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공간

[스크랩] 심우도(尋牛圖) / 청도 운문사

수선님 2019. 2. 17. 12:38

 

심우도(尋牛圖) - 청도 운문사 편 


심우/ 견적/ 견우/ 득우/ 목우/ 기우귀가/ 망우재인/ 인우구망/ 반본환원/ 입전수수


수행자가 정진(精進)을 통해 본성을 깨달아 가는 과정을 잃어버린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해서 그린 선화(禪畵)로 그 과정을 10단계로 구분하고 있어 십우도(十牛圖) 또는 목우도(牧牛圖)라고도 합니다.

 

심우도(尋牛圖)란 본래 도교에서 나온 팔우도(八牛圖)가 그 시작으로 12세기 무렵 중국의 곽암선사(廓庵禪師)가 도교의 소 여덟마리에 두 마리를 추가하여 십우도(十牛圖)를 완성시켰다.

곽암선사가 보기에 도교의 팔우도는 무(無)에서 끝나므로 진정한 진리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 눈에 알아 보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진리, 불교의 진실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를 소 두 마리에 담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교의 팔우도를 무(無)의 결말이라면, 곽암선사의 십우도는 공(空)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 심우(尋牛)

첫번째는 동자승이 소를 찾고 있는 장면이다.

심우(尋牛)의 의미는 소를 찾는다는 것으로 여기서 소는 곧 내 마음, 나 자신 또는 어떤 목표를 말한다.

그러나, 우선 중요한 것은 소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아는 것, 즉 우리가 자신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의 본성을 잊고 수많은 유혹 속에서 소의 발자취를 잃어 버린 것이다.

 

 

 

 

 

 

2. 견적(見跡)

두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발자국을 발견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견적(見跡)이란 흔적을 보았다는 것으로 소의 발자국을 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가야할 길을 보여주는 것으로 스승들 선인들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향기로운 풀밭에도, 마을에서 먼 깊은 산 속에도 소 발자국이 있다. 마치 하나의 쇠붙이에서 여러 가지 기구가 나오듯이 수많은 존재가 내 자신의 내부로부터 만들어짐을 배워야 한다는 의미이다.

 

  

 

 


 

3. 견우(見牛)

세 번째는 동자승이 소의 꼬리를 발견하는 그림이다. 견우(見牛)란 소를 보았다는 것으로 우리의 감각 작용에 몰입하면 마음의 움직임을 뚜렷이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소의 꼬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4. 득우(得牛)

네 번째는 득우(得牛), 즉 '소를 얻다' 이니, 동자승이 드디어 소의 꼬리를 잡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발견하긴 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갈 길을 잡지 못하고 헤메고 있다.

 

 

 

 


 

 

5. 목우(牧牛)

다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게 꼬뚜레를 꿰어 끌고 가고 있는 모습으로 이제 우리는 마음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오랜동안의 습관으로 제멋대로인 마음을 고행과 끊임없는 수행을 통해 길들여 나가야 한다는 뜻에서 소를 기른다는 의미로 목우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언제 또 이 소가 어떤 진흙탕,

어떤 삼독(三毒)과 유혹 속에 빠질지 모른다. 길을 잘 들이면 소도 점잖아질 것이다.

그때에는 고삐를 풀어줘도 주인을 잘 따를 것이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여섯 번째는 동자승이 소에 올라타고 피리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천신만고 끝에 소를 잡아서 채찍과 고삐를 달고, 드디어 그 소를 타고 느릿느릿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이다.이제 모든 투쟁은 끝났다. 얻은 것도 잃은 것도 없다. 아니 본래 그러한 것들이 없었던 것이다.

 

 

 

 


 

 

7. 망우재인(忘牛在人)

일곱 번째는 소는 없고 동자승만 앉아 있다. 망우재인, 소는 잊고, 사람만 있다.

이제 때가 왔으니 우리는 채찍과 고삐를 다 내버리고, 초가집에서 살아간다. 모든 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이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인우구망, 사람도 소도 완전히 잊었다. 모든 것이 무(無) 속으로 사라졌다.

무(無)는 바로 한계가 없음이요, 모든 편견과 벽이 사라진 자리이다.

하늘은 너무나 광대하며 어떤 메세지도 닿을 수 없다. 의심, 분별, 차별은 지혜속에 존재할 수 없다. 여기에는 수많은 스승들의 발자취가 있으며, 범용한 것은 사라졌다. 마음은 한없이 한없이 열려 있다.

우리는 더 이상 깨달음 같은 것은 찾지 않는다. 또한 나에게 깨닫지 못한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다.

나는 어떠한 상태에도 머물지 않아 눈으로는 나를 볼 수 없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되돌아간다. 강은 잔잔히 흐르고 꽃은 빨갛게 피어 있는 여실한 모습, 진리는 맑디 맑습니다.

고요한 마음의 평정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든 형상들을 바라 본다.

형상에 집착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꾸밈도, 성형(成形)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 근원으로 되돌아오기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걸음을 옮겼다. 또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참된 집에 살게 되어 그 무엇도 꺼릴 것이 없는 소중한 나를 찾았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손을 드리우고 세상에 나간다. 옷은 누더기, 때가 찌들어도 언제나 지복으로 넘쳐 흐른다.

술병을 차고 시장바닥으로 나가 지팡이를 짚고 집으로 돌아온다. 술집과 시장으로 가니,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깨닫게 된다.

도(道)를 세상에 돌리니, 남과 내가 하나가 된다.

 

 

 

 

 

※ 반본환원(返本還源)

일반적으로, 심우도는 10장으로 나타납니다만, 청도 운문사의 경우 벽면이 11개라여서 1개의 그림이 추가되어 있으며, 반본환원을 2개의 그림으로 묘사하면서 적절한 나열을 위해 변형이 가해져 있답니다. 

그리하여 실제 청도 운문사에는 "7.망우재인 - 9.반본환원 - 8.인우구망 - 10.입전수수 - ※ 반본환원" 순의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위의 그림은 10장으로 구성된 일반적 심우도 전개의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며, 건물벽의 상황에 따라서 8~11장 등의 변형을 이루기도 한다

 

 

 

 

 

 

http://cafe.daum.net/hhh1670/6hRk/498

 

 

 

 

 

불교의 심우도(尋牛圖)

 

 

불교(佛敎)에서도 불도(佛道)를 찾아 부처가 되는 과정을 열 단계의 그림으로 설명하고 있는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사찰 벽화로서 많이 그려 놓는데 이 심우도는 불도인들이 입문(入門)하여 수행을 통해 부처[佛]의 경지에

이르는 ‘각(覺 : 깨달음)’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불교의 심우도는 중국 송대(宋代)에서 그 기원을 살필 수 있는데,

보명(普明)과 곽암(郭庵)에 의한 두 가지 이본(異本)이 오늘에 전한다.

곽암의 심우도를 십우도(十牛圖)라 하고, 보명의 심우도를 목우도(牧牛圖)라 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주로 곽암의 십우도가 전해져 오고있으며, 보명의 목우도는 글만 전해져 오고 있다.

 

 

<보명(普明)의 목우도(牧牛圖)>

 

一. 미목(未牧) : 길들이기 전의 모습.

二. 초조(初遭) : 최초의 만남.

三. 수제(授制) : 소가 목동의 말을 듣다.

四. 회수(廻首) : 머리를 돌이켜 반조(返照)한다.

五. 순복(馴伏) : 잘 길들여지다.

六. 무애(無碍) : 걸리고 막힘이 없다.

七. 임운(任運) : 소에게 맡기다.

八. 상망(相忘) : 서로 잊다.

九. 독조(獨照) : 홀로 스스로 비추다.

十. 쌍민(雙泯) : 소와사람이 함께 자취를 감추다.

 

 

 

<곽암(郭庵)의 십우도(十牛圖)>

 

 

一. 심우(尋牛) : 소를 찾는다.

 

 

 

二. 견적(見跡) : 발자국을 보다.

 

 

 

三. 견우(見牛) : 소를 보다.

 

 

 

四. 득우(得牛) : 소를 얻다.

 

 

 

五. 목우(牧牛) : 소를 기르다.

 

 

 

 

 

 六. 기우귀가(騎牛歸家) :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七. 망우존인(忘牛存人) : 소를 잊고

사람만 남다.

 

 

 

八. 인우구망(人牛俱忘) : 소와 사람,

둘 다 잊다.

 

 

 

九. 반본환원(返本還源) : 본래의

근원으로 돌아가다.

 

 

 

十. 입전수수(入廛垂手) : 가계에

들어가 손을 내민다.

본연의 삶을 살아간다.

 

 

여기서 누런 소[黃牛]는 미완성의 도(道)를 뜻한다.

 

도(道)를 찾아 정성에 정성을 들여 자신의 본성을 보게 된다.

이것을 견성(見性)이라 한다.

그리고 부처의 경지에 이르러 생로병사(生老病死)를 초월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성불(成佛)이라 한다.

이미 부처가 되어 스스로 불도를 행할 수 있으니 소는 없어도 된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본연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통해 얻어진 불도(佛道)는 성장에 필요한 과정의 도(道)이지 완성의 도(道)가 아니다.

 

석가모니는 이를 두고 제자들에게 설법하길 ‘제행(諸行) 무상(無常), 제법(諸法) 무상(無常)’이라고 하였다.

즉 ‘모든 것과 모든 법은 항상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변하므로 방편일 뿐이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는 석가모니 스스로가 자신의 49년간 설법은 때가 되면 변하므로 허상이라고 밝힌 것이다.

석가모니는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후 21일간 선정(禪定)에 들어가 신명계(神明界)를 보고

그 장엄함을 제자들에게 설법하였는데, 이것이 화엄경(華嚴經)이다.

 

그러나 이 설법은 너무 어려워 비유법으로 예를 들어 설법하기 시작하였다.

석가모니는 이후 아함경(阿含經)을 12년, 방등경(方等經)을 8년, 반야경(般若經)을 21년, 법화경(法華經)을

8년 동안 설법하여 총 49년을 설(說)하였다.

 

그런데 마지막 열반에 들기 전 하루 동안 설법한 열반경(涅槃經)에서

석가모니는 지난 49년 동안 자신이 행한 설법은 모두 거짓이라 하였다.

 

석가모니 당대에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불 · 법 · 승을 삼귀의처라 하였으나

이것은 진실이 아니요, 진짜 삼귀의처는 미래 세상에 오실 미륵세존이므로 중생들은 모두 여기에 귀의하여

공경 예배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불교의 십우도는 불교의 모든 진수를 담고 있는 그림으로 진짜 삼귀의처를 찾아가는 비밀을

그림으로 설명 해둔 것이다.

 

즉 열반경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써 대장경(大藏經)의 비밀을 찾는 그림인 것이다.

즉 십우도의 누런 소는 도(道)를 뜻하는데,누런 소는 도(道)를 찾기 위한 방편으로그 이치를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흰 소를 찾으면 완성된 도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흰 소를 찾으면 신선이 되는 것이다.

흰 소는 바로 미륵불, 즉 삼신(三神)이신 도(道)의 본체신(本體神)이다.

 

삼신(三神)이 바로 진짜 삼귀의처인 것이다.

또한 석가모니는「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을 전하여 말하길,

“미륵께서 출세하시는 세상에 태어난 중생은 어떤 중생이든 미륵세존께 귀의하게 되면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리라. 그러니 미륵세존의 출세를 기다려라”고 하였다.

 

바로 그 미륵세존을 찾는 비결이 심우도(尋牛圖)의 흰 소를 찾는 것이다.

 

 

 

 

 

 

 

 

 

 

 

 

 

 

 

 

 

 

 

 

출처 : 마음의 정원
글쓴이 : 마음의 정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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