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기신론

<기신론> 에서 아뢰야식과 여래장은 동일한 것

수선님 2019. 4. 21. 11:34

여래장, 아뢰야식 그리고 깨달음

 

                                                                                   2008/02/29

                                                            글쓴이; 석지명

 

 

바닷물은 바람의 원인으로 파도를 일으키
고 물과 바람은 한 덩어리로 되어 있지만 물
과 파도는 서로 다르지 않다. 번뇌와 깨달음
도 ..........

<능가경>과 <기신론>은 유식사상의 아뢰야식(阿賴耶識)과 여래
장사상(如來藏思想)의 여래장을 결합시킨다고 하는데 구체적으
로 어떻게 하는지 <기신론>의 본문내용이 궁금하다. 또 그 여래
장이나 아뢰야식은 깨달음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먼저 여래장과 아뢰야식에 관한 <기신론>의 설명을 쉽게 풀어
서 읽으려고 노력은 하지만 바짝 집중해야만 다음의 내용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화두를 잡거나 공덕을 짓는 심정으로 읽어
야 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일상적인 변덕의 마음 즉 생멸심(生滅心)이
라는 것은 여래장을 근거로 해서 전개된다. 여래장이란 번뇌에
의해 뒤덮여진 진여의 마음이다. 고요와 산란, 지혜와 번뇌가 뒤
섞인 것이다. 이 여래장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파악할 때 아뢰야
식이라고 한다. 이 아리야식은 모든 사물과 현상을 포함하고 만
들어낸다. 아뢰야식은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이 한 뭉치로 섞여
있다.
깨달음이라는 것은 우리의 중생심이 욕심이나 변덕을 벗어난 상
태와 그곳에 이르는 과정을 말한다. 깨달음의 상태 즉 차별적 망
념을 벗어난 상태는 모든 사물이 하나의 모양과 같으니 여래와
중생이 평등하게 공유하고 여래와 중생에게 평등하게 통하는 여
래의 법신(法身)이다. 이와 같이 깨달음이 여래의 법신이라는 것
을 강조할 때 본래 구족한 깨달음이라는 말이 사용된다.

깨닫지 못함은 오직 본각을 상정할 때 그것과의 대비에 의해서
성립하며 '깨달음의 과정'인 시각(始覺)은 '깨닫지 못함'에서 깨
달음으로 나아간다는 뜻을 나타낸다.
여래장과 아뢰야식의 결합을 보자. 우리의 마음은 아무리 못되
고 천하고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여래장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여래장이란 번뇌를 여읜 고요의 마음과 번뇌를 일으키는
마음이 합해져 있는 것을 말한다. 진심과 망심이 합쳐진 상태를
깨달음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야기할 때는 여래장이라고 부
르고, 그 여래장을 다시 심리적인 면에서 이야기할 때는

아뢰야식이라고 부른다. 아뢰야식은 세상의 모든 사물을 포함
하고 만들어 낸다. 또 깨달음과 깨닫지 못함도 이 아뢰야식 속
에 같이 있다. 아뢰야식을 여래장으로 불러도 좋고 여래장을 아
뢰야식으로 불러도 좋다. 여래장과 아뢰야식이 다 같이 깨닫지
못함과 깨달음 자체 내에 포함하고 있고 진여와 번뇌를 같이 포
함하고 있다. 이 세계는 이 여래장, 아뢰야식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여래가 번뇌에 묻혀져 있기 때문에 그 번뇌만 벗
기면 다시 여래로 돌아간다. 즉 부처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나타
낼 때는 여래장이라는 말을 쓰고 미혹의 세계가 벌어지는 것을
심리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할 때 아뢰야식이라는 말을 쓴다.
여래장이나 아뢰야식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할 때
이 말을 잘 이해해야 한다. 여래장, 아뢰야식은 미혹에 있는 우
리의 마음이다. 자연과학적인 의미에서 세상을 만들어 내고 세상
을 다 포함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미 아뢰야식연기론을 공부할
때 살펴보았듯이 백지와 같은 객관세계에 사람이 개인적으로나
집단적으로 이름을 붙이고 개념을 만들고 가격표를 붙이고 비싼
값 붙인 것을 얻겠다고 달려듦으로써 갖가지 문제가 일어난다는
의미에서 여래장, 아뢰야식이 세상의 모든 사물을 다 만들고 다
포함한다는 것이다. 무명미혹이 지워짐으로써 이 아뢰야식의 망
념이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이 깨달음이 되고 망념이 일어나면 깨
닫지 못함이 되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아뢰야식에 깨달음과 깨
닫지 못함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뢰야식이 깨달음과 깨닫
지 못함을 한 손에 가지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기신론>에서 사용하는 개념들인 여래장(如來藏). 깨달음(覺).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그리고 진여(眞如)는 기본적으로 같은
방향의 것이지만 처해 있는 상황이 다르다. 여래장은 여래가 중
생의 업에 의해 일어나는 번뇌에 덮여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깨
달음은 여래나 진여의 지적인 활동을 뜻한다. 자성청정심은 여래
장이 중생에게 있을 때 여래의 성품이 번뇌에 덮여 있기는 하지
만 중생에게 있는 여래성은 언제나 번뇌에 의해서 소멸되지 않
고 청정성을 유지하는 것을 나타낸다. 그리고 진여란 기본적으
로 마음에 번뇌가 없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진리의 원칙이라는 뉘
앙스를 강하게 풍기고 있다.
<기신론>에서 아뢰야식과 여래장은 동일한 것이지만 미혹과 번
뇌가 없어져서 아뢰야식이 망념의 세계를 그리지 않으면 아뢰야
식이 쉬는 것이 된다. 아뢰야식이 쉰다는 말은 여래장을 덮고 있
는 번뇌가 쉰다는 말과 같다. 그렇게 되면 여래장이 그 감출 장
(臟)자를 데어 버리고 여래(如來)가 된다. 깨닫는 것이다. 깨닫
는 상태에서는 사람들이 억지로 붙인 이름과 개념과 언어와 가격
표들이 떨어져 나가고 온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이게 된다. 이
깨달음이 바로 일심의 진여 그 상태와 동일할 때 그것이 바로 본
래적인 깨달음이다. 이 본래적이라는 말은 누가 인위적으로 만들
어서 깨달음이 나온 것이 아니라 본래 있는 깨달음의 상태로 되
돌아왔다는 의미에서 쓰여진 것이다.
본래적인 깨달음 즉 본각(本覺)이 있다면 그것으로 돌아가는 깨
달음의 과정도 있게 된다. 이 깨달음의 과정을 시각(始覺)이라
고 한다. 깨달음의 과정은 당연히 깨닫지 못함 즉 불각(不覺)을
전제한다. 그래서 본래적인 깨달음인 본각과 깨닫지 못한 상태
인 불각과 불각에서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인 시각이 있게 된다.
<기신론>은 우리 중생에게 본래적으로 이;T는 깨달음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한다. 한 가지는 번뇌의 세계에 있는 본래적인 깨
달음이요, 다른 한 가지는 청정한 성품 그 자체로서의 본래적인
깨달음이다. <기신론>저자의 천재성이 이 본래적인 깨달음을 설
명하는 데 번뜩인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들이 생각할 때 중생이
깨달아서 부처가 된다고 하면 그 부처의 경지가 금과 다이아몬드
로 도로가 포장된 그러한 세계일 것으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현실
의 번뇌세계에서 그 세계의 실상을 봄으로써 현실번뇌 그 자리에
서 본래의 깨달음을 얻는 경지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기신론
>은 두 가지가 다 본래적인 깨달음에 속한다고 한다. 번뇌의 세
계에 있는 그대로 나타나는 본각도 있고 본래 청정한 성품에서
나타나는 본각도 있다는 것이다.
먼저 번뇌의 세계에 나타나는 본래의 깨달음을 설명하기 위해
서 <기신론>은 불교에서 자주 쓰이는 바람과 파도와 물의 성질
을 비유로 이용한다. 바닷물은 바람의 원인으로 파도를 일으키
고 물과 바람은 한 덩어리로 되어 있어 물과 파도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바람이 그치면 파도가 그대로 바닷물이 된다. 마찬
가지로 무명미혹의 광풍이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서 온갖 번뇌의
세계를 만들지만 그 무명의 바람이 쉬거나 쉬지 않더라도 무명
의 바람이 일어나고 수는 모습을 여실히 보면 바로 그 자리에 본
래의 깨달음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날,
차 앞 유리의 와이퍼가 쉰 다음에야 본각이라는 전방을 보는 것
이 아니라 와이퍼가 바삐 빗물을 닦아내는 그 상태에 있는 그대
로 본래 깨달음이라는 전방을 본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번뇌 속에서 본래의 깨달음을 본다고 해서 세상에서 잘
못되는 일을 팔짱을 끼고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되는 것
은 잘되게 하고 중생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을 유익하게 하는 행
동이 이 번뇌 중에 있는 본래의 깨달음에 포함되어 있다.
청정한 성품으로서의 본래적인 깨달음은 거울의 비유로 설명된
다. <기신론>은 거울의 네 가지 상황을 예로 든다. 거울에 먼지
도 없고 또 거울 앞에 비출 것도 없는 것과 같은 아무 번뇌망상
도 일어나지 않는 그러한 상태가 본각의 일면이 된다. 번뇌가 없
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진여라는 거울이 사물을 지
어서 비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비추는 그러한 본각의 일면도 있
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본각의 거울이 멍한 상태로 반사
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 전체를 다 밝게 하는 지혜와 일치하
게 그러한 본각의 일면도 있다. 우주지혜와 일치하게 비추는 본
각의 거울이 그저 지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좋고
유익한 일이 생기게 하는 힘이 나도록 비추는 그러한 본각의 일
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