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논리의 부흥과 신민족통일론의 정립
권윤혁
차례
1. 序論
2. 석가세존 정각의 知性구조
3. 화쟁론리의 논리구조와 그 문화사적 의의
4. 화쟁론리의 전개와 신민족통일론
1. 서론
대성 원효성사(617~686)가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 이른바 和諍의 논리를
개발하여 불교에 있어서 분열 대립되고 있던 많은 종파를 통일하고, 통일신라
한국 민족의 주체사상을 최초로 확립하였음은 두루 잘 아는 역사적 사실이다.
원효대사를 大聖, 또는 聖師라 하며 추존하여 왔는데 특히 고려의 肅宗王이 大
聖和諍國師라는 시호를 올려서 추존하였었다,
사실 원효성사는 역사적으로 보아 釋迦如來 교조 그리고 용수보살과 더불어
불교계의 삼대성인이라 하겠고, 開創한 화쟁의 논리는 불교학을 집대성한 논리
였었다, 화쟁의 논리는 동양문화에 있어서 최선의 논리였으며, 동양문화의 精華
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쟁의 논리는 동양문화의 원천으로서, 당나라 현수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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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상』통권 1호-4호. 앞 서문의 편집 사연 참조
*1922년 경남 산청 출생.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졸업. 정치학 박사. 동국대학교 교수 및 법정대 학장 역임. 1998년 6월 별세. 『정치사상과 한국의 정신문화에 관한 연구』, 『현대정치학의 과제와 칼 만하임의 정치 사회학』 등 논저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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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장으로 흘러가서 중국 화엄학을 대성시키고 또 송나라 周?溪(l017~l073)의
태극도설을 통하여 易學의 논리로 전개되었으며, 또한 근대에 이르러 日本 京
都學派 철학 논리의 그 저류로서 흐르고 있다.
오늘날 변증법 논리에 입각한 自由와 共産의 이데올로기 사상의 대립과 그
초극은 인류사의 흥망을 판가름할 중대한 과제로서 부상되기에 이르렀고, 또한
그같은 대립은 한반도를 양분하여 민족 훙망의 과제로서 현상되고 있다. 그 대
립은 핵무기 같은 이른바 窮局武器로 무장한 대립으로서, 전쟁에 의한 해결은
승리를 하든 패배를 하든 상호간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무력과 전쟁에
의한 해결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사상적 해결 이외에는 해결할 길이
없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 대립을 사상적으로 해결하려고 할 경우에는, 그러한
사상적 대립의 기본이 되고 있는 변증법 논리라는 지성을 초극한 새로운 고차
적인 지성을 개발해야 하게끔 되어 있다. 변증법 논리의 지성을 초극할 수 있는
논리는 동양의 논리에서 구할 수밖에는 도리가 없는데, 그같은 과제를 해결할
동양의 논리가 바로 화쟁의 논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화쟁의 논리는 동양 고
대에 있어서 가장 심오한 논리였던 것으로서 이제야 부흥되고 재생
(Renaissance)되어서, 변증법 논리를 초극한 고차원의 지성을 개발할 기반의 논
리사상으로서 역할을 할 때를 맞이 한 것이라 하겠다.
15세기 중엽에서 시작된 유럽의 르네상스는 유럽의 고대 즉 고대 그리이스와
고대 로마의 이성에 입각했던 문화를 부흥하려 하였던 것이고 그처럼 부훙되
고 복권된 유럽 고대의 이성의 기반 위에 이른바 근대의 과학적 지성이 개발되
었던 것이다. 그같은 과학적 지성에 입각하여 유럽 근대의 자연과학과 과학기
술이 개발되고, 그러한 과학과 기술에 입각하여 이른바 산업협명이 수행되어서
저 찬란한 유럽의 근대문명이 이룩되었던 것이다.
유럽 근대문명의 기반인 과학적 지성이라는 것은 유럽 고대에 있어서 개발되
었던 이성의 기반 위에 工作을 위한수학적 지성과 실험적 지성이 첨가된 지성
으로서 , 유럽 근대의 과학적 지성의 개발자인 베이컨(Francis Bacon, 1561-1626)
이 知는 힘이다(Scientia est potential)' 라고 말했듯이 과학적인 知는 바로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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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공작을 가하여 개조할 수 있는 힘이었던 것이다. 그 같은 유럽 근대의 과학적
지성은 지금에 이르러 그 한계선에 도달하고, 이제야 새로운 고차원의 과학, 곧
4차원의 과학이 대두되기에 이르렀다. 4차원의 과학이라는 것은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1879-1955)의 특수 상대성 원리에 의하여 우주는 공간 3차원과
시간 1차원 통합한 4차원 상대적 세계인데, 공간과 시간은 상대적으로 신축한다
는 것이 밝혀지고, 나아가서 量子力學이라는 새로운 4차원의 물리학이 대두되
기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4차원의 새로운 자연과학인 양자물리학의 이론에 입
각하여, 고차원의 과학기술이 속속 개발되어, 원자력의 개발을 위시하여 전자공
학, 유전자공학 등 여기에 제3차의 새로운 산업혁명이 수행되기 시작하고, 인류
사는 획기적인 이른바 우주시대에 진입하려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제3차 신산업헉명이 수행되고 있는 기반인 4차원의 과학적
지성은 어떠한 지성이겠는가. 4차원의 과학적 지성은 유럽에서 고대 이래로 개
발된 이성에 입각하여서는 개발될 수 없고 오직 동양 고대의 이성의 기반 위에
서 비로소 개발될 수가 있게끔 되어 있다. 즉 4차원의 새로운 과학적 지성은 동
양 고대의 이성의 거반 위에 입각하여 거기에 유럽 근대의 과학적 지성으로부
터 수학적 실험적 지성을 계승하고 그 위에 창조 논리적 지성이 통합되어야 하
는데, 그것올 한 마디로 말하여 이른바 4차원의 창조논리라 할 수 있는 것이다.
4차원 창조논리에 입각하여, 제3차의 신산업혁명이 수행되고 그 같은 신산업혁
명이 수행되고, 그같은 신산업혁명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즉 신산업혁
명과 함수관계에 있는 기반사회의 사상이 창조적으로 형성된다면, 그 같은 고차
원의 사회사상은 변증법 논리에 입각한 偏倚된 이데올로기 사상을 이미 초극한
사상으로서, 능히 민족통일을 이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는 자유와
공산의 대립관계를 초극하여 해소함으로써, 여기에 이르러 인류사를 구제할 수
가 있게 되는 것이라 하겠다.
2. 석가세존 정각의 지성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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知性에는 대상적 지성과 자각적 지성이라는 두 가지 지성이 있다. 대상적 지성
이라는 것은 인간의 원시시대 이래로 자연적으로 또한 일반적으로 지니고 있는
지성인데, 자기 이외의 사물을 자기에 대해 인식하는 대상으로서 정립하고 그
것을 직선적으로 또는 직관적으로 인식하는 지성이다, 그 같은 대상적 지성은
동물 및 인간의 생존과정에 있어서 자연적으로 발달된 실용적인 지성이라 할
것으로서 주위의 생존환경을 민속하게 인지하여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는 대신에 사물의 진상을 파악할 수 없는 결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한 자연적
일반적인 지성과는 달리, 자각적 지성이라는 것은 사물이 그 위에서 존재하고
있는 그 근저를 파악하는 지성인데, 그처럼 사물의 밑바닥을 파악하려고 하는
지성이므로 직선적, 직관적인 지성으로서는 파악될 수 없고 우회적으로 심화된
주체적인 지성이 의식적으로 또한 思惟的으로 개발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므
로 그러한 자각적 지성이 개발되기에는 인간의 지성이 고도로 발전된 후에 비
로소 개발될 수가 있는 것이다.
서양의 철학사를 조감하여 보면 참다운 의미에 있어서 그러한 자각적 지성이
개발된 것은 근대에 이르러 독일 관념론 철학을 대성한 헤겔(Georg Wil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 논리에 이르러서였다. 서양철학사에 있어
서 헤겔은 대립, 모순의 근처에서 사물의 근원을 파악하려 한 우회적으로 심화
된 입체적인 지성, 곧 자각적 지성을 개발한 최초의 大哲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동양에 있어서는 이미 2500여년 전에 석가세존이 그러한 자각적 지성을 개발하
여 존재하고 있는 삼라만상의 그 참다운 근원을 자각하였던 것이니, 참으로 경
탄과 추앙을 금할 수가 없다.
자각적 지성으로서 개발되었던 헤겔의 변증법적 지성은 正覺에 도달할 수 없
는 偏倚된 지성이었는데, 세존이 개발한 자각적 지성은 정각을 이룩할 수 있는
진정한 자각적 지성이었으니, 다음에 순차로 밝혀 나가기로 하겠다.
그렇다면 우선 대상적 지성은 사물의 진상과 그 근원을 밝힐 수 없는 지성이
라는 것을 성찰하여 볼 필요가 있다. 대상적 지성은 생존 환경을 민첩하게 인식
하여 대처하기 위하여 발달된 지성으로서, 자기 이외의 모든 사물을 자기 앞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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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으로서 세워놓고 직선적으로 직관하여 인식하는 지성이다. 그러한 대상적
지성이 직선적으로 또한 직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1) 사물의 외부적인
표층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고, (2) 사물의 일부의 측면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며, (3) 사물의 공간적인 有의 측면만을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대상적 지성은 (1) 사물의 내부적인 질의 면을 파악할 수 없고, (2) 사물의 전부
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없으며, (3) 사물의 보이지 않는[無] 시간성의 측면을
파악할 수가 없다. 이것을 요약하여 말한다면 대상적 지성은 사물의 일면만을
추상하여(뽑아내어서) 인식하는 이른바 抽象的 지성으로서 사물의 구체적, 현
실적인 진상을 파악할 수 없는 지성이라는 것이다. 근대 프랑스의 천재적인 철
학자라고 일컫고 있는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도 근대에 있어서 과
학적 지성으로까지 발전된 대상적 지성은 그 본질이 기하학적 지성인데, 모든
사물을 공간화하여 수량적으로 인식하는 지성으로서, 사물의 다양한 질적 인면
과 역동적인 면을 파악할 수 없을 뿐더러, 하물며 생명의 약동적인 진화 과정을
파악할 수 없는 지성이라 할 수 있다.
위와 같이 성찰한다면 모든 사물은 공간적 측면과 시간적 측면이라는 양측
면이 통일된 존재자로서 이룩되어 있는 것인데, 대상적 지성은 사물의 공간적
측면만을 인식하는 지성이라는 것이다. 사물이 존재하고 있는 구조를 차원
(dimension)으로써 파악한다면, 공간은 입체적인 공간으로서 3개의 차원(선의 1
차원, 면적의 2차원, 입체의 3차원)으로서 이룩되고 있는 것인데, 대상적 지성은
그 같은 3차원의 공간적 측면만을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대상적 지성이 이처럼 3차원의 공간적 지성이라고 하지만, 시간을 전연 도외
시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상적 지성도 시간을 인식하는 것이지만, 시간을 시계
를 가지고 측정하는 바와 같이, 공간의 하나의 차원인 선으로 투영하여 1차원
공간의 선의 거리로서 측정한다. 이처럼 대상적 지성에 있어서는 시간을 인식
은 하지만, 시간의 그 독자성을 파악하지 않고 공간의 하나의 차원으로 공간화
하여 파악하는 만큼, 대상적 지성을 3차원의 공간적 지성이라 한 것이다. 즉 이
같은 3차원의 공간적 지성인 대상적 지성에 입각하여서는 사물이 이룩되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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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그 시간성의 독자적인 측면이 파약될 수가 없다. 사물의 시간적 측면은 사물
이 질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그 상대적 대립의 측면이고, 또한 사물의 生滅의 측
면이다. 즉 사물의 존재하는 진상은 언제나 상대적인 관계에서 상호 質로 대립
하고, 상호 의지하며, 상호 보완하는 관계, 곧 대치관계의 하나의 항으로서 존재
하고 있는 것이며, 또한 따라서 그러한 사물은 그같은 대치관계의 변동에서 시
간적으로 운동하고, 변동하고, 생별하는 유한한 사물인 것이다. 여기서 시간에
기인하여 사물의 공간적인 대치관계가 이룩된다고 하였는데, 시간의 근거는 우
주 근원의 無로서, 그러한 근원 無의 시간성에 기인하여 사물이 창조적으로 생
성되는 것이다. 그러면 창조된 사물은 언제나 반드시 相補的인 대립모순의 구
조 즉 대치관계의 구조를 지니고 현상한다. 나아가서 그러한 시간성에 기인한
대립 모순의 구조는 운동과 생장을 거듭하도록 하는 구조로서, 그 같은 운동과
생장을 거듭한 후에는 시간의 근원인 무로 소멸되기 마련으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시간에 기인하여 사물의 공간적 대치 관계가 이룩된다고 한 것이
다. 그와 같이 상대적인 구조에서 무한, 유한한 사물을 대상적 지성은 시간의
독자성을 파악하지 않고 무시간적으로 인식하여 모든 사물을 절대적 인 獨自性
과 무한한 恒常性을 지닌 사물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3차
원 공간적 지성인 대상적 지성에서 파악된 사물은 공간적 측면의 假有 또는
假象으로서 사물의 전면적인 진상 또는 진리가 파악된 것이 아니라 하겠다. 釋
迦世尊은 2500여년 전에 이미 그처럼 대상적 지성에 입각하여 인식된 사물은
한갖된 가유, 즉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여 교설하였는데, 그것은
불교에 있어서 제1의 초단계의 교설에 속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을 간파하지
못한 무명의 범부들은 그같은 가유를 영원 불멸한 독자적 인 有로 간주하고, 그
같은 가유에 집착하여 그것이 무에로 소멸되어 같 때 번뇌, 고민, 볼안, 고통과
같은 지옥적인 심정에 사로잡혀서 그 귀중한 생명을 제대로 보람있게 살지도
못한다. 즉 그 집착이 無明의 소치임을 깨닫게하여 줌으로써, 不覺의 중생을
제도하려는 것이다.
석가세존은 그처럼 가유를 인식할 능력 밖에는 없는 대상적 지성을 넘어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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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하여 사물의 공간적 측면 뿐만 아니라 시간적 측면도 파악하고 나아가서
그러한 공간성과 시간성을 통일하여 존재하는 존재자(삼라만상)의 근거인 우
주의 근원까지도 자작할 수 있는 4차원의 自贊的 知性을 개발하여 이른바 正覺
에 이른 것이었다. 4차원의 자각적 지성이라는 것은 공간의 3차원과 시간의 독
자적인 한 차원을 합쳐서 4차원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현실이며, 구체적인 사물
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이라는 것이며, 또한 그 같은 생멸하는 현실적 인
사물의 緣起하고 있는 근원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지성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4차원적 지성은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은 지성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無識俗流
들이 4차원 과학이 무슨 심령과학인 것처럼 떠들고 있는 것은 오류라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같은 4차원의 자각적 지성을 유럽의 철학에 있어서 개발된 지
성의 역사에 조명하여 그 의의를 성찰하고 또한 그것을 오늘날 부상시킬 필요
가 있게 된 것이다.
유럽에 있어서 15세기 중엽의 문예부흥(Renaissance) 이래로 발달되기 시작한
영국의 경험론 철학과 대륙의 唯理論 철학의 양대 사상조류를 통합하여 이른바
유럽 근세철학을 집대성하였던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그의 고전적 명저인, 純粹理性批判, 의 先驗辨證論에서 근대의 과학적 지성으
로 발전된 대상논리를 가지고서는 우주의 근원은 인식할 수가 없다는 것을 증
명한 바가 있다. 칸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 있어서는 知性이라 하면 아리스토
텔레스(Aristotele, 384-332)의 형식논리라고도 일컫고 있는 일반논리와 베이
컨(Francis Bacon, 1561-1626)에서 시작되는 귀납적인 근대 과학 논리가 있었는
데, 그같은 2개의 논리를 통합하여 칸트가 선험논리라는 이름의 근대과학적 지
성인 대상논리를 정립하였던 것이다.
칸트는 그 선험변증론에서 대상논리적 지성을 가지고서 우주의 근원인 무한
절대자를 인식할 경우에는 이율배반(Antinomie)이라는 대립 모순에 귀착하고
만다는 것을 논하였다. 그같은 이율배반의 대립 모순을 성찰한다면 대상적 지
성의 본질인 3차원 공간논리의 극한이 노정된 것이라 하겠는데, 즉 3차원 공간
논리의 극한에 있어서 시간성의 근거인 無(Nichts)가노정된 것이라 할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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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다. 위에서 논한 바 있는 헤겔은 그처럼 칸트에서 그 극한의 한계가 구명된
3차원 공간논리인 대상논리를 넘어서서 무의 시간성(대립 모순의 근원)을 포섭
하여 초월한 이른바 변증법 논리라는 4차원의 고차원 지성을 개발하려고 하였
는데, 그 4차원의 논리는 일방에 偏倚된 지성으로서 우주의 근원의 진리를 파악
할 수 없는 논리에 그쳤던 것이다.
그 후, 유럽 2500년의 철학을 그 궁극의 지경까지 규명하였다고 할 수 있는 이
른바 실존철학의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에 이르러 대상적 지성
은 우주의 근원을 자각할 수 없는 지성임을 더욱 명백히 하고, 그러한 대상적
지성에 입각하여 파악되었던 플라톤(Platon, BC 427-347)에서 니이체(Frideich
Nietzsche, 1844-1900)에 이르기까지의 유럽의 형이상학은 진정한 우주의 근원
을 자각하지 못하였음을 비판하고 그 자신은 이른바 무(Nichts)의 형이상학을
주장하여 불교철학의 4차원적인 자각에 접근하였던 것이다. 위에서 논한 대상
적 지성을 하이데거는 자기 앞에(Vor) 세워서 (Stellen) 思惟(denken)하는 지성,
곧 표상적 사유(Vor stellendes denken)라 하고 그같은 표상적 사유는 근대의 과
학적 지성으로 발전하고 나아가서 자연세계에 工作을 가하고 자연세계를 정복
해 가는 이른바 과학기술로 전개되기 마련인 지성으로서, 그러한 표상적 사유
를 가지고서는 현상되고 있는 삼라만상인 이른바 존재자(Seiendes)는 파악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같은 존재자의 근거인 존재(Sein), 즉 우주의 참다운 근원은
곁코 자각될 수가 없는 것이라 하고 있다. 그 같은 관점에서 플라톤의 이데아
(Idea 이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그리고 니이체의 이른바 권력의지도 모든
존재자를 개괄한 가장 보편자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하나의 존재자인 것이고
우주의 참다운 근원인 존재(Sein)는 아니라는 것이다.
우주의 참다운 근원으로서의 이른바 존재는 그같은 표상적 사유와는 달리 시
간성의 자각에서 접근해야 하는데, 접근법에서 자각되는 우주의 참다운 근원,
곧 존재는 有의 보편자가 아닌 無로서, 그 무도 상대적 무가 아닌 근원무라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그와 같은 근원무의 자각은 유럽 2500년의 형이상학의 자각
에 있어서 가장 심수(深邃)한 자각에 도달한 것이라 할 수 있는데, 하이데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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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같은 심수한 자각에 입각하여 기독교의 神도 가장 보편적인 존재자이기는 하
나, 근원무의 존재는 아니고 한갓된 존재자에 지나지 않은 것이라 단정한 바가
있다. 하이데거의 그러한 심수한 자각에서 본다면 아랍세계의 종교인 무하마드
(Muhammad 570-632)를 교조로 하는 이슬람(Islam)교 곧 이른바 회교의 神도
한갖된 존재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각한다면
인류의 3대 종교 즉 불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에 있어서 불교는 有神敎인 그
리스도교와 이슬람교를 포섭, 초월하여 궁극의 정각에 이른 종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불교는 최고의 종교이면서 유럽 및 중동의 종교를 包越하여 인류사를 구제할
궁극의 종교임을 자각해야 하는데 다만 앞으로 人類後史인 이른바 우주시대의
인류와 중생을 교도 구제할 수 있는 그 교리의 현대화가 이룩되어야 할 것이다.
하이데거의 시간성을 접근 통로로 한 無의 형이상학은 유럽에 있어서는 가장
심수한 자각에 도달한 것이었다고 하겠으나, 그의 무의 형이상학은 시간성의
근거의 자각에 편의하여 공간성도 포월하는, 즉 시간성과 동시에 공간성의 진
상을 포월하여 海印하는 진정한 근원의 자각에 도달하지는 못하였던 것이라 하
겠다. 하이데거가 자각한 恨源無는 대상적 지식에서 인식하고 있는 非有(Nicht-
Sein), 즉 공간적 인 유의 缺如態로서 의 무인 이른바 상대적 무와는 그 깊이가 다
른 무로서, 모든 존재자, 곧 삼라만상이 생멸하는 근거로서의 무를 의미한다. 그
러나 그러한 근원무는 시간성의 근원은 될지언정 공간성의 근거라 할 수는 없
는 것이므로 시간성과 동시에 공간성을 포월하는, 즉 4차원 세계의 근원은 시간
성의 근거인 근원무의 또 그 근저인 무, 즉 절대무라 자각할 수 있는 것이다. 석
가세존은 바로 그러한 시간성의 근거인 근원무를 넘어서서 4차원 세계의 근원
인 이른바 절대무를 자각하여 정각을 이룩하셨던 것이다.
지성적 동물인 인간에 수반하기 마련인 불안, 고독. 고뇌의 근거이며 또한 생
노병사 등 생멸의 근거인 근원무를 포월하여 열반에 이른는 길은 근원무의 그
근저인 절대무를 자각하고 그러한 근원의 절대무와 일여(一如)가 되는 것이다.
우주의 근원인 절대무를 인도의 上古철학에 따라서 브라아만(Brahman)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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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한다면, 自我(atman)가 그러한 브라아만과 일여가 된다는 것이다. 그같은 일
여의 정각은 지성적인 자각만으로써 이룩된 것이 아니고 감정과 의지가 바로
일여의 지경에 이루어져야 하는데 일여를 위하여서는 禪定의 수행이 필요한 것
이다. 이러한 無明을 그 뿌리로부터 밝힌 지성적 자각과 선정의 수행에 의하여
정각에 이를 경우 緣起하는 生滅世界에 대한 부질없는 집착과 그리고 또한 생
사윤회의 고뇌에서 해탈하여 永劫의 절대적인 생명에 이른다. 이러한 해탈은
우주의 근원과 일여가 된 생명이므로 無量한 활력을 일으키고 삼라만상에 대한
부모와 같은 대자비한 심정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정각의 法悅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와 일여가 된 절대무의 근원 위에서 생멸하는 중생을 모두 제도하려는
이른바 行願으로 나타난다. 부귀영화와 왕위를 계숭하지 않고, 모든 인류와 모
든 중생을 근원적으로 제도하려 한 성인 중의 성인이 바로 석가세존이었으니
인류사에 있어서 전무후무한 獨尊의 성인이었음을 그 누가 부인할 수 있으랴.
3. 화쟁론이의 론이구조와 그 문화사적 의의
釋迦세존 正覺의 지성적 구조를 논리적인 이론으로 조직 체계화하기 위하여
그 대강을 요약하여 설명한다면
(1) 일반 지성인 대상적 지성, 즉 3차원의 공간적 지성에 입각하여 직선적, 직
관적으로 인식된 공간적인 有는 假有 또는 假象으로서 賞有가 아니므로
그것을 제일차적으로 부정한다.
(2) 存在者(seiendes), 즉 삼라만상은 현실적으로는 공간적, 시간적으로 존재
하고 있는 것이 그 진상이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4차원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다시 말하여 삼라만상은 공간 3
차원과 시간 1차원이 통합된 양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공간적,
시간적으로, 즉 4차원으로 존재하고 있는 양상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
양상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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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란 본래 根源無의 근거 위에서 공간을 부정하는 기능인 것이므
로 공간과 시간이 통일되는 존재양상이라는 것은 공간적인 有가 시간의
부정적 기능에 의하여 상호 대립, 모순하면서도 상호 의지하고 보완하는
구조 즉 對待關係의 구조로서 존재하는 양상이다. 그런데 그같은 對待構
造의 삼라만상은 그 구조 중 대립모순의 관계에 기인하여 필연적으로 운
동과 행동을 일으키기 마련이고 또한 그러한 운동과 행동은 창조적인 生
滅과 變動을 일으키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간적. 시간적인 4차원
의 현실적인 존재자인 삼라만상은 그 어느 하나도 절대적인 독자성이 있
는 것이 없고[諸法無我], 또한 그 어느 하나도 영구한 恒常性이 있는 것이
없다[諸行無常]. 즉 4차원의 공간적, 시간적인 존재자, 곧 현실적인 존재
자인 삼라만상은 모두 緣起의 관련관계에 있는 것으로서, 독자성과 항구
성이 없는[無] 존재자이다. 이 같은 無를 이른바 空이라 일컫는다.
(3) 그처럼 4차원의 공간적, 시간적인 즌재자, 곧 현실적인 존재자는 독자성
과 항구성이 없는 生滅하는 존재자라면, 과연 독자적이며 항구적인 존재
자는 어디에도 없는 것인가. 그러한 존재자가 없는 깃은 아닌데, 그것을
자각하기 위하여서는 또 다시 사유를 심화하고 새로운 섶은 지성을 개발
해 가야 한다. 그 같은 존재자를 자각하는 방법은 공간적, 시간적인 對待
構造에서 연기하는 삼라만상의 근원으로 초월, 즉 해탈하여 가는 것이다.
즉 연기관계에 있는 삼라만상을 부정함으로써 그것을 넘어서서, 그 근원
에로 심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근원은 연기적인 변화관계가 창조, 生起되
는 근원으로서 그 스스로는 상대적도 아니며, 생멸하는 것도 아닌, 즉 절
대적이며 독자적일 뿐만 아니라, 항구적이며 영겁한 것이다. 다시 말하여
그러한 근원은 절대 영겁한 것으로서, 생멸, 변동하는 삼라만상이라는 존
재자(Seiendes)가 아닌 이른바 존재(sein)로서 , 言亡慮絶의 絶對無인데, 그
러한 근원무의 또 그 근원은 有일 수는 없는 것으로서 절대무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4) 그와 같이 하여 절대 영겁한 우주의 근원인 절대무를 자각하고, 그것과
#232
一如가 되었을 경우, 즉 열반의 지경에 歸入하였을 경우 이에 우주적인
大我가 성춰된 것으로서 그러한 우주적인 대아는 우주의 근원 위에서 창
조되어서 연기관계적으로 생멸하고 있는 삼라만상을 其他의 차별없이 제
도하는 行願으로서 일대활동을 일으키게 된다. 제도하는 것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삼라만상, 즉 중생과 그 환경인 자연이 그 본성의 존재성을 充
全히 발원하도록 교도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往相이 곧 還相인 것, 즉
근원에의 歸入이 곧 중생의 제도 활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석존정각의 極
義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세존의 심오한 정각은 그 후 신라의 대성 원효성사(617-686)가 개발
한 화쟁론이라는 이름의 대립성의 범주에 입각한 자각적 相補의 논리에 의하여
비로소 여실히 현현될 수 있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원효성사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하였을 때(668년)52세 였으니, 원효사상
이 이룩된 역사적, 사회적 기반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유럽에 있어서 례식형태와 사상형태를 연구하는 새로운 방법론으로서 막스
쉴러(Max Scheler, 1874-1928)와 칼 만하임 (Karl Maunheim 1893-1947)에 의하
여 정립된 이른바 知識社會學이라는 것이 있다. 지식사회학의 기본원리는 存在
被拘束成(Seinsgebundenheit)의 원리인데, 역사적인 모든 지식과 사상의 형태는
그 당시의 사회적 존재, 곧 사회적 상황에 의하여 형성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니, 그러한 역사적인 지식과 사상의 형태는 그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의 관련에
서 해석되어야만 비로소 그 진상이 밝혀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같은 지식사회학의 방법론에 입각하여 聖師의 화쟁논리와 사상을 구명한
다면, 화쟁의 논리와 사상은 첫째로 그 당시 분열 대립되고 있었던 삼국의 국교
가 모두 불교였다는 점, 둘째로 그 불교는 중국에서 전래된 불교로서 여러 교학
이 뒤섞여 있었으며, 셋째로 和諍論理 등 신라가 그 분열 대립되고 있었던 삼국
을 통일하여 민족통일을 이룩하려는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서 이룩된 논리이며
사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있어서 삼국에 흩어져 분
열․대립되고 있던 불교를 교리적으로 통일하여 그것을 민족통합의 이념으로
#233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적 사회적인 절실한 요청으로서 은연중 부상되었을
것임은 당연한 것이다. 그 같은 역사적 사회적 요청에 호응하여 성사가 開合의
논리, 宗要의 논리 또는 和諍의 논리를 개발하여 분열. 대립되고 있던 10여 종
의 학설을 통일하려고 사색을 강화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룩된 논리가 화
쟁논리, 즉 自覺的 相補의 논리였던 것이라 하겠다.
자각적 상보의 논리는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차이성의 범주 위에서 그 차이
성과 그 근원의 본질을 자각하여 통일하는 자각적 상보의 논리를 넘어서서 더
욱 심화시킨 논리인 것으로서, 차이성이 아니라 대립성의 범주 위에서 그 대립
성을 통일하는 논리인 것이다. 즉 자작적 상보의 논리는 종파가 대립한 그 대립
성의 근원인 세존의 정각을 자각하여, 그 같은 동일한 근원 위에서 대립하고 있
는 불교 각 종학은 구경 상호 보완하여 그 근원인 세존의 정각을 한층 명백하게
현현하는 원융무애의 통일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화쟁의 논리를 일반화
하여 생각한다면, 우주의 근원을 자각한 심층에서 는 환상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生滅門의 삼라만상은 상보적인 관계로서 통일될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는 자각
적 상보의 논리가된다는 것이다.
화쟁논리에 있어서 자각이란 물론 세존의 정각, 곧 우주의 근원인 진여의 자
각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성사는 언제나 그것을 一心之原, 또는 大乘之體라 하
고, 『金剛三昧經論』에서는 그러한 일심지원을 제9식인 阿摩羅識이라 하여 유식
학의 제8식 알라야식을 넘어선 심처의 식으로 정립하였던 것이다. 성사는 『起信
論』의 眞如緣起論에 있어서의 진여, 곧 용수보살의 진공의 자각을 진리로 받아
들였던 것으로서, 제9식을 그러한 진여 초는 진공으로 자각했던 것이고, 그 같은
진여 또는 진공에 대한 무명의 작용(熏習)에 의하여 생멸의 현상이 이룩되며,
또 제8식이 생하고 나아가서 그 제8식을 기원으로 하여 업력의 忘境이 생멸하
는 것으로 자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宋高僧傳』에 성사가 渡唐을 포기한 일화로서 고분야숙(古憤夜宿)을 이야기하고, 거기
서 ‘心生故로 種種法生이요, 心滅故로 龕墳不二'라 하고는 다시 三界는 唯心’이
요 心外는 無法인데, 胡用別求리요' 라고 깨달음으로써 도당 유학을 포기하였다
#234
고 하여 성사를 유식학파의 유심론자로 전하고 있지만, 그것은 성사의 사상을
짚이 파악하지 못한 傳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위에서 논한 바와 같이 용수보살의 眞空妙有의 진여연기론에 입각했던 성사
의 사상은 유식학의 유심론은 넘어선 사상이었던 것이다.
성사는 그처럼 眞如, 곧 진공을 제9식으로 정립하고 무명의 훈습, 즉 무명의
작용에 의하여 연기적인 생멸의 현상세계가 생기하는 것으로 파악하였던 것이
지만, 근원 곧 진여문과 현상의 有, 곧 생멸문과의 관련관계를 『대승기신론』처
럼 조용한 해수와 풍랑의 海瀘의 관계와 같은 相卽論理的 관련관계로 본 것이
아니고, 그 양간의 관계를 차이성이 심화된 대립성의 관계로 파악해서 그 양간
을 상보적인 연관관계로 자각했던 것으로서 『대승기신론』의 교리를 넘어서서
심화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라 하겠다. 그같은 양간의 관련관계를 또 理事의 관
계, 眞俗의 관계라고 하는 것이지만, 성사에 있어서의 理事圓融無碍論, 곧 眞俗
圓融無碍論은 종전의 교학과 같은 상즉논리적인 원융무애론이 아니고, 상보논
리적인 원융무애론이었다고 하겠다.
성사는 『대승기신론소』에 覺에 이르는 실천적 과정으로, '止觀二行, 旣必相
成, 如鳥兩翼, 似車二輪, 一輪不具, 卽無運載之能 一翼若闕 何有翔空地勢' 라고
논하고 있다, 진여에 이르는 방범을 止라 하는 것이고, 생멸현상을 파악하는 것
을 觀이라 할 때, 그같은 양자는 兩翼과 二輪처럼 상호보완하지 않고서는 정각
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도 화쟁논리가 상보의 논리임이 명시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理事 또는 眞俗 兩門의 관계가 상보의 관련관계임이 명
백히 되고 있다.
그런데 그같은 대립성의 상보논리적 통일은 불교교리에 있어서 더욱 심오한
진리를 현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에 있어서 열반, 또는
진여에의 往相과 생멸문 또는 세속에의 還相(보살행)의 상호관계가 종전의 상
즉의 논리로써는 명백하지 믓하였으나, 상보의 논리에 의하여 비로소 서로 떨
어질 수 없는 필연적인 밀접한 관계가 현시된다. 즉 열반에의 往相은 세속의 退
相과는 새의 양날개, 또는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상호보완관계에 있으므로, 열
#235
반에의 성불은 반드시 생멸세속의 제도 곧 보살행 없이는 이룩될 수 없는 것인
즉, 왕상과 환상은 떨어질 수 없는 상보관계에 있게 되는 것이다.
성사는 그 같은 화쟁의 논리, 즉 자각적 상보의 논리에 입각하여 모든 불교경
전을 해석함으로써 세존의 가장 심오한 불교의 極義를 현현하였던 것으로서,
불경 86종에 달하는 방대한 註釋의 저술을 하였던 것이다.
내용적으로 말하여 성사의 교리체계는 유식학을 초월하였을 뿐만 아니라, 천
태학, 화엄학의 상즉의 사상을 넘어서서, 용수보살이 자각했던 眞空(절대무)의
자작에 底礎하여 그같은 유식학, 천태학, 화엄학을 통함한 대승불교의 사상체계
를 이룩함으로써 세존의 가장 심오한 정각을 현현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원효성사의 그같은 불세출의 공업과 그 심오한 견성은 용수보살 이래의 제1인
자라 하겠으니, 용수보살을 제2의 석가불이라 한다면, 성사는 제3의 석가불이라
하여도 곁코 과언이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聖師가 소시설에 王命에 의하여 요석 공주와 동거하여 설총을 낳았다는 사실
을 가지고 파계 운운하는 무리도 있지만, 그것은 성사가 불륜을 범한 것도 아니
고 또한 여인에 溺愛하여 보살행을 멈춘 것도 아니다. 왕명을 거역하여 賜死하
느니보다는 왕명에 승복하고 나아가서 불교의 진리를 구명하여 悟道한 성사의
사명완수의 보살행은 조금도 홈이 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니,
후세 고려 숙종도 大聖이라는 시호를 올렸던 것이고, 大覺國師 義天은 제2의 원
효 성사가 될 것을 맹서하면서까지 흠모하였던 것이다.
원효성사는 그처럼 화쟁논리를 개발하여 당시 중국에서 분열되고 있었던 10
여 개의 불교종파를 통합하여 대승통일 불교를 체계화하여, 최초로 통일된 한
민족의 민족주체정신을 확립하였을 뿐만 아니라, 또한 出世間(往相)과 世間(還
相)과의 관련관계를 교리적으로 퉁일하였다. 그 같은 민족주체정신은 바로 세속
적인 국민통함의 국가이념으로서 작동하였으므로 성사 이후에 한민족의 불교
에는 중국과 일본과 같은 분파불교가 이룩되지 않았던 것이다.
성사가 이룩한 대승통일불교는 그 당시 불교문화권이었던 동양삼국의 문화
를 제압하였던 것으로서, 당나라 화엄삼조 賢首大師 法藏의 문하였던 慧苑法師
#236
의 기록에, "원효대사는 비록 동이의 사람이지만, 그 학덕은 당토를 덮으니, 불
세출의 위인이다"라고 칭송한 것만 보아도 짐작할 수가 있을 것이다. 당나라에
있어서 성사의 『대숭기신론소』는 『海東疏』라 하여 추앙되었던 것이고, 또 성사
의 『금강삼매경소』는 『금강삼매경론』으로 격상되어서 추앙되었던 것이며, 성사
보다도 28세 연하였던 당나라의 현수대사 법장은 성사의 화쟁논리를 계승하여
화엄학을 대성하였던 것이다. 중국에서 발전한 화엄학의 궁극적인 교학체계는
이른바 화엄학 3조 현수대사가 체계화한 이른바 六相圓融說이라 할 수 있다. 화
엄학 초조 두순대사에서 비롯하여 2조 지엄대사에서 체계화된 이른바 十玄緣起
說(無盡緣起說)은 다만 자각적 상즉의 논리에 입각한 연기설이었음에 대하여,
현수대사가 체계화한 육상원융설은 화쟁논리, 귿 자각적 상보의 논리에 의하여
조직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위와 같이 동양에 있어서의 논리사상의 전개과정을 고찰하여 본다면, 동양의
4차원 논리는 석가세존에서 시발되고, 용수보살의 절대 부정적 자각의 논리를
거쳐서 원효성사의 화쟁논리에 이르러 최심의 논리가 개발되기에 이르렀음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동양의 4차원 논리는 서양의 4차원 과학인 이른바
新物理學(상대성원리와 양자역학)의 기본 논리로서 전개되어 人人類後史인 우주
시대의 전문화의 기반이 될 수가 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인류후사의 신문화
는 동서문화를 통합한 고차원의 문화가 아니면 될 수가 없겠기 때문이다.
4. 和言學論理의 전개와 軒民族統一理論
원효성사가 화쟁논리라는 새로운 지성을 개발하여 10여 종의 불교 異說을 통
일하여 統一 大乘佛敎를 정립함으로써, 통일 한민족의 민족주체정신을 최초로
확립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은 위에서 논한 바 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유사한 예를 근대에 이르러 유럽에서 찾아 볼 수 있으니,
게르만민족의 주체정신을 확립한 헤겔(G. W.F. Hegel, 1770-1831)의 이른바
#237
변증법논리의 개발에 의한 독일 관념론 철학의 대성이다. 헤겔은 칸트(Immanul
Kant 1724-1894), 피히테(Johann Gottlich Fichte 1762-1814), 쉘링(F. W. J.
Schelling, 1775-11854)의 학통(學統)을 계승하여 독일 관념론철학을 대성하였던
것이지만, 독일 관념론 철학은 칸트의 선험적 비판철학에서 부터 르네상스 이래
로 새로이 흥기되었던 유럽의 양대 사조인 영국의 경험론철학과 프랑스의 㫿理
論철학을 통일하려 한 철학이었다. 칸트는 경험론적인 직관과 유리론적인 이성
을 超個人我라 할 수 있는 이른바 선험적 주관에 입각하여 그 통일철학을 이룩
했으니, 자연세계의 법칙적 근거는 선험적 주관 곧 인간의 理性임을 밝혀서, 인
간이성은 자연계의 立法者라고 하는 철학을 정립하였었다. 그리 한 칸트의 선험
철학은 자연세계와 인간이성을 통일한 철학이었으나 다만 법칙적 면에서 즉 형
상적 면에서 통일한 철학임에 그치고, 실질적 면 즉 질료적 면에 이르기까지의
통일은 이룩하지 못하였었다. 그 같은 칸트의 선험철학을 계승한 독일 관념론
철학은 피히테와 쉘링의 형이상학적 사색을 거쳐서, 헤겔에 이르러 이른바 변
증법 논리의 개발과 더불어, 그 양 부분은 실질적 면에 이르기까지 변증법의 고
차원적 합리성에 있어서 통일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헤겔은 우주의 근원을 칸트의 선험적 자아라고 하는 이성, 피히테의 절대적
자아라고 하는 이성, 쉘링의 자연과 자아의 절대 동일이라고 하는 이성 등을 객
관화하여 이른바 絶對精神이라고 자각하였었다. 그 같은 절대정신에서 인간의
주관정신과 자연은 疎外(Entfremdung)되어 나은 것인데, 그 양자는 이른바 대
립 모순관계로 전개되고, 나아가서 그 양자의 대립 모순은 止損(Aufheben)되어
서 객관정신, 곧 문화로서 定有하게 되며, 또한 그같은 객관정신을 통하여 절대
정신은 자기 자각적으로 현현되고 실현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러한 헤겔의
절대정신의 변증법 철학은 이른바 자유사관 이라는 역사철학으로 전개되어, 독
일민족의 민족 주체정신으로 확립되는 것이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의 본질은
자유인 것인데, 정신의 자기실현은 자유의 실현으로서 현현된다는 것이다.
자유는 고대 아시아사회의 전제군주 일인의 자유에서 고대 그리이스, 로마의
귀족들 數人의 자유로 전개되고, 나아가서 근대 독일의 입헌군주국에 있어서
#238
만인의 자유로서 현현되었다는 것이다. 이상에서 독일 민족주체정신의 형성과
정을 논하였는데, 그 형성파정에 있어서 외래의 분열 대립된 사상을 통일함으
로써 민족주체정신을 확립한 신문화 창조의 유형이 그 시대의 古今과 사색의
내용에 있어서 상이하지만, 원효성사가 외래의 분열 대립된 불교 제종파를 화
쟁논리라는 신지성을 개발하여 통일 한민족의 주체정신을 확립한 것과 동일한
문화 창조의 유형임을 비교문화학적으로 파악할 수가 있다. 또한 그같이 창조
된 고차원의 신민족문화는 한민족에 있어서는 고대 동양문화를 제압하였던 것
이고, 독일 민족에 있어서는 근대 유럽문화를 제압하였던 것이니, 민족문화의
창조 유형에 있어서 가장 진취적인 유형이라 할 수 있겠는데, 그 같은 문화창조
의 유형이야말로 한민족과 독일민족의 뛰어난 문화적 개성의 전통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사의 숙명에 의하여 한민족과 독일민족은 또다시 대립 모순된 양대사조
에 의하여 민족이 분열 대립되고 국토는 분단되기에 이르렀다. 그 같은 양대 사
조에 의한 민족의 분열과 국토의 분단을 통일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날 양 민족
의 지상과제로서 요청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는데, 그러한 분옅 대립의 통
일은 양 민족의 문화적 전통에 따라서 새로운 고차적인 지성을 개발하여 양대
사조를 초극한 고차원의 신문화를 창조함으로써 이룩하는 수밖에는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
양대 사조의 분열 대립을 근원적으로 파악한다면, 유럽 르네상스 이래로 형성
된 유럽 근대 과학문화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이룩된 것이라 할 수 있으니, 그
분열 대립의 초극 통일은 유럽 근대과학문화를 근원적으로 초극함으로써 비로
소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유럽 근대 과학문화는 그 근원인 지성 위에서 이
록된 과학문화라 하겠으니 그 근원적인 초극은 4차원의 고차적인 지성의 개발
파 그러한4차원 지성에 입각한 고차적인 신문화의 창조에 의하여서 가능한 것
이라 할 수 있다.
4차원의 고차적인 지성은 동양 고대의 불교 철학을 주축으로 하여 개발된 4
차원의 理性파 현대 유럽에서 이룩된 신물리학(相對性原理와 量子力學)이라는
#239
4차원 과학과의 통합에서 이록될 수 있는 것이니, 동서의 철학과 과학이 통합되
어서 비로소 신세계의 고차원의 문화가 창조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할진대
고대 그리이스문화의 전통을 계승한 유럽의 근대 과학문화를 人類前史라 하고,
그같은 근대 과학문화를 초극한 신세계의 고차적인 신문화를 人類後史문화라
한다면, 인류후사의 이른바 우주시대 문화는 동서문화의 통합에 의하여 이룩되
기에 이른다는 것이 인류사의 운명임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이다.
문화생태학(Culture ecology) 곧 문화진화론의 역사철학에서 본다면 원시인의
시대에서 고대의 理性人間(Homo sapience)의 시대에로의 진화가 인류사에 있어
서 제1단계의 진화라 하겠고,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서 근대의 工作人間(Homo
faber)의 과학문화시대에로의 진화를 제2단계의 진화라 하겠으며, 근대문화를
초극한 인류후사의 創造人間(Homo creatrio)의 이른바 窮局科學의 문화시대를
제3단계의 문화라고 규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근대 과학문화시대는 근대 과학과
과학기술의 개발에 입각하여 이룩되었던 이른바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하여 창
조된 문화였던 것으로서 그같은 산업혁명을 독립변수로 하고 정치 사회체제를
그 종속변수로 하는 문화인 것이다.
산업혁명의 수행을 목적으로 하여 영국. 프랑스. 미국 등에 있어서는 개인
주의에 입각한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이룩되었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에 있어서 는 민족주의에 입각한 독재 침략주의의 정치체제가 이룩되었
으며 러시아, 중공 등에 있어서는 계급주의에 입각한 계급독재와 세계적화의
패권주의 정치체제가 이룩되었는데, 민족주의에 입각한 독재 침략주의 정치체
제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의하여 몰락하였었다.
종전과 더불어 세계사는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진영이 분열 대립
하게 되고, 양 진영은 가공할 핵무기로써 대치하게 됨으로써 양 진영 사이에는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가공한 無(Nichts)의 심연이 개시되거에 이르렀다. 이같
은 미증유의 인류 멸망의 위기가 초래된 원인은 핵무기라는 초고성능의 가공할
무기를 개발한 고차원의, 곧 4차원의 신물리학의 이론과 기술에 있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같은 4차원이라는 고차원의 과학기술을 包越할 고차원의 정치 사회
#240
체제가 아직껏 장조되지 못한 것에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과학기술은 고
차적으로 4차원화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포월해야할 정치사회체제는 3
차원체제라는 저차원에 머물고 있다는데 그 위기의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그
러므로 지금 인류는 급속하게 그 정시사회체제 및 국제 정치질서를 근대의 3차
원의 질서에서 4차원의 고차적인 질서에로 진화,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요청
되고 있다.
근대 각국의 정치 사회체제의 근본이 되어 온 개인주의 계급주의 및 민족주
의는 그 모두가 3차원의 공간적 지성에 입각하여 구상된 주의, 주장들이라 할
수가 있는 것이다. 3차원의 공간적 지성이란 위에서도 논한 바와 같이 시간의
독자성을 고대 그리이스 이래의 일반논리의 이른바 矛盾律에 의하여 배제된 지
성으로서, 시간성이 배제된 공간적인 有만을 실재라고 생각하는 이른바 實體論
의 지성인 것이다. 근대의 과학적 지성은 바로 그 같은 일반논리를 그대로 게송
하여 그것을 대중을 인식하는 이른바 對象論理로 발전시킨 지성이다. 그러한 3
차원 공간적 지성인 근대 과학적 지성은 시간을 공간의 한 차원인 線으로 투영
하여 공간성으로 편입한 지성으로서, 공간성의 존재자(Seiendes)만이 참다운 실
재인 것으로 인식하는 지성이다. 그 같은 근대 파학적 지성은 자연세계를 최소
의 공간적 존재자의 단위로서 간주되었던 이른바 원자(Atom)에까지 분석하여
그 같은 원자를 근본적인 실재인 것으로 인식하였던 것이다. 근대 과학적 지성
은 자연계를 이른바 要素 還元主義에 입각하여 그같은 원자의 總和的 집합체로
간주하여 그 인과필연적인 역학관계를 구명하였었다.
인간사회도 그것을 개인의 개체에까지 분할하여 그같은 개인의 개체를 유일
한 기본적인 실재로 간주하고 사회를 그러한 개인의 총화적 집합체 또는 기껏
해야 1보 나아가서 總乘的 集合體로 간주하였었다. 그러한 개인은 기계적으로
평등한 것이며 또한 존립의 권리 곧 생존의 자유권 또한 나아가서 이른바 행복
의 추구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기본적인 실
재자로서 개인들은 각각 독자적인 자율적 생존자로서 스스로의 생존은 스스로
의 책임인 것이지만, 다만 그 같은 개인 생존을 위한 자유를 확보하거 위하여 개
#241
인들간의 합의에 의한 사회를 결성하고 국가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근
대사회를 개인주의 사회라 하는데, 그같은 개인주의 사회의 정치체제가 바로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인 것이다. 그러한 개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필연적으
로 격렬한 생존의 자유경쟁이 야기될 수밖에는 없는데,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의 이른바 『國富論』의 이론처럼 자유생존경쟁은 개개인의 自
愛的인 이기심에 입각한 근면성과 창조성을 촉진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 전
체의 부를 초래한 면이 현저하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반
면 그 자유 생존경쟁은 이른바 약육강식의 논리가 되어 부익부, 빈익빈의 결과
를 초래하여 사회를 파탄으로 몰아 넣고 나아가서 또한 그러한 약육강식이라
는 사냥하는 식의 밀림의 논리는 후진민족을 정복하여 식민지를 노예민족화하
고 약육강식한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었다. 그러한 약육강식의
논리가 한 사회 안에서 계급적으로 즉 자유 민주주의사회에 있어서 부르죠아
(bourgeois) 자본가 계급과 프롤레타리아(Proletaria) 노동자 계급 간의 사이에서
현상될 경우, 경제적 강자인 부르죠아 계급의 경제적 약자인 프로레타리아 계
급에 대한 약육강식으로 나타난다. 그처럼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생존경쟁의
원리인 자유민주주의 정치이념은 결과적으로 경제적 강자인 부르죠아 계급만
을 옹호하는 정치 이념이라 하여, 이른바 부르죠아 계급의 이데을로기(Idelogie)
라고 한다.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가 약육강식의 체제가 된 근본 원인은
3차원 공간논리에 입각하여 개인을 독립적으로 존립하는 실체로 간주하고 그
같은 개인은 스스로의 생존은 스스로의 자애심과 능력에 의하여 확보할 수 있
고, 또한 확보해야 한다는 그러한 그릇된 원리에 있다. 그같은 원리에서는 타인
을 자기 존립을 위하여 타도할 수밖에 없는 것인즉, 본의이든 본의 아니든 능력
있는 자가 능력없는 자를 타도하게 된다는 약육강식의 체제가 될 수밖에는 없
게 된다.
동양 볼교에서 자각한 4차원 논리에 의한다면, 개인을 독존하는 실체로 인식
하는 그 자체가 오류인 것이다. 불교의 4차원 논리, 그 대성한 것으로서의 원효
#242
성사의 화쟁논리는 위에서 논한 것처럼 自覺的 相補의 논리인데, 유럽 근대 과
학적 지성인 3차원 공간논리처럼 시간을 공간으로 투영하여서 공간 안으로 편
입하여 시간의 그림자만 인식하고 시간의 진상을 拾象한 그러한 추상적인 논리
가 아니고 시간의 진상을 진상 그대로 파악한 논리이다. 晋譯 『華嚴經』 권30에
'時無別體, 依法假立' 이라는 것과 생멸의 근거를 이른바 무명의 識習이라고 파
악한 것을 아울러 생각하면, 시간은 근거가 무(Nichts)로서 공간올 성립시키는
기능인 동시에 공간을 운동 변화시키고 생멸시키는 기능이라 할 수 있다. 성찰
한다면 공간의 본질은 질료의 대립관계인 것이고 그같은 질료의 대립관계, 나
아가서 그 대립관계가 심화된 이른바 모순관계에서 운동과 변화, 또는 생멸이
이룩되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대립관계만을 명언하고 모순관계라는 것은 명언하지 아니하였는
데, 위에서 논한 헤겔의 변증법 논리가 대립관계의 심화가 모순관계이고, 모순
은 운동변화의 근본원인임을 파악하였다는 것을 이에 부기한다. 다만 종교에
있어서 생멸현상을 강조하고 있는 그 교설의 전반적인 논리전개 과정을 본다
면, 대립관계 안에 명언은 하지 아니하였으나, 모순관계도 내포되고 있었던 것
이 명백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즉 공간의 본질은 질료의 대립. 모순관계
로서 그같은 掾起關係의 관련구조에서 有의 운동변화 및 생멸이 이룩되는데,
그 같은 공간(有)의 연기적인 관련구조를 형성시키는 기능이 바로 시간인 것이
고, 또한 그러한 시간기능의 근거는 無라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의 관계가 이와 같을진대, 시간의 전상은 유(空間)의 운동변화 및
생멸 그 자체인 것이고, 또한 결론적으로는 유[空間)를 대립, 모순관계로서 파
악한다는 것에 귀결한다. 그처럼 유는 언제나 다른 유와의 대립적인 관련관계,
곧 연기관계에서 비로소 그 존재성이 가능한 것이므로 모든 존재자인 유는 독
립할 수 있는 자성이 없는 것이고(諸法無我), 또한 그 같은 대립적인 관련관계
에서 생멸이 불가피한 것으로서 항구적인 것이 있을 수 없다(諸行無常)는 것이
다. 화쟁논리, 곧 자각적 상보의 논리는 그러한 유의 대립적 관련관계는 그 근원
을 자각한다면 상호 보완하는 관련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즉, 유의 대립적 관련
#243
관계에 있는 유는 상흐 보완하여 근원을 현현하며 유의 法界를 존재케 하고 발
전케 하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원효성사의 『大乘起信論疏』에 車輪에 있어서 一輪이 不具일 경우 運載之能
이 있을 수 없고, 鳥翼에 있어서 一翼어 闕한다면 翔空之勢가 있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유와 유의 대립적 관계는 상호 보완하여 근원을 현현시키어 현상적
인 기능과 세력을 창조한다는 것이 근원, 대립적인 유, 그리고 생멸현상이라는
3자와 관련하는 구조의 진상어라는 것이다. 대립관계에 있는 유와 유의 상호 보
완에 의한 기능과 세력의 창조라는 것은 당나라 腎首大師가 성사의 화쟁논리를
부연하여 이룩한 화엄학의 六相圓融說에 있어서 의 이른바 成相과 같은 것으로
서 그것은 개볕자(異常)의 3차원적인 총화적 또는 층숭적인 집합제와는 차원을
달리 하는 4차원적 인 이질적 창조를 의미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상과 같은 4차원의 불교 논리에서 유럽 근대 과학의 3차원 공간논리 위에서
형성된 개인주의에 입각한 자유 민주주의 체제를 비판한다면, 개인을 독자적으
로 존립하는 기본적 실재로 간주하는 개인주의 자체가 추상적인 허구의 오류인
것으로서 독자적인 개인이라는 것은 叚有 곧 假象에 지나지 않는 것이고 패성
이 각각 상이한 대립적인 관련관계에 있는 개개인은 상호 보완하여 그같은 개
개인의 공통생명인 근원의 생명을 현현하여 공동의 생존을 가능케 할 수 있는
기능과 세력, 곧 공동의 생존문화를 창조하고 생산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개인
과 개인의 구조관련은 4차원 지성인 자각적 상보 논리에 입각해서 비로소 파악
될 수 있는 인간존재의 구조관련적 진리라 할 수 있다.
그같은 4차원 상보논리적 구조에 있어서는 개인간의 자유경쟁은 그 개성과
능력의 발굴신장을 위한-경쟁에 그치게 제한되는 것이고, 약육강식의 밀림의
논리와 또한 그에 따른 이데을로기성은 근원적으로 극복되는 것이다. 생각컨대,
불교의 교조 석가세존은 중생에 있어서 약육강식을 제도하고, 또한 그 생멸의
무상을 극복하고자 불교를 개창하셨던 것인데 그것의 논리적인 현현으로서의
화쟁논리가 약육강식의 논리를 극복할 논리로서 역할할 것은 당연한 사리임을
깨달을 수 있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구조는 사회적인 상보적 관련관계에서 의
#244
식주의 생존문화를 창조하고 생산하여 생존하는 구조이다.
인간은 사회적인 상보적 관련관계에 있어서 언어를 통하여 지성을 발전시키
고, 그같은 지성을 발전시키고, 그같은 지성을 독립변수로 하고 협동적인 물질
적인 운동을 종속변수로 하여 공동적인 생존문화를 창조적으로 발전시킨다. 그
러므로 언어공동체인 민족공동체가 인간사회의 기본적 사회단위가 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의 이른바 구민족주의(Olden-
nationlism)는 3차원 공간논리의 사고방식에 입각하여 개인주의가 개인을 독존
적인 실재라고 誤想하였던 것처럼 1개 민족을 독존적인 실재라고 오상하고, 국
내적으로는 독재적으로 민족의 역량을 단순한 총화의 형태로 집결하고 국제적
으로는 타민족에 대한 약육강식의 만행적 침략을 자행하였었다. 생존문화를, 인
간생존구조에 있어서 국가는 그 민족 구성원의 개성적인 능력을 상보적 관련
관계적인 창조민주주의적으로 통합하지 않으면 문화의 질적인 발전을 이룩할
수가 없는 것인데, 3차원 지성의 경화된 유기체설적인 관념에서 민족 구성원을
畜群처럼 통일한다는 것은 오류의 주의가 아닐 수 없다. 또한 국제적으로 타민
족의 개성적, 독창적인 민족문화를 존중하고 자타민족의 상보적인 관련관계에
서 인류문화를 질적으로 고차원화하여 우주에 있어서 인류 생존의 영속을 도모
하고 인류의 우주사적 사명, 즉 인류는 우주의 창조적 발전에 참여해야 한다고
하는 그 지극한 사명완수에 이바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민족의 독창적인 문화를 말살하고 노예화하려는 약육
강식을 자행한다는 것은 인류에 있어서 각 민족의 상보적인 문화의 창조적 발
전을 저지하고, 나아가서 그같은 3차원이라는 저차원의 문화에 머물러서는 우
주사에 있어서 자기 민족의 생존도 영속하지 못하게 되는 오류의 인족주의가
되는 것이다. 그같은 3차원 공간논리에 입각한 오류의 민족주의를 청산하고 4
차원의 상보논리에 입각한 잠조 민주주의적 민족주의를 신민족주의
(Neonationalism)라 일컫는다면, 그러한 신민족주의는 지금 바야호로 개창되고
있는 인류후사에 있어서 각국의 기본적인 사회단위가 될 수 밖에 없으며, 또한
#245
그러한 신민족주의 단위의 국제질서 는 4차원 창조 민주주의적 질서 로 전개되어
인류문화의 고차원화와 인류생존의 영속과 우주사에 있어서 인류사명의 완수
가 이룩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원효성사의 화쟁의 논리, 곧 자각적 상보의 논리는 근대파학의 3차원
공간논리에 입긱한 약육강식의 개인주의와 구민족주의를 초극하여 전개될 인
류후사의 창조 민주주의적 신민족주의의 기본적인 구조 원리로서 역할하기에
이른다.
이상과 같은 究明에서 원효성사의 화쟁의 논리는 고대 한민족의 통일이론의
지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1期년 후의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국 민족통일의 기반
적인 논리가 되기에 이를 것이라는 눌라운 역사적 숙명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
다. 그러므로 지급에 와서 고대 원효성사의 화쟁논리의 부흥이 절실한 문제로
서 역사적으로 부상되지 않을 수 없고, 동시에 또한 인류사에 있어서 最深의 종
교인 불교사상의 현창과 현금 멸망의 심연에 직면한 인류의 구제를 위하여 인
류후사를 포월할 종교로서 의 그 교리의 현대화가 절실히 요청되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불종사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01193704043/12410788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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