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심밀경

[스크랩] ?해심밀경(解深蜜經) ?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수선님 2017. 12. 31. 11:52

   
그때 관자재(觀自在)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보살 10지(地)를 말씀하셨으니, 이른바 극희지(極喜地)․이구지(離垢地)․발광지(發光地)․염혜지(焰慧地)․극난승지(極難勝地)․현전지(現前地)․원행지(遠行地)․부동지(不動地)․선혜지(善慧地)․법운지(法雲地)이며, 다시 불지(佛地)를 열한 번째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든 지위는 몇 가지 청정과 몇 갈피[分]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그때 세존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모든 지위는 네 가지 청정과 열한 가지 갈피에 포섭된다.

무엇이 능히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네 가지 청정인가?

 

이른바 가장 높은 의락의 청정[增上意樂淸淨]은 초지(初地)를 포섭하고, 가장 높은 계의 청정[增上戒淸淨]은 제2지를 포섭하고, 가장 높은 마음의 청정[增上心淸淨]은 제3지를 포섭하고, 가장 높은 지혜의 청정[增上慧淸淨]은 그 다음 다음 지위로 갈수록 더욱 수승하고 묘한 까닭에 마땅히 알라. 제4지부터 나아가 불지까지를 포섭한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네 가지의 청정이 널리 모든 지위를 포섭한다.

 

 

 

무엇이 능히 모든 지위를 포섭하는 열한 가지 갈피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은 먼저 승해행지(勝解行地)에서 열 가지 법행(法行)에 의지해 승해인(勝解忍)을 매우 잘 닦는 까닭에 그 지위를 뛰어넘어 보살의 바른 성품[正性]과 생을 벗어남[離生]에 깨달아 들어간다.

그 모든 보살이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미세한 헐뜯음과 잘못이 현행하는 가운데서 바르게 알아 행하지는 못한다.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세간의 원만한 등지(等持)와 등지가 원만한 문지다라니(聞持陀羅尼)를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러한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한다.

 

그러나 아직 얻은 보리분법(菩提分法)에 따라 많이 닦고 익혀 머무르지 못하며, 마음이 아직 모든 등지에 대한 애착[等持愛]과 법에 대한 애착[法愛]를 버리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모든 제(諦)의 도리를 여실히 관찰하지는 못하며, 또 생사와 열반에 대해 한결같이 등지거나 나아가는 작의(作意)를 버리지는 못하며, 또 방편으로 포섭할 보리분법을 닦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나고 죽는 유전(流轉)을 여실히 관찰하지는 못하며, 또 그것에 대해 싫어함을 많이 내었으므로 아직은 무상작의(無相作意)가 많질 못하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서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무상작의로 하여금 반연이 없고 틈이 없게 많이 닦고 익혀 머물게 하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무상주(無相住) 가운데 능히 공용(功用)을 버리지는 못하며, 또 모습에 대하여 아직 자재함을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서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다른 이름[異名]과 뭇 모습[衆相]과 훈계하고 꾸짖음[訓訶]과 일체 품류의 설법 가운데서 큰 자재를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히 한다.

 

그러나 아직 원만한 법신을 현전에 증득하고 받음을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그 모든 보살이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케 한다.

 

그러나 아직 두루 일체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하여 집착 없고 걸림 없는 묘한 지혜와 묘한 소견을 얻지는 못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 가운데 아직 원만치 못하니,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하려는 까닭에 부지런히 닦고 익혀 능히 증득한다. 이 인연을 말미암아 이 갈피를 원만하게 한다. 이 갈피가 원만한 까닭에 일체 갈피가 원만함을 얻는다.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와 같은 열한 가지 갈피가 널리 모든 지위를 포섭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최초를 극희지(極喜地)라 하며, 나아가 어떤 인연으로 불지(佛地)라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큰 뜻[義]을 성취하여 일찍이 얻은 적이 없는, 세간을 벗어난 마음을 얻어 큰 환희(歡喜)를 일으키니, 그러므로 최초를 극희지라 한다.

 

일체의 미세한 파계도 멀리 벗어나니, 그러므로 두 번째를 이구지(離垢地)라 한다.

 

그가 얻는 삼마지와 문지다라니가 능히 무량한 지혜의 빛으로 의지를 삼으니, 그러므로 세 번째를 발광지(發光地)라 한다.

 

그가 얻는 보리분법을 말미암아 모든 번뇌를 태우되 지혜가 불길과 같으니, 그러므로 네 번째를 염혜지(焰慧地)라 한다.

 

그 보리분법을 방편으로 닦고 익혀 아무리 큰 어려움이라도 바야흐로 자재를 얻으니, 그러므로 다섯 번째를 극난승지(極難勝地)라 한다.

 

현전에 모든 행의 유전을 관찰하고 또 무상(無相)을 많이 닦는 작의(作意)가 바야흐로 현전하니, 그러므로 여섯 번째를 현전지(現前地)라 한다.

 

능히 멀리까지 결함 없고 틈이 없고 모습 없는 작의에 깨쳐 들어가 청정한 지위와 서로 가까워지니, 그러므로 일곱 번째를 원행지(遠行地)라 한다.

 

무상(無相)에서 무공용(無功用)을 얻는 까닭에 모든 모습 가운데서 현행하는 번뇌에 동요되지 않으니, 그러므로 여덟 번째를 부동지(不動地)라 한다.

 

일체 종류에 대하여 선법에 자재하며 걸림 없고 광대한 지혜를 얻으니, 그러므로 아홉 번째를 선혜지(善慧地)라 한다.

 

추중신(麤重身)의 넓이가 허공과 같고 법신의 원만함이 비유컨대 모두를 두루 덮을 수 있는 큰 구름과 같으니, 그러므로 열 번째를 법운지(法雲地)라 한다.

 

가장 지극히 미세한 번뇌와 앎의 장애를 영원히 끊고, 집착 없고 걸림없어서 일체 종류의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해 현전에 정등각(正等覺)을 얻는 까닭에 열한 번째를 불지(佛地)라 한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지위에서 다스려야 할 어리석음은 몇 가지나 있으며, 추중(麤重)은 몇 가지나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모든 지위에서 다스려야 할 어리석음은 스물두 가지이고, 추중은 열한 가지이다.

 

이른바 초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보특가라(補特迦羅)와 법을 집착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나쁜 세계에 섞이고 물드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2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미세한 잘못의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갖가지 업의 갈래의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3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욕탐(欲貪)의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문지다라니를 원만하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4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등지(等持)를 애착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법을 애착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5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한결같은 작의로 생사를 버리고 등지려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한결같은 작의로 열반으로 향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6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현전에 모든 행의 유전을 관찰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모습이 많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7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미세한 모습이 현행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한결같이 무상작의(無相作意)만 방편으로 삼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8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무상(無相)에 공용(功用)을 짓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모습에 대하여 자재하다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9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무량한 설법과 무량한 법과 글귀와 문자와 그 다음 다음의 지혜로운 변재에 대하여 다라니로 자재하다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말재주가 자재하다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제10지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큰 신통이 있다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미세한 비밀에 깨달아 들어갔다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여래지(如來地)에 두 가지 어리석음이 있으니, 첫째는 일체 알아야 할 경계에 대하여 극히 미세하게 집착하는 어리석음이고, 둘째는 극히 미세함에 걸리는 어리석음이다. 그리고 그 추중이 다스려야 할 것이다.  

 

선남자여, 이 스물두 가지 추중을 말미암은 까닭에 모든 지위를 벌려 세운 것이다. 그러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얽매임을 벗어났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매우 기특하고 매우 희유하며, 나아가 큰 이익과 큰 결과를 성취하여 모든 보살들로 하여금 능히 이와 같은 큰 어리석음의 그물을 깨뜨리고, 능히 이와 같은 큰 추중의 숲을 넘어 현전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증득하게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모든 지위는 몇 가지 수승함이 벌려 세운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대략 여덟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가장 높은 의락(意樂)의 청정이요, 둘째는 마음의 청정이요, 셋째는 자비의 청정이요, 넷째는 저 언덕에 다다른 청정이요, 다섯째는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며 받들어 섬기는 청정이요, 여섯째는 유정을 성숙시키는 청정이요, 일곱째는 생(生)의 청정이요, 여덟째는 위덕(威德)의 청정이다.

 

선남자여, 초지에도 가장 높은 의락의 청정과 나아가 위덕의 청정이 있고, 그 다음 다음의 모든 지위 나아가 불지에도 가장 높은 의락의 청정과 나아가 위덕의 청정이 있다.

 

마땅히 알라. 저 모든 청정은 점점 더 수승해진다. 그러나 불지에서만큼은 생의 청정은 제외된다. 또 초지에 있는 공덕은 그 위의 모든 지위에도 평등하게 모두 있지만, 마땅히 알라. 자기 지위에서 그 공덕이 수승한 것이다. 일체 보살의 10지의 공덕은 모두 그보다 나은 것이 있지만 불지의 공덕은, 마땅히 알라. 그보다 나은 것이 없다.”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보살의 생(生)이 모든 유(有)의 생 중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네 가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는 극히 청정한 선근이 모여 일어난 것이기 때문이요,

둘째는 고의로 생각하여 간택하는 힘으로 취했기 때문이요,

셋째는 모든 중생을 불쌍히 여겨 제도하기 때문이요,

넷째는 자신도 물듦이 없고 남의 물듦도 없애 주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모든 보살은 광대한 원[廣大願]과 묘한 원[妙願]과 수승한 원[勝願]을 행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선남자여, 네 가지 인연 때문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은 열반의 즐거운 머무름[樂住]을 잘 알 수 있고 속히 증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속히 증득할 수 있는 열반의 즐거움을 버리고는 반연하는 것도 없고[無緣] 기다리는 것도 없이[無待] 큰 원력을 일으킨다. 모든 유정에게 이익을 주려는 까닭에 긴 세월 온갖 고통 속에 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저 모든 보살은 광대한 원력과 미묘한 원력과 수승한 원력을 행한다고 말한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이 배워야 할 일은 몇 가지나 있습니까?” 

“선남자여, 보살이 배워야 할 일은 대략 여섯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보시(布施)․지계(持戒)․인욕(忍辱)․정진(精進)․정려(靜慮)․혜(慧) 도피안(到彼岸:바라밀다)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배워야 할 일 중에서 몇 가지가 가장 높은 계학(戒學)에 포섭되는 것이며, 몇 가지가 가장 높은 심학(心學)에 포섭되는 것이며, 몇 가지가 가장 높은 혜학(慧學)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앞의 세 가지는 가장 높은 계학에 포섭되는 것이며, 정려 한 가지는 가장 높은 심학에 포섭되는 것이며, 혜는 가장 높은 혜학에 포섭되는 것이다. 그리고 정진은 일체에 두루 적용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배워야 할 일 중에서 몇 가지가 복덕의 자량(資量)에 포섭되는 것이며, 몇 가지가 지혜의 자량에 포섭되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만일 가장 높은 계학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를 복덕의 자량에 포섭되는 것이라 하고, 만일 가장 높은 혜학에 포섭되는 것이면 이를 지혜의 자량에 포섭되는 것이라 한다. 그리고 정진과 정려 두 가지는 일체에 두루 적용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여섯 가지 배워야 할 일 가운데서 보살은 어떻게 닦고 배워야 합니까?” 

“선남자여, 다섯 가지 모습을 말미암아 닦고 배워야 한다.

첫째는 최초에 보살장(菩薩藏)의 바라밀다와 상응하는 미묘한 바른 가르침 가운데서 열심히 믿고 아는 것이요,

둘째는 다음에 열 가지 법의 행을 듣고 생각하고 닦아서 이룬 지혜로써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요,

셋째는 보리의 마음을 따라서 보호함이요,

넷째는 참된 선지식(善知識)을 가까이함이요,

다섯째는 틈이 없이 착한 품류를 부지런히 닦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와 같이 배워야 할 일을 여섯 가지만 시설하셨습니까?” 

“두 가지 인연 때문이다.

첫째는 모든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까닭이요, 둘째는 모든 번뇌를 물리치는 까닭이다.

 

마땅히 알라.

앞의 세 가지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며, 뒤의 세 가지는 일체 번뇌를 물리친다.

 

앞의 세 가지가 모든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보살이 보시하는 까닭에 살림살이[資具]를 받아들여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며, 계행을 지니는 까닭에 손해와 핍박과 어지럽힘을 행하지 않고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며, 인욕하는 까닭에 저들이 해를 끼치고 핍박하고 어지럽히더라도 능히 견디고 참고 받아들여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

 

뒤의 세 가지가 모든 번뇌를 물리친다는 것은, 이른바 모든 보살은 정진하는 까닭에 아직 일체 번뇌를 영원히 항복하지 못했고 아직 일체 수면을 없애지 못하였을지라도 능히 용맹하게 모든 착한 품류를 닦아서 저 모든 번뇌가 착한 품류의 가행(加行)을 흔들거나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정려인 까닭에 번뇌를 영원히 항복 받고, 반야인 까닭에 수면을 영원히 없앤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나머지 네 가지 바라밀다를 시설하셨습니까?” 

“선남자여, 앞의 여섯 가지 바라밀다와 함께 돕는 짝[助伴]이 되는 까닭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은 앞의 세 가지 바라밀다에 포섭되는 유정에 대하여 모든 일로 포섭하는 방편선교(方便善巧)로 그들을 받아들여 착한 품류에 안치(安置)한다. 그러므로 나는 방편선교(方便善巧)바라밀다는 앞의 세 가지와 함께 돕는 짝이 된다고 말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현전의 법에 대하여 번뇌가 많은 까닭에 틈이 없는 수행을 견딜 능력이 없고, 약하고 힘없는 의락인 까닭에 또 낮은 세계의 승해인 까닭에 안으로 마음의 머무름[心住]을 견딜 능력이 없으며, 보살장을 듣지도 이를 반연해 잘 닦고 익히지도 못하는 까닭에 그 정려(靜慮)가 능히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면, 그는 곧 적은 부분의 좁고 못난 복덕 자량이라도 받아들이고 오는 세상의 번뇌를 가볍고 적어지게 하기 위해 마음으로 바른 원[正願]을 세워야 한다. 이런 것을 원(願)바라밀다라 한다.

 

이 원을 말미암는 까닭에 번뇌가 적어지고 엷어져 정진을 닦을 수 있다.

그러므로 원바라밀다는 정진(精進)바라밀다와 더불어 돕는 짝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선사(善士)를 가까이하여 바른 법을 듣고 이치와 같게 뜻을 짓는다면, 이 인연으로 힘없는 의락을 굴려 수승한 의락을 이루며 또한 높은 세계의 승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이와 같은 것을 역(力)바라밀이라 한다. 이 힘을 말미암는 까닭에 안으로 마음의 머무름[心住]을 견디는 능력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역바라밀다는 정려(靜慮)바라밀다와 더불어 돕는 짝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보살장을 이미 듣고 이에 반연해 잘 닦고 익히는 까닭에 능히 정려를 일으킨다면, 이러한 것을 지(智)바라밀다라 한다. 이 지혜에 의지하는 까닭에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충분히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지바라밀다는 혜(慧)바라밀다와 더불어 돕는 짝이 된다고 나는 말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여섯 가지 바라밀다를 말씀하시면서 이런 차례를 두셨습니까?” 

“선남자여, 능히 다음 다음으로 이끌어 냄의 의지가 되는 까닭이다.

이른바 모든 보살이 만일 몸과 재물에 대하여 돌아보거나 인색함이 없다면 곧 청정한 금계(禁戒)를 받아 지닐 수 있고, 금계를 보호하기 위해 곧 인욕(忍辱)을 닦고, 인욕을 닦고는 능히 정진을 내고, 정진을 일으키고는 능히 정려를 성취하고, 정려를 갖추고는 곧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바라밀다를 이와 같은 차례로 말한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여섯 가지 바라밀다에는 각각 몇 가지 품류의 차별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각각 세 가지가 있다.

보시의 세 가지란, 첫째는 법의 보시요, 둘째는 재물의 보시요, 셋째는 두려움 없는 보시이다.

 

계의 세 가지란, 첫째는 더욱 착하지 못함을 버리는 계[轉捨不善戒]요, 둘째는 더욱 착함을 내는 계[轉生善戒]요, 셋째는 더욱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계[轉生饒益有情戒]이다.

 

인욕의 세 가지란, 첫째는 원수와 해침을 참는 인욕[耐怨害忍]이요, 둘째는 고통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인욕[安受苦忍]이요, 셋째는 법을 자세히 살피는 인욕[諦察法忍]이다.

 

정진의 세 가지란, 첫째는 갑옷을 입는 정진[被甲精進]이요, 둘째는 더욱 선법의 가행을 내는 정진[轉生善法加行精進]이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가행의 정진[饒益有情加行精進]이다.

 

정려의 세 가지란, 첫째는 분별없는 적정과 지극한 적정으로 허물이 없는 까닭에 번뇌의 괴로움을 다스리고 즐거움에 머무르는 정려[樂住靜慮]요, 둘째는 공덕을 이끌어 내는 적정[引發饒益有情精慮]이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함을 이끌어 내는 정려[引發饒益有情精慮]이다.

 

지혜의 세 가지란, 첫째는 세속제를 반연하는 지혜요, 둘째는 승의제를 반연하는 지혜요, 셋째는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함을 반연하는 지혜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인연으로 바라밀다를 바라밀다라 부릅니까?”

 

“선남자여, 다섯 가지 인연 때문이다.

첫째는 물들고 집착함이 없는 까닭이요,

둘째는 돌아보고 생각함이 없는 까닭이요,

셋째는 죄와 허물이 없는 까닭이요,

넷째는 분별이 없는 까닭이요,

다섯째는 바르게 회향하는 까닭이다.

 

물들고 집착함이 없는 까닭이란, 이른바 바라밀다와 어긋나는 모든 일에 물들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돌아보고 생각함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일체 바라밀다의 모든 과보와 이숙(異熟), 그리고 은혜를 갚는 가운데 마음에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죄와 허물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이러한 바라밀다에서 빈틈없이 잡되고 물든 법과 그릇된 방편을 벗어나는 것이다. 분별이 없다는 것은 이른바 이와 같은 바라밀다에서 말과 같이 자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바르게 회향한다는 것은 이른바 이와 같이 지은 바와 모든 바라밀다로써 위없는 큰 보리의 과보를 돌이켜 구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바라밀다와 어긋나는 모든 것입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이 일에 대략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기뻐하고 좋아하면서 재물과 부귀에 자재하길 원하고 모든 욕락(欲樂) 가운데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또는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둘째는 좋아하는 것에 따라 몸과 말과 뜻을 마음대로 하고 현행하는 가운데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셋째는 다른 이가 가벼이 여기고 업신여김을 견디지 못하는 가운데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넷째는 부지런히 닦지 않고 욕망에 집착하는 가운데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다섯째는 세간의 잡되고 어지러운 행으로 떠들썩한 곳에서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요, 여섯째는 보고 듣고 깨닫고 알고 말하고 희론하는 것을 깊이 공덕이라거나 수승한 이익이라고 보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에는 어떤 과보와 이숙(異熟)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여기에도 또한 여섯 가지가 있다.

첫째는 큰 재물과 부귀를 얻음이요,

둘째는 좋은 세계에 태어남이요,

셋째는 원수가 없어지고 망가지는 일이 없어지며 모든 기쁨과 즐거움이 많아짐이요,

넷째는 중생의 주인이 됨이요,

다섯째는 몸에 번뇌와 해로움이 없음이요,

여섯째는 가문의 번창이다.” 

“세존이시여, 바라밀다 사이사이에 끼어드는 잡염법(雜染法)이란 무엇입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대략 네 가지 가행을 말미암으니,

첫째는 비심(悲心)이 없는 가행인 까닭이요,

둘째는 이치와 같지 않은 가행인 까닭이요,

셋째는 영원하지 않은 가행인 까닭이요,

넷째는 신중하지 못한 가행인 까닭이다.

 

이치와 같지 않은 가행이란,

이른바 다른 바라밀다를 수행할 때에 다른 바라밀다에서는 멀어지고 잃어버리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그릇된 방편입니까?” 

“선남자여, 만일 모든 보살이 바라밀다로써 중생을 넉넉하고 이롭게 할 때에 재물로 포섭하여 중생을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것으로 곧 기쁨과 만족함을 삼을 뿐, 그들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곳을 벗어나 착한 곳에서 지내게 하지는 못하면, 이런 것을 그릇된 방편이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여, 중생에게 이런 일만 하는 것으로는 진실로 넉넉하고 이롭게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더러운 똥은 많건 적건 끝내 향기롭고 맑게 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이와 같아서 중생은 행고(行苦)를 말미암는 까닭에 그 성품이 괴로울 것이다. 다만 재물로써 잠시 넉넉하고 이롭게 하여 즐겁게 하는 것을 방편이라고 할 수 없다. 오직 묘한 선법(善法) 가운데 편안히 처하게 하는 것이라야 바야흐로 제일가는 넉넉하고 이익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에는 몇 가지 청정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바라밀다에 위의 다섯 가지 모습을 제하고 따로 청정이 있다고는 끝내 말하지 않는다. 내가 이와 같은 모든 일의 총상(總相)과 별상(別相)에 의지해 바라밀다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리라.

 

총합하여 일체 바라밀다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자면, 마땅히 알라. 일곱 가지가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첫째는 보살이 이 모든 법에서 남에게 알려지기를 구하지 않음이요,

둘째는 이 모든 법을 보고는 집착을 내지 않음이요,

셋째는 이러한 모든 법에 의혹을 내지 않음이니, 이른바 큰 보리를 얻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등의 의혹이요,

넷째는 끝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헐뜯고 경멸하는 일이 없음이요,

다섯째는 끝내 교만하거나 방일하지 않음이요,

여섯째는 끝내 적은 것을 얻고 곧 기뻐하고 만족하는 마음을 내지는 않음이요,

일곱째는 끝내 이 모든 법을 말미암아 남을 질투하거나 아끼는 마음을 내지 않음이다.  

구별하여 일체 바라밀다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자면 또한 일곱 가지가 있다.

무엇이 일곱 가지인가?

 

이른바 모든 보살은 내가 말하는 것처럼 일곱 가지 보시의 청정한 모습을 수순하고 수행한다.

첫째는 베푸는 물건이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둘째는 계행이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셋째는 보는 것이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넷째는 마음이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다섯째는 말이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여섯째는 지혜가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함이요,

일곱째는 때[垢]가 청정함을 말미암아 청정한 보시를 행하니,

이것을 일곱 가지 보시의 청정한 모습이라 한다. 

 

또 모든 보살은 배워야 할 모든 것을 제정한 율의(律儀)를 잘 알며, 범한 것을 벗어남을 잘 알며, 영원한 시라[常尸羅]ㆍ견고한 시라[堅固尸羅]ㆍ항상 짓는 시라[常作尸羅]ㆍ항상 굴리는 시라[常轉尸羅]를 갖추고, 배울 만한 모든 것을 배우니, 이것을 일곱 가지 계의 청정한 모습이라 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자신에게 있는 업과(業果)의 이숙(異熟)을 깊이 의지하고 믿는다면, 이익이 되지 않는 어떤 일이 현재 앞에 나타날지라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고 또 반항하여 꾸짖지도 않으며 성내지 않고 때리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희롱하지 않으며, 갖가지 불이익으로 반대로 해를 끼치지 않으며, 원수 맺을 생각을 품지 않으며, 타이르고 가르칠 때는 성내거나 괴롭게 하지 않으며, 또한 남이 와서 타이르고 가르치기를 기다리지 않으며, 두려움이나 더러운 애착 때문에 인욕을 행하지는 않으며, 은혜를 알게 하려고 용서하지는 않으니, 이것을 일곱 가지 인욕의 청정한 모습이라 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정진의 평등한 성품에 통달한다면, 용맹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까닭에 스스로를 높이지 않고, 남을 능멸하지 않으며, 큰 세력을 갖추고, 큰 정진을 갖추고, 견디는 능력이 있고, 견고하고 용맹하며, 모든 선법에서 끝내 멍에를 벗지 않으니, 이것을 일곱 가지 정진의 청정한 모습이라 한다.  

만일 모든 보살에게 모습에 잘 통달하는 삼마지정려(三摩地靜慮)가 있고, 원만한 삼마지정려가 있고, 구분(俱分) 삼마지정려가 있고, 움직이고 구르는 삼마지정려가 있고, 의지할 바가 없는 삼마지정려가 있고, 잘 닦고 다스리는 삼마지정려가 있고, 보살장을 들은 인연으로 닦고 익힌 무량한 삼마지정려가 있으면, 이것을 일곱 가지 정려의 청정한 모습이라 한다. 

만일 모든 보살이 더함[增益]과 줄임[損減] 두 가지를 멀리 벗어나 중도를 행하면 이를 지혜라 한다.

이 지혜를 말미암는 까닭에 해탈문의 뜻을 여실하게 아니, 이른바 공(空)․무원(無願)․무상(無相)의 3해탈문(解脫門)이다.

 

자성의 뜻을 여실하게 아니, 이른바 변계소집(遍計所執)․의타기(依他起)․원성실(圓成實)의 3자성(自性)이다. 무자성의 뜻을 여실하게 아니, 이른바 상(相)․생(生)․승의(勝義)의 세 가지 무자성성(無自性性)이다. 세속제의 뜻을 여실하게 아니, 이른바 5명처(明處)이다. 승의제의 뜻을 여실하게 아니, 이른바 일곱 가지 진여이다. 또 분별없고, 희론을 여의고, 순일하여 현재의 세계에 많이 머무는 까닭에, 무량한 총법으로 소연을 삼는 까닭에, 그리고 비발사나(毘婆舍那)인 까닭에 능히 법과 법을 따르는 행[隨法行]을 이룩한다. 이것을 일곱 가지 지혜의 청정한 모습이라 한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다섯 모습에는 각각 어떤 업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그 모습에 다섯 가지 업이 있으니, 이른바 모든 보살은 물들고 집착함이 없는 까닭에 현재의 법 가운데서 닦고 익히는 바라밀다에 항상 신중하게 가행을 부지런히 닦아 방일함이 없으며, 돌아보고 생각함이 없는 까닭에 미래에 방일치 않는 원인을 받아들이며, 죄와 허물이 없는 까닭에 가장 훌륭한 원만함․가장 훌륭한 청정함․가장 깨끗한 바라밀다를 바르게 닦고 익히며, 분별이 없는 까닭에 방편선교(方便善巧)바라밀다가 속히 원만해지며, 바르게 회향(廻向)하는 까닭에 태어나는 곳마다 바라밀다와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와 이숙이 모두 다함이 없게 되고 나아가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를 얻게 된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말씀하신 바라밀다에서 무엇이 가장 광대하며, 무엇이 더러움이 없으며, 무엇이 가장 밝고 성하며, 무엇이 움직일 수 없는 것이며, 무엇이 가장 청정합니까?” 

“선남자여, 물들고 집착함이 없는 성품과 돌아보고 아낌이 없는 성품과 바르게 회향하는 성품을 광대하다고 하며, 죄와 허물없는 성품과 분별없는 성품을 더러움이 없다고 하며, 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을 가장 밝고 성하다고 하며, 이미 물러나지 않는 법의 지위에 든 것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이라 하며, 10지에 포섭되거나 불지에 포섭된다면 가장 청정하다고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보살이 얻는 바라밀다의 모든 사랑스러운 과보와 모든 이숙(異熟)은 항상 다함이 없고, 바라밀다 또한 다함이 없습니까?” 

“선남자여, 차례차례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고, 끊어지는 틈 없이 닦고 익히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인연으로 이 모든 보살은 이와 같은 바라밀다로 얻는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와 이숙이 아닌, 바라밀다 자체를 깊이 믿고 사랑하고 즐기는 것입니까?” 

“선남자여, 다섯 가지 인연 때문이다.

첫째는 바라밀다가 가장 높은 기쁨과 즐거움의 원인인 까닭이요,

둘째는 바라밀다가 구경이어서 자기와 남 일체를 넉넉하고 이롭게 하는 원인이 되는 까닭이요,

셋째는 바라밀다가 오는 세상의 그 사랑스러운 과보와 이숙의 원인인 까닭이요,

넷째는 바라밀다가 모든 잡염이 의지하는 대상이 아닌 까닭이요,

다섯째는 바라밀다가 필경에 변하고 망가지는 법이 아닌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일체 바라밀다에는 각각 몇 가지 가장 수승한 위력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마땅히 알라.

일체 바라밀다에 각각 네 가지의 가장 수승한 위덕이 있다.

 

첫째 이 바라밀다를 바르게 수행할 때 다스려야 할 인색함[慳悋]․계율을 범함[犯戒]․마음의 분함[心憤]․게으름[懈怠]․어지러움[散亂]․소견의 갈래[見趣] 따위를 버릴 수 있다.

둘째는 이를 바르게 수행할 때 위없는 정등보리(正等菩提)의 진실한 자량을 얻을 수 있다.

셋째는 이를 바르게 수행할 때 현재의 법 가운데서 스스로 유정을 섭수(攝受)하고 이익을 줄 수 있다.

넷째는 이를 바르게 수행할 때 미래의 생에서 광대하고 다함없고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와 이숙을 얻는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는 어떤 인과 어떤 과보와 어떤 의리(義利)가 있습니까?” 

“선남자여, 이와 같은 일체 바라밀다는 큰 자비로 인을 삼고, 미묘하고 사랑스러운 모든 과보의 이숙과 일체 유정을 넉넉하고 이롭게 함으로써 과를 삼고, 위없이 광대한 보리를 원만케 함이 큰 의리가 된다.”

 

 

 

 

“세존이시여, 만일 모든 보살이 일체 다함없는 재물과 보배를 구족하고 큰 자비를 성취하였다면,

무슨 인연으로 세간에 현전한 중생 중에 빈궁한 자들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이는 모든 중생 스스로의 업의 허물일 뿐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보살은 항상 그들을 넉넉하고 이롭게 할 마음을 품고 또 항상 다함없는 재물과 보배를 구족하였으니, 만일 모든 중생 스스로 악한 업의 장애를 없애기만 한다면 어찌 세간에 빈궁한 이가 있을 수 있겠는가.

 

비유컨대 아귀가 큰 번열과 갈등 때문에 그 몸이 핍박되어 큰 바닷물도 모두 메마른 것으로 보는 것과 같다.

이는 바다의 허물이 아니라 아귀 스스로의 업의 허물일 뿐이다.

 

이와 같아서 보살이 베푸는 재물과 보배는 마치 큰 바다와 같아서 허물이 없으니, 모든 중생 스스로의 업의 허물일 뿐이다. 마치 아귀 스스로 악한 업의 힘으로 과보를 없애는 것과 같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어떤 바라밀다로써 일체 법의 무자성성(無自性性)을 취합니까?”

 

“선남자여, 반야바라밀다로써 능히 모든 법의 무자성성을 취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반야바라밀다로써 모든 법의 무자성성을 취한다면 무슨 까닭으로 유자성성(有自性性)은 취하지 않습니까?”

 

“선남자여, 나는 끝내 무자성성으로써 무자성성을 취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무자성성은 모든 문자를 떠나 스스로 안에서 증득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말과 문자를 버리고는 설명하고 선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나는 반야바라밀다가 능히 모든 법의 무자성성을 취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바라밀다(波羅蜜多)와 가까운 바라밀다[近波羅蜜多]와 큰 바라밀다[大波羅蜜多]를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 바라밀다이며, 무엇이 가까운 바라밀다이며, 무엇이 큰 바라밀다입니까?”

 

“선남자여, 만약 모든 보살이 무량한 시간을 지나면서 보시 따위를 닦으면 선법을 성취하지만 모든 번뇌가 여전히 현행한다. 아직 조복하진 못했지만 그것들을 조복해 나가니, 이른바 수승한 해행지(解行地)에서 연(輭)과 중(中)의 승해가 구르는 시기이다. 이를 바라밀다라 한다.

 

다시 무량한 시간 동안 보시 따위를 수행하면 더욱 점점 높아져서 선법을 성취하지만 모든 번뇌가 여전히 현행한다. 그러나 조복할 수 있고 그것들에게 조복되지는 않으니, 이른바 초지 이상이다. 이를 가까운 바라밀다라 한다.

 

다시 무량한 시간 동안 보시 따위를 수행하면 다시 더욱 높아져서 선법을 성취하여 일체 번뇌가 모두 나타나지 않으니, 이른바 8지 이상이다. 이를 큰 바라밀다라 한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지위 가운데 번뇌수면(煩惱隨眠)은 몇 가지나 있습니까?”

 

“선남자여, 대략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짝을 해치는 수면[害伴隨眠]이니 이른바 앞의 다섯 지위에 있다. 무슨 까닭인가?

선남자여, 모든 함께 나지 않은 현행의 번뇌는 함께 난 번뇌의 현행을 돕는 짝이 된다. 그는 이때 영원히 다시 생기지 않으니, 그러므로 짝을 없애는 수면이라 한다. 둘째는 약하고 못난 수면[羸劣隨眠]이니 이른바 제6지와 제7지 가운데 있다. 미세한 현행이 만일 닦음[修]에 항복되면 다시는 현행하지 않는 까닭이다. 셋째는 미세한 수면[微細隨眠]이니, 이른바 제8지 이상에 있다. 이 이상에서는 일체 번뇌가 다시는 현행하지 않고 오직 앎의 장애만이 있어서 의지가 되는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수면은 몇 가지 추중(麤重)이 끊어져야 나타납니까?”

 

“선남자여, 두 가지를 말미암는다. 이른바 피부[皮]에 있는 추중을 끊은 까닭에 앞의 두 가지를 나타내고, 다시 살에 있는 추중을 끊은 까닭에 세 번째를 나타낸다. 만일 뼈에 있는 추중을 끊는다면, 나는 영원히 일체 수면을 여의었다고 말하니 그 지위는 불지에 해당한다.”

 

“세존이시여, 얼마나 많은 셀 수 없는 겁을 지나야 이와 같은 추중을 끊을 수 있습니까?”

 

“선남자여, 삼대불가수겁(三大不可數劫)이나 무량겁(無量劫)을 지나야 하니, 이른바 연․월․보름․낮․밤․한나절․반나절․수유(須臾)․순식간․찰나 등의 분량과 겁의 수효로는 셀 수 없기 때문이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보살이 모든 지위에서 일으키는 번뇌에는 어떤 모습과 어떤 허물과 어떤 덕이 있습니까?” 

 

“선남자여, 더러움이 없는 모습이다. 무슨 까닭인가?

이 모든 보살은 초지 가운데서 확실히 일체 법의 법계에 대해 이미 잘 통달한다. 이 인연으로 말미암아 보살은 알면서도 바야흐로 번뇌를 일으키는 것이지,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더러움이 없는 모습이라 한다.

자신의 몸 가운데서 괴로움을 일으키지 않으므로 허물도 없다. 보살은 이와 같은 번뇌를 일으켜 유정의 세계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끊게 한다. 그러므로 그에게는 무량한 공덕이 있다.”

 

“매우 기이합니다. 세존이시여, 위없는 보리에는 이와 같이 큰 공덕의 이익이 있어 모든 보살이 일으키는 번뇌로 하여금 오히려 일체 유정이나 성문 그리고 독각의 선근보다 수승하게 하니, 하물며 그 밖의 무량한 공덕이겠습니까?”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성문승이나 대승도 오직 일승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나는 저 성문승 가운데서 갖가지 모든 법의 자성을 널리 말하였으니, 이른바 5온(蘊)과 혹은 안의 6처(處)와 혹은 밖의 6처이다. 대승 가운데서도 바로 그와 같은 법들을 설하였으니, 동일한 법계이며 동일한 이취(理趣)인 까닭에 나는 승(乘)의 차별된 성품을 말하지 않는다. 그 가운데서 혹 어떤 이들은 말 그대로 뜻에서 허망하게 분별하고는 한 무리는 더하고, 한 무리는 줄이면서 모든 승의 차별된 도리에 대해 서로 어긋난다고 말하며, 이렇듯 더욱더욱 서로가 논쟁을 일으킨다. 이와 같은 것을 이 가운데의 비밀한 뜻이라고 한다.”

 

그때 세존께서 다시 이 뜻을 펴시고자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모든 지위의 섭수와 생각과 다스려야 할 것
  수승함과 생(生)과 원(願)과 모든 배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이 대승을 의지하여 
  이것을 잘 닦으면 대각을 이루리라.
  
  모든 법의 갖가지 성품을 널리 말하고 
  그 모두가 한 이취임을 또 말하니
  낮은 승(乘)이라 하고 높은 승이라 하기에
  그러므로 나는 승에 다른 성품 없다 하노라.
  
  말 그대로 뜻에서 허망하게 분별하여
  어떤 이는 더하고 어떤 이는 덜어내 
  이 두 가지는 서로 어긋난다고 하며
  어리석은 자들 분별하며 다툼을 일으킨다. 
   
그때 관자재보살이 다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이 해심밀 법문 가운데서 이를 어떤 교법이라 하며, 제가 어떻게 받들어 지녀야 합니까?”

 

부처님께서 관자재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는 ‘제지바라밀요의교(諸地波羅密了義敎)’라 하며, 이 제지바라밀요의교로 그대는 마땅히 받들어 지녀라.”

 

이 제지바라밀요의교를 말씀하셨을 때, 그 큰 모임 가운데 있던 7만 5천 보살이 모두 보살의 대승광명삼마지(大乘光明三摩地)를 얻었다.

 

 

 

해심밀경(解深蜜經) 7. 지바라밀다품(地波羅蜜多品)

출처 : 출리심 보리심 공
글쓴이 : - 해탈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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