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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수행자의 네 가지 덕

수선님 2019. 2. 24. 11:38

수행자의 네 가지 덕

 

참된 수행자는

존재의 본성이 공함을 분명히 알면서도

모든 것이 다 허무하다거나,

인과응보도 다 필요 없다거나,

좋은 업을 지을 필요도 없고

과보도 다 공하다거나 하면서

악취공에 빠져들지 않는다.

 

공을 공부한 수행자들이

때때로 '모든 게 다 허무하다'면서

불교를 공부하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어진다거나,

열정이 사라진다거나,

혹은 인과응보도 다 공한 것이니

아무리 잘못해도 과보를 받지 않는다고 함으로써

공에 치우친 공병 환자가 되어 버리기 쉽다.

 

공을 바르게 이해하면,

온전히 마음을 모아 전념으로써 매 순간을 대하게 되고,

이타적 서원을 가지고 삶에서 순수한 열정을 꽃피우게 되며,

인과응보를 분명히 이해하기에

행위에 따른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책임감 있는 행위를 하게 된다.

 

제 멋대로 행동함을 자유로움으로 오인하고,

막행막식을 걸림없음으로 오해하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않는다.

 

또 어떤 수행자는

중생이 무아라고 하니

실체적 자아가 없는데 도울 필요도 없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분명히 무아를 이해하는 수행자는

무아이기에 너와 내가 둘이 아닌 한 꽃송이 임을 보아

내 몸을 돌보듯 이타적인 자비심을 일으킨다.

 

무아란

나와 너를 나눌 것이 없기 때문이며,

그렇기에 무아의 실천은 곧

동체대비에서 나오는 무한한 사랑이다.

 

진리를 구하는 자는

마음은 열반을 향해 있지만

몸은 윤회의 세계에서 수행한다.

 

이 윤회의 세계야말로

열반을 꽃피울 수 있는 최적의 처소임을 알고,

매 순간의 현실이야말로

완전한 열반의 드러남임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완전한 열반을 꿈꿀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윤회 세계 그대로가

매 순간의 열반 자리임을 깨달으라.

 

수행자는 중생들을 위해 끊임없이 베풀지만

스스로 베풀었다는 생각도 없으며,

과보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와 상대가 둘이 아닌 이치에서는

상대방에게 준 것이

사실은 곧 나 자신에게 준 것이기에

내게 풍요로움과 부유함의 과보가 찾아오지만,

반대로 상대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늘리려는 마음은

이기심, 아집, 결핍, 가난의 결과를 가져 올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모든 수행자가 지녀야 할

치우침 없는 중도의 마음가짐이다.

 

수행자는

공함을 알지만

그러한 가운데 공화로써 피어나는

삶이라는 아름다운 만발한 꽃들을 존중하며,

무아임을 알지만

무아 속 중생들의 거룩한 참됨을 깨달아

무한한 자비심으로 중생들을 사랑하고,

열반을 알면서도

윤회 속에서 열반의 즐거움을 깨달아가며,

무한한 나눔과 베풂과 자비를 실천하지만

그 결과를 기대하지 않는다.

 

[보적경]

출처 : 자안시중생(慈眼視衆生)
글쓴이 : 태일(太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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