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온글 , 혜성스님
실상(實相)이란
실상(實相)이란?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말길이 모두 끊어졌으며
마음이 행하는 곳이 멸하니
처음과 끝이 구경에는 평등함이라.
실상이란 말길이 끊어졌으며, 어떤 형상도 적멸하여 말로써 표현하거나 모양으로 보일 수 없는 것이다. 부처님과 부처님만이 궁구하여 다한 자리라고 설하시고 있다.
무량의경(無量義經)에서
기일법자(其一法者) 즉무상야(卽無相也)
여시무상(如是無相) 무상불상(無相不相)
불상무상(不相無相) 명위실상(名爲實相)
그 하나의 법이란 곧 형상이 없음이니
이와 같이 형상이 없는 것은
형상도 없으며 형상이 아니나니,
형상이 아니기에 형상이 없으므로
실상이라 이름하느니라.
이렇게 실상은 형상이 없고 형상이 없으므로 형상이 아니고 이름하여 실상이라 할 뿐이다.
실상이라 함은 묘법연화경의 이명(異名)이요, 제법이라 함은 묘법연화경을 말하는 것이다.
지옥(地獄)은 지옥의 상(相)을 보이는 것이 실상이요, 아귀(餓鬼)로 변하면 지옥의 실상은 아니다. 불(佛)은 불(佛)의 상, 범부(凡夫)는 범부의 상, 만법(萬法)의 당체(當體)의 상(相)이 묘법연화경의 당체이라, 이것을 제법실상(諸法實相)이라 하노라.〈천태대사〉
이 문(文)은 현상(現象) 이대로가 실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상은 반드시 제법(諸法)이요, 제법은 반드시 십여시(十如是)요 십여시는 반드시 십계(十界)요, 십계는 반드시 신토(身土)라 법계의 상이 묘법연화경의 다섯자와 다름이 없다.
석가세존(釋迦世尊)과 다보불(多寶佛) 두 부처님께서도 제목 다섯자로 일체 중생으로 하여금 성불케하는 이익을 주시기 위하여 사(事)와 상(相)의 두 부처님으로 나타나 보탑(寶塔)속에 함께 계시는 것이다.
지용보살(地涌菩薩)인 상행(上行)·무변행(無邊行)·정행(淨行)·안립행(安立行) 보살 등은 말법시에 출현해서 묘법연화경 제목 다섯자를 홍통(弘通)할 것이라.
수량품에 여래비밀(如來찅密) 신통지력(神通之力)의 여래비밀은 구체삼신(俱體三身)으로서 본불(本佛)을 말함이며, 신통지력은 구용삼신(俱用三身)의 적불(迹佛)과도 같은 것이다.
범부는 체(體)의 삼신(三身)이니 본불(本佛)이라.
불(佛)은 용(用)의 삼신(三身)이니 적불(迹佛)이라.
그러나 중생은 미오(迷悟)의 부동으로 해서 중생과 부처가 달라졌으므로 체(體)를 갖추고 용(用)을 갖춘 삼신(三身)이라는 것을 중생이 알지 못함이라. 이런 까닭으로 제법(諸法)과 십계(十界)를 들어서 실상(實相)이라 설하는 것이다.
방편품 십여시(十如是)는 실상을 여실히 드러내어 설하신 것이니, 소위 여시상(如是相) 여시성(如是性) 여시체(如是體) 여시력(如是力) 여시작(如是作) 여시인(如是因) 여시연(如是緣) 여시과(如是果) 여시보(如是報)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이라.
이 경문은 실상을 명확히 나타내고 있다. 온갖 모든 것은 처음과 끝이 평등하여 실상 아님이 없는 것이다.
실상이라 함은 곧 부처님의 상(相)이니,
경에 말씀하시기를
『실상의 법을 보면 부처님을 보는 것이다
묘법(妙法)이 실상이니 묘법이 곧 부처님이시다.』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형상으로 뵙는 것이요.
둘째는 법신(法身)을 뵙는 것이요.
셋째는 성품(性品)이 공(空)함을 보는 것이다. <구마라습>
그러므로 유마힐거사는 『자기 몸의 실상을 보는 것이 곧 부처님 상을 보는 것이다. 또 도생(道生)은 부처와 자신을 구별하여 부처를 볼려고 하고 부처와 자신을 따로 보기 때문에 부처와 거리가 먼 것이니 어떻게 부처님을 뵙겠는가.』라고 하였다.
자신의 실상을 보는 이는 부처님의 실상을 본다. 중생의 실상과 부처님의 실상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전혀 차별이 없다.
소위 실상이란 것은 세간제법(世間諸法)에 상성체력(相性體力)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 이것이라. 가히 보는 대상이 상(相)이요, 상(相)의 근본 성품이 성(性)이요, 형상을 갖춘 것이 체(體)요, 이용하는 힘이 력(力)이요, 잠깐 사이 일어나는 작용이 작(作)이요, 처음 비롯함이 인(因)이요, 인을 도우면 연(緣)이요, 연이 익으면 과(果)요, 과가 응하면 보(報)요, 시작과 끝이 본말(本末)이요, 구경(究竟)에는 평등이라. 일체제법(一切諸法)이 십여시(十如是)를 떠날 수 없고 각각 십여시를 구족함이다.
제법(諸法)이 여시상(如是相)이요, 여시성(如是性)이라, 내지 여시본말구경등(如是本末究竟等)이라, 실상(實相) 아님이 없는 것이다.
춤추는 나비 저녁 하늘에 빛나는 별 가지가지 색깔의 꽃과 범부(凡夫)의 모든 세상사가 실상(實相) 아님이 없나니, 만법(萬法)이 실상(實相)인 것이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의 이명(異名)이 실상(實相)이니, 제법(諸法)이 묘법연화경인 것이다.
모든 부처님의 해탈은 마땅히 중생들의 심행중(心行中)에서 구해야 한다고 했는데, 모든 중생들의 심상(心相)은 곧 보리(菩提)의 상이라 부처님과 차별(差別)이 없다.
앞서 실상을 보는 자 부처님을 본다고 하였는데, 실상이라 함은 모든 법을 말한다. 모든 법은 십여시이고 십여시는 반드시 십계(十界)이고 십계는 반드시 몸과 국토(國土)이다. 이 몸에는 가(假)가 있고 실(實)이 있으니, 가(假)의 몸은 인연(因緣)으로 화합(和合)한 몸이요, 실(實)의 몸은 인연이 화합하기 전부터 있는 몸이다. 가(假)의 몸에서 십계(十界)로 나누고 십계가 각각 십계를 갖추어 백계(百界)가 되고 백계에다 십여시(十如是)를 갖추면 천여시(千如是)가 되고 천여시가 삼세간(三世間)을 갖추면 삼천(三千)이 된다.
삼천제법(三千諸法)을 일념구족(一念具足)하나니, 삼천제법과 부처님의 마음이 다르지 않기에 부처님과 묘법연화경과 중생과 셋은 차별이 없는 묘법연화경이다.
이것이 몸의 실상을 깨닫는 것이다.
또 법화경 안락행품에서 이르시기를
보살마하살 관일체법공여실상 부전도 부동불퇴부전
여허공 무소유성 일체언어도단 불생불출불기
무명무상 실무소유 무량무변 무애무장 단이인연
유 종전도생 고 설 상낙관 여시법상
보살마하살은 일체 법이 공한 것이 실상과 같음을 관할지니라. 뒤바뀌지 않고 움직이지 않으며 물러나지 않으며 구르지도 않느니라. 허공과 같아서 성품이 있는 바가 없음이라, 일체 말이 끊어져 나지도 아니하고 나오지도 아니하며, 일어나지도 않으며,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실로 있는 바가 없으며, 한량없고 가이 없으며 걸림도 없고 장애도 없지마는, 다만 인연으로 있으며, 뒤바꿈을 좇아 나느니라. 그러므로 항상 이와 같이 법의 상을 즐거이 관하고 설할 것이다.
이렇게 말로써 선설할 수 없고 모양과 형상이 모두 끊어져 절대적 평등이다. 생사(生死)가 곧 열반(涅槃)이요 번뇌(煩惱)가 곧 보리(菩提)요. 선(善)과 악(惡)이 다르지 않고 시비분별(是非分別)이 모두 끊어졌고, 시방세계가 부처님세계 아님이 없고, 이 허공이 부처님 덩어리요, 부처님 품속인 것이다. 우리는 부처님 품속에서 왔다 부처님 품속에서 노닐다 부처님 품속으로 돌아가니, 부처님 품속이 이 몸을 받기 이전의 우리들 본래 고향이다. 이렇게 보면 일체 중생은 한 곳에서 유출되었으니 동향(同鄕)이며 자타(自他)가 있는 것이 아니라, 동체(同體)이니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요, 너의 즐거움이 곧 나의 즐거움인 것이니, 이렇게 실상을 이해하고 일체 중생과 자신이 하나라는 동체자비심(同體慈悲心)을 내는 것이다.
우리는 절대적 부처님 자비속에서 생활하고 부처님의 절대적 보호속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현상(現象)에만 집착하니 실상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또 법화경 여래수량품에서 이르시기를
여래 여실지견 삼계지상 무유생사 약퇴약출
역무재세 급멸도자 비실비허 비여비이 불여삼계 견어삼계
여래는 삼계의 형상을 실상과 같이 보고 알아, 생사와 혹은 물러남과 혹은 나옴도 있음이 없고, 또한 세상에 있거나 멸도하는 자도 없으며 진실도 아니고 허망함도 아니며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니며 삼계에서 보는 삼계와 같지 않느니라.
이렇게 실상은 부처님과 더불어 부처님만이 궁구하여 다 알고 본다고 하시고 삼계에서 보는 삼계와 같지 않아 모두 실상이라는 말씀이다. 실상이란 곧 부처님의 진실한 상(相)이니 실상을 보는 자는 곧 부처님을 보는 자이다. 묘법연화경이 실상이요, 실상이 묘법연화경이니, 묘법연화경을 받아 지닌 자 곧 부처님 몸을 받아 지닌 자가 아니겠느냐.
文殊師利兄 문수사리 형님이여
何法實相也 어떤 법을 실상이라 합니까?
文殊口閉默 문수사리 입을 다물고 침묵하여
言語道斷示 말길이 끊으졌음을 보이시네
得問何實相 다시 묻기를 어떤 것이 실상입니까?
時相虛空藏 이때 형상을 허공으로 감추시네
我見相無相 나는 보았네 모습없는 모습을
我聞聲無聲 나는 들었네 소리없는 소리를
久遠劫成佛 구원 겁에 성불하시고
常在此不滅 항상 이곳에 머물고 멸하지 않으시는
佛眞誠諦意 부처님의 참된 진리의 뜻을
我今聞見知 나는 이제 듣고 보고 알았노라
此十方世界 이 시방세계가
一切皆佛身 일체 모두 부처님 몸인 것을
佛及諸衆生 부처님과 모든 중생이
應起舞同體 응당 일어서서 춤을 추니 동체이구나
是非善惡斷 시비 선악이 끊어지고
言語相具滅 언어와 형상 모두 멸한데
誰是非實相 누가 시비하는가 실상을
生死夢中夢 생사가 꿈속에 꿈이어라
천태대사 묘법연화경 현의(妙法蓮華經 玄義)에서 밝힌 제법실상의 뜻을 살펴보자.
개여실상 불상위배
皆如實相 不相違背
일체중생 즉시묘리
一切衆生 卽是妙理
다 실상과 더불어 위배하지 않은 모양이니
일체 중생이 곧 묘한 이치니라.
고운 위령중생 개불지견
故云 爲令衆生 開佛知見
시오입등 역부여시
示悟入等 亦復如是
고로 이르기를 중생으로 하여금 불지견을 연다 하니
시오입(示悟入) 등도 또한 다시 이와 같느니라.
위와 같이 실상을 드러낸 경문(經文)을 살펴보았다.
生滅不二法 생멸이 불이법이며
生死一如觀 생사가 일여관이라
生死卽涅槃 생사가 곧 열반이며
肉身卽法身 육신이 곧 법신이라
自性無生滅 자성은 생멸이 없으니
本體無法住 본체는 가고 머뭄이 없네.
一行一相 無非妙法 일행일상이 묘법 아님이 없고
擧手低頭 無非妙行 손 한 번 들고 머리 약간 숙임이 묘행이 아님이 없으며
精誠戲笑 無非妙心 정성스러움과 희롱하고 웃는 일이 묘심이 아님이 없고
花花草草 無非妙相 화화초초가 묘상 아님이 없으니
森羅萬象 皆卽實相 삼라만상이 모두 실상이라
頭頭物物 皆法身體 두두물물이 모두 법신체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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