부분 말하기를 ‘無字는 바로 ’쇠로 만든 빗자루(無字是鐵掃箒)’라고들 하는데, 조주의 뜻은 과연 그런가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의 말을 끌어다가 증명하고자 하는 자가 있다면 잘못된 눈먼 놈이다.
부질없이 배운 알음알이를 가지고 조사심을 매몰시키지 말지어다. 할!15)
15) 蒙山, 無字十節目(『蒙山和尙法語略錄』, 松廣寺板, 1608, p.26,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近來多道. 無字是鐵掃箒. 趙州意果如是不. 有引他後語, 爲證者, 錯了也瞎漢.
莫將閒學解, 埋沒祖師心. 喝”
(3) 어떤 납자가 말하기를 無자는 당나귀를 매어 두는 말뚝(無字是繫驢橛)이라고 하나니, 너는 어디서 꿈에라도 조주를 만나 보았는고. 무간지옥으로 갈 업을 초래하지 않고자 한다면 여래의 정법륜을 비방하지 말라.16)
16) 蒙山, 無字十節目.(『蒙山和尙法語略錄』, 松廣寺板, 1608년, p.26, 국립중앙도서관소장),
“有云. 無字是繫驢橛. 爾在何處, 夢見趙州. 欲得不招無間業, 莫謗如來正法輪.”
인용문 (1)에서 “이것(無字)은 (사량분별심의) 목숨을 끊는 칼(是, 斷命刀子)’이며 또 ‘차별 지혜를 여는 열쇠’라 하나니, 삼십방을 맞아야 할 것이다.”라는 말은, 대혜종고가 말한 ‘只這一字(無字), 便是斷生死路頭底刀子
也’를 비판하는 말이나 다름없고,
(2)에서 ‘無字가 이 철사로 만든 빗자루(無字是鐵掃箒)17)’라고들 하는데, 또 (3)에서 “無자는 당나귀를 매어 두는 말뚝(無字是繫驢橛)이라고 하는데, 너는 어디서 꿈에라도 조주를 만나 보았는고.”라는 말은, 대혜종고가 부추밀에게 답한 편지 가운데 “이 無라고하는 한 글자는 곧 허다한 나쁜 지견(사량분별심)과 악각(惡覺, 번뇌 망념)을 꺾어 버리는 도구이다(州云無. 此一字子,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也).”를 비판, 부정하고 있는 말이나 다름없다.
몽산의 표현 가운데 ‘쇠방망이를 맞을 것이다[喫鐵棒]’, 또는 ‘무간지옥으로 갈 업을 초래하지 않고자 한다면’ 등은 매우 과격한 표현이다. 이 표현의 칼날은 그 이전의 화두참구법들을 겨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몽산에 이어 30여년 후에 활동한 중봉명본도 ‘參趙州因甚道箇無字’18)를 강조하고 있다.
17) 철빗자루(鐵掃箒) : 鐵絲로 만든 빗자루. 무엇이든지(번뇌 망념) 쓸어버릴 수 있는 빗자루.
18)『天目明本禪師雜錄』 (신찬속장경70, 729,c)
그렇다면 왜 완산정응과 몽산덕이는 대혜식 무자화두 참구방법을 수정하게 되었는가?
몽산의 회고를 빌린다면 그는 이미 입산(34세 출가)하기 전인 20세 때부터 이 일(본분사)이 있음을 알고서 32세까지 17,8명의 장로(주지⋅방장)를 찾아가 공부하는 방법(做工夫)에 대하여 물었으나, 분명하게 대답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완산장로를 찾아가서 비로소 무자화두와 참구법을 받아 공부한 결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데,19) 몽산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인지는 좀 더 고증할 필요가 있겠지만, 이 시기(원대) 선불교는 극도로 타락한 상태였다.
元代의 선불교는 『칙수백장청규』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국가불교적인 색채가 농후했다. 당시 선종사원은 황제의 만수무강과 報恩, 그리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티베트불교, 밀교(능엄주 유행), 정토, 도교, 유교 등이 혼합되어 선불교의 고유한 색채는 사라진 지오래였다.
방장(주지)들은 관료들과의 교류를 위하여 방장실을 비우기가 일쑤였고 납자들도 근기가 박약했다. 선종사원에서는 조석으로 길상소재 다라니 등 十小呪와 능엄주를 독송할 정도로 정체성을 상실한 상태였다.
이 시기 수행자들에게 대혜종고의 간화방법 즉 “망념이 일어날 때에는 다만 무자를 들라(妄念起時, 但舉箇無字)”고 하는 沒滋味한 單提방법은, 모기가 주둥이로 철우(鐵牛)를 찌르듯(如蚊子上鐵牛, 下嘴不得) 어렵고,
또 의단도 잘 형성되지 않아서, 새롭게 몽산이 제시한 것이 ‘趙州因甚道無’의 全提參意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19) 운서주굉,『禪關策進』(大正藏48, 1099,b), 蒙山異禪師示衆,
“某年二十, 知有此事. 至三十二, 請益十七八員長老. 問他做工夫, 都無端的. 後參皖山長老, 教看無字, 十二時中, 要惺惺如貓捕鼠, 如雞抱卵, 無令間斷. 未透徹時, 如鼠咬棺材, 不可移易. 如此做去, 定有發明時節. 於是晝夜孜孜體究經十八日, 吃茶次, 忽會得世尊拈花, 迦葉微笑, 不勝歡喜”
Ⅳ. 대혜⋅몽산 간화법의 한국 전래와 수용
1. 대혜방법의 전래와 수용
대혜종고의 간화선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서이다. 그는 화두참구론이라고 할 수 있는 『간화결의론』에서 參意全提와 參句單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규정했다.
"화두에는 參意와 參句두 가지가 있다. 그런데 요즘(보조 당시) 疑情을 깨트렸다고 하는 이들은 거의 參意하는 사람이다. 아직 參句를 하지 못하므로 이것은 원돈문(화엄교학)에서 올바로 이해하고 밝혀낸 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 이러한 사람(參意者)의 觀行과 用心도 보고 듣고 이해⋅실천하는 공효(功效)는 있다.
(이들은) 요즘 문자법사들이 觀行門에서 안으로는 마음 있다고 헤아리고 밖으로는 온갖 이치를 더욱 자세하게 찾아서 갈수록 바깥 형상에 집착하는 병통이 있는 데, 그들(문자법사)보다는 좀 나을 뿐이다.
어찌 參句門로에서 의정을 깨트려 몸소 이 한 마을을 깨달아서 반야를 발휘하여 그 법을 광대하게 유통시키는 사람과 같이 논할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이 지혜를 증득하여 現前시키는 자는 오늘날 보기도 드물고 듣기도 드물다. 요즘은 그저 화두의 參意門에 의지하여 正知見을 밝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길 뿐이다.20)"
20) 보조지눌, 『간화결의론』 끝 단락,
“話頭有參意參究句二義. 今時疑破者, 多分參意. 未得參句故, 與圓頓門正解發明者, 一般矣. 如是之人, 觀行用心, 亦有見聞解行之功.
但不如今時文字法師, 於觀行門中, 內計有心, 外求諸理, 求理彌細, 轉取外相之病耳.
豈可與參句門疑破, 親證一心, 發揮般若, 廣大流通者, 同論耶.
此證智現前者, 今時罕見罕聞故, 今時但貴依話頭參意門, 發明正知見耳.”
參意全提와 參句單提에 대한 보조지눌은 정의인데, 지눌은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는 參意와 參句두 가지가 있다고 전제한 다음 요즘(보조 당시)에는 參句방법으로 공부한 사람은 매우 드물고, 거의가 화두를 뜻으로 공부하는 參意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개탄해 하고 있다. 이것(參意방법)은 원돈문(화엄교학)을 통하여 공부한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參句로써 일심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고, 參意는 교학적인 공부이고, 參句라야 진전한 공부이며, 또 參意는 死句21)이고 參句는 활구이므로 參句방법을 택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보조지눌은 “오늘날에는 參究門으로 공부하거나 깨달은 사람은 드물고 모두 參意門에 의거하여 正知見을 밝히는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고 하여 參意門에 의거하여 수행하는 것을 매우 개탄해 하고 있는데, 『간화결의론』에 의거하여 완산과 몽산의 간화방법(趙州因甚道無, 意作麽生)’을 논한다면, 몽산덕이의 간화방법은 全提參意, 즉 뜻을 참구하는 參意로서 의리선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活句참구와 死句참구를 기준으
로 논한다면 활구참구보다는 사구참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21) 인경, 『화엄교학과 간화선의 만남』, p.164.
2. 몽산방법의 전래와 수용
1) 고려후기 - 조선
몽산의 全提參意방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말이다. 그러나 몽산과 고려 승속과의 교류는 이미 그보다 앞서 1295년부터 널리 이루어 졌다.22) 불교계의 주도세력인 수선사 10세 혜감국사 萬恒(1249∼1319)은 몽산으로부터 古潭이라는 호를 받았고, 『덕이본 단경』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유포시켰다.23) 또 무자십절목 을 포함한 그의 법어집인 『몽산화상법어』도 고려 말 공민왕(1351∼1374) 연간에 간행되었다.24)
고려 말에 이르러 몽산의 영향은 대단했다. 당시 대표적 선승인 나옹화상(1320∼1376)의 『어록』에는 몽산의 법문이 줄줄이 나오고 있고, 태고 보우(1301∼1382)는 석옥청공으로부터 법을 전수 받았으면서도 『태고집』에는 고봉원묘, 몽산의 법문을 많이 기록해 놓았다.25) 백운경한(1299∼1375)의 『직지심체요절』속에는 몽산의 법문이 6편이나 수록되어 있고, 무학자초도 몽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따라서 몽산의 全提參意방법인 ‘趙州因甚道無’는 적어도 고려 말에는 대혜종고가 제시한 但參話頭의 單提參句방법을 제치고 완전히 정착되었다고 생각된다. 이처럼 몽산의 영향력이 컸던 이유는 고려가 元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22) 허흥식, 고려승속들과의 교류 , 『고려에 남긴 휴휴암의 불빛』, 창비, 2008, pp.64-68 참조. 이 책은 몽산덕이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서이다.
23) 정성본, 보조지눌과 육조단경 ,『불교사회문화연구』 제3호, 2002. ; 인경,『몽산덕이와 고려 후기 간화선사상 연구』, 재판본, 명상상담연구원, 2009, p.95, p.349.
24) 허흥식, 『고려에 남긴 휴휴암의 불빛』, 2008, 창비, p.49. 현존 판본으로는 공민왕 때가 처음이라고 한다.
25) 인경, 앞의 책, pp.350-355, ; 허흥식, 앞의 책, pp.69-73. 1296년에는 충렬왕과 고위 관리 10여명이 몽산이 주석하고 있는 휴휴암을 찾아가 직접 몽산의 법문을 들었다. 인경, 앞의 책, pp.346-380.
그런데 이것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자료는, 조선-근대를 통해서 가장 많이 판각, 간행, 강독된 선서가 『몽산화상법어약록』이다.『몽산화상법어약록』은 임진란 이전까지만 해도 14회 판각되었고, 영가법문인 『몽산육도보설』은 20회 판각⋅간행되었다. 반면 대혜종고의 『서장』은 조선-근대 내내 강원의 교재였지만, 15회 판각에 불과한 점을 고려한다면, 몽산의 어록들은 매우 많이 강독되었다고 할 수 있다.26)
또 조선 세조 때 간경도감을 설치하여 1차로 불경 9종을 언해(한글 번역본)하여 간행했는데, 그 속에 간화선의 텍스트라고 할 수 있는 『대혜서장』은 빠져 있어도, 몽산화상의 법어인 『법어언해』는 1차 간행의 9종 속에 들어가 있다.27) 『법어언해』가 『능엄경언해』, 『법화경언해』,『목우자수심결언해』 등과 함께 9종 속에 포함되어 간행되었다는 것은 몽산의 어록이 그 누구의 어록보다도 중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6) 인경, 『몽산덕이와 고려 후기 간화선사상 연구』, 명상상담연구원, 2009, p.20.
27) 김두종, 『한국고인쇄기술사』, 탐구당, 1974, p.163.
몽산의 무자참구법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수용되었는데 청허휴정은 『心法要抄』 參禪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만약 생사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반드시 조사선을 참구하라. 조사선이란 구자무불성화이다. 1700공안 가운데 제일의 공안이다. 천하의 납승은 모두 무자화를 참구한다.
옛적에 어떤 승이 조주선사에게 물었다.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가 無라고 했으니, 일체 함령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는데 조주는 어째서 없다고 한 것인지 그 뜻은 무엇인가?
이 무자를 念念이 상속시켜서 행주좌와의 목전(目前)에 상대하게 하라. (무자는) 마치 한덩이 불과 같아서 가까이 다가가면 얼굴을 태워버린다(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麽生).”28)"
28) 淸虛휴정, 『心法要抄』(韓佛全7, 648,上), 參禪門에서는
“若欲脫生死, 須參祖師禪. 祖師禪者, 狗子無佛性話也, 一千七百則公案中, 第一公案也. 天下衲僧, 盡參無字話.
昔有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麽生.
此無字, 念念相連, 行住坐臥, 相對目前, 如一團火, 近之則燎却面門.”
청허 역시 ‘몽산의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그런데 『心法要抄』 參禪門과는 달리 『선가귀감』에서는 화두에는 參句와 參意의 두 문이 있는데, 參句란 경절문 활구이고 參意란 원돈문 死句라고 하여29) 參意를 비
판하고 있는데, 사실 이 말은 보조지눌의 『간화결의론』에 있는 말을 그대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心法要抄』 參禪門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인 반면,『선가귀감』은 注에서 간단히 처리했을 뿐이다.
29) 청허휴정, 『선가귀감』(신찬속장경63, 738,c), “大抵學者, 須參活句莫參死句……評曰. 話頭有句意二門. 參句者, 徑截門活句也, 沒心路沒語路無摸索故也. 參意者, 圓頓門死句也, 有理路有語路有聞解思相故也.”
또 조선후기의 선승인 白波亘璇(1767∼1852)은 『선문수경』 무자간병론 科解에서 이 문제를 구체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일체 화두에는 모두 單提와 全提가 있으니, 가령 무자를 두고 말할 것 같으면, ‘조주선사는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趙州因甚道無)?’ 이렇게 참구하면, 그것은 곧 全提라 이름하고, 또한 參意(뜻으로 참구)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단순하게 無자만 들어서 ‘이것이 무엇인고?’라고 참구하면 그것은 곧 單提라 이름하고, 또한 參句(말을 참구)고 이름한다.
單提는 純正益(단순, 간단해서 참구하기 편하다는 이점)은 있으나 死心病(마음을 묶어두는 폐단)이 있고, 全提는 起疑益(의심을 일으키는 데는 유리한 점)은 있으나, 亂想病(생각을 어지럽게 하는 폐단)이 있다.
그러니 처음 화두공부를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單提로 화두를 들어 부질없는 念想을 모두 없앤 다음에 비로소 全提로 들어가야 한다. 만약 의심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조사의 뜻에 계합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勤提(부지런한 참구)가 있으니, 마음에 간단이 없이 화두를 드는 것을 말한다.30)"
30) 白坡, 『禪文手鏡』(韓佛全10, 527,a), 無字揀病論科解,
“一切話頭, 皆有單提全提. 如無字話云, 趙州因甚道無則名全提, 亦名參意.
單擧無字云, 是什麽則名單提, 亦名參句.
單提, 有純正益, 而有死心病. 全提, 有起疑益, 而有亂想病.
初學必須單提, 念想都亡, 方可全提, 若不起疑, 未契祖意. 又有勤提, 心無間斷.”
여기서 單提는 대혜방법을 가리키고 全提는 趙州因甚道無로 몽산의 방법을 가리킴. 번역은 김두재역의 선문수경(백파사상연구소, 2011)을 참고하여 약간 수정하였음.
백파도 『간화결의론』을 바탕으로 ‘全提參意’와 ‘單提參句’를 구분하고 있다. 백파는 무자를 참구할 때 ‘어째서 조주가 무라고 했는고(趙州因甚道無)?’ 이런 식, 즉 조주의 뜻이 무엇인지를 참구하면, 그것을 ‘全提’ 또는 ‘參意’라고 하고, 그와는 달리 단순하게 無자만 들어서, ‘이것이 무엇인고?’ 이렇게 참구하면 그것을 單提, 또는 參句(말을 참구)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 “반드시 먼저 單提로 화두를 들어서 念想을 모두 없앤 다음에 비로소 全提에 들어가야 한다. 의심을 일으키지 못한다면 조사의 뜻에 계합할 수가 없다.”31)라고 말하고 있는데, 疑團形成을 위해서는 결국은 全提參意방법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31) 참고로 허흥식의『고려에 남긴 휴휴암의 불빛』(창비, 2009, p.261)에는 ‘몽산화상법어’라는 제목의 짧은 글이 실려 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提無字有二種, 一單提無字, 心不亂想. 二全提無字, 參趙州意作麽生. 此二者, 各有益有病, 但提無字, 念想不起…”. 이 내용은 『몽산화상법어약록』등 현존 유통본에는 일체 없고, 김민영씨가 소장하고 있는 필사본에만 있는 내용이라고 한다. 백파의 내용과 사실상 똑같은데, 이 자료가 실제 몽산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만일 이것이 실제 몽산의 말이 맞다면 몽산은 이미 단제, 전제를 구분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문제가 없지 않다. 단제참구는 번뇌망상 퇴치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은 맞으나, ‘무’ 하고 疑情을 붙여서 참구함과 동시에 의단이 형성되어 가는데, 단제로 念想들을 없앤 뒤에 의심을 일으켜서 疑團이 形成되어야만 조사의 뜻에 계합할 수 있다는 말은 성립할 수 없다.
(2) 근현대
근현대에도 몽산의 趙州因甚道無의 參意방법은 대혜종고의 但看無字의 單提參句방법보다 훨씬 월등한 위치에서 수용되었다. 근현대의 선승들은 거의 모두 몽산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백용성스님은 『각해일륜』 48장 ( 모든 화두마다 本疑心이 있으며 또 병된 것을 가림 )32)과 鮮漢文譯禪門撮要 5권 부록 修心正路에서 全提와 單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구분하고 있다.
"무자(無字)는 지나(支那, 중국) 말과 조선(朝鮮)말이 다른즉 순전한 지나 말로 하면 준동함령(蠢動含靈)이 개유불성(皆有佛性) 조주인심도무(趙州因甚道無)라 하나니, 이것을 全提라 하고, 인삼도무(因甚道無) 이것을 단제(但提)라 함네다.33)"
全提는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까지이고 單提는 ‘因甚道無’ 라고 구분했는데(용성스님은 但提라고 썼음), ‘因甚道無’를 대혜종고의 ‘但看無字’와 같이 본 것으로 파악된다. 용성스님은 이 문제를 당시에 제방에서 논의되고 있는 말들을 종합하여 다양하게 집중적으로 거론하고나서 다음과 같이 견해를 밝히고 있다.
32) 백용성,『각해일륜』, 대각교당, 1930, pp.63-65(제48장. 모든 화두마다 本疑心이 있으며 또 병된 것을 가림).
33) 백용성 역, 『鮮漢文譯禪門撮要』 5권 부록 修心正路, 범어사, 1923(대정 12)초판본, p.216.
"(1) 大凡화두(話頭)의 의정(疑情)이 큰 불덩이와 같아서 참구(參究)하는 의정(疑情) 밖에는 추호(秋毫)만큼이라도 달리 아는 생각을 두지 아니하면 이것이 활구참선 되는 것이요. 어찌 무(無) 무엇을 인(因)하야 무(無)라 하는고 하더래도 달리 아는 마음이 있으면 사구가 되는 것이니라.
또 무(無)가 무엇인고? 단지(但只) ‘무(無)’하는 것은 아무데도 못 쓰게 하는 것이니라.
무가 무엇인고 찾는 것은 네가 無자를 몰라서 그러는가. 무자를 알고도 無가 무엇인고 하는가? 백년삼만육천朝를 반복하여 아무리 찾아도 없을 無字 밖에는 또다시 다른 무자가 없다. 또 입을 삐죽하여 무무(無無) 소리를 하고 앉어 있으니 생각을 붙들어 매자는 主義이냐? 무슨 까닭이냐? …… 대범 언구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니 큰 의심이 있은 연후에야 크게 깨닫는다 하셨다.34)
(2) 그대가 미리 그런 생각을 말고 단지 무(無)라고 하는 뜻을 알 수 없는데에 나아가 크게 의심하되 일체(一切)중생이 다 깨달을 성품이 있거늘 어찌 조주는 無라 하는고. 무슨 까닭으로 無라 하시는고. 어찌 없다 하시는고. 어찌 없는고. 무슨 뜻으로 없다고 하는고. 어떻게 하든지 의심만 할 것이어다.35)"
인용문 (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백용성은 두 가지 방법이 있지만 單提든(대혜종고방식), 全提든(몽산방식), 또는 지나(한자) 말로 하든 조선말로 하든 사량분별심으로 참구하면 死句참구이고, 사량분별을 하지말고 참구하면 활구참구라는 것이다. 양쪽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데 정확한 견해라고 할 수 있다.
또 “조선말과 중국말을 섞어하면 활구가 되고 순전히 조선말로 하면 參意死句가 된다 하니 참 그러한 말을 마시오. 나는 항상 제방 학자들이 이러한 말을 함을 대단히 탄식합네다.”36)라고 하여 분별심으로 참구하면 중국(한자)말이든 조선말이든 사구가 된다는 것도 정확한 견해이다.
그런데 인용문 (2)에서는 “단지 無라고 하는 뜻을 알 수 없는데 나아가 크게 의심하되, 일체중생이 다 깨달을 성품이 있거늘 어찌 조주는 無라 하는고. 무슨 까닭으로 無라 하시는고. 어찌 없다 하시는고. 어찌 없는고. 무슨 뜻으로 없다 하는고. 어떻게 하든지 의심만 할 것이어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몽산의 參意방법인 趙州因甚道無을 절충 또는 간접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전강선사는 몽산법어를 매우 많이 강의했다. 몽산의 참구방법인 趙州因甚道無를 수용하고 있는데, 무자(無字)를 드는 방법에는 單提와 全提의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34) 백용성 역, 『鮮漢文譯禪門撮要』 5권 부록 修心正路, 법어사, 1923년(대정 12) 초판본, pp.218-219. ;『각해일륜』, 대각교당, 1930, 초판본, pp.63-65.
35) 백용성,『각해일륜』, 대각교당, 1930, p.65. : 백용성 역, 『선한문역 선문촬요』 부록 修心正路p.220, 10항-13항.
36) 백용성 역, 『국한문역 선문촬요』부록 修心正路, p.217,
“근일에 선각자들이 많이 말하되 어찌 없다고 하는고. 그러든지. 또 무슨 까닭으로 없다고 하는고. 또 무엇을 인하야 없다고 하는고. 어찌 없는고. 어찌 없다고 하는고. 이와 같이 하면 다 趙州의 뜻을 參究하는 參意死句가 된다. 조주는 무엇을 인하야 무라고 일렀는고. 또 但只無無라 하며 또 무가 무엇인고 이와 같이 하면 활구참선이다 하니 그래서 조선말과 중국말을 섞어하면 활구가 되고 순전히 조선말로 하면 參意死句가 된다하니 참 그러한 말을 마시오. 나는 항상 제방 학자들이 이러한 말을 함을 대단히 탄식합네다.”
전강선사는 몽산법어를 매우 많이 강의했다. 몽산의 참구방법인 趙州因甚道無를 수용하고 있는데, 무자(無字)를 드는 방법에는 單提와 全提의 두 가지가 있다고 소개했다.
"하나는 단제, 그냥 ‘무∼’하고 아무 일체 다른 말은 없이 ‘무∼’만 들여다 보는 거여.
조주스님이 ‘무’했으니까 ‘무∼’만 들여다보는 거여. 숨을 들어 마시다 내쉬면서 ‘무∼’ ‘어째서 무라 했는고’ 그런 게 아니여, 그냥 ‘무∼’만 들여다보고. 이것을 단제(單提)라고 그러고.
전제(全提)는 ‘어째서 무라고 했는가?’ ‘조주스님은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 이렇게 의심을 하는 거 이것은 전제인데, ‘무∼’하고 단제로 하는 데에도 장단점이 있고, 전제로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하는 데에도 장점과 단점이 있다.
(……)
그런데 ‘무∼’하고 무(無)만 항상 들여다보면 이 생각 저 생각 복잡한 생각은 일어나지 않고 조용해지고 좋기는 좋은데, 까딱하면은 너무 조용하다 보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혼침(昏沈)에 빠질 우려가 있고 무기(無記)에
떨어지거든. 무기에 떨어지면 아무리 고요하고 편안하고 맑고 좋다 해도 확철대오(廓徹大悟)를 못하는 거여.37)"
전강선사도 두 가지 방법이 다 필요하다고 말하고는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몽산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대혜종고도 無자를 제시한 다음에 疑來疑去, 提撕來提撕去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대혜의 단제방법 속에는 疑情이 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전강의 말은 불확실한 견해라고 생각된다.
퇴옹성철선사는『화두 공부하는 법』에서, 매우 강하게 몽산의 방법을 택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조주가 無라 했는데, 어째서 無라 했나? 이렇게 하는 게(것이), 화두 하는 근본이야”38) 등등 곳곳에서 적극적으로 몽산의 방법을 강조하고 있는데, 다음의 인용을 보고자 한다.
"‘무∼하면 그만이지 어디 딴 거 뭐 있나’ 하는 그런 소리 더러 들었는데, 예전 스님들이 다 말씀하시기를
‘조주인삼도무(趙州因甚道無)?’ 조주는 어째서 ‘무’라 했나? 조주가 어째서? 하는 식으로 ‘어째서’를 넣으라고 했어. 화두에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니 마삼근(麻三斤)이니 무슨 무슨 화두, 화두가 안많나?
하지만 어떤 화두를 하던지, 어째서 어째서 이걸 늘 붙여서 해야 된다 말이야.
어떤 사람은 ‘어째서’를 할 필요가 있나?라고 하지만, 그런게 아니야. 그냥 ‘무∼’하거나 그냥 ‘마삼근’하면, 그건 화두하는 방법이 잘못된거야. 그렇게 해서는 깊이 못 들어가. 절대 깊이 못 들어가!39) "
성철스님은 대혜종고의 但看話頭, 但擧無字의 單提방법을 부정하고, 몽산의 全提방법인 趙州因甚道無만 강조하고 있다. 몽산의 趙州因甚道無는 퇴옹성철에 의하여 더욱 무자화두 참구법으로 토착화 되었다고 할 수 있
다. 퇴옹성철의 말 가운데, “예전 스님들이 다 말씀하시기를 ‘조주인삼도무(趙州因甚道無)?’ 즉 조주는 어째서 ‘무’라 했나? 조주가 어째서? 하는 식으로 ‘어째서’를 넣으라고 했다.”라는 말은, 과거부터 대부분의 선승들
이 이 방법으로 참구⋅지도해 왔다는 사실을 시사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근대 한국 선(禪)의 중흥조라고 하는 鏡虛선사도 등암화상에게 주는 글에서 “狗子還有佛性也無. 趙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라고 하여, 전적으로 몽산의 전제방법을 수용하고 있고,40) 그의 제자 滿空선사도 무자화두 드는 법 에서 “한 중이 조주스님에게 묻되, 개도 도리어 불성이 있나이까, 없나이까? 하니 조주스님은 ‘無’라 하였으니, 조주는 무엇을 인하여 無라 일렀는고?”41)라고 하여 역시 몽산의 방법을 따르고 있다.
그런데 퇴옹성철은 『화두 공부하는 법 』에서 “조주인삼도무(趙州因甚道無) 하는 것이, 비록 中峰스님 이전에는 그렇게 했다는 특별한 기록은 없지만 그전에도 다 그런 방식으로 했는데”(p.50)라고 하여, 마치 그 전부터 이런 방식으로 참구했던 것으로 말하고 있으나, 사실 완산과 몽산 이전에는 ‘趙州因甚道無’나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으로 참구하라고 말한 선승은 없다. 그리고 趙州因甚道無가 中峰明本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으나 사실 이것은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완산정응과 몽산덕이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37) 송담스님, 1990년 4월 첫째 일요법회 법문(테이프 No.414).
38) 성철스님의 『화두 공부하는 법 』, 해인사출판부, 2004, p.75.
39) 성철스님의 『화두 공부하는 법 』, 해인사출판부, 2004, pp.40-41.
40) 『경허집』(韓佛全11, 594,a), 與藤菴和尙,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趙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着衣喫飯, 屙屎放尿, 侍奉敎導, 看讀迎送, 乃至行住坐臥, 一切時處, 廻光返照, 擧來擧去, 疑來疑去, 察而復觀, 磨而復硏, 將思量世間塵勞之心, 回來秖在無字上, 如是用功. 日久月深自然契悟.”
41)『만공법어』, 덕숭산 수덕사 능인선원, 1982, p.236, 무자화두 드는 법 .
Ⅴ. 漢岩禪의 간화방법 - 單提參句(대혜)와 全提參意(몽산) -
보조지눌에 의하여 간화선이 전래된 이후 우리나라 선승들의 수행법은 모두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선이다. 근대의 선승 한암중원도 마찬가지로 간화선이다. 그는 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그 방법은 앞의 두 가지 방법 가운데 대혜종고의 單提參句방법이다.
“어떤 승이 조주에게 묻기를,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조주가 ‘無’라고 하였으니, 이 한 글자가 어떤 伎倆을 갖고 있는가? 청컨대 안배(安排)하여 헤아려 보도록 하라. 계교안배를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다만 가슴 속이 답답하고 마음에서 번뇌가 일어남을 알아차릴 때가 바로 좋은 때이니, 그때엔 第八識이 활동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음을 느낄 때에는 방치하지 말고 오로지 이 無字위에서 제시하여 참구하고 참구하면 生處는 저절로 熟處가 되고 熟處는 저절로 生處가 될 것이다.”고 하였으니,
대저 일상생활 속에서 살피고 살피는 것이 반조가 아니겠는가. 思量塵勞의 마음을 가지고서 無字上으로 돌아가서 참구하고 참구하는 것이 화두가 아니겠는가.42)
42) 한암선사법어집,『정본 한암일발록』상권, 오대산 월정사, 2010, p.171,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只這一字, 儘爾有什麽伎倆가. 請安排計較看하라 計較安排를 無處可以頓放이오
只覺得肚裏悶하고 心頭煩惱時가 正是好底時節이니 第八識이 相次不行矣리라 覺得如此時에 莫要放却하고 只就這無字上提撕하야 提撕來, 提撕去하면 生處自熟하고 熟處自生矣라하니
大抵向日用應緣處하야 覰捕來覰捕去가 非返照乎아 將思量塵勞底心하야 回在無字上하야 提撕來提撕去가 非話頭乎아 然則杲(大慧宗杲)禪師도 亦敎人以返照法式, 而兼示以擧話大略.
이것은 선문답 21조 가운데 제10답인데, 한암은 『대혜서장』答榮侍郎章에 있는 내용을 차용하여 “이 無字를 참구하고 참구하면 生處는 저절로 熟處가 되고 熟處는 저절로 生處가 될 것이다.”라고 하여, ‘오로지 참구만 하라’는 논조로 말하고 있을 뿐, 몽산처럼 “어째서(왜) 조주가 ‘無’ 라고 했는지 그 뜻을 참구하라(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는 식으로는 일체 말하지 않았다. 또 한암은 제3답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참구에 대하여 논한다면 마땅히 ‘조주의 無字’와 ‘정전백수자’와 동산의 ‘마삼근’과 운문의 ‘간시궐’ 등 아무 재미없는 화두를 의심하고 또 의심하며, 참구하고 또 참구하되, 마치 모기가 무쇠 소(鐵牛)에 앉아 주둥이조차 박을 수 없는 곳에서 몸뚱이채 뚫고 들어가듯 해야 한다.
만일 털끝만큼이라도 차별심과 털끝만한 분별심이 그 사이에 동하면, 옛 사람이 말한 “잡독이 마음에 침투하여 지혜를 손상시킨다.”함이니, 공부하는 학인(납자)은 가장 먼저 깊이 경계해야 할 점이다.43)"
43) 한암선사법어집,『정본 한암일발록』상권, 선문답 21조 제3답, 오대산 월정사, 2010, pp.155-156,
“若論參究댄 當以趙州無字와 庭前栢樹子와 洞山麻三斤과 雲門乾屎橛等無味之語로 疑來疑去하며 擧來擧去하되 如蚊子上鐵牛하야 下觜不得處하야 和身透入이니
若有些毫差別念과 纖塵計較量이 動乎其間이면 古所謂雜毒이 入心하야 傷乎慧命이니 學者第一深誡者也니라.”
여기서도 한암은 단순히 ‘마땅히 조주의 無字를 참구만 하라’는 논조로 말하고 있을 뿐, ‘어째서 조주가 無라고 했는지를 참구하라(趙州因甚道無)’는 말은 일체 없다. 全提參意방법에 대해서는 그 어떤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한암은 몽산의 全提參意방법보다는 대혜의 單提參句방법을 택하고 있다고 보인다.
한말-근현대의 경허⋅용성⋅만공선사, 그리고 약간 후대지만, 전강(田岡)⋅성철선사44) 등 거의 모든 선승들이 몽산의 방법인 ‘趙州因甚道無’를 직간접적으로 수용하여 납자들에게 적용⋅지도하고 있으나, 유일하게 한암선사만은 몽산의 방법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또 한암은 몽산의 공부삼분단(工夫三分段)인 동정일여, 몽중일여, 오매일여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한 적이 없다. 오매일여(寤寐一如)는 근래 크게 논의된 적이 있는 바와 같이45) ‘실제 화두참구가 꿈속에서도, 잠 잘때에도 성성(惺惺)하게 참구되어야 한다.’는 것으로서, 이런 방식의 오매일여는 중국 선종사를 통관하여 몽산에 이르러 처음으로 주장된 것이다.
44) 전강스님은 몽산어록을 많이 강의하였는데,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를 강조하고 있다.
45) 윤창화, 성철스님의 오매일여론 비판 ,『불교평론』36호, 2008, pp.124-152. 성철스님은 오매일여를 공부 및 깨달음의 척도로 삼았다.
또 한암선사는 경봉스님이 悟後保任에 대하여 질문한 답서에서, 대혜의『書狀』은 활구법문이므로 좌우에 두고 읽어야 할 책이라고 극찬하는 반면, 몽산어록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하지 않는다.
"만약 一生事를 원만구족하게 하고자 한다면, 옛 조사들의 방편 語句로써 스승과 벗을 삼아야 합니다.
우리나라 보조국사도 일생토록 六祖壇經으로 스승을 삼고 大慧書狀으로 벗을 삼았습니다. 祖師의 言句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책은 대혜『서장』과 普照의 『절요』와 『간화결의논』이 활구법문입니다.
그 책들을 항상 책상 위에 놓아두고 수시로 점검해서 자기에게 돌린다면 一生事는 거의 어긋남이 없을 것입니다.46)"
46) 한암선사법어집, 『정본 한암일발록』상권, 오대산 월정사, 2010, p.279, 答鏡峰和尙書,
“若欲一生事圓滿具足인댄 以古祖師方便語句로 爲師友焉이라
故로 吾國普照國師는 一生以壇經爲師하고 書狀爲友하셧나이다 祖師言句中에도 第一要緊한 冊子는 大慧書狀과 普照節要와 看話決疑가 是活句法門이라
恒置案上하야 時時點檢하야 歸就自己면 則一生事가 庶無差違矣”
대혜종고의 『書狀』에 대해서는 “祖師들의 말씀 중에서도 가장 요긴한 책이고, 또 ‘활구법문’이라고 하여 적극 권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선승들에게 많은 영향을 준 『몽산화상법어』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다.
여기서는 물론이고 다른 어떤 글에서도 보라고 언급한 적이 없다.
이렇게 본다면 한암선사는 몽산의 화두(무자)참구법이나 또는 오매일여 등 그의 선수행방법은 일체 수용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몽산의 방법은 택하지 않고, 대혜종고의 방법을 택하고 있다.
Ⅵ. 한암의 화두참구법--중도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한암선사는 화두참구의 두 가지(대혜방법, 몽산방법) 방법 가운데 대혜종고의 방법을 택하고 있는 것을 제외한다면, 기타는 여타 선승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그는 ‘中道’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두참구에서도 중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이다.
한암선사가 화두참구에 대하여 밝힌 글은 擧話方便(화두 드는 방법) , 猫捕鼠(고양이기 쥐를 잡듯이) 등이 있다. 특히 擧話方便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다.
"(화두를 참구할 때는) 급하게도 하지 말고 느슨하게도 하지 말라.
화두참구의 妙(핵심)는 거기(不急不緩)에 있다. 또 너무 열심히 하면(애를 쓰면) 집착으로 가게 되고 망각하면 無明에 떨어지게 된다(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
천 가지 의심, 만 가지 의심은 다만 한 의심에 불과할 뿐이니,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 암탉이 알을 품고 있듯이, 배고플 때 밥 생각하듯이, 목마를 때 물 생각하듯이 하여야 한다.
사량(思量)과 지해(知解, 분별심)를 모두 버려서, 한 치의 풀(번뇌)도 일어나지 않게 하고, 티끌만한 번뇌도 두지 말라. 다만 모든 분별심(情識)을 끊고, 특별히 성스럽다는 생각도 내지 말고, 성성역력(惺惺歷歷)하고, 밀밀(密密) 면면(綿綿)하게 하여야 한다.47)"
47) 한암선사법어집, 『정본 한암일발록 』상권, 오대산 월정사, 2010, p.40, 擧話方便(화두 드는 법) ,
“不急不緩, 妙在其中, 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
千疑萬疑, 只是一疑, 如猫捕鼠, 如鷄抱卵, 如飢思食, 如渴思飮,
思量知解, 一切放下, 寸草不生, 纖塵不立. 但盡凡情, 別無聖解, 惺惺歷歷, 密密綿綿.”
중도적 참구의 핵심 가운데 첫째가 ‘急緩의 중도’, ‘不急不緩의 중도’ ‘緊緩(急緩)의 중도’이다. 즉 간화(화두 참구)의 핵심은 급하게 하지도 말고(不急), 그렇다고 느슨하게 하지도 않는데(不緩) 있다는 것이다. 조급심
(躁急心)으로 힘들여서 ‘무’ ‘무’ 하고 애를 써서 참구하면 기혈이 상승하여 두통을 일으키는 상기병에 걸릴 수 있고, 반대로 이완되면 긴장감이 떨어져서 혼침(졸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너무 열심히 참구하면 집착으로 발전하게 되고, 느슨하게 할 경우 망각과 無明에 떨어지게 된다(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고 주의를 주고 있는데, 여기서 無明이란 참구작용, 지혜작용이 없는 상태로 無記空과 같다
고 할 수 있다.48) 참구 상태가 이완되면 그것은 화두를 망각한 상태이고, 망각하게 되면 혼침(昏沈, 멍한 것), 도거(掉擧, 잡념), 졸음(睡眠), 無記空, 落空가운데 어디에 빠져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열심
히 참구하는 것(애쓰는 것)’은 집착을 낳게 되는데, 이것은 ‘급하게 참구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48) 普濟尊者示覺悟禪人(蒙山和尙法語略錄, 松廣寺板, 1608년,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念起念滅謂之生死. 當生死之際, 須盡力提起話頭. 話頭順一起滅卽盡. 起滅卽盡處, 謂之寂, 寂中無話頭, 謂之無記. 寂中不昧話頭, 謂之靈. 卽此空寂靈知, 無壞無雜, 如是用功不日成之.”
두 번째는 ‘勤忘(勤怠)의 중도’이다. 너무 열심히 참구하면 그것은 화두에 집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또 망각하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집착도, 망각도 하지 않는 것이 勤忘(勤怠)의 중도인데, 이것은 急緩의 중도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急緩(不急不緩)은 시간적으로 조급함과 관계되어 있고, 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은 정신적 것, 즉 집착과 관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覺溟조창환거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不急不緩의 중도를 강조하고 있다.
“선생의 병은 血氣가 조화롭지 못한 증세이므로 純血下氣를 해야 나을 수 있는데, 이것은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에 마음을 너무 과도하게 쓴 탓입니다. … 방법은 마삼근 화두가 제일 묘방인데, 잘못하면 가장 맛있는 음식도 도리어 독약이 됩니다. 화두를 참구할 때는 급하지도 않고 느슨하지도 않게 하는데 妙方이 있습니다(不急不緩에 妙在其中). 급하게 하면 혈랑(血囊)을 요동치게 해서(急卽動血囊) 설상가상으로 병이 더하게 되고, 느리게 하면 망상에 떨어져서(緩卽落妄想) 고(苦)가 생깁니다.”49)
49) 先生病은 血氣不調症이라 純血下氣을 主로 하여야 病差할 것이올시다. 最初工夫 지을 때에 用心過度한 까닭이오니(……).
方法은 麻三斤話頭가 第一妙方이온데 잘못하면 上味飮食이라도 도리여 毒藥이 됩니다. 不急不緩에 妙在其中이올시다. 急卽動血囊하야 雪上加霜으로 病이 더하고 緩卽落妄想하야 苦가 생깁니다. 一毫雜念이 無한 中에 話頭을 無滋味沒摸索하게 擧起하야 약간 정신을 가다듬어 이것이 무삼 道理인고? 이와 갓치 익히고 익혀 日久月深하면 自然天眞妙性에 契合합니다. 이 말을 보고 速하게 합하기를 求하지도 말고 始終을 如一하게 (할 것이요) 過度한 생각 내지 마시는 것이 좋습니다. 都是무엇이던지 馳求하는 것이 第一障碍魔侵이 되오니 恒常放曠自由하야 無心安心靜心攝心이 第一上上妙道올시다.『정본 한암일발록 』상권, p.364.
여기서도 역시 화두참구의 핵심 즉 妙方은 급하게 하지도 않고(不急)하고, 느슨하지도 않게(不緩) 하는 데 그 妙方이 있다(不急不緩, 妙在其中).”는 것이다. 급하게 하면 혈랑(血囊)을 요동치게 해서 상기병이 더하게 되고, 느리게 하면 망상에 떨어져서(緩卽落妄想) 고(苦)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화두에 집중⋅몰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 부동자세로 온 정신과 시선을 집중하고 있듯이(猫捕鼠)50) 참선자도 화두 삼매에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좌선을 하고 있으면서 화두 삼매가 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혼침 속에 있거나 번뇌 망념 등 잡념을 일으키고 있는 상태[散亂, 棹擧]라고 할 수 있다. 또 화두참구는 지속성이 유지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비유한다면 암탉이 알(卵)을 부화하기 위하여 21일 동안 품고 있듯이, 화두참구는 간단(間斷, 단절됨) 없이 지속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좌선하는 시간에만 참구하고 기타 시간에는 방치해 버린다면 그것은 8부 능선을 오르락 거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50)『天目中峰어록』(신찬속장경70, 713,c), 示徒. “所以喻如貓捕鼠 心目一於注視, 少怠則失鼠矣 如雞抱卵 暖氣貴於相接 棄之則不成種子矣 此念之所以又為難也.”
한암선사는 집중(삼매)와 지속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게송으로 요약하여 정리하고 있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큰 저택의 담장가에서 고양이가 쥐 잡는 것을.
마음과 눈이 움직이지 않고 한 곳만 주시하고 있구나.(집중, 화두삼매)
또 보지 못했는가. 촌집 둥지 속에 닭이 알을 품는 것을.
따뜻한 기운을 지속하여 잠시도 일어서지 않는구나(지속적인 참구).
지사(志士)의 행업(行業)도 또한 이와 같아서 순일(純一)하여 묘함을 얻어 혼연히 말을 잊는다.
혼연히 말을 잊음이여, 혼침(昏沈)에도 떨어지지 않고 도거(掉擧, 망상) 하지도 않는다. 만행(萬行)과 만덕(萬德)을 이로부터 이루어지나니 이루고 못이룸은 모두 자기에게 달렸도다.51)"
51) 『정본 한암일발록 』상권, p.101, 고양이가 쥐를 잡듯이(猫捕鼠) ,
“頌曰. 君不見가. 大宅墻邊猫捕鼠여,
心眼不動注一處로다.
又不見가. 村舍窠裏鷄抱卵이여,
暖氣相續不暫擧로다.
志士行業亦如是하야 純一得妙渾忘語로다.
渾忘語여, 不落昏沈不掉擧라. 萬行萬德從此成이니 成與不成總自許로다.”
또 화두를 참구할 때는 情識이나 사량분별심은 모두 버릴 것이며, 특별히 성스럽다는 생각도 내지 말아야 하며, 화두를 참구하고 있는 정신 상태가 초롱초롱(惺惺)하고 분명(歷歷)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상이 한암선사가 擧話方便(화두 드는 방법) 등에서 밝히고 있는 화두참구법인데, 핵심은 (1)急緩(不急不緩)의 중도, (2)화두삼매(집중), (3)지속성 유지(間斷없는 지속적인 참구)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4)사량분별심을 버릴 것(思量知解, 一切放下) 등이다. 이상을 도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화두참구의 핵심 |
방법 |
자료 |
(1) 不急不緩의 중도, 勤忘(勤怠)의 중도. |
급하게 하지도 말고 느슨하게 하지도 말라. 또 너무 부지런히(열심히) 하지도 말고, 망각하지도 말라. 이유 : 급하게 하면 상기병(두통)에 걸림. 느슨하게 하면 화두를 망각하게됨. 너무 열심히 참구하면 집착이 됨. 망각하면 無明에 떨어짐. 결과 : 깨달을 수 없음. |
不急不緩, 妙在其中, 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 |
(2) 화두삼매(집중) |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처럼 하라. 이유 : 삼매, 집중하지 않으면 번뇌망상, 혼침, 도거, 무기공에 떨어짐. 결과 : 깨달을 수 없음. |
如猫捕鼠, 密密 |
(3) 지속성 유지 (間斷없이 지속적 참구 |
암탉이 알을 품고 있듯이 하라. 이유 : 지속하지 않으면 응축될 수 없음. 결과 : 깨달을 수 없음. |
如鷄抱卵, 綿綿 |
(4) 사량분별심을 버릴 것 |
思量과 知解를 모두 버릴 것. 한 치의 번뇌도 티끌만한 번뇌도 두지 말 것. 모든 분별심〔情識〕을 끊을 것. 특별히 성스럽다는 생각도 내지 말 것. 이유, 결과 : 사량분별심 등으로 인하여 깨달을 수 없음. |
思量知解, 一切 放下, 寸草不生, 纖塵不立. 但盡 凡情, 別無聖解 |
不急不緩의 중도에 대하여 대혜선사가 영시랑에게 답한 편지(答榮侍郎)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을 결정코 이 일단대사 인연에 두고자 한다고 하니, 이미 마음을 그렇게 먹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급하게 하지 마십시오. 급할수록 더욱 늦어집니다. 또 느리게 하지도 마십시오. 느리면 게으름에 빠지게 됩니다. 마치 거문고를 조율하는 것과 같이, 緊緩(急緩)의 중도를 얻어야만 비로소 곡조를 이룰 수가 있습니다(第一不要急, 急則轉遲矣. 又不得緩, 緩則怠墮矣. 如調琴之法, 緊緩要得中, 方成曲調).52)
52)『大慧普覺禪師語錄』(大正藏47, 939,b), 答榮侍郎(茂實) ,
“留心欲究竟此一段大事因緣, 既辦此心, 第一不要急, 急則轉遲矣. 又不得緩, 緩則怠墮矣. 如調琴之法, 緊緩要
得中, 方成曲調.”
대혜종고 역시 화두참구의 핵심은 緊緩(急緩)의 中道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중도는 중국선에서도 수행의 핵심, 무집착의 척도였다고 할 수 있다. 화두 참구에서 중도는 매우 중요하다. 앞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중도를 이탈하면 올바른 참구법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편 화두참구가 不急不緩의 중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는 화두공부가 순일한 상태, 일정한 궤도에 오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또 대혜선사는 증종승 에게 답한 편지에서도 不急不緩의 중도를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대부분 얻고자 하는 마음(有所得心)으로 참구하고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망상이 없는 가운데 참으로 망상이오. 그런 생각을 놓아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너무 급하게 하지도 말고, 너무 느슨하게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然, 不得太緊, 不得太緩). 다만 이렇게 공부해 간다면 마음의 힘이 무한하게 덜어질 것(省力)입니다.53)"
53)『大慧普覺禪師書』28권(大正藏47, 934,b), 答曾宗丞(天隱) ,
“而今人, 多是將有所得心學道 此是無妄想中真妄想也 但放教自在 然不得太緊 不得太緩 只恁麼做工夫 省無限心力.”
緊緩(急緩)의 중도와 不急不緩의 중도를 유지하는 것이 곧 화두참구의 핵심이라는 것인데, 한암선사가 화두참구에서 중도를 강조하고 있는 것 역시 대혜종고의 간화방법에 바탕하고 있는 것이다.
Ⅶ. 맺는말
간화선은 남송의 선승 대혜종고(1089∼1163)에 의해 완성⋅체계화 되었다. 그(대혜)는 무자화두를 참구하는 방법에 대하여, “망념이 일어날 때는 오로지 이 ‘무’라고 하는 한 글자를 참구하라(妄念起時, 但舉箇無字).” 또 “조주가 無라고 했으니, 이 無라고 하는 한 글자는 곧 허다한 악지견과 악각(惡覺, 잘못된 생각)을 꺾어 버리는 도구이다(看箇話頭, 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此一字子, 乃是摧許多惡知惡覺底器仗也).”라고 하여, 단순히 무자를 참구하는 單提參句(句를 제기하는 방법) 방법, 單提無字參句(오로지 무자를 제기하는 방법) 방법을 제시했다.
그런데 150여 년 후인 원대에 이르러 皖山正凝과 蒙山德異는 새로운 참구방법인 全提參意방법을 제시했다. 완산은 示몽산법어 에서, 그리고 몽산덕이는 무자십절목 에서 각각 “준동함령은 모두 불성을 갖고 있는데 어째서 조주는 ‘無(없다)’라고 했는고? 그 뜻을 참구하라(皖山;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 蒙山;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고 하여, 대혜종고와는 다른 방식을 제시했다.
완산과 몽산이 全提參意방법을 제시한 것은 대혜종고의 單提參句방법으로는 화두참구의 조건인 의단형성이 잘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단형성을 위하여 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의 全提參意방법을
제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완산과 몽산의 全提參意방법은 ‘조주가 왜 無라고 한 것인지 그 뜻을 알아야 한다(趙州因甚道無)’는 것이 되므로 결과적으로 화두의 뜻을 參하는 參意가 되며, 이것은 義理禪으로서 語路, 意路등 사량분별심이 개재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하겠다.
몽산의 전제참의 방법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후기에서 고려말 무렵이다. 고려 말에는 몽산의 법어집인 『몽산화상법어약록』이 널리 독서, 유포되었다. 당시 몽산덕이는 중국의 선승 가운데 가장 우뚝한 고승으로 존숭되었는데, 나옹혜근, 태고보우, 무학자초 등 고려 말의 선승치고 『몽산화상법어』를 자신의 법문처럼 사용하지 않은 이들이 드물 정도이다. 이것은 元지배하의 영향이 컸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후 우리나라 간화선에는 單提無字방식(대혜식)과 全提無字방식(몽산식)의 두 가지 방법이 공존⋅혼재하게 되었으나, 사실상 대혜방식은 몽산방식에 흡수되었고, 몽산방식 일변도로 정착되었다.
조선시대 淸虛휴정은 “狗子還有佛性也無. 州云無. 一切含靈, 皆有佛性,趙州因甚道無. 意作麽生”(『心法要抄』 參禪門)라고 하여, 몽산의 방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고, 白波亘璇은 『선문수경』 무자간병론 科解에서, 일체 화두에는 모두 單提와 全提가 있다고 언급한 다음, “조주선사는 어째서 무라고 했는고(趙州因甚道無)? 이렇게 참구하면 全提參意라 하고, 단순하게 無자만 들어서 ‘이것이 무엇인고?’라고 참구하면 單提參句라고 한다.”고 한다고 말한 다음, 이 두 가지 방법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나, 비중은 몽산의 全提參意방법인 趙州因甚道無에 더 두고 있다.
근현대에 이르러 백용성스님은 修心正路에서 대혜종고식이든, 몽산식이든 주의할 점은 의심만 할 뿐, 분별심으로 참구해서는 안 된다고 하여, 매우 명쾌하게 규명했다. 두 가지를 모두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체중생이 다 깨달을 성품이 있거늘 어찌 조주는 無라 하는고. 무슨 까닭으로 無라 하시는고. 어찌 없다 하시는고. 어찌 없는고. 무슨 뜻으로 없다 하는고. 어떻게 하든지 의심만 할 것이어다.”라고 하여, 대혜방식 보다는 몽산방식을 더 수용하고 있다.
또 경허선사⋅만공선사⋅전강선사⋅성철선사 등 근현대 거의 모든 선승들이 몽산의 ‘趙州因甚道無’를 무자화두 참구방법으로 수용, 권유하고 있고, 특히 퇴옹성철선사는 『화두 공부하는 법 』에서, “조주가 無라 했는데,
어째서 無라 했나? 이렇게 하는 게(것이), 화두 하는 근본이야” 또 “그냥 ‘무∼’하거나 그냥 ‘마삼근’하면, 그건 화두하는 방법이 잘못 된 거야”라고 하여, 몽산의 全提방법인 趙州因甚道無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간화선을 대성시킨 대혜선사는 이런 방식(몽상방식)으로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망념이 일어날 때는 오직 이 하나의 무자를 들라(妄念起時, 但舉箇無字)’ 또 ‘조주가 無라 했으니, 이 한 글자는 곧 생사(번뇌망념)를 단절시키는 칼이다. (州云無. 只這一字, 便是斷生死路頭底刀子也.” 라고 하여, 오로지 單提參句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간화선을 도입한 고려 보조지눌은 “조주가 ‘무’라고 했으니 다만 제시擧覺하라[只管提撕擧覺]”고 하여, 대혜의 방법인 單提參句無字방식을 택하고 있다. 또 그는 『간화결의론』에서 參意와 參句를 구분한 다음에 “요
즘(보조 당시)에는 參句방법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대부분 參意방법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이것은 화엄교학을 통해 이해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하여, 參句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
했고, 또 參意는 死句이고 參句는 활구라고 규정했다.
보조지눌의 견해에 의거하여 몽산덕이의 參意방법을 논한다면, 몽산의 방법은 ‘조주가 왜 無라고 한 것인지 그 뜻을 알아야 한다(趙州因甚道無)’는 것이므로 義理禪에 가깝다고 할 수 있고, 語路, 意路등 사량분별심이 개재될 가능성이 있다.
근대의 선승 한암중원은 선문답 21조 제10답에서 대혜 『書狀』의 答榮侍郎章의 내용을 차용하여 “이 無字위에서 제시하여 참구하고 참구하면 生處는 저절로 熟處가 되고 熟處는 저절로 生處가 될 것이다.”라고 하여, ‘오로지 참구만 하라’는 논조로 말하고 있을 뿐, 몽산처럼 “어째서(왜) 조주가 ‘無’라고 했는지 그 뜻을 참구하라(僧問趙州. 狗子還有佛性也無.州云無. 蠢動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는 식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다.
또 그는 대혜종고의 『書狀』에 대해서는 ‘활구법문’이라고 하여 높이 평가했으나 『몽산화상법어(어록)』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한 적이 없다. 또 몽산이 수행의 척도, 깨달음의 척도로 내세운 동정일여⋅몽중일여⋅오매일여 등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하지 않았다.
한암은 몽산의 全提參意방식보다는 대혜종고의 單提參句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암은 ‘조주의 無字를 참구만 하라’는 논조이고, 몽산과 같이 ‘어째서 조주가 無라고 했는지를 참구하라(趙州因甚道無)’는 말은 일체 없다.
몽산의 방법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보여 진다.
한암중원이 몽산방식 보다는 대혜방식을 택한 것은 몽산의 방식이 타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선승 대부분이 의단 형성을 이유로 몽산의 방식을 수용하고 있는데도 유독 몽산방식을 수용하지 않은 것은,이미 대혜의 단제방법인 ‘무’ 속에는 의정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고, 또 몽산의 방법이 參意로 死句에 가깝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왜 몽산의 방법에 대하여 왜 비판하지 않았는가? 그는 대혜종고, 보조지눌로 전해오는 단제참구방법에서 득력하여 깨달았기 때문이고, 그 확신 아래에서 대혜방법이 옳다고 보고 그 방법을 선택⋅수용한 것이다. 또한 그는 자신의 생각⋅正見⋅입장만 피력하면 될 뿐, 굳이 先代선승들을 거론⋅비판하는 것은 바람직한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암선사의 화두참구방법은 여타 선승들의 방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핵심은 ‘中道’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화두참구에서도 중도를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본 것이다.
그 가운데 첫째가 ‘急緩의 중도,’ ‘不急不緩의 중도’ ‘緊緩(急緩)의 중도’ 이다. 즉 급하게 하지도 말고(不急), 그렇다고 느슨하게 하지도 않는데(不緩) 있다는 것이다. 조급심(躁急心)으로 힘들여서 ‘무’ ‘무’ 하고 애를 써서 참구하면 기혈이 상승하여 두통을 일으키는 상기병에 걸릴 수 있고, 반대로 이완되면 긴장감이 떨어져서 혼침(졸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너무 열심히 참구하면 집착으로 발전하게 되고, 느슨하게 할 경우 망각과 無明에 떨어지게 된다(勤則近執着, 忘則落無明)고 주의를 주고 있는데, 여기서 無明이란 참구작용, 지혜작용이 없는 상태로 無記空과 같은 것이다.
두 번째는 ‘勤忘(勤怠)의 중도’이다. 너무 열심히 참구하면 그것은 화두에 집착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며, 또 망각하면 무명에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상이 한암선사가 擧話方便(화두 드는 방법) 등에서 밝히고 있는 화두참구법인데, 핵심은 (1)急緩(不急不緩)의 중도, (2)화두 삼매(집중), (3)지속성 유지(間斷없는 지속적인 참구), (4)사량분별심을 버릴 것(思量知解, 一切放下)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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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wo ways of Hwaduchamgu and Hanam Seon
Yoon Chang-hwa(Minjoksa CEO)
Ganhwa Seon(看話禪) was completed and organized by Daehye Jong'go (大慧宗杲, 1089∼1163). Daehye simply emphasized on only a letter, ‘Mu (無)', saying "when a delusion arises, only focus on a letter, ‘Mu (無)’(Mangnyeomgisi Dangeogaemuja(妄念起時但舉箇無字)).”, “Because Joju(趙州) said ‘Mu(無)’, this letter ‘Mu(無)’ is the tool to cut down many bad short views and bad enlightenments.” This is called, the way of Danjaechamgu(單提參句) or the way of Danjaemujachamgu(單提無字參句).
But, after a century and a half in Yuan Dynasty(元代), Wansan Jeongeung(皖山正凝) and Mongsan Doekiee(蒙山德異, 1231∼1308?) suggested a new meditation method, so called, Jeonjechameui(全提參意). Wansan(皖山) and Mongsan(蒙山) showed another way from Daehye Jong'go(大慧宗杲), saying “all the sentient beings had Buddhata(佛性), but we should try to understand the reason why Joju said ‘Mu (無)’(Iljeolhamryeong, Gaeyubulseong, Jojuinsimdomu. Euijakmasaeng(一切 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麼生)).” to form a doubt, Euidan(疑團).
In Korea, Mongsan's Jeonjechameui(全提參意) method was settled as the major Ganhwa method beating out Daehye's Danjaechamgu(單提參句) method through the times of Joseon to the modern times since its inflow in the late of Goryeo. Seon Masters, Baek Yongseong, Gyeongheo, Mangong, Jeongang, and Seongcheol etc positively recommended to accept Mongsan's ‘‘Jojuinsimdomu(趙州因甚道無)’ as the meditation method with the Whadu of ‘Mu(無)’ letter. Especially in the ‘how to study Hwadu’, Seon Master, Seongcheol emphasized ‘Jojuinsimdomu(趙州因甚道無)’, Mongsan's Jeonje(全提) method, saying “Joju said Mu(無), why did he say Mu(無)? Doing like this is the basis to do Hwadu." and also “if you just say ‘Mu(無)∼’ or just ‘Masamgeun', it is a wrong way to do Hwadu.”
But Seon Master, Daehye who brought Ganhwa Seon to a big success haven't said like the way. Bojo Jinul was also same. Especially Jinul criticized the chameui(參意) method saying “there are 2 kinds of methods, Chameui(參意) and Chamgu(參句) when it comes to do Hwadu, recently(at the time when Bojo lived) there are few people who do meditation with it, most of practitioners choose the Chameui(參意) method which is only focusing on clarifying meaning of Hwadu.” He insisted that we should practice with Chamgu(參句), not Chameui(參意), and defined that Chameui(參意) was Sagu(死句), and Chamgu(參句) was Hwalgu(活句).
Seon Master, Hanam Jungwon(1876∼1951) in the modern times didn't accept Mongsan's Jeonjechameui(全提參意) method. But he accepted Daehye Jong'go's Danjaechamgu(單提參句) method. Hanam just said ‘Meditate with only a letter, Mu(無)' like Daehye Jong'go, he never had said in the tone of Mongsan's method, ‘Meditate why Joju said Mu(Jojuinsimdomu(趙州因甚道無))'. And also, he never mentioned anything about ‘Dongjeongilyeo(動靜一如)’, ‘Mongjungilyeo(夢中一如)’, ‘Omaeilyeo(寤寐一如)’ that Mongsan considered as the yardstick of enlightenment. Hanam didn't select Mongsan's Ganhwa method. The reason seems that Mongsan's chameui(參意) method was close to Sagu (死句), so he didn't accept it.
Key words
Ganhwa, Hwadu with the letter, Mu, Daehye Jong’go, Bojo Jinul, Mongsan Deokiee, 單提參句(Meditation with a letter), 全提參意 (Meditation with a full sentence), Hanam Jungwon
논문투고일 : ’15. 4. 11 심사완료일 : ’15. 6. 4 게재확정일 : ’15. 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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