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 알기

(동광스님) 법화경의 한역 과 우리나라의 법화불교

수선님 2019. 4. 7. 12:19

 

3. 법화경의 한역2002/05/31

 

 

법화경이 인도에서 축법호삼장에(206-286년) 의해 정법화경이 한역된 후, 100년이 지나서 중앙아시아의 천산산맥 남쪽에 있는 작은 왕국인 구자국(현재 신강성)의 작은 마을의 구마라습에 의해서 한역된 것이 묘법연화경이다.(343-413년).

*라습은 7살에 출가하여 9살에 어머니를 따라 게빈국으로 가서 왕의 종제인 반두달다를 스승으로 아함경을 배우고,12살 때 어머니와 같이 구자로 돌아왔으며, 다시 월지국(인도)으로 유학을 하게 되며, 월지에서 수리야소마를 스승으로 모시고 제대승경(諸大乘經)을 배우고 다시 귀국하게 된다. 귀국 전에 스승으로부터 범어로 된 여러 가지의 원전을 받는다. 수리야소마는 라습에게 범어로 된 많은 경전을 전하면서,

“이 중에서 특히 이 법화경은 가장 귀중한 경전이다. 이 법화경은 천축에서 동북방에 인연이 있으니, 너의 힘으로 반드시 전하라”. “이 말씀은 부처님이라는 태양은 서쪽으로 가시고, 이 세상에 안 계시지마는, 부처님이 남기신 빛은, 이제부터 차츰 동쪽을 향해 퍼져 나갈 것이다. 이제 너에게 주는 이 경전 중 특히 법화경은 동북쪽에 인연이 있어서, 그쪽에서 펴질 것이다. 너는 열심히 이 법화경을 반드시 전하라.” 라는 당부의 말씀을 받아서 다시 중국으로 돌아와 갖은 고난과 역경을 딛고, 스승으로부터 받은 법화경과 이외 73종의 대승경을 한역하였으니, 무려 74부 384권을 한역하였다.

*특히 이중에서, 법화경은 그 당시 고승들과 학자들 800여명을 불러모아 구마라습이 직접 한 글자마다 정성을 들여 관하고 교정하여 번역을 마치게 되며, 번역을 하면서 항상 하였던 말이 있으니, “내가 한토의 일체 경을 보건데 모두 범어와 같지 않느니라. 어떻게 하여 이 사실을 밝혀 놓을 것인가, 단 한 가지 대원이 있노라. 몸은 부정하여 처를 거느렸으나 혀만은 청정하여 불법에 망어하지 않았으니 내가 죽거든 화장하되 혀가 타거든 나의 역경인 묘법연화경을 버리라고 항상 법좌에서 설하였다고 한다. 모든 사람들은 라습삼장보다 나중에 죽어 반드시 이 일을 보고 죽으리라 하였다고 한다”.

(“전진건원십팔년구월(前秦建元十八年九月.서력382년)에 진왕인 부견은 여광이라는 장수를 시켜서 라습을 인질로 잡아오게 하여 강제로 왕의 딸과 혼인을 시키고, 그 후에 후진(後秦)의 홍시(弘始) 3년 5월(서력401년) 요흥은 여륭을 토벌하고 12월에 라습삼장을 장안(長安)으로 오게 하여 국사(國師)로 모시고 소요원(逍遙園)에 9년간 머물면서. 법화경외. 미타경. 대품반야경. 금강반야경. 범망경. 유마경. 대지도론. 중론. 백론. 십이문론 대승경을 한역함”). 과연 죽어 화장을 하였으나, 부정한 몸은 타고 재만 남았으나 혀는 불 속에서 청련화가 생겨 타지 않고, 그 위에서 오색광명을 나타내었으며. 이로 인하여 다른 인사가 역경 한 경문은 경시 당하였다고 하였으며, 그러나 라습삼장이 역경 한 묘법연화경 1부 8권 28품 69384자는 이러한 상서로 인하여 한토에 쉽게 유포되었다고 한다.

*일연대사曰. “월지(지금의 인도)에서 한토(지금의 중국)에 경논을 가져온 인사(人師)는 구역과 신역을 포함하여 186인이나 되지만 구마라습삼장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잘못이 있노라”. 라고 하였다.

*남승전과 남산감통전의 기록에 의하면, 위천인 曰, 구마라습은 대승을 잘 해득하였으며 과거 칠불 이래로, 법이 전해져 왔는데 법왕이 끼쳐 놓으신 것을 올바르게 증득하였다. 세상에서 그를 모함하는 이가 있으나, 라습삼장을 의심할 바가 못 된다 라고 하였다.

*과거칠불: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 석가모니불.

*구마라습은 십주(十住) 십행(十行) 십회향(十回向)인 삼현(三賢)의 지위에 오른 분이다.

*법화경은 인도-중앙아시아(파키스탄. 아프카니스탄)-중국대륙으로 전파된 경이며, 인도 8종의 종조(宗組)로부터 추앙을 받은 용수보살은 대지도론 중에 법화경을 인용했으며, 천친 보살도 불성론과 법화론을 지어서 최초로 법화경을 주석하신 분이다.

# 유가론(兪伽論)에 월지(인도)에서 축인방(동북방) 쪽에 대승 법화경이 유포될 소국이 있음이라. (우리나라가 해당됨)

 

9. 우리나라의 법화불교2002/05/31

 

*백제 사람인 현광대사가 중국으로 건너가 남악혜사 문하에서 천태대사와 같이 동문 수학하여 법화삼매를 증득하신 분으로서, 중국인 제자 혜민에게 법을 전한 일대의 고승이다.

우리나라의 법화경 종조로서, 그후 안락행의를 가지고 귀국하여, 당시 웅주(공주)에서 법화경을 유포하고, 많은 제자들을 배출하신 분이다.

현광대사의 제자 중에는 화광삼매, 수광삼매를 얻은 제자가 많았다고 한다.

*고구려 영양왕 때, 혜자스님은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성덕태자에게 법화경을 가르쳤으며,

*신라 낭지법사도 법화삼매를 증득했다고 하며, 신라의 원효대사는 법화종요를 지어서 회삼귀일의 법화 사상으로 삼국을 통일하는데 원동력이 되게 하였다.

*고려 제관법사는 중국의 오월 왕의 초청으로 중국에 가서 천태사교의를 짓고, 중국에서 입적하였으며, 그 당시 쇠퇴한 중국의 법화 불교를 융성하게 하였다.

천태사교의는 승려라면 반드시 필독해야 할 과제이다.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대각국사는 천태대사의 법을 이어, 교(敎)와 관(觀)의 병수로써 묘법연화경의 십권을 방언(方言)(우리말)으로 번역한 것은 그야말로 자랑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원묘국사 요세는 전남 장흥 만덕사의 옛 사터에 백련사를 지어 천태삼대부절요를 만들었고, 보현도량을 만들어 천태 특유의 참회법인 법화삼매 참의로 중생을 화도하였으며,

*정명국사 천인은 묘법연화경 총찬과, 묘법연화경 수희품 별찬을 저술하였다.

&수희품 별찬에서
제법실상위정체(諸法實相爲正體) 모든 법은 실상을 본래의 바른 형체로 하고,
평등불혜위묘종(平等佛慧爲妙宗) 평등한 부처님의 법을 묘종으로 하여,
일일언구편법계(一一言句徧法界) 한 구절 한 구절이 법계를 두루하는도다.
자자호구여제주(字字互具如帝珠) 글자마다 제왕의 구슬을 품었으니,
여래비장심심원(如來秘藏甚深遠) 여래의 깊고깊은 비밀이 감추어져 있도다.
사십여년미개시( 十餘年未開示) 사십여년 동안을 열어 보이시지 않으시다가,
구묵본회금내창(久黙本懷今乃暢) 오랫동안 묵언하사 본회를 이제사 펴 보이시네.
무이무삼유일승(無二無三唯一乘) 이승도 없고 삼승도 없고, 오직 일승뿐이라.
묘재차법심희유(妙哉此法甚希有) 묘하도다 법화여 몹시 희유하니,
여우담화시일현(如優曇華時一現) 마치 우담발화가 때에 한번 핀 것 같구나.

정명국사는 묘법연화경 수희공덕품 제18품을 이렇게 찬탄하시었다.

*고려의 천책은 금자(金字)로 법화경을 사경한 계기로 출가하였으며,

*고려 충숙왕 때에 무암, 무기, 운묵 대사는 석가여래의 행적송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다.

*운묵대사는 행적송 자서에서, 사도를 버리고 정도에 들어가려면, 마땅히 교를 배우고, 부처님의 화의를 알아야 하며, 인천(人天)의 안목(眼目)은 바로 이 묘법연화경이며, 그래야만 비로소 불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자로서 “본사를 모른다면 세속에서 아비를 모르는 불효자식과 무엇이 다르리” 라고 하심이라.

*운묵대사께서는 항상 이 말씀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하심이다.

열반경에 曰.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하라”. 즉 “경과 같이 설하지 아니함은 아무리 훌륭한 자라도 신용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는데, 항상 깊이 생각할 것이며, 함부로 망령되이 경문의 말씀을 해석하지 말며, 부처님의 뜻을 잘 이해하고 해석하여 행할 것을 당부하신 것이다.

*운묵대사 행적송 권하 14에 曰.

“부처님 멸도 후 일천칠백년 후 말법 시대에는 사자의 몸 속에서 벌레가 생겨, 사자의 몸뚱이를 다 파먹어 버리는 것과 같이 부처님 제자들이 파계 악행으로 인해 스스로 불교를 파괴시킨다” 라고 예언하심.

*고려말과 이조 초와 지금의 이 시대의 불교를 볼 때, 운묵 대사께서 미래를 내다보시고 하신 말씀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진실을 왜곡되지 않게 전해야 함은 우리들의 사명이라 생각한다.

*. 인간은 무한한 잠재능력으로 인하여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무한한 가능성이란 무엇인가?
천태대사께서는 한 찰나에 사람의 마음속에 움직이는 삼천 가지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일념삼천(一念三千), 즉 삼천이나 되는 마음의 움직임이 일념 속에 모두 다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니, 즉 악한 마음을 가질 것인가, 아니면 선한 마음을 행할 것인가에 따라서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악으로 가느냐, 선을 행하느냐는 이 일념에 있는 것이다.

한 마음 잘못 먹으면 평생을 후회하게 되며, 한 마음 바르게 가지면 나날이 즐겁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도 악과 선을 다 가지고 계셨지만, 악을 멀리 하시고, 선을 행하시므로 부처님이 되신 것이다.

이렇게 일념으로 부처도 되고, 악인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사업가도 되는 것이다.

하나의 마음이 이렇게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처가 되는 것이다.

사업가가 되든 과학자가 되든 모든 인간은 부처가 될 것을 서원하고 살아가야 하리라. 부처가 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진행함으로 그 과정에 과학자도 사업가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부처가 되는 기회를 부여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 찰나의 마음이 무한한 힘을 갖추고 있음을 알고, 이 개체가 갖추고 있는 무한한 힘을 통찰함으로써 깨달음이 실현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세존의 가르침을 아는 것만으로는 성불할 수 없다.

부단한 노력을 하여 부처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열어, 그 법 속으로 들어가 부처를 구하려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 묘법연화경에 曰,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지금까지 갖고 있던 마음을 바꾸게 하기 위하여 말씀하시기를, 사리불이여 모든 부처님의 지혜는 매우 깊고 무량하여, 그 지혜의 문은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들어가기도 어려워서, 성문과 벽지불로서는 알 수 없느니라.”

*특히 벽지불은 자기자신 스스로 얻지 못함을 얻었다고 만족하며, 자연의 현상을 보고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만의 편안함을 얻어 그것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인데, 이 시대에 사는 우리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씀인 것이다.

자기자신만을 생각하며,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마음에 의한 지혜는 범부중생의 지혜인 것이다. 이 마음을 바꾸어 나가야만이 부처의 문에 들어갈 수가 있다.

*. 묘법연화경 방편품에 曰. “5천의 무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감이라.”

부처님께서 이들을 가리켜, 죄의 뿌리가 깊은 증상만자로서, 얻지 못한 것을 얻었다고 하는, 건방지고 교만하고 자만하는 자들을 지적하신 것이다.

모르면서 아는 척, 또는 교만하고 자만하는 것은, 죄의 뿌리가 깊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람이면서 수라나 축생의 마음이 더 많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에게 불지견(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을 열어(開), 보이시고(示), 깨닫게 하시고(悟), 들게(入)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나오심이라.

중생도 부처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부처 되기를 위하는 마음을 항상 가짐으로써, 불지견을 깨닫고자 하며, 자기 것으로 만들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차별을 없게 하기 위함이며, 모두가 다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 진실한 불자라면 부처님의 말씀을 따라 받들어 가져 행하여야 할 것이 다. 말법오탁악세에 그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 것인지는 이미 부처님께서 열반경 제6에서 "말법에는 반드시 네 군데 의지하라"는 중생이 의지해야 할 곳을 정해주신 가르침이 설해져 있다.

#.“열반경 제6. 말법에 네 군데 의지함”

첫째.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사람이란 제종의 조사. 선사. 논사를 가리킴)

둘째. 지혜에 의지하고, 식에 의지하지 말라(식이란 문수. 관세음. 보현. 지장 등의 보살과, 사리불등 십대제자 등이 왼손에 법화경을 들고 설하지 아니하면 이에도 의지하지 말라 하심인데, 하물며 선무외. 불공. 달마. 혜능 등에 의지함은 식에 의지함이다.)

셋째. 뜻에 의지하고, 말에 의지하지 말라(뜻이란 일체의 뜻을 다 마친 법화경의 뜻이다.)

넷째. 요의경에 의지하고, 불요의경에 의지하지 말라(요의란 법화경이며, 불요의란 화엄부. 아함부. 방등부. 반야부 등 구역과 신역과 40여년 동안 설하신 일체 모든 경을 뜻함).

* 열반경 권6에 曰. 역시 여래수의(如來隨宜) 방편소설의 법에 집착을 일으키지 않음을 요의라고 이름하며, 불요의(不了義)란 경의 가운데에 일체 소연이고. 일체 무상이며. 일체 개고이고. 일체 개공이며. 일체 무아라고 설함과 같으며, 이것을 불요의라고 이름하느니라. 어찌하여 그런고 하면 이와 같은 의를 요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여러 중생으로 하여금 아비지옥에 떨어지게 하느니라.


 

 

 

 

 

 

 

 

 

행자실님의 블로그 http://blog.daum.net/dis834/1082 에서 복사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